佛日長老訪師 師問曰 伏承長老獨化一方 何以荐遊峯頂 佛日曰 朗月當空挂 氷霜不自寒 師曰 莫卽是長老家風否 佛日曰 峭峙萬重關 於中含寶月 師曰 此猶是文言 作麽生是長老家風 曰今日賴遇佛日 佛日却問云 隱密全眞 時人知有道不得 大省無辜 時人知有道得 於此二途猶是時人升降處 未審長老親道自道如何道 師曰 我家道處無箇道 佛日曰 如來路上無私曲 便請玄音和一場 師曰 任汝二輪更互照 碧潭雲外不相關 佛日曰 爲報白頭無限衆 此回年少莫歸鄕 師曰 老少同輪無向背 我家玄路勿參差 佛日曰 一言定天下 四句爲誰留 師曰 汝言有三四 我道其中一也無 師因有偈曰 東西不相顧 南北與誰留 汝卽言三四 我卽一也無 光化四年九月二十八日白衆而化
●我家; 卽我 家 名詞詞綴
●參差; 參差不齊 參 參差 長短高低不整齊 不一樣 差 不整齊 如參差
불일장로(佛日長老)가 스님을 방문했다. 스님이 문왈(問曰) 복승(伏承; 伏奉)하건대 장로가 일방(一方)을 홀로 교화한다 하던데 무슨 까닭으로 거듭(荐) 봉정(峯頂)을 유행(遊行)하는가. 불일이 가로되 낭월(朗月)이 허공에 당해 걸렸으니(挂) 빙상(氷霜)은 스스로 차갑지(寒) 않다. 사왈 즉시(卽是) 장로(長老)의 가풍이 아닌가. 불일이 가로되 초치(峭峙; 가파른 재)가 만 겹(重)의 관문이며 가운데에 보월(寶月)을 머금었다. 사왈 이것은 오히려 이 문언(文言)이니 무엇이(作麽生) 이 장로의 가풍인가. 가로되 금일 다행히(賴) 불일을 만났다. 불일이 도리어 물어 이르되 은밀(隱密)한 전진(全眞)을 시인(時人)이 지유(知有)하지만 말함을 얻지 못하고 대성(大省; 매우 省察하다)하여 무고(無辜)함을 시인(時人)이 지유(知有)하면서 말함을 얻는다. 이 2도(途)는 오히려 이 시인(時人)의 승강처(升降處)다. 미심하오니 장로가 친히 말하고 스스로 말한다면 어떻게 말하겠는가. 사왈 아가(我家)가 말하는 곳은 저(箇) 말이 없다. 불일이 가로되 여래로상(如來路上)에 사곡(私曲)이 없나니 바로 청컨대 현음(玄音)으로 일장(一場) 화응(和應)하라, 사왈 너 이륜(二輪; 해와 달)이 다시 서로 비추는 대로 일임하나니 벽담(碧潭)은 구름 밖에서 상관(相關)하지 않는다. 불일이 가로되 백두(白頭)의 무한한 무리에게 통보(通報)하나니 이번 회(回)에 연소(年少)하거든 귀향(歸鄕)하지 말아라. 사왈 노소(老少)가 동륜(同輪)이라 향배(向背)가 없나니 아가(我家)의 현로(玄路)에서 참치(參差)하지 말아라. 불일이 가로되 1언(言)으로 천하를 정(定)하거니와 4구(句)는 누구를 위해 머물러 둘까. 사왈 너의 말에는 삼사(三四)가 있지만 나는 말하노니 그 중에 하나도 없다. 스님이 인하여 게가 있어 가로되 동서(東西)를 서로 돌아보지 않거늘/ 남북을 누구에게 머물러 줄까/ 너는 곧 삼사(三四)를 말하지만/ 나는 곧 하나도 없다. 광화(光化) 4년(901) 9월 28일 대중에게 알리고(白) 화(化; 逝世)했다.
●我家; 곧 아(我)니 가(家)는 명사의 사철(詞綴; 接辭).
●參差; 참치부제(參差不齊)니 참(參)은 참치(參差)니 장단ㆍ고저가 정제(整齊)하지 않고 한 모양이 아님이며 치(差)는 정제(整齊)하지 않음이니 참치(參差)와 같음.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불교신문 광고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40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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