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17 운거도응(雲居道膺)-경화상(景和尙)

태화당 2025. 10. 5. 12:24

景德傳燈錄卷第十七

 

吉州靑原山行思禪師法嗣

第五世下二十六人

袁州洞山良价禪師法嗣二十六人

洪州雲居山道膺禪師 1554

撫州曹山本寂禪師 1568

洞山第二世道全禪師 1581

湖南龍牙山居遁禪師 1583

京兆華嚴寺休靜禪師 1592

京兆蜆子和尙 1594

筠州九峯普滿大師 1596

台州幽棲道幽禪師 1597

洞山第三世師虔禪師 1598

[6]京白馬遁儒禪師 1600

越州乾峯和尙 1602

吉州禾山和尙 1603

明州天童山咸啓禪師十一卷有目無傳1603

潭州寶蓋山和尙 1604

益州北院通禪師 1605

高安白水本仁禪師 1608

撫州疎山光仁禪師 1610

澧州欽山文邃禪師已上一十八人見錄1613

明州天童山義禪師

太原資聖方禪師

新羅國金藏和尙

益州白禪師

潭州文殊和尙

舒州白水山和尙

邵州西湖和尙

靑陽通玄和尙已上八人無機緣語句不錄

第六世之一四十三人

鄂州巖頭全豁禪師法嗣九人

台州瑞巖師彦禪師 1620

懷州玄泉彦禪師 1623

吉州靈巖慧宗禪師 1623

福州羅山道閑禪師 1624

福州香谿從範禪師 1628

福州羅源聖壽嚴禪師六人見錄1629

洪州大寧海一禪師

信州鵝湖山韶和尙

洪州大寧訥和尙已上三人無機緣語句不錄

洪州感潭資國和尙法嗣一人

安州白兆山志圓禪師一人見錄1629

濠州思明和尙法嗣一人

襄州鷲嶺善本禪師一人見錄 1631

潭州大光山居誨禪師法嗣一十三人

潭州谷山有緣禪師 1631

潭州龍興和尙 1632

潭州伏龍山第一世和尙 1633

京兆白雲善藏禪師 1633

潭州伏龍山第二世和尙 1633

陝府龍峻山和尙 1634

潭州伏龍山第三世和尙已上七人見錄1635

大光山玄禪師

漳州藤霞和尙

宋州淨覺和尙

華州崇勝證和尙

鄂州永壽和尙

鄂州靈竹和尙已上六人無機緣語句不錄

筠州九峯道虔禪師法嗣一十人

新羅淸院和尙 1635

洪州泐潭神黨禪師 1635

吉州南源山行修禪師 1636

洪州泐潭明禪師 1636

吉州秋山和尙 1637

洪州泐潭延茂禪師 1637

洪州同安常察禪師 1638

洪州泐潭悟禪師 1639

吉州禾山無殷禪師 1640

洪州泐潭牟和尙已上十人見錄 1644

台州涌泉景欣禪師法嗣一人

台州六通院紹禪師一人見錄1644

潭州雲蓋山志元禪師法嗣三人

雲蓋山志罕禪師 1645

新羅臥龍和尙 1646

彭州天台和尙已上三人見錄1646

潭州谷山藏禪師法嗣三人

新羅瑞巖和尙 1647

新羅泊嚴和尙 1647

新羅大嶺和尙已上三人見錄 1648

潭州中雲蓋山和尙法嗣一人

雲蓋山景和尙一人見錄1648

河中府棲巖存壽禪師法嗣一人

道德禪師一人無機緣語句不錄

 

吉州靑原行思禪師第五世

袁州洞山良价禪師法嗣

洪州雲居道膺禪師 幽州玉田人也 姓王氏 童丱依師稟敎 二十五受具於范陽延壽寺 本師令習聲聞篇聚 乃歎曰 大丈夫豈可桎梏於律儀耶 乃去詣翠微山問道 經三載有雲遊僧自豫章來 盛稱洞山价禪師法席 師遂造焉 洞山問曰 闍梨名什麽 曰道膺 洞山云 向上更道 師云 向上道卽不名道膺 洞山曰 與吾在雲巖時秖對無異也 後師問 如何是祖師意 洞山曰 闍梨他後有一把茅蓋頭 忽有人問闍梨如何秖對 曰道膺罪過

童丱; 指童子 童年 丱 丱角 兒童髮式

桎梏; 祖庭事苑五 桎梏 上之日切 在足曰桎 下古沃切 在手曰梏 桎梏 紂所作 禪林疏語考證二 孟子曰 桎梏死者非正命也 註 桎梏 所以拘罪人者也

盛稱; 極力稱贊

 

홍주(洪州) 운거도응(雲居道膺) 선사. 유주(幽州) 옥전(玉田) 사람이며 성이 왕씨(王氏). 동관(童丱)에 스승에게 의지해 가르침을 받았고 25에 범양(范陽) 연수사(延壽寺)에서 수구(受具)했다. 본사(本師)가 성문(聲聞)의 편취(篇聚)를 학습하게 했는데 이에 탄식하며 가로되 대장부가 어찌 가히 율의(律儀)에 질곡(桎梏)되겠는가. 이에 가서 취미산(翠微山)으로 나아가 문도(問道)했다. 3()를 지나() 운유승(雲遊僧)이 있어 예장(豫章)으로부터 왔는데 동산개(洞山价) 선사의 법석(法席)을 성칭(盛稱)하는지라 스님이 드디어 나아갔다(). 동산(洞山)이 문왈(問曰) 사리(闍梨)는 이름이 무엇인가. 가로되 도응(道膺)입니다. 동산이 이르되 향상(向上)을 다시 말하라. 사운(師云) 향상을 말하면 곧 이름이 도응이 아닙니다. 동산이 가로되 내가 운암(雲巖)에 있을 때 지대(秖對)한 것과 다름이 없구나. 후에 스님이 묻되 무엇이 이 조사의(祖師意)입니까. 동산이 가로되 사리(闍梨)가 타후(他後)에 하나의 파모개두(把茅蓋頭)가 있는데 홀연히 어떤 사람이 사리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지대(秖對)하겠는가. 가로되 도응의 죄과(道膺)입니다.

童丱; 동자(童子), 동년(童年)을 가리킴. ()은 관각(丱角)이니 아동의 발식(髮式).

桎梏; 조정사원5. 질곡(桎梏) 상은 지일절(之日切; )이니 발에 있음을 가로되 질(). 하는 고옥절(古沃切; )이니 손에 있음을 가로되 곡(). 질곡은 주(; 商王朝의 마지막 왕)가 만든 것임. 선림소어고증2. 맹자에 가로되 질곡(桎梏)에 죽는 자는 정명(正命)이 아니다. () 질곡은 죄인을 구속하는 소이(所以).

盛稱; 극력(極力)으로 칭찬함.

 

洞山有時謂師曰 吾聞思大和尙 生倭國作王虛實 曰若是思大佛亦不作 況乎國王 洞山然之 一日洞山問 什麽處去來 師曰 蹋山來 洞山曰 阿那箇山堪住 曰阿那箇山不堪住 洞山曰 恁麽卽國內總被闍梨占却也 曰不然 洞山曰 恁麽卽子得箇入路 曰無路 洞山曰 若無路爭得與老僧相見 曰若有路卽與和尙隔生去也 洞山曰 此子已後千人萬人把不住 師隨洞山渡水 洞山問水深淺 曰不濕 洞山曰 麁人 曰請師道 洞山曰 不乾 洞山謂師曰 昔南泉問講彌勒下生經僧曰 彌勒什麽時下生 曰見在天宮當來下生 南泉曰 天上無彌勒 地下無彌勒 師隨擧而問曰 只如天上無彌勒地下無彌勒 未審誰與安 洞山直得禪床震動乃曰 膺闍梨

隔生; 與隔世同意 不處在同一個時代 形容生疏

彌勒下生經; 全一卷 彌勒三部經之一 六部經之一 又稱觀彌勒菩薩下生經 觀彌勒下生經 彌勒成佛經 彌勒當來下生經 下生經 西晉竺法護譯 收於大正藏第十四冊

; 根據人名中的字義 另取的別名叫字 古代男子二十而冠 冠後據本名涵義而另立別稱

 

동산이 어떤 때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듣건대 사대(思大; 南嶽慧思) 화상이 왜국(倭國)에 태어나 왕이 되었다는데 허()냐 실()이냐. 가로되 만약 이 사대일진대 부처도 또한 짓지 않거늘 하물며 국왕이겠습니까. 동산이 그렇다 하였다(然之). 어느 날 동산이 묻되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사왈(師曰) 답산(蹋山)하고 왔습니다. 동산이 가로되 어느(阿那箇) 산이 가히 머물 만하더냐(堪住). 가로되 어느(阿那箇) 산인들 가히 머물 만하지 않겠습니까. 동산이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국내(國內)가 모두() 사리(闍梨)가 점거해버림(占却)을 입겠다. 가로되 그렇지 않습니다. 동산이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자네가 저() 입로(入路)를 얻었다. 가로되 길이 없습니다(無路). 동산이 가로되 만약 길이 없다면 어찌 노승과 상견함을 얻었는가. 가로되 만약 길이 있다면 곧 화상과 격생(隔生)하여 갈 것입니다. 동산이 가로되 이 자(; 남자의 通稱)는 이후(已後)에 천인만인(千人萬人)이 잡아 머물게 하지 못하리라. 스님이 동산을 따라 물을 건넜다. 동산이 묻되 물이 깊으냐, 얕으냐. 가로되 축축하지 않습니다(不濕). 동산이 가로되 거친 사람아(麁人). 가로되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동산이 가로되 마르지 않다(不乾). 동산이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지난 날() 남천(南泉)이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을 강설하는 중에게 물어 가로되 미륵이 어느 때 하생하는가. 가로되 현재(見在; ) 천궁(天宮)에 있고 당래(當來)에 하생합니다. 남천이 가로되 천상에 미륵이 없고 지하에 미륵이 없다. 스님이 듦을 따라(隨擧) 문왈(問曰) 지여(只如) 천상에 미륵이 없고 지하에 미륵이 없다면 미심하오니 누가 자()를 안치해 주었습니까. 동산이 바로 선상이 진동(震動)함을 얻고는 이에 가로되 응사리(膺闍梨).

隔生; 격세(隔世)와 같은 뜻. 같은 1개의 시대에 처하여 있지 않음이니 생소함을 형용.

彌勒下生經; 1. 미륵 3부경의 하나, 6부경의 하나. 또 명칭이 관미륵보살하생경ㆍ관미륵하생경ㆍ미륵성불경ㆍ미륵당래하생경ㆍ하생경이니 서진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했고 대정장 제14책에 수록되었음.

; 인명(人名) 중의 자의(字義)에 근거(根據)하자면 따로 취한 별명을 일컬어 자()라 함. 고대(古代)의 남자는 20이면 갓을 썼고() 관후(冠後)에 본명의 함의(涵義; 포함된 뜻)에 의거해 따로 별칭(別稱)을 세웠음.

 

合醬次洞山問 作什麽 師曰 合醬 洞山曰 用多少鹽 曰旋入 洞山曰 作何滋味 師曰得 洞山問 大闡提人殺父害母 出佛身血 破和合僧 如是種種孝養何在 師曰 始得孝養 自爾洞山許之爲室中領袖 初止三峯其化未廣 後開雲居山四衆臻萃 一日上堂 因擧古人云 地獄未是苦 向此衣服下 不明大事失却最苦 師乃謂衆曰 汝等旣在遮箇行流 十分去九 不較多也 更著些力便是上坐不屈平生行脚 不孤負叢林 古人道 欲得保任此事 須向高高山頂立 深深水底行 方有些子氣力 汝若大事未辦 且須履踐玄途 問如何是沙門所重 師曰 心識不到處 問佛與祖有何階級 師曰 俱是階級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古路不逢人 可觀上座問 的罷標指請師速接 師曰 卽今作麽生 觀曰 道卽不無莫領話好 師曰 何必闍梨 問如何是口訣 師曰 近前來向汝道 僧近前曰 請師道 師曰也知也知 師擲癢和問衆 還會麽 衆曰 不會 師曰 趁雀兒也不會

合醬; 合 制作

滋味; 滋 美味

孝養; 盡孝道供養父母也

口訣; 口授決定之要義也

標指; 准則 猶標榜

癢和; 卽如意 又稱癢和子 痒和子 爲輔助搔癢之物

 

스님이 합장(合醬)하던 차에 동산(洞山)이 묻되 무엇하느냐. 사왈(師曰) 합장(合醬)합니다. 동산이 가로되 다소(多少)의 소금을 썼는가. 가로되 바로 넣었습니다(旋入). 동산이 가로되 어떤 자미(滋味)를 짓더냐. 사왈 얻었습니다(). 동산이 묻되 대천제인(大闡提人)이 살부살모(殺父害母)하고 불신에 피를 내고(出佛身血) 화합승을 파괴하고(破和合僧) 이와 같이 갖가지라면 효양(孝養)이 어디에 있느냐. 사왈 비로소 효양을 얻습니다. 이로부터 동산이 허가하여 실중(室中)의 영수(領袖)가 되었다. 처음 삼봉(三峯)에 머물렀는데() 그 교화가 광대하지 않았고 후에 운거산(雲居山)을 열자 사중(四衆)이 진췌(臻萃; 모이다)했다. 어느 날 상당했다. 인하여 들되() 고인이 이르기를 지옥이 이 고()가 아니고 이 의복(衣服; 袈裟를 가리킴) 아래를 향해 대사(大事)를 밝히지 못하고 실각(失却; 몸을 잃어버리다)함이 가장 괴로움이다(最苦). 스님이 이에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등이 이미 저개(遮箇)의 행류(行流; 수행하는 무리)에 있으니 십분(十分)에 구()를 제거해야 많이 어긋나지 않는다(不較多). 다시 조금의 힘(些力)을 붙여야 바로 이 상좌(上坐)가 평생의 행각(行脚)을 왕(; 枉屈이니 歪曲. 違背)하지 않고 총림을 고부(孤負; 저버리다)하지 않는다. 고인(古人; 藥山)이 말하되 차사(此事)를 보임(保任)함을 얻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높고 높은 산정(山頂)을 향해 서고 깊고 깊은 수저(水底)로 다녀야 한다 했으니 비로소 사자(些子; 些少)의 기력(氣力)이 있다. 너희가 만약 대사(大事)를 판별(判別; )하지 못했다면 또() 모름지기 현도(玄途)를 이천(履踐)해야 한다. 묻되 무엇이 이 사문(沙門)의 중요한 것(所重)입니까. 사왈 심식(心識)이 이르지 않는 곳이다. 묻되 불()과 조()가 어떤 계급(階級)이 있습니까. 사왈 모두 이 계급이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고로(古路)에서 사람을 만나지 않음이다. 가관(可觀) 상좌가 묻되 표지(標指)를 적실(的實; )히 마쳤으니() 스님의 속접(速接; 속히 接引)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즉금은 어떠한가. 관왈(觀曰) 말함은 곧 없지 않으나 화()를 영회(領會)하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사왈 하필(何必)이면 사리(闍梨). 묻되 무엇이 이 구결(口訣)입니까. 사왈 앞으로 다가오너라, 너를 향해 말하겠다. 중이 앞으로 다가가서 가로되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또한 알았다(也知). 또한 알았다. 스님이 양화(癢和)를 던지고 대중에게 묻되 도리어 아느냐. 대중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참새(雀兒; 後綴)를 쫓음()도 알지 못하느냐.

合醬; ()은 제작(制作).

滋味; ()는 좋은 맛(美味).

孝養; 효도를 다해 부모를 공양함.

口訣; 결정(決定)의 요의(要義)를 입으로 전수함임.

標指; 준칙(准則). 표방(標榜)과 같음.

癢和; 곧 여의(如意)니 또 명칭이 양화자(癢和子)ㆍ양화자(痒和子). 조양(搔癢; 가려운 데를 긁다)을 보조하는 물건.

 

問如何得不惱亂和尙 師曰與我喚處德來 僧遂去喚來 師曰 與我閉却門 問馬祖出八十四人善知識 未審和尙出多少人 師展手示之 問如何是向上人行履處 師曰 天下太平 問遊子歸家時如何 師曰 且喜歸來 曰將何奉獻 師曰 朝打三千暮打八百 師謂衆曰 如好獵狗 只解尋得有縱迹底 忽遇羚羊挂角 莫道迹氣亦不識 僧問 羚羊掛角時如何 師曰 六六三十六 又曰 會麽 僧曰 不會 師曰 不見道無蹤迹有僧擧似趙州 趙州云 雲居師兄猶在 僧乃問 羚羊掛角時如何 趙州云 六六三十六 衆僧夜參侍者持燈來 見影在壁上 有僧便問 兩箇相似時如何 師曰 一箇是影 問學人擬欲歸鄕時如何 師曰 只遮是 新羅僧問 佛陀波利見文殊 爲什麽却迴去 師曰 只爲不將來 所以却迴去

朝打三千暮打八百; 是禪師對于僧徒參學失誤的斥責

佛陀波利見文殊; 釋氏稽古略三 西域北印度罽賓國沙門佛陀波利尊者 此云覺護 初儀鳳元年來五臺淸涼山逢一叟 問之曰 爾何爲來 曰欲禮文殊 叟曰 曾持佛頂尊勝呪來否 曰未也 叟曰 此土衆生犯殺盜淫妄四業者多 能回取呪以流此土作大利益 弟子當示師文殊所在 言已忽不見 波利乃返本國取呪至是 弘道元年至長安 有旨命杜行顗及日照三藏翻譯訖 波利又將梵本 訪西明寺僧順貞 貞奏聞共譯之 名尊勝陀羅尼 乃第三出也 與杜令譯者大同小異

 

묻되 어찌해야 화상을 뇌란(惱亂; 煩擾)하지 않음을 얻겠습니까. 사왈(師曰) 나를 위해() 처덕(處德)을 불러 오너라. 중이 드디어 가서 불러 왔다. 사왈 나를 위해() 문을 닫아버려라. 묻되 마조(馬祖)가 팔십사인(八十四人; 저본에 八十八人으로 지었음)의 선지식을 배출(輩出)했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은 다소의 사람을 배출했습니까. 스님이 손을 펴(展手) 보였다. 묻되 무엇이 이 향상인(向上人)의 행리처(行履處)입니까. 사왈 천하태평(天下太平)이다. 묻되 유자(遊子)가 귀가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돌아옴을(歸來) 다만 기뻐한다(且喜). 가로되 무엇을 가지고 봉헌(奉獻)합니까. 사왈 아침에 3천을 때리고 저녁에 8백을 때린다(朝打三千暮打八百).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예컨대() 좋은 사냥개(好獵狗)라도 다만 종적(縱迹)이 있는 것만 심득(尋得)할 줄 아나니 홀연히 영양(羚羊)의 괘각(挂角)을 만나면 적(; 縱迹)을 말하지 말아라, (; 氣息)도 또한 알지 못한다. 승문(僧問) 영양이 괘각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육육 삼십육이다. 또 가로되 아느냐. 승왈 알지 못합니다. 사왈 종적이 없다고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어떤 중이 趙州에게 들어 보이자 조주가 이르되 雲居 師兄이 오히려 있다. 중이 이에 묻되 영양이 괘각할 때 어떻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육육 삼십육이다. 중승(衆僧)이 야참(夜參)에 시자가 등()을 가지고 왔는데 그림자가 벽상(壁上)에 있음을 보았다. 어떤 중이 바로 묻되 양개(兩箇)가 상사(相似)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1개는 이 그림자다. 묻되 학인이 귀향(歸鄕)하려고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다만 이것이 이것이다(只遮是). 신라승(新羅僧)이 묻되 불타파리가 문수를 보고는(佛陀波利見文殊) 무엇 때문에 돌아갔습니까(却迴去). 사왈 다만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소이로 돌아갔다(却迴去).

朝打三千暮打八百; 이것은 이 선사가 승도(僧徒)의 참학의 실오(失誤)에 대한 척책(斥責; 責罵).

佛陀波利見文殊; 석씨계고략3. 서역 북인도 계빈국(罽賓國) 사문 불타파리(佛陀波利; Buddha-pāla) 존자는 여기에선 이르되 각호(覺護). 처음 의봉(儀鳳) 원년(元年; 676) 오대(五臺) 청량산(淸涼山)에 와서 한 늙은이()를 만났는데 그에게 물어 가로되 그대()는 무엇을 하러 왔습니까. 가로되 문수(文殊)에게 예배하려고 합니다. 수왈(叟曰) 일찍이 불정존승주(佛頂尊勝呪)를 가지고 왔습니까. 가로되 아닙니다(未也). 수왈(叟曰) 차토(此土)의 중생이 살도음망(殺盜淫妄) 4()을 범하는 자가 많습니다. 능히 돌아가 주()를 취해 차토에 유통(流通)하여 큰 이익을 짓는다면 제자(弟子)가 마땅히 스님에게 문수의 소재를 보이겠습니다. 말을 마치자 홀연히 보이지 않았다. 파리(波利)가 이에 본국으로 돌아가 취주(取呪)하여 이에 이르렀고 홍도(弘道) 원년683) 장안에 이르렀다. 성지(聖旨)가 있어 두행의(杜行顗) 및 일조삼장(日照三藏)에게 명()하여 번역해 마쳤다. 파리(波利)가 또 범본(梵本)을 가지고 서명사(西明寺) () 순정(順貞)을 방문했는데 순정이 주문(奏聞)하여 함께 이를 번역했고 이름이 존승다라니(尊勝陀羅尼)니 곧 제3(第三出)이다. 두령(杜令)이 번역한 것과 대동소이하다.

 

師謂衆曰 學佛法底人如斬釘截鐵始得 時一僧出曰 便請和尙釘鐵 師曰 口裏底是什麽 僧問 承敎有言 是人先世罪業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 此意如何 師曰動卽應墮惡道 靜卽爲人輕賤崇壽稠答云 心外有法應墮惡道 守住自己爲人輕賤僧問 香積之飯什麽人得喫 師曰 須知得喫底人 入口也須抉出 有一僧在房內念經 師隔窓問 闍梨念者是什麽經 對曰 維摩經 師曰 不問維摩經 念者是什麽經 其僧從此得入 問孤逈峭巍巍時如何 師曰 孤逈峭巍巍 僧曰 不會 師曰 面前案山子也不會

斬釘截鐵; 禪家用來于堅決果斷地 截斷妄想雜念

香積之飯; 又作香飯 指衆香國香積佛之香飯 維摩經香積佛品 於是香積如來 以衆香鉢盛滿香飯 與化菩薩

維摩經; 維摩經有三譯 一吳支謙譯 題爲維摩詰經 二卷 二秦羅什譯 題爲維摩詰所說經 三卷 三唐玄奘譯 題爲說無垢稱經 六卷 三譯中流行盛者羅什譯維摩經 皆收於大正藏第十四冊

孤逈; 孤立 遠離其他事物

案山子; 案山 子 後綴 案山 前山 專指宅基地或墳地對面的山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불법을 배우는 사람은 참정절철(斬釘截鐵)과 같아야 비소로 옳다. 때에 1()이 나와 가로되 화상이 절철(釘鐵)하시기를 바로 청합니다. 사왈(師曰) 입속의 것은 이 무엇인가. 승문(僧問) 듣건대() (; 금강경)에 말씀이 있어 이 사람은 선세(先世)의 죄업(罪業)으론 응당 악도(惡道)에 떨어지련마는 금세인(今世人)이 경천(輕賤; 輕蔑)한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동()하면 곧 응당 악도에 떨어지고 정()하면 곧 남에게 경천(輕賤)된다崇壽稠答云 心外에 법이 있으면 응당 악도에 떨어지고 자기를 守住하면 남에게 경천된다. 승문 향적지반(香積之飯)은 어떤 사람이 먹음을 얻습니까. 사왈 모름지기 알지니 먹음을 얻는 사람은 입에 들면 또한 꼭 긁어내어야 한다. 어떤 1승이 방내(房內)에 있으면서 염경(念經; 경을 외우다)했다. 스님이 창 너머에서 묻되 사리(闍梨)가 외우는 것(念者)은 이 무슨 경인가. 대왈(對曰) 유마경(維摩經)입니다. 사왈 유마경을 물음이 아니라 외우는 것은 이 무슨 경인가. 그 중이 이로 좇아 득입(得入)했다. 묻되 고형(孤逈)하고 초외외(峭巍巍; 가파르게 높은 모양)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고형(孤逈)하고 초외외(峭巍巍)하다. 승왈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면전(面前)의 안산자(案山子)도 알지 못하느냐.

斬釘截鐵; 선가가 써서 견결(堅決)한 과단지(果斷地)에서 망상과 잡념을 절단함.

香積之飯; 또 향반(香飯)으로 지음. 중향국(衆香國) 향적불의 향반(香飯)을 가리킴. 유마경 향적불품. 이에 향적여래가 뭇 향발(香鉢)에 향반(香飯)을 가득 채워 화보살(化菩薩)에게 주었다.

維摩經; 유마경은 3()이 있음. 1. () 지겸(支謙)이 번역했으니 경제(經題)가 유마힐경(維摩詰經)이 되며 2. 2. () 라집(羅什)이 번역했으니 경제가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이 되며 3. 3. () 현장(玄奘)이 번역했으니 경제가 설무구칭경(說無垢稱經)이 되며 6. 3역 중 유행이 왕성한 것은 라집이 번역한 유마경이며 모두 대정장 제14책에 수록되었음.

孤逈; 고립(孤立)이니 기타의 사물을 원리(遠離).

案山子; 안산(案山)이니 자()는 후철(後綴) 안산(案山)은 전산(前山)이니 오로지 가택의 기지(基地)나 혹 분지(墳地)가 대면한 산을 가리킴.

 

新羅僧問 是什麽得恁麽難道 師曰 有什麽難道 曰便請和尙道 師曰 新羅新羅 問明眼人爲什麽黑如漆 師曰 何怪 荊南節度使成汭遣大將入山送供 問曰 世尊有密語 迦葉不覆藏 如何是世尊密語 師召曰 尙書 其人應諾 師曰 會麽 曰不會 師曰 汝若不會世尊密語 汝若會迦葉不覆藏 僧問 才生爲什麽不知有 師曰 不同生 曰未生時如何 師曰 不曾滅 曰未生時在什麽處 師曰 有處不收 曰什麽人受滅 師曰 是滅不得者

成汭; (-903) 原名郭禹 淮西人 唐末五代時任荊南節度使 [百度百科]

世尊有密語; 密語 指超越語言知解的禪機施設 涅槃經五云 諸佛世尊唯有密語 無有密藏

 

신라승(新羅僧)이 묻되 이 무엇이기에 이렇게(恁麽) 말하기 어려움을 얻습니까. 사왈(師曰) 무슨 말하기 어려움이 있으랴. 가로되 화상의 말씀을 바로 청합니다. 사왈 신라(新羅), 신라. 묻되 명안인(明眼人)이 무엇 때문에 검기가 칠()과 같습니까. 사왈 무엇이 괴이(怪異; )한가. 형남절도사(荊南節度使) 성예(成汭)가 대장(大將)을 보내 입산하여 송공(送供)했다. 문왈(問曰) 세존이 밀어가 있는데(世尊有密語) 가섭이 부장(覆藏)하지 않았다. 무엇이 이 세존의 밀어입니까. 스님이 불러 가로되 상서(尙書). 그 사람이 응낙했다. 사왈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네가 만약 알지 알지 못하면 세존의 밀어(密語)며 네가 만약 안다면 가섭이 부장(覆藏)하지 않았음이다. 승문(僧問) 겨우 생()하면 무엇 때문에 지유(知有)하지 못합니까. 사왈 생과 같지 않다(不同生). 가로되 생하지 않았을 땐 어떻습니까. 사왈 일찍이 멸()하지 않았다. 가로되 생하지 않았을 때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유처(有處)는 거두지 못한다. 가로되 어떤 사람이 멸()을 받습니까. 사왈 이 멸을 얻지 못하는 자이다.

成汭; (-903) 원명(原名)은 곽우(郭禹)며 회서 사람. 당말오대 시 형남절도사에 임명되었음 [백도백과].

世尊有密語; 밀어(密語)는 어언과 지해를 초월한 선기의 시설을 가리킴. 열반경5에 이르되 제불세존은 오직 밀어(密語)만 있고 밀장(密藏)은 있지 않다.

 

師謂衆曰 汝等師僧家 發言吐氣須有來由 凡問事須識好惡 尊卑良賤信口無益 傍家到處覓相似語 所以尋常向兄弟道 莫怪不相似 恐同學太多去 第一莫將來 將來不相似 八十老人出場屋 不是小兒戲 一言參差千里萬里難爲收攝 直至敲骨打髓須有來由 言語如鉗夾鉤鎖相續不斷 始得頭頭上具物物上新 可不是精得妙底事 道汝 知有底人終不取次 十度擬發言 九度却休去 爲什麽如此 恐怕無利益 體得底人心如臘月扇 口邊直得醭出 不是汝彊爲 任運如此 欲得恁麽事 須是恁麽人 旣是恁麽人 何愁恁麽事 學佛邊事是錯用心 假饒解千經萬論 講得天華落石點頭 亦不干自己事 況乎其餘有何用處 若將有限心識 作無限中用 如將方木逗圓孔 多少差訛 設使攢花簇錦 事事及得及盡一切事 亦只喚作了事人無過人 終不喚作尊貴 將知尊貴邊 著得什麽物 不見從門入者非寶 棒上不成龍 知麽 師如是三十年開發玄楗 徒衆常及千五百之數 南昌周氏尤所欽風 唐天復元年秋示微疾 十二月二十八日 爲大衆開最後方便 敍出世始卒之意 衆皆愴然 越明年正月三日跏趺長往 今本山影堂存焉 勅諡弘覺大師 塔曰圓寂

師僧家; 對僧人之敬稱或泛稱

信口; 随口 謂出言不加思索

場屋; 指科擧考試場

鉗夾; 鉗 鐵鋏 夾 夾東西的器具

臘月扇; 臘月不必扇子 喩指都無所用的物件

方木逗圓孔; 用方形木頭欲投合於圓孔 比喩方法錯誤 無法達到目的 逗 物相投合也

攢花簇錦; 形容五色繽紛 繁盛豔麗的景象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 등 사승가(師僧家)는 발언하고 토기(吐氣)하매 꼭 내유(來由)가 있어야 하고 무릇 문사(問事)에 모름지기 호오(好惡)를 알아야 하나니 존비(尊卑)와 양천(良賤)에 신구(信口)하면 무익하다. 방가(傍家)의 도처(到處)에서 상사어(相似語)를 찾으니 소이로 심상(尋常)에 형제를 향해 말하되 상사(相似)하지 않음을 괴이히 여기지 말아라. 동학(同學)이 너무 많이 떠날까(太多去) 염려한다. 첫째(第一) 가지고 오지 말아라(莫將來), 가지고 오면 상사하지 않나니 팔십 노인이 장옥(場屋)에 나감은 이 소아희(小兒戲; 소아의 희롱)가 아니다. 일언(一言)이 참치(參差)하면 천리만리(千里萬里)인지라 수섭(收攝)하기 어렵다. 바로 고골(敲骨)하고 타수(打髓)함에 이르러서도 모름지기 내유(來由)가 있어야 한다. 언어가 겸협(鉗夾)과 구쇄(鉤鎖; 갈고리와 사슬)와 같이 상속(相續)하여 부단(不斷)해야 비로소 두두상(頭頭上)에 갖추고() 물물상(物物上)에 새로움()을 얻는다. 가히 이는 정()으로 묘()를 얻을 일이 아니다. 너희에게 말하노니 지유(知有)하는 사람은 마침내 취차(取次; 草率. 容易)하지 않나니 10(; . ) 발언하려고 하면 9() 도리어 쉬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가. 이익이 없음을 염려하고 두려워하여서이다(恐怕). 체득(體得)한 사람의 마음은 납월의 부채(臘月扇)와 같고 입가에 바로 곰팡이()가 나옴을 얻는다. 이 네가 억지로 함(彊爲)이 아니라 움직이는 대로(任運) 이와 같다. 이러한 일(恁麽事)을 얻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이는 이러한 사람(恁麽人)이라야 하고 이미 이러한 사람이라면 어찌 이러한 일을 수심(愁心)하겠는가. 불변사(佛邊事)를 배움은 이 잘못 용심(用心)함이니 가요(假饒; 假令) 천경만론(千經萬論)을 이해하고, 강설하여 천화(天華)가 떨어지고 돌이 머리를 끄덕임(點頭)을 얻더라도 또한 자기사(自己事)에 상간(相干)이 없거늘 하물며 그 나머지가 무슨 용처(用處)가 있겠는가. 만약 유한(有限)한 심식(心識)을 가지고 무한(無限) 가운데 씀을 짓는다면 마치 방목을 가지고 원공에 맞춤과 같아서(如將方木逗圓孔) 다소(多少) 차와(差訛; 錯誤. 差錯). 설사(設使) 찬화족금(攢花簇錦)하여 사사(事事)가 일체사(一切事)에 급득급진(及得及盡; 얻음에 이르고 다함에 이르다)하더라도 또한 다만 요사인(了事人)ㆍ무과인(無過人)이라 불러 짓고 마침내 존귀(尊貴)라고 불러 짓지 않는다. 이에() 아나니 존귀변(尊貴邊)에 무슨 물건을 붙이겠는가(著得). 보지 못하느냐, 문으로 좇아 들어온 것은 보배가 아니며 방상(棒上)에선 용()을 이루지 못한다. 아느냐. 스님이 이와 같이 30년 동안 현건(玄楗; 현묘한 빗장)을 개발(開發)했고 도중(徒衆)이 늘 천오백(千五百)의 수()에 이르렀다(). 남창(南昌) 주씨(周氏)가 더욱() 흠풍(欽風)하는 바이었다. () 천복(天復) 원년(901) 가을 미질(微疾)을 보였고 1228일 대중을 위해 최후의 방편을 열어 출세(出世)의 시졸(始卒; 始終)의 뜻을 서술했다. 대중이 모두 창연(愴然; 슬퍼하는 모양)했다. 명년(明年)으로 넘어가() 정월 3일 가부(跏趺)하고 장왕(長往)했다. 지금(至今) 본산(本山)에 영당(影堂)이 존재한다. 칙시가 홍각대사(弘覺大師)며 탑왈 원적(圓寂)이다.

師僧家; 승인에 대한 경칭 혹 범칭(泛稱).

信口; 수구(随口)니 이르자면 말을 내면서 사색을 가하지 않음.

場屋; 과거고시장(科擧考試場)을 가리킴.

鉗夾; ()은 철협(鐵鋏; 쇠집게)이며 협()은 동서(東西; 물건)를 끼는 기구(器具).

臘月扇; 납월에 부채가 필요하지 않음. 도대체 소용 없는 물건을 비유로 가리킴.

方木逗圓孔; 네모 꼴의 나무를 써서 둥근 구멍에 투합(投合)하려고 함이니 방법의 착오로 목적에 달도(도달)할 법이 없음에 비유함. ()는 물건을 서로 투합(投合)함임.

攢花簇錦; 오색이 빈분(繽紛; 어지럽게 흩어지는 모양)하면서 번성하고 염려(豔麗; 선명하고 미려함)한 경상(景象)을 형용.

 

撫州曹山本寂禪師 泉州莆田人也 姓黃氏 少慕儒學 年十九出家 入福州福唐縣靈石山 二十五登戒 唐咸通初禪宗興盛 會洞山价禪師坐道場 往來請益 洞山問 闍梨名什麽 對曰 本寂 曰向上更道 師曰 不道 曰爲什麽不道 師曰 不名本寂 洞山深器之 師自此入室 密印所解 盤桓數載 乃辭洞山 洞山問 什麽處去 曰不變異處去 洞山云 不變異豈有去耶 師曰 去亦不變異 遂辭去 隨緣放曠 初受請止于撫州曹山 後居荷玉山 二處法席學者雲集

密印; 謂直指之心印

 

무주(撫州) 조산본적(曹山本寂) 선사. 천주(泉州) 보전(莆田) 사람이며 성이 황씨(黃氏). 소년(少年)에 유학(儒學)을 사모(思慕)했고 나이 19에 출가하여 복주(福州) 복당현(福唐縣) 영석산(靈石山)에 들어갔고 25에 등계(登戒)했다. () 함통(咸通; 860-873) 초 선종이 흥성(興盛)했고 마침() 동산개(洞山价) 선사가 도량(道場)에 앉았고 왕래하며 청익(請益)했다. 동산(洞山)이 묻되 사리(闍梨)는 이름이 무엇인가. 대왈(對曰) 본적(本寂)입니다. 가로되 향상(向上)을 다시 말하라. 사왈(師曰) 말하지 못합니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하느냐. 사왈 이름이 본적(本寂)이 아닙니다. 동산이 깊이 법기(法器)로 여겼다. 스님이 이로부터 입실했고 밀인(密印)을 이해하는 바였다(所解). 반환(盤桓; 徘徊)하기 몇 해였고 이에 동산에게 고별했다. 동산이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가로되 변이(變異)하지 않는 곳으로 갑니다. 동산이 이르되 변이하지 않거늘 어찌 감이 있겠는가. 사왈 가더라도 또한 변이가 아닙니다. 드디어 고별하고 떠나 수연(隨緣)하여 방광(放曠)했다. 처음에 수청(受請)하여 무주(撫州) 조산(曹山)에 머물렀고 후에 하옥산(荷玉山)에 거주했는데 두 곳의 법석에 학자가 운집했다.

密印; 이르자면 직지(直指)의 심인(心印).

 

問不與萬法爲侶者是什麽人 師曰 汝道洪州裏許多人 什麽處去也 問眉與目還相識也無 師曰 不相識 曰爲什麽不相識 師曰 爲同在一處 曰恁麽卽不分也 師曰 眉且不是目 曰如何是目 師曰 端的去 曰如何是眉 師曰 曹山却疑 曰和尙爲什麽却疑 師曰 若不疑卽端的去也 問於相何眞 師曰 卽相卽眞 曰當何顯示 師提起托子 問幻本何眞 師曰 幻本元眞法眼別云 幻本不眞 曰當幻何顯 師曰 卽幻卽顯法眼別云 幻卽無當曰恁麽卽始終不離於幻也 師曰 覓幻相不可得 問如何是常在底人 師曰 恰遇曹山暫出 曰如何是常不在底人 師曰 難得 僧淸銳問 某甲孤貧乞師拯濟 師曰 銳闍梨近前來 銳近前 師曰 泉州白家酒三盞 猶道未沾脣玄覺云 什麽處是與他酒喫問擬豈不是類 師曰 直是不擬亦是類 曰如何是異 師曰 莫不識痛痒 鏡淸問 淸虛之理畢竟無身時如何 師曰 理卽如此事作麽生 曰如理如事 師曰 謾曹山一人卽得 爭奈諸聖眼何 曰若無諸聖眼 爭鑒得箇不恁麽 師曰 官不容針私通車馬

官不容針私通車馬; 意謂法律嚴密 不容絲毫寬宥 然以私下人情却大可融通 故禪林每以此語 形容師家接引學人時自在方便之機法 或謂官不容針 私通車馬二語 原是唐人之俗諺 後爲禪林所引用 二語合之 卽謂表裏互用而竝行無礙

 

묻되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師曰) 네가 말하라, 홍주(洪州) 속의 허다한 사람이 어느 곳으로 가느냐. 묻되 미()와 목()이 도리어 서로 압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서로 알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서로 알지 못합니까. 사왈 한가지로 한 곳에 있기 때문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나누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미()는 또 이 목()이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목()입니까. 사왈(師曰) 단적하다(端的去). 가로되 무엇이 이 미()입니까. 사왈 조산(曹山)도 도리어 의심한다. 가로되 화상이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의심합니까. 사왈 만약 의심하지 않으면 곧 단적하니까(端的去也). 묻되 상()에 무엇이 진()입니까. 사왈 곧 상이 곧 진이다(卽相卽眞). 가로되 무엇에 당()해 현시(顯示)합니까. 스님이 탁자(托子; 托盤이니 쟁반)를 제기(提起)했다. 묻되 환본(幻本; 환의 근본)은 무엇이 진()입니까. 사왈 환본(幻本)이 원진(元眞; 원래 진)이다法眼別云 幻本이 아니다. 가로되 당환(當幻)하여 어떻게 나타냅니까(何顯). 사왈 곧 환이 곧 현이다(卽幻卽顯)法眼別云 幻은 곧 함이 없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시종(始終) ()을 여의지 않습니까. 사왈 환상(幻相)을 찾으면 불가득이다. 묻되 무엇이 이 상재(常在)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마침() 조산이 참시 외출함을 만났다. 가로되 무엇이 상부재(常不在)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얻기 어렵다. () 청예(淸銳)가 묻되 모갑은 고빈(孤貧)하니 스님의 증제(拯濟)를 구걸합니다. 사왈 예사리(銳闍梨), 앞으로 다가오너라. 청예가 앞으로 다가갔다. 사왈 천주(泉州) 백가(白家)의 술 세 잔이거늘 오히려 입술을 적시지 않았다고 말하느냐玄覺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그에게 술을 주어 먹였는가. 묻되 의(; 헤아리다)가 어찌 이 류()가 아니겠습니까. 사왈 바로 이 의()하지 않아도 역시(亦是) (). 가로되 무엇이 이 이()입니까. 사왈 통양(痛痒)을 알지 아니치 않느냐. 경청(鏡淸)이 묻되 청허지리(淸虛之理)에 필경 몸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리()는 곧 이와 같으나 사()는 어떠한가. 가로되 여리여사(如理如事)합니다. 사왈 조산 1인을 속임()은 곧 얻지만() 제성(諸聖)의 눈을 어찌하겠는가. 가로되 만약 제성(諸聖)의 눈이 없다면 어찌 저() 이러하지 않음을 감득(鑒得; 鑒別)하겠습니까. 사왈 관에선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적으론 거마도 통한다(官不容針私通車馬).

官不容針私通車馬; 뜻으로 이르자면 법률이 엄밀하여 실터럭만큼의 관유(寬宥; 寬恕)도 용납하지 않으나 그러나 사하(私下; 암암리. 비공식으로)의 인정으론 도리어 대가(大可; 매우 그럴 만함)로 융통함. 고로 선림에서 매번 이 말로써 사가가 학인을 접인할 때 자재한 방편의 기법을 형용함. 혹 이르기를 관불용침과 사통거마의 2()는 원래 당나라 사람의 속언(俗諺; 속담)이라 함. 후에 선림에서 인용하는 바가 되었으며 2어를 합하면 곧 표리가 호용하며 병행하매 무애함을 일컬음임.

 

雲門問 不改易底人來 師還接否 師曰 曹山無恁麽閑工夫 人問古人云 人人盡有 弟子在塵蒙 還有也無 師曰 過手來 乃點指曰 一二三四五足 問魯祖面壁用表何事 師以手掩耳 問承古有言 未有一人倒地不因地而起 如何是倒 師曰 肯卽是 曰如何是起 師曰 起也 問承敎有言 大海不宿死屍 如何是海 師曰 包含萬有 曰爲什麽不宿死屍 師曰 絕氣者不著 曰旣是包含萬有 爲什麽絕氣者不著 師曰 萬有非其功 絕氣有其德 曰向上還有事也無 師曰 道有道無卽得 爭奈龍王按劍何

塵蒙; 一被灰塵蒙蔽 二喻塵世的束縛或煩擾 三猶言世俗愚蒙

過手; 伸出手

大海不宿死屍; 華手經一云 譬如大海不宿死屍 佛法亦爾 邪見惡人失慧命者 不得止住 又如大海同一醎味 佛法亦爾 同趣涅槃一解脫味 涅槃經三十二 譬如大海有八不思議 何等爲八 一者漸漸轉深 二者深難得底 三者同一醎味 四者潮不過限 五者有種種寶藏 六者大身衆生在中居住 七者不宿死尸 八者一切萬流大雨投之不增不減

 

운문(雲門)이 묻되 개역(改易)하지 않는 사람이 오면 스님이 도리어 접인(接引)하겠습니까. 사왈(師曰) 조산(曹山)은 이러한 한공부(閑工夫)가 없다. 사람이 묻되 고인이 이르되 사람마다 있다() 했거니와 제자(弟子)는 진몽(塵蒙)에 있거늘 도리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과수(過手)하여 오너라. 이에 손가락으로 점 찍으며(點指) 가로되 일이삼사오(一二三四五), ()하다. 묻되 노조(魯祖)가 면벽(面壁)한 것은 써서() 무슨 일을 표함입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귀를 가렸다. 묻되 듣건대() 고인이 말씀이 있어 한 사람이라도 땅에 넘어졌다가() 땅을 인해 일어나지() 않음이 있지 않다 했습니다. 무엇이 이 넘어짐()입니까. 사왈 긍(; 首肯)이 곧 이것이다(卽是). 가로되 무엇이 이 일어남()입니까. 사왈 일어났다(). 묻되 듣건대() ()에 말씀이 있어 대해는 죽은 시체를 재우지 않는다(大海不宿死屍) 했거니와 무엇이 이 해()입니까. 사왈 만유(萬有)를 포함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죽은 시체를 재우지 않습니까. 사왈 절기자(絕氣者)를 붙이지 않는다(不著). 가로되 이미 이, 만유를 포함하거늘 무엇 때문에 절기자를 붙이지 않습니까. 사왈 만유는 그 공()이 아니며 절기(絕氣)는 그 덕()이 있다. 가로되 향상(向上)에 도리어 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음을 말하거나 없음을 말함은 곧 얻지만 용왕(龍王)이 검을 어루만짐(按劍)을 어찌하겠는가.

塵蒙; 1. 회진(灰塵)에 몽폐(蒙蔽)를 입음. 2. 진세(塵世)의 속박 혹 번요(煩擾)에 비유함. 3. 세속의 우몽(愚蒙)이라고 말함과 같음.

過手; 손을 뻗어 냄.

大海不宿死屍; 화수경1에 이르되 비유컨대 대해가 죽은 시체를 재우지 않음과 같이 불법도 또한 그러하여 사견ㆍ악인ㆍ혜명을 잃은 자는 머묾을 얻지 못한다. 또 대해가 동일하게 짠맛임과 같이 불법도 또한 그러하여 한가지로 열반의 한 해탈의 맛으로 취향한다. 열반경32 비여(譬如) 대해에 8부사의가 있나니 무엇 등이 8이 되는가. 1자 는 점점 더욱 깊어짐이다. 2자는 깊어서 바닥을 얻기 어렵다. 3자는 동일한 짠맛이다. 4자는 조수가 한도를 지나지 않는다. 5자는 갖가지 보장(寶藏)이 있다. 6자는 큰 몸의 중생이 속에 있으면서 거주한다. 7자는 죽은 시체를 재우지 않는다(不宿死尸). 8자는 일체의 만류(萬流)와 대우(大雨)가 투입하여도 늘지 않고 줄지 않는다.

 

問具何知解善能對衆問難 師曰 不呈句 曰問難箇什麽 師曰 刀斧斫不入 曰能恁麽問難 還更有不肯者也無 師曰有 曰是什麽人 師曰 曹山 問無言如何顯 師曰 莫向遮裏顯 曰向什麽處顯 師曰 昨夜三更床頭失却三文錢 問日未出時如何 師曰 曹山也曾恁麽來 曰日出後如何 師曰 猶較曹山半月程 師問僧 作什麽 曰掃地 師曰 佛前掃佛後掃 曰前後一時掃 師曰 與曹山過靸鞋來 師問彊德上坐曰 菩薩在定聞香象渡河 出什麽經 曰出涅槃經 師曰 定前聞定後聞 曰和尙流也 師曰 道也大殺道 始道得一半 曰和尙如何 師曰 灘下接取 問學人十二時中如何保任 師曰 如經蠱毒之鄕 水不得霑著一滴

問難; 反復辯難

香象渡河; 香象渡河 徹底截流 譬喩聽聞敎法 所證甚深 諸經論每以兔馬香象三獸之渡河 譬喩聽聞敎法所證深淺之別 謂兔渡河則浮 馬渡則及半 香象之渡河則徹底截流

蠱毒; 扁鵲心書曰 閩廣之人 以諸蟲置一器內 令其互相啖食 候食盡而獨存者 卽蠱也 中其毒則面目黃腫 心腹脹滿疼痛 或吐涎血 久則死矣 續搜神記二 剡縣有一家事蠱 人噉其食飮 無不吐血死

 

묻되 무슨 지해(知解)를 갖추어야 잘 능히 대중(對衆)하여 문난(問難)합니까. 사왈(師曰) 정구(呈句; 를 보이다)하지 않음이다. 가로되 저() 무엇을 문난(問難)합니까. 사왈 도부(刀斧)로 잘라도() 들어가지 않는다. 가로되 능히 이렇게 문난(問難)하는데 도리어 다시 불긍(不肯)하는 자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 조산(曹山)이다. 묻되 말이 없이(無言) 어떻게 나타냅니까(). 사왈 이 속(遮裏)을 향해 나타내지 말아라. 가로되 어느 곳을 향해 나타냅니까. 사왈 어젯밤 3경에 상두(床頭; . 床邊)에서 3()의 돈을 잃어버렸다. 묻되 해가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조산(曹山)도 일찍이 이렇게 왔다. 가로되 해가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오히려 조산(曹山)과 반월(半月)의 노정(路程)이 어긋난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무엇하느냐. 가로되 땅을 씁니다(掃地). 사왈 불전(佛前)을 쓰느냐(), 불후(佛後)를 쓰느냐. 가로되 전후(前後)를 일시에 씁니다. 사왈 조산에게 삽혜(靸鞋; )를 건네() 주어라. 스님이 강덕(彊德) 상좌에게 물어 가로되 보살이 재정(在定)하면서 향상의 도하(香象渡河)를 들었거니와 어느 경에 나오느냐. 가로되 열반경에 나옵니다(열반경에 나오지 않음). 사왈 정전(定前)에 들었느냐, 정후(定後)에 들었느냐. 가로되 화상(和尙), 흐릅니다(流也). 사왈 말이야 대쇄(大殺; 매우 심하게) 말했으나 비로소 일반(一半; 折半)을 도득(道得)했다. 가로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사왈 여울() 아래에서 접취(接取)하라. 묻되 학인이 12() 중에 어떻게 보임(保任)해야 합니까. 사왈 고독(蠱毒)의 마을()을 경과함과 같아서 물을 한 방울도 적심(霑著)을 얻지 말아야 한다.

問難; 반복하며 변난(辯難; 옳고 그름을 따져 辯論).

香象渡河; (香象)이 도하(渡河)하면 철저히 절류(截流)하나니 교법을 청문(聽聞)하면서 소증(所證)이 심심(甚深)함에 비유함. 여러 경론에 매번 토마향상(兔馬香象) 3()의 도하(渡河)로써 교법을 청문(聽聞)하매 소증(所證)의 심천(深淺)이 다름에 비유함. 이르자면 토끼의 도하는 곧 뜨고() 말의 도하는 곧 반()에 미치며 향상의 도하는 곧 철저히 절류(截流).

蠱毒; 편작심서에 가로되 민광(閩廣)의 사람들이 여러 동물(두꺼비 지네 뱀 등)을 한 옹기에 두어서 그들로 하여금 호상 먹게 한다. 먹어 마침을 살피는데 홀로 생존한 것이 곧 고(). 그 독에 중독되면 곧 얼굴과 눈이 누렇게 부르트고 심장과 배가 팽창해 가득하고 매우 아프며 혹은 침과 피를 토한다. 오래되면 곧 죽는다. 속수신기2. 섬현(剡縣)에 어떤 한 집이 고()를 일삼는데 사람이 그 식음(食飮; 음식)을 먹으면 피를 토하고 죽지 않음이 없었다.

 

問如何是法身主 師曰 謂秦無人 曰遮箇莫便是否 師曰斬 問親近什麽道伴 卽得常聞於未聞 師曰 同共一被蓋 曰此猶是和尙得聞 如何是常聞於未聞 師曰 不同於木石 曰何者在先何者在後 師曰 不見道常聞於未聞 問國內按劍者是誰 師曰 曹山法燈別云 汝不是恁麽人曰擬殺何人 師曰 但有一切總殺 曰忽逢本父母作麽生 師曰 揀什麽 曰爭奈自己何 師曰 誰奈我何 曰爲什麽不殺 師曰 勿下手處 問一牛飮水五馬不嘶時如何 師曰 曹山解忌口 又別云 曹山孝滿 問常在生死海中沈沒者是什麽人 師曰 第二月 曰還求出離也無 師曰 也求出離只是無路 曰出離什麽人接得伊 師曰 擔鐵枷者

忌口; 忌 禁忌 廣韻 忌 止也

孝滿; 脫喪 解喪

 

묻되 무엇이 이 법신주(法身主)입니까. 사왈(師曰) 이르자면 진(; 진나라)에 사람이 없다. 가로되 저개(遮箇)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베어라(). 묻되 어떤(什麽) 도반을 친근해야 곧 듣지 못한 것을 늘 들음(常聞於未聞)을 얻습니까. 사왈 한가지로 함께(同共) 하나의 이불을 덮는다(被蓋). 가로되 이것은 오히려 이 화상이 득문(得聞)했습니다. 무엇이 이, 듣지 못한 것을 늘 들음입니까. 사왈 목석(木石)과 같지 않다. 가로되 어느 것이 앞에 있고 어느 것이 뒤에 있습니까. 사왈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 듣지 못한 것을 늘 듣는다. 묻되 국내(國內)에 안검(按劍; 칼을 어루만지다)하는 자는 이 누구입니까. 사왈 조산(曹山)이다法燈別云 너는 이 이러한 사람이 아니다. 가로되 어떤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까(擬殺). 사왈 단지 일체(一切)가 있으면 모두 죽인다. 가로되 홀연히 본래의 부모를 만나면 어떻습니까. 사왈 무엇을 가리겠는가(揀什麽). 가로되 자기를 어찌하겠습니까(爭奈自己何). 사왈 누가 나를 어찌하겠는가(誰奈我何). 가로되 무엇 때문에 죽이지 못합니까. 사왈 하수(下手)할 곳이 없다. 묻되 1()가 음수(飮水)하매 5()가 울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조산은 기구(忌口)할 줄 안다. 또 다르게 이르되(別云) 조산이 효만(孝滿)했다. 묻되 늘 생사해(生死海) 가운데에 있으면서 침몰하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 제2(第二月)이다. 가로되 도리어 출리(出離)를 구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또한 출리를 구하지만 다만 이, 길이 없다. 가로되 출리하면 어떤 사람이 그()를 접득(接得)합니까. 사왈 철가(鐵枷)를 짊어진 자다.

忌口; ()는 금기(禁忌). 광운 기() ().

孝滿; 탈상. 해상(解喪; 어버이의 삼년상을 마침).

 

僧擧藥山問僧 年多少 僧曰 七十二 藥山曰 是年七十二麽 曰是 藥山便打 此意如何 師曰 前箭猶似可 後箭射人深 僧曰 如何免得棒 師曰 正勅旣行諸侯避道東禪齊云 曹山是明藥山意 自出手 爲復別有道理 還斷得麽 只如遮僧擧問曹山 伊還有會處麽 忽爾問上坐年多少 別作麽生秖對 問如何是佛法大意 曰塡溝塞壑 問如何是師子 師曰 衆獸近不得 曰如何是師子兒 師曰 能吞父母 曰旣是衆獸近不得 爲什麽被兒吞 師曰 子若哮吼祖父母俱盡 曰只如祖父母還盡也無 師曰 亦盡 曰盡後如何 師曰 全身歸父 曰前來爲什麽道祖父亦盡 師曰 不見道 王子能成一國事 枯木上更采些子華 問才有是非紛然失心如何 師曰 斬斬

 

중이 거()했다. 약산(藥山)이 중에게 묻되 나이가 얼마인가. 승왈(僧曰) 72입니다. 약산이 가로되 이 나이가 72인가. 가로되 그렇습니다. 약산이 바로 때렸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師曰) 전전(前箭)은 오히려 가()한 것 같고 후전(後箭)이 사람을 쏜 게 깊다. 승왈 어찌해야 방()을 면득(免得)하겠습니까. 사왈 정칙(正勅)을 이미 행하매 제후(諸侯)가 길을 피한다東禪齊가 이르되 曹山이 이, 藥山의 뜻을 밝혔는가. 스스로 出手했는가. 다시 달리 도리가 있음이 되는가. 도리어 斷得하겠느냐. 只如 遮僧하여 曹山에게 물은 것은 그가 도리어 안 곳이 있는가. 홀이(忽爾; 홀연) 上坐에게 묻되 나이가 얼마인가 한다면 달리 어떻게 秖對하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가로되 도랑을 메우고 골을 메운다(塡溝塞壑). 묻되 무엇이 이 사자(師子)입니까. 사왈 뭇 짐승이 가까이 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사자아(師子兒; 사자의 새끼)입니까. 사왈 능히 부모를 삼킨다. 가로되 이미 이 뭇 짐승이 가까이 함을 얻지 못하거늘 무엇 때문에 새끼()가 삼킴을 입습니까. 사왈 자()가 만약 효후(哮吼)하면 조부모(祖父母)가 다 없어진다. 가로되 지여(只如) 조부모(祖父母)가 도리어 없어집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또한 없어진다. 가로되 없어진 후에 어떻습니까. 사왈 전신(全身)이 귀부(歸父)한다. 가로되 전래(前來; 以前)에 무엇 때문에 말하되 조부도 또한 없어진다 했습니까. 사왈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 왕자(王子)가 능히 일국(一國)의 일을 이루면 고목상(枯木上; 은 방면을 표시)에 다시 사자(些子; 些少)의 꽃을 캔다(; 저본에 으로 지었음). 묻되 겨우 시비가 있으면 분연(紛然)히 실심(失心)함은 어떻습니까. 사왈 베어라(), 베어라.

 

僧擧有人問香嚴 如何是道 答曰 枯木裏龍吟 學云 不會 曰髑髏裏眼睛 後問石霜 如何是枯木裏龍吟 石霜云 猶帶喜在 又問 如何是髑髏裏眼睛 石霜云 猶帶識在 師因而頌曰 枯木龍吟眞見道 髑髏無識眼初明 喜識盡時消息盡 當人那辨濁中淸 其僧却問師 如何是枯木裏龍吟 師曰 血脈不斷 曰如何是髑髏裏眼睛 師曰 乾不盡 曰未審還有得聞者無 師曰 盡大地未有一箇不聞 曰未審龍吟是何章句 師曰 也不知是何章句 聞者皆喪 師如是啓發上機 曾無軌轍可尋 及受洞山五位銓量 特爲叢林標準 時洪州鍾氏屢請不起 但寫大梅和尙山居頌一首答之 天復辛酉季夏夜 師問知事僧 今是何日月 對曰 六月十五日 師曰 曹山一生行脚到處 只管九十日爲一夏 至明日辰時告寂 壽六十有二 臘三十有七 門人奉眞骨樹塔 勅諡元證大師 塔曰福圓

洞山五位; 曹洞宗祖洞山良价對于禪法的闡述系統 也是該宗接引學人的特殊方法 卽五位君臣 亦作君臣五位 偏正五位 曹洞宗創始人洞山良价與曹山本寂 對于禪法的闡述系統 也是該宗接引學人的特殊方法 用君位(正位)和臣位(偏位)的五種配合 說明不同的禪法認識 及參禪的情況 據人天眼目卷三五位君臣中曹山的叙說 一君爲正位 屬空界 本來無物 二臣爲偏位 屬色界 有萬形象 三臣向君是偏中正 捨事入理 四君視臣是正中偏(一作正中來) 背理就事 五君臣道合是兼帶語 冥應衆緣 不隨諸有 非染非淨 非正非偏 最妙最玄 同卷內另有五位功勳圖 其術語使用稍有不同 一正中偏是君位 二偏中正是臣位 三正中來是君視臣 四兼中至是臣向君 五兼中到是君臣合 這套術語與五燈會元十三所載洞山良价的五位君臣頌相合 術語稍有不同 意思大抵相同 人天眼目三 寂音曰 道愈陵遲 至於列位之名件 亦訛亂不次 如正中偏 偏中正 又正中來 偏中至 然後以兼中到 總成五位 今乃易偏中至爲兼中至 不曉其何義耶 而老師大衲 亦恬然不知怪 爲可笑也

銓量; 衡量 一比較 評定 二估量 考慮

大梅和尙山居頌; 曹山元證語錄 但書大梅偈曰 摧殘枯木倚寒林 幾度逢春不變心 樵客見之猶不顧 郢人何得苦追尋

 

중이 거()했다. 어떤 사람이 향엄(香嚴)에게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답왈(答曰) 고목(枯木) 속에 용이 읊조린다(龍吟). 학인(學人; )이 이르되 알지 못하겠습니다. 가로되 촉루(髑髏) 속의 눈동자(眼睛). 후에 석상(石霜)에게 묻되 무엇이 이 고목 속에 용이 읊조림입니까. 석상이 이르되 오히려() 기쁨()을 띠고 있다. 또 묻되 무엇이 이 촉루 속의 눈동자입니까. 석상이 이르되 오히려 식()을 띠고 있다. 스님이 인하여 송왈(頌曰) 고목에 용이 읊조림에서 참으로 도를 보나니/ 촉루(髑髏)에 식()이 없어야 눈이 처음으로 밝다/ 기쁨과 식()이 다할 때 소식이 다하나니(消息盡; 저본에 消不盡으로 지었음)/ 당인(當人)이 어찌 탁() 중의 청()을 분변하리오. 그 중이 도리어 스님에게 묻되 무엇이 이 고목 속에 용이 읊조림입니까. 사왈(師曰) 혈맥이 끊기지 않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촉루 속의 눈동자입니까. 사왈 말라 없어지지 않았다(乾不盡). 가로되 미심하오니 도리어 득문(得聞)하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왈 온 대지(盡大地)에 한 개()라도 듣지 않는 이 있지 않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용의 읊조림은 이 어떤 장구(章句)입니까. 사왈 또한 이 어떤 장구인지 알지 못하지만 듣는 자는 다 죽는다(). 스님이 이와 같이 상기(上機)를 계발(啓發)했으며 일찍이 가히 찾을 궤철(軌轍)이 없었다. 동산오위(洞山五位)의 전량(銓量)을 받음에 미쳐서는() 특별히 총림의 표준(標準)이 되었다. 당시에 홍주(洪州) 종씨(鍾氏)가 여러 번 청했으나 일어나지 않았고 단지 대매화상산거송(大梅和尙山居頌) 1()를 서사(書寫)해 답했다. 천복(天復) 신유(辛酉; 901) 계하(季夏) 밤 스님이 지사승(知事僧)에게 묻되 지금은 이 무슨 일월(日月)인가. 대왈(對曰) 615일입니다. 사왈 조산이 일생 동안 행각하여 이르는 곳에서 다만 관대(管帶)하되 90일을 1()로 삼았다. 명일 진시(辰時)에 이르자 고적(告寂)했으니 나이는 62며 납은 37이다. 문인(門人)이 진골(眞骨)을 받들어 탑을 세웠다(樹塔). 칙시가 원증대사(元證大師)며 탑왈 복원(福圓)이다.

洞山五位; 조동종조 동산양개가 선법에 대해 천술(闡述)한 계통임. 또 이는 그 종이 학인을 접인하는 특수한 방법임. 즉 오위군신(五位君臣)이니 또한 군신오위ㆍ편정오위(偏正五位)로 지음. 조동종 창시인 동산양개(洞山良价)와 조산본적(曹山本寂)이 선법(禪法)에 대한 천술계통(闡述系統)이며 또한 이는 그 종()에서 학인을 접인하는 특수한 방법임. 군위(君位; 正位)와 신위(臣位; 偏位)5종의 배합을 사용하여 부동(不同)의 선법의 인식 및 참선의 정형(情況)을 설명함. 인천안목 권3 오위군신 중의 조산의 서설(叙說)에 의거하면 1. ()은 정위(正位)가 되며 공계(空界)에 속하며 본래 사물이 없음. 2. ()은 편위(偏位)가 되며 색계(色界)에 속하며 온갖 형상(形象)이 있음. 3. 신향군(臣向君) 이는 편중정(偏中正)이며 사사입리(捨事入理). 4. 군시신(君視臣)은 이 정중편(正中偏; 一作 正中來)이며 배리취사(背理就事). 5. 군신도합(君臣道合)은 이 겸대어(兼帶語)며 중연(衆緣)에 명응(冥應; 가만히 응하다)하며 제유(諸有)를 따르지 않으며 비염비정(非染非淨)이며 비정비편(非正非偏)이며 최묘최현(最妙最玄). 동권(同卷) 내에 따로 오위공훈도(五位功勳圖)가 있는데 그 술어는 사용에 조금 같지 않음이 있음. 1. 정중편(正中偏)은 이 군위(君位)2. 편중정(偏中正)은 이 신위(臣位)3. 정중래(正中來)는 이 군시신(君視臣)이며 4. 겸중지(兼中至)는 신향군(臣向君)이며 5. 겸중도(兼中到)는 이 군신합(君臣合). 이런 투()의 술어는 오등회원13에 실린 바 동산양개의 오위군신송(五位君臣頌)과 상합(相合)하나 술어에 조금 같지 않음이 있고 의사는 대저(大抵) 상동(相同). 인천안목3. 적음(寂音; 洪覺範)이 가로되 도가 더욱 능지(陵遲; 처음에는 성하다가 점차 쇠하여 감)한다. 열위(列位)의 명건(名件)에 이르기까지 또한 와란(訛亂)하여 순차가 아니다. 예컨대() 정중편(正中偏) 편중정(偏中正) 또 정중래(正中來) 편중지(偏中至) 연후에 겸중도(兼中到)를 써야 모두 5위를 이루거늘 요즈음은 곧 편중지(偏中至)를 고쳐 겸중지(兼中至)로 삼으니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가. 노스님과 대납(大衲)들도 또한 조용하면서 괴상함을 알지 못하니 가히 우습다 하리라.

銓量; 형량(衡量). 1. 비교(比較). 평정(評定). 2. 고량((估量). 고려(考慮).

大梅和尙山居頌; 조산원증어록(曹山元證語錄) 단지 대매(大梅)의 게를 서사(書寫)해 가로되 최잔(摧殘)한 고목(枯木)이 찬 숲에 의지하나니/ 몇 차례나 봄을 만났지만 변심하지 않았다/ 나무꾼(樵客)이 이를 보고도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영인(郢人)이 어찌하여 애써 추심(追尋)함을 얻는가.

 

洞山道全禪師第二世住 亦云中洞山初問洞山价和尙 如何是出離之要 洞山曰 闍梨足下煙生 師當下契悟 更不他遊雲居膺進語云 終不敢孤負和尙足下煙生 洞山云 步步玄者卽是功到暨价和尙圓寂 衆請踵迹住持 海衆悅服玄風不墜 僧問 佛入王宮豈不是大聖再來 師曰 護明不下生 僧曰 旣是大聖再來 何更六年苦行 師曰 幻人呈幻事 曰非幻者如何 師曰 王宮覓不得 問淸淨行者不入涅槃 破戒比丘不入地獄如何 師曰 度盡無遺影 還他越涅槃 問極目千里是什麽風範 師曰 是闍梨風範 曰未審和尙風範如何 師曰 不布婆娑

護明; 釋迦佛菩薩時名也 見上卷一釋迦牟尼佛

淸淨行者不入涅槃; 文殊師利所說摩訶般若波羅蜜經上 是故 舍利弗 若見犯重比丘不墮地獄 淸淨行者不入涅槃 如是比丘非應供非不應供 非盡漏非不盡漏 何以故 於諸法中住平等故

極目; 遠望 盡目力所及

風範; 指風度 風格 氣韻

婆娑; 形容盤旋和舞動的樣子 二枝葉紛披的樣子

 

동산도전(洞山道全) 선사第二世住 亦云中洞山. 처음 동산개(洞山价) 화상에게 묻되 무엇이 이 출리(出離)의 요령(要領)입니까. 동산이 가로되 사리(闍梨)의 발 아래 연기가 난다(煙生). 스님이 당하(當下)에 계오(契悟)했고 다시는 딴 데로 유방(遊方)하지 않았다雲居膺進語(말을 진행)하여 이르되 마침내 감히 화상의, 발 아래 연기가 난다 함을 저버리지(孤負) 않겠습니다. 洞山이 이르되 步步卽是 功이 이른다(). 개화상(价和尙)이 원적(圓寂)함에 이르러() 대중의 청으로 자취를 이어(踵迹) 주지(住持)했다. 해중(海衆)이 열복(悅服)했고 현풍(玄風; 현묘한 종풍)이 추락하지 않았다. 승문(僧問) 부처가 왕궁에 듦이 어찌 이 대성(大聖)의 재래(再來)가 아니겠습니까. 사왈(師曰) 호명(護明)은 하생(下生)하지 않았다. 승왈(僧曰) 이미 이 대성(大聖)의 재래(再來)이거늘 어찌 다시 육년고행(六年苦行)했습니까. 사왈 환인(幻人)이 환사(幻事)를 보였다(). 가로되 환()이 아닌 것은 어떻습니까. 사왈 왕궁에선 찾아도 얻지 못한다. 묻되 청정한 행자가 열반에 들지 않고(淸淨行者不入涅槃) 파계한 비구가 지옥에 들지 않음은 어떻습니까. 사왈 헤아림()이 다하여 유영(遺影; 남은 그림자)도 없어야 도리어 저 열반을 초월한다. 묻되 극목(極目)이 천 리는 이 무슨 풍범(風範)입니까. 사왈 이 사리의 풍범이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화상의 풍범은 어떻습니까. 사왈 파사(婆娑)의 눈을 펴지() 않는다.

護明; 석가불의 보살 때의 이름임. 위 권1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보라.

淸淨行者不入涅槃; 문수사리소설마하반야바라밀경상. 이런 고로 사리불이여, 만약 중계(重戒)를 범함 비구가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청정한 행자가 열반에 들지 않음을 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응공(應供)이 아니며 응공이 아님도 아니며 진루(盡漏; 가 다함)가 아니며 진루가 아님도 아니니 무슨 연고냐, 제법 중에 평등에 머무는 연고이다.

極目; 멀리 바라봄. 목력(目力; 안력)을 다해 미치는 곳.

風範; 풍도(風度)ㆍ풍격(風格)ㆍ기운(氣韻)을 가리킴.

婆娑; 1. 반선(盤旋; 꾸불꾸불하게 빙빙 돎)하고 아울러 무동(舞動)하는 양자(樣子; 形狀)를 형용. 2. 지엽(枝葉)이 분피(紛披; 흩어져 어지러움)하는 양자.

 

湖南龍牙山居遁禪師 撫州南城人也 姓郭氏 年十四於吉州滿田寺出家 後往嵩嶽受戒 乃杖錫遊諸禪會 因參翠微和尙 問曰 學人自到和尙法席一箇餘月 每日和尙上堂不蒙一法示誨 意在於何 翠微曰 嫌什麽有僧擧前語問洞山 洞山云 闍梨爭怪得老僧 法眼別云 祖師來也 東禪齊云 此三人尊宿語 還有親疎也無 若有阿那箇親 若無親疎眼在什麽處 又謁德山問曰 遠聞德山一句佛法 及乎到來未曾見和尙說一句佛法 德山曰 嫌什麽 師不肯乃造洞山如前問之 洞山曰 爭怪得老僧 師復擧德山頭落語 因自省過 遂止于洞山隨衆參請 一日問 如何是祖師意 洞山曰 待洞水逆流 卽向汝道 師從此始悟厥旨 復摳衣八稔 受湖南馬氏請 住龍牙山妙濟禪苑 號證空大師 有徒五百餘衆法無虛席

德山頭落語; 見上卷十五德山宣鑒章

 

호남 용아산(龍牙山) 거둔선사(居遁禪師). 무주(撫州) 남성(南城) 사람이며 성이 곽씨(郭氏). 나이 14에 길주(吉州) 만전사(滿田寺)에서 출가했고 후에 숭악(嵩嶽)으로 가서 수계(受戒)했다. 이에 장석(杖錫; 錫杖을 짚다)하고 여러 선회(禪會; 선종 법회)를 유행(遊行)했다. 인하여 취미화상(翠微和尙)을 참()해 문왈(問曰) 학인이 스스로 화상의 법석에 이른 지 1개 여 월에 매일 화상이 상당(上堂)했으나 1법도 시회(示誨)를 입지() 못했으니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취미(翠微)가 가로되 무엇을 혐의(嫌疑; )하느냐어떤 중이 前語를 들어 洞山에게 묻자 동산이 이르되 闍梨가 어찌 노승을 괴이히 여김을 얻는가. 法眼別云 祖師가 오셨다. 東禪齊가 이르되 이 3인의 존숙의 말에 도리어 親疎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만약 있다면 阿那箇하며 만약 親疎가 없다면 눈이 어느 곳에 있느냐. 또 덕산(德山)을 참알해 문왈(問曰) 멀리서 덕산의 1() 불법을 들었는데 도래(到來)함에 이르러선(及乎) 화상이 1구의 불법을 설함을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덕산이 가로되 무엇을 혐의하느냐. 스님이 긍정하지 않고 이에 동산(洞山)에 나아가() 앞과 같이 묻자 동산이 가로되 어찌 노승을 괴이히 여김을 얻느냐. 스님이 다시 덕산두락어(德山頭落語)를 들었는데() 인하여 허물을 자성(自省)했고 드디어 동산에 머물며() 대중 따라 참청(參請)했다. 어느 날 묻되 무엇이 이 조사의(祖師意)입니까. 동산이 가로되 동수(洞水)가 역류(逆流)함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스님이 이로 좇아 비로소 그() 지취(旨趣)를 깨달았고 다시 8(; ) 동안 구의(摳衣)했다. 호남 마씨(馬氏)의 청을 받아 용아산 묘제선원(妙濟禪苑)에 주()했고 호가 증공대사(證空大師)며 도중(徒衆) 5백 여 무리가 있었고 법에 허석(虛席)이 없었다.

德山頭落語; 위 권15 덕산선감장(德山宣鑒章)을 보라.

 

上堂示衆曰 夫參學人須透過祖佛始得 新豐和尙云 祖敎佛敎似生怨家 始有學分 若透祖佛不得卽被祖佛謾去 時有僧問 祖佛還有謾人之心也無 師曰 汝道江湖還有礙人之心也無 又曰 江湖雖無礙人之心 爲時人過不得 江湖成礙人去 不得道江湖不礙人 祖佛雖無謾人之心 爲時人透不得 祖佛成謾人去 不得道祖佛不謾人 若透得祖佛過 此人過却祖佛也 始是體得祖佛意 方與向上古人同 如未透得 但學佛學祖 則萬劫無有得期 又問 如何得不被祖佛謾去 師曰 則須自悟去

新豐和尙; 指唐代曹洞宗祖洞山良价 本錄卷十五洞山良价 師至唐大中(847-859)末 於新豐山接誘學徒 厥後盛化豫章高安之洞山

 

상당(上堂)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무릇 참학인(參學人)은 모름지기 조불(祖佛)을 투과(透過)해야 비로소 옳다. 신풍화상(新豐和尙)이 이르되 조교(祖敎)와 불교(佛敎)에 원가(怨家)라는 생각을 냄과 같아야 비로소 배울 분한이 있다. 만약 조불(祖佛)을 투과함을 얻지 못하면 곧 조불이 속임을 입을 것이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조불이 도리어 사람을 속일 마음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師曰) 네가 말하라, 강호(江湖)가 도리어 사람을 장애(障礙)할 마음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또 가로되 강호가 비록 사람을 장애할 마음이 없지만 시인(時人)이 투과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강호가 사람을 장애함을 이루나니 강호가 사람을 장애하지 않는다고 말함을 얻지 못한다. 조불이 비록 사람을 속일 마음이 없지만 시인(時人)이 투과함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조불이 사람을 속임을 이루나니 조불이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고 말함을 얻지 못한다. 만약 조불을 투득해 지나가면 이 사람은 조불을 지나가버렸으니 비로소 이, 조불의 뜻을 체득(體得)하며 바야흐로 향상(向上)의 고인(古人)과 더불어 동등하다. 투득하지 못하고 단지 학불학조(學佛學祖)할 것 같으면 곧 만겁(萬劫)에도 얻을 기약이 있지 않다. 또 묻되 어찌해야 조불의 속임을 입지 않음을 얻습니까. 사왈 곧 모름지기 스스로 깨쳐야 한다.

新豐和尙; 당대(唐代) 조동종조(曹洞宗祖) 동산양개(洞山良价)를 가리킴. 본록 권15 동산양개. 스님이 당 대중(大中; 847-859) 말에 이르러 신풍산(新豐山)에서 학도를 접유(接誘)했다. 그 후 예장 고안의 동산(洞山)에서 성화(盛化)했다.

 

師在翠微時 問如何是祖師意 翠微曰 與我將禪板來 師遂過禪板 翠微接得便打 師曰 打卽任打 要且無祖師意 又問臨濟 如何是祖師意 臨濟曰 與我將蒲團來 師乃過蒲團 臨濟接得便打 師曰 打卽任打 要且無祖師意 後有僧問 和尙行脚時 問二尊宿祖師意 未審二尊宿道眼明也未 師曰 明卽明也 要且無祖師意東禪齊云 衆中道佛法卽有 只是無祖師意 若恁麽會有何交涉 別作麽生會無祖師意底道理問如何是道 師曰 無異人心是 又曰 若人體得道無異人心 始是道人 若是言說則勿交涉 道者汝知打底道人否 十二時中除却著衣喫飯 無絲髮異於人心 無誑人心 此箇始是道人 若道我得我會則勿交涉 大不容易

蒲團; 以蒲草編織而成之圓形扁平坐具 乃僧人坐禪及跪拜時所用之物

 

스님이 취미(翠微)에 있을 때 묻되 무엇이 이 조사의(祖師意)입니까. 취미가 가로되 나를 위해() 선판(禪板)을 가지고 오너라. 스님이 드디어 선판을 건네었다(). 취미가 접득(接得)하자 바로 때렸다. 사왈(師曰) 때림은 곧 때리는 대로 맡기지만 요차(要且; 도리어, 終乃) 조사의는 없습니다. 또 임제(臨濟)에게 묻되 무엇이 이 조사의입니까. 임제가 가로되 나를 위해 포단(蒲團)을 가지고 오너라. 스님이 이에 포단을 건네었다. 임제가 접득(接得)하자 바로 때렸다. 사왈 때림은 곧 때리는 대로 맡기지만 요차(要且) 조사의는 없습니다. 후에 어떤 중이 묻되 화상이 행각할 때 두 존숙에게 조사의를 물었습니다만 미심하오니 두 존숙의 도안(道眼)이 밝았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밝기는 곧 밝았지만 요차(要且) 조사의는 없다東禪齊가 이르되 衆中에서 말하되 佛法은 곧 있지만 다만 이, 祖師意는 없다. 만약 이렇게 理會한다면 무슨 交涉이 있겠는가. 달리 어떻게 조사의가 없는 도리를 理會하는가.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인심과 다름이 없음이 이것이다(無異人心是). 또 가로되 어떤 사람이 인심과 다름이 없는 도를 체득(體得)한다면 비로소 이 도인(道人)이거니와 만약 이 언설이라면 곧 교섭이 없다. 도자(道者), 네가 때리는(打底) 도인을 아느냐. 12시 중에 착의끽반(著衣喫飯)을 제각(除却)하고 사발(絲髮)만큼도 인심과 다름이 없고 사람을 속이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이(此箇) 비로소 이 도인이다. 만약 말하되 내가 얻었다, 내가 안다 한다면 곧 교섭이 없나니 매우 용이하지 않다(大不容易).

蒲團; 포초(蒲草; 부들풀)로 편직(編織)하여 만든 원형이면서 편평(扁平; 납작하고 평평)한 좌구니 곧 승인이 좌선 및 궤배(跪拜)할 때 쓰는 바의 물건.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待石烏龜解語卽向汝道 曰石烏龜語也 師曰 向汝道什麽 問古人得箇什麽便休去 師曰 如賊入空室 問無邊身菩薩 爲什麽不見如來頂相 師曰 汝道如來還有頂相麽 問大庾嶺頭提不起時如何 師曰 六祖爲什麽將得去 問二鼠侵藤時如何 師曰 須有隱身處始得 曰如何是隱身處 師曰 還見儂家麽 問維摩掌擎世界 未審維摩向什麽處立 師曰 道者汝道維摩掌擎世界 問知有底人還有生死也無 師曰 恰似道者未悟時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此一問最苦報慈云 此問最好

無邊身菩薩; 祖庭事苑五 無邊身 釋迦譜云 無邊身菩薩 以丈六之杖量佛 佛常出杖餘至梵天亦爾(非釋迦譜文 出西域記九)

大庾嶺頭提不起; 本錄卷四道明禪師 盧行者見師奔至 卽擲衣鉢於盤石曰 此衣表信可力爭耶 任君將去 師遂擧之如山不動

二鼠侵藤; 祖庭事苑八 二鼠侵藤 賓頭盧爲優陀延王說法經云 我今爲王略說譬喩 王至心聽 昔日有人行在曠路 逢大惡象 爲象所逐 狂懼走突 無所依怙 見一丘井 卽尋樹根入井中藏 上有黑白二鼠 牙齧樹根 此井四邊有四毒蛇 欲螫其人 而此井下有三大毒龍 旁畏四蛇 下畏毒龍 所攀之樹其根動搖 樹上有蜜三兩滴 墮其口中 于時動樹敲壞蜂窠 衆蜂散飛唼螫其人 有野火起 復來燒樹 大王當知 彼人苦惱不可稱計 而彼人得味甚少 苦患甚多 大王 曠野者喩於生死 彼男子者喩於凡夫 象喩於無常 井喩於人身 根喩於人命 白黑鼠者喩於晝夜 樹根者喩念念滅 四毒蛇者喩於四大 蜜者喩於五慾 衆蜂喩惡覺 野火燒者喩其老邁 下有三毒龍喩其死去墮三惡道 是故當知 慾味甚少 苦患甚多

儂家; 儂 代詞 一表示第一人稱 相當于我 二表示第二人稱 相當于你 家 助詞 後綴 一用于名詞後 如孩子家 學生家 二代詞後 如儂家 他家 誰家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석오귀(石烏龜)가 말할 줄 앎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가로되 석오귀가 말했습니다. 사왈 너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하더냐. 묻되 고인이 저() 무엇을 얻었기에 바로 쉬었습니까(休去). 사왈 도적이 공실(空室)에 든 것과 같다. 묻되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이 무엇 때문에 여래의 정상(頂相)을 보지 못했습니까. 사왈 네가 말하라, 여래가 도리어 정상이 있느냐. 묻되 대유령두에서 들어 일으키지 못했을(大庾嶺頭提不起) 때 어떻습니까. 사왈 6조는 무엇 때문에 가지고 갔느냐(將得去). 묻되 두 쥐가 등을 침범(二鼠侵藤)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모름지기 은신처(隱身處)가 있어야 비로소 옳다. 가로되 무엇이 이 은신처입니까. 사왈 도리어 농가(儂家)를 보느냐. 묻되 유마(維摩)가 세계를 손바닥으로 떠받들었다(掌擎) 하니 미심합니다, 유마가 어느 곳을 향해 섰습니까. 사왈 도자(道者)야 네가 말하되 유마가 세계를 손바닥으로 떠받들었다 하였다. 묻되 지유(知有)하는 사람이 도리어 생사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도자(道者)가 깨닫지 않았을 때와 흡사(恰似)하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이 일문(一問)이 가장 괴롭다報慈가 이르되 此問이 가장 좋다(最好).

無邊身菩薩; 조정사원5. 무변신(無邊身) 석가보(釋迦譜)에 이르되 무변신보살이 장륙(丈六)의 지팡이로 부처를 재었는데() 부처가 늘 장여(杖餘)를 벗어났으며 범천에 이르러서도 또한 그러했다 (석가보의 글이 아님. 서역기9에 나옴).

大庾嶺頭提不起; 본록(本錄) 4 도명선사(道明禪師). 노행자가 스님이 분지(奔至)함을 보자 곧 의발(衣鉢)을 반석(盤石)에 던지고 가로되 이 옷은 표신(表信)이거늘 가히 힘으로 다투겠는가. 그대가 가져 가는 대로 일임한다. 스님이 드디어 그것을 들었더니 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았다.

二鼠侵藤; 조정사원8. 이서침등(二鼠侵藤) 빈두로위우타연왕설법경(賓頭盧爲優陀延王說法經; 전칭이 賓頭盧突羅闍爲優他延王說法經)에 이르되 내가 이제 왕을 위해 간략히 비유을 설하리니 왕은 지심(至心)으로 들으시오. 지난날에 어떤 사람이 가다가 광로(曠路)에 있으면서 대악상(大惡象)을 만나 코끼리에게 쫓기는 바가 된지라 광구(狂懼; 미치고 두려워함)하여 주돌(走突)했다. 의호(依怙; 는 믿을 호)할 바가 없었는데 한 구정(丘井)을 보았으며 곧 나무뿌리를 찾아 우물 가운데로 들어가 숨었다. 위에는 흑백(黑白)의 두 마리 쥐가 있어 어금니로 나무뿌리를 씹었다. 이 우물의 사변(四邊)에 네 마리의 독사가 있어 그 사람을 쏘려고 했고 이 우물의 아래에 세 마리의 큰 독룡이 있었다. 곁으로는 4()가 두려웠고 아래로는 독룡이 두려웠는데 매달린 바의 나무는 그 뿌리가 동요했고 나무 위에 꿀 세 두 방울이 있어 그의 입속에 떨어졌다. 때에 나무를 움직여 벌집을 두드려 무너뜨리자 뭇 벌이 흩어져 날며 그 사람을 삽석(唼螫; 은 쪼아 먹을 삽. 은 쏠 석)했다. 들불의 일어남이 있어 다시 와서 나무를 태웠다. 대왕이여 마땅히 아십시오. 그 사람의 고뇌는 가히 칭계(稱計)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맛을 얻음은 매우 적고 고환(苦患)은 매우 많습니다. 대왕이여 광야(曠野)란 것은 생사에 비유하고 그 남자란 것은 범부에 비유하고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비유하고 우물은 인신(人身)에 비유하고 뿌리는 인명(人命)에 비유하고 백흑(白黑)의 쥐란 것은 주야(晝夜)에 비유하고 나무뿌리란 것은 염념(念念)에 없어짐에 비유하고 네 마리 독사란 것은 4()에 비유하고 꿀이란 것은 5(五慾; 재물욕ㆍ색욕ㆍ식욕ㆍ명예욕 수면욕)에 비유하고 뭇 벌은 악각(惡覺)에 비유하고 들불이 태움이란 것은 그의 노매(老邁; 는 늙을 매)에 비유하고 아래에 세 마리 독룡이 있음이란 그가 죽어 가서 3악도에 떨어짐에 비유합니다. 이런 고로 마땅히 알지니 욕미(慾味)는 매우 적고 고환(苦患)은 매우 많습니다.

儂家; () 대사(代詞). 1. 1인칭을 표시. ()에 상당함. 2. 2인칭을 표시. ()에 상당함. ()는 조사, 후철이니 1. 명사의 뒤에 씀. 예컨대() 해자가(孩子家), 학생가(學生家). 2. 대사 뒤. 예컨대() 농가(儂家), 타가(他家), 수가(誰家).

 

問祖意與敎意同別 師曰 祖師在後來 問祖師是無事沙門 師曰 若是沙門不得無事 曰爲什麽不得無事 師曰 覓一箇難得 問蟾蜍無返照之光 玉兔無伴月之意時如何 師曰 堯舜之君猶有化在東禪齊云 是什麽問訊與上坐十二時中是什麽時節問如何得此身安去 師曰 不被別身謾始得法眼別云 誰惱亂汝師梁龍德三年癸未八月示有微疾 九月十三日夜半大星隕于方丈前 詰旦端坐而逝 壽八十有九

蟾蜍; 月也 傳說月中有蟾蜍 故以蟾爲月的代稱 廣韻 蟾 蟾光 月影

玉兔; 月的異名 漢張衡靈憲 月者陰精之宗 積而成獸 象兔蛤焉

堯舜; 禪林寶訓音義曰 翊善傳聖曰堯 仁盛聖明曰舜 禪林疏語考證一曰 謂堯唐帝名 舜虞帝名

詰旦; 淸晨 早晨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왈(師曰) 조사가 뒤에서 온다(在後來). 묻되 조사는 이 무사(無事)한 사문(沙門)입니까. 사왈 만약 이 사문이라면 무사를 얻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무사를 얻지 않습니까. 사왈 1개를 찾아도 얻기 어렵다. 묻되 섬여(蟾蜍)는 반조(返照)의 빛이 없고 옥토(玉兔)는 반월(伴月)의 뜻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요순지군(堯舜之君)이 아직() 교화가 있다東禪齊가 이르되 이 무슨 問訊이며 상좌의 12시 중과 더불어 이 무슨 시절인가. 묻되 어찌해야 이 몸이 편안함을 얻습니까. 사왈 다른 몸(別身)의 속임을 입지 않아야 비로소 옳다法眼別云 누가 너를 惱亂하느냐. 스님이 양() 용덕(龍德) 3년 계미(癸未; 923) 8월 미질(微疾)이 있음을 보였고 913일 야반(夜半) 대성(大星)이 방장 앞에 떨어지더니 힐단(詰旦)에 단좌하여 서거했다. 나이는 89.

蟾蜍; 달임. 전설에 달 속엔 섬여(蟾蜍; 두꺼비)가 있다 하며 고로 섬()을 달의 대칭으로 삼음. 광운 섬() 섬광(蟾光)이다. 달그림자다.

玉兔; 달의 다른 이름. () 장형(張衡) 영헌(靈憲). 달이란 것은 음정(陰精)의 종()이니 쌓여서 짐승을 이루며 토합(兔蛤; 토끼와 대합조개)을 형상(形象)한다.

堯舜; 선림보훈음의에 가로되 익선전성(翊善傳聖; 을 도우고 을 전함)을 가로되 요()며 인성성명(仁盛聖明; 이 성한 성군의 총명)을 가로되 순()이다. 선림소어고증1에 가로되 이르자면 요는 당제(唐帝)의 이름이며 순은 우제(虞帝)의 이름이다.

詰旦; 청신(淸晨; 맑은 첫새벽). ()은 이른 새벽.

 

京兆華嚴寺休靜禪師 師曾在樂普作維那 白槌普請曰 上間般柴下間鋤地 時第一座問 聖僧作麽生 師曰 當堂不正坐 不赴兩頭機 師在洞山時問曰 學人未見理路未免情識 洞山曰 汝還見理路也無 曰見無理路 洞山曰 什麽處得情識來 曰學人實問 洞山曰 恁麽須向萬里無寸草處立 曰無寸草處還許立也無 洞山曰 直須恁麽去 般柴次洞山把住柴問 狹路相逢時作麽生 曰反仄何幸 洞山曰 汝記吾言 汝向南住有一千人 若向北住卽三二百而已

般柴; 般 搬也 運也

反仄; 與反側同義 翻來覆去 轉動身體 反 翻轉 仄 傾側

 

경조(京兆) 화엄사 휴정선사(休靜禪師). 스님이 일찍이 낙보(樂普)에 있으면서 유나(維那)가 되었다. 백추(白槌)하여 보청(普請)해 가로되 상간(上間)은 섶을 운반하고(般柴) 하간(下間)은 땅을 김맨다(鋤地). 때에 제1좌가 묻되 성승(聖僧)은 무엇합니까(作麽生). 사왈(師曰) 승당(僧堂)에 당하여(當堂) 정좌(正坐)하지 않고 양두기(兩頭機)에 다다르지 않는다. 스님이 동산(洞山)에 있을 때 문왈(問曰) 학인이 이로(理路)를 보지 못해 정식(情識)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동산이 가로되 네가 도리어 이로(理路)를 보느냐 또는 아니냐. 가로되 이로가 없음을 봅니다. 동산이 가로되 어느 곳에서 정식(情識)을 얻어 오겠는가. 가로되 학인이 실()로 물었습니다. 동산이 가로되 이러하다면 모름지기 만 리에 촌초(寸草)도 없는 곳을 향해 서거라(). 가로되 촌초도 없는 곳에 도리어 섬()을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동산이 가로되 바로 모름지기 이렇게 가야 한다. 반시(般柴)하던 차에 동산이 섶을 파주(把住)하고 묻되 협로(狹路)에서 상봉할 때 어떠한가. 가로되 반측(反仄)하니 무슨 다행입니까(何幸). 동산이 가로되 네가 나의 말을 기억하라. 네가 향남(向南; 남방)에 주()하면 1천 인이 있을 것이며 만약 향북(向北; 북방)에 주하면 곧 3, 2백일 따름이다.

般柴; ()은 반(; 나르다. 옮기다). (; 옮기다. 나르다).

反仄; 반측(反側)과 같은 뜻. 번래복거(翻來覆去; 뒤집기도 하고 엎기도 함)하며 신체를 전동(轉動; 구르거나 굴려 움직임). ()은 뒤집어 구르는 것이며 측()은 경측(傾側; 기울다).

 

師初住福州東山之華嚴 未幾屬後唐莊宗皇帝徵入輦下 大闡玄風其徒果三百矣 問祖意與敎意同別 師曰 探盡龍宮藏 衆義不能詮 問大悟底人爲什麽却迷 師曰 破鏡不重照 落華難上枝 問大軍設天王齋求勝 賊軍亦設天王齋求勝 未審天王赴阿誰願 師曰 天垂雨露不揀榮枯 一日車駕入寺燒香 帝問曰 遮箇是什麽神 師對曰 護法善神 帝曰 沙汰時什麽處去來 師曰 天垂雨露不爲榮枯 師後遊河朔於平陽示滅 茶毘獲舍利 建四浮圖 一晉州 二房州 三終南山逍遙園 四終南山華嚴寺 勅諡寶智大師無爲之塔

天王; 神話中指某些天神

房州; 今湖北房縣

 

스님이 처음엔 복주(福州) 동산(東山)의 화엄(華嚴)에 주()했고 오래지 않아 후당 장종황제(莊宗皇帝)의 부름()에 당하여() 연하(輦下; 京都)에 들어갔고 현풍(玄風)을 크게 열었는데(大闡) 그 도중(徒衆)이 과연 3백이었다.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왈(師曰) 용궁장(龍宮藏; 용궁의 藏經)을 탐구(探究)해 다한 중의(衆義; 뭇 뜻)로도 능히 설명(說明; )하지 못한다. 묻되 대오(大悟)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도리어 미()합니까. 사왈 깨진 거울은 다시 비추지 못하고 떨어진 꽃은 가지에 오르기 어렵다. 묻되 대군(大軍)이 천왕재(天王)를 베풀어 구승(求勝)하는데 적군(賊軍)도 또한 천왕재를 베풀어 구승(求勝)한다면 미심하오니 천왕이 누구(阿誰)의 원()에 다다릅니까. 사왈 하늘이 우로(雨露)를 내림()엔 영고(榮枯)를 가리지() 않는다. 어느 날 거가(車駕)가 입사(入寺)하여 소향(燒香)하고 황제가 문왈(問曰) 이것은(遮箇) 이 무슨 신()입니까. 스님이 대답해 가로되 호법선신(護法善神)입니다. 제왈(帝曰) 사태(沙汰) 때 어느 곳에 갔다 왔습니까. 사왈 하늘이 우로(雨露)를 내림()은 영고(榮枯)를 위함이 아닙니다. 스님이 후에 하삭(河朔)에 노닐다가 평양(平陽)에서 시멸(示滅)했다. 다비(茶毘)하여 사리를 획득하여 4부도(浮圖)를 세웠으니 1은 진주(晉州)2는 방주(房州)3은 종남산 소요원(逍遙園)이며 4는 종남산 화엄사다. 칙시가 보지대사무위지탑(寶智大師無爲之塔)이다.

天王; 신화(神話) 중 모사(某些; 몇몇)의 천신(天神)을 가리킴.

房州; 지금의 호북 방현(房縣).

 

京兆蜆子和尙 不知何許人也 事迹頗異 居無定所 自印心於洞山混俗於閩川 不畜道具不循律儀 常日沿江岸採掇蝦蜆以充腹 暮卽臥東山白馬廟紙錢中 居民目爲蜆子和尙 華嚴靜師聞之欲決眞假 先潛入紙錢中 深夜師歸 靜把住問曰 如何是祖師西來意 師遽答曰 神前酒臺盤 靜奇之懺謝而退 後靜師化行京都 師亦至焉 竟不聚徒演法 惟佯狂而已

印心; 謂印證悟心 傳授或承領禪法

白馬廟; 禪門拈頌集第九二二則 拈頌說話曰 白馬廟者 三藏法師 載經白馬死葬之曰白馬廟也

紙錢; 卽切紙爲錢形者 自漢魏以來 卽有將錢與死者同時納棺之習俗 此錢稱爲瘞錢(瘞爲埋之意) 後則禁止埋錢而以紙錢代用 禪宗於祈禱或盂蘭盆會之時 多將紙錢串連 而與經馬(繪於圖上之馬)等 懸掛於堂柱 待法會終了時 將其置於銅鉢內焚燒 [釋氏要覽中 佛祖統紀三十三 冥報記中]

臺盤; 桌子

 

경조(京兆) 현자화상(蜆子和尙).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사적(事迹)이 자못 이상(異狀)했고 거주에 정한 곳이 없었다. 동산(洞山)에게서 인심(印心)함으로부터 민천(閩川)에서 혼속(混俗; 세속에 섞임)했다. 도구(道具)를 수용(受容; )하지 않았고 율의(律儀)를 따르지 않았다. 상일(常日; 평일)에 강안(江岸)을 따라(沿) 하현(蝦蜆; 새우와 조개)을 채철(採掇; 캐고 줍다)하여 배를 채우고 저녁엔 곧 동산(東山) 백마묘(白馬廟)의 지전(紙錢) 속에 누웠다. 거민(居民; 주민)이 명목(名目)해 현자화상(蜆子和尙)이라 했다. 화엄정(華嚴靜; 休靜) 스님이 이를 듣고 진가(眞假)를 결정하려고 먼저 지전(紙錢) 속에 잠입(潛入)했다. 심야(深夜)에 스님이 돌아오자 휴정(休靜)이 파주(把住)하고 물어 가로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인가. 스님이 급히() 답왈(答曰) 신전의 주대반(神前酒臺盤)이다. 휴정이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참사(懺謝; 참회하고 사과)하고 물러났다. 후에 휴정 스님이 경도(京都)에서 교화를 행하자 스님도 또한 이르렀으나 마침내 취도(聚徒)하여 연법(演法)하지 않았고 오직 미친 체할(佯狂) 따름이었다.

印心; 이르자면 오심(悟心)을 인증함이니 선법을 전수하거나 혹 승령(承領; 받다).

白馬廟; 선문염송집 제922. 염송설화에 가로되 백마묘白馬廟()란 것은 삼장법사가 경을 실었던 백마가 죽자 그것을 장사 지내고 가로되 백마묘라 했다.

紙錢; 곧 종이를 잘라 전형(錢形)으로 만든 것. 한위(漢魏) 이래로부터 곧 돈을 가져다 사자(死者)와 동시에 납관(納棺)하는 습속(習俗)이 있었으며 이 돈을 일컬어 예전(瘞錢; 의 뜻)이라 했음. 후에 곧 매전(埋錢)을 금지하고 지전(紙錢)으로 대용했음. 선종에서 기도 혹 우란분회의 시기에 다분히 지전을 가지고 관련(串連; 꿰어 연결)하여 경마(經馬; 도면상에 그린 말) 등과 당주(堂柱)에 매달아 걸었다가 법회가 종료할 때를 기다려 그것을 가져다 동발(銅鉢) 안에 놓고 분소(焚燒)[석씨요람중. 불조통기33. 명보기중].

臺盤; 탁자(桌子).

 

筠州九峯普滿大師 問僧 離什麽處 曰閩中 師曰 遠涉不易 曰不難動步便到 師曰 有不動步者麽 僧曰有 師曰 爭得到此間 僧無對 師曰 賺殺人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卽今是什麽 曰學人不會 師曰 十字路上馬藺

遠涉; 長途跋涉

馬藺; 鳶尾科鳶尾屬的多年生草本植物

 

균주(筠州) 구봉보만(九峯普滿) 대사. 중에게 묻되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민중(閩中)입니다. 사왈(師曰) 원섭(遠涉)하느라 쉽지 않았겠구나. 가로되 어렵지 않았으니 걸음을 움직이자(動步) 바로 이르렀습니다. 사왈 걸음을 움직이지 않는 자도 있는가. 승왈(僧曰) 있습니다. 사왈 어찌 차간(此間)에 이름을 얻는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人).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즉금은 이 무엇인가.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십자로상(十字路上)의 마린화(馬藺).

遠涉; 장도(長途; 먼 길)의 발섭(跋涉).

馬藺; 연미과(鳶尾科) 연미속(鳶尾屬)의 다년생 초본식물(草本植物).

 

台州幽棲道幽禪師 鏡淸問 如何是少父 師曰 無標的 曰無標的以爲少父耶 師曰 有什麽過 曰只如少父作麽生 師曰 道者是什麽心行 問如何是佛 師曰 汝不信是衆生 曰學人大信 師曰 若作勝解卽受群邪 師將示滅 有僧問曰 和尙百年後向什麽處去 師曰 調然調然 言訖坐亡

少父; 父少子老所省 喩指習禪學佛可疑事 法華經五 譬如有人 色美髮黑 年二十五 指百歲人言 是我子 其百歲人 亦指年少言 是我父 生育我等 是事難信

調然; 同迢然 遙遠貌

 

태주(台州) 유서(幽棲) 도유선사(道幽禪師). 경청(鏡淸)이 묻되 무엇이 이 소부(少父)입니까. 사왈(師曰) 표적(標的)이 없다. 가로되 표적이 없음을 소부(少父)로 삼습니까. 사왈 무슨 허물이 있으리오. 가로되 지여(只如) 소부(少父)는 어떻습니까. 사왈 도자(道者)는 이 무슨 심행(心行)인가.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너는 불신(不信)하니 이 중생이다. 가로되 학인은 대신(大信; 매우 믿음)합니다. 사왈 만약 승해(勝解)를 짓는다면 곧 군사(群邪)를 받는다. 스님이 장차 시멸(示滅)하려고 하자 어떤 중이 문왈(問曰) 화상이 백년후(百年後) 어느 곳을 향해 갑니까. 사왈 조연(調然)하다. 조연하다. 말을 마치자 좌망(坐亡)했다.

少父; 부소자로(父少子老)가 생략된 것. 습선(習禪)하고 학불(學佛)하기에 가히 의심스러운 일을 비유로 가리킴. 법화경5. 비여(譬如) 어떤 사람이 안색이 곱고 머리카락이 검은, 나이 25에 백세의 사람을 가리키며 말하되 이는 나의 아들이다. 그 백세의 사람도 또한 연소(年少)를 가리키며 말하되 이는 나의 아버지며 나 등을 생육했다 한다면 이 일은 믿기 어렵다.

調然; 초연(迢然)과 같음. 요원(遙遠)한 모양.

 

後洞山師虔禪師第三世住也 亦號靑林和尙 初自夾山來參 先洞山价和尙問曰 近離什麽處 師曰 武陵 曰武陵法道何似此間 師曰 胡地冬抽筍 价曰 別甑炊香飯 供養於此人 師乃出去 洞山曰 此子向後走殺天下人在 師在洞山栽松 有劉翁者從師求偈 師作偈曰 長長三尺餘 欝欝覆荒草 不知何代人 得見此松老 劉翁得偈呈于洞山 洞山曰 賀翁翁喜 只此人是第三世也 師先住隋州土門小靑林蘭若 後果迴洞山接踵

 

후동산(後洞山) 사건선사(師虔禪師)第三世住也 亦號靑林和尙. 처음 협산(夾山)으로부터 와서 참알했다. 선동산(先洞山) 개화상(价和尙; 良价)이 문왈(問曰)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사왈(師曰) 무릉(武陵)입니다. 가로되 무릉의 법도(法道)가 차간(此間)과 어찌 같으냐(何似). 사왈 호지(胡地)엔 겨울에 죽순이 싹이 틉니다(抽筍). 개왈(价曰) 따로 향반(香飯)을 증취(甑炊)하여 이 사람에게 공양하라. 스님이 이에 나갔다. 동산이 가로되 차자(此子)는 향후에 천하인을 너무 달리게(走殺) 할 것이다. 스님이 동산(洞山)에 있으면서 소나무를 심었는데 유옹(劉翁)이란 자가 있어 스님으로 좇아 구게(求偈)했다. 스님이 작게(作偈)하여 가로되 장장(長長) 3척 남짓인데()/ 울울(欝欝)히 황초(荒草)를 덮었다/ 하대(何代)의 사람이/ 이 소나무를 득견(得見)하고 늙을지 알지 못하겠네. 유옹(劉翁)이 게를 얻자 동산에게 보였다(). 동산이 가로되 하옹(賀翁)한다. ()이 기뻐했다. 다만 이 사람이 이 제3(第三世). 스님이 먼저 수주(隋州) 토문(土門) 소청림란야(小靑林蘭若)에 주()했고 후에 과연 동산으로 돌아와 접종(接踵)했다.

凡有新到僧 先令般柴三轉然後參堂 有一僧不肯 問曰 三轉內卽不問 三轉外如何 師曰 鐵輪天子寰中旨 僧無對 師便打令去 僧問 昔年疾苦又中毒請師醫 師曰 金錍撥破腦 頂上灌醍醐 曰恁麽卽謝師醫 師便打 問久負不逢時如何 師曰 古皇尺一寸 問請師答話 師曰 修羅掌於日月 師上堂謂衆曰 祖師宗旨今日施行 法令己彰復有何事 時有僧問 正法眼藏祖祖同印 未審和尙傳付何人 師曰 靈苗生有地 大悟不存師 問如何是道 師曰 迴牛尋遠㵎 曰如何是道中人 師曰 擁雪首揚眉 問千差路別如何頓曉 師曰 足下背驪珠 空怨長天月

鐵輪天子; 又作鐵輪王 四輪王之一 於人壽二萬歲時出世 統治南閻浮洲

寰中; 寰內 天子畿內

金錍; 與金篦 金籌 金箄同 金所作之箸 以決開眼膜者 錍字 底本字體模糊 依他本改

古皇; 傳說中的有巢氏之號

 

무릇 신도승(新到僧)이 있으면 먼저 섶을 3(; . ) 운반()한 연후에 참당(參堂)하게 했다. 어떤 1()이 불긍(不肯)하고 문왈(問曰) 3() 안은 곧 묻지 않습니다. 3전 밖은 어떻습니까(如何). 사왈(師曰) 철륜천자(鐵輪天子)의 환중(寰中)의 의지(意旨). 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떠나게 했다. 승문(僧問) 석년(昔年)에 질고(疾苦; 질병으로 痛苦)했는데 또 중독(中毒)되었으니 스님의 치료()를 청합니다. 사왈 금비(金錍)로 뇌()를 발파(撥破; 헤쳐 깨뜨리다)하고 정상(頂上)에 제호(醍醐)를 부어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의 치료()에 감사합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오래 저버리고() 만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고황(古皇)이 척일촌(尺一寸)이다. 묻되 스님의 답화(答話)를 청합니다. 사왈 수라(修羅; 아수라)가 일월을 장악(掌握; )했다.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조사의 종지(宗旨)를 금일 시행하겠다. 법령(法令)이 이미 드러났거늘()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정법안장을 조조(祖祖)가 한가지로 인가(印可; )했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떤 사람에게 전부(傳付)하시렵니까. 사왈 영묘(靈苗)가 생기(生起)함엔 땅이 있고 대오(大悟)는 스승을 두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소를 돌이켜(迴牛) 먼 개울을 찾는구나.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눈을 안고(擁雪) 머리로 눈썹을 치킨다(揚眉). 묻되 천차(千差)의 길이 다르니 어떻게 문득 깨닫습니까(頓曉). 사왈 발 아래 이주(驪珠)를 등지고() 공연히 장천(長天)의 달을 원망(怨望)한다.

鐵輪天子; 또 철륜왕(鐵輪王)으로 지음. 4윤왕(輪王)의 하나. 인수(人壽) 2만 세 시에 출세하며 남염부주를 통치함.

寰中; 환내(寰內)니 천자의 기내(畿內).

金錍; 금비(金篦)ㆍ금주(金籌)ㆍ금비(金箄)와 같음. 금으로 만든 바의 주(; 살 주). 안막의 결개(決開)에 쓰는 것. 비자(錍字)는 저본의 자체(字體)가 모호(模糊)하여 다른 책에 의해 고쳤음.

古皇; 전설 중의 유소씨(有巢氏)의 호().

 

洛京白馬遁儒禪師 問如何是衲僧本分事 師曰 十道不通風 啞子傳遠信 曰傳什麽信 師乃合掌頂戴 問如何是密室中人 師曰 才生不可得 不貴未生時 曰是箇什麽不貴未生時 師曰 是汝阿爺 問三千里外嚮白馬 及乎到來爲什麽不見 師曰 是汝不見 干老僧什麽事 曰請和尙指示 師曰 指卽勿交涉 問如何是學人本分事 師曰 昨夜三更日正午 問如何是法身向上事 師曰 井底蝦蟇吞却月僧問黃龍 如何是井底蝦蟇吞却月 黃龍云 不奈何 僧云 恁卽吞却去也 黃龍云 一任吞 僧云 吞後如何 黃龍云 好蝦蟇 問如何是學人急切處 師曰 俊鳥猶嫌鈍 瞥然早已遲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點額猢猻探月波

啞子; 啞人 子 泛指人

頂戴; 將佛像經典等 敬戴頭頂上 表示極爲尊敬之意 與頂禮頂受等 同表尊敬之極

阿爺; 爺 父親 阿 前綴

月波; 指月光 月光似水 故稱

 

낙경(洛京) 백마둔유(白馬遁儒) 선사. 묻되 무엇이 이 납승의 본분사(本分事)입니까. 사왈(師曰) 십도(十道)에 바람이 통하지 않는데 아자(啞子)가 원신(遠信; 먼 곳의 消息)을 전한다. 가로되 무슨 소식을 전합니까. 스님이 이에 합장하여 정대(頂戴)했다. 묻되 무엇이 이 밀실(密室) 중의 사람입니까. 사왈 겨우 나면() 불가득이며 나지 않았을 때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가로되 이것이(是箇) 무엇이기에 나지 않았을 때를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사왈 이 너의 아야(阿爺; 아버지). 묻되 3천 리 밖에서 백마(白馬)를 향(; )했더니 도래함에 이르러선(及乎) 무엇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까. 사왈 이 네가 보지 못하거늘 노승의 무슨 일에 상간(相干)되겠는가. 가로되 화상의 지시(指示)를 청합니다. 사왈 지시(指示; )하면 곧 교섭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사왈 어젯밤 삼경에 해가 정오(正午)였다. 묻되 무엇이 이 법신의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사왈 정저(井底)의 하마(蝦蟇; 두꺼비)가 달을 삼켜버렸다중이 黃龍에게 묻되 무엇이 이 井底蝦蟇가 달을 삼켜버렸음입니까. 황룡이 이르되 어찌하지 못한다(不奈何). 僧云 이러하다면() 곧 삼켜버렸습니다. 황룡이 이르되 삼키는 대로 일임한다. 僧云 삼킨 후엔 어떻습니까. 황룡이 이르되 좋은 두꺼비다(好蝦蟇).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급절처(急切處)입니까. 사왈 준조(俊鳥)가 오히려 둔()함을 혐의하더니 별연(瞥然; 갑자기)히 일찍 이미 더뎠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점액(點額)한 호손(猢猻; 원숭이)이 월파(月波)를 탐(; 探知)한다.

啞子; 아인(啞人; 벙어리). ()는 널리 사람을 가리킴.

頂戴; 불상이나 경전 등을 가지고 머리 꼭대기 위에 경대(敬戴; 공경히 이다). 극히 존경의 뜻을 표시함. 정례(頂禮), 정수(頂受) 등과 한가지로 존경의 지극함을 표함.

阿爺; ()는 부친이며 아()는 전철(前綴; 접두사).

月波; 월광을 가리킴. 월광이 물과 흡사한지라 고로 일컬음.

 

越州乾峯和尙或云瑞峯 問僧 什麽處來 曰天台 師曰見說石橋作兩段是否 曰和尙什麽處得遮消息來 師曰 將謂華頂峯前客 元是平田莊裏人 問如何得出三界 師曰 喚院主來趁出遮僧著 師問衆僧 輪迴六趣具什麽眼 衆無對 問如何是超佛越祖之談 師曰 老僧問汝 曰和尙且置 師曰 老僧一問尙自不會 問什麽超佛越祖之談

 

월주(越州) 건봉화상(乾峯和尙)或云瑞峯.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천태(天台)입니다. 사왈(師曰) 설함을 듣건대(見說) 석교(石橋)가 양단(兩段)을 지었다 하니 그런가. 가로되 화상은 어느 곳에서 이() 소식을 얻어 왔습니까. 사왈 이에() 이르기를 화정봉(華頂峯) 앞의 객이라 하렸더니 원래 이 평전장(平田莊) 속의 사람이구나. 묻되 어찌해야 3()를 벗어남을 얻습니까. 사왈 원주(院主)를 불러와서 이 중을 쫓아내어라(趁出). 스님이 중승(衆僧)에게 묻되 6()에 윤회하며 어떤 눈(什麽眼)을 갖추었느냐.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묻되 무엇이 이 초불월조지담(超佛越祖之談)입니까. 사왈 노승이 너에게 물었다. 가로되 화상은 그만 두십시오(且置). 사왈 노승의 일문(一問)도 오히려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 무슨 초불월조지담을 묻느냐.

 

吉州禾山和尙 僧問 學人欲申一問 師還容許否 師曰 禾山答汝了也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禾山大頂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滿目靑山起白雲

 

길주(吉州) 화산화상(禾山和尙). 승문(僧問) 학인이 일문(一問)을 펴려고(欲申) 하는데 스님이 도리어 용허(容許; 허용)하겠습니까. 사왈(師曰) 화산(禾山)이 너에게 답해 마쳤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화산(禾山)의 대정(大頂)이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눈에 가득한 청산에 백운이 일어난다.

 

明州天童山咸啓禪師先住蘇州寶華山 僧問 如何是本無物 師曰 石潤無含玉 鑛異自生金 伏龍山和尙來 師問 什麽處來 曰伏龍來 師曰 還伏得龍麽 曰不曾伏遮畜生 師曰 喫茶去 簡大德問 學人卓卓上來請師的的 師曰 我遮裏一屙便了 有什麽卓卓的的 曰和尙恁麽對話 更買草鞋行脚好 師曰 近前來 簡近前 師曰 只如老僧恁麽對 過在什麽處 簡無對 師便打十一卷又收在徑山鑒宗下何也

 

명주(明州) 천동산(天童山) 함계선사(咸啓禪師)먼저 蘇州 寶華山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본래 없는 물건입니까(本無物). 사왈(師曰) 석간(石潤)이 옥을 머금음이 없고 광석(鑛石)이 달라야() 스스로 금()을 낸다. 복룡산(伏龍山) 화상이 왔다. 스님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복룡(伏龍)에서 왔습니다. 사왈 도리어 용()을 복득(伏得; 屈伏함을 얻다)했는가. 가로되 일찍이 이() 축생(畜生)을 굴복하지 못했습니다. 사왈 차 먹고 가게나. 간대덕(簡大德)이 묻되 학인(學人)이 탁탁(卓卓) 올라왔으니 스님의 적적(的的; 확실)을 청합니다. 사왈 나의 저리(遮裏)엔 한 번 똥 누면 바로 마치거늘 무슨 탁탁(卓卓)과 적적(的的)이 있으리오. 가로되 화상의 이러한 대화는 다시 초혜(草鞋; 짚신)를 사서 행각해야 좋을 것입니다. 사왈 앞으로 다가오너라. ()이 앞으로 다가가자 사왈 지여(只如) 노승의 이러한 대답에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가. ()이 대답이 없자 스님이 바로 때렸다11권에 또 거두어 徑山鑒宗下에 있으니 어찌해서 인가.

 

潭州寶蓋山和尙 僧問 一間無漏舍 合是何人居 師曰 無名不挂體 曰還有位也無 師曰 不處 問如何是寶蓋 師曰 不從人天得 曰如何是寶蓋中人 師曰 不與時人知 僧曰 佛來時如何 師曰 覓他路不得 問切切時爲什麽不立人 師曰 歸亦蹋不著 曰恁麽時如何成立 師曰 不與時人知 問世界壞時 此箇何處去 師曰 千聖尋不得 曰時人如何歸向 師曰 直須似去 曰還有的也無 師曰 不立標則

 

담주(潭州) 보개산(寶蓋山) 화상. 승문(僧問) 일간(一間)의 무루사(無漏舍)에 합당히 이 어떤 사람이 거주합니까. 사왈(師曰) 무명(無名)은 체()를 걸지 않는다. 가로되 도리어 위()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처()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보개(寶蓋)입니까. 사왈 인천(人天)으로 좇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보개(寶蓋) 속의 사람입니까. 사왈 시인(時人)이 알게 하여 주지 않는다. 승왈(僧曰) 부처가 올 때 어떻습니까. 사왈 그 길을 찾아도 얻지 못한다. 묻되 절절(切切; 매우 간절)할 때 무엇 때문에 인()을 세우지 않습니까. 사왈 돌아가도 또한 밟지 못한다(蹋不著). 가로되 이러한 때 어떻게 성립(成立)합니까. 사왈 시인(時人)이 알게 하여 주지 않는다. 묻되 세계가 무너질 때 차개(此箇)는 어느 곳으로 갑니까. 사왈 천성(千聖)이 찾아도 얻지 못한다. 가로되 시인(時人)이 어떻게 귀향(歸向)합니까. 사왈 바로 모름지기 흡사하여 가거라(似去). 가로되 도리어 표적(標的; )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표칙(標則; 표적과 법칙)을 세우지 않는다.

 

益州北院通禪師 在夾山時 一日夾山上堂曰 坐斷主人公 不落第二見 師出曰 須知有一人不合伴 夾山曰 猶是第二見 師乃掀倒禪床 夾山曰 老兄作麽生 師曰 待某甲舌頭爛 卽向和尙道 異日師又問夾山曰 目前無法 意在目前 不是目前法 非耳目之所到 豈不是和尙語 夾山曰是 師乃掀倒禪床叉手立地 夾山起來打一拄杖 師便下去法眼云 是他掀倒禪床何不便去 須待夾山打一棒了去 意在什麽處師在洞山隨衆參請未契旨 遂辭洞山擬入嶺去 洞山曰 善爲 飛猿嶺峻好看 師沈吟良久 洞山曰 通闍梨 師應諾 洞山曰 何不入嶺去 師因此惺悟更不入嶺 師事於洞山時號钁頭通

飛猿嶺; 有二 一在福建邵武府 一在江西建昌府 [大慧書栲栳珠]

 

익주(益州) 북원통(北院通) 선사. 협산(夾山)에 있을 때 어느 날 협산이 상당해 가로되 주인공(主人公)을 좌단(坐斷)해야 제2(第二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스님이 나가서 가로되 한 사람이 있어 반려(伴侶)에 적합하지 않음을 모름지기 아셔야 합니다. 협산이 가로되 오히려 이 제2견이다. 스님이 이에 선상을 번쩍 들어 엎었다. 협산이 가로되 노형은 어떠한가. 사왈(師曰) 모갑의 설두(舌頭)가 문드러짐을 기다렸다가 곧 화상을 향해 말하겠습니다. 다른 날(異日) 스님이 또 협산에게 물어 가로되 목전에 법이 없으나 뜻이 목전에 있다. 이 목전의 법이 아닌지라 이목(耳目)이 이를 곳이 아니다. 어찌 이 화상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협산이 가로되 그렇다. 스님이 이에 선상을 번쩍 들어 엎고 차수(叉手)하고 땅에 섰다. 협산이 일어나 1주장(拄杖) 때렸다. 스님이 바로 내려갔다法眼이 이르되 이 그가 선상을 번쩍 들어 엎고는 왜 바로 가지 않고 모름지기 협산이 1때려 마침을 기다렸다가 갔는가. 뜻이 어느 곳에 있느냐. 스님이 동산(洞山)에 있으면서 대중 따라 참청(參請)했으나 지취에 계합하지 못했다. 드디어 동산에게 고별하고 입령(入嶺)하여 가려고 했다. 동산이 가로되 잘 하게나(善爲), 비원령(飛猿嶺)이 험준(險峻; )하니 잘 보게나(好看). 스님이 침음(沈吟)하며 양구(良久)했다. 동산이 가로되 통사리(通闍梨). 스님이 응낙했다. 동산이 가로되 왜 입령(入嶺)하여 가지 않는가. 스님이 이로 인해 성오(惺悟)했고 다시 입령하지 않고 동산을 사사(師事)했다당시의 호가 곽두통(钁頭通)이다.

飛猿嶺; 둘이 있음. 하나는 복건 소무부에 있고 하나는 강서 건창부에 있음 [대혜서고로주].

 

住後上堂示衆曰 諸上座有什麽事 出來論量取 若上上根機不假如斯 若是中下之流 直須團削門尸索索地莫敎入泥水 第一速疾省事應須無心 若不無心擧得千般萬般只成知解 與此衲僧門下有什麽交涉 僧問 如何是無心 師曰 不管繫 問二龍爭珠誰是得者 師曰 得卽失 曰不失如何 師曰 還我珠來 問如何是淸淨法身 師曰 無點污 問轉不得時如何 師曰 功不到 問如何是大富貴底人 師曰 如輪王寶藏 曰如何是赤窮底人 師曰 如酒店腰帶 問水灑不著時如何 師曰 乾剝剝地 問一槌便成時如何 師曰 不是偶然 示滅後勅諡證眞大師

論量; 評論 計較 猶思量

索索地; 爽快淨潔的樣子 地 後綴

點污; 一汙損 二汙辱 三汙點

寶藏; 累積珍寶之庫藏 妙法能濟衆生之苦厄 故以爲喩

赤窮; 猶赤貧

乾剝剝地; 乾燥無水的樣子 地 助詞

 

주후(住後)에 상당하여 시중해 가로되 제상좌(諸上座), 무슨 일이 있는가, 나와서 논량(論量)하여 취하라. 만약 상상근기(上上根機)라면 이와 같음을 빌리지 않겠지만 만약 이 중하지류(中下之流)라면 바로 모름지기 문호(門尸)를 둥글게 깎아(團削) 삭삭지(索索地)에서 이수(泥水)에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첫째(第一) 속질(速疾)히 생사(省事; 일을 덜다)하고 응당 꼭 무심(無心)해야 한다. 만약 무심하지 못하면 천반만반(千般萬般)을 거득(擧得)하더라도 다만 지해(知解)를 이루거늘 이 납승문하(衲僧門下)와 무슨 교섭이 있겠는가. 승문(僧問) 무엇이 이 무심입니까. 사왈(師曰) 관계(管繫; 管轄)가 아니다. 묻되 2()이 구슬을 다투면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 얻음이 곧 잃음이다. 가로되 잃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사왈 나에게 구슬을 돌려주어라. 묻되 무엇이 이 청정한 법신입니까. 사왈 점오(點污)가 없다. 묻되 전()함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공()이 이르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대부귀(大富貴)한 사람입니까. 사왈 윤왕(輪王)의 보장(寶藏)과 같다. 가로되 무엇이 이 적궁(赤窮)한 사람입니까. 사왈 주점(酒店)의 요대(腰帶)와 같다. 묻되 물을 뿌려도 붙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건박박지(乾剝剝地). 묻되 한 망지()로 바로 이룰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 우연(偶然)이 아니다. 시멸(示滅)한 후 칙시가 증진대사(證眞大師).

論量; 평론(評論), 계교(計較). 사량(思量)과 같음.

索索地; 상쾌(爽快)하고 정결(淨潔)한 양자(樣子). ()는 후철.

點污; 1. 오손(汙損). 2. 오욕(汙辱). 3. 오점(汙點).

寶藏; 진보(珍寶)가 누적(累積)한 고장(庫藏). 묘법이 능히 중생의 고액을 제도하므로 고로 비유를 삼음.

赤窮; 적빈(赤貧; 아주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음)과 같음.

乾剝剝地; 건조하여 물이 없는 양자(樣子; 形狀). ()는 조사(助詞).

 

高安白水本仁禪師 自洞山受記 唐天復中遷止洪井高安白水院 衆盈三百玄言流播 因設洞山忌齋 有僧問 供養先師先師還來也無 師曰 更下一分供養著 洪州西山衆行者來禮拜 問曰 今日不爲別事乞師指示 師曰 汝諸人求指示耶 對曰是 師曰 敎我委付阿誰 鏡淸行脚到 師謂之曰 時寒道者 淸曰 不敢 師曰 還有臥單得蓋否 曰設有亦無展底工夫 師曰 直饒道者滴水滴凍亦不干他事 曰滴水氷生事不相涉 師曰是 曰此人意作麽生 師曰 此人不落意 曰不落意此人那 師曰 高山頂上無可與道者啗啄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還見庭前杉樧否 曰恁麽卽和尙今日因學人致得是非 師曰多口座主 皎然去後 師知是雪峯禪客乃曰 盜法之人終不成器皎然後住長生山 有僧問 從上宗乘如何擧唱 然曰 不可爲闍梨一人荒却長生山也 玄沙聞之曰 然師兄佛法卽大行 受記之緣亦就矣 厥後衆緣不備 果如仁和尙所記 僧問 如何是不遷義 師曰 落華隨流水 明月上孤岑 師將順世四衆俱集 營齋聲鍾焚香白衆曰 香煙絕處是吾涅槃時也 言訖跏趺而坐 息隨煙滅

臥單; 被套

滴水滴凍; 謂水一滴下來就結冰了 引申指迅速而間不容髮 禪宗指當下頓悟 不容擬議思量

啗啄; 喩指思量卜度 施呈言句機巧

 

고안(高安) 백수본인(白水本仁) 선사. 동산(洞山)에서 수기(受記)함으로부터 당 천복(天復; 901-903) 중 홍정(洪井) 고안(高安) 백수원(白水院)에 옮겨 머물렀다. 대중이 3백을 채웠고 현언(玄言)이 유파(流播; 傳播)되었다. 동산(洞山)의 기재(忌齋)를 베풂으로 인해 어떤 중이 묻되 선사(先師)에게 공양하면 선사가 도리어 오십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師曰) 다시 일분(一分)의 공양을 내려라. 홍주(洪州) 서산(西山)의 뭇 행자가 와서 예배하고 문왈(問曰) 금일 다른 일을 위함이 아니며 스님의 지시(指示)를 구걸합니다. 사왈 너희 제인(諸人)이 지시를 구하느냐. 대왈(對曰) 그렇습니다. 사왈 나로 하여금 누구(阿誰)에게 위부(委付; 托付)하게 해야 하는가. 경청(鏡淸)이 행각하다가 이르렀다. 스님이 일러 가로되 때가 춥구나 도자(道者). 청왈(淸曰) 불감(不敢;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왈 도리어 와단(臥單)이 있어 덮음을 얻느냐. 가로되 설사 있더라도 또한 펴는(展底) 공부(工夫)가 없습니다. 사왈 직요(直饒; 假令) 도자(道者)가 적수적동(滴水滴凍)이라도 또한 그 일에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가로되 적수(滴水)와 빙생(氷生; 얼음이 생기다)은 일이 서로 간섭(干涉; )되지 않음입니까. 사왈 그렇다. 가로되 차인(此人)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왈 차인은 뜻에 떨어지지 않는다. 가로되 뜻에 떨어지지 않음이 차인(此人)입니까. 사왈 고산(高山)의 정상(頂上)에서 가히 도자(道者)와 더불어 담탁(啗啄)할 게 없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도리어 뜰 앞의 삼살(杉樧; 吳茱萸)을 보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화상이 금일 학인으로 인해 시비를 치득(致得; 招到)했습니다. 사왈 다구(多口) 좌주(座主)로구나. 교연(皎然)이 간 후 스님이 이 설봉(雪峯)의 선객임을 알았고 이에 가로되 도법지인(盜法之人)은 마침내 대기(大器; )를 이루지 못한다皎然이 후에 長生山했다. 어떤 중이 묻되 從上宗乘을 어떻게 擧唱합니까. 然曰 闍梨 1인을 위해 長生山荒却함은 不可하다. 玄沙가 이를 듣고 가로되 然師兄의 불법이 곧 大行할 것이며 受記之緣도 또한 성취할 것이다. 厥後 衆緣不備하여 과연 仁和尙所記와 같았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천(不遷)의 뜻입니까. 사왈 낙화(落華)는 유수(流水)를 따르고 명월은 고잠(孤岑; 孤峯)에 오른다. 스님이 장차 순세(順世)하려 하자 4()이 모두 모였다. 영재(營齋; 를 짓다)하고 종을 울리고(聲鍾) 분향하고 대중에게 알려() 가로되 향연(香煙)이 끊기는 곳이 이 내가 열반할 때다. 말을 마치자 가부(跏趺)하고 앉더니 호흡()이 연기 따라 멸()했다.

臥單; 피투(被套; 이불솜. 이불잇. 이불 홑청).

滴水滴凍; 이르자면 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서 바로 결빙(結冰)해버림이니 인신(引申; 轉義)하여 신속하므로 중간에 호발(毫髮)도 용납하지 않음을 가리킴. 선종에서 당하에 돈오하고 의의(擬議)하며 사량함을 용납하지 않음을 가리킴.

啗啄; 사량하고 복탁(卜度)함을 비유로 가리킴. 언구의 기교(機巧)를 베풀어 보임.

 

撫州疎山光仁禪師 身相短陋精辯冠衆 洞山門下時有齧鏃之機 激揚玄奧 咸以仁爲能銓量者 諸方三昧可以詢乎矬師叔 僧問 如何是諸佛師 師曰 何不問疎山老漢僧無對師手握木蛇 有僧問 手中是什麽 師提起曰 曹家女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尺五頭巾 曰如何是尺五頭巾 師曰 圓中取不得 師擧香嚴語問鏡淸 肯重不得全 怤道者作麽生會 怤曰 全歸肯重 師曰 不得全肯者作麽生 怤曰 箇中無肯路 師曰 始愜病僧意

矬師叔; 指疏山匡仁 因其身形矮小 容貌不揚 故叢林稱爲矬師叔 矮師叔 或矮闍黎

曹家女; 日工集二曰 世宗遠說 疏山木蛇則人面而翼鱗之狀 蓋疏山檀那曹氏女爲蛇歟 疏山有曹家廟 爲土地神 余問木蛇狀 則宗索紙筆畫作其狀 [五家正宗贊助桀]

香嚴語; 見上卷十一香嚴智閑章

肯重; 崇信 推重

 

무주(撫州) 소산광인(疎山光仁; 匡仁으로 지음하소) 선사. 신상(身相)이 단루(短陋)했고 정변(精辯)이 관중(冠衆; 무리에서 으뜸)이었다. 동산문하(洞山門下)에 당시(當時; ) 설족지기(齧鏃之機)가 있었으니 현오(玄奧; 현묘하고 深奧)를 격양(激揚)했고 모두() 광인(光仁)을 능히 전량(銓量; 衡量)하는 자라 하였고 제방의 삼매를 가이(可以; 는 조사) 좌사숙(矬師叔)에게 물어라() 하였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제불의 스승입니까. 사왈(師曰) 왜 소산(疎山) 노한에게 묻지 않느냐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손에 목사(木蛇)를 쥐었다(). 어떤 중이 묻되 수중(手中)에 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제기(提起)하고 가로되 조가녀(曹家女).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척오(尺五)의 두건(頭巾)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척오의 두건입니까. 사왈 원() 중에서 취함을 얻지 못한다. 스님이 향엄의 말(香嚴語)을 들어 경청(鏡淸; 道怤)에게 묻되 긍중(肯重)은 온전함을 얻지 못한다를 부도자(怤道者)는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부왈(怤曰) 전부 긍중(肯重)으로 돌아갑니다. 사왈 전긍(全肯)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어떠한가. 부왈 개중(箇中)에 긍로(肯路)가 없습니다. 사왈 비로소 병승(病僧)의 뜻에 맞는다().

矬師叔; 소산(疏山) 광인(匡仁; 光仁으로 지음)을 가리킴. 그 신형(身形)이 왜소(矮小)하고 용모가 불양(不揚. 드날리지 못함)하여 고로 총림에서 호칭하기를 좌사숙(矬師叔)ㆍ왜사숙(矮師叔) 혹은 왜사리(矮闍黎)라 했음.

曹家女; 일공집2에 가로되 세종원(世宗遠)이 설하되 소산(疏山)의 목사(木蛇)는 곧 인면(人面)에 익린(翼鱗; 날개가 있는 물고기)의 형상이다. 대개 소산의 단나(檀那) 조씨녀(曹氏女)가 뱀이 되었는가 함. 소산에 조가묘(曹家廟)가 있고 토지신이 되는데 내가 목사(木蛇)의 형상을 물었더니 곧 종원(宗遠)이 지필을 찾아 그 형상을 그림으로 그렸음 [오가정종찬조걸].

香嚴語; 위 권11 향엄지한장(香嚴智閑章)을 보라.

肯重; 숭신(崇信; 숭배하여 믿음). 추중(推重; 추앙하여 존중히 여김).

 

因鼓山擧威音王佛師 師乃問 作麽生是威音王佛師 鼓山曰 莫無慚愧好 師曰 闍梨恁麽道卽得 若約病僧卽不然 曰作麽生是威音王佛師 師曰 不坐無貴位 洞山第四世問 如何是一句 師曰 不道 曰爲什麽不道 師曰 少時輩 問恁麽時如何 師曰 將軍不上便橋 金牙徒勞拈筈 問如何是直指 師曰 珠中有水君不信 擬向天邊問太陽 冬至夜有僧上堂問 如何是冬來意 師曰 京中出大黃 問和尙百年後向什麽處去 師曰 背底芒叢四脚指天 師遷化時有偈曰 我路碧空外 白雲無處閑 世有無根樹 黃葉風送還 偈終而逝 又著四大等頌略 華嚴長者論 流傳於世

時輩; 當時的著名人物

便橋; 供短時使用的簡便橋梁

大黃; 是多種蓼科大黃屬的多年生植物的合稱 也用藥材

 

고산(鼓山)이 위음왕불(威音王佛)의 스승을 듦으로 인해 스님이 이에 묻되 무엇이 이 위음왕불의 스승인가. 고산이 가로되 참괴(慚愧)가 없음이 좋지 않겠습니까. 사왈(師曰) 사리(闍梨)가 이렇게 말함은 곧 옳거니와 만약 병승(病僧)을 대약(大約)하자면 곧 그렇지 않다. 가로되 무엇이 이 위음왕불의 스승입니까. 사왈 무귀위(無貴位)에 앉지 않는다. 동산(洞山)第四世이 묻되 무엇이 이 1()입니까. 사왈 말하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합니까. 사왈 시배(時輩)가 적다. 묻되 이러한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장군은 편교(便橋)에 오르지 않거늘 금아(金牙)가 도로(徒勞) 오늬()를 잡는다(). 묻되 무엇이 이 직지(直指)입니까. 사왈 주중(珠中)에 물이 있음을 그대(; 저본에 으로 지었음)가 믿지 않고 천변(天邊)을 향해 태양에게 물으려 하는가. 동지(冬至) 밤에 어떤 중이 상당(上堂)하여 묻되 무엇이 이 동래(冬來)의 뜻입니까. 사왈 경중(京中; 京城 )에 대황(大黃)이 난다. 묻되 화상이 백년후(百年後) 어느 곳을 향해 갑니까. 사왈 등 밑(背底)은 망총(芒叢)이며 사각(四脚)이 하늘을 가리킨다. 스님이 천화(遷化)할 때 게()가 있어 가로되 나의 길은 벽공(碧空) 밖이니/ 백운이 한가한 곳이 없다/ 세상에 무근수(無根樹)가 있어/ 황엽(黃葉)을 바람이 송환(送還)한다. 게를 마치자 서거했다. 또 사대등송략(四大等頌略)과 화엄장자론(華嚴長者論)을 지었는데 세상에 유전(流傳)한다.

時輩; 당시의 저명한 인물.

便橋; 단시(短時)의 사용에 이바지하는 간편한 교량(橋梁).

大黃; 이는 여러 종류의 요과(蓼科; 는 여뀌 료) 대황속(大黃屬)의 다년생 식물의 합칭임. 또 약재로도 씀.

 

澧州欽山文邃禪師 福州人也 少依杭州大慈山寰中禪師受業 時巖頭雪峯在衆覩師吐論 知是法器相率遊方 二士緣契德山各承印記 師雖屢激揚而終然凝滯 一日問德山曰 天皇也恁麽道 龍潭也恁麽道 未審德山作麽生道 德山曰 汝試擧天皇龍潭道底來 師方欲進語 德山以拄杖打 舁入涅槃堂 師曰 是卽是打我太殺法眼別云 是卽是錯打我 更有語句如德山巖頭章出焉師後於洞山言下發解 乃爲洞山之嗣 年二十七止于欽山 對大衆前自省過擧 初參洞山時 洞山問什麽處來 師曰 大慈來 曰還見大慈麽 師曰見 曰色前見色後見 師曰 非前後見 洞山默置 師乃曰 離師太早不盡師意

凝滯; 停留不動 拘泥

過擧; 錯誤的行爲

默置; 又作捨置 默然 對於所問 則默而不答

 

예주(澧州) 흠산문수(欽山文邃) 선사. 복주(福州) 사람이다. 소년(少年)에 항주(杭州) 대자산(大慈山) 환중선사(寰中禪師)에게 의지해 수업(受業)했다. 당시에 암두(巖頭)와 설봉(雪峯)이 대중에 있으면서 스님의 토론(吐論)을 보고() 이 법기(法器)임을 알고 상솔(相率)하여 유방(遊方)했다. 이사(二士)는 인연이 덕산(德山)과 계합하여 각자 인기(印記; 印可하고 授記)를 승수(承受)했다. 스님은 비록 자주() 격양(激揚)했으나 마침내(終然) 응체(凝滯)했다. 어느 날 덕산에게 물어 가로되 천황(天皇)도 이렇게 말씀하셨고 용담(龍潭)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미심하오니 덕산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덕산이 가로되 네가 시험 삼아 천황과 용담이 말한 것을 들어라(). 스님이 바야흐로 진어(進語)하려는데 덕산이 주장자로써 때리고 마주들어() 열반당(涅槃堂)에 들어갔다. 사왈(師曰) 옳기는 곧 옳지만 나를 때림이 너무 심했습니다(太殺)法眼別云 옳기는 곧 옳지만 나를 잘못 때렸습니다. 다시 語句가 있음은 德山巖頭章에 나온 것과 같다. 스님이 후에 동산(洞山)의 언하에 발해(發解; 이해를 내다)했고 이에 동산의 법사(法嗣)가 되었고 나이 27에 흠산(欽山)에 머물렀다. 대중 앞을 상대로 과거(過擧)를 자성(自省)했다. 동산을 초참(初參)했을 때 동산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 대자(大慈)에서 옵니다. 가로되 도리어 대자를 보았느냐. 사왈 보았습니다. 가로되 색 앞에서 보았느냐, 색 뒤에서 보았느냐. 사왈 앞 뒤에서 본 게 아닙니다. 동산이 묵치(默置)했다. 스님이 이에 가로되 스승을 떠남이 너무 일러 스승의 뜻을 다하지 못했다.

凝滯; 정류(停留)하여 움직이지 않음. 구니(拘泥; 구애. 구속).

過擧; 착오(錯誤)의 행위.

默置; 또 사치(捨置)ㆍ묵연으로 지음. 물은 바에 대해 곧 침묵하며 답하지 않음임.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梁公曲尺誌公剪刀 問一切諸佛法皆從此經出 如何是此經 師曰 常轉 曰未審經中說什麽 師曰 有疑請問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錦帳銀香囊 風吹滿路香 有僧寫師眞呈 師問 還似我也無 僧無對 師自代曰 衆僧看取 一日師入浴院見僧蹋水輪 僧見師乃下不審 師曰 幸自碌碌地轉 何須却恁麽 僧云 不恁麽又爭得 師曰 若恁麽欽山眼堪作什麽也 僧云 作麽生是師眼 師乃以手作撥眉勢 僧云和尙又得恁麽 師曰 是是爲我恁麽 便不得恁麽 僧無對 師曰 索戰無功一場氣悶 良久乃問僧云 會麽 僧云 不會 師云 欽山爲汝擔一半

誌公剪刀; 神僧傳四寶誌 執一錫杖 杖頭掛剪刀及鏡 或掛一兩匹帛

水輪; 以水流爲動力的舊式機械裝置 用以帶動石磨風箱等

碌碌地; 義同轆轆地 轉轆轆地 以車輪之旋轉 比喩圓轉無礙 自由自在之境地 地 語尾助詞

索戰; 討戰 挑戰

氣悶; 憂鬱煩悶 又因空氣不流通 或呼吸受阻 感到憋氣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양공의 곡척(梁公曲尺)이며 지공의 전도(誌公剪刀). 묻되 일체 모든 불법이 모두 차경(此經)을 좇아나온다 하니 무엇이 이 차경입니까. 사왈 늘 구른다(常轉). 가로되 미심하오니 경중에서 무엇을 설했습니까. 사왈 의심이 있거든 청문(請問; 질문을 請求)하라.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금장(錦帳)의 은향낭(銀香囊; 은으로 만든 향낭)에 바람이 부니 길 가득히 향이다. 어떤 중이 스님의 진(; 肖像)을 베껴 드렸다(). 스님이 묻되 도리어 나와 흡사한가 또는 아닌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스스로 대왈(代曰) 중승(衆僧; 뭇 승인)은 간취(看取)하라. 어느 날 스님이 욕원(浴院)에 들어가 중을 보매 수륜(水輪)을 밟았다. 중이 스님을 보자 이에 내려와 불심(不審)이라 했다. 사왈 행자(幸自; 본래) 녹록지(碌碌地) 돌거늘() 왜 도리어 이러함을 쓰는가(). 승운(僧云) 이러하지 않으면 또 어찌 얻겠습니까. 사왈 만약 이러하다면 흠산(欽山)의 눈을 차마 무엇에 쓰겠는가. 승운 무엇이(作麽生) 이 스님의 눈입니까. 스님이 이에 손으로써 눈썹을 헤치는() 자세(姿勢; )를 지었다. 승운 화상이 또 이러함을 얻었습니다. 사왈 이는 이 내가 이러함이 되는가, 바로 이러함을 얻지 못함인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색전(索戰)하여 공()이 없으면 한바탕 기민(氣悶)한다. 양구(良久)하고 이에 중에게 물어 이르되 아느냐. 승운 알지 못합니다. 사운 흠산이 너를 위해 일반(一半; 折半)를 짊어졌다.

誌公剪刀; 신승전4 보지(寶誌). 하나의 석장(錫杖)을 가졌는데 장두(杖頭)에 전도(剪刀) 및 거울을 걸었고 혹은 한두 필()의 비단()을 걸었다.

水輪; 수류(水流)를 동력으로 삼는 구식 기계장치(機械裝置). 써서 석마(石磨)ㆍ풍상(風箱) 등을 대동(帶動).

碌碌地; 뜻이 녹록지(轆轆地)와 같음. 전녹록지(轉轆轆地)니 수레바퀴의 선전(旋轉; 빙빙 돌며 굴러감)으로써 원전무애(圓轉無礙; 둥글게 빙빙 돌며 걸림 없음)하며 자유자재한 경지에 비유함. ()는 어미조사(語尾助詞).

索戰; 토전(討戰; 전투를 찾다). 도전(挑戰).

氣悶; 우울하면서 번민함. 또 공기가 유통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혹 호흡이 막힘을 받아 별기(憋氣; 심정이 화창하지 못함)를 감도(感到; 感受)함임.

 

師與雪峯巖頭因過江西 到一茶店內喫茶次 師曰 不會轉身通氣者 今日不得茶喫 巖頭云 若恁麽我定不得茶喫也 雪峯云 某甲亦然 師曰 兩人老漢俱不識語在 巖頭云 什麽處去也 師曰 布袋裏老鵶雖活如死 巖頭云 退後著退後著 師曰 豁兄且置 存公作麽生 雪峯以手畫箇圓相 師曰 不得不問 巖頭呵呵云太遠生 師曰 有口不喫茶人多 巖頭雪峯俱無語

 

스님이 설봉ㆍ암두와 더불어 강서(江西)에 이름()으로 인해 한 다점(茶店) 안에 이르러 끽다하던 차에 사왈(師曰) 전신(轉身)하여 통기(通氣)할 줄 알지 못하는 자는 금일 차() 먹음을 얻지 못한다. 암두가 이르되 만약 이러하다면 나는 결정코() 차 먹음을 얻지 못한다. 설봉이 이르되 모갑도 또한 그러하다. 사왈 양인(兩人)의 노한이 모두() 말을 알지 못하는구나. 암두가 이르되 어느 곳에 갔느냐. 사왈 포대(布袋) 속의 늙은 까마귀는 비록 살았어도 죽은 것과 같다. 암두가 이르되 뒤로 물러나라, 뒤로 물러나라. 사왈 활형(豁兄)은 그래 두고(且置) 존공(存公)은 어떠한가. 설봉이 손으로써 저() 원상(圓相)을 그렸다. 사왈 묻지 않음을 얻지 못한다. 암두가 하하(呵呵)하고 이르되 너무 멀다(太遠生; 은 조사). 사왈 입이 있으면서 끽다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구나. 암두와 설봉이 모두() 말이 없었다.

 

有良禪客參次 才禮拜後便問云 一箭射三關時如何 師曰 放出關中主看 良云恁麽卽知過必改去也 師云 更待何時 良云 好隻箭放不著所在便出去 師曰 擬射三關且從 試爲欽山發箭 良近前良久而退 師乃打良七拄杖 良乃出去 師曰 且聽箇亂統漢心內疑三十年 有人擧似同安和尙 安云 良公雖發箭要且未中的 其僧便問同安云 未審如何得中的去 安云 關中主是什麽人 其僧却迴擧向師 師曰 良公若解恁麽 也免得欽山口也 然雖如此同安不是好心 亦須看始得

亂統; 胡亂法統 統 法 綱領

 

양선객(良禪客)이 있어 참차(參次)에 겨우 예배한 후 바로 물어 이르되 1()으로 3()을 쏘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관중주(關中主)를 방출해 보아라. 양운(良云) 이러하다면 지과필개(知過必改)하겠습니다. 사운(師云)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양운(良云) 좋은 척전(好隻箭)이 소재(出去)에 방출하지 못했다(放不著), 바로 나갔다. 사왈 3()을 쏘려고 함은 다만() 좇거니와 시험 삼아 흠산을 위해 발전(發箭)하라. ()이 앞으로 다가가 양구(良久)하고 물러났다. 스님이 이에 양()7주장(拄杖) 때렸다. ()이 이에 나갔다. 사왈 차청(且聽)하라, () 난통한(亂統)의 심내(心內)30년을 의심하리라. 어떤 사람이 동안화상(同安和尙)에게 들어 보이자 안운(安云) 양공(良公)이 비록 발전(發箭)했지만 요차(要且; 도리어. 終乃) 표적을 맞히지 못했다(未中的). 그 중이 바로 동안에게 물어 이르되 미심하오니 어찌해야 표적을 맞힘을 얻습니까. 안운(安云) 관중주(關中主)가 이 어떤 사람인가. 그 중이 돌아와(却迴) 스님을 향해 들자() 사왈 양공(良公)이 만약 이러할 줄 알았다면 또한 흠산의 입을 면득(免得)했으리라.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동안(同安)이 이 호심(好心)이 아니니 또한 꼭 보아야() 비로소 옳다.

亂統; 호란(胡亂; )한 법통. ()은 법ㆍ강령.

 

僧參 師竪起拳頭云 若開成掌卽五指參差 如今爲拳必無高下 汝道欽山通商量不通商量 其僧近前却竪拳而已 師曰 便恁麽合是箇無開合漢 僧云 未審和尙如何接人 師曰 我若接人共汝一般去也 僧云 特參於師也 須吐露宗風 師曰 汝若特來我須吐露 僧云 便請 師乃打之 其僧無語 師曰 守株待兔枉用心神

 

중이 참()했다. 스님이 권두(拳頭; 는 조사)를 세워 일으키고 이르되 만약 열면 손바닥을 이루어 곧 다섯 손가락이 참치(參差)하려니와 여금에 주먹이 되었으니 반드시 고하(高下)가 없다. 네가 말하라, 흠산(欽山)이 상량(商量)을 통했는가, 상량을 통하지 못했는가. 그 중이 앞으로 다가가 도리어 주먹을 세울 따름이었다. 사왈 바로 이러하다면 합당히 이것은 개합(開合)이 없는 자다. 승운(僧云) 미심하오니 화상은 어떻게 접인(接人)합니까. 사왈 내가 만약 접인한다면 너와 한가지로 일반(一般)일 것이다. 승운 스님을 특참(特參)하였으니 꼭 종풍을 토로(吐露)하십시오. 사왈 네가 만약 가지고 온다면 내가 꼭 토로하겠다. 승운 바로 청합니다. 스님이 이에 때렸다. 그 중이 말이 없자 사왈 수주대토(守株待兔)하면 심신(心神)을 헛되이() 쓴다.

 

行思禪師第六世

前巖頭全豁禪師法嗣

台州瑞巖師彦禪師 閩越人也 姓許氏 自幼披緇秉戒無缺 初禮巖頭致問曰 如何是本常理 巖頭曰 動也 曰動時如何 巖頭曰 不是本常理 師沈思良久 巖頭曰 肯卽未脫根塵 不肯卽永沈生死 師遂領悟身心皎如 巖頭頻召與語徵醻無忒 師復謁夾山會和尙 會問 什麽處來 曰臥龍來 會曰 來時龍還起未 師乃顧視之 會曰 炙瘡上更著艾燋 曰和尙又苦如此作什麽 會便休 師尋抵丹丘終日如愚 四衆欽慕請住瑞巖 統衆嚴整江表稱之

徵醻; 徵問應酬 徵 追求 征詢

炙瘡上更著艾燋; 炙瘡瘢上更著艾燋 亦作灸瘡瘢上更著艾焦 在烤傷的瘡瘢上 再用艾絨燒烤 比喩本已不契禪機 再加上虛妄的言句作略 則錯上加錯 艾 中醫灸法中 燒烤穴位的艾絨

 

태주(台州) 서암사언(瑞巖師彦) 선사. 민월(閩越) 사람이며 성이 허씨(許氏). 어릴 적부터 피치(披緇)했고 병계(秉戒; 受戒)하여 무결(無缺)했다. 처음 암두(巖頭)를 참례(參禮)해 치문(致問; 질문하다)해 가로되 무엇이 이 본상리(本常理)입니까. 암두가 가로되 동()했다. 가로되 동할 때 어떻습니까. 암두가 가로되 이 본상리(本常理)가 아니다. 스님이 침사(沈思; 沈吟하며 사유)하며 양구(良久)했다. 암두가 가로되 긍()하면 곧 근진(根塵)을 벗지 못하고 불긍(不肯)하면 곧 생사에 영침(永沈)한다. 스님이 드디어 영오(領悟)했고 심심(身心) 밝은 듯했다(皎如). 암두가 자주 불러 더불어 말하면서 징수(徵醻)하매 어긋남이 없었다(無忒). 스님이 다시 협산회(夾山會; 善會) 화상을 예알하자 회문(會問)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와룡(臥龍)에서 옵니다. 회왈(會曰) 올 때 용이 도리어 일어났느냐 아니냐. 스님이 이에 돌아보았다. 회왈(會曰) 자창상에 다시 애초를 붙이는구나(炙瘡上更著艾燋). 가로되 화상은 또 고통이 이와 같아 무엇 합니까. 선회가 곧 쉬었다. 스님이 이윽고 단구(丹丘)에 다다라 종일 어리석은 듯했다. 사중(四衆)이 흠모했고 청해 서암(瑞巖)에 주()했다. 대중을 통솔(統率)함이 엄정(嚴整)했고 강표(江表; 江南)에서 칭찬했다.

徵醻; 징문(徵問)하고 응수(應酬). ()은 추구(追求). 정순(征詢).

炙瘡上更著艾燋; 자창반상갱착애초(炙瘡瘢上更著艾燋)니 또한 구창반상갱착애초(灸瘡瘢上更著艾焦)로 지음. 고상(烤傷; 화상)의 헌데 자리 위에 다시 애융(艾絨; 뜸을 뜨기 위하여 쑥잎을 가공한 것)을 사용하여 태움이니 본래 이미 선기에 계합하지 못했거늘 다시 위에 허망한 언구의 작략을 더함에 비유함. 곧 착오 위에 착오를 더함임. (; )는 중의(中醫) 구법(灸法) 중 혈위(穴位)를 태우는 애융(艾絨).

 

僧問 頭上寶蓋現 足下雲生時如何 師曰 披枷帶鎖漢 曰頭上無寶蓋 足下無雲生時如何 師曰 猶有杻在 曰畢竟如何 師曰 齋後困 鏡淸問 天不能覆地不能載豈不是 師曰 若是卽被覆載 淸曰 若不是瑞巖幾遭也 師自稱曰師彦 問如何是佛 師曰 石牛 曰如何是法 師曰 石牛兒 曰恁麽卽不同也 師曰 合不得 曰爲什麽合不得 師曰 無同可同合什麽 問作麽生商量卽得不落階級 師曰排不出 曰爲什麽排不出 師曰 他從前無階級 曰未審居何位次 師曰 不坐普光殿 曰還理化也無 師曰 名聞三界重 何處不歸朝 一日有村媼來作禮 師曰 汝疾歸去 救取數千物命 媼怱忙至舍 乃見兒婦提竹器拾田螺歸 媼接取放諸水濱 師之異迹頗多 存諸別錄

歸朝; 歸附朝廷 返回朝廷

 

승문(僧問) 두상(頭上)에 보개(寶蓋)가 나타나고 족하(足下)에 구름이 생기(生起)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피가대쇄한(披枷帶鎖漢)이다. 가로되 두상에 보개가 없고 족하에 구름이 생기함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아직() 수갑(; 手匣 )이 있다.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재후(齋後)에 곤()하다. 경청(鏡淸)이 묻되 하늘이 능히 덮지 못하고 땅이 능히 싣지 못함이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사왈 만약 그렇다면 곧 부재(覆載)를 입는다. 청왈(淸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서암(瑞巖)이 거의 만날 뻔했다. 스님이 자칭해 가로되 사언(師彦)이라 했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석우(石牛).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석우아(石牛兒; 석우의 새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같지 못합니다(不同). 사왈 합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합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동()과 가동(可同)이 없거늘 무엇을 합하느냐. 묻되 어떻게 상량(商量)해야 곧 계급(階級)에 떨어지지 않음을 얻습니까. 사왈 밀어내어도() 나가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밀어내어도 나가지 않습니까. 사왈 그()는 종전(從前)에 계급이 없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떤 위차(位次)에 거주합니까. 사왈 보광전(普光殿)에 앉지 않는다. 가로되 도리어 이화(理化; 다스려 교화)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명성(名聲)3()에 알려져() 존중하거늘 어느 곳이 귀조(歸朝)하지 않겠는가. 어느 날 어떤 촌온(村媼; 촌 할머니)이 와서 작례(作禮)했다. 사왈 너는 빨리 돌아가서 수천(數千)의 물명(物命)을 구취(救取)하라. 할머니가 바쁘게(怱忙) 집에 이르렀는데 이에 아부(兒婦; 子婦)를 보니 죽기(竹器)를 가지고() 전라(田螺; 우렁이)를 거두어 돌아왔다. 할머니가 접취(接取)하여 여러 수빈(水濱; 물가)에 방생(放生)했다. 스님의 이적(異迹)이 파다(頗多)했고 여러 별록(別錄)에 존재한다.

歸朝; 조정(朝廷)에 귀부(歸附). 조정에 반회(返回).

懷州玄泉彦禪師 僧問 如何是道中人 師曰 日落投孤店 問如何是佛 師曰 張家三箇兒 曰學人不會 師曰 孟仲季便不會 問如何是聲前一句 師曰吽 曰轉後如何 師曰 是什麽

懷州; 今河南省武陟縣西南

 

회주(懷州) 현천언(玄泉彦)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師曰) 해 떨어지자 고점(孤店)에 투입한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장가(張家)의 세 개 아이다(三箇兒).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맏이()ㆍ둘째()ㆍ막내()도 바로 알지 못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성전(聲前)1()입니까. 사왈 우(). 가로되 구른 후(轉後)에 어떻습니까. 사왈 이 뭣고.

懷州; 지금의 하남성 무척현(武陟縣) 서남.

 

吉州靈巖慧宗禪師 福州長谿人也 姓陳氏 受業於龜山 僧問 如何是靈巖境 師曰 松檜森森密密遮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夜夜有猿啼 問如何是學人自己本分事 師曰拋却眞金拾瓦礫作麽 師後住禾山而終

 

길주(吉州) 영암(靈巖) 혜종선사(慧宗禪師). 복주(福州) 장계(長谿) 사람이며 성이 진씨(陳氏)니 귀산(龜山)에서 수업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영암경(靈巖境)입니까. 사왈 송회(松檜)가 삼삼밀밀(森森密密; 우거지고 빽빽함) 가렸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밤마다 원숭이의 울음이 있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의 본분사입니까. 사왈 진금(眞金)을 던져버리고 와력(瓦礫)을 주워 무엇하겠는가. 스님이 후에 화산(禾山)에 거주하다 마쳤다.

福州羅山道閑禪師 郡之長谿人也 姓陳氏 出家於龜山 年滿受具遍歷諸方 嘗謁石霜問 去住不寧時如何 石霜曰 直須盡却 師不愜意乃參巖頭問 同前語 巖頭曰 從他去住管他作麽 師於是服膺 尋遊淸涼山 閩帥飮其法味 請居羅山號法寶大師 初上堂日方升座斂衣乃曰 珍重 少頃又曰 未識底近前來 時有僧出禮拜 師抗聲曰 也大苦 僧起擬伸問 師乃喝出 問如何是奇特一句 師曰 道什麽 問佛放眉間白毫光 照萬八千世界 如何是光 師曰 高聲道 僧曰 照何世界 師乃喝出 問急急相投請師一接 師曰 會麽 曰不會 師曰 箭過也 問九女不携誰是哀提者 師曰 高聲問 僧擬再問 師曰 什麽處去也 問如何是宗門流布 師展足示之 問當鋒事如何辨明 師擧如意 僧曰 乞和尙垂慈 師曰 大遠也

白毫光; 佛之光 靈覺之光 如來佛眉間有白毫相 放光 爲如來三十二相之一

如意; 爪杖 祖庭事苑七 痒和子 卽如意

 

복주(福州) 나산도한(羅山道閑) 선사. ()의 장계(長谿) 사람이며 성이 진씨(陳氏). 귀산(龜山)에서 출가했고 나이가 차자 수구(受具)했고 제방을 편력(遍歷)했다. 일찍이 석상(石霜)을 참알해 묻되 거주(去住)에 안녕하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석상이가로되 바로() 없애버림(盡却)을 써라(). 스님이 뜻에 맞지() 않아 이에 암두(巖頭)를 참()해 물었는데 전어(前語)와 같았다. 암두가 가로되 그를 좇아 거주(去住)할 것이지 그에 상관(相管)하여 무엇하겠는가. 스님이 이에 복응(服膺)했다. 이윽고 청량산을 유람했는데 민수(閩帥)가 그의 법미(法味)를 마셨고 청해 나산(羅山)에 거주했으며 호가 법보대사(法寶大師). 처음 상당일(上堂日)에 바야흐로 승좌(升座)하여 염의(斂衣)하고 이에 가로되 진중(珍重). 소경(少頃; 片刻)에 또 가로되 알지 못하는 자는 앞으로 다가오너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예배하자 스님이 항성(抗聲)으로 가로되 또한 너무 괴롭다(大苦). 중이 일어나 물음을 펴려고 하는데 스님이 이에 할()하고 쫓아내었다. 묻되 무엇이 이 기특한 1구입니까. 사왈 무어라고 말하느냐. 묻되 부처가 미간(眉間)의 백호광(白毫光)을 놓아 만팔천 세계를 비춘다 하니 무엇이 이 광()입니까. 사왈 고성(高聲)으로 말하라. 승왈 어떤 세계를 비춥니까. 스님이 이에 할()하고 쫓아내었다. 묻되 급급(急急)히 상투(相投)하오니 스님의 일접(一接)을 청합니다. 사왈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화살이 지나갔다(箭過也). 묻되 구녀(九女)를 가지지() 않으면 누가 이 슬픔()을 가지는() 자입니까. 사왈 고성으로 물어라. 중이 재문(再問)하려고 하자 사왈 어느 곳에 갔느냐. 묻되 무엇이 이 종문(宗門)이 유포(流布)됨입니까. 스님이 발을 펴(展足) 보였다. 묻되 당봉사(當鋒事)를 어떻게 변명합니까. 스님이 여의(如意)를 들었다. 승왈(僧曰) 화상의 수자(垂慈)를 구걸합니다. 사왈 너무 멀다(大遠也).

白毫光; 불타의 빛. 영각(靈覺)의 빛. 여래불의 미간에 백호상이 있으며 방광함. 여래 32상의 하나가 됨.

如意; 조장(爪杖). 조정사원7. 양화자(痒和子) 곧 여의(如意).

 

問如何是最妙一句 師曰 披露識麽 僧擬進語 師曰 話墮也 定慧上座參 師問什麽處來 曰遠離西蜀近發開元 又進前問 卽今作麽生 師曰 喫茶去 慧猶未退 師曰 秋氣稍暖去 慧出法堂外歎曰 今日擬打羅山寨 弓折箭盡也 休休乃下參衆 明日師上堂 慧出問 豁開戶牖當軒者誰 師乃喝 慧無語 師又曰 毛羽未備且去 僧擧寒山詩問師曰 百鳥銜苦華時如何 師曰 貞女室中吟 曰千里作一息時如何 師曰 送客遊庭外 曰欲往蓬萊山時如何 師曰欹枕覷獼猴 曰將此充糧食時如何 師曰古劍髑髏前 問如何是百草頭上盡是祖師意 師曰 刺破汝眼 問聲前古毳爛意作麽生 師曰 倚著壁 問前是萬丈洪崖 後是虎狼師子 正當恁麽時如何 師曰 自在 問三界誰爲主 師曰 還解喫飯麽 師臨遷化上堂集衆 良久展左手 主事罔測 乃令東邊師僧退後 又展右手 又令西邊師僧退後 師謂衆曰 欲報佛恩無過流通大敎 歸去也歸去也珍重 言訖莞爾而寂

:披露; 一陳述 表白 二宣布 發表 三暴露

話墮; 自吐語而自分墮負也 卽失言 失策 又泛指禪家機用不合禪法

寒山詩; 三卷 唐代國淸寺道翹編 集錄寒山之詩頌三百餘首 附錄豐干詩 拾得詩 三詩合稱三隱集 卷首有臺州刺史閭丘胤序 本書之異本有宋淳熙十六年(1189) 禹穴沙門志南輯本 及明代計益軒刻本

百鳥銜苦華; 寒山詩云 白鶴銜苦桃 千里作一息 欲往蓬萊山 將此充糧食

蓬萊; 漢書二十五 蓬萊 方丈 瀛州 此三神山者 其傳在勃海中 佛祖統紀三十五 秦始皇三十一年(210) 望祀蓬萊 使徐福將童男童女入海求仙藥

莞爾; 微笑的樣子 莞 形容微笑

 

묻되 무엇이 이 최묘(最妙)1구입니까. 사왈(師曰) 피로(披露)한 것을 아느냐. 중이 진어(進語)하려고 하자 사왈 화타(話墮)했다. 정혜(定慧) 상좌가 참했다. 스님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멀기로는 서촉(西蜀)을 떠났고 가깝기로는 개원(開元)에서 출발했습니다. 또 앞으로 나아가 묻되 즉금은 어떻습니까. 사왈 차 먹고 가게나. 정혜가 오히려 물러나지 않자 사왈 추기(秋氣)가 조금() 따뜻하다. 정혜가 법당 밖에 나가 탄식하며 가로되 금일 산채(山寨)를 타라(打羅)하려다 활이 부러지고 화살이 다했다. 쉬어라(), 쉬어라. 이에 내려가 참중(參衆)했다. 명일 스님이 상당하자 정혜가 나가서 묻되 호유(戶牖)를 활짝 열었으니(豁開) 당헌자(當軒者)가 누구입니까. 스님이 이에 할()했다. 정혜가 말이 없었다. 스님이 또 가로되 우모(毛羽)를 미비(未備)했으니 다만 가거라. 중이 한산시(寒山詩)를 들어 스님에게 물어 가로되 백조가 고화를 물었을(百鳥銜苦華)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정녀(貞女)가 실중(室中)에서 읊는다. 가로되 천 리에 일식(千里作一息)을 지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송객(送客)하면서 뜰 밖에 노닌다. 가로되 봉래산으로 가려고(欲往蓬萊)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베개를 기울여() 미후(獼猴)를 엿본다. 가로되 이것을 가지고 양식에 충당(將此充糧食)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고검(古劍)이 촉루(髑髏) 앞이다. 묻되 무엇이 이 백초두상(百草頭上)이 모두 이 조사의(祖師意)입니까. 사왈 너의 눈을 찔러 깨뜨린다. 묻되 소리 앞에 고취(古毳)가 문드러지는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벽에 기대어라(倚著壁). 묻되 앞은 이 만 장()의 홍애(洪崖)며 뒤는 이 호랑(虎狼)과 사자입니다. 바로 이러함을 당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자재(自在)하다. 묻되 3()에 누가 주인이 됩니까. 사왈 도리어 끽반(喫飯)할 줄 아느냐. 스님이 천화(遷化)에 임해 상당하여 집중(集衆)하고 양구(良久)했다가 왼손을 폈다. 주사(主事)가 헤아리지 못했다(罔測). 이에 동변(東邊)의 사승(師僧)을 뒤로 물러가게 했다. 또 오른손을 펴고는 또 서변의 사승을 뒤로 물러가게 했다.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불은(佛恩)에 보답하려고 한다면 대교(大敎)를 유통(流通)시킴을 지날 게 없다. 돌아가리라(歸去也), 돌아가리라. 진중(珍重). 말을 마치자 완이(莞爾)하며 적(; 입적)했다.

:披露; 1. 진술(陳述). 표백(表白). 2. 선포. 발표. 3. 폭로(暴露).

話墮; 스스로 말을 뱉고는 자분(自分)이 타부(墮負)함이니 곧 실언(失言), 실책(失策). 또 널리 선가(禪家)의 기용(機用)이 선법(禪法)에 합당하지 않음을 가리킴.

寒山詩; 3. 당대 국청사 도교(道翹)가 편()했고 한산의 시송(詩頌) 300여 수를 집록했으며 풍간시ㆍ습득시를 부록해 3시를 합칭하여 삼은집(三隱集)이라 함. 권수에 대주자사 여구윤(閭丘胤)의 서가 있음. 본서의 이본(異本)으론 송 순희 16(1189) 우혈사문(禹穴沙門) 지남(志南)의 집본(輯本) 및 명대 계익헌(計益軒)의 각본(刻本)이 있음.

百鳥銜苦華; 한산시에 이르되 백학(白鶴)이 고도(苦桃)를 물고/ 천 리에 일식(一息)을 짓는다/ 봉래산으로 가려고 하나니/ 이것을 가지고 양식(糧食)에 충당한다.

蓬萊; 한서25. 봉래ㆍ방장ㆍ영주(瀛州) 3신산(神山)이란 것은 그것이 발해(勃海) 중에 있다고 전한다. 불조통기35. 진시황 31(210) 봉래(蓬萊)를 바라보며 제사 지내고 서복(徐福)을 시켜 동남동녀를 데리고 바다에 들어가 선약(仙藥)을 구하게 했다.

莞爾; 미소하는 양자(樣子). ()은 미소를 형용.

 

福州香谿從範禪師 僧到參 師曰 汝豈不是鼓山僧 對曰是 師曰 額上珠爲何不見 無對 僧辭 師門送召曰 上座 僧迴首 師曰 滿肚是禪 曰和尙是什麽心行 師大笑而已 師因僧披衲衣 示偈曰 迦葉上名衣 披來須捷機 才分招的箭 密露不藏龜

迦葉上名衣; 諸禪錄作迦葉上行衣 禪門拈頌集第六四八則 拈頌說話曰 迦葉上行者 於諸行中 頭陁行爲最也 衣者 糞掃衣義 迦葉相傳地事也

 

복주(福州) 향계(香谿) 종범선사(從範禪師). 중이 도참(到參)했다. 사왈(師曰) 너는 어찌 이 고산(鼓山)의 중이 아니겠는가. 대왈(對曰) 그렇습니다. 사왈 액상주(額上珠)가 무엇 때문에 보이지 않는가. 대답이 없었다. 중이 고별하자 스님이 문송(門送)하다가 불러 가로되 상좌. 중이 머리를 돌리자 사왈 배 가득히(滿肚) 이 선()이구나. 가로되 화상은 이 무슨 심행(心行)입니까. 스님이 크게 웃을 따름이었다. 스님이, 중이 납의(衲衣)를 입었음으로 인해 게를 보여 가로되 가섭의 상명의(迦葉上名衣)/ 입었음은 모름지기 첩기(捷機)라야 한다/ 겨우 나누면 적전(的箭; 표적과 화살)을 부르나니/ 몰래 드러내고 감추지 않은 거북이다.

迦葉上名衣; 여러 선록에 가섭상행의(迦葉上行衣)로 지었음. 선문염송집 제648칙 염송설화에 가로되 가섭상행(迦葉上行)이란 것은 제행 가운데 두타행이 으뜸이 됨이다. ()란 것은 분소의(糞掃衣)의 뜻이니 가섭이 서로 전한 일이다.

 

福州羅源聖壽嚴和尙 有僧自泉州迴來參 師補衲次提起示之曰 山僧一衲衣 展似衆人見 雲水請兩條 莫敎露針線 快道 僧無對 師曰 如許多時在彼作什麽

 

복주(福州) 나원(羅源) 성수엄(聖壽嚴) 화상. 어떤 중이 천주(泉州)로부터 돌아와(迴來) ()했다. 스님이 납의(衲衣)를 보수(補修)하던 차에 제기(提起)하여 보이며 가로되 산승의 일납의(一衲衣)/ 중인(衆人)에게 펴 보여(展似) 보게 한다/ 운수(雲水; 운수승)는 양조(兩條)를 청하고/ 침선(針線; 바늘과 실)을 드러나게 하지 말아라. ()히 말하라. 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師曰) 허다한 것 같은 시일을 거기에 있으면서 무엇을 했느냐.

 

前洪州感潭資國和尙法嗣

安州白兆山竺乾院志圓 號顯敎大師 僧問 諸佛心印什麽人傳得 師曰 達磨大師 曰達磨爭能傳得 師曰 汝道什麽人傳得 問如何是直截一路 師曰截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苦 問如何是道 師曰普 問如何是學人自己 師曰失 問如何一有是字得無山河大地去 師曰 不起見 玄則問 如何是佛 師曰 丙丁童子來求火則師後參法眼 方明厥旨 住金陵報恩院 問如何是畢鉢羅窟迦葉道場中人 師曰 釋迦牟尼佛 問如何是朱頂王菩薩 師曰 問那箇赤頭漢作麽

丙丁童子; 原指司燈火之童子 丙丁 卽天干中之丙丁 與五行相配則屬火 故以丙丁比喩火

畢鉢羅窟; <> Pippalī-guhā 位於中印度王舍城附近之石窟 又作賓波羅窟 卑鉢羅石室 畢波羅延石窟 略稱畢鉢 以此窟上有畢鉢羅樹 佛陀入滅後 大迦葉與五百比丘 於此處擧行第一次經典結集 又關於結集之會處 有多種說 此爲其中之一 然一般多主張於七葉窟結集 [阿育王經九 印度佛蹟實寫解說]

 

안주(安州) 백조산(白兆山) 축건원(竺乾院) 지원(志圓) 호 현교대사(顯敎大師). 승문(僧問) 제불의 심인(心印)을 어떤 사람이 전득(傳得; 傳受. 은 조사)했습니까. 사왈(師曰) 달마대사다. 가로되 달마가 어찌 능히 전득(傳得)하리오. 사왈 네가 말하라, 어떤 사람이 전득(傳得)했느냐. 묻되 무엇이 이 직절(直截)의 일로(一路)입니까. 사왈 절().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고().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보().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실(). 묻되 어찌해야(如何; 一本是字가 있다산하대지가 없음을 얻습니까. 사왈 견()을 일으키지 말아라. 현칙(玄則)이 묻되 무엇이 이 불()입니까. 사왈 병정동자(丙丁童子)가 와서 불을 구한다則師가 후에 法眼해 비로소 厥旨를 밝혔고 金陵 報恩院했다. 묻되 무엇이 이 필발라굴(畢鉢羅窟) 가섭도량(迦葉道場) 중의 사람입니까. 사왈 석가모니불이다. 묻되 무엇이 이 주정왕보살(朱頂王菩薩)입니까. 사왈 나개(那箇; ) 적두한(赤頭漢)을 물어 무엇하리오.

丙丁童子; 원래는 등화(燈火)를 맡은 동자를 가리킴. 병정(丙丁)은 곧 천간(天干) 중의 병정이니 5행과 서로 배합하면 곧 화()에 속함. 고로 병정을 화에 비유함.

畢鉢羅窟; <> Pippalī-guhā. 중인도 왕사성 부근에 위치하는 석굴. 또 빈파라굴ㆍ비발라석실ㆍ빌파라연석굴로 지으며 약칭이 필발(畢鉢). 이 굴 위에 필발라수(畢鉢羅樹)가 있으며 불타가 입멸한 후 대가섭과 5백 비구가 이곳에서 제1차 경전결집을 거행했음. 또 결집의 회처(會處)에 관해 여러 종의 설이 있으며 이것은 그 중의 하나가 됨. 그러나 일반으로 칠엽굴(七葉窟)의 결집을 많이 주장함 [아육왕경9. 인도불적실사해설].

 

前濠州思明和尙法嗣

襄州鷲嶺善本禪師 因入浴室 有僧問 和尙是離垢底人 爲什麽却浴 師曰 定水湛然滿 浴此無垢人 問祖意敎意是同是別 師曰 鷲嶺峯上靑草森天 鹿野苑中狐兔交橫

鷲嶺; 鷲峰 卽靈山 靈鷲山 見上卷十三圭峯宗密章靈鷲

 

양주(襄州) 취령(鷲嶺) 선본선사(善本禪師). 욕실(浴室)에 들어가자 어떤 중이 묻되 화상은 이 이구(離垢)한 사람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목욕(沐浴)합니까 함으로 인해 사왈(師曰) 정수(定水)가 담연(湛然)히 가득하나니 이 무구인(無垢人)을 목욕시킨다.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취령봉상(鷲嶺峯上)에 청초(靑草)가 삼천(森天; 하늘에 빽빽함)하고 녹야원(鹿野苑) 중에 여우와 토끼가 교차하며 가로 달린다(交橫).

鷲嶺; 쥐봉(鷲峰)이니 곧 영산(靈山), 영취산(靈鷲山). 위 권13 규봉종밀장(圭峯宗密章) 영취(靈鷲)를 보라.

 

前潭州大光山居誨禪師法嗣

潭州谷山有緣禪師 僧問 伶俜之子如何歸向 師曰 會人路不通 曰恁麽卽無奉重處也 師曰 我道爾鉢盂落地拈不起 問一撥便轉時如何 師曰 野馬走時鞭轡斷 石人撫掌笑呵呵

伶俜; 又作竛竮 步行踉蹌之謂

 

담주(潭州) 곡산(谷山) 유연선사(有緣禪師). 승문(僧問) 영빙(伶俜)하는 아들이 어떻게 귀향(歸向)합니까. 사왈(師曰) 마침() 인로(人路)가 불통(不通)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받들어 존중할 곳이 없습니다. 사왈 내가 말하나니 너()의 발우가 땅에 떨어졌는데 집어 일으키지 못하는구나. 묻되 한 번 살짝 건드리면(一撥) 바로 돌 때 어떻습니까. 사왈 야마(野馬)가 달릴 때 채찍과 고삐가 끊어지매 석인(石人)이 손바닥 치며() 하하 웃는다.

伶俜; 또 영병(竛竮)으로 지음. 보행이 양창(踉蹌; 비틀거림)함을 말함.

 

潭州龍興和尙 僧問 一撥便轉時如何 師曰 根不利 問得座披衣時如何 師曰 不端嚴 曰爲什麽不端嚴 師曰 不從證得 問如何是道中人 師曰 終日寂攢眉

得座披衣; 同得坐披衣 登上法座 穿上法衣 意指住持寺院爲衆說法

 

담주(潭州) 용흥화상(龍興和尙). 승문(僧問) 한 번 건드리면 바로 돌(一撥便轉)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근기가 날카롭지 못하다. 묻되 득좌피의(得座披衣)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단엄(端嚴)하지 못하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단엄하지 못합니까. 사왈 증득(證得)을 좇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종일 고요히 눈썹을 찌푸린다(攢眉).

得座披衣; 득좌피의(得坐披衣)와 같음. 법좌에 오르고 법의를 입음이니 뜻이 사원에 주지하며 대중을 위해 설법함을 가리킴.

潭州伏龍山和尙第一世住僧問 攪長河爲酥酪 變大地爲黃金時如何 師曰 臂長衫袖短 問隨緣認果 如何是果 師曰 雪內牡丹華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爾得恁麽不識痛痒

 

담주(潭州) 복룡산(伏龍山) 화상第一世住. 승문(僧問) 장하(長河)를 휘저어() 소락(酥酪)으로 만들고 대지(大地)를 변화해 황금으로 만들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팔이 길면 적삼 소매가 짧다. 묻되 수연(隨緣)하여 인과(認果)한다 하니 무엇이 이 과()입니까. 사왈 설내(雪內)의 모란화(牡丹華).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네가 이렇게 통양(痛痒)을 알지 못함을 얻느냐.

 

京兆白雲善藏禪師 僧問 如何是深深處 師曰 矮子渡深溪 問赤脚時如何 師曰 何不脫却 問如何是法法不生 師曰 萬水千山

矮子; 矮人 子 後綴

 

경조(京兆) 백운(白雲) 선장선사(善藏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깊고 깊은 곳입니까. 사왈(師曰) 왜자(矮子)가 깊은 시냇물을 건넌다. 묻되 적각(赤脚; 맨발)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왜 벗어버리지 않느냐. 묻되 무엇이 이 법법(法法)이 나지 않음입니까. 사왈 만수천산(萬水千山)이다.

矮子; 왜인(矮人; 난장이). 자는 후철.

 

潭州伏龍山和尙第二世住僧問 隨緣認得時如何 師曰 汝道興國門樓高多少 問子不譚父德時如何 師曰 低聲低聲

 

담주(潭州) 복룡산(伏龍山) 화상第二世住. 승문(僧問) 수연(隨緣)하여 인득(認得)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말하라, 흥국문루(興國門樓)의 높이가 얼마인가(多少). 묻되 아들이 아버지의 덕을 이야기() 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소리를 낮추어라(低聲), 소리를 낮추어라.

 

陝府龍峻山和尙 僧問 如何是龍峻山 師曰 佛眼看不見 曰如何是山中人 師曰 作麽 問如何是不知善惡底人 師曰 千聖近不得 曰此人還知有向上事也無 師曰 不知 曰 爲什麽不知 師曰 不識善惡 說什麽向上事 曰如何 師曰 不見道犴𤞞上俄寒切 下音欲 問如何是佛向上人 師曰 不戴容 問凡有展拓盡落 今時不展拓時如何 師曰 不展不展 曰畢竟如何 師曰 不拓不拓

展拓; 開辟 擴充 豁達 開闊 施展 作爲

 

섬부(陝府) 용준산(龍峻山) 화상. 승문(僧問) 무엇이 이 용준산(龍峻山)입니까. 사왈(師曰) 불안(佛眼)으로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산중인(山中人)입니까. 사왈 뭐라고(作麽). 묻되 무엇이 이 선악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천성(千聖)도 접근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이 사람은 도리어 향상사(向上事)가 있음을 압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알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합니까. 사왈 선악도 알지 못하거늘 무슨 향상사를 말하느냐. 가로되 어떠합니까(如何). 사왈 안욕(犴𤞞; 𤞞은 짐승 이름)이라고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俄寒切이며 는 음이 . 묻되 무엇이 이 불향상인(佛向上人)입니까. 사왈 용모(容貌; )를 싣지 않는다. 묻되 무릇 전척(展拓)이 있으면 모두 떨어집니다. 금시(今時)에 전척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전()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다.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척()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다.

展拓; 개벽(開辟). 확충(擴充). 활달(豁達). 개활(開闊). 시전(施展). 작위(作爲).

 

潭州伏龍山和尙第三世住 問行盡千山路 玄機事若何 師曰 鳥道不曾棲

 

담주(潭州) 복룡산(伏龍山) 화상第三世住. 가서 천산로(千山路)가 다한 현기사(玄機事)가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조도(鳥道)에 일찍이 깃들지 않는다.

 

前筠州九峯道虔禪師法嗣

新羅淸院和尙 問奔馬爭毬 誰是得者 師曰 誰是不得者 曰恁麽卽不爭是也 師曰 直得不爭亦有過在 曰如何免得此過 師曰 要且不曾失 曰不失處如何鍛鍊 師曰 兩手捧不起

 

신라(新羅) 청원화상(淸院和尙). 묻되 분마(奔馬)가 쟁구(爭毬)하면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師曰) 누가 이 얻지 못하는 자인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다투지 않음이 옳겠습니다(是也). 사왈 바로 다투지 않음을 얻더라도 또한 허물이 있다. 가로되 어찌해야 이 허물을 면득(免得)하겠습니까. 사왈 요차(要且; 도리어. 終乃) 일찍이 잃지 않았다. 가로되 잃지 않은 곳을 어떻게 단련(鍛鍊)합니까. 사왈 두 손으로 받들어도 일으키지 못한다.

 

洪州泐潭寶峯神黨禪師 僧問 四威儀中如何辨主 師曰 正遇寶峯不脫鞋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虛空駕鐵船 嶽頂浪滔天

홍주(洪州) 늑담(泐潭) 보봉(寶峯) 신당선사(神黨禪師). 승문(僧問) 사위의(四威儀) 중에 어떻게 변주(辨主; 주인을 분변하다)합니까. 사왈(師曰) 바로 보봉(寶峯)이 신을 벗지 않았음을 만났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허공에 철선(鐵船)을 부리니() 악정(嶽頂)에 파랑(波浪)이 하늘에 넘친다().

 

吉州南源山行修號慧觀禪師 亦云光睦和尙 僧問 如何是南源境致 師曰 幾處峯巒猿鳥嘯 一帶平川遊子迷 問如何是南源深深處 師曰 衆人皆見 曰恁麽卽淺去也 師曰 也是兩頭遙

遊子; 指離家遠遊或久居外鄕的人

 

길주(吉州) 남원산(南源山) 행수(行修) () 혜관선사(慧觀禪師), 또한 이르되 광목화상(光睦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남원(南源)의 경치(境致)입니까. 사왈(師曰) 몇 곳의 산봉우리(峯巒)엔 원숭이와 새가 울부짖고() 일대(一帶)의 평천(平川; 평지. 평야)엔 유자(遊子)가 미란(迷亂)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남원(南源)의 심심처(深深處)입니까. 사왈 중인(衆人)이 모두 본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얕습니다(淺去也). 사왈 또한 이 양두(兩頭; 兩邊)가 멀다().

遊子; 집을 떠나 멀리 노닐거나 혹 외향(外鄕)에 오래 거주하는 사람을 가리킴.

 

洪州泐潭明禪師 一日下到客位 衆請師歸方丈 師曰 道得卽去 時牟和尙對曰 大衆請師 乃上法堂 問非思量處 識情難測時如何 師曰 我不欲違古人 曰不違古人意作麽生 師曰 也合消得禮三拜 僧問 碓擣磨磨不得忘却 此意如何 師曰 虎口裏活雀兒 問如何是道者 師曰 毛毿毿 曰如何是道者家風 師曰 佛殿前逢尊者 問如何是和尙終日事 師曰 鉢盂裏無折筋 曰如何是沙門終日事 師曰 轟轟不借萬人

 

홍주(洪州) 늑담명(泐潭明) 선사. 어느 날 내려가 객위(客位)에 이르렀다. 대중이 스님이 방장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자 사왈(師曰) 말함을 얻으면 곧 가겠다. 때에 모화상(牟和尙)이 대왈(對曰) 대중이 스님을 청합니다. 이에 법당에 올라갔다. 묻되 사량(思量)하지 못할 곳은 식정(識情)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때 어떻습니까. 사왈 내가 고인(古人)을 위배하고 싶지 않다. 가로되 고인을 위배하지 않는다는 뜻이 무엇입니까(作麽生). 사왈 또한 합당히 3() 예배함을 소모(消耗)해야 한다. 승문(僧問) 방아로 찧고 맷돌로 갈아도(碓擣磨磨) 망각을 얻지 않는다는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師曰) 범의 입 속의 산 참새다(虎口裏活雀兒). 묻되 무엇이 이 도자(道者)입니까. 사왈 털이 삼삼(毿毿; 털이 너털거리는 모양)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자(道者)의 가풍입니까. 사왈 불전(佛殿) 앞에서 존자(尊者)를 만난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종일사(終日事)입니까. 사왈 발우 속에 부러진 젓가락이 없다. 가로되 무엇이 이 사문(沙門)의 종일사(終日事)입니까. 사왈 굉굉(轟轟; 수레 소리)하면서 만인(萬人)을 빌리지 않는다.

 

吉州秋山和尙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杉樹子

 

길주(吉州) 추산화상(秋山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삼수자(杉樹子; 는 조사).

 

洪州泐潭延茂禪師 僧問 如何是古佛心 師曰 終不道土木瓦礫是 問日落西山去 林中事若何 師曰 庭前紅華秀 室內不知春

 

홍주(洪州) 늑담(泐潭) 연무선사(延茂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고불심(古佛心)입니까. 사왈(師曰) 마침내 토목(土木)과 와력(瓦礫)이 이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묻되 해가 서산에 떨어져 가는 임중(林中)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정전(庭前)엔 홍화(紅華)가 아름답지만() 실내(室內)에서 봄을 알지 못한다.

 

洪州鳳棲山同安院常察禪師 僧問 如何是鳳棲家風 師曰 鳳棲無家風 曰旣是鳳棲 爲什麽却無家風 師曰 不迎賓不待客 曰恁麽卽四海參尋當爲何事 師曰 盤飣自有旁人施 問如何是鳳棲境 師曰 千峯連嶽秀 萬嶂不知春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孤巖倚石坐 不下白雲心

盤飣; 盤盛果品食物的統稱

 

홍주(洪州) 봉서산(鳳棲山) 동안원(同安院) 상찰선사(常察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봉서(鳳棲)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봉서는 가풍이 없다. 가로되 이미 이 봉서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가풍이 없습니까. 사왈 빈(; )을 영접(迎接; )하지 않고 객()을 접대(接待; )하지 않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사해(四海)가 참심(參尋)함은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함입니까. 사왈 반정(盤飣)은 저절로 옆 사람이 베풂이 있다. 묻되 무엇이 이 봉서경(鳳棲境)입니까. 사왈 천봉(千峯)은 산악에 잇닿아 빼어나고 만장(萬嶂)이 봄을 알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고암(孤巖)에서 돌에 의지해() 앉았나니 백운(白雲)의 마음 아래가 아니다.

盤飣; 소반에 가득한 과품(果品; 果實) 식물(食物)의 통칭(統稱).

洪州泐潭匡悟禪師第四世住僧問 如何是直截一路 師曰 恰好消息 曰還通向上事也無 師曰 魚從下過 問如何是閉門造車 師曰 活計一物無 曰如何是出門合轍 師曰 坐地進長安 問香煙馥郁大張法筵 從上宗乘如何擧唱 師曰 莫錯擧似人 曰恁麽卽總應如是 師曰 還是沒交涉 問六葉芬芳師傳何葉 師曰 六葉不相續 華開果不成 曰豈無今日事 師曰 若是今日卽有 曰今日事如何 師曰 葉葉連枝秀 華開處處芳

六葉芬芳; 指菩提達摩 慧可 僧璨 道信 弘忍 慧能 六代祖師的嫡系傳承

 

홍주(洪州) 늑담(泐潭) 광오선사(匡悟禪師)第四世住. 승문(僧問) 무엇이 이 직절(直截)의 일로(一路)입니까. 사왈(師曰) 흡호(恰好)의 소식(消息)이다. 가로되 도리어 향상사(向上事)와 통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물고기가 아래로 좇아 지나간다(). 묻되 무엇이 이 폐문(閉門)하고 수레를 만듦입니까. 사왈 활계(活計)가 일물(一物)도 없다. 가로되 무엇이 이 출문(出門)하면 궤도(軌道; )에 합함입니까. 사왈 앉은 땅에서 장안으로 나아간다. 묻되 향연(香煙)이 복욱(馥郁; 풍기는 香氣가 그윽함)하여 법연(法筵; 法會)을 크게 벌였으니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을 어떻게 거창(擧唱)하겠습니까. 사왈 잘못 사람에게 거사(擧似; 들어 보이다)하지 말아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모두() 응당 이와 같을 것입니다. 사왈 도리어 이는 교섭(交涉)이 없다. 묻되 육엽이 분방(六葉芬芳)하나니 스님은 어떤 엽()을 전합니까. 사왈 육엽(六葉)이 상속(相續)하지 않나니 꽃이 피어도 과실을 이루지 못한다. 가로되 어찌 금일사(今日事)가 없겠습니까. 사왈 만약 이 금일이라면 곧 있다. 가로되 금일사가 무엇입니까. 엽엽(葉葉)이 가지에 잇닿아 빼어나고() 꽃이 피니 처처(處處)에 아름답다().

六葉芬芳; 보리달마ㆍ혜가ㆍ승찬ㆍ도신ㆍ홍인ㆍ혜능 6() 조사의 적계(嫡系)의 전승(傳承)을 가리킴.

 

吉州禾山無殷禪師者福州人也 姓吳氏 七歲依雪峯眞覺大師出家 年滿受戒 遊方抵筠陽謁九峯 峯許入室 一日謂之曰 汝遠遠而來睴睴音混隨衆 見何境界而可修行 由何徑路而能出離 師對曰 重昏廓闢盲者自盲 峯初未許 師於是發明厥旨頓忘知見 先受請止吉州禾山大智院 學徒濟濟 嘗述垂誡十篇 諸方歎伏咸謂 禾山可以爲叢林表則 時江南李氏召而問曰 和尙何處來 師曰 禾山來 曰山在什麽處 師曰 人來朝鳳闕 山嶽不曾移 國主重之命居揚州祥光院 復乞入山以翠巖院 乃江西之勝槪 遂棲止焉 時上藍院復虛其室 命師來往闡化 號澄源禪師

重昏; 一思緒非常昏亂 二十分昏暗 愚昧 三指愚昧之人

濟濟; 形容人多

鳳闕; 宮闕或宮門的異稱 由漢代於宮門上置銅製鳳凰故

 

길주(吉州) 화산무은(禾山無殷) 선사란 자는 복주(福州) 사람이며 성이 오씨(吳氏). 7세에 설봉(雪峯) 진각대사(眞覺大師)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나이가 차자 수계했다. 유방(遊方)하다가 균양(筠陽)에 다다라 구봉(九峯)을 참알했고 구봉이 입실(入室)을 허락했다. 어느 날 그에게 일러 가로되 네가 멀고도 멀리서(遠遠) 왔으니 눈알이 튀어나오게(睴睴; 저본에 暉暉로 지었음)音混. 대중을 따르거라. 어떤 경계를 보고 가히 수행해야 하는가, 어떤 경로(徑路)를 말미암아 능히 출리(出離)하는가 하라. 스님이 대왈(對曰) 중혼(重昏)이 활짝 열렸으나(廓闢) 맹자(盲者)가 스스로 눈멀었습니다(). 구봉이 처음엔 허가하지 않았지만 스님이 이에 그 지취를 발명(發明; 明悟)했고 지견(知見)을 문득 잊었다. 먼저 수청(受請)하여 길주(吉州) 화산(禾山) 대지원(大智院)에 머물렀는데() 학도(學徒)가 제제(濟濟)했다. 일찍이 수계(垂誡) 십편(十篇)을 서술했는데 제방에서 탄복(歎伏)하며 모두 이르기를 화산(禾山)은 가이(可以) 총림의 표칙(表則)이 된다. 때에 강남(江南) 이씨(李氏)가 불러 문왈(問曰) 화상은 어느 곳에서 오십니까. 사왈(師曰) 화산(禾山)에서 옵니다. 가로되 산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사람이 와서 봉궐(鳳闕)을 향하고() 산악은 일찍이 이동하지 않습니다. 국주(國主)가 존중하면서 양주(揚州) 상광원(祥光院)에 거주하라고 명()했다. 다시 취암원(翠巖院)으로 입산하기를 구걸했으니 곧 강서의 수승한 경개(景槪)였고 드디어 서지(棲止)했다. 때에 상람원(上藍院)에서 다시 그 실()을 비워() 스님에게 명()해 내왕하며 천화(闡化)하게 했으며 징원선사(澄源禪師)로 호()했다.

重昏; 1. 사서(思緒)가 비상(非常)으로 혼란함. 2. 십분(十分) 혼암(昏暗). 우매(愚昧). 3. 우매한 사람을 가리킴.

濟濟; 사람이 많음을 형용함.

鳳闕; 궁궐 혹 궁문의 다른 명칭. 한대(漢代)에 궁문 위에 동제(銅製)의 봉황을 안치함을 말미암은 연고임.

 

僧問 學人乍入叢林乞師指示 師曰 於汝不惜 問仰山插鍬意作麽生 師曰 汝問我 曰玄沙踏倒鍬意作麽生 師曰 我問汝 問未辨眞宗如何體悉 師曰 頭大尾尖 問咫尺之間爲什麽不覩師顔 師曰且與闍梨道一半 曰爲什麽不全道 師曰 盡法無民 曰不怕無民請師盡法 師曰 爲知己喪身 曰爲什麽却喪身 師曰 好心無好報 問尊者撥眉擊目視育王時如何 師曰 卽今也什麽 曰學人如何領會 師曰 莫非摩利支山 問摩尼寶殿有四角一角常露 如何是露底角 師擧手曰 汝打我却問 汝還會麽 曰不會 師曰 汝爭解打得我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撲破著 問已在紅焰請師烹鍊 師曰 槌下成器 曰恁麽卽烹鍊去也 師曰 池州和尙 問四壁打禾中行剗草 和尙赴阿那頭 師曰 什麽處不赴 曰恁麽卽同於衆去也 師曰 小師弟子 師建隆元年庚申二月示有微疾 三月二日令侍者啓方丈集大衆 告辭曰 後來學者未識禾山 卽今識取珍重 先是大衆爲立生藏 本國諡法性禪師 塔曰妙相

盡法無民; 盡卽全部使用 法卽法律 謂全部用刑法來治國治民卽不可也

撥眉擊目; 聯燈會要一 賓頭盧尊者 因阿育王問 承聞尊者親見佛來 是否 尊者以手策起眉云 會麽 云 不會 者云 阿耨達池龍王 曾請佛齋 吾是時預其數 撥眉與擊目 共乃禪家示機應機之作略

摩利支; 此云陽炎 威光

生藏; 生壙

 

승문(僧問) 학인은 처음() 총림에 들어왔으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師曰) 너에게 아끼지 않는다. 묻되 앙산(仰山)이 삽초(插鍬; 삽을 꽂다)한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네가 나에게 묻는다. 가로되 현사(玄沙)가 삽을 밟아 넘어뜨린(踏倒鍬)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내가 너에게 묻는다. 묻되 진종(眞宗)을 분변하지 못했으니 어떻게 체실(體悉; 체득해 알다)합니까. 사왈 머리는 크고 꼬리는 뾰족하다. 묻되 지척지간(咫尺之間)이거늘 무엇 때문에 스님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까. 사왈 다만() 사리(闍梨)에게 일반(一半; 折半)을 말해 주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전부 말하지 않습니까. 사왈 진법무민(盡法無民)이다. 가로되 백성이 없음(無民)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청컨대 스님이 진법(盡法; 법을 다 시행)하십시오. 사왈 지기(知己)를 위해 상신(喪身; 喪命)한다. 가로되 무엇 대문에 도리어 상신(喪身)합니까. 사왈 호심(好心)에 호보(好報)가 없구나. 묻되 존자가 눈썹을 헤쳐 격목하며 육왕을 볼(尊者撥眉擊目視育王) 때 어떻습니까. 사왈 즉금은 또 무엇인가. 가로되 학인이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마리지산(摩利支)이 아닌 게 없다. 묻되 마니보전(摩尼寶殿)에 사각(四角)이 있고 일각(一角)은 드러났습니다. 무엇이 이 드러난 모퉁이()입니까. 스님이 거수(擧手)하고 가로되 네가 나를 때리고 도리어 물어라. 네가 도리어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네가 어찌 나를 타득(打得)할 줄 알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쳐서 깨뜨려라(撲破著). 묻되 이미 홍염(紅焰)에 있으니 스님의 팽련(烹鍊)을 청합니다. 사왈 망치() 아래 그릇을 이룬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팽련(烹鍊)하여 갑니다. 사왈 지주화상(池州和尙)이다. 묻되 사벽(四壁)에선 타화(打禾)하고 가운데에선 잔초(剗草)합니다. 화상이 어느 쪽(阿那頭)에 다다르겠습니까. 사왈 어느 곳인들 다다르지 않겠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중생과 한가지입니다. 사왈 소사(小師)인 제자다. 스님이 건륭(建隆) 원년 경신(庚申; 960) 2월 미질(微疾)이 있음을 보이더니 32일 시자를 시켜 방장을 열게() 하고 대중을 모아 고사(告辭; 告別)하며 가로되 후래(後來)의 학자가 화산(禾山)을 알지 못하거든 즉금 식취(識取)하라, 진중(珍重). 이에 앞서 대중이 생장(生藏)을 건립했다. 본국에서 시호를 법성선사(法性禪師)라 했고 탑왈 묘상(妙相)이다.

盡法無民; ()은 곧 전부 사용함이며 법은 곧 법률. 이르자면 형법(刑法)을 전부 써서 치국치민(治國治民)함은 곧 불가하다 함임.

尊者撥眉擊目視育王; 연등회요1.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 아육왕이 묻되 받들어 듣건대 존자가 여래를 친견했다 하니 그렇습니까 함으로 인해 존자가 손으로 눈썹을 책기(策起; 들어 일으킴)하며 이르되 아시겠습니까. 이르되 알지 못합니다. 존자가 이르되 아뇩달지용왕이 일찍이 불타를 청해 재를 했는데 나도 이때 그 수에 참예(參預)했습니다. 撥眉擊目; 발미(撥眉; 눈썹을 헤치다)와 격목(擊目; 목격하다)이니 공히 곧 선가의 시기응기(示機應機)하는 작략.

摩利支; 여기에선 이르되 양염(陽炎), 위광(威光).

生藏; 생광(生壙; 살아 있을 때 미리 만들어 놓은 무덤. 壽室. 壽穴)

 

洪州泐潭牟和尙 問如何是學人著力處 師曰 正是著力 問古人卷席意如何 師曰 珍重 便下堂

 

홍주(洪州) 늑담모(泐潭牟) 화상.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착력처(著力處)입니까. 사왈(師曰) 바로 이 착력(著力)이다. 묻되 고인(古人; 百丈懷海)이 권석(卷席; 禮拜席을 말다)한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진중(珍重). 바로 하당(下堂)했다.

 

前台州涌泉景欣禪師法嗣

台州六通院紹禪師 初參涌泉和尙入室領旨 一日燒畬歸院 泉問 去什麽處來 師曰 燒畬來 泉曰 火後事作麽生 紹曰 鐵蛇鑽不入 泉許之 後居六通院玄侶依附 僧問 不出咽喉唇吻事如何 師曰 待汝一钁斸斷巾子山 我亦不向汝道 問南山有一毒龍如何近得 師曰 非但闍梨千聖亦近不得 人問 承聞南方有一劍話 如何是一劍 師曰 不當鋒 曰頭落又作麽生 師曰 我道不當鋒有什麽頭 其人禮謝而去 師休夏入天台山華頂峯晦迹 莫知所終

休夏; 又作解夏 夏竟 夏滿 夏解 指解除夏安居之制 解夏之日謂七月十五日 此日亦稱自恣日

 

태주(台州) 육통원(六通院) 소선사(紹禪師). 용천화상(涌泉和尙)을 초참(初參)하여 입실하고 의지(意旨)를 영회(領會)했다. 어느 날 소여(燒畬; 밭을 태우다)하고 귀원(歸院)하자 천문(泉問)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사왈(師曰) 소여(燒畬)하고 왔습니다. 천왈(泉曰) 태운 후(火後)의 일이 어떠한가(作麽生). ()가 가로되 철사(鐵蛇)가 뚫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용천(泉景)이 허가했다. 후에 육통원(六通院)에 거주했는데 현려(玄侶)가 의부(依附)했다. 승문(僧問) 인후(咽喉)와 순문(唇吻; 입술)을 벗어나지 않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왈 네가 한 괭이로 건자산(巾子山)을 착단(斸斷; 베어 끊다)함을 기다리더라도 내가 또한 너를 향해 말하지 않겠다. 묻되 남산에 한 독룡(毒龍)이 있으니 어떻게 접근함을 얻습니까. 사왈 단지 사리(闍梨)만이 아니라 천성(千聖)일지라도 또한 접근함을 얻지 못한다. 사람이 묻되 받들어 듣건대(承聞) 남방에 하나의 검화(劍話)가 있으니 무엇이 이 일검(一劍)입니까. 사왈 칼날을 당하지 못한다. 가로되 머리가 떨어짐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내가 말하기를 칼날을 당하지 못한다 했거늘 무슨 머리가 있으리오. 그 사람이 예사(禮謝)하고 갔다. 스님이 휴하(休夏)에 천태산 화정봉(華頂峯)에 들어가 자취를 숨겼는데(晦迹) 마친 바를 알지 못한다.

休夏; 또 해하(解夏)ㆍ하경(夏竟)ㆍ하만(夏滿)ㆍ하해(夏解)로 지음. 뜻은 하안거의 제약을 해제함을 가리킴. 해하(解夏)의 날은 이르자면 715일이며 이 날은 또한 명칭이 자자일(自恣日).

 

前潭州雲蓋山志元禪師法嗣

潭州雲蓋山志罕禪師 僧問 如何是嶽頂浪滔天 師曰 文殊正作鬧 曰正作鬧時如何 師曰 不向機前展大悲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지한선사(志罕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악정(嶽頂)에 파랑이 하늘에 넘침입니까. 사왈(師曰; 師字 補入) 문수(文殊)가 바로 시끄러움을 짓는다. 가로되 바로 시끄러움을 지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기전(機前)을 향해 대비(大悲)를 펴지() 않는다.

新羅臥龍和尙 問如何是大人相 師曰 紫羅帳裏不垂手 曰爲什麽不垂手 師曰 不尊貴 問十二時中如何用心 師曰 猢猻喫毛蟲

毛蟲; 是鱗翅目昆蟲(蝶蛾)的幼蟲 體圓柱形 分十三節 有三對胸足和數對腹足 頭兩側各有六眼 觸角短 齶强壯 [百度百科]

 

신라(新羅) 와룡화상(臥龍和尙). 묻되 무엇이 이 대인상(大人相)입니까. 사왈(師曰) 자라장(紫羅帳) 속에서 수수(垂手)하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수수(垂手)하지 않습니까. 사왈 존귀(尊貴)가 아니다. 묻되 12시 중에 어떻게 용심(用心)해야 합니까. 사왈 호손(猢猻; 원숭이)이 모충(毛蟲)을 먹었다.

毛蟲; 이것은 인시목곤충(鱗翅目昆蟲; 나비와 나방)의 유충이니 몸체는 둥글고 기둥 형상이며 13()로 나뉘었고 3(; )의 흉족(胸足)과 몇 대()의 복족(腹足)이 있음. 머리의 양측에 각기 6()이 있으며 촉각이 짧고 잇몸이 강장(强壯)[백도백과].

 

彭州天台和尙先住天台 問古佛向什麽處去 師曰 中央甲第高 歲歲出靈苗 問古鏡未磨時如何 師曰 不施功 曰磨後如何 師曰 不照燭

彭州; 今四川彭縣

甲第; 豪門貴族的宅第

 

팽주(彭州; 저본에 影州로 지었음) 천태화상(天台和尙)먼저 天台했다. 묻되 고불이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師曰) 중앙의 갑제(甲第)가 높고 세세(歲歲)에 영묘(靈苗)가 나온다. 묻되 고경(古鏡)을 갈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공()을 베풀지 않는다. 가로되 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조촉(照燭; 비추어 밝힘)하지 못한다.

彭州; 지금의 사천 팽현(彭縣).

甲第; 호문귀족(豪門貴族)의 택제(宅第; 저택).

前潭州谷山藏禪師法嗣

新羅瑞巖和尙 問黑白兩亡 開佛眼時如何 師曰 恐爾守內 問如何是誕生王子 師曰 深宮引不出

 

신라(新羅) 서암화상(瑞巖和尙). 묻되 흑백(黑白)이 양망(兩亡)하고 불안(佛眼)을 열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네가 안을 지킬까 염려스럽다. 묻되 무엇이 이 탄생왕자(誕生王子)입니까. 사왈 심궁(深宮)에서 당겨도 나오지 않는다.

 

新羅泊巖和尙 問如何是禪 師曰 古塚不爲家 問如何是道 師曰 徒勞車馬迹 問如何是敎 師曰 貝葉收不盡

貝葉; 貝多羅樹的樹葉 古印度人用以書寫經文 記載經文的貝葉稱爲貝葉經 因之 貝葉又借指佛經 禪林疏語考證一 貝葉 名義集曰 多羅舊名貝多 此翻岸 形如此方棕櫚 直而且高 極高長八九十尺 華如黃米子 有人云 一多羅樹高七仞 七尺曰仞 是則樹高四十九尺 西域記云 南印建那補羅國北不遠有多羅樹林三十餘里 其葉長廣 其色光潤 諸國書寫莫不釆用

 

신라(新羅) 박암화상(泊巖和尙). 묻되 무엇이 이 선()입니까. 사왈(師曰) 옛 무덤(古塚)은 집이 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도로(徒勞; 헛수고) 거마(車馬)의 자취다. 묻되 무엇이 이 교()입니까. 사왈 패엽(貝葉)으로 거두어 다하지 못한다.

貝葉; 패다라수(貝多羅樹)의 나뭇잎임. 옛날 인도인(印度人)이 경문(經文)을 서사(書寫)하는데 썼음. 경문을 기재하는 패엽을 일컬어 패엽경(貝葉經)이라 했으니 이로 인해 패엽은 또 가차(假借)하여 불경을 가리킴. 선림소어고증1. 패엽(貝葉) 명의집(名義集)에 가로되 다라(多羅)는 구명(舊名)이 패다(貝多)니 여기에선 안()으로 번역한다. 형상이 지방의 종려와 같다. 곧고 또 높으며 극히 높으면 길이가 8, 9십 척이며 꽃은 황미자(黃米子)와 같다. 어떤 사람이 이르되 1다라수(多羅樹)는 높이가 7()이다. 7척을 가로되 인()이니 이는 곧 수고(樹高)49척이다. 서역기에 이르되 남인도 건나보라국(建那補羅國) 북방 불원(不遠; 멀지 않는 곳)에 다라수림이 있는데 30여 리다. 그 잎은 길고 넓으며 그 색은 광윤(光潤)하다. 제국(諸國)에서 서사하면서 채용하지 않음이 없다.

 

新羅大嶺和尙 僧問 只到潼關便却休時如何 師曰 只是途中活計 曰其中活計如何 師曰 體卽得 當卽不得 曰體得爲什麽當不得 師曰 體是什麽人分上事 曰其中事如何 師曰 不作尊貴

 

신라(新羅) 대령화상(大嶺和尙). 승문(僧問) 다만 동관(潼關)에 이르자 곧 도리어 쉴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다만 이 도중(途中)의 활계(活計). 가로되 그 중의 활계가 어떻습니까. 사왈 체()는 곧 얻지만 당()은 곧 얻지 못한다. 가로되 체()는 얻지만 무엇 때문에 당()은 얻지 못합니까. 사왈 체()가 이 어떤 사람의 분상(分上)의 일인가. 가로되 그 중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존귀(尊貴)를 짓지 않는다.

 

前潭州中雲蓋和尙法嗣

潭州雲蓋山景和尙號證覺禪師 僧問 國土晏淸功歸何處 師曰 銀臺門下不賀 曰轉爲無功時如何 師曰 王家事可然

銀臺門; 宮門名 唐時翰林院學士院 都在銀臺門附近 後因以銀臺門代指翰林院

王家; 一王室 王朝 朝廷 二王侯之家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경화상(景和尙) () 증각선사(證覺禪師). 승문(僧問) 국토가 안청(晏淸)하면 공()이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사왈(師曰) 은대문(銀臺門) 아래에선 경하(慶賀)하지 않는다. 가로되 전()하여 무공(無功)이 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왕가(王家)의 일이 가히 그러하다(可然).

銀臺門; 궁문(宮門)의 이름. 당시(唐時) 한림원(翰林院)과 학사원(學士院)이 모두 은대문(銀臺門) 부근에 있은지라 후에 인하여 은대문으로써 한림원을 대지(代指)했음.

王家; 1. 왕실. 왕조(王朝). 조정(朝廷). 2. 왕후지가(王侯之家).

 

景德傳燈錄卷第十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