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21 계침선사(桂琛禪師)-청호선사(淸護禪師)

태화당 2025. 10. 5. 13:22

景德傳燈錄卷第二十一

 

吉州靑原山行思禪師第七世上

福州玄沙師備禪師法嗣十三人

漳州羅漢院桂琛禪師 1925

福州安國慧球禪師 1937

杭州天龍重機禪師 1942

福州僊宗契符禪師 1944

婺州國泰瑫禪師 1946

衡嶽南臺誠禪師 1947

福州白龍道希禪師 1948

福州螺峯沖奧禪師 1950

泉州睡龍山和尙 1951

天台雲峯光緒禪師 1951

福州大章山契如庵主 1952

福州永興祿和尙 1956

天台國淸師靜上座已上十三人見錄1956

福州長慶慧稜禪師法嗣二十六人

泉州招慶道匡禪師 1959

杭州龍華彦球禪師 1963

杭州保安連禪師 1965

福州報慈光雲禪師 1966

廬山開先紹宗禪師 1967

婺州報恩寶資禪師 1969

杭州傾心法瑫禪師 1972

福州水陸洪儼禪師 1974

杭州廣嚴咸澤禪師 1975

福州報慈慧朗禪師 1976

福州長慶常慧禪師 1976

福州石佛院靜禪師 1977

處州翠峯從欣禪師 1978

福州枕峯靑換禪師 1978

福州東禪契訥禪師 1979

福州長慶弘辯大師 1980

福州東禪可隆大師 1981

福州僊宗守玭禪師 1982

撫州永安懷烈大師 1983

福州閩山令含禪師 1983

新羅龜山和尙 1984

吉州龍須山道殷禪師 1984

福州祥光澄靜禪師 1985

襄州鷲嶺明遠禪師 1986

杭州報慈從瓌禪師 1987

杭州龍華契盈禪師已上二十六人見錄1987

杭州龍冊寺道怤禪師法嗣五人

越州淸化山師訥禪師 1988

衢州南禪遇緣禪師 1989

復州資福智遠禪師已上三人見錄1990

筠州洞山龜端禪師

溫州景豐禪師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信州鵝湖智孚禪師法嗣一人

法進禪師一人無機緣語句不錄

漳州報恩懷嶽禪師法嗣一人

潭州妙濟師浩禪師一人見錄1993

福州鼓山神晏禪師法嗣十一人

杭州天竺山子儀禪師 1995

建州白雲智作禪師 1999

福州鼓山智嚴禪師 2002

福州龍山智嵩禪師 2003

泉州鳳凰山强禪師 2004

福州龍山文義禪師 2005

福州鼓山智嶽禪師 2006

襄州定慧和尙 2007

福州鼓山淸諤禪師 2007

金陵淨德沖煦禪師 2007

金陵報恩院淸護禪師已上十一人見錄2008

 

吉州靑原山行思禪師第七世上

前福州玄沙師備禪師法嗣

漳州羅漢院桂琛禪師 常山人也 姓李氏 爲童兒時日一素食 出言有異 旣冠辭親 事本府萬歲寺無相大師 披削登戒學毘尼 一日爲衆升臺宣戒本布薩已 乃曰 持犯但律身而已 非眞解脫也 依文作解豈發聖乎 於是訪南宗 初謁雲居雪峯參訊勤恪 然猶未有所見 後造玄沙宗一大師 一言啓發廓爾無惑 玄沙嘗問曰 三界唯心汝作麽生會 師指倚子曰 和尙喚遮箇作什麽 玄沙曰 倚子 曰和尙不會三界唯心 玄沙曰 我喚遮箇作竹木 汝喚作什麽 曰桂琛亦喚作竹木 玄沙曰 盡大地覓一箇會佛法底人不可得 師自爾愈加激勵 玄沙每因誘迪學者 流出諸三昧 皆命師爲助發 師雖處衆韜晦 然聲譽甚遠 時漳牧王公請於閩城西之石山建精舍曰地藏 請師駐錫焉 僅逾一紀後遷止漳州羅漢院 大闡玄要學徒臻湊

素食; 素食乃以植物爲主要之食物 卽相對於以動物爲食物之肉食而言

戒本; 從佛敎戒律典籍中選出的作爲說戒傳戒依據的戒律敎本

勤恪; 勤勉恭謹

助發; 扶助啓發

臻湊; 奔趨 彙集

 

장주(漳州) 라한원(羅漢院) 계침선사(桂琛禪師). 상산(常山) 사람이며 성이 이씨(李氏). 동아(童兒)가 되었을 때 하루에 한 번 소식(素食)했고 출언(出言)하면 이상(異常)함이 있었다. 이미 관세(冠歲)가 되자 부친에게 고별하고 본부(本府) 만세사(萬歲寺) 무상대사(無相大師)를 사사(師事)하여 피삭(披削)하고 등계(登戒)하고 비니(毘尼)를 배웠다. 어느 날 대중을 위해 승대(升臺)하여 계본(戒本)을 선양(宣揚)하고 포살(布薩)하고 나서 이에 가로되 지범(持犯)은 단지 율신(律身; 律己)할 따름이니 참다운 해탈이 아니다. 의문(依文)하여 작해(作解)하면 어찌 발성(發聖; 聖慧發生)하겠는가. 이에 남종(南宗)을 참방했다. 처음은 운거(雲居)와 설봉을 참알해 참신(參訊; 參問)하며 근각(勤恪)했으나 그러나 오히려 보는 바가 있지 않았다. 후에 현사 종일대사(宗一大師)에게 나아가 일언(一言)에 계발(啓發)하여 휑하게(廓爾) 의혹이 없었다. 현사가 일찍이 문왈(問曰) 삼계유심(三界唯心)을 네가 어떻게 이회(理會)하느냐. 스님이 의자(倚子)를 가리키며 가로되 화상은 이것(遮箇)을 일러 무엇이라고 합니까. 현사가 가로되 의자다. 가로되 화상은 삼계유심을 알지 못하십니다. 현사가 가로되 나는 이것을 일러 죽목(竹木)이라 한다. 너는 무엇이라고 불러 짓느냐. 가로되 계침(桂琛)도 또한 죽목이라고 불러 짓습니다. 현사가 가로되 온 대지에 한 개의 불법을 아는 사람을 찾아도 불가득이다. 스님이 이로부터(自爾) 더욱 격려(激勵)를 더했다. 현사가 매번 학자를 유적(誘迪; 달래며 이끌다)함으로 인해 여러 삼매를 유출(流出)하면서 모두 스님에게 명해 조발(助發)하게 했다. 스님이 비록 대중에 처해 도회(韜晦)했지만 그러나 성예(聲譽)가 심원(甚遠)했다. 때에 장목(漳牧) 왕공(王公)이 청해 민성(閩城) 서쪽의 석산(石山)에 정사(精舍)를 건립하고 가로되 지장(地藏)이라 했고 스님의 주석(駐錫)을 청했다. 거의 1(一紀; 12)를 넘긴 후에 장주(漳州) 라한원(羅漢院)으로 옮겨 머물렀고 현요(玄要)를 크게 열매() 학도(學徒)가 진주(臻湊)했다.

素食; 소식은 곧 식물(植物)을 주요(主要)로 삼는 식물(食物)이니 곧 동물을 식물(食物)로 삼는 육식에 상대하여 말함임.

戒本; 불교 계율 전적(典籍) 가운데로 좇아 선출(選出), 설계(說戒)전계(傳戒)를 작위(作爲)하면서 의거하는 계율교본(戒律敎本).

勤恪; 근면(勤勉)하며 공근(恭謹).

助發; 계발(啓發)을 부조(扶助).

臻湊; 분추(奔趨). 휘집(彙集; 모이다).

 

師上堂曰 宗門玄妙爲當只恁麽也 更別有奇特 若別有奇特 汝且擧箇什麽 若無去 不可將三箇字便當却宗乘也 何者三箇字 謂宗敎乘也 汝才道著宗乘便是宗乘 道著敎乘便是敎乘 禪德佛法宗乘元來由汝口裏安立名字 作取說取便是也 斯須向遮裏說平說實說圓說常 禪德汝喚什麽作平實 把什麽作圓常 傍家行脚理須甄別 莫相埋沒 得些聲色名字貯在心頭 道我會解善能揀辨 汝且會箇什麽 箇什麽 記持得底是名字 揀辨得底是聲色 若不是聲色名字 汝又作麽生記持揀辨 風吹松樹也是聲 蝦蟇老鴉也是聲 何不那裏聽取揀擇去 若那裏有箇意度模樣 只如老師口裏 又有多少意度與上坐 莫錯 卽今聲色摐摐地 爲當相及不相及 若相及卽汝靈性金剛祕密 應有壞滅去也 何以如此 爲聲貫破汝耳 色穿破汝眼 緣卽塞却汝 幻妄走殺汝 聲色體爾不容也 若不相及 又什麽處得聲色來 會麽 相及不相及試裁辨看 少間又道 是圓常平實什麽人恁道 未是黃夷村裏漢解恁麽說 是他古聖垂些子相助顯發 今時不識好惡 便安圓實 道我別有宗風玄妙 釋迦佛無舌頭 不如汝些子 便恁麽點胸 若論殺盜婬罪 雖重猶輕尙有歇時 此箇謗般若瞎却衆生眼 入阿鼻地獄吞鐵丸 莫將爲等閑 所以古人道 過在化主不干汝事 珍重

甄別; 鑒別之意 甄 鑒別 審查

; 辨別 選擇 指對機語作判別評議

摐摐; (衆多事物)紛然存在的樣子 摐 紛錯 高聳

裁辨; 别 辨别

黃夷; 古代東夷之一種 後漢書東夷傳 夷有九種 曰畎夷 於夷 方夷 黃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 [百度百科]

阿鼻; <> avīci 又作阿鼻旨 譯曰無間 無間地獄是也 飜譯明義集二 阿鼻 此云無間 觀佛三昧經云 阿言無 鼻言救 成論明五無間 一趣果無間 捨身生報故 二受苦無間 中無樂故 三時無間 定一劫故 四命無間 中不絶故 五形無間 如阿鼻相 縱廣八萬由旬 一人多人 皆遍滿故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종문(宗門)의 현묘(玄妙)가 마땅히 다만 이러함이 되는가, 다시 달리 기특(奇特)함이 있는가. 만약 달리 기특함이 있다면 너희가 그래 저() 무엇을 들겠는가(). 만약 없다면(無去) 가히 3개 글자를 가지고 바로 종승(宗乘)에 당각(當却; 當敵하다)하지 말아라. 무엇이(何者) 3개의 글자인가, 이르자면 종교승(宗敎乘)이다. 너희가 겨우 종승(宗乘)을 말하면(道著) 바로 이 종승이며 교승(敎乘)을 말하면 바로 이 교승이니 선덕(禪德)이여, 불법의 종승이 원래 너희의 입속으로 말미암아 명자(名字)를 안립(安立)하여 작취(作取)하고 설취(說取)함이 바로 이것이다. 사수(斯須; 잠시. 須臾)에 이 속을 향해 설평설실(說平說實)하고 설원설상(說圓說常)하거니와 선덕(禪德)이여, 너희는 무엇을 일러 평실(平實)이라 하느냐. 무엇을 잡아 원상(圓常)이라 하느냐. 옆집으로 행각하면서 이치를 꼭 견별(甄別)하고 서로 매몰하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 성색과 명자를 얻어 심두(心頭)에 쌓아 두고는 말하기를 나는 회해(會解; 이해)하여 잘 능히 간변(揀辨)한다 하거니와 너희는 그래 아는 것이 무엇이며 간()하는 게 무엇이냐. 기지(記持)하여 얻은 것은 이 명자(名字)며 간변(揀辨)하여 얻은 것은 이 성색(聲色)이니 만약 이 성색과 명자가 아니라면 너희가 또 어떻게 기지하고 간변하겠는가. 바람이 소나무에 붊도 또한 이 소리()며 두꺼비(蝦蟇)와 늙은 갈까마귀도 또한 이 소리거늘 왜 저 속(那裏)에서 청취(聽取)하고 간택(揀擇)하여 가지 않느냐. 만약 저 속에 저() 의도(意度; 識見風度)와 모양이 있다면 지여(只如) 노사(老師)의 입속에 또 다소의 의도(意度)가 있어 상좌에게 주느냐. 착오하지 말아라. 즉금 성색이 창창지(摐摐; 는 조사)니 마땅히 상급(相及)하는가 상급하지 않는가. 만약 상급한다면 곧 너희의 영성(靈性)인 금강의 비밀이 응당 괴멸(壞滅)하여 감이 있으리라.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가, 소리가 너희의 귀를 관파(貫破)하고 색이 너희의 눈을 천파(穿破)하고 인연이 곧 너희를 색각(塞却)하고 환망(幻妄)이 너희를 너무 달리게(走殺) 하기 때문이니() 성색(聲色)의 체가 그러하여(體爾) 용납하지 않는다. 만약 상급(相及)하지 않는다면 또 어느 곳에서 성색을 얻어 오겠는가. 아느냐, 상급과 상급하지 않음을 시험삼아 재변(裁辨)해 보아라. 소간(少間; 잠시 후)에 또 말하되 이 원상(圓常)과 평실(平實)을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느냐. 이 황이촌(黃夷) 속의 사내()가 이렇게 설할 줄 아는 게 아니라 이는 저() 고성(古聖)이 사자(些子)의 상조(相助)를 드리워 현발(顯發; 환히 밝히다)했음이다. 금시에 호오(好惡)를 알지 못해 바로 원실(圓實; 圓常平實)을 안치하고는 말하되 나에게 달리 종풍의 현묘(玄妙)가 있다 하거니와 석가불(釋迦佛)이 설두(舌頭; )가 없어서 너희의 사자(些子)와 같지 못해 바로 이렇게 점흉(點胸; 自負)했겠는가. 만약 살도음죄(殺盜婬罪)를 논할진대 비록 무겁지만 오히려() 가벼워서 오히려() 쉴 때가 있겠지만 이것은 반야를 비방함이며 중생의 눈을 멀어버리게 함인지라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가 철환(鐵丸)을 삼키리니 장차 등한(等閑)하지 말아라. 소이로 고인이 말하되 허물이 화주(化主; 敎化主人)에게 있고 너희의 일에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하였다. 진중(珍重)하라.

甄別; 감별(鑒別)의 뜻. ()은 감별ㆍ심사(審查).

; 변별. 선택. 기어(機語)에 대해 판별하고 평의(評議)함을 가리킴.

摐摐; (衆多한 사물)이 분연(紛然)히 존재하는 양자. ()은 어지럽게 섞임. 높이 솟음.

裁辨; 감별(). 변별(辨别).

黃夷; 고대 동이(東夷)의 일종. 후한서 동이전(東夷傳). ()9종이 있다. 가로되 견이(畎夷), 어이(於夷), 방이(方夷), 황이(黃夷), 백이(白夷), 적이(赤夷), 현이(玄夷), 풍이(風夷), 양이(陽夷) [백도백과].

阿鼻; <> avīci. 또 아비지(阿鼻旨)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무간(無間)이니 무간지옥이 이것임. 번역명의집2. 아비(阿鼻) 여기에선 이르되 무간(無間)이다. 관불삼매경에 이르되 아()는 말하자면 무()며 비()는 말하자면 구(). 성론(成論)5무간을 밝혔음. 1은 취과무간(趣果無間)이니 몸을 버리면 과보가 생기는 연고다. 2는 수고무간이니 중간에 낙이 없는 연고다. 3은 시무간(時無間)이니 1겁을 확정한 연고다. 4는 명무간(命無間)이니 중간에 끊어지지 않는 연고다. 5는 형무간(形無間)이니 아비(阿鼻)의 모양과 같다. 가로 세로가 8由旬이며 1인과 다인(多人)이 다 두루 가득한 연고다.

 

僧問 如何是羅漢一句 師曰 我若向爾道成兩句也 問不會底人來師還接否 師曰 誰是不會者 曰適來道了也 師曰 莫自屈 問八字不成以字不是時如何 師曰 汝實不會 曰學人實不會 師曰 看取下頭注脚 問如何是沙門正命食 師曰 喫得麽 曰欲喫此食作何方便 師曰 塞却爾口 問如何是羅漢家風 師曰 不向爾道 曰爲什麽不道 師曰 是我家風 問如何是法王身 師曰 汝今是什麽身 曰恁麽卽無身也 師曰 苦痛深

下頭; 下面 下邊

注脚; 同註脚 註釋(注釋) 註解(注解) 禪門拈頌集第一四一八則 拈頌說話曰 凡書註云 皆歧分而作脚書之 故云注脚 或云脚注 又云測注

 

승문(僧問) 무엇이 이 라한(羅漢)1구입니까. 사왈(師曰) 내가 만약 너를 향해 말하면 양구(兩句)를 이룬다. 묻되 알지 못하는 사람(不會底人)이 오면 스님이 도리어 접인(接引)합니까. 사왈 누가 이 알지 못하는 자인가. 가로되 적래(適來)에 말했습니다. 사왈 자굴(自屈)하지 말아라. 묻되 팔자(八字)를 이루지 못하고 이자(以字)도 이것이 아닐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실로 알지 못하느냐. 가로되 학인이 실로 알지 못합니다. 사왈 하두(下頭)의 주각(注脚)을 간취(看取)하라. 묻되 무엇이 이 사문의 정명식(正命食)입니까. 사왈 먹었느냐(喫得麽). 가로되 이 식()을 먹으려고 한다면 어떤 방편을 지어야 합니까. 사왈 너의 입을 막아버려라(塞却). 묻되 무엇이 이 라한의 가풍입니까. 사왈 너를 향해 말하지 않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왈 이것이 나의 가풍이다. 묻되 무엇이 이 법왕의 몸입니까. 사왈 너는 지금 이 무슨 몸이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몸이 없습니다. 사왈 고통이 깊겠구나.

下頭; 하면(下面). 하변(下邊).

注脚; 주각(註脚)과 같음. 주석(註釋; 注釋), 주해(註解; 注解). 선문염송집 제1418. 염송설화에 가로되 무릇 서책(書冊)의 주()를 말함이다. 다 갈래로 나누어 다리()를 지어 그것을 쓰는지라 고로 이르되 주각(注脚)이며 혹은 이르되 각주(脚注)며 또 이르되 측주(測注).

 

師上堂才坐 有二僧一時禮拜 師曰 俱錯 問如何是撲不破底句 師曰撲 問一佛出世普爲群生 和尙今日爲箇什麽 師曰 什麽處遇一佛 曰恁麽卽學人罪過 師曰 謹退 問如何是羅漢家風 師曰 表裏看取 問如何是諸聖玄旨 師曰 四楞塌地 問大事未肯時如何 師曰 由汝 問如何是十方眼 師曰眨上眉毛著 問因請保福齋令人去傳語曰 請和尙慈悲降重 保福曰 慈悲爲阿誰 師曰 和尙恁麽道渾是不慈悲 師翫月乃曰 雲動有雨去 有僧曰 不是雲動是風動 師曰 我道雲亦不動風亦不動 僧曰 和尙適來又道雲動 師曰 阿誰罪過

四楞塌地; 又稱四稜著地 楞 同稜 塌 貼也 又作四稜榻地 四隅之脚著地也 喩安心處

降重; 請尊宿降臨時的用語

 

스님이 상당하여 겨우 앉자 2()이 있어 일시에 예배했다. 사왈(師曰) 모두 틀렸다(俱錯). 묻되 무엇이 이 쳐서() 깨뜨리지 못할 구()입니까. 사왈 쳐라(). 묻되 1()이 출세하면 널리 군생(群生)을 위합니다. 화상은 금일 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왈 어느 곳에서 1불을 만났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학인의 죄과(罪過)입니다. 사왈 삼가 물러가라(謹退). 묻되 무엇이 이 라한의 가풍입니까. 사왈 표리(表裏)를 간취(看取)하라. 묻되 무엇이 이 제성(諸聖)의 현지(玄旨)입니까. 사왈 사릉탑지(四楞塌地). 묻되 대사(大事)를 수긍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너를 말미암는다. 묻되 무엇이 시방안(十方眼)입니까. 사왈 눈썹을 깜작거려라(眨上; 은 조사). 묻되(; 여러 선록에 問字가 없음) 보복(保福)을 재()에 청함으로 인해 사람을 시켜 가서 전어(傳語)하게 해 가로되 청컨대 화상은 자비로 강중(降重)하십시오. 보복이 가로되 자비는 누구(阿誰)를 위함이냐. 사왈 화상의 이러한 말은 온통() 이 자비가 아닙니다. 스님이 완월(翫月; 달 구경)하다가 이에 가로되 구름이 움직이니 비가 있으리라. 어떤 중이 가로되 이 구름이 움직임이 아니라 이 바람이 움직임입니다. 사왈 내가 말하나니 구름도 또한 움직이지 않고 바람도 또한 움직이지 않는다. 승왈(僧曰) 화상이 적래(適來)에 또 말하되 구름이 움직인다 했습니다. 사왈 누구(阿誰)의 죄과(罪過).

四楞塌地; 또 사릉착지(四稜著地)로 일컬음. ()은 릉()과 같음. ()은 첩(; 붙다). 또 사릉탑지(四稜榻地)로 지음. 네 모퉁이의 발이 착지함이니 안심처에 비유함.

降重; 존숙의 강림을 청할 때의 용어.

 

師見僧來擧拂子曰 還會麽 僧曰 謝和尙慈悲示學人 師曰 見我竪拂子便道示學人 汝每日見山見水可不示汝 師又見僧來擧拂子 其僧讚歎禮拜 師曰 見我竪拂子便禮拜讚歎 那裏掃地竪起掃箒 爲什麽不讚歎玄覺云 一般竪起拂子拈一種物 有肯底有不肯底道理 且道利害在什麽處僧問 承敎有言 若見諸相非相則見如來 如何是非相 師曰 燈籠子 問如何是出家 師曰 喚什麽作家 師問僧 什麽處來 曰秦州來 師曰 將得什麽物來 曰不將得物來 師曰 汝爲什麽對衆謾語 其僧無語 師却問 秦州豈不是出鸚鵡 僧曰 鸚鵡出在隴州 師曰 也不較多 師問僧 什麽處來 曰報恩來 師曰 何不且在彼中 僧曰 僧家不定 師曰 旣是僧家爲什麽不定 僧無對玄覺代云 謝和尙顧問

顧問; 詢問對方之意見

 

스님이 중이 옴을 보자 불자를 들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승왈(僧曰) 화상이 자비로 학인에게 보이심에 감사합니다. 사왈 내가 불자를 세움을 보고 바로 말하되 학인에게 보인다 했는데 네가 매일 산을 보고 물을 봄이 가히 너에게 보임이 아니겠는가. 스님이 또 중이 옴을 보자 불자를 들었다. 그 중이 찬탄하며 예배했다. 사왈 내가 불자를 세움을 보고 바로 예배하고 찬탄했거니와 저 속(那裏)에서 땅을 쓸거나 소추(掃箒; 쓰는 비)를 세워 일으키매 무엇 때문에 찬탄하지 않느냐玄覺이 이르되 一般으로 불자를 세워 일으키며 一種의 물건을 집었거늘 긍정하는 것과 긍정하지 않는 도리가 있으니 그래 말하라 利害가 어느 곳에 있느냐. 승문(僧問) 듣건대() ()에 말씀이 있어 만약 제상(諸相)이 비상(非相; 상이 아님)임을 보면 곧 여래를 본 것이라 하니 무엇이 이 비상(非相)입니까. 사왈 등롱자(燈籠子; 는 조사). 묻되 무엇이 이 출가입니까. 사왈 무엇을 일러 작가(作家)라 하느냐.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진주(秦州)에서 옵니다. 사왈 무슨 물건을 가지고(將得) 왔느냐. 가로되 물건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사왈 너는 무엇 때문에 대중(對衆)하여 거짓말(謾語)하느냐. 그 중이 말이 없자 스님이 도리어 묻되 진주(秦州)에 어찌 이, 앵무(鸚鵡)가 나지() 않겠는가. 승왈 앵무는 농주(隴州)에서 납니다(出在). 사왈 또한 많이 어긋나지() 않는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보은(報恩)에서 옵니다. 사왈 왜 다만() 그 가운데 있지 않았느냐. 사왈 승가(僧家)는 부정(不定; 정함이 없음)입니다. 사왈 이미 이 승가이거늘 무엇 때문에 부정(不定)이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玄覺代云 화상의 顧問에 감사합니다.

顧問; 상대방의 의견을 물음.

 

師住地藏時僧報云 保福和尙已遷化也 師曰 保福遷化地藏入塔僧問法眼 古人意旨如何 法眼云 蒼天蒼天 後王公上雪峯施衆僧衣時 有從弇上坐者不在 有師弟代上名受衣 弇歸 師弟曰 某甲爲師兄上名了 弇曰 汝道我名什麽 師弟無對 師代云 師兄得恁麽貪 又云 什麽處是貪處 師又代云 兩度上名雲居錫云 什麽處是弇上坐兩度上名處 師與長慶保福入州見牡丹障子 保福云 好一朵牡丹花 長慶云 莫眼花 師曰可惜許一朵花玄覺云 三尊宿語還有親疎也無 只如羅漢恁麽道 落在什麽處師問僧 汝在招慶有什麽異聞底事試擧看 僧曰 不敢錯擧 師曰 眞實底事作麽生擧 僧曰 和尙因什麽如此 師曰 汝話墮也 衆僧晩參聞角聲 師曰 羅漢三日一度上堂 王太傅二時相助

障子; 屛障

角聲; 畫角之聲 古代軍中吹角以爲昏明之節

 

스님이 지장(地藏)에 주()할 때 중이 알려 이르되 보복화상(保福和尙)이 이미 천화(遷化)했습니다. 사왈(師曰) 보복은 천화하고 지장(地藏)은 입탑(入塔)했다중이 法眼에게 묻되 古人意旨가 무엇입니까. 법안이 이르되 蒼天 蒼天. 후에 왕공(王公)이 설봉에 올라 중승(衆僧)의 옷을 보시할 때 종엄(從弇) 상좌란 자가 있었는데 부재(不在)했고 사제(師弟)가 있어 대신(代身) 이름을 올리고(上名) 옷을 받았다. 종엄이 돌아오자 사제가 가로되 모갑이 사형을 위해 이름을 올렸습니다. 엄왈(弇曰) 네가 말하라, 나의 이름이 무엇인가. 사제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운(代云) 사형은 이렇게 탐()함을 얻었습니까. 우운(又云) 어느 곳이 이 탐한 곳인가. 스님이 또 대운(代云) 두 차례(兩度) 이름을 올렸다雲居錫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弇上坐가 두 차례 이름을 올린 곳인가. 스님이 장경(長慶), 보복(保福)과 더불어 입주(入州)했다가 모란장자(牡丹障子)를 보았다. 보복이 이르되 아름다운 한 떨기의 모란화(牡丹花). 장경이 이르되 안화(眼花)하지 말아라. 사왈 가석하다(可惜許), 한 떨기의 꽃이여玄覺이 이르되 三尊宿의 말에 도리어 親疎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只如 羅漢의 이러한 말이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스님이 중에게 묻되 네가 초경(招慶)에 있으면서 무슨 이문(異聞)의 일이 있었는지 시험 삼아 들어보아라(擧看). 승왈(僧曰) 감히 착거(錯擧)하지 못합니다. 사왈 진실한 일을 어떻게 들겠는가. 승왈 화상이 무엇 때문에(因什麽) 이와 같습니까. 사왈 너는 화타(話墮)했다. 중승(衆僧)이 만참(晩參)에 각성(角聲)을 들었다. 사왈 라한(羅漢)3일에 한 차례 상당하고 왕태부(王太傅)는 이시(二時)에 상조(相助)한다.

障子; 병장(屛障; 안팎을 가려 막는 물건. 담이나 , 병풍 따위).

角聲; 화각(畫角)의 소리니 고대 군중(軍中)에서 취각(吹角)하여 혼명(昏明)의 시절로 삼았음.

 

僧問 如何是學人本來師 曰 是心汝本來心 僧問 師居寶座說法度人 未審度什麽人 師曰 汝也居寶座度什麽人 僧問 鏡裏看形見不難 如何是鏡 師曰 還見形麽 僧問 但得本莫愁末 如何是末 師曰 總有也 師因疾 僧問 和尙尊候較否 師以杖拄地曰 汝道遮箇還痛否 僧曰 和尙問阿誰 師曰 問汝 僧曰 還痛否 師曰 元來共我作道理 師後唐天成三年戊子秋 復屆閩城舊止 遍遊近城梵宇已 俄示疾數日安坐告終 壽六十有二 臘四十 荼毘收舍利建塔于院之西隅 稟遺敎也 淸泰二年乙未十二月望日入塔 諡曰眞應禪師

舊止; 舊時居止處

 

승문(僧問) 무엇이 이 학인의 본래사(本來師)입니까. 가로되 이 마음이 너의 본래 마음이다. 승문 스님이 보좌(寶座)에 거처하며 설법해 사람을 제도하거니와 미심하오니 어떤 사람을 제도합니까. 사왈(師曰) 너도 또한 보좌게 거처하며 어떤 사람을 제도하느냐. 승문 거울 속에서 형상(形相)을 보면 보기가 어렵지 않다(증도가의 1) 하니 무엇이 이 거울입니까. 사왈 도리어 형상을 보느냐. 승문 단지 본()을 얻고 말()을 수심하지 말라(증도가의 1) 하니 무엇이 이 말()입니까. 사왈 모두 있다(總有也). 스님이 질병으로 인해 승문 화상의 존후(尊候)가 어긋났습니까(較否). 스님이 주장자로써 땅을 버티며 가로되 네가 말하라 이것은 도리어 아픈가. 승왈(僧曰) 화상은 누구에게 묻습니까. 사왈 너에게 묻는다. 승왈 도리어 아픕니까. 사왈 원래 나와 함께 도리를 지었구나. 스님이 후당 천성(天成) 3년 무자(戊子; 928) 가을 다시 민성(閩城)의 구지(舊止)에 이르렀고() 근성(近城)의 범우(梵宇; 佛寺)를 편유(遍遊)했다. 갑자기() 질병을 보이더니 며칠 만에 안좌(安坐)하여 고종(告終)했다. 나이는 62며 납은 40이다. 다비(荼毘)하여 사리를 거두어 사원의 서쪽 모퉁이에 건탑(建塔)했으니 유교(遺敎)를 품수(稟受)했음이다. 청태(淸泰) 2년 을미(乙未; 935) 12월 망일(望日) 입탑했다. 시왈(諡曰) 진응선사(眞應禪師).

舊止; 구시의 거지처(居止處).

 

福州臥龍山安國院慧球寂照禪師第二世住 亦曰中塔 泉州莆田人也 龜洋山出家 玄沙室中參訊居首 因問 如何是第一月 玄沙曰 用汝箇月作麽 師從此悟入 梁開平二年玄沙將示滅 閩帥王氏遣子至問疾 仍請密示繼踵說法者誰乎 玄沙曰 球子得 王氏默記遺旨 乃問鼓山國師曰 臥龍法席孰當其任 鼓山擧城下宿德 具道眼者十有二人 皆堪出世 王氏亦默之 至開堂日官寮與僧侶俱會法筵 王氏忽問衆曰 誰是球上座 於是衆人指出師 王氏便請陞座 師良久謂衆曰 莫嫌寂寞 莫道不堪 未詳涯際作麽生論量 所以尋常用其音響 聊撥一兩下 助他機發道 盡十方世界覓一人爲伴侶不可得 僧問 佛法大意從何方便頓入 師曰 入是方便 問雲自何山起 風從何㵎生 師曰 盡力施爲不離中塔

宿德; 老宿之有道德者

 

복주(福州) 와룡산(臥龍山) 안국원(安國院) 혜구(慧球) 적조선사(寂照禪師)第二世住 亦曰中塔. 천주(泉州) 보전(莆田) 사람이다. 귀양산(龜洋山)에서 출가했고 현사의 실중(室中)에서 참신(參訊; 參問)하며 수위(首位)에 거처했다. 인하여 묻되 무엇이 이 제1(第一月)입니까. 현사가 가로되 너의 저() 달을 써서 무엇하겠느냐. 스님이 이로 좇아 오입(悟入)했다. () 개평(開平) 2(908) 현사가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자 민수(閩帥) 왕씨(王氏)가 아들을 보내 이르러 문질()問疾하게 했는데 인하여() 계종(繼踵)하여 설법할 자가 누구인지 밀시(密示)하기를 청했다. 현사가 가로되 구자(球子; 는 남자의 通稱)가 얻습니다. 왕씨가 유지(遺旨)를 묵기(默記)했다. 이에 고산국사(鼓山國師)에게 물어 가로되 와룡(臥龍)의 법석은 누가() 그 직임(職任)에 적당합니까. 고산이 성하(城下)의 숙덕(宿德)을 열거(列擧)하며 도안(道眼)을 갖춘 자가 12인이며 모두 출세를 감당(堪當)한다 하였다. 왕씨가 또한 묵연했다. 개당일(開堂日)에 이르러 관료(官寮)와 승려가 모두 법연(法筵; 법회)에 모였다. 왕씨가 홀연히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누가 이 구상좌(球上座)입니까. 이에 중인(衆人)이 스님을 가리켜 내었다. 왕씨가 승좌를 바로 청했다. 스님이 양구(良久)하고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적막(寂寞)을 싫어하지() 말며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지 말라. 애제(涯際; 邊際)가 상세(詳細)하지 못하면 어떻게 논량(論量)하겠는가. 소이로 심상(尋常)에 그 음향을 써서 애오라지 한 두 번(一兩下) 다스리매() 타기(他機)를 도와 발도(發道)하게 하거니와 온 시방세계에 1인을 찾아 반려(伴侶)로 삼으려고 해도 불가득이다. 승문(僧問) 불법의 대의(大意)는 어떤 방편을 좇아야 돈입(頓入)합니까. 사왈(師曰) ()이 이 방편이다. 묻되 구름은 어떤 산으로부터 일어나며 바람은 어떤 개울()로 좇아 생겨납니까. 사왈 힘을 다해 시위(施爲)해도 중탑(中塔)을 여의지 못한다.

宿德; 노숙(老宿)하면서 도덕이 있는 자.

 

師上堂謂衆曰 我此間粥飯因緣 爲兄弟擧唱 終是不常 欲得省要 却是山河大地與汝發明 其道旣常亦能究竟 若從文殊門入者 一切無爲土木瓦礫助汝發機 若從觀音門入者 一切音響蝦蟇蚯蚓助汝發機 若從普賢門入者 不動步而到 我以此三門方便示汝 如將一隻折箸攪大海水 令彼魚龍知水爲命 會麽 若無智眼而審諦之 任汝百般巧妙不爲究竟 僧問 學人近入叢林不明己事乞師指示 師以杖指之曰 會麽 曰不會 師曰 我恁麽爲汝却成抑屈人 還知麽 若約當人分上 從來底事不論初入叢林 及過去諸佛不曾乏少 如大海水 一切魚龍初生及至老死 所受用水悉皆平等 問不謬正宗請師眞實 師曰 汝替我道 僧曰 或有不辨者作麽生 師曰 待不辨者來 問諸佛還有師否 師曰有 僧曰 如何是諸佛師 師曰 一切人識不得

省要; 省察要領

審諦; 仔細考察或觀察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나의 차간(此間)의 죽반인연(粥飯因緣)은 형제를 위해 거창(擧唱)함이니 마침내 이 불상(不常; 尋常이 아님)이다. 성요(省要)를 얻고자 한다면 도리어 이 산하대지가 너희에게 발명(發明)하여 주나니 그 도가 이미 상(; 恒常)인지라 또한 능히 구경(究竟)이다. 만약 문수문(文殊門)으로 좇아 드는 자면 일체가 무위(無爲)니 토목(土木)과 와력(瓦礫)이 너의 발기(發機)를 도우고 만약 관음문(觀音門)으로 좇아 드는 자면 일체의 음향이니 두꺼비(蝦蟇)와 지렁이(蚯蚓)가 너의 발기를 도우고 만약 보현문(普賢門)으로 좇아 드는 자면 걸음을 움직이지 않고 이른다(). 내가 이 3()의 방편으로써 너희에게 보이나니 마치 1()의 부러진 젓가락을 가지고 대해수(大海水)를 휘저어() 그 어룡(魚龍)으로 하여금 물이 목숨이 되는 줄 알게 함과 같다. 아느냐. 만약 지안(智眼)이 없거든 그것을 심체(審諦)할지니 너희의 백반(百般)의 교묘(巧妙)에 맡기더라도 구경(究竟)이 되지 않는다. 승문(僧問) 학인이 최근에 총림에 든지라 기사(己事)를 밝히지 못했으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스님이 주장자로써 가리키며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내가 이렇게 너를 위함이 도리어 사람을 억굴(抑屈; 억압하여 屈從시킴)함을 이루나니 도리어 아느냐. 만약 당인(當人)의 분상(分上)을 대약(大約)하자면 종래(從來)의 일은 총림에 초입(初入)함을 논하지 않으며 및 과거 제불도 일찍이 핍소(乏少)하지 않았다. 마치 대해수의 일체 어룡(魚龍)이 초생(初生)했거나 및 노사(老死)에 이르기까지 수용(受用)하는 바의 물이 모두 다 평등함과 같다. 묻되 정종(正宗)을 그르치지() 않고 스님의 진실을 청합니다. 사왈 네가 나를 대체(代替)하여 말하라. 승왈(僧曰) 혹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어떻습니까. 사왈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옴을 기다린다. 묻되 제불이 도리어 스승이 있습니까. 사왈 있다. 승왈 무엇이 이 제불의 스승입니까. 사왈 일체인이 앎을 얻지 못한다.

省要; 성찰하는 요령(要領).

審諦; 자세히 고찰(考察)하거나 혹 관찰함.

 

師上堂良久 有僧出禮拜 師曰 莫敎髑髏拶損 問如何是靈山會上事 師曰 少得靈利底 僧曰 忽遇靈利底作麽生 師曰 遮懵懂漢 師上堂示衆曰 諸人若要商量 向髑髏後通取消息來相共商量 遮裏不曾障人光明 問從上宗乘事如何 師良久 僧再問 師便喝出 問如何是大庾嶺頭事 師曰 料汝承當不得 僧曰 重多少 師曰 遮般底論劫不奈何 師問了院主 只如先師道 盡十方世界是眞實人體 爾還見僧堂麽 了曰 和尙莫眼花 師曰 先師遷化肉猶暖在 師梁乾化三年癸酉八月十七日 不疾而逝

大庾嶺頭事; 指參禪悟法之事

 

스님이 상당하여 양구(良久)했다. 어떤 중이 나와서 예배했다. 사왈(師曰) 촉루(髑髏)로 하여금 찰손(拶損; 逼迫하여 損傷)하게 하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일입니까. 사왈 영리한 이(靈利底)를 적게 얻는다. 승왈(僧曰) 홀연히 영리한 이를 만나면 어떻습니까. 사왈 이 몽동한(懵懂漢; 漢字 補入). 스님이 상당하여 시중해 가로되 제인이 만약 상량(商量)을 요한다면 촉루(髑髏) 뒤를 향해 소식(消息)을 통취(通取)해 와야 서로 함께 상량하리니 이 속(遮裏)에선 일찍이 사람의 광명을 장애하지 않았다. 묻되 종상(從上)의 종승사(宗乘事)가 어떻습니까. 스님이 양구했다. 중이 재문(再問)하자 스님이 바로 할()하고 쫓아내었다. 묻되 무엇이 이 대유령두사(大庾嶺頭事)입니까. 사왈 사료(思料)컨대 너는 승당(承當)함을 얻지 못한다. 승왈 무게가 얼마입니까. 사왈 이러한 것들(遮般底)은 논겁(論劫)에도 어찌하지 못한다. 스님이 요원주(了院主)에게 묻되 지여(只如) 선사(先師)가 말씀하되 온 시방세계가 이 진실한 사람의 체(). 네가 도리어 승당(僧堂)을 보느냐. 요왈(了曰) 화상은 안화(眼花)하지 마십시오. 사왈 선사가 천화(遷化)했지만 육신(肉身)은 오히려 따뜻하다. 스님이 양() 건화(乾化) 3년 계유(癸酉; 913) 817일 질병 없이 서거했다.

大庾嶺頭事; 참선하여 오법(悟法)하는 일을 가리킴.

 

杭州天龍寺重機明眞大師 台州黃巖人也 自玄沙得法迴入浙中 錢武肅王請說法住持 上堂示衆曰 若直擧宗風 獨唱本分事 便同於頑石 若言絕凡聖消息 無大地山河 盡十方世界都是一隻眼 此乃事不獲已恁麽道 所以常說 盲聾瘖瘂是僊陀 滿眼時人不奈何 只向目前須體妙 身心萬象與森羅 僧問 如何是璿璣不動 師曰 靑山數重 僧曰 如何是寂爾無根 師曰 白雲一帶 問如何是歸根得旨 師曰 兔角生也 僧曰 如何是隨照失宗 師曰 龜毛落也 問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誰人不知有 僧曰 出水後如何 師曰 馨香目擊 問朗月輝空時如何 師曰 正是分光景 何消指玉樓

錢武肅王; 錢鏐(852-932) 五代吳越王公 字具美 錢塘(浙江杭州)人 梁太祖封吳越王 在位二十四年 少時無賴 每乞於僧 僧輒予之 僧勸學 乃立志 後爲王 禮敬三寶 衛護法門 子孫繼之 五代間 浙地佛法因而獨盛 [佛祖統紀十 佛法金湯編十 宋史四八]

頑石; 堅硬之石 頑 堅强 堅硬

僊陀; 同仙陀 仙陀婆之略 機靈 機靈者 亦作先陀

 

항주(杭州) 천룡사(天龍寺) 중기(重機) 명진대사(明眞大師). 태주(台州) 황암(黃巖) 사람이다. 현사로부터 득법하고 절중(浙中)으로 회입(迴入)하자 전무숙왕(錢武肅王)의 청으로 설법하고 주지했다. 상당하여 시중해 가로되 만약 종풍을 직거(直擧)하고 본분사를 독창(獨唱)한다면 바로 완석(頑石)과 같을 것이며 만약 범성(凡聖)이 끊어진 소식을 말한다면 대지산하가 없어져 온 시방세계가 모두() 이 일척안(一隻眼)이리라. 이것은 이에 사불획이(事不獲已)하여 이렇게 말함이니 소이로 상설(常說)하되 맹롱음아(盲聾瘖瘂; 맹인, 귀머거리. 벙어리)가 이 선타(僊陀)/ 눈에 가득하지만 시인(時人)이 어찌하지 못한다/ 다만 목전을 향해 꼭 체묘(體妙; 묘함을 체득)할지니/ 신심(身心)이 만상(萬象)과 삼라(森羅).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선기(璿璣)가 동()하지 않음입니까. 사왈(師曰) 청산이 몇 겹이다. 승왈(僧曰) 무엇이 이 적이(寂爾; 寂然)하여 무근(無根)입니까. 사왈 백운이 일대(一帶). 묻되 무엇이 이 귀근(歸根)하여 득지(得旨)함입니까. 사왈 토각(兔角)이 생겨났다. 승왈 무엇이 이 비춤을 따라 종()을 잃음입니까. 사왈 귀모(龜毛)가 떨어졌다. 묻되 연화(蓮華)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떤 사람(誰人)이 지유(知有)하지 못하느냐. 승왈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형향(馨香)을 목격(目擊)한다. 묻되 낭월(朗月)이 허공에 빛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바로 이 광경(光景)을 나누거늘 어찌 옥루(玉樓)를 가리킴을 소비하겠는가.

錢武肅王; 전류(錢鏐; 852-932) 오대 오월(吳越)의 왕공(王公). 자는 구미며 전당(절강 항주) 사람. 양태조(梁太祖)가 오월왕(吳越王)으로 봉했고 재위는 24. 소시(少時)에 무뢰(無賴)였고 매번 승인에게 구걸했는데 승인이 번번이 그에게 주었고 승인이 권학(勸學)하자 이에 입지(立志)하여 후에 왕이 되었음. 3()를 예경했고 법문을 위호(衛護)했으며 자손도 이를 승계했음. 오대 간 절지(浙地)의 불법이 이로 인해 유독 성했음 [불조통기10. 불법금탕편10. 송사480].

頑石; 견경(堅硬)한 돌. ()은 견강(堅强), 견경(堅硬).

僊陀; 선타(仙陀)와 같음. 선타바(仙陀婆)의 약칭이니 기령(機靈)ㆍ기령자. 또한 선타(先陀)로 지음.

 

福州僊宗院契符淸法大師 初開堂日有僧問 師登寶座合談何事 師曰 剔開耳孔著 僧曰 古人爲什麽道非耳目之所到 師曰 金櫻樹上不生梨子 僧曰 古今不到處請師道 師曰 汝作麽生問 問衆手淘金誰是得者 師曰 擧手隔千里 休功任意看 問飛岫巖邊華子秀 仙境臺前事若何 師曰 無價大寶光中現 暗客惛惛爭奈何 僧曰 優曇華拆人皆覩 向上宗乘意若何 師曰 闍梨若問宗乘意 不如靜處薩婆訶 問如何是大閩國中諸佛境界 師日 造化終難測 春風徒自輕 問如何是道中寶 師曰 雲孫淚亦垂 問諸聖收光歸源後如何 師曰 三聲猿屢斷 萬里客愁聽 僧曰 未審今時人如何湊得古人機 師曰 好心向子道 切忌未生時

梨子; 梨樹的果實

華子; 花子 卽花 子 後綴

靜處薩婆訶; 謂淸靜參究可獲悟道之效果 薩婆訶 梵語音譯 譯爲吉祥 成就 薩婆訶; <> svāhā 或云僧莎訶 娑婆訶 蘇婆訶 娑縛賀 僧婆訶 此翻云究竟 圓滿 成就 吉祥 息災 憶念 爲眞言密咒中最後所附之語句 亦是古來印度在供神時 祈求幸福吉祥所唱念之讚歎語 心經略疏 薩婆訶者 此云速疾 令前所作速疾成就故也

雲孫; 世代很遠的子孫 言去已遠如浮雲也

 

복주(福州) 선종원(僊宗院) 계부(契符) 청진대사(淸法大師). 처음 개당일에 어떤 중이 묻되 스님이 보좌(寶座)에 올라 합당히 무슨 일을 얘기합니까. 사왈(師曰) 귓구멍을 후벼 열어라(剔開). 승왈(僧曰) 고인이 무엇 때문에 말하되 이목(耳目)의 이를 바가 아니라 했습니까. 사왈 금 앵두 나무 위에 이자(梨子)가 나지 않는다. 승왈 고금(古今)이 이르지 않는 곳을,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네가 어떻게 물었는가. 묻되 뭇 손이 금을 일면()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 거수(擧手)하면 천 리()에 막히나니 공()을 쉬고 뜻에 맡겨 보아라. 묻되 비수암(飛岫巖) 가에 화자(華子)가 빼어나거니와 선암대(仙境臺) 앞의 일이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무가대보(無價大寶)가 광중(光中)에 나타났거늘 암객(暗客)이 혼혼(惛惛; 매우 흐릿함)하니 어찌하겠는가. 승왈 우담화(優曇華)가 터져 사람이 모두 보거니와 향상(向上宗乘)의 뜻이 어떠합니까(若何). 사왈 사리(闍梨)가 만약 종승의 뜻을 묻는다면 정처의 살바하(靜處薩婆訶)만 같지 못하다. 묻되 무엇이 이 대민국(大閩國) 가운데의 제불경계입니까. 사왈 조화(造化)는 마침내 헤아리기 어렵거늘 춘풍이 도연히 스스로 가볍다. 묻되 무엇이 이 도중보(道中寶)입니까. 사왈 운손(雲孫)이 눈물을 또한 쏟는다(). 묻되 제성(諸聖)이 수광(收光)하여 귀원(歸源)한 후에 어떻습니까. 사왈 삼성(三聲)의 원숭이는 자주 끊어지는데 만 리에 객이 수심하며 듣는다. 승왈 미심하오니 금시의 사람이 어찌해야 고인의 기()에 다가섬()을 얻습니까. 사왈 호심(好心)으로 자네를 향해 말하나니 나지 않은 때를 절기(切忌)하라.

梨子; 배나무의 과실.

華子; 화자(花子)와 같음. 곧 화()니 자()는 후철(後綴).

靜處薩婆訶; 이르자면 청정(淸靜)하게 참구해야 가히 오도의 효과를 획득함. 살바하(薩婆訶; svāhā)는 범어의 음역이니 번역하면 길상ㆍ성취. 薩婆訶; <> svāhā. 혹 이르되 승사하(僧莎訶)ㆍ사바하(娑婆訶)ㆍ소바하(蘇婆訶)ㆍ사바하(娑縛賀)ㆍ승바하(僧婆訶)며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구경ㆍ원만ㆍ성취ㆍ길상ㆍ식재(息災)ㆍ억념이니 진언의 밀주(密咒) 중 최후에 붙이는 어구가 됨. 또한 이는 고래로 인도에서 신에게 공양할 때 행복과 길상을 기구(祈求)하면서 부르고 외우는() 바의 찬탄어임. 심경약소. 살바하(薩婆訶)란 것은 여기에선 이르되 속질(速疾)이다. 앞의 소작(所作; 지은 것)으로 하여금 속질로 성취하게 함인 연고다.

雲孫; 세대가 매우 먼 자손. 말하자면 떨어짐이 이미 멀어 부운과 같음임.

 

婺州金華山國泰院瑫禪師 上堂曰 不離當處咸是妙明眞心 所以玄沙和尙道 會我最後句 出世少人知 爭似國泰有末頭一句 僧問 如何是國泰末頭一句 師曰 闍梨問太遲生 問如何是毘盧師 師曰 專甲與老兄是弟子 問達磨來唐土卽不問 如何是未來時事 師曰 親遇梁王 問古鏡未磨時如何 師曰 古鏡 僧曰 磨後如何 師曰 古鏡

末頭; 同末上 最初

專甲; 同某甲 厶甲 按唐五代時期 厶旣是某字的俗簡體 又是專字的俗簡體 有些書手因將甲轉寫作專甲 專甲使用旣多 遂成了約定俗成的文獻詞

 

무주(婺州) 금화산(金華山) 국태원(國泰院) 도선사(瑫禪師). 상당하여 가로되 당처(當處)를 여의지 않고 모두() 이 묘명진심(妙明眞心)이다. 소이로 현사화상이 말하되 나의 최후구(最後句)를 알아야 출세(出世; 출세간)라 아는 사람이 적다 했거니와 국태(國泰)에게 말두(末頭)1구가 있음과 어찌 같겠는가. 승문(僧問) 무엇이 이 국태의 말두의 1구입니까. 사왈(師曰) 사리(闍梨)의 물음(; 저본에 으로 지었음)이 너무 더디다(太遲生). 묻되 무엇이 이 비로(毘盧)의 스승입니까. 사왈 전갑(專甲)과 노형(老兄)은 이 제자다. 묻되 달마가 당토(唐土)에 옴음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오지 않은 때의 일입니까. 사왈 친히 양왕(梁王)을 만났다. 묻되 고경(古鏡)을 갈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고경이다. 승왈(僧曰) 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고경이다.

末頭; 말상(末上)과 같음. 최초임.

專甲; 모갑(某甲)ㆍ모갑(厶甲)과 같음. 안험컨대 당 오대 시기에 모()가 이미 이 모자(某字)의 속간체(俗簡體)였고 또 이 전자(專字)의 속간체였음. 어떤 사소한 서수(書手)는 인하여 갑()을 가지고 전사(轉寫)하면서 전갑(專甲)으로 지었음. 전갑(專甲)의 사용이 이미 많아지자 드디어 약정(約定)의 속성(俗成)의 문헌사(文獻詞)로 이루어졌음.

 

衡嶽南臺誠禪師 僧問 玄沙宗旨請師擧揚 師曰 什麽處得此消息 僧曰 垂接者何 師曰 得人不迷己 問潭淸月現是何人境界 師曰 不干爾事 僧曰 相借問又何妨 師曰 覓潭月不可得 問離地四指爲什麽却有魚紋 師曰 有聖量在 僧曰此量爲什麽人施 師曰 不爲聖人

垂接; 謂地位高的人接待地位低的人

聖量; 聖賢的商量或度量

 

형악(衡嶽) 남대성(南臺誠) 선사. 승문(僧問) 현사의 종지를, 스님의 거양(擧揚; 擧說. 闡揚)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어느 곳에서 이 소식을 얻었느냐. 승왈(僧曰) 수접(垂接)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사람을 얻으면 자기를 미()하지 않는다. 묻되 청담(潭淸)에 달이 나타나면 이 어떤 사람의 경계입니까. 사왈 너()의 일에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승왈 서로 차문(借問)함에 또 어찌 방애(妨礙)되겠습니까. 사왈 담월(潭月)을 찾으면 불가득이다. 묻되 땅을 4() 여의고 무엇 때문에 도리어 어문(魚紋)이 있습니까. 사왈 성량(聖量)이 있어서이다. 승왈 차량(此量)은 어떤 사람을 위해 베풉니까. 사왈 성인(聖人)을 위함이 아니다.

垂接; 이르자면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위가 낮은 사람을 접대(接待).

聖量; 성현의 상량(商量) 혹 탁량(度量).

 

福州升山白龍院道希禪師 福州閩縣人也 師上堂曰 不要擧足是誰威光 還會麽 若道自家去處本自如是 且喜勿交涉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汝從什麽處來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汝早禮三拜 問不責上來請師直道 師曰得 問如何是正眞道 師曰 騎驢覓驢 問請師答無賓主話 師曰 昔年曾記得 僧曰 卽今如何 師曰 非但耳聾亦兼眼暗 問情忘體合時如何 師曰 別更夢見箇什麽 問學人擬申一問請師裁 師曰 不裁 僧曰 爲什麽不裁 師曰 須知好手 問大衆雲集請師擧揚宗敎 師曰 少過聽者 問不涉脣鋒乞師指示 師曰 不涉脣鋒問將來 僧曰 恁麽卽群生有賴 師曰 莫閑言語 問請和尙生機答話 師曰 把紙筆來錄將去 問如何是思大口 師曰 出來向爾道 僧曰 學人卽今見出 師曰 曾賺幾人來 問承古人有言 髑髏常干世界 鼻孔毛觸家風 如何是髑髏常干世界 師曰 近前來向爾道 僧曰 如何是鼻孔毛觸家風 師曰 退後去別時來

生機; 生存的契機 生存的希望 指有生命力

思大口; 南岳尊者慧思 從陳帝受大禪師之號 因云思大 更尊而云思大禪師 或云思大和尙 [佛祖統紀六]. 聯燈會要二十九南岳慧思 因誌公令人傳語云 何不下山敎化衆生 目視雲漢 作甚麽 師云 三世諸佛被我一口呑盡 何處更有衆生可化

 

복주(福州) 승산(升山) 백룡원(白龍院) 도희선사(道希禪師). 복주 민현(閩縣)사람이다.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거족(擧足)을 요하지 않나니 이 누구의 위광(威光)인가, 도리어 아느냐. 만약 말하되 자가(自家)의 거처(去處)가 본디 스스로 이와 같다 하면 다만(; 저본에 로 지었음) 교섭이 없음을 기뻐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너는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네가 일찍() 3() 예배하라. 묻되 올라옴(上來)을 책망하지 말고 스님의 곧장() 말씀하심을 청합니다. 사왈 얻었다. 묻되 무엇이 이 정진도(正眞道)입니까. 사왈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구나. 묻되 스님에게 청하오니 무빈주화(無賓主話)에 답하십시오. 사왈 석년(昔年)에 일찍이 기득(記得)했다. 승왈(僧曰) 즉금은 어떻습니까. 사왈 단지 귀만 먹은 게 아니라 겸해 눈도 어둡다. 묻되 정()을 잊고 체()에 합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달리 다시 꿈에 저() 무엇을 보느냐. 묻되 학인이 일문(一問)을 펴려고 하니 스님의 재단(裁斷; )을 청합니다. 사왈 재단하지 않겠다. 승왈 무엇 때문에 재단하지 않습니까. 사왈 호수(好手)임을 수지(須知)하라. 묻되 대중이 운집했으니 청컨대 스님이 종교(宗敎; 宗門敎意)를 거양(擧揚)하십시오. 사왈 청자(聽者)를 조금 초과한다. 묻되 순봉(脣鋒; 입술을 칼날에 비유했음)에 건너지 않고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순봉에 건너지 않고 물어 가져 오너라. 승왈 이러하다면 군생(群生)이 신뢰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쓸데없는 언어를 하지 말아라. 묻되 화상에게 청하오니 생기(生機)로 답화(答話)하십시오. 사왈 지필(紙筆)을 가지고() 와서 기록해 가져 가거라. 묻되 무엇이 이 사대의 입(思大口)입니까. 사왈 나와서 너를 향해 말한다. 승왈 학인이 즉금 나옴을 봅니다. 사왈 일찍이 몇 사람이나 속여() 왔느냐. 묻되 듣건대() 고인이 말씀이 있기를 촉루(髑髏)가 상간(常干)하는 세계며 비공(鼻孔)이 모촉(毛觸; 여러 선록에 모두 摩觸으로 지었음)하는 가풍이다. 무엇이 이 촉루가 상간하는 세계입니까. 사왈 앞으로 다가온다면 너를 향해 말하겠다. 승왈 무엇이 이 비공이 모촉(毛觸; 여러 선록에 모두 摩觸으로 지었음)하는 가풍입니까. 사왈 뒤로 물러갔다가 다른 때 오너라.

生機; 생존의 계기(契機). 생존의 희망. 생명력이 있음을 가리킴.

思大口; 남악존자 혜사(慧思)가 진제(陳帝)로부터 대선사의 호를 받았으며 인하여 이르되 사대(思大)며 다시 존칭하여 이르되 사대선사 혹은 이르되 사대화상임 [불조통기6]. 연등회요29 남악혜사. 지공(誌公)이 사람을 시켜 말을 전해 이르되 왜 하산하여 중생을 교화하지 않고 눈으로 운한(雲漢)을 보아서 무엇하리오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삼세제불도 내가 한입에 삼켜 없앰을 입었거늘(被我一口呑盡) 어느 곳에 다시 중생이 있어 가히 교화하겠는가.

 

福州螺峯沖奧明法大師 先住白龍 師上堂曰 人人具足人人成見 爭怪得山僧 珍重 僧問 諸法寂滅相 不可以言宣 如何是寂滅相 師曰 問答俱備 僧問 恁麽卽眞如法界無自無他 師曰 特地令人愁 問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德重鬼神欽 曰見後如何 師曰 通身聖莫測 問如何是螺峯一句 師曰苦 問如何是本來人 師曰 惆悵松蘿境界危

 

복주(福州) 나봉(螺峯) 충오(沖奧) 명법대사(明法大師). 먼저 백룡(白龍)에 주()했다.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사람마다 구족했고 사람마다 성견(成見; 견해를 이루다)했거늘 어찌 산승을 괴이히 여김을 얻겠는가.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제법의 적멸상(寂滅相)은 가히 언어로써 선양(宣揚)하지 못한다(이상 2구는 법화경1에 나옴). 무엇이 이 적멸상입니까. 사왈(師曰) 문답에 구비(俱備)했다. 승문 이러하다면 곧 진여의 법계에 자기도 없고 타인도 없습니다(無自無他). 사왈 특지(特地) 사람으로 하여금 수심케 하네.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덕이 중후(重厚; )하면 귀신도 흠복(欽服; )한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온몸(通身)을 성인(聖人; )도 헤아리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나봉(螺峯)1구입니까. 사왈 괴롭다(). 묻되 무엇이 이 본래인(本來人)입니까. 사왈 송라(松蘿)의 경계가 위태함을 추창(惆悵)한다.

泉州睡龍山和尙 僧問 如何是觸目菩提 師以杖趁之 僧乃走 師曰 住住向後遇作家擧看 師上堂擧拄杖云 三十年住山 得此拄杖氣力 時有僧問 和尙得他什麽氣力 師曰 過谿過嶺東拄西拄招慶聞云 我不恁麽道 僧問 和尙作麽生道 招慶以杖下地拄行

 

천주(泉州) 수룡산(睡龍山) 화상. 승문(僧問) 무엇이 이 촉목보리(觸目菩提)입니까. 스님이 주장자로써 쫓아내었다(趁之). 중이 이에 달아나자 사왈(師曰) 멈추어라(), 멈추어라. 향후에 작가를 만나면 들어보아라(擧看). 스님이 상당하여 주장자를 들고 이르되 30년 주산(住山)하면서 이 주장자의 기력(氣力)을 얻었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화상은 그의 어떤 기력을 얻었습니까. 사왈 시내를 지나고 고개를 지나면서(過谿過嶺) 동쪽으로 짚고() 서쪽으로 짚었다招慶이 듣고 이르되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겠다. 僧問 화상은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초경이 주장자를 써서 땅에 내려가 짚고 갔다.

 

天台山雲峯光緒至德大師 上堂曰 但以衆生日用而不知 譬如三千大千世界 日月星辰 江河淮濟 一切含靈 從一毛孔入一毛孔 毛孔不小世界不大 其中衆生不覺不知 若要易會 上坐日用亦復不知 僧問 日裏僧馱像 夜裏像馱僧 未審此意如何 師曰 闍梨豈不是從茶堂裏來

淮濟; 淮河濟水的合稱 爾雅釋水第十二 江 河 淮 濟爲四瀆 四瀆者 發源注海者也

 

천태산(天台山) 운봉(雲峯) 광서(光緒) 지덕대사(至德大師). 상당하여 가로되 단지 중생이 일용(日用)하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여(譬如) 삼천대천세계의 일월성신(日月星辰)과 강하회제(江河淮濟)와 일체의 함령(含靈)1모공(毛孔)으로 좇아 1모공으로 들어가나니 모공이 작지 않고 세계가 크지 않으며 그 가운데의 중생이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만약 쉽게 알고자 한다면 상좌가 일용하면서 또한 다시 알지 못함이다. 승문(僧問) 일리(日裏)에 승()이 상()을 타고() 야리(夜裏)에 상()이 승()을 탄다. 미심하오니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師曰) 사리(闍梨j)는 어찌 이, 다당(茶堂) 속으로 좇아오지 않았겠느냐.

淮濟; 회하(淮河)와 제수(濟水)의 합칭. 이아 석수(釋水) 12. ()ㆍ하()ㆍ회()ㆍ제()4()이 된다. 4독이란 것은 발원하여 바다에 주입하는 것이다.

 

福州大章山契如庵主 福州永泰人也 泉州百丈村兜率院受業 素蘊孤操志探祖道 預玄沙之室穎悟幽旨 玄沙記曰 子禪已逸格 則他後要一人侍立也無 師自此不務聚徒不畜童侍 隱于小界山 刳大朽杉若小庵但容身而已 凡經遊僧至 隨叩而應 無定開示 僧問 生死到來如何迴避 師曰 符到奉行 曰恁麽卽被生死拘將去也 師曰 阿邪邪 問西天持錫意作麽生 師拈錫杖卓地振之 僧曰 未審此是什麽義 師曰 遮箇是張家打 僧擬進語 師以錫攛蒼巒切

逸格; 超逸的格調

阿邪邪; 他本作阿耶耶 嘆詞 表感嘆 疼痛等

錫杖; 略稱錫或杖 梵語隙棄羅 喫棄羅 又作聲杖 有聲杖 智杖 德杖 鳴杖 金錫 比丘十八物之一 翻譯名義集七 隙棄羅 此云錫杖 由振時作錫錫聲故 十誦名聲杖 錫杖經又名智杖 亦名德杖 彰智行功德故 聖人之幖幟 賢士之明記道法之幢 根本雜事云 比丘乞食 深入長者之家 遂招譏謗 比丘白佛 佛云 可作聲警覺 彼卽呵呵作聲喧鬧 復招譏毁 佛制不聽 遂拳打門 家人怪問 何故打破我門 默爾無對 佛言 應作錫杖 苾芻不解 佛言 杖頭安鐶圓如醆口 安小鐶子 搖動作聲而爲警覺 動可一二 無人聞時 卽須行去 五百問論 持錫有多事 能警惡蟲毒獸等 義淨云 錫杖都有三分 上分是錫 中木 下或牙角也 若二股六鐶是迦葉佛製 若四股十二鐶是釋迦佛製

 

복주(福州) 대장산(大章山) 계여암주(契如庵主). 복주 영태(永泰) 사람이다. 천주(泉州) 백장촌(百丈村) 도솔원(兜率院)에서 수업(受業)했고 본디() 고조(孤操)를 간직했고() 의지(意志)가 조도(祖道)를 탐구(探究)했다. 현사의 실(; 저본에 으로 지었음)에 참예(參預)하여 유지(幽旨)를 영오(穎悟)했다. 현사가 기(; 예언)하여 가로되 자네는 선()이 이미 일격(逸格)이나 곧 타후(他後)에 시립(侍立)할 한 사람을 요하더라도 또한 없으리라. 스님이 이로부터 취도(聚徒)에 힘쓰지 않고 동시(童侍)를 기르지() 않았다. 소계산(小界山)에 은거하며 거대한 후삼(朽杉; 늙은 나무)을 파서() 소암(小庵)과 같았고 단지 용신(容身)할 따름이었다. 무릇 경유(經遊)하는 중이 이르면 물음 따라(隨叩) 응했고 일정(一定)한 개시(開示)가 없었다. 승문(僧問) 생사가 도래하면 어떻게 회피(迴避)합니까. 사왈(師曰) 조짐(兆朕; )이 이르면 봉행하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생사가 구속해 가져 감을 입을 것입니다. 사왈 아야야(阿邪邪). 묻되 서천(西天)에서 지석(持錫)한 뜻이 어떻습니까. 스님이 석장(錫杖)을 집어 땅에 세우고() 떨쳤다. 승왈(僧曰) 미심하오니 이것은 이 무슨 뜻입니까. 사왈 이것(遮箇)은 이 장가가 때림이다(張家打). 중이 말을 진행(進語)하려고 하자 스님이 석장을 던졌다()蒼巒切; .

逸格; 초일(超逸; 초월)의 격조(格調).

阿邪邪; 다른 책에 아야야(阿耶耶)로 지었음. 탄사(嘆詞)니 감탄ㆍ동통(疼痛) 등을 표시함.

錫杖; 약칭이 석() 혹은 장()이니 범어로는 극기라(隙棄羅)ㆍ끽기라(喫棄羅). 또 성장(聲杖)ㆍ유성장(有聲杖)ㆍ지장(智杖)ㆍ덕장(德杖)ㆍ명장(鳴杖)ㆍ금석(金錫)으로 지으며 비구 18()의 하나임. 번역명의집7. 극기라(隙棄羅)는 여기에선 이르되 석장이다. 떨칠 때 석석성(錫錫聲)을 짓기 때문의 연고이다. 십송(十誦)엔 성장(聲杖)으로 이름했고 석장경(錫杖經)엔 또 지장(智杖)으로 이름했고 또 이름이 덕장(德杖)이니 지행(智行)의 공덕을 나타내는 연고이다. 성인의 표치(幖幟)며 현사(賢士), 도법을 명기(明記)하는 깃발이다. 근본잡사(根本雜事)에 이르되 비구(比丘)가 걸식(乞食)하면서 장자(長者)의 집에 깊이 들어가자 드디어 기방(譏謗; 는 나무랄 기)을 초래했다. 비구가 불타에게 사뢰자 불타가 이르시되 가히 소리를 지어 경각(警覺)하라. 그가 곧 하하(呵呵; 는 웃을 가. 원음이 하)하며 소리를 지어 훤뇨(喧鬧. 은 시끄러울 훤. 는 시끄러울 뇨)해서 다시 기훼(譏毀)를 초래했다. 불타가 억제하여 청허(聽許; 은 허락할 청)하지 않자 드디어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가인(家人)이 괴이히 여겨 묻되 무엇 때문에 나의 문을 타파하느냐. 침묵하며 대답이 없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응당 석장(錫杖)을 만들어라. 필추(苾蒭)가 알지 못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장두(杖頭)에 고리()를 안치하되 둥글기는 잔구(醆口; 은 술잔 잔)와 같이 하고 작은 고리를 안치해 요동(搖動)하여 소리를 지어 경각(警覺)을 하라. 요동은 한 두 번이 옳나니 듣는 사람이 없을 때는 곧 떠나감을 써라. 오백문론(五百問論) 지석(持錫)함엔 여러 일이 있다. 능히 악충(惡蟲)과 독수(毒獸) 등을 경각한다. 의정(義淨)이 이르되 석장은 모두 3()이 있다. 상분(上分)은 이 석(; 주석)이며 중()은 나무며 하()는 혹 아각(牙角)이다. 만약 26(二股六鐶)이면 이는 가섭불의 법제(法製)며 만약 412(四股十二鐶)이면 이 석가불의 법제다.

 

淸豁沖煦二長老嚮師名未嘗會遇 一旦同訪之値師采粟 豁問曰 道者如庵主在何所 師曰 從什麽處來 曰山下來 師曰 因什麽得到遮裏 曰遮裏是什麽處所 師揖曰 去那下喫茶去 二公方省是師 遂詣庵所頗味高論 晤坐於左右不覺及夜 覩豺虎奔至庵前自然馴擾 豁因有詩曰 行不等閑行 誰知去住情 一餐猶未飽 萬戶勿聊生 非道應難伏 空拳莫與爭 龍吟雲起處 閑嘯兩三聲 二公尋於大章山創庵請師居之 兩處孤坐 垂五十二載而卒 豁雖承指喻 而後於睡龍印可乃嗣睡龍 住漳州保福

馴擾; 順服 馴伏

聊生; 指賴以維持生活

 

청활(淸豁)과 충후(沖煦) 두 장로가 스님의 명성을 향()했으나 일찍이 회우(會遇)하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一旦) 함께 방문했는데 스님이 속(; )을 캠(; 저본에 으로 지었음)을 만났다(). 청활이 문왈(問曰) 도자(道者), 여암주(如庵主)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어느 곳으로 좇아왔습니까. 가로되 산 아래에서 왔습니다. 사왈 무엇으로 인해 이 속에 이름을 얻었습니까. 가로되 이 속은 이 어떤 처소입니까. 스님이 읍()하고 가로되 저 아래(那下)로 가서 끽다(喫茶)하십시다. 2()이 비로소 이 스님임을 성찰했다. 드디어 암소(庵所)로 나아가 지못() 고론(高論)을 음미(吟味)했고 좌우에서 마주앉아(晤坐) 불각에 밤에 이르렀다(). 시호(豺虎; 승냥이와 범)가 암전(庵前)에 분지(奔至)함을 보았는데 자연히 순요(馴擾)했다. 청활이 인하여 시가 있어 가로되 행()은 등한(等閑)한 행이 아니니/ 거주(去住)하는 정()을 누가 아느냐/ 일찬(一餐; 한 번 먹다)에 오히려 배부르지 않나니/ 만호(萬戶)가 요생(聊生)이 아니다/ 도가 아니면 응당 굴복(屈伏)하기 어렵나니/ 공권(空拳)으로 더불어 다투지 못한다/ 용이 읊고 구름이 일어나는 곳에/ 한가한 휘파람()이 두세 소리다. 2()이 이윽고 대장산(大章山)에 창암(創庵)하고 스님을 청해 거주하게 했다. 두 곳에서 고좌(孤坐)하며 거의() 52() 만에 졸()했다. 청활은 비록 지유(指喻; 지시하여 깨우치게 함)를 승수(承受)했으나 이후(而後)에 수룡(睡龍)에서 인가(印可)했고 수룡을 이었으며 장주(漳州) 보복(保福)에 주()했다.

馴擾; 순복(順服). 순복(馴伏).

聊生; 의뢰하여 생활을 유지維持()함을 가리킴.

 

福州蓮華山永興祿和尙 閩王請師開堂日未陞座 先於座前立云 大王大衆聽 已有眞正擧揚也 此一會總是得聞 豈有不聞者 若有不聞彼此相謾去也 方乃登座 僧問 國王請師出世 未委今日一會何似靈山 師曰 徹古傳今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毛頭顯沙界 日月現其中

 

복주(福州) 연화산 영흥록(永興祿) 화상. 민왕(閩王)이 스님에게 청하여 개당(開堂)하던 날 승좌(陞座)하지 않고 먼저 좌전(座前)에 서서 이르되 대왕과 대중은 들으십시오. 이미 진정(眞正)한 거양(擧揚)이 있었습니다. 이 일회(一會)가 모두() 이 득문(得聞)했거늘 어찌 듣지 않은 자가 있겠습니까. 만약 듣지 않은 이가 있다면 피차(彼此) 상만(相謾)하여 갈 것입니다. 비로소 이에 등좌(登座)했다. 승문(僧問) 국왕이 스님의 출세를 청하셨습니다. 알지 못하나니(未委) 금일의 일회(一會)가 영산(靈山)과 어찌 같습니까(何似). 사왈(師曰) 옛에 통하고 지금에 전한다(徹古傳今).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모두(毛頭; 後綴)에 사계(沙界)가 나타나고() 일월이 그 가운데 나타난다().

 

天台山國淸寺師靜上座 始遇玄沙和尙示衆云 汝諸人但能一生如喪考妣 吾保汝究得徹去 師乃躡前語而問曰 只如敎中不得以所知心 測度如來無上知見 又作麽生 玄沙曰 汝道究得徹底所知心 還測度得及否 師從此信入 後居天台三十餘載 不下山 博綜三學操行孤立 禪寂之餘常閱龍藏 遐邇欽重 時謂大靜上座 嘗有人問曰 弟子每當夜坐心念紛飛 未明攝伏之方 願垂示誨 師答曰 如或夜間安坐心念紛飛 却將紛飛之心以究紛飛之處 究之無處則紛飛之念何存 返究究心則能究之心安在 又能照之智本空 所緣之境亦寂 寂而非寂者 蓋無能寂之人也 照而非照者 蓋無所照之境也 境智俱寂心慮安然 外不尋枝內不住定 二途俱泯一性怡然 此乃還源之要道也 師因覩敎中幻義 乃述一偈問諸學流 偈曰 若道法皆如幻有 造諸過惡應無咎 云何所作業不妄 而藉佛慈興接誘 時有小靜上座答曰 幻人興幻幻輪圍 幻業能招幻所治 不了幻生諸幻苦 覺知如幻幻無爲 二靜上座竝終於本山 今國淸寺遺蹤在焉

龍藏; 龍宮之藏經 又指華嚴經 又指大乘經典

 

천태산 국청사 사정상좌(師靜上座). 처음() 현사화상의 시중(示衆)을 만났는데 이르되 너희 제인이 단지 능히 일생(一生)마치 고비(考妣; 부모)를 잃음((如喪考妣))과 같다면 내가 보증하건대 너희가 궁구하여 사무침을 얻을 것이다(究得徹去). 스님이 이에 전어(前語)를 밟아 문왈(問曰) 지여(只如) 교중(敎中)에 소지(所知)의 마음으로써 여래의 무상지견(無上知見)을 측탁(測度)함을 얻지 못한다 한 것은 또 어떻습니까. 현사가 가로되 네가 말하라, 궁구해 철저(徹底)를 얻은 소지(所知)의 마음으로 도리어 측탁(測度)해 미침을 얻겠는가. 스님이 이로 좇아 신입(信入)했다. 후에 천태에 거주하기 30여 재()에 하산하지 않았다. 삼학(三學)을 박종(博綜; 博通)하고 조행(操行)이 고립(孤立)했다. 선적(禪寂)의 여가(餘暇)에 늘 용장(龍藏)을 열람했고 하이(遐邇; 원근)가 흠중(欽重; 흠모하고 존중)했으며 당시에 이르기를 대정상좌(大靜上座)라 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이 문왈(問曰) 제자가 매번 야좌(夜坐)에 당하여 심념(心念)이 분비(紛飛)하지만 섭복(攝伏)할 방법을 밝히지 못했으니 시회(示誨)를 내리시길 원합니다. 스님이 답왈(答曰) 혹 야간에 안좌(安坐)하여 심념이 분비(紛飛)할 것 같으면 도리어 분비하는 마음을 가지고 분비하는 곳을 궁구하라. 그것을 궁구하매 처소가 없으리니 곧 분비하는 생각이 어찌 존재하겠는가. 궁구하는 마음을 도리어 궁구하매 곧 능구(能究)하는 마음이 어찌 있겠는가(安在). 또 능조지지(能照之智)가 본공(本空)이며 소연지경(所緣之境)도 또한 적()이니 적()이면서 적이 아닌 것은 대개 능적지인(能寂之人)이 없음이며 조()하면서 조가 아닌 것은 대개 소조지경(所照之境)이 없음이다. 경지(境智)가 모두 적()하고 심려(心慮)가 안연(安然)하여 밖으론 가지()를 찾지 않고 안으론 정()에 주()하지 않으면 이도(二途)가 모두 망해(俱泯) 일성(一性)만 이연(怡然)하리니 이것이 곧() 환원(還源)의 요도(要道)이다. 스님이 교중(敎中)의 환의(幻義)를 봄으로 인해 이에 1게를 서술해 여러 학류(學流)에게 물었으니 게왈(偈曰) 만약 도법(道法)이 모두 환유(幻有)와 같다면/ 모든 과악(過惡)을 짓더라도 응당 허물()이 없으리라/ 어찌하여(云何) 짓는 바 업이 허망하지 않거늘/ 불자(佛慈)를 빌려() 접유(接誘; 接引하여 誘導)를 일으키는가(). 때에 소정상좌(小靜上座)가 있어 답왈(答曰) 환인(幻人)이 환()을 일으키매 환이 윤위(輪圍)하고/ 환업이 능히 환의 다스린 바를 초치(招致)한다/ 환생(幻生)을 요득(了得)치 못해 모든 환고(幻苦)/ 여환(如幻)을 각지(覺知)하매 환이 무위(無爲)로다. 두 정상좌(靜上座)가 모두() 본산에서 마쳤고 지금 국청사에 유종(遺蹤)이 존재한다.

 

龍藏; 용궁의 장경. 또 화엄경을 가리킴. 또 대승경전을 가리킴.

 

前福州長慶院慧稜禪師法嗣

泉州招慶院道匡禪師 潮州人也 自稜和尙始居招慶 師乃入室參侍 暨稜和尙召入長樂府盛化于西院 師繼踵住於招慶 學衆如故 師上堂曰 聲前薦得孤負平生 句後投機殊乖道體 爲什麽如此 大衆且道 從來合作麽生 又謂衆曰 招慶今夜與諸人一時道却 還委落處麽 時有僧出曰 大衆一時散去 還稱師意也無 師曰 好與拄杖 僧禮拜 師曰 雖有盲龜之意 且無曉月之程 僧曰 如何是曉月之程 師曰 此是盲龜之意 問如何是沙門行 師曰 非行不行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蚊子上鐵牛 問如何是在匣劍 師良久 僧罔措 師曰 也須感荷招慶始得 問如何是提宗一句 師曰 不得昧著招慶 其僧禮拜起 師又曰不得昧著招慶 囑汝作麽生是提宗一句 僧無對 問文殊劍下不承當時如何 師曰 未是好手人 僧曰 如何是好手人 師曰 是汝話墮也 問如何是招慶家風 師曰 寧可淸貧自樂 不作濁富多憂 問如何是南泉一線道 師曰 不辭向汝道 恐較中更較去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七顚八倒

感荷; 感激地承受 感謝

七顚八倒; 逆順縱橫自由自在 通達無障礙之意 七或八表示多數 類似用語尙有七縱八橫 七通八達 七凹八凸等

 

천주(泉州) 초경원(招慶院) 도광선사(道匡禪師). 조주(潮州) 사람이다. 릉화상(稜和尙; 慧稜)이 처음 초경(招慶)에 거주함으로부터 스님이 이에 입실하여 참시(參侍)했다. 릉화상이 장락부(長樂府)로 불리어 들어가(召入) 서원(西院)에서 성화(盛化)함에 이르자() 스님이 계종(繼踵)하여 초경에 주()했고 학중(學衆)은 예()와 같았다.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성전(聲前)에 천득(薦得)하면 평생을 저버리고(孤負) 구후(句後)에 투기(投機)하면 도체(道體)에 특수히 어긋난다(殊乖).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가. 대중이여 그래 말하라, 종래(從來)로 합당함이 어떠한가. 또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초경(招慶)이 금야(今夜)에 제인에게 일시에 말해버려 주었다. 도리어 낙처(落處)를 아느냐(). 때에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대중이 일시에 흩어져 가면 도리어 스님의 뜻에 맞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師曰) 좋이 주장자를 주어야 한다. 중이 예배했다. 사왈 비록 맹귀(盲龜)의 뜻이 있지만 다만() 효월(曉月)의 길()이 없다. 승왈(僧曰) 무엇이 이 효월의 길입니까. 사왈 이것은 이 맹귀의 뜻이다. 묻되 무엇이 이 사문행(沙門行)입니까. 사왈 비행(非行)을 행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모기가 철우에 올랐다(蚊子上鐵牛). 묻되 무엇이 이 갑()에 있는 검입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중이 망조(罔措)했다. 사왈 또한 모름지기 초경(招慶)을 감하(感荷)해야 비로소 옳다. 묻되 무엇이 이 제종(提宗; 宗旨提起)1구입니까. 사왈 초경을 매착(昧著; 하다)함을 얻지 말아라. 그 중이 예배하고 일어나자 스님이 우왈(又曰) 초경을 매착함을 얻지 말아라. 너에게 부촉(付囑)하노니 무엇이 이 제종(提宗)1구인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묻되 문수(文殊)의 검 아래 승당(承當)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 호수(好手)의 사람이 아니다. 승왈 무엇이 이 호수의 사람입니까. 사왈 이 네가 화타(話墮)했다. 묻되 무엇이 이 초경의 가풍입니까. 사왈 차라리() 가히 청빈(淸貧)하며 자락(自樂)할지언정 탁부(濁富)의 다우(多憂)함을 짓지 않겠다. 묻되 무엇이 이 남천(南泉)의 일선도(一線道)입니까. 사왈 너를 향해 말함은 사양(辭讓)하지 않겠으나 교량(較量; )하는 중에 다시 교량하여 갈까 염려스럽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칠전팔도(七顚八倒).

感荷; 감격하면서 승수(承受). 감사(感謝).

七顚八倒; 역순종횡(逆順縱橫)하며 자유자재하고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의 뜻. 7 8은 다수를 표시함. 유사용어에 오히려 칠종팔횡ㆍ칠통팔달ㆍ칠요팔철(七凹八凸) 등이 있음.

 

問學人根思遲迴 乞師曲運慈悲開一線道 師曰 遮箇是老婆心 僧曰悲華剖拆以領尊慈 從上宗乘事如何 師曰 恁麽須得汝親問始得 師問僧 什麽處去來 僧曰 劈柴來 師曰 還有劈不破底也無 僧曰有 師曰 作麽生是劈不破底 僧無語 師曰 汝若道不得問我 我與汝道 僧曰 作麽生是劈不破底 師曰 賺殺人 因地動 僧問 還有不動者無 師曰 有 僧曰 如何是不動者 師曰 動從東來却歸西去 問法雨普霑還有不潤處否 師曰有 僧曰 如何是不潤處 師曰 水灑不著 問如何是招慶深深處 師曰 和汝沒却 問如何是九重城裏人 師曰 還共汝知聞麽

根思; 根器 悟性

遲迴; 遲鈍 迂緩

尊慈; 一對方的敬稱 二慈愛的父母

 

묻되 학인의 근사(根思)가 지회(遲迴)하여 스님에게 구걸하오니 자비를 곡운(曲運)하여 일선도(一線道)를 여십시오. 사왈(師曰) 이것(遮箇)이 이 노파심이다. 승왈(僧曰) 비화(悲華)가 부탁(剖拆; 갈라져 터짐)하여 존자(尊慈)를 영회(領會)합니다만 종상(從上)의 종승사(宗乘事)가 어떠합니까. 사왈 이러하다면 모름지기 네가 친문(親問)함을 얻어야 비로소 옳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승왈 섶을 쪼개고() 왔습니다. 사왈 도리어 쪼개어도 갈라지지() 않는 것이 있더냐 또는 없더냐. 승왈 있었습니다. 사왈 무엇이 이 쪼개어도 갈라지지 않던 것이더냐. 중이 말이 없자 사왈 네가 만약 말함을 얻지 못하거든 나에게 물어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겠다. 승왈 무엇이 이 쪼개어도 갈라지지 않는 것입니까. 사왈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人). 땅이 움직임으로 인해 승문(僧問) 도리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왈 있다. 승왈 무엇이 이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까. 사왈 움직임이 동으로 좇아왔다가 도리어 서로 돌아간다. 묻되 법우(法雨)가 널리 적시매 도리어 윤택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까. 사왈 있다. 승왈 무엇이 이 윤택하지 않는 곳입니까. 사왈 물을 뿌려도 붙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초경(招慶)의 심심처(深深處)입니까. 사왈 너까지 잠기게 해버린다. 묻되 무엇이 이 구중성(九重城) 속의 사람입니까. 사왈 도리어 너와 함께 지문(知聞)하겠는가.

根思; 근기(根器). 오성(悟性).

遲迴; 느리고 둔함. 우완(迂緩; 느리고 더딤).

尊慈; 1. 상대방에 대한 경칭. 2. 자애로운 부모.

 

師上堂僧衆擁法座 師曰 遮裏無物 諸人苦恁麽相促相拶作麽 擬心早勿交涉 更上門戶千里萬里 今旣上來各著精彩 招慶一時拋與諸人好麽 師復問 還接得也未 衆無對 師曰 勞而無功 汝諸人得恁麽鈍 看他古人一兩箇得恁麽快 才見便負將去 亦較些子 若有此箇人 非但四事供養 便以瑠璃爲地白銀爲壁亦未爲貴 帝釋引前梵王從後 攬長河爲酥酪 變大地爲黃金 亦未爲足 直得如是猶更有一級在 還委得麽珍重

四事供養; 謂施主爲佛僧提供多方面的物質生活傍助 四事 衣服 飮食 臥具 湯藥也 或房舍 衣服 飮食 湯藥也

 

스님이 상당하자 승중(僧衆)이 법좌를 옹위(擁衛)했다. 사왈(師曰) 이 속엔 일물(一物; )도 없거늘 제인이 괴롭게 이러히 상촉(相促)하고 상찰(相拶)하여 무엇하겠는가. 의심(擬心)하면 벌써 교섭이 없거늘 다시 문호(門戶)에 오르니 천리만리(千里萬里). 이제 이미 올라왔으니 각자 정채(精彩)를 붙여라. 초경(招慶)이 일시에 제인에게 던져 주었으니 훌륭한가(好麽). 스님이 다시 묻되 도리어 접득(接得)했는가 또는 아닌가.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노력만 하고 공이 없으니(勞而無功) 너희 제인이 이렇게 둔()함을 얻는가. 저 고인을 한두 개 보건대 이렇게 쾌()함을 얻어 겨우 보면 바로 지고서() 가져 갔으니 또한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만약 차개(此箇)의 사람이 있다면 단지 사사공양(四事供養)만이 아니라 바로 유리(瑠璃)로써 땅을 삼고 백은(白銀)으로 벽을 삼더라도 또한 귀()하지 않으며 제석(帝釋)이 앞을 인도(引導)하고 범왕(梵王)이 뒤를 좇고 장하(長河)를 저어() 소락(酥酪)으로 삼고 대지를 변화시켜 황금으로 삼더라도 또한 족()함이 되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음을 얻더라도 오히려 다시 일급(一級)이 있나니 도리어 위득(委得; 알다)하느냐. 진중(珍重)하라.

四事供養; 이르자면 시주가 불승(佛僧)을 위해 제공하는 다방면의 물질생활의 방조(傍助; 곁에서 도와 줌). 4사는 의복ㆍ음식ㆍ와구ㆍ탕약. 혹은 방사(房舍)ㆍ의복ㆍ음식ㆍ탕약.

 

杭州龍華寺彦球實相得一大師 開堂日謂衆曰 今日旣升法座 又爭解諱得 只如不諱底事 此衆還有人與作證明麽 若有卽出來相共作箇榜樣 時有僧問 郡尊請師如何擧揚宗指 師曰 法到別處切忌謬傳 問此座爲從天降下爲從地涌出 師曰 是什麽 僧曰 此座高廣如何升得 師曰 今日幾被汝安頓著 問靈山一會迦葉親聞 今日一會何人得聞 師曰 同我者擊其大節 僧曰 酌然俊哉 師曰 去般水漿茶堂裏用去 師又曰 從前佛法付囑國王大臣及有力檀越 今日郡尊及諸官寮 特垂相請不勝荷愧 山僧更有末後一句子 賤賣與諸人 師乃起身立云 還有人買麽 若有人買卽出來 若無人買卽賤貨自收 久立珍重 師有時上堂云 好時好日速道速道 又曰 大衆近前來 聽老漢說第一義 大衆近前 師便打趁 問如何是學人自己 師曰 雪上更加霜

安頓; 安排使有著落

水漿 飲料或流質食物 泛指液體汁液

 

항주(杭州) 용화사(龍華寺) 언구(彦球) 실상(實相) 득일대사(得一大師). 개당일에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금일 이미 법좌에 올랐거늘 또 어찌 휘득(諱得; 꺼리다. 숨기다)할 줄 알겠는가. 지여(只如) 꺼리지() 않는 일을 이 대중에서 도리어 증명을 지어 줄 사람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곧 나와서 서로 함께 저() 방양(榜樣)을 지어라. 때에 어떤 중이 묻되 군존(郡尊; 郡守)이 스님에게 청했으니 어떻게 종지를 거양(擧揚)하겠습니까. 사왈(師曰) 법이 별처(別處)에 이르거든 잘못() 전함을 간절히 꺼린다. 묻되 차좌(此座)는 하늘로 좇아 강하(降下)했습니까, 땅으로 좇아 용출(涌出)했습니까. 사왈 이 뭣고. 승왈(僧曰) 차좌(此座)는 고광(高廣)하니 어떻게 오름을 얻습니까. 사왈 금일 거의() 너의 안돈(安頓)함을 입을 뻔했다. 묻되 영산(靈山)의 일회(一會)는 가섭이 친문(親聞)했거니와 금일의 일회는 어떤 사람이 득문(得聞)합니까. 사왈 나와 같은 자라야 그 대절(大節; 大關節)을 친다(). 승왈 작연(酌然; 확실)히 준재(俊哉)입니다. 사왈 가서 수장(水漿)을 운반(運搬; )하여 다당(茶堂) 속에서 쓰거라. 스님이 또 가로되 종전(從前)엔 불법을 국왕과 대신 및 유력(有力)한 단월(檀越)에게 부촉(付囑)했거니와 금일은 군존(郡尊) 및 여러 관료(官寮)가 특별히 상청(相請)함을 드리워 하괴(荷愧; 부끄러움을 지다)를 이기지 못합니다. 산승이 다시 말후의 일구자(一句子)가 있어 싸게() 팔아 제인에게 주겠습니다. 스님이 이에 몸을 일으켜 서서 이르되 도리어 살 사람이 있습니까. 만약 살 사람이 있다면 곧 나오시오. 만약 살 사람이 없다면 곧 싼 화물(貨物)을 스스로 거두겠습니다. 구립(久立)했습니다. 진중(珍重). 스님이 어떤 때 상당해 이르되 호시호일(好時好日)에 속히 말하라, 속히 말하라. 우왈(又曰) 대중은 앞으로 다가와서 노한(老漢)이 제1(第一義)를 설함을 들어라. 대중이 앞으로 다가가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쫓아내었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눈 위에 다시 서리를 더하는구나.

安頓; 안배(安排)하여 착락(著落)이 있게 함.

水漿 음료 혹 유질(流質)의 식물(食物). 널리 액체나 즙액(汁液)을 가리킴.

 

杭州臨安縣保安連禪師 僧問 如何是保安家風 師曰 問有什麽難 問如何是吹毛劍 師曰 豫章鐵柱堅 僧曰 學人不會 師曰 漳江親到來 問如何是沙門行 師曰 師僧頭上戴冠子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死虎足人看 問一問一答彼此興來 如何是保安不驚人之句 師曰 汝到別處作麽生擧

 

항주(杭州) 임안현(臨安縣) 보안련(保安連)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보안(保安)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물음에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묻되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사왈 예장(豫章)의 철주(鐵柱)가 견고하다. 승왈(僧曰)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장강(漳江)이 친히 도래했다. 묻되 무엇이 이 사문행(沙門行)입니까. 사왈 사승(師僧)의 두상에 관자(冠子; 는 조사)를 이었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죽음 범은 사람이 봄을 더한다(; 다헐 주). 묻되 일문일답은 피차 일으켜() 옵니다. 무엇이 이 보안(保安),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는 구()입니까. 사왈 네가 별처(別處)에 이르면 어떻게 들겠는가().

 

福州報慈院光雲慧覺大師 上堂云 差病之藥不假驢馱 若據今夜各自歸堂去也 珍重 僧問 承聞慧覺有鎖口訣如何示人 師曰 賴我拄杖不在手 僧曰 恁麽卽深領尊慈也 師曰 待我肯汝卽得 師入府閩王問 報慈與神泉相去近遠 師曰 若說近遠不如親到 師却問曰 大王日應千差 是什麽心 王曰 什麽處得心來 師曰 豈有無心者 王曰 那邊事作麽生 師曰 請向那邊問 王曰 大師謾別人卽得 問大衆臻湊請師擧揚 師曰 更有幾人未聞 曰恁麽卽不假上來也 師曰 不上來且從 汝向什麽處會 曰若有處所卽孤負和尙 師曰 卽恐不辨精麁 問夫說法者當如法說 此意如何 師曰 有什麽疑訛 問故人面壁意如何 師打之 問不假言詮請師徑直 師曰 何必更待商量

鎖口; 言語所不及 稱爲鎖口 又佛法甚深之妙理 非言語所能說明 稱爲鎖口訣

徑直; 一直接向某處前進 二直接進行某事

 

복주(福州) 보자원(報慈院) 광운(光雲) 혜각대사(慧覺大師). 상당하여 이르되 채병지약(差病之藥; 병을 낫게 하는 약)은 나귀에 실음을 빌리지 않나니 만약 오늘 밤에 의거하자면 각자 당()으로 돌아가야 하리라. 진중(珍重). 승문 받들어 듣건대 혜각(慧覺)이 쇄구결(鎖口)이 있다는데 어떻게 사람에게 보입니까. 사왈(師曰) 다행히() 내가 주장자가 손에 있지 않다.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존자(尊慈)를 깊이 영회(領會)합니다. 사왈 내가 너를 수긍함을 기다려야 곧 옳다. 스님이 입부(入府)하자 민왕(閩王)이 묻되 보자(報慈)와 신천(神泉)이 서로의 거리(距離; )가 가깝습니까 멉니까(近遠). 사왈 만약 근원(近遠)을 설한다면 친히 이름만 같지 못합니다. 스님이 도리어 문왈(問曰) 대왕은 날마다 천차(千差)에 응하시니 이 무슨 마음입니까. 왕왈(王曰) 어느 곳에서 마음을 얻어 옵니까. 사왈 어찌 마음이 없는 자가 있겠습니까. 왕왈 나변사(那邊事)가 어떻습니까. 사왈 청컨대 나변(那邊)을 향해 물으십시오. 왕왈 대사(大師; 저본에 道師로 지었음)가 다른 사람을 속임은 곧 얻습니다. 묻되 대중이 진주(臻湊; 모이다)했으니 스님의 거양(擧揚)을 청합니다. 사왈 다시 몇 사람이 듣지 못함이 있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올라옴을 빌리지 않겠습니다. 사왈 올라오지 않음은 다만() 좇거니와 네가 어느 곳을 향해 이회(理會)하느냐. 가로되 만약 처소가 있다면 곧 화상을 저버릴 것입니다. 사왈 곧 정추(精麁)를 분변하지 못할까 염려스럽다. 묻되 무릇 설법이란 것은 마땅히 여법하게 설해야 한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무슨 의와(疑訛; 疑惑訛謬)가 있겠는가. 묻되 고인(故人)이 면벽한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때렸다. 묻되 언전(言詮; 언어로 說明)을 빌리지 않고 스님의 경직(徑直)을 청합니다. 사왈 하필이면 다시 상량(商量)을 기다리겠는가.

鎖口; 언어가 미치지 않는 바를 일컬어 쇄구라 함. 또 불법의 심심(甚深)한 묘리는 언어로 능히 설명할 바가 아님을 일컬어 쇄구결(鎖口訣)이라 함.

徑直; 1. 직접(直接) 모처(某處)를 향해 전진함. 2. 직접 모사(某事)를 진행함.

 

廬山開先寺紹宗圓智禪師 姑蘇人也 稟性朴野不群流俗 少依本郡流水寺出家受具 入長慶之室密契眞要 初結庵於虔州了山 二十載道聲遐布 江南國主李氏建寺請轉法輪 玄徒輻湊 暨國主巡幸洪井 躬入山瞻謁請上堂 令僧出問 如何是開先境 師曰 最好是一條界破靑山色 僧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拾枯柴煮布水 國主益加欽重 後終於山寺 靈塔存焉

不群; 不平凡 高出于同輩

流俗; 凡俗

眞要; 眞諦要義

巡幸; 帝王巡視各地

 

여산(廬山) 개선사(開先寺) 소종(紹宗) 원지선사(圓智禪師). 고소(姑蘇) 사람이며 품성(稟性)이 박야(朴野; 質朴)하고 유속(流俗)과 불군(不群)이었다. 소년(少年)에 본군(本郡) 유수사(流水寺)에 의지해 출가하고 수구(受具)했고 장경지실(長慶之室)에 들어가 진요(眞要)에 밀계(密契)했다. 처음 건주(虔州) 요산(了山)에 결암(結庵)한 지 20()에 도성(道聲)이 멀리 퍼졌다. 강남국주(江南國主) 이씨(李氏)가 건사(建寺)하고 전법륜(轉法輪)을 청했고 현도(玄徒)가 복주(輻湊)했다. 국주가 홍정(洪井)을 순행(巡幸)함에 이르러() 몸소 입산하여 첨알(瞻謁)하고 상당을 청했으며 승인으로 하여금 나가서 묻게 했다. 무엇이 이 개선경(開先境)입니까. 사왈(師曰) 가장 좋기로는(最好) 이 일조(一條)의 경계가 청산의 색을 깨뜨림이다. 승왈 무엇이 이 경중(境中)의 사람입니까. 사왈 마른 섶을 주워 포수(布水; 瀑布)를 끓인다(). 국주가 흠중(欽重)을 더욱 더했다. 후에 산사(山寺)에서 마쳤고 영탑(靈塔)이 존재한다.

不群; 평범하지 않음. 동배(同輩)보다 높이 뛰어남.

流俗; 범속(凡俗; 평범하고 속됨).

眞要; 진체(眞諦; 진실한 意義)의 요의(要義).

巡幸; 제왕(帝王)이 각지를 순시(巡視).

 

婺州金鱗報恩院寶資曉悟大師 上堂 大衆立久 師曰 諸兄弟各詣山門來 主人口如匾擔相似 莫成相違負也 無久在衆 兄弟也未要怪訝著 若帶參學眼何煩久立 各自歸堂珍重 師開方丈基 僧問 丈基已成如何通信 師曰 不可昧兄弟此問 僧曰 不昧底事作麽生 師曰 靑天白日 問學人初心請師示箇入路 師遂側掌示之曰 還會麽 僧曰 不會 師曰 獨掌不浪鳴 問如何是報恩家風 師曰 也知闍梨入衆日淺 問古人拈槌竪拂意如何 師曰 報恩截舌有分 僧曰 爲什麽如此 師曰 屈著作麽 問如何是文殊劍 師曰 不知 僧曰 只如一劍下活得底人作麽生 師曰 山僧只管二時齋粥

怪訝; 感到奇怪而驚訝

靑天白日; 喩禪法淸楚分明 一切現成

獨掌不浪鳴; 一隻手掌不成拍響 浪 鼓動

入衆; 一僧人出衆發言之後 退入僧衆之列 二進入叢林 與僧衆共同參禪學道 此指二

 

무주(婺州) 금린(金鱗) 보은원(報恩院) 보자(寶資) 효오대사(曉悟大師). 상당(上堂)하여 대중이 선 지 오래자 사왈(師曰) 여러 형제가 각기 산문(山門)에 이르러() 왔는데 주인의 입이 마치 편담(匾擔)과 상사(相似)하니 서로 위부(違負; 위배해 저버림)를 이룸이 아닌가. 오래 재중(在衆)하지 말지니 형제여, 괴아(怪訝)함을 요하지 않는다. 만약 참학안(參學眼)을 가졌다면() 어찌 번거롭게() 오래 섰겠는가. 각자 귀당(歸堂)하라. 진중(珍重). 스님이 방장의 기초(基礎)를 열었다. 승문(僧問) 장기(丈基; 방장의 기초)를 이미 이루었으니 어떻게 통신(通信)합니까. 사왈 형제의 차문(此問)을 어둡게() 함은 옳지 못하다. 승왈(僧曰) 어둡지 아니한 일은 어떻습니까. 사왈 천천백일(靑天白日)이다. 묻되 학인은 초심(初心)이니 청컨대 스님이 저() 입로(入路)를 보이십시오. 스님이 드디어 손바닥을 기울여 보이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승왈(僧曰) 알지 못합니다. 사왈 외 손바닥으론 두드려도 울리지 않는다(獨掌不浪鳴). 묻되 무엇이 이 보은(報恩)의 가풍입니까. 사왈 또한 아나니 사리(闍梨)가 입중(入衆)한 날이 얕다(). 묻되 고인이 염추수불(拈槌竪拂; 저본에 로 지었음)한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보은이 혀를 자를 분한이 있다. 승왈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굴복해서(屈著) 무엇 하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문수검(文殊劍)입니까. 사왈 알지 못한다. 승왈 지여(只如) 일검(一劍) 아래 삶을 얻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왈 산승은 다만 이시(二時)의 재죽(齋粥)을 관대(管帶)한다.

怪訝; 느낌이 기괴함에 이르러 놀라고 의심함.

靑天白日; 선법(禪法)이 청초(淸楚)하고 분명하며 일체에 현성(現成)했음에 비유함.

獨掌不浪鳴; 한 짝의 손바닥으로는 두드림의 음향을 이루지 못함. ()은 고동(鼓動).

入衆; 1. 승인이 대중에서 나와 발언한 후 승중의 대열로 퇴입(退入). 2. 총림에 진입하여 승중과 공동으로 참선학도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問如何是觸目菩提 師曰 背後是什麽立地 僧曰 學人不會乞師再示 師提拄杖曰 汝不會合喫多少拄杖 問如何是具大慚愧底人 師曰 開口取 合不得 僧曰 此人行履如何 師曰 逢茶卽茶遇飯卽飯 問如何是金剛一隻箭 師曰 道什麽 其僧再問 師曰 過新羅國去也 問波騰鼎沸起必全眞 未審古人意如何 師乃叱之 僧曰 恁麽卽非次也 師曰 爾話墮也 又曰 我話亦墮汝作麽生 僧無對 問去却賞罰 如何是吹毛劍 師曰 延平屬劍州 僧曰恁麽卽喪身失命去也 師曰 錢塘江裏潮

立地; 一卽刻 卽時 立 卽刻 地 助詞 二站著 又存立之地 建立之地 此指二

波騰鼎沸; 像波浪涌起 像鼎水沸騰 比喩衆人議論激烈 意見紛紛 爭論不休的樣子

錢塘江; 浙江省最大河流 祖庭事苑五 錢塘 昔郡議曹華倍 義立此塘 以防海水 遂開募有能致土石一斛 與錢一千 旬日之間 來者雲集 塘未成而譎不復取 遂弃土石而去 塘以之成也 見東漢書(漢書無此話

 

묻되 무엇이 이 촉목보리(觸目菩提; 저본에 로 지었음)입니까. 사왈(師曰) 등 뒤에 이 무슨 입지(立地)인가. 승왈(僧曰) 학인이 알지 못하겠으니 스님의 재시(再示)를 구걸합니다. 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가로되 네가 알지 못한다면 합당히 다소(多少)의 주장자를 먹어야(; 承受) 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대참괴(大慚愧)를 갖춘 사람입니까. 사왈 입 열면 취하지만(開口取) 닫으면 얻지 못한다(合不得). 승왈 이 사람의 행리(行履)가 어떻습니까. 사왈 차를 만나면 곧 차며 밥을 만나면 곧 밥이다. 묻되 무엇이 이 금강의 1() 화살입니까. 사왈 무어라고 말했느냐. 그 중이 다시 묻자 사왈 신라국을 지나갔다. 묻되 파도가 오르고 솥이 끓듯이(波騰鼎沸) 일어나면 반드시 전진(全眞)이다. 미심하오니 고인의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에 꾸짖었다(叱之). 승왈 이러하다면 곧 버금()이 아닙니다. 사왈 너는 화타(話墮)했다. 우왈(又曰) 나의 화()도 또한 떨어졌으니() 너는 어떠한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묻되 상벌(賞罰)을 제거해버리고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사왈 연평(延平)은 검주(劍州)에 속()한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상신실명(喪身失命)하여 갈 것입니다. 사왈 전당강(錢塘江) 속의 밀물()이다.

立地; 1. 즉각. 즉시. ()은 즉각이며 지는 조사. 2. 참착(站著; 서다). 또 존립의 땅. 건립의 땅.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波騰鼎沸; 파랑이 용기(涌起)함을 형상(形像)하고 정수(鼎水)가 비등함을 형상함이니 중인의 의논이 격렬하고 의견이 분분하면서 쟁론이 그치지 않는 양자에 비유함.

錢塘江; 절강성의 최대 하류(河流). 조정사원5. 전당(錢塘) 옛적에 군의(郡議)인 조화배(曹華倍)가 의거(義擧)로 이 둑을 세워 해수(海水)에 방비하려 했다. 드디어 개모(開募; 公開하여 모집함)하기를 능히 토석(土石) 1(; 은 열말들이 곡. 휘 곡)을 이르게 하면 전() 1천을 준다. 열흘 사이에 내자(來者)가 운집했다. 둑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속이어 다시 취하지 않는다 하자 드디어 토석을 버리고 떠났다. 둑이 이로써 이루어졌다. 동한서(東漢書; 후한서)를 보라(한서에 이 얘기가 없음).

 

杭州傾心寺法瑫宗一禪師 上堂云 大衆不待一句語 便歸堂去 還有紹繼宗風分也無 還有人酬得此問麽 若有人酬得去 也遮裏與諸人爲怪笑 若酬不得去 也諸人與遮裏爲怪笑 珍重 問如何揲文甲切實免見虛頭 師曰 汝問若當衆人盡鑒 問恁麽來皆不丈夫 只如不恁麽來 還有紹繼宗風分也無 師曰 出兩頭致一問來 僧曰什麽人辨得 師曰 波斯養兒 問佛法去處乞師全示 師曰 汝但全致一問來 僧曰 爲什麽却拈此問去 師曰 汝適來問什麽 僧曰若不遇於師 幾成走作 師曰 賊去後關門 問別傳一句如何分付 師曰 可惜許問 僧曰 恁麽卽別酬亦不當去也 師曰 也是閑辭 問如何是不朝天子不羨王侯底人 師曰 每日三條線 長年一衲衣 僧曰 未審此人還紹宗風也無 師曰 鵲來頭上語 雲向眼前飛 問承古人有言不斷煩惱 此意如何 師曰 又是發人業 僧曰 如何得不發業 師曰 爾話墮也 問請去賞罰 如何是吹毛劍 師曰 如法禮三拜 師後住龍冊寺歸寂

怪笑; 責怪 譏笑

長年; 從年初到年末 整年

 

항주(杭州) 경심사(傾心寺) 법도(法瑫) 종일선사(宗一禪師). 상당해 이르되 대중이여 1구어(句語)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당()으로 돌아가야 하나니 도리어 종풍을 소계(紹繼)할 분한이 있느냐 또는 없느냐. 도리어 어떤 사람이 이 물음에 응대()함을 얻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응대함을 얻는다면 또한 저리(遮裏; 이 속)와 제인이 괴소(怪笑)할 것이며 만약 응대함을 얻지 못한다면 또한 제인과 저리가 괴소할 것이다. 진중(珍重)하라. 묻되 어떻게 실()을 취해야(; )文甲切; 어떤 책엔 이 3자가 없음 허두(虛頭)를 보임을 면합니까. 사왈(師曰) 너의 물음이 만약 합당하다면() 중인(衆人)이 모두 감상(鑒賞; )할 것이다. 묻되 이렇게 오면 모두 장부(丈夫)가 아닙니다. 지여(只如) 이렇게 오지 않으면 도리어 종풍을 소계(紹繼)할 분한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양두(兩頭)를 벗어나 일문(一問)을 이루어() 오너라. 승왈(僧曰) 어떤 사람이 변득(辨得)합니까. 사왈 파사(波斯; 波斯人)가 아이를 키운다. 묻되 불법의 거처(去處), 스님이 전부 보이시길 구걸합니다. 사왈 너는 단지 일문(一問)을 온전히 이루어() 오너라. 승왈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이 질문을 집어() 갑니까. 사왈 네가 적래(適來)에 무엇을 물었느냐. 승왈 만약 스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거의 주작(走作)을 이룰 뻔했습니다. 사왈 도적이 간 후 문을 닫는구나(). 묻되 별전(別傳)1구를 어떻게 분부(分付)합니까. 사왈 질문이 가석하다(可惜許). 승왈 이러하다면 곧 다른 응대(別酬)도 또한 합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왈 또한 이 한사(閑辭; 쓸데없는 말). 묻되 무엇이 이 천자(天子)에게 조현(朝見)하지 않고 왕후(王侯)를 선망(羨望)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사왈 매일 세 가닥의 실이며 장년(長年)1납의(衲衣). 승왈 미심하오니 이 사람은 도리어 종풍을 잇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까치가 두상(頭上)에 와서 지저귀고() 구름은 안전(眼前)을 향해 난다(). 묻되 듣건대() 고인이 말씀이 있어 번뇌를 끊지 않는다 했거니와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또 이, 인업(人業)을 발()하는구나. 승왈 어찌 해야 업을 발하지 않음을 얻습니까. 사왈 너는 화타(話墮)했다. 묻되 청컨대 상벌(賞罰)을 제거하고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사왈 여법하게 삼배 예배하라. 스님이 후에 용책사(龍冊寺)에 주()하다가 귀적(歸寂)했다.

怪笑; 책괴(責怪; 괴이를 책망함). 기소(譏笑; 비웃음).

長年; 연초로부터 연말에 이르기까지. 정년(整年; 온 한 해).

 

福州水陸院洪儼禪師 上堂大衆集定 師下座捧香鑪巡行大衆前曰 供養十方諸佛 便歸方丈 僧問 離却百非兼四句 請師盡力爲提綱 師曰 落在什麽處 僧曰 恁麽卽人天有賴 師曰 莫將惡水澆潑人好

 

복주(福州) 수륙원(水陸院) 홍엄선사(洪儼禪師). 상당하자 대중이 집정(集定)했다. 스님이 하좌(下座)하여 향로(香鑪)를 받들고 대중 앞을 순행(巡行)하고 가로되 시방제불에게 공양한다.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승문(僧問) 백비(百非) 겸 사구(四句)를 여의어버리고 청컨대 스님이 힘을 다해 제강(提綱)하십시오. 사왈(師曰)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인천(人天)이 신뢰함이 있습니다. 사왈 더러운 물(惡水)을 가지고 사람에게 요발(澆潑; 끼얹다)하지 않아야 좋을 것이다.

 

杭州靈隱山廣嚴院咸澤禪師 初參保福展和尙 保福問曰 汝名什麽 師曰 咸澤 保福曰 忽遇枯涸者如何 師云 誰是枯涸者 保福曰 我是 師曰 和尙莫謾人好 保福曰 却是汝謾我 師後承長慶印記 住廣嚴道場 僧問 如何是覿面相呈事 師下禪床曰 尊體起居萬福 問不與萬法爲侶者是什麽人 師曰 城中靑史樓 雲外高峯塔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幽㵎泉淸高峯月白 問如何是廣嚴家風 師曰 一塢白雲三間茆屋 僧曰 畢竟作麽生 師曰 旣無維那兼無典座 問如何是廣嚴家風 師曰 師子石前靈水響 鷄籠山上白猿啼

 

항주(杭州) 영은산(靈隱山) 광엄원(廣嚴院) 함택선사(咸澤禪師). 보복전(保福展) 화상을 초참(初參)하자 보복이 문왈(問曰)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사왈(師曰) 함택(咸澤)입니다. 보복이 가로되 홀연히 고후자(枯涸者; 는 마를 후. 마를 학. 枯竭과 같음)를 만나면 어찌 하겠는가. 사운(師云) 누가 이 고후자입니까. 보복이 가로되 내가 이것이다. 사왈 화상은 사람을 속이지 말야야 좋을 것입니다. 보복이 가로되 도리어 이 네가 나를 속이는구나. 스님이 후에 장경(長慶)의 인기(印記)를 승수(承受; )했고 광엄 도량(道場)에 주()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적면(覿面)하여 상정(相呈)하는 일입니까. 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와 가로되 존체(尊體)의 기거(起居)에 만복(萬福)하소서. 묻되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왈 성중(城中)의 청사루(靑史樓)며 운외(雲外)의 고봉탑(高峯塔)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유간(幽㵎)엔 샘이 맑고 고봉(高峯)엔 달이 희다. 묻되 무엇이 이 광엄(廣嚴)의 가풍입니까. 사왈 일오(一塢)엔 백운이며 삼간(三間)의 모옥(茆屋; 띳집. 와 통함)이다. 승왈(僧曰) 필경 어떠합니까. 사왈 이미 유나(維那)가 없고 겸해 전좌(典座)도 없다. 묻되 무엇이 이 광엄의 가풍입니까. 사왈 사자석(師子石) 앞에 영수(靈水)가 울리고() 계룡산(鷄籠山) 위에 백원(白猿)이 운다().

 

福州報慈院慧朗禪師 上堂曰 從上諸聖爲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遞相告報 是汝諸人還會麽 若不會大不容易 僧問 如何是一大事 師曰 莫錯相告報麽 僧曰 恁麽卽學人不疑也 師曰 爭奈一翳在目何 問三世諸佛盡是傳語人 未審傳什麽人語 師曰聽 僧曰 未審是什麽語 師曰 爾不是鍾期 問如何是學人眼 師曰 不可更撒沙

鍾期; 卽鍾子期 比喩知音者

 

복주(福州) 보자원(報慈院) 혜랑선사(慧朗禪師). 상당해 가로되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이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위한 연고로 세간에 출현하여 서로서로(遞相) 고보(告報)했다. 이 너희 제인이 도리어 아느냐. 만약 알지 못한다면 매우 용이(容易)하지 못하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일대사입니까. 사왈(師曰) 잘못 서로 고보(告報)한 게 아니냐.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학인이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사왈(師曰) 일예(一翳)가 눈에 있음을 어찌 하겠는가. 묻되 삼세제불이 모두 이, 말을 전하는 사람이라 하니 미심합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전합니까. 사왈 들어라(). 승왈 미심하오니 이 무슨 말입니까. 사왈 너는 이 종기(鍾期)가 아니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눈입니까. 사왈 다시 모래를 뿌림은 옳지 않다.

鍾期; 즉 종자기(鍾子期)니 지음자(知音者)에 비유함.

 

福州怡山長慶常慧禪師 僧問 王侯請命 法嗣怡山 鎖口之言 請師不謬 師曰得 僧曰 恁麽卽深領尊慈 師曰 好與莫鈍置人 問不犯宗風 不傷物議 請師滿口道 師曰 今日豈不是開堂 問焰續雪峯印傳超覺 不違於物不負於人 不在當頭卽今何道 師曰 違負卽道 僧曰 恁麽卽善副來言 淺深已辨 師曰 也須識好惡

好與; 小心 謹愼 叮囑之辭

 

복주(福州) 이산(怡山) 장경(長慶) 상혜선사(常慧禪師). 승문(僧問) 왕후(王侯)의 청명(請命)으로 법을 이산(怡山)에서 이었으니 쇄구지언(鎖口之言)을 청컨대 스님이 어긋나지 마십시오(不謬). 사왈(師曰) 옳다().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존자(尊慈)를 깊이 영회(領會)했습니다. 사왈 호여(好與)하여 사람을 둔치(鈍置; 괴롭히다. 희롱하다)하지 말아라. 묻되 종풍을 범하지 않고 물의(物議; 여러 선록에 物義로 지었음)를 상()하지 않으면서 청컨대 스님이 입 가득히 말하십시오. 사왈 금일이 어찌 이 개당(開堂)이 아니겠는가. 묻되 불꽃()은 설봉(雪峯; 義存)에게서 이었고 심인(心印; )은 초각(超覺; 慧稜)에게서 전수(傳受)했으니 사람()을 거스르지() 않고 사람()을 저버리지() 않고 당두(當頭; 當面)에도 있지 않으면 즉금 어떻게 말씀하겠습니까. 사왈 위부(違負)하면 곧 말하겠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내언(來言)에 잘 합당했고(善副) 천심(淺深)을 이미 분변했습니다. 사왈 또한 모름지기 호오(好惡)를 알아야 한다.

好與; 소심(小心), 근신(謹愼)이니 정촉지사(叮囑之辭).

 

福州石佛院靜禪師 上堂曰 若道素面相呈猶添脂粉 縱離添過猶有負愆 諸人且作麽生體悉 僧問 學人欲見和尙本來師時如何 師曰 洞上有言親體取 僧曰 恁麽卽不得見去也 師曰 灼然客路如天遠 侯門似海深

侯門; 諸侯之門 指顯貴人家

 

복주(福州) 석불원 정선사(靜禪師). 상당하여 가로되 만약 말하되 흰 얼굴(素面)로 상정(相呈)한다 하면 오히려 지분(脂粉; 저본에 脂紛으로 지었음)을 더함이며 비록() 더함()의 허물()을 여의더라도 오히려 저버림()의 허물()이 있다. 제인이 그래 어떻게 체실(體悉; 체득해 알다)하겠는가. 승문(僧問) 학인이 화상의 본래 스승을 보고자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동상(洞上)에 말씀이 있으니 친히 체취(體取; 체득하다)하라.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봄을 얻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작연(灼然)히 객로(客路)는 하늘 같이() 멀고 후문(侯門)은 바다 같이() 깊다.

侯門; 제후의 문. 현귀(顯貴)한 인가(人家)를 가리킴.

 

處州翠峯從欣禪師 上堂曰 更不展席珍重 却問僧 還會麽 僧曰 不會 師曰 將謂闍梨到百丈

 

처주(處州) 취봉(翠峯) 종흔선사(從欣禪師). 상당하여 가로되 다시 자리를 펴지 말아라. 진중(珍重). 도리어 중에게 묻되 도리어 아느냐. 승왈(僧曰) 알지 못합니다. 사왈(師曰) 다만() 이르나니 사리(闍梨)가 백장(百丈)에 이르렀다.

 

福州枕峯觀音院淸換禪師 上堂曰 諸禪德 若要論禪說道 擧唱宗風 只如當人分上 以一毛端裏 有無量諸佛轉大法輪 於一塵中現寶王刹 佛說衆生說 山河大地一時說 未嘗間斷 如毘沙門王始終未求外寶 旣各有如是家風 阿誰欠少 不可更就別人取處分也 僧問 如何是法界性 師曰 汝身中有萬象 僧曰 如何體得 師曰 不可谷裏尋聲更求本末

毘沙門王; 毘沙門天王 毘沙門天 意譯爲多聞天 遍聞天 普聞天 四天王之一 十二天之一 住於須彌山之北面 守護閻浮提之北方 主司財寶富貴 又爲護持佛法之善神

 

복주(福州) 침봉(枕峯) 관음원(觀音院) 청환선사(淸換禪師). 상당하여 가로되 여러 선덕(禪德)이여 만약 선()을 논하고 도를 설해 종풍을 거창(擧唱)하기를 요()한다면 지여(只如) 당인(當人)의 분상(分上), 1모단(毛端) 속에 무량한 제불이 있어 대법륜을 굴리고 일진(一塵) 중에 보왕찰(寶王刹)을 나타내고 부처가 설하고 중생이 설하고 산하대지가 일시에 설하되 일찍이 간단(間斷)하지 않음이 마치 비사문왕(毘沙門王)이 시종(始終) 외보(外寶)를 구하지 않음과 같다. 이미 각자 이와 같은 가풍이 있거늘 누가(阿誰) 흠소(欠少)하겠는가. 다시 다른 사람에게 나아가 처분(處分)을 취함은 옳지 않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법계성(法界性)입니까. 사왈(師曰) 법신 가운데 만상(萬象)이 있다. 승왈(僧曰) 어떻게 체득(體得)합니까. 사왈 계곡 속에서 소리를 찾거나 다시 본말(本末)을 구함은 옳지 않다.

毘沙門王;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니 비사문천(毘沙門天; Vaiśr avaṇa)은 또 비사문천(鞞沙門天)으로 지음. 다문천(多聞天)ㆍ편문천(遍聞天)ㆍ보문천(普聞天)으로 의역함. 4천왕의 하나. 12천의 하나. 수미산의 북면에 거주하면서 염부제의 북방을 수호하며 재보(財寶)와 부귀를 주사(主司; 주관). 또 불법을 호지하는 선신(善神)이 됨.

 

福州東禪契訥禪師 上堂曰 未曾暫失全體現前 恁麽道亦是分外 旣恁麽道不得向兄弟前 合作麽生道 莫無道處不受道麽 莫錯會好 僧問 如何是現前三昧 師曰 何必更待道 問己事未明乞師指示 師曰 何不禮謝 問如何是東禪家風 師曰 一人傳虛萬人傳實

 

복주(福州) 동선(東禪) 계눌선사(契訥禪師). 상당해 가로되 일찍이 잠시도 잃지 않고 전체가 현전(現前)한다. 이러한 말도 역시(亦是) 본분 밖이다. 이미 이러한 말로 형제 앞을 향함을 얻지 못한다면 합당히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말이 없는 곳에 말을 받지 않음이 아닐까. 착회(錯會)하지 말아야 좋으니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현전(現前)하는 삼매입니까. 사왈(師曰) 하필이면 말을 다시 기다리겠는가. 묻되 기사(己事)를 밝히지 못했으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왜 예사(禮謝)하지 않느냐. 묻되 무엇이 이 동선(東禪)의 가풍입니까. 사왈 한 사람이 허()를 전하매 만 사람이 실()을 전한다.

 

福州長慶院弘辯妙果大師 一日上堂 於座側立云 大衆各歸堂得也未 還會得麽 若也未會得 山僧謾諸人去也 遂乃升座 僧問 海衆雲臻 請師開方便門 示眞實相 師曰 遮箇是方便門 僧曰 恁麽卽大衆側聆去也 師曰 空側聆作麽 問超覺後焰妙果傳燈 去却語默動靜 如何相示 師曰 還解怪得麽

 

복주(福州) 장경원(長慶院) 홍변(弘辯) 묘과대사(妙果大師). 어느 날 상당하여 법좌의 곁에 서서 이르되 대중이여 각자 귀당(歸堂)함이 옳으냐() 또는 아니냐. 도리어 회득(會得)하느냐. 만약에 회득하지 못한다면 산승이 제인(諸人)을 속일 것이다. 드디어 이에 승좌(升座)했다. 승문(僧問) 해중(海衆)이 운진(雲臻; 雲集)했으니 청컨대 스님이 방편문(方便門)을 여시어 진실상(眞實相)을 보이십시오. 사왈(師曰) 저개(遮箇)가 이 방편문이다.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측령(側聆; 귀를 기울여 듣다)할 것입니다. 사왈 공연히 측령하여 무엇하겠는가. 묻되 초각(超覺; 慧稜의 호)의 후염(後焰)을 묘과(妙果)가 전등(傳燈)했습니다.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제거해버리면 어떻게 서로 보입니까. 사왈 도리어 괴득(怪得; 괴이히 여기다)할 줄 아느냐().

 

福州東禪院可隆了空大師 初開堂有僧問 遠棄九峯丈室來坐東禪道場 人天瞻仰於尊顔 願賜一言而演說 師曰 堯風千載了空不昧於闍梨 曰恁麽卽人天有賴 師曰 當不當 問如何是道 師曰 正是道 曰如何是道中人 師曰 分明向汝道 師上堂曰 大好省要自不仙陀 若是聽響之流 不如歸堂向火 珍重 問如何是普賢第一句 師曰 落第二句也

仙陀; 仙陀婆之略 機靈 機靈者 亦作先陀

 

복주(福州) 동선원(東禪院) 가륭(可隆) 요공대사(了空大師). 처음 개당하자 어떤 중이 묻되 멀리서 구봉장실(九峯丈室)을 버리고 와서 동선도량(東禪道場)에 앉으셨습니다. 인천(人天)이 존안(尊顔)을 첨앙(瞻仰)하니 원컨대 일언(一言)을 하사(下賜)하여 연설하십시오. 사왈(師曰) 요풍(堯風)이 천재(千載), 요공(了空)이 사리(闍梨)를 매()하게 하지 않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인천(人天)이 신뢰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당()하는가, 당하지 않는가.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바로 이 도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중인(道中人)입니까. 사왈 분명히 너를 향해 말했다.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대호(大好; 十分) 성요(省要; 성찰하는 要領)지만 자기가 선타(仙陀)가 아니다. 만약 이 음향을 듣는 무리()라면 귀당(歸堂)하여 향화(向火)함만 같지 못하다. 진중(珍重). 묻되 무엇이 이 보현의 제1구입니까. 사왈 제2구에 떨어졌다.

仙陀; 선타바(仙陀婆)의 약칭이니 기령(機靈)ㆍ기령자. 또한 선타(先陀)로 지음.

 

福州僊宗院守玭禪師 一日不上堂 大衆入方丈參 師曰 今夜與大衆同請假 未審還給假也無 若未聞給假卽先言者負 珍重 僧問 十二時中常在底人 還消得人天供養也無 師曰 消不得 僧曰 爲什麽消不得 師曰 爲汝常在 僧曰 只如常不在底人 還消得也無 師曰 驢年去 僧問 請師答無賓主話 師曰 向無賓主處問將來

請假; 假 休息日 廣韻 假 休假也 請假卽獲得許可而暫時外出辨私事 又作暫假 請假之後歸堂 稱爲參假 按古規 請假之期限爲十五日 過此則爲起單者(離脫者) 後則轉起單爲暫假

 

복주(福州) 선종원(僊宗院) 수빈선사(守玭禪師). 어느 날 상당하지 않자 대중이 방장에 들어가 참()했다. 사왈(師曰) 금야(今夜)에 대중과 함께 청가(請假)하겠다. 미심하나니 도리어 급가(給假)하겠는가 또는 아닌가. 만약 급가를 듣지 못한다면 곧 먼저 말하는 자가 진다(). 진중(珍重). 승문(僧問) 12시 중에 상재(常在)하는 사람은 도리어 인천의 공양을 소득(消得; 消化함을 얻다)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소화함을 얻지 못한다. 승왈(僧曰) 무엇 때문에 소화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네가 상재(常在)하기 때문이다. 승왈 지여(只如) () 있지 않는 사람은 도리어 소득(消得)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여년(驢年)이리라. 승문 청컨대 스님이 무빈주화(無賓主話)에 답하십시오. 사왈 빈주가 없는 곳을 향해 물어 가져 오너라.

請假; ()는 휴식일. 광운 가() 휴가(休假). 청가(請假)는 곧 허가를 획득하여 잠시 외출하여 사사(私事)를 분변함. 또 잠가(暫假)로 지으며 청가의 후에 귀당(歸堂)함을 일컬어 참가(參假)라 함. 고규(古規)를 안험컨대 청가의 기한은 15일이 됨. 이를 경과하면 곧 기단자(起單者; 離脫者)가 됨. 후에 곧 전()하여 기단(起單)을 잠가(暫假)라 했음.

撫州永安院懷烈淨悟禪師 上堂衆集 師顧視左右曰 患謇作麽 便歸方丈 又一日上堂良久曰 幸自可怜生 又被污却也 又曰 大衆正是著力處莫容易 僧問 怡山親聞一句 請師爲學人道 師曰 向後莫錯擧似人

幸自可怜生; 同幸自可憐生

 

무주(撫州) 영안원(永安院) 회열(懷烈) 정오선사(淨悟禪師).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 스님이 좌우를 돌아보며 가로되 떠듬거리는 질환으로 어찌 하겠는가(患謇作麽).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또 어느 날 상당하여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행자가령생(幸自可怜生)이더니 또 오염되어버림을 입었다. 우왈(又曰) 대중이 바로 이 착력(著力)할 곳이니 용이(容易)하다 하지 말아라. 승문(僧問) 이산(怡山)에서 친히 들은 1구를 청컨대 스님이 학인을 위해 말하십시오. 사왈(師曰) 향후에 잘못 사람에게 들어 보이지 말아라.

幸自可怜生; 행자가련생(同幸自可憐生)과 같음.

 

福州閩山令含禪師 初住永福院 上堂曰 還恩恩滿 賽願願圓 便歸方丈 僧問 旣到妙峯頂 誰人爲伴侶 師曰到 僧曰 什麽人爲伴侶 師曰 喫茶去 問明明不會乞師指示 師曰 指示且置 作麽生是爾明明底事 僧曰 學人不會 再乞師指示 師曰 七棒十三

妙峯頂; 卽須彌山 按華嚴經入法界品 善財童子於妙峰山頂上 向德雲比丘 請示菩薩行 在禪林中 用妙峰一詞 形容超絶一切言語思惟 情識分別之絶對境界 卽指本分安住之處 稱爲妙峰孤頂 妙峰頂 孤峰頂上

 

복주(福州) 민산(閩山) 영함선사(令含禪師). 처음엔 영복원(永福院)에 주()했다. 상당하여 가로되 은()을 갚으려니() ()이 원만(圓滿; 滿)하고 원()을 갚으려니() ()이 원만(圓滿; )하다.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승문(僧問) 이미 묘봉정(妙峯頂)에 이르렀으니 어떤 사람(誰人)이 반려(伴侶)가 됩니까. 사왈(師曰) 이르렀다(). 승왈(僧曰) 어떤 사람이 반려가 됩니까. 사왈 차 먹고 가거라. 묻되 명명(明明)하게 알지 못하오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지시는 그래 두고 무엇이 이 너의 명명한 일이냐. 승왈 학인이 알지 못하오니 스님의 지시를 다시 구걸합니다. 사왈 7()13이다.

妙峯頂; 즉 수미산. 화엄경 입법계품을 안험컨대 선재동자가 묘봉산 정상에서 덕운비구를 향해 보살행을 교시(敎示)함을 청했음. 선림 중에 있어서 묘봉 1()를 사용함은 일체의 언어와 사유, 정식(情識)과 분별을 초절(超絶)한 절대(絶對)의 경계를 형용함. 곧 본분으로 안주할 곳을 가리킴이니 묘봉고정(妙峰孤頂)ㆍ묘봉정ㆍ묘봉정상으로 호칭함.

 

新羅龜山和尙 有擧 相國裴公休啓建法會 問看經僧 是什麽經 僧曰 無言童子經 公曰 有幾卷 僧曰 兩卷 公曰 旣是無言爲什麽却有兩卷 僧無對 師代曰 若論無言非唯兩卷

啓建; 法會之首日所擧行之儀式 稱爲啓建

 

신라(新羅) 귀산화상(龜山和尙). ()함이 있었다. 상국(相國) 배공(裴公) ()가 계건법회(啓建法會)에 간경(看經)하는 승인에게 묻되 이 무슨 경입니까. 승왈(僧曰) 무언동자경(無言童子經)입니다. 공왈(公曰) 몇 권이 있습니까. 승왈 두 권입니다. 공왈 이미 이 무언(無言)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두 권이 있습니까. 승인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왈(代曰) 만약 무언을 논하자면 두 권 뿐만이 아닙니다.

啓建; 법회의 첫날 거행하는 바의 의식을 일컬어 계건이라 함.

 

吉州龍須山資國院道殷禪師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普通八年遭梁怪 直至如今不得雪 問千山萬山如何是龍須山 師曰 千山萬山 僧曰 如何是山中人 師曰 對面千里 問不落有無請師道 師曰 汝作麽生問

對面千里; 雖然在對面 猶如隔千里 喩指面對佛法時不能領悟

 

길주(吉州) 용수산(龍須山) 자국원(資國院) 도은선사(道殷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보통(普通) 8년에 양()의 괴이(怪異)를 만나 바로 여금에 이르기까지 씻음()을 얻지 못한다. 묻되 천산만산(千山萬山)에 무엇이 이 용수산(龍須山)입니까. 사왈 천산만산이다. 승왈(僧曰) 무엇이 이 산중인(山中人)입니까. 사왈 대면천리(對面千里). 묻되 유무(有無)에 떨어지지 않고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네가 어떻게(作麽生) 물었느냐.

對面千里; 비록 그렇게 대면하여 있더라도 오히려 천 리를 격했음과 같음. 불법을 대면했을 때 능히 영오하지 못함을 비유로 가리킴.

 

福州祥光院澄靜禪師 僧問 如何是道 師曰 長安鼎沸 僧曰 向上事如何 師曰 谷聲萬籟起 松老五雲披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門下平章事 宮闈較幾重

鼎沸; 水湧流翻騰的樣子 比喻形勢紛擾動亂 形容喧鬧 嘈雜

萬籟; 祖庭事苑六 萬籟 落蓋切 物之有竅 風聲曰籟

門下平章事; 同中書門下平章事 簡稱同平章事 同平章事初用於唐太宗時 自高宗永淳元年(682)始 實際擔任宰相者 或加以同中書門下平章事的名義 中書門下二省 本爲政務中樞 同中書門下平章事卽與中書門下協商處理政務之意 宋初 猶沿用爲宰相官銜 至元豐改制時廢 南宋初恢復 乾道時再廢 [百度百科]

 

복주(福州) 상광원(祥光院) 징정선사(澄靜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師曰) 장안이 정비(鼎沸)한다. 승왈(僧曰) 향상사는 어떻습니까. 사왈 골 소리에 만뢰(萬籟)가 일어나고 솔이 늙어 다섯 구름을 입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가 궁위(宮闈; 궁궐)가 몇 겹인지 계교(計較)한다.

鼎沸; 물이 용류(湧流)하며 번등(翻騰)하는 양자(樣子). 형세가 분요(紛擾)하고 동란(動亂)함에 비유함. 훤뇨(喧鬧). 조잡(嘈雜)을 형용함.

萬籟; 조정사원6. 만뢰(萬籟) 락개절(落蓋切; )이니 물건에 구멍이 있음임. 바람 소리를 가로되 뢰().

門下平章事;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니 간칭(簡稱)이 동평장사(同平章事). 동평장사는 당태종 때 처음 사용했으며 고종 영순 원년(682)으로부터 비롯하여 실제로 재상을 담임한 자니 혹 동중서문하평장사의 명의(名義)를 더했음. 중서ㆍ문하 2()은 본래 정무(政務)의 중추가 되었음. 동중서문하평장사는 곧 중서ㆍ문하와 더불어 정무를 협상하고 처리함의 뜻. 송초에 오히려 따라 쓰면서 재상의 관함(官銜)이 되었으나 원풍(元豐)의 개제(改制) 시에 이르러 폐했음. 남송 초에 회복했다가 건도(乾道) 때 다시 폐했음 [백도백과].

 

襄州鷲嶺明遠禪師 初參長慶 長慶問曰 汝名什麽 師曰 明遠 慶曰 那邊事作麽生 師曰 明遠退兩步 慶曰 汝無端退兩步作麽 師無語 長慶代云 若不退步爭知明遠 師乃喻旨 師住後僧問 無一法當前 應用無虧時如何 師以手卓火 其僧因爾有悟

 

양주(襄州) 취령(鷲嶺) 명원선사(明遠禪師). 장경(長慶)을 초참(初參)하자 장경이 문왈(問曰) 너의 이름이 무엇인가. 사왈(師曰) 명원(明遠)입니다. 경왈(慶曰) 나변사(那邊事)가 어떠한가. 사왈 명원이 두 걸음 물러나겠습니다. 경왈 네가 무단(無端)히 두 걸음 물러나서 무엇하겠는가. 스님이 말이 없자 장경이 대운(代云) 만약 퇴보(退步)하지 않으면 어찌 명원을 알겠는가. 스님이 이에 지취(旨趣)를 깨달았다(). 스님이 주후(住後)에 승문(僧問) 앞에 당할 일법(一法)도 없지만 응용하매 모자라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불을 세웠다(卓火). 그 중이 이로 인해 깨침이 있었다.

 

杭州報慈院從瓌禪師 福州人也 姓陳氏 少投石梯出家 初住越州稱心寺 後住茲院 僧問 古人有言 今人看古敎 未免心中鬧 欲免心中鬧 應須看古敎 如何是古敎 師曰 如是我聞 僧曰 如何是心中鬧 師曰 那畔雀兒聲 師開寶六年癸酉六月十四日辰時 沐浴易衣 告門人付囑訖 右脇而逝

 

항주(杭州) 보자원(報慈院) 종괴선사(從瓌禪師). 복주(福州) 사람이며 성이 진씨(陳氏)니 소년(少年)에 석제(石梯)에게 투신해 출가했다. 처음엔 월주(越州) 칭심사(稱心寺)에 주()했고 후에 이 원(; 報慈院)에 주했다. 승문(僧問) 고인(古人)이 말씀이 있었으니 금인(今人)이 고교(古敎)를 보매/ 심중의 시끄러움을 면하지 못한다/ 심중의 시끄러움을 면하려고 한다면/ 응당 꼭 고교를 보아라. 무엇이 이 고교(古敎)입니까. 사왈 여시아문(如是我聞). 승왈(僧曰) 무엇이 이 심중의 시끄러움입니까. 사왈 저쪽 가(那畔)에 참새(雀兒)가 운다(). 스님이 개보(開寶) 6년 계유(癸酉; 973) 614일 진시(辰時)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 입고(易衣) 문인(門人)에게 알려 부촉(付囑)해 마치고 우협(右脇)으로 서거(逝去)했다.

 

杭州龍華寺契盈廣辯周智大師 本福州黃蘗山受業 於長慶領旨 住後僧問 如何是龍華境 師曰 翠竹搖風寒松鎖月 僧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切莫唐突 問如何是三世諸佛道場 師曰 莫別瞻禮 僧曰 恁麽則亘古亘今 師曰 是什麽年中 問如何是黃蘗山主 師曰 謝仁者相訪 問如何是黃蘗境 師曰 龍吟瀑布水 雲起翠微峯

唐突; 指橫沖直撞 冒犯 非常突然的意思

 

항주(杭州) 용화사(龍華寺) 계영(契盈) 광변(廣辯) 주지대사(周智大師). 본래 복주(福州) 황벽산(黃蘗山)에서 수업(受業)했고 장경(長慶)에서 지취를 영오(領悟)했다. 주후(住後)에 승문(僧問) 무엇이 이 용화(龍華; 廣辯을 가리킴)의 경계입니까. 사왈(師曰) 푸른 대가 바람에 흔들리고 차가운 솔이 달을 에웠다. 승왈(僧曰) 무엇이 이 경계 가운데의 사람입니까. 사왈 간절하게 당돌(唐突)하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삼세제불의 도량입니까. 사왈 따로 첨례(瞻禮)하지 말아라. 승왈 이러하다면 곧 긍고긍금(亘古亘今)입니다. 사왈 이 어떤 연중(年中)이냐. 묻되 무엇이 이 황벽산주(黃蘗山主)입니까. 사왈 인자(仁者)의 상방(相訪)에 감사한다. 묻되 무엇이 이 황벽의 경계입니까. 사왈 용이 폭포수에 읊조리고 구름이 취미봉(翠微峯)에 일어난다.

唐突; 갑자기 부딪치며 바로 침ㆍ모범(冒犯; 일부러 법을 어기는 말이나 행동을 함)ㆍ비상의 돌연한 의사(意思)를 가리킴.

 

前杭州龍冊寺道怤禪師法嗣

越州淸化山師訥禪師 僧問 十二時中如何得不疑不惑去 師曰好 僧曰 恁麽則得遇於師也 師曰 珍重 有僧來禮拜 師曰 子亦善問吾亦善答 僧曰 恁麽卽大衆久立 師曰 抑逼大衆作什麽 問去却賞罰 如何是吹毛劍 師曰 錢塘江裏好渡船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可殺新鮮

 

월주(越州) 청화산(淸化山) 사눌선사(師訥禪師). 승문(僧問) 12시 중에 어찌 해야 불의불혹(不疑不惑)하여 감을 얻습니까. 사왈(師曰) 좋구나().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스님을 만남을 얻었습니다. 사왈 진중(珍重)하라. 어떤 중이 와서 예배했다. 사왈 자네도 또한 잘 묻고 나도 또한 잘 답했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구립(久立)했습니다. 사왈 대중을 억핍(抑逼)하여 무엇하겠는가. 묻되 상벌(賞罰)을 제거해버리면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사왈 전당강(錢塘江) 속의 훌륭한 도선(渡船)이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가쇄(可殺; 가히 매우) 신선(新鮮)하다.

 

衢州南禪遇緣禪師 有俗士時謂之鐵脚 忽因騎馬 有僧問 師旣是鐵脚 爲什麽却騎馬 師曰 腰帶不因遮腹痛 幞頭豈是禦天寒 有俗官問 和尙恁後生 爲什麽却爲尊宿 師云 千歲只言朱頂鶴 朝生便是鳳凰兒 師有時云 此箇事得恁難道 有僧出曰 請師道 師曰 睦州溪苔 錦軍石耳

石耳; 附著在石面的地衣類植物 其形似耳 可食

 

구주(衢州) 남선(南禪) 우연선사(遇緣禪師). 속사(俗士)로 있을 때 이르기를 철각(鐵脚)이라 했다. 홀연히 기마(騎馬)함으로 인해 어떤 중이 묻되 스님은 이미 이 철각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기마합니까. 사왈 요대(腰帶)는 복통(腹痛)을 가리는() 원인(原因)이 아니거늘 복두(幞頭)가 어찌 이, 천한(天寒)을 막겠는가(). 어떤 속관(俗官)이 묻되 화상은 이렇게 후생(後生)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존숙(尊宿)이 되었습니까. 사운(師云) 천세(千歲)에 다만 주정학(朱頂鶴)이라 말하고 조생(朝生)에 바로 이 봉황아(鳳凰兒). 스님이 어떤 때 이르되 차개사(此箇事; 此事)는 이렇게() 말하기 어려움을 얻는다.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목주(睦州)의 계태(溪苔)며 금군(錦軍)의 석이(石耳).

石耳; 돌의 표면에 부착되어 있는 지의류(地衣類) 식물이니 그 형상이 귀와 흡사하고 가히 먹음.

 

復州資福院智遠禪師 福州連江人也 童蒙出家 詣峽山觀音院法宣禪師落髮受具 給侍勤恪專於誦持 一日宣禪師謂曰 觀汝上根堪任大事 何不遍參而滯於此乎 師遂禮辭歷諸方 至越州鏡淸禮順德大師 因問曰 如何是諸佛出身處 順德曰 大家要知 師曰 斯則衆眼難謾 順德曰 理能縛豹 師因此發悟玄旨

復州; 今湖北天門

順德大師; 五代吳越僧道怤 署號順德大師

理能縛豹; 柔能制剛之義

 

복주(復州) 자복원(資福院) 지원선사(智遠禪師). 복주 연강(連江) 사람이며 동몽(童蒙)에 출가했고 협산(峽山) 관음원 법선선사(法宣禪師)에게 나아가 낙발(落髮)하고 수구(受具)했는데 급시(給侍)하면서 근각(勤恪; 부지런하고 삼가다)했고 송지(誦持)에 전념(專念)했다. 어느 날 선선사(宣禪師)가 일러 가로되 너를 보건대 상근(上根)이라 대사(大事)를 감임(堪任)할 만하거늘 왜 편참(遍參)하지 않고 여기에 체재(滯在)하느냐. 스님이 드디어 예사(禮辭)하고 제방을 편력(遍歷)했다. 월주(越州) 경청(鏡淸; 경청사)에 이르러 순덕대사(順德大師)를 예알했고 인하여 문왈(問曰) 무엇이 이 제불의 출신처(出身處)입니까. 순덕이 가로되 대가(大家; 대중)가 알기를 요한다. 사왈(師曰) 이러한 즉 중안(衆眼)을 속이기 어렵습니다. 순덕이 가로되 이치로 능히 표범을 묶는다(理能縛豹). 스님이 이로 인해 현지(玄旨)를 발오(發悟; 了解. 領會)했다.

復州; 지금의 호북 천문(天門).

順德大師; 오대 오월승 도부(道怤)의 서호(署號)가 순덕대사.

理能縛豹;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제어(制御)함의 뜻.

 

周顯德三年丙辰 復州刺史率僚吏緇黃千衆 請師於資福院開堂說法時謂東禪院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雪嶺峯前月 鏡湖波裏明 問諸佛出世 天雨四華 地搖六動 和尙今日有何禎祥 師曰 一物不生全體露 目前光彩阿誰知 問如何是直示一句 師曰 是什麽 師又曰 還會麽 會去卽今便了 不會塵沙算劫 只據諸賢分上 古佛心源明露現前 匝天遍地森羅萬象自己家風 佛與衆生本無差別 涅槃生死幻化所爲 性地眞常不勞修證 師又曰 要知此事當陽顯露 竝無寸草蓋覆 便承當取最省心力 師如是爲衆涉于二十二載 太平興國二年丁丑九月十六日 聲鍾辭衆 至二十七日辰時 恬然坐化 壽八十三 臘六十三

僚吏; 属吏 属官

緇黃; 僧侶與道士之竝稱 因僧侶著緇服 道士戴黃冠 故二者竝稱爲緇黃

四華; 一分陀利華 白蓮華也 二優鉢羅華 靑蓮華也 三鉢特摩華 紅蓮華也 四拘勿投華 黃蓮華也 又一曼陀羅華 白蓮華也 二摩訶曼陀羅華 大白蓮華也 三曼殊沙華 赤蓮華也 四摩訶曼殊沙華 大赤蓮華也

六動; 仁王般若經疏上一 六動者 東涌西沒 西涌東沒 南涌北沒 北涌南沒 邊涌中沒 中涌邊沒 妙法蓮華經文句二上 六動者 動起涌震吼覺 一一中又有三 謂動 遍動 等遍動 直動爲動 四天下動爲遍動 大千動爲等遍動 餘五亦如是 合十八種動 此卽表淨十八界也

禎祥; 一吉祥的徵兆 二吉祥 幸福

 

() 현덕(顯德) 3년 병진(丙辰; 956) 복주자사(復州刺史)가 요리(僚吏) 및 치황(緇黃) 천중(千衆)을 거느리고() 자복원(資福院)에서 개당설법(開堂說法)하기를 스님에게 청했다당시에 이르기를 東禪院이라 했다.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설령(雪嶺)의 봉전(峯前)의 달이며 경호(鏡湖)의 파리(波裏)의 밝음이다. 묻되 제불이 출세하매 하늘에서 사화(四華)를 비 내리고 대지가 육동(六動)으로 흔들렸거니와 화상은 금일 어떤 정상(禎祥)이 있습니까. 사왈 일물(一物)도 나지 않아야 전체가 드러나거니와 목전의 광채(光彩)를 누가(阿誰) 아느냐. 묻되 무엇이 이 직시(直示)하는 1구입니까. 사왈 이 뭣고. 스님이 또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안다면(會去) 즉금 바로 마치지만() 알지 못하면 진사(塵沙)로 계산하는 겁이다. 다만 제현(諸賢)의 분상(分上)에 의거하자면 고불의 심원(心源)이 밝게 드러나 현전(現前)하고 잡천편지(匝天遍地; 온 하늘 온 땅)와 삼라만상이 자기의 가풍이다. 부처와 중생이 본래 차별이 없고 열반과 생사가 환화(幻化)의 소위(所爲)며 성지(性地)의 진상(眞常)은 노고롭게 수증(修證)하지 않는다. 스님이 또 가로되 차사(此事)를 알기를 요한다면 당양(當陽; 當面. 當場)에 현로(顯露)하여 모두() 촌초(寸草)의 개부(蓋覆)가 없나니 바로 승당(承當)해 취해야 가장 심력을 줄인다. 스님이 이와 같이 위중(爲衆)하며 22()에 건넜다.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 정축(丁丑; 977) 916일 종을 울리고(聲鍾) 대중에게 고별하고는 27일 진시(辰時)에 이르러 고요히(恬然) 좌화(坐化)했다. 나이는 83이며 납은 63이다.

僚吏; 속리(属吏). 속관(属官).

緇黃; 승려와 도사(道士)의 병칭. 승려는 치복(緇服)을 입고 도사는 황관(黃冠)을 쓰므로() 인해 고로 2자를 병칭해 치황(緇黃)이라 함.

四華; 1. 분다리화(分陀利華; puṇḍarīka) 백련화임. 2. 우발라화(優鉢羅華; utpala) 청련화임. 3. 발특마화(鉢特摩華; padma) 홍련화임. 4. 구물투화(拘勿投華; kumuda) 황련화임. 1. 만다라화(曼陀羅華; māndārava) 백련화임. 2. 마하만다라화(摩訶曼殊沙華; mahā-māndārava) 대백련화임. 3. 만수사화(曼殊沙華; mañjūṣaka) 적련화임. 4. 마하만수사화(摩訶曼殊沙華; mahā- mañjūṣaka) 대적련화임.

六動; 인왕반야경소상1. 6()이란 것은 동용서몰(東涌西沒; 동에서 솟아 서로 잠김)ㆍ서용동물(서에서 솟아 동으로 잠김)ㆍ남용북몰(남에서 솟아 북으로 잠김)ㆍ북용남몰(북에서 솟아 남으로 잠김)ㆍ변용중몰(가에서 솟아 중간으로 잠김)ㆍ중용변몰(중간에서 솟아 가로 잠김)이다. 묘법연화경문구2. 6()이란 것은 동기용진후각(動起涌震吼覺)이다. 하나하나 중에 또 셋이 있다. 이르자면 동()ㆍ편동(遍動)ㆍ등편동(等遍動)이다. 바로 동함이 동이 되고 사천하가 동함이 편동이 되고 대천이 동함이 등편동이 된다. 나머지 다섯도 또한 이와 같다. 합계 18종의 동이니 이것은 곧 정십팔계(淨十八界)를 표시한다.

禎祥; 1. 길상(吉祥)의 징조. 2. 길상. 행복.

 

前漳州報恩院懷岳禪師法嗣

潭州妙濟院師浩傳心大師 曾住郴州香山 僧問 擬卽第二頭 不擬卽第三首 如何是第一頭 師曰收 僧問 古人斷臂當爲何事 師曰 我寧可斷臂 問如何是學人眼 師曰 須知我好心 問如何是香山劍 師曰異 僧曰 還露也無 師曰 不忍見 問如何是松門第一句 師曰 切不得錯擧 問如何是妙濟家風 師曰 左右人太多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兩口無一舌 問如何是香山一路 師曰 滔滔地 僧曰 到者如何 師曰 息汝平生 問如何是世尊密語 師曰 阿難亦不知 僧曰 爲什麽不知 師曰 莫非仙陀 問如何是香山寶 師曰 碧眼胡人不敢定 僧曰 露者如何 師曰 龍王捧不起 因僧擧 聖僧塑像被虎咬乃問師 旣是聖僧爲什麽被大蟲咬 師曰 疑殺天下人 問如何是無慚愧底人 師曰 闍梨合喫棒

郴州; 今郴州市 位於湖南省東南部 武德(618-626)初年 改桂陽郡爲郴州 天寶元年(742) 改州爲郡 乾元元年(758) 又改郡爲州 [百度百科]

 

담주(潭州) 묘제원(妙濟院) 사호(師浩) 전심대사(傳心大師). 일찍이 침주(郴州) 향산(香山)에 주()했다. 승문(僧問) 헤아리면() 곧 제2(第二頭)며 헤아리지 않으면 제3(第三首)니 무엇이 이 제1(第一頭)입니까. 사왈(師曰) 거두어라(). 승문(僧問) 고인이 단비(斷臂)함은 마땅히 어떤 일을 위함입니까. 사왈 내가 어찌() 가히 단비하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눈입니까. 사왈 내가 호심(好心)임을 수지(須知)하라. 묻되 무엇이 이 향산(香山)의 검()입니까. 사왈 다르다(). 승왈(僧曰) 도리어 드러났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차마 보지 못한다(不忍見). 묻되 무엇이 이 송문(松門)의 제1구입니까. 사왈 간절히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묘제(妙濟)의 가풍입니까. 사왈 좌우의 사람이 너무 많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두 입에 한 혀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향산(香山)의 일로(一路)입니까. 사왈 도도지(滔滔地). 승왈 이르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너의 평생을 쉬게 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세존의 밀어(密語)입니까. 사왈 아난도 또한 알지 못한다. 승왈 무엇 때문에 일지 못합니까. 사왈 선타(仙陀)가 아님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향산(香山)의 보배입니까. 사왈 벽안호인(碧眼胡人; 달마를 가리킴)도 감히 정()하지 못한다. 승왈 드러난 것(露者)은 어떻습니까. 사왈 용왕도 받들어 일으키지 못한다. 중이 거()하되 성승(聖僧)의 소상(塑像)이 범에게 물림을 입어 이에 스님에게 묻되 이미 이 성승이거늘 무엇 때문에 대충(大蟲)에게 물림을 입었습니까 함으로 인해 사왈 천하인을 너무 의심케 한다(疑殺). 묻되 무엇이 이 참괴(慚愧)가 없는 사람입니까. 사왈 사리(闍梨)는 합당히 끽방(喫棒)해야 한다.

郴州; 지금의 침주시니 호남성 동남부에 위치함. 무덕(618-626) 초년 계양군을 고쳐 침주로 삼았고 천보 원년(742) 주를 고쳐 군()으로 삼았고 건원 원년(758) 또 군을 고쳐 주로 삼았음 [백도백과].

 

前福州鼓山神晏國師法嗣

杭州天竺山子儀心印水月大師 溫州樂淸縣人也 姓陳氏 初遊方謁鼓山 因問曰 子儀三千里外遠投法席 今日非時上來 乞師非時答話 鼓山曰 不可鈍置仁者 師曰 省力處如何 鼓山曰 汝何費力 師自此承言領旨 便往浙中 錢忠懿王聆其道譽 命開法于羅漢光福二道場 海衆臻湊 師上堂示衆曰 久立大衆 更待什麽 不辭展拓 却恐誤於禪德 轉迷歸路 時寒珍重 僧問 如何是從上來事 師曰住 僧曰 如何薦 師曰 可惜龍頭翻成蛇尾 有僧禮拜起將問話 師曰 如何且置 其僧乃問 只如興工之子 還有相親分也無 師曰 只待局終不知柯爛 問如何是維摩默 師曰謗 僧曰 文殊因何讚 師曰 同案領過 僧曰 維摩又如何 師曰 頭上三尺巾 手裏一枝拂 問如何是諸佛出身處 師曰 大洋海裏一星火 僧曰 學人不會 師曰 燒盡魚龍

錢忠懿; 五代十國時期吳越的最後一位國王錢弘俶 諡號忠懿王

道譽; 精通經義 道行高深的聲譽

展拓; 開辟 擴充

歸路; 喩指明見自心 獲得省悟的法門

只待局終不知柯爛; 從容錄第五十七則云 王氏神仙傳 晉隆安時 信安縣王質 採薪至眩室坂 見石室四童子弈棊 與質物 如棗子 含之不飢 棊終斧柯爛於腰間 衣袂隨風 抵暮還家 已數十年矣

同案領過; 以同一文案 接受處分多種案件之意 過 助詞

一星火; 星 比喩星狀物 多指細碎細小 或閃亮的東西

 

항주(杭州) 천축산 자의(子儀) 심인(心印) 수월대사(水月大師). 온주(溫州) 낙청현(樂淸縣) 사람이며 성이 진씨(陳氏). 처음 유방(遊方)하다가 고산(鼓山)을 예알했고 인하여 문왈(問曰) 자의(子儀)3천 리 밖 멀리서 법석에 투입했습니다. 금일 비시(非時)에 올라왔으니 스님의 비시(非時)의 답화(答話)를 구걸합니다. 고산이 가로되 인자(仁者)를 둔치(鈍置)함은 옳지 않다. 사왈(師曰) 힘을 더는 곳이 어떻습니까. 고산이 가로되 네가 왜 힘을 허비(虛費)하느냐. 스님이 이로부터 승언(承言)하고 영지(領旨)했다. 바로 절중(浙中)으로 갔는데 전충의왕(錢忠懿王)이 그 도예(道譽)를 듣고() ()하여 라한(羅漢)ㆍ광복(光福) 두 도량에서 개법(開法)했는데 해중(海衆)이 진주(臻湊; 모이다)했다. 스님이 상당해 시중하여 가로되 구립(久立; 오랫동안 서 있음)했다, 대중이여. 다시 무엇을 기다리느냐. 전척(展拓; 開辟)을 사양하지 않으나 도리어 선덕(禪德)을 그르쳐 더욱 귀로(歸路)를 혼미하게 할까 염려한다. 시일이 차가우니 진중하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종상래사(從上來事)입니까. 사왈 멈추어라(). 승왈(僧曰) 어떻게 천(; 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가석하게도 용두(龍頭)가 도리어() 사미(蛇尾)를 이루었다. 어떤 중이 예배하고 일어나 장차 문화(問話)하려는데 사왈 여하(如何)는 그만 두어라(且置). 그 중이 이에 묻되 지여(只如) 흥공지자(興工之子)는 도리어 상친(相親)할 분한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다만 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도낏자루가 문드러지는 줄 알지 못하는구나(只待局終不知柯爛). 묻되 무엇이 이 유마(維摩)의 묵()입니까. 사왈 방(; 비방)이다. 승왈 문수가 무엇 때문에 찬(; 찬탄)했습니까. 사왈 동안영과(同案領過)한다. 승왈 유마는 또 어떻습니까. 사왈 두상(頭上)3()의 두건(頭巾; )이며 수리(手裏)1()의 불자(拂子; ).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출신처입니까. 사왈 대양(大洋)의 바닷속의 일성화(一星火). 승왈 학인이 알지 못하겟습니다. 사왈 어룡(魚龍)을 태워 없앴다.

錢忠懿; 오대십국 시기 오월(吳越)의 최후 1위의 국왕 전홍숙(錢弘俶; 929-988 재위 948-978)의 시호가 충의왕(忠懿王)

道譽; 경의(經義)에 정통하고 도행(道行)이 고심(高深)한 성예(聲譽; 名譽. 聲望).

展拓; 개벽(開辟). 확충(擴充).

歸路; 자심을 환히 보아 성오를 획득하는 법문을 비유로 가리킴.

只待局終不知柯爛; 종용록 제57칙에 이르되 왕씨신선전 진() 융안(隆安; 397-401) 때 신안현의 왕질(王質)이 땔감을 채취하려고 현실판(眩室坂)에 이르렀는데 보니 석실에서 네 동자가 바둑을 두었다. 왕질에게 물건을 주었는데 대추와 같았다. 이를 머금었더니 배고프지 않았다. 바둑을 마치자 도끼 자루가 허리 사이에서 문드러졌고 옷소매는 바람을 따랐다. 저녁에 다다라 집에 돌아왔는데 이미 수십 년이었다.

同案領過; 동일한 문안(文案)으로 여러 안건을 접수하여 처분함의 뜻. ()는 조사.

一星火; ()은 성상(星狀; 별 모양)의 물건에 비유함. 다분히 세쇄세소(細碎細小; 잘고 작음)하거나 혹 섬량(閃亮; 번쩍이며 밝음)의 동서(東西; 물건)를 가리킴.

 

問丹霞燒木佛意旨如何 師曰 寒卽圍鑪向猛火 僧曰 還有過也無 師曰 熱卽竹林溪畔坐 問如何是法界義宗 師曰 九月九日浙江潮 問諸餘卽不問 如何是光福門下超毘盧越釋迦底人 師曰 諸餘奉納 僧曰 恁麽卽平生慶幸去也 師曰 慶幸事作麽生 其僧罔措 師喝之 師將下堂 僧問下堂一句乞師分付 師曰 携履已歸西國去 此山空有老猿啼 問鼓山有掣鼓奪旗之說 師且如何 師曰 敗將不忍誅 僧曰 或遇良將又如何 師曰 念子孤魂賜汝三奠 問世尊入滅當歸何所 師曰 鶴林空變色 眞歸無所歸 僧曰 夫子必定何之 師曰 朱實殞勁風 繁英落素秋 僧曰 我師將來復歸何所 師曰 子今欲識吾歸處 東西南北柳成絲 問如何修行卽得與道相應 師曰 高捲吟中箔 濃煎睡後茶 師迴故里 雍熙三年示滅 門人闍維收舍利建塔

三奠; 上奠三次 卽向故人或先祖祭拜三次

鶴林; 釋尊於娑羅雙樹間入滅時 樹一時開華 林色變白 如鶴之群居 故云鶴林 涅槃經一曰 爾時 拘尸那城娑羅樹林 其林變白 猶如白鶴

夫子; 一古時對男子的尊稱 二舊時稱呼學者或老師 三舊時稱自己的丈夫 四特指孔子

素秋; 秋季 五行之說 秋屬金 其色白 故稱素秋

 

묻되 단하(丹霞)가 목불을 태운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師曰) 추우면 곧 위로(圍鑪)하여 맹화(猛火)를 향한다. 승왈(僧曰) 도리어 허물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더우면 곧 죽림의 계반(溪畔; 개울 가)에 앉는다. 묻되 무엇이 이 법계(法界)의 의종(義宗)입니까. 사왈 99일 절강(浙江)의 조수(潮水). 묻되 제여(諸餘)는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광복문하(光福門下)의 비로를 초월하고 석가를 초월하는 사람입니까(超毘盧越釋迦底人). 사왈 제여(諸餘)를 봉납(奉納; 저본에 奉衲으로 지었음)하라. 승왈 이러하다면 곧 평생 경행(慶幸)일 것입니다. 사왈 경행사(慶幸事)가 어떠한가. 그 중이 망조(罔措)했다. 스님이 할()했다. 스님이 장차 하당(下堂; 법당에서 내려감)하려고 하자 승문(僧問) 하당의 1구를, 스님의 분부를 구걸합니다. 사왈 신을 가지고 이미 서국(西國)으로 돌아갔거늘 차산(此山)에 공연히 노원(老猿)의 울음이 있다. 묻되 고산(鼓山)에 체고탈기(掣鼓奪旗; 북을 끌어당기고 기를 빼앗다)의 설이 있거니와 스님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패장(敗將)을 차마 베지() 못한다. 승왈 혹 양장(良將)을 만나면 또 어떻습니까. 사왈 자네의 고혼(孤魂)을 염려해 너에게 삼전(三奠)을 준다. 묻되 세존이 입멸하여 마땅히 어느 곳으로 돌아갔습니까. 사왈 학림(鶴林)이 공연히 변색(變色)했나니 진귀(眞歸)는 돌아가는 바가 없다. 승왈 부자(夫子)가 필정(必定; 決定)코 어디로 갔습니까(何之). 사왈 주실(朱實; 붉은 과일)은 경풍(勁風; 강한 바람)에 떨어지고() 번영(繁英; 많이 피어 있는 꽃)은 소추(素秋)에 떨어진다. 승왈 아사(我師)가 장래에 어느 곳에 복귀(復歸)합니까. 사왈 자네가 즉금 나의 귀처(歸處)를 알고자 한다면 동서남북의 버들이 실을 이루었다. 묻되 어떻게 수행해야 곧 도와 상응합니까. 사왈 음중(吟中)의 박(; )을 높이 걷고() 수후(睡後)의 차를 진하게 끓인다. 스님이 고리(故里)로 돌아갔다가 옹희(雍熙) 3(986) 시멸(示滅)했고 문인(門人)이 사유(闍維)해 사리를 거두어 건탑했다.

三奠; 상전(上奠)을 세 차례 함이니 곧 고인(故人) 혹 선조를 향해 제배(祭拜)를 세 차례 함.

鶴林; 석존이 사라쌍수(娑羅雙樹) 사이에서 입멸할 때 수()가 일시에 개화(開華)했고 임색(林色)이 희게 변해 학의 군거(群居)와 같았으므로 고로 이르되 학림(鶴林). 열반경1에 가로되 이때 구시나성(拘尸那城) 사라수림(娑羅樹林)의 그 숲이 희게 변했는데 마치 백학과 같았다.

夫子; 1. 고시(古時) 남자에 대한 존칭. 2. 구시(舊時) 학자나 혹 노사(老師)의 칭호. 3. 구시 자기의 장부의 호칭. 4. 특별히 공자(孔子)를 가리킴.

素秋; 추계. 5행의 설에 가을은 금()에 속하고 그 색은 백()인지라 고로 명칭이 소추(素秋).

 

建州白雲智作眞寂禪師 永貞人也 姓朱氏 容若梵僧 禮鼓山國師披剃 二十四具戒 一日鼓山上堂召大衆 衆皆迴眸 鼓山披襟示之 衆罔措 唯師朗悟厥旨入室印證 又參次鼓山召令近前 問南泉喚院主意作麽生 師斂手端容退立而已 鼓山莞然奇之 自爾遊吳楚却復閩川 初住南峯 次住建州白雲院 師上堂曰 還有人向宗乘中致得一問麽 待山僧向宗乘中答 時有僧禮拜才起 師便歸方丈 問如何是枯木裏龍吟 師曰 火裏蓮生 僧曰 如何是髑髏裏眼睛 師曰 泥牛入水 問如何是主中主 師曰 汝還具眼麽 僧曰 恁麽卽學人歸堂去也 師曰 猢猻入布袋 問如何是延平津 師曰 萬古水溶溶 僧曰 如何是延平劍 師曰 速須退步 僧曰 未審津與劍是同是異 師曰 可惜許漢

莞然; 同莞爾 形容微笑

溶溶; 一寬廣的樣子 二河水流動的樣子

 

건주(建州) 백운(白雲) 지작(智作) 진적선사(眞寂禪師). 영정(永貞) 사람이며 성이 주씨(朱氏). 용모가 범승(梵僧)과 같았고 고산국사(鼓山國師)를 예알해 피체(披剃)하고 24에 구계(具戒)했다. 어느 날 고산이 상당하여 대중을 불렀다. 대중이 모두 눈을 돌렸다(迴眸). 고산이 가슴을 헤쳐(披襟) 보이자 대중이 망조(罔措)했는데 오직 스님만 그 지취를 환히() 깨달았고 입실하여 인증(印證)했다. 또 참차(參次)에 고산이 불러 근전(近前)하게 하고는 묻되 남천(南泉)이 원주를 부른 뜻이 무엇인가. 스님이 손을 거두고 단정한 용모로 후퇴하여 섰을 따름이었다. 고산이 완연(莞然)하며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이로부터 오초(吳楚)에 노닐다가 도리어 민천(閩川)으로 복귀했다. 처음은 남봉(南峯)에 주()했고 다음은 건주(建州) 백운원(白雲院)에 주했다.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도리어 종승(宗乘) 가운데를 향해 일문(一問)을 치득(致得; 이루다)할 사람이 있느냐. 산승이 종승(宗乘) 가운데를 향해 답함을 기다려라. 때에 어떤 중이 예배하고 겨우 일어나는데 스님이 바로 방장으로 돌아갔다. 묻되 무엇이 이 고목(枯木) 속에 용이 읊조림입니까. 사왈(師曰) 불 속에 연꽃이 난다. 승왈(僧曰) 무엇이 이 촉루(髑髏) 속의 눈동자(眼睛)입니까. 사왈 이우(泥牛)가 입수(入水)했다. 묻되 무엇이 이 주중주(主中主)입니까. 사왈 네가 도리어 눈을 갖추었느냐. 승왈 이러하다면 곧 학인이 귀당(歸堂)할 것입니다. 사왈 호손(猢猻; 원숭이)이 포대(布袋)에 들어간다. 묻되 무엇이 이 연평진(延平津)입니까. 사왈 만고(萬古)에 물이 용용(溶溶)하다. 승왈 무엇이 이 연평검(延平劍)입니까. 사왈 속히 퇴보(退步)함을 써라(). 승왈 미심하오니 진()과 검이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가석한 자로다(可惜許漢).

莞然; 완이(莞爾)와 같음. 미소를 형용함.

溶溶; 1. 관광(寬廣)한 양자(樣子). 2. 하수(河水)가 유동(流動)하는 양자.

 

乾祐二年已酉 江南國主李氏延居奉先 賜紫衣師名 上堂升坐 衆咸側聆 師曰 相謾去也 還知得麽 可不聞昔日靈山多少士衆 只道迦葉親聞 今日叨奉恩命俾揚宗敎 不可異於靈山也 旣不異靈山 諸仁者作麽生相體悉 也莫泥他古今 但彼此著些精彩 大家驗看是什麽 僧問 靈山一會不異而今 未審親聞底事如何 師曰 更擧 曰恁麽卽人天有賴 師曰 闍梨且作麽生 問賢王請命大展法筵 祖師西來如何指示 師曰 分明記取 曰終不敢孤負和尙 師曰 也未在 僧問如何是奉先境 師曰 一任觀看 僧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莫無禮 問如何是奉先家風 師曰 卽今在什麽處 僧曰 恁麽卽大衆有賴也 師曰 關汝什麽事 問如何是爲人一句 師曰 不是奉先道不得

 

건우(乾祐) 2년 기유(已酉; 949) 강남국주(江南國主) 이씨(李氏)가 맞이해 봉선(奉先)에 거주케 하고 자의(紫衣)와 사명(師名)을 주었다. 상당하여 승좌(升坐)하자 대중이 모두() 측령(側聆; 귀를 기울여 듣다)했다. 사왈(師曰) 상만(相謾)하여 가겠다. 도리어 지득(知得)하느냐. 가히 듣지 못했느냐, 석일(昔日) 영산(靈山)의 다소(多少)의 사중(士衆; 사내의 무리)에 다만 말하기를 가섭이 친문(親聞)했다 하거니와 금일 외람되이() 은명(恩命)으로 종교(宗敎)를 거양(擧揚)하게 함을 받들었으니 가히 영산과 다르지 않다 하리라. 이미 영산과 다르지 않으니 제인자(諸仁者)가 어떻게 서로 체실(體悉; 체득해 알다)하는가. 또한 저 고금(古今)에 구니(拘泥; 拘礙)되지 말고 단지 피차 조금()의 정채(精彩)를 붙여야 하리니 대가(大家)가 시험 삼아 보아라, 이 무엇인가(是什麽). 승문(僧問) 영산의 일회(一會)가 이금(而今)과 다르지 않다 하니 미심합니다, 친문(親聞)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왈 다시 들어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인천(人天)이 신뢰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사리(闍梨)는 또 어떠한가. 묻되 현왕(賢王)이 청명(請命)하여 법연(法筵; 법회)을 크게 열었으니 조사(祖師; 저본에 祖嗣로 지었음)의 서래(西來)를 어떻게 지시(指示)하시겠습니까. 사왈 분명히 기취(記取)하라. 가로되 마침내 감히 화상을 저버리지(孤負) 않겠습니다. 사왈 또한 미재(未在; 不然). 승문 무엇이 이 봉선경(奉先境)입니까. 사왈 관간(觀看)하는 대로 일임한다. 승왈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무례(無禮)하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봉선(奉先)의 가풍입니까. 사왈 즉금 어느 곳에 있느냐. 승왈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신뢰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너의 어떤 일에 상관되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이 봉선(奉先)이 아니면 말함을 얻지 못한다.

 

鼓山智嚴了覺大師第二世住師上堂曰 多言復多語 由來返相誤 珍重 僧問 石門之句卽不敢問 請師方便 師曰 問取露柱 問國王出世三邊靜 法王出世有何恩 師曰 還會麽 僧曰 幸遇明朝輒伸呈獻 師曰 吐却著 僧曰 若不禮拜 幾成無孔鐵鎚 師曰 何異無孔鐵鎚

無孔鐵鎚; 無孔鐵椎 無孔鐵槌

 

고산(鼓山) 지엄(智嚴) 요각대사(了覺大師)第二世住.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다언(多言)과 다시 다어(多語)는 유래(由來)로 도리어 서로 그르친다(). 진중(珍重). 승문(僧問) 석문지구(石門之句)는 곧 감히 묻지 않나니 스님의 방편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노주(露柱)에게 문취(問取)하라. 묻되 국왕이 출세하면 삼변(三邊)이 고요하거니와 법왕이 출세하면 어떤 은덕이 있습니까. 사왈 도리어 아느냐. 승왈(僧曰) 다행히 명조(明朝; 淸晨)에 거듭() 정헌(呈獻)을 폄()을 만났습니다. 사왈 토해버려라(吐却著). 승왈 만약 예배하지 않았다면 거의 무공철추(無孔鐵鎚)를 이룰 뻔했습니다. 사왈 어찌 무공철추와 다르겠는가.

無孔鐵鎚; 무공철추(無孔鐵椎)ㆍ무공철추(無孔鐵槌)와 같음.

 

福州龍山智嵩妙空大師 師上堂曰 幸自分明 須作遮箇節目作麽 到遮裏便成節目 便成增語便成塵玷 未有如許多時作麽生 僧問 古佛化導今祖重興 人天輻湊於禪庭 至理若爲於開示 師曰 亦不敢孤負大衆 僧曰 恁麽卽人天不謬殷勤請 頓使凡心作佛心 師曰 仁者作麽生 僧曰 退身禮拜 隨衆上下 師曰 我識得汝也

幸自; 本來 本自

塵玷; 亦作塵點 汙染 玷辱

 

복주(福州) 용산(龍山) 지숭(智嵩) 묘공대사(妙空大師).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행자(幸自) 분명하거늘 저개(遮箇)의 절목(節目; 條目)을 지음을 써서() 무엇하겠는가. 이 속에 이르러선 바로 절목(節目)을 이루고 바로 증어(增語)를 이루고 바로 진점(塵玷)을 이루나니 허다한 것 같은 게 있지 않을 때 어떠한가. 승문(僧問) 고불(古佛)이 화도(化導)하고 금조(今祖)가 중흥(重興)하여 인천(人天)이 선정(禪庭; 禪院)에 복주(輻湊)하니 지리(至理)를 어떻게(若爲) 개시(開示)하겠습니까. 사왈 또한 감히 대중을 고부(孤負; 저버리다)하지 않는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인천(人天)이 은근(殷勤)히 청함에 어긋나지() 않아 단박에 범심(凡心)으로 하여금 불심(佛心)을 짓게 할 것입니다. 사왈 인자(仁者)는 어떠한가. 승왈 퇴신(退身)하고 예배하며 대중의 오르내림을 따르겠습니다. 사왈 내가 너를 식득(識得)했다.

幸自; 본래. 본자(本自).

塵玷; 또한 진점(塵點)으로 지음. 오염(汙染). 점욕(玷辱).

 

泉州鳳凰山疆禪師 僧問 燈傳鼓嶠 道覇溫陵 不跨石門 請師通信 師曰 若不是今日 攔胸撞出 僧曰 恁麽卽今日親聞師子吼 他時終作鳳凰兒 師曰 又向遮裏塗污人 問白浪滔天境 何人住太虛 師曰 靜夜思堯鼓 迴頭聞舜琴

攔胸; 對著胸

 

천주(泉州) 봉황산 강선사(疆禪師). 승문(僧問) ()은 고교(鼓嶠; 鼓山)에서 전했고 도는 온릉(溫陵)에서 으뜸()입니다. 석문(石門)을 넘지() 않고 스님의 통신(通信)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만약 이 금일이 아니었다면 가슴에다(攔胸) 두드리고 나갈 것이다.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금일 사자후를 친문(親聞)했고 다른 때 마침내 봉황아(鳳凰兒)를 지을 것입니다. 사왈 또 이 속을 향해 사람을 도오(塗污)하는구나. 묻되 백랑(白浪)이 천경(天境; 하늘 경계)에 넘치거늘() 어떤 사람이 태허(太虛; 허공)에 머뭅니까. 사왈 정야(靜夜)에 요고(堯鼓)를 생각하고 회두(迴頭)하매 순금(舜琴)을 듣는다.

攔胸; 가슴에 대착(對著).

 

福州龍山文義禪師 上堂曰 若擧宗乘卽院寂徑荒 若留委問更待箇什麽 還有人委麽 出來驗看 若無人委 莫略虛好 僧問 如何是人王 師曰 威風人盡懼 僧曰 如何是法王 師曰 一句令當行 僧曰 二王還分不分 師曰 適來道什麽

略虛; 同掠虛 卽虛妄不實

 

복주(福州) 용산(龍山) 문의선사(文義禪師). 상당해 가로되 만약 종승(宗乘)을 든다면 곧 원적경황(院寂徑荒; 사원이 적막하고 길이 荒涼)하리라. 만약 위문(委問; 자세한 질문)을 유류(遺留)하려면 저() 무엇을 다시 기다리겠는가. 도리어 위문(委問; )할 사람이 있느냐. 나와서 시험해 보아라. 만약 위문할 사람이 없다면 약허(略虛)하지 말아야 좋으리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인왕(人王)입니까. 사왈(師曰) 위풍(威風)을 사람들이 다 두려워한다(). 승왈(僧曰) 무엇이 이 법왕입니까. 사왈 1구의 영()을 마땅히 행한다. 승왈 두 왕을 도리어 나눕니까 나누지 못합니까. 사왈 적래(適來)에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略虛; 약허(掠虛)와 같음. 곧 허망하여 실답지 않음.

 

福州鼓山智岳了宗大師 福州人也 初遊方至鄂州黃龍 問曰 久嚮黃龍 到來只見赤斑蛇 黃龍曰 汝只見赤斑蛇 且不識黃龍 師曰 如何是黃龍 曰滔滔地 師曰 忽遇金翅鳥來又作麽生 曰性命難存 師曰 恁麽卽被他吞却也 曰謝闍梨供養 師當下未省覺 尋迴受業山禮覲國師和尙 啓發微旨而後次補山門爲第三世 上堂曰 我若全擧宗乘 汝向什麽處領會 所以向汝道 古今常露 體用無妨 僧問 諸餘卽不問 如何是誕生王種 師曰 金枝玉葉不相似 是作麽生 僧曰 恁麽卽同中不得異 師曰 不得異事作麽生 僧曰 金枝爭能續 師曰 猶是閫外之辭 問虛空還解作用也無 師拈起拄杖曰 遮箇師僧好打 僧無語

誕生王種; 意同誕生王子

金枝玉葉; 喩皇族子孫及出身高貴的人

 

복주(福州) 고산(鼓山) 지악(智岳) 요종대사(了宗大師). 복주(福州) 사람이다. 처음 유방(遊方)하다가 악주(鄂州) 황룡(黃龍)에 이르러 문왈(問曰) 황룡을 구향(久嚮)했더니 도래하매 다만 적반사(赤斑蛇)만 보입니다. 황룡이 가로되 너는 다만 적반사만 보고 또 황룡을 알지 못하는가. 사왈(師曰) 무엇이 이 황룡입니까. 가로되 도도지(滔滔地). 사왈 홀연히 금시조(金翅鳥)가 옴을 만나면 또 어떻습니까. 가로되 성명(性命)이 생존하기 어렵다. 사왈 이러하다면 그의 삼켜버림을 입었습니다. 가로되 사리(闍梨)의 공양에 감사한다. 스님이 당하(當下)에 성각(省覺)하지 못했다. 이윽고 수업산(受業山)으로 회귀하여 국사화상(國師和尙)을 예근(禮覲)했고 미지(微旨)를 계발(啓發)한 이후(而後) 이어서() 산문의 제3세에 보임(補任)했다. 상당하여 가로되 내가 만약 종승을 전거(全擧)한다면 너희가 어느 곳을 향해 영회(領會)하겠는가. 소이로 너희를 향해 말하노니 고금(古今)이 늘 드러나 체용(體用)이 무방(無妨)하다. 승문(僧問) 제여(諸餘)는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탄생왕종(誕生王種)입니까. 사왈 금지옥엽(金枝玉葉)이 상사(相似)하지 못하나니 이 무엇인가. 승왈(僧曰) 이러한 즉 동중(同中)에 이()를 얻지 못합니다. 사왈 이()를 얻지 못하는 일이 어떠한가. 승왈 금지(金枝)를 어찌 능히 잇겠습니까. 사왈 오히려 이 곤외지사(閫外之辭). 묻되 허공이 도리어 작용할 줄 압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가로되 저개(遮箇; ) 사승(師僧)은 좋게 때려야 한다. 중이 말이 없었다.

誕生王種; 뜻이 탄생왕자와 같음.

金枝玉葉; 황족의 자손 및 출신이 고귀한 사람에 비유.

 

襄州定慧和尙 僧問 如何是佛向上事 師曰 無人不驚 僧曰 學人未在 師曰 不妨難向 問不借時機用 如何話祖宗 師曰 闍梨還具慚愧麽 僧便喝 師無語

; 確知 悉也

 

양주(襄州) 정혜화상(定慧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향상사(佛向上事)입니까. 사왈(師曰)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승왈(僧曰)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향하기 어려움에 방애(妨礙)되지 않는다. 묻되 시기(時機)를 빌려서 쓰지 않으면 어떻게 조종(祖宗)을 얘기합니까. 사왈 사리(闍梨)는 도리어 참괴(慚愧)를 갖추었느냐. 중이 바로 할()했다. 스님이 말이 없었다.

; 확실히 알다(確知). (; ).

 

福州鼓山淸諤宗曉禪師 得法於受業和尙鼓山第四世住 問亡僧遷化向什麽處去也 師曰 時寒不出手

 

복주(福州) 고산(鼓山) 청악(淸諤) 종효선사(宗曉禪師). 수업화상(受業和尙)에게서 득법했다鼓山第四世住. 묻되 망승(亡僧)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때가 추워서 손도 내밀지 못한다.

 

金陵淨德道場沖煦慧悟禪師 福州人也 姓和氏 幼不染葷血 自誓出家 登鼓山剃度得法受記 年二十四於洪州豐城爲衆開演 時謂小長老 周顯德中江南國主延住光睦 僧問 如何是大道 師曰 我無小徑 曰如何是小徑 師曰 我不知有大道 師次住廬山開先 後居淨德 竝聚徒說法 開寶八年歸寂

葷血; 猶葷腥

 

금릉(金陵) 정덕(淨德) 도량(道場) 충후(沖煦) 혜오선사(慧悟禪師). 복주(福州) 사람이며 성이 화씨(和氏). 어릴 적에 훈혈(葷血)에 오염(汚染)되지 않았고 출가를 스스로 맹서(盟誓)했다. 고산(鼓山)에 올라 체도(剃度)하고 득법하고 수기(受記)했다. 나이 24에 홍주(洪州) 풍성(豐城)에서 대중을 위해 개연(開演)했는데 당시에 이르기를 소장로(小長老)라 했다. () 현덕(顯德; 954-959) 중 강남국주(江南國主)가 맞이해 광목(光睦)에 주()하게 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대도(大道)입니까. 사왈(師曰) 나에겐 소경(小徑; 작은 길)이 없다. 가로되 무엇이 이 소경(小徑)입니까. 사왈 나는 대도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스님이 다음에 여산(廬山) 개선(開先)에 주()했고 후에 정덕(淨德)에 거주했는데 모두() 취도(聚徒)하여 설법했다. 개보(開寶) 8(975)에 귀적(歸寂)했다.

葷血; 훈성(葷腥; 葷菜魚肉)과 같음.

 

金陵報恩院淸護禪師 福州長樂人也 姓陳氏 六歲辭親禮鼓山披削 十五納戒 於國師言下發明眞趣 暨國師圓寂 乃之建州白雲 閩帥王氏奏賜紫號崇因大師 晉天福八年金陵興師入建城時 統軍查文徽至院 師出延接 查問曰 此中相見時如何 師曰 惱亂將軍 查後請師歸金陵 國主命居長慶院攝衆 周顯德初退歸建州卓庵 時節度使陳誨創顯親報恩禪苑堅請住持 開堂日僧問 諸佛出世天華亂墜 未審和尙出世有何祥瑞 師曰 昨日新雷發 今朝細雨飛 問如何是諸佛玄旨 師曰 草鞋木履 開寶三年五月 江南後主再請入住報恩淨德二道場 來往說法 改號妙行禪師 當年十一月示疾預辭國主 二十日平旦 聲鍾召大衆囑付訖儼然坐亡 壽五十有五 臘四十 國主厚禮茶毘 收舍利三百餘粒幷靈骨 歸葬于建州鷄足山臥雲院建塔 師風神淸灑操行孤標 二十年不服綿絹唯衣紙布 辭藻札翰竝皆冠衆 五處語要偈頌別行于世

查文徽; (885-954) 字光愼 歙州休寧(今安徽休寧)人 五代南唐大臣 [百度百科]

興師; 興兵 起兵

陳誨; (?-962) 字巨訓 小字阿鐵 建州建安(今福建建甌)人 五代十國時期南唐將領 [百度百科]

孤標; 形容人品行高潔

辭藻; 指修飾文詞的典故或華麗的詞語等

札翰; 書信 二指奏章 三泛指文章書畫等

 

금릉(金陵) 보은원(報恩院) 청호선사(淸護禪師). 복주(福州) 장락(長樂) 사람이며 성이 진씨(陳氏). 6세에 사친(辭親; 兩親에게 고별)하고 고산(鼓山)을 예알해 피삭(披削)하고 15에 납계(納戒; 受戒)하고 국사의 언하에 진취(眞趣; 진실한 意趣)를 발명(發明)했다. 국사가 원적(圓寂)함에 이르러() 이에 건주(建州) 백운(白雲)으로 갔는데 민수(閩帥) 왕씨(王氏)가 주(; 奏請. 저본에 으로 지었음)하여 사자(賜紫)하고 호를 숭인대사(崇因大師)라 했다. () 천복(天福) 8(943) 금릉(金陵)에서 흥사(興師; 興兵)하여 건성(建城)에 들어갔을 때 통군(統軍) 사문휘(查文徽)가 사원에 이르자 스님이 나가서 연접(延接)했다. ()가 문왈(問曰) 이 가운데에서 상견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장군을 뇌란(惱亂)할 것입니다. ()가 후에 스님을 청해 금릉(金陵)으로 돌아갔는데 국주(國主)가 명()하여 장경원(長慶院)에 거주하면서 대중을 거두었다. () 현덕(顯德; 954-959) 초 물러나 건주(建州)로 돌아가 암자를 세웠다. 때에 절도사 진회(陳誨)가 현친보은선원(顯親報恩禪苑)을 창건하고 견청(堅請)하여 주지(住持)했다. 개당일(開堂日)에 승문(僧問) 제불이 출세하매 천화(天華)가 난추(亂墜)하거니와 미심하오니 화상이 출세하매 무슨 상서(祥瑞)가 있습니까. 사왈 어제 신뢰(新雷)가 일어났고 금조(今朝)에 세우(細雨)가 날린다().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현지(玄旨)입니까. 사왈 짚신과 나막신이다. 개보(開寶) 3(970) 5월 강남(江南)의 후주(後主)가 재청(再請)하여 보은ㆍ정덕(淨德) 두 도량에 입주(入住)했고 내왕하며 설법했고 개호(改號)하여 묘행선사(妙行禪師)라 했다. 당년(當年) 11월 시질(示疾)하더니 미리 국주에게 고별하고 20일 평단(平旦; 새벽 무렵) 종을 울리고 대중을 불러 촉부(囑付)해 마치자 엄연(儼然)히 좌망(坐亡)했다. 나이는 55며 납은 40이다. 국주가 후례(厚禮)로 다비(茶毘)했고 사리 3백여 립()과 아울러 영골(靈骨)을 거두었는데 건주 계족산 와운암으로 귀장(歸葬)하여 건탑(建塔)했다. 스님은 풍신(風神; 風采)이 청쇄(淸灑)하고 조행(操行)이 고표(孤標)했으며 20년 동안 면견(綿絹)을 입지() 않았고 오직 지포(紙布)를 입었다(). 사조(辭藻)와 찰한(札翰)이 모두 다 대중에서 으뜸()이었으며 5()의 어요(語要)와 게송이 세상에 별행(別行)한다.

查文徽; (885-954). 자는 광신(光愼)이며 흡주(歙州) 휴녕(休寧; 지금의 안휘 휴녕) 사람. 오대(五代) 남당(南唐)의 대신 [백도백과].

興師; 흥병(興兵). 기병(起兵).

진회(陳誨); (?-962) 자는 거훈(巨訓)이며 소자(小字)는 아철(阿鐵). 건주(建州) 건안(建安; 지금의 복건 建甌) 사람이니 오대십국 시기 남당의 장령(將領; 將帥) [백도백과].

孤標; 사람의 품행이 고결(高潔)함을 형용함.

辭藻; 문사(文詞)를 수식(修飾)한 전고(典故)나 혹 화려한 사어(詞語) 등을 가리킴.

札翰; 1. 서신. 2. 주장(奏章)을 가리킴. 3. 널리 문장과 서화(書畫) 등을 가리킴.

 

景德傳燈錄卷第二十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