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德傳燈錄卷第二十二
吉州靑原山行思禪師第七世中
杭州龍華寺靈照禪師法嗣七人
台州瑞巖師進禪師 2016
台州六通院志球禪師 2016
杭州雲龍院歸禪師 2018
杭州餘杭功臣院道閑禪師 2018
衢州鎭境遇緣禪師 2019
福州報國院照禪師 2019
台州白雲廼禪師〈已上七人見錄〉 2020
明州翠巖令參禪師法嗣二人
杭州龍冊寺子興禪師 2021
溫州佛㠗知默禪師〈已上二人見錄〉 2021
福州安國院弘瑫禪師法嗣九人
福州白鹿師貴禪師 2022
福州羅山義聰禪師 2023
福州安國從貴禪師 2024
福州怡山藏用禪師 2026
福州永隆彦端禪師 2027
福州林陽志端禪師 2027
福州興聖滿禪師 2031
福州僊宗明禪師 2031
福州安國祥和尙〈已上九人見錄〉 2032
漳州保福院從展禪師法嗣二十五人
泉州昭慶省僜禪師 2033
漳州保福可儔禪師 2037
舒州白水如新禪師 2037
洪州漳江慧廉禪師 2039
福州報慈文欽禪師 2040
泉州萬安淸運禪師 2041
漳州報恩熙禪師 2043
泉州鳳凰山從琛禪師 2044
福州永隆瀛和尙 2046
洪州淸泉山守淸禪師 2046
漳州報恩院行崇禪師 2047
潭州嶽麓和尙 2048
朗州德山德海禪師 2049
泉州後昭慶和尙 2049
朗州梁山簡禪師 2050
洪州建山澄禪師 2050
福州康山契穩禪師 2051
潭州延壽慧輪大師 2052
泉州西明琛禪師〈已上一十九人見錄〉 2052
福州升山柔禪師
福州枕峯和尙
朗州法操禪師
襄州鷲嶺和尙
睦州敬連和尙
潭州谷山句禪師〈已上六人無機緣語句不錄〉
南嶽金輪觀禪師法嗣一人
後衡嶽金輪和尙〈一人見錄〉 2053
泉州睡龍山道溥禪師法嗣一人
漳州保福院淸豁禪師〈一人見錄〉 2053
韶州雲門山文偃禪師法嗣上二十五人
韶州白雲祥和尙 2056
朗州德山緣密禪師 2059
潭州南臺道遵禪師 2061
韶州雙峯山竟欽和尙 2063
韶州資福和尙 2065
廣州黃雲元禪師 2066
廣州龍境倫禪師 2067
韶州雲門爽禪師 2068
韶州白雲聞和尙 2069
韶州披雲智寂禪師 2070
韶州淨法章和尙 2071
韶州溫門山滿禪師 2072
岳州巴陵顥鑒大師 2073
連州地藏慧慈大師 2075
英州大容諲禪師 2076
廣州羅山崇禪師 2077
韶州雲門寶禪師 2078
郢州臨谿竟脫和尙 2078
廣州華嚴慧禪師 2079
韶州舜峯韶和尙 2079
隨州雙泉師寬禪師 2081
英州觀音和尙 2083
韶州林泉和尙 2083
韶州雲門煦和尙 2083
益州香林澄遠禪師〈已上二十五人見錄〉 2084
行思禪師第七世中
前杭州龍華寺靈照禪師法嗣
台州瑞巖師進禪師 師上堂大衆立久 師曰 媿諸禪德已省提持 若是徇聲聽響 不如歸堂向火 珍重 僧問 如何是瑞巖境 師云 重重疊嶂南來遠 北向皇都咫尺間 僧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萬里白雲朝瑞岳 微微細雨洒簾前 僧曰 未審如何親近此人 師曰 將謂闍梨親入室 元來猶隔萬重關
●提持; 禪林中師家引導學人之方法 卽師家接化學人時 破除學人原有之見解 而示向上之契機 以把住之手法 否定學人之我見 爲平展之對稱
태주(台州) 서암(瑞巖) 사진선사(師進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이 선 지 오래였다. 사왈(師曰) 여러 선덕(禪德)에게 부끄럽게도(媿) 제지(提持)를 이미 덜었다(省). 만약 이, 소리 따라(徇) 음향을 듣는다면 귀당(歸堂)하여 향화(向火)함만 같지 못하다. 진중(珍重).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암경(瑞巖境)입니까. 사운(師云) 중중(重重)한 첩장(疊嶂)이 남래(南來; 남쪽에서 오다)하면 멀고 북향(北向)하면 황도(皇都)가 지척(咫尺) 사이다. 승왈(僧曰)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師曰) 만 리 백운은 서악(瑞岳)을 향하고(朝) 미미(微微)한 세우(細雨)는 염전(簾前)을 씻는다(洒). 승왈 미심하오니 어찌해야 이 사람을 친근합니까. 사왈 장차 이르기를 사리(闍梨)가 친히 입실했다고 하렸더니 원래 오히려 만중관(萬重關)에 막혔구나.
●提持; 선림 중에서 사가가 학인을 인도하는 방법임. 곧 사가가 학인을 접화(接化)할 때 학인의 원래 있는 견해를 깨뜨려 제거하고 향상의 계기(契機)를 보임이니 파주(把住)하는 수법으로 학인의 아견을 부정함임. 평전(平展)의 대칭이 됨.
台州六通院志球禪師 僧問 全身佩劍時如何 師曰落 僧曰 當者如何 師曰 熏天炙地 問如何是六通境 師曰 滿目江山一任看 僧曰 如何是境中人 師曰 古今自去來 僧曰 離二途還有向上事也無 師曰有 僧曰 如何是向上事 師曰 雲水千徒與萬徒 問擁毳玄徒請師指示 師曰 紅罏不墜雁門關 僧曰 如何是紅罏不墜雁門關 師曰 靑霄豈悋衆人攀 僧曰 還有不知者也無 師曰有 僧曰 如何是不知者 師曰 金牓上無名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萬家明月朗 問如何是第二月 師曰 山河大地
●雁門關; 位於山西省忻州市代縣縣城以北約二十公里處的雁門山中 是長城上的重要關隘 以險著稱
●金牓; 同金榜 科擧時代 稱殿試錄取的榜 錄取者的姓名 依成績順序寫在榜上
태주(台州) 육통원(六通院) 지구선사(志球禪師). 승문(僧問) 전신(全身)이 검을 찼을(佩)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떨어졌다. 승왈(僧曰) 당한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훈천자지(熏天炙地; 천지를 熏炙)한다. 묻되 무엇이 이 육통경(六通境)입니까. 사왈 눈에 가득한 강산을 보는 대로 일임한다. 승왈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고금(古今)이 스스로 거래한다. 승왈 이도(二途)를 여의고 도리어 향상사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승왈 무엇이 이 향상사입니까. 사왈 운수(雲水; 雲水僧)가 천도(千徒)와 만도(萬徒)다. 묻되 옹취(擁毳; 毳는 僧服)한 현도(玄徒; 승려)가 스님의 지시를 청합니다. 사왈 홍로(紅罏)가 안문관(雁門關)에 떨어지지 않는다. 승왈 무엇이 이, 홍로가 안문관에 떨어지지 않음입니까. 사왈 청소(靑霄)가 어찌 중인(衆人)의 등반(登攀)을 아끼겠는가. 승왈 도리어 알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있다. 승왈 무엇이 이 알지 못하는 자입니까. 사왈 금방상(金牓上)에 이름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만가(萬家)에 명월이 밝다(朗). 묻되 무엇이 이 제2월(第二月)입니까. 사왈 산하대지다.
●雁門關; 산서성 흔주시 대현 현성 이북 약 20㎞ 곳의 안문산 속에 위치함. 이것은 장성상(長城上)의 중요한 관애(關隘; 국경에 있는 관문과 요새의 험한 지역)며 험준함으로 명칭이 드러났음.
●金牓; 금방(金榜)과 같음. 과거시대(科擧時代)에 전시(殿試)에서 녹취(錄取; 選定)의 방(榜)을 일컬음. 녹취자의 성명은 성적 순서에 의해 방상(榜上)에 서사하여 있음.
杭州雲龍院歸禪師 僧問 久戰沙場爲什麽功名不就 師曰 過在遮邊 僧曰 還有進處也無 師曰 氷消瓦解
●氷消瓦解;; 氷消爲水 瓦解爲泥 形容解疑或失本形
항주(杭州) 운룡원(雲龍院) 귀선사(歸禪師). 승문(僧問) 사장(沙場; 戰場)에서 오래 전투했거늘 무엇 때문에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합니까. 사왈(師曰) 허물이 저변(遮邊)에 있다. 승왈 도리어 나아갈 곳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빙소와해(氷消瓦解)했다.
●氷消瓦解;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기와가 풀려 진흙이 됨이니 의심이 풀리거나 혹 본형을 잃음을 형용.
杭州餘杭功臣院道閑禪師 僧問 如何是功臣家風 師曰 俗人東畔立 僧衆在西邊 問如何是學人自己 師曰 如汝與我 僧曰 恁麽卽無二去也 師曰十萬八千
●十萬八千; 意謂相距禪法十萬八千里 形容距離極遠 差別極大 是禪家習用批評語
항주(杭州) 여항(餘杭) 공신원(功臣院) 도한선사(道閑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공신(功臣)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속인은 동반(東畔)에 서고 승중(僧衆)은 서변(西邊)에 있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너와 나와 같다.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둘이 없을 것입니다. 사왈 십만팔천(十萬八千)이다.
●十萬八千;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과 서로 떨어짐이 십만팔천 리니 거리의 극히 멂과 차별이 극히 큼을 형용함. 이는 선가에서 습관으로 쓰는 비평어임.
衢州鎭境遇緣禪師 僧問 衆手淘金誰是得者 師曰 谿畔披砂徒自困 家中有寶速須還 僧曰 恁麽卽始終不從人得去也 師曰 饒君便有擎山力 未免肩頭有擔胝
구주(衢州) 진경(鎭境) 우연선사(遇緣禪師). 승문(僧問) 중수(衆手)가 금을 일면(淘)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師曰) 계반(谿畔)에서 모래(砂)를 헤치면 도연히 스스로 피곤하나니 가중(家中)에 보배가 있으니 속히 돌려줌을 써라.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시종 타인으로 좇아 얻음이 아니겠습니다. 사왈 가령(饒) 그대에게 산을 받들 힘이 있다 하더라도 견두(肩頭; 頭는 조사)에 담지(擔胝; 짐으로 인한 굳은 살)가 있음을 면하지 못한다.
福州報國院照禪師 師上堂曰 我若全機 汝向什麽處摸索 蓋爲根器不等 便成不具慚愧 還委得麽 如今與諸仁者作箇入底門路 乃敲繩床兩下云 還見麽 還聞麽 若見便見 若聞便聞 莫向意識裏卜度 却成妄想顚倒無有出期 珍重 因佛塔被雷霹 有人問 祖佛塔廟爲什麽却被雷霹 師曰 通天作用 僧曰 旣是通天作用 爲什麽却霹佛 師曰 作用何處見有佛 僧曰 爭奈狼藉何 師曰 見什麽
●卜度; 以俗情世念去猜度 議論或解釋
복주(福州) 보국원(報國院) 조선사(照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내가 만약 기(機)를 온전히 한다면 너희가 어느 곳을 향해 모색하겠는가. 대개(大蓋) 근기(根器)가 균등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괴(慚愧)를 갖추지 못함을 바로 이루나니 도리어 알겠는가(委得麽). 여금에 제인자(諸仁者)에게 저(箇) 들어가는 문로(門路)를 지어 주겠다. 이에 승상(繩床)을 두 번(兩下) 두드리고 이르되 도리어 보느냐, 도리어 듣느냐. 보려거든(若見) 곧바로 보고 들으려거든 곧바로 들어라. 의식(意識) 속을 향해 복탁(卜度)하지 말지니 도리어 망상과 전도(顚倒)를 이루어 출기(出期)가 있지 않음을 이룬다. 진중(珍重)하라. 불탑(佛塔)이 뇌벽(雷霹; 霹靂)을 입음으로 인해 어떤 사람이 묻되 조불의 탑묘(塔廟)가 무엇 때문에 도리어 뇌벽을 입었습니까. 사왈(師曰) 통천(通天; 온 하늘)의 작용이다. 승왈(僧曰) 이미 이 통천의 작용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불(佛)에게 벼락이 칩니까(霹). 사왈 작용이 어느 곳에서 불(佛)이 있음을 보겠는가. 승왈 낭자(狼藉)함은 어찌 하겠습니까. 사왈 무엇을 보느냐.
●卜度; 속정(俗情)의 세념(世念)으로 의심하고 헤아리며 의논하거나 혹 해석함.
台州白雲迺禪師 僧問 荊山有玉非爲寶 囊內眞金賜一言 師曰 我家貧 僧曰 慈悲何在 師曰 空慚道者名
태주(台州) 백운 내선사(迺禪師). 승문(僧問) 형산(荊山)에 옥이 있음은 보배가 되지 않나니 주머니 속의 진금으로 일언(一言)을 주십시오(賜). 사왈(師曰) 아가(我家)는 가난하다. 승왈(僧曰) 자비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왈 공연히 도자(道者)의 이름이 부끄럽다.
前明州翠巖令參禪師法嗣(저본에 參을 傪으로 지었음)
杭州龍冊寺子興明悟大師 僧問 正位中還有人成佛否 師曰 誰是衆生 僧曰 若恁麽卽總成佛去也 師曰 還我正位來 僧曰 如何是正位 師曰 汝是衆生 問如何是無價珍 師曰 卞和空抱璞 僧曰 忽遇楚王還進也無 師曰 凡聖相繼續 問古人拈布毛意作麽生 師曰 闍梨擧不全 僧曰 如何擧得 師乃拈起袈裟
항주(杭州) 용책사(龍冊寺) 자흥(子興) 명오대사(明悟大師). 승문(僧問) 정위(正位) 중에 도리어 성불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왈(師曰) 누가 이 중생이냐. 승왈(僧曰) 만약 이러하다면 곧 모두(總) 성불하겠습니다. 사왈 나에게 정위를 송환해 오너라. 승왈 무엇이 이 정위입니까. 사왈 너는 이 중생이다. 묻되 무엇이 이 무가진(無價珍)입니까. 사왈 변화(卞和)가 공연히 포박(抱璞)했다. 승왈 홀연히 초왕(楚王)을 만나면 도리어 진상(進上)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범성(凡聖)이 서로 계속(繼續)한다. 묻되 고인(古人; 鳥窠)이 포모(布毛)를 집은(拈)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사리(闍梨)의 듦(擧)이 온전하지 않다. 승왈 어떻게 거득(擧得)해야 합니까. 스님이 이에 가사(袈裟)를 집어 일으켰다(拈起).
溫州雲山佛㠗院知默禪師〈第二世住〉 師上堂曰 山僧如今看見諸上坐 恁麽行脚喫辛喫苦盤山涉㵎 終不爲觀看州縣參尋名山聖迹 莫非爲此一大事 如今且要諸人於本參中通箇消息來 雲山敢與證明 非但雲山證明 乃至禪林佛刹亦與證明 僧問 如何是佛㠗家風 師曰 送客不離三步內 邀賓只在草堂前
온주(溫州) 운산(雲山) 불오원(佛㠗院) 지묵선사(知默禪師)〈第二世住〉.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산승이 여금에 여러 상좌를 간견(看見)하건대 이렇게(恁麽) 행각하며 끽신끽고(喫辛喫苦; 辛苦를 承受)하고 반산섭간(盤山涉㵎; 산을 돌고 개울을 건넘)함은 마침내 주현(州縣)을 관간(觀看)하거나 명산(名山)의 성적(聖迹)을 참심(參尋)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 일대사(一大事)를 위함이 아님이 없다. 여금에 다만(且) 제인(諸人)에게 요청하나니 본참(本參; 本參公案) 가운데서 저(箇) 소식을 통지해 오너라. 운산(雲山)이 감히 증명해 주겠다. 단지 운산만 증명함이 아니라 내지 선림의 불찰(佛刹)도 또한 증명해 주리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오(佛㠗)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객을 보내면 3보(步) 안을 여의지 않고 손을 맞이하면 다만 초당(草堂) 앞에 있다.
前福州安國院弘瑫明眞大師法嗣
福州白鹿師貴禪師 開堂日 有僧問 西峽一派不異馬頭 白鹿千峯何似鷄足 師曰 大衆一時驗看 問如何是白鹿家風 師曰 向汝道什麽 僧曰 恁麽卽學人知時去也 師曰 知時底人合到什麽田地 僧曰 不可更喃喃地 師曰 放過卽不可 問牛頭未見四祖時 百鳥銜華供養 見後爲什麽不來 師曰 曙色未分人盡望 及乎天曉也如常
복주(福州) 백록(白鹿) 사귀선사(師貴禪師). 개당일(開堂日)에 어떤 중이 묻되 서협(西峽)의 일파(一派)가 마두(馬頭)와 다르지 않거니와 백록(白鹿)의 천봉(鷄足)은 계족(千峯)과 어떻습니까(何似). 사왈(師曰) 대중은 일시에 시험해 보아라. 묻되 무엇이 이 백록(白鹿)의 가풍입니까. 사왈 너를 향해 무어라고 말하더냐.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학인이 때를 알겠습니다(知時去也). 사왈 때를 아는 사람은 합당히 어떤 전지(田地; 境界)에 이르렀는가. 승왈 다시 남남지(喃喃地; 말이 많은 모양)는 옳지 않습니다. 사왈 방과(放過)하면 곧 옳지 못하다.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땐 백조(百鳥)가 꽃을 물어다 공양했는데 뵌 후엔 무엇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까. 사왈 서색(曙色; 새벽 빛)이 나뉘지 않아서는 사람들이 모두 바라보지만 천효(天曉; 하늘이 밝아짐)에 이르러선 또한 여상(如常; 平常時와 같음)하다.
福州羅山義聰禪師 師上堂大衆立久 師曰 若有分付處 羅山卽不具眼 若無分付處 卽勞而無功 所以維摩昔日對文殊 且道如今會也無 僧問 如何是出窟師子 師曰 什麽處不震裂 僧曰 作何音響 師曰 聾者不聞 問手指天地唯我獨尊 爲什麽却被傍者責 師曰 謂言胡鬚赤 僧曰 只如傍者有什麽長處 師曰 路見不平所以按劍
●胡鬚; 俗稱胡子 泛指生長於男性上唇 下巴 兩腮或脖子的毛髮 胡 本來是指長在嘴邊的毛 而上唇的稱爲髭
복주(福州) 나산(羅山) 의총선사(義聰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이 선 지 오래였다. 사왈(師曰) 만약 분부할 곳이 있다면 나산(羅山)이 곧 구안(具眼)하지 못했고 만약 분부할 곳이 없다면 곧 노력(努力)해도 공(功)이 없다. 소이로 유마(維摩)가 지난날(昔日) 문수에게 응대했다. 그래 말하라, 여금에 아느냐 또는 아니냐. 승문(僧問) 무엇이 이 굴에서 나온 사자(師子)입니까. 사왈 어느 곳이 진열(震裂; 땅이 흔들리고 갈라짐)하지 않느냐. 승왈(僧曰) 어떤 음향을 짓습니까. 사왈 귀머거리(聾者)는 듣지 못한다. 묻되 손으로 천지를 가리키며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唯我獨尊) 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방자(傍者; 傍人)의 책망(責望)을 입었습니까. 사왈 일러 말하나니 호수(胡鬚)가 붉다. 승왈 지여(只如) 방자(傍者)는 무슨 나은 곳(長處)이 있습니까. 사왈 길에서 불평(不平; 公平하지 못함)을 본지라 소이로 안검(按劍; 검을 어루만짐)한다.
●胡鬚; 속칭 호자(胡子)니 널리 남성의 윗입술(上唇)ㆍ아랫턱(下巴)ㆍ양쪽 뺨 혹은 목덜미(脖子)에 생장(生長)하는 모발(毛髮)을 가리킴. 호(胡)는 본래 이는 취변(嘴邊; 입가)에 생장하여 있는 털을 가리키며 윗입술의 것은 자(髭; 윗수염)로 호칭함.
福州安國院從貴禪師 僧問 禪宮大敞法衆雲臻 向上一路請師決擇 師曰 素非時流 師有時上堂示衆云 禪之與道拈向一邊著 佛之與祖是什麽破草鞋 恁麽告報莫屈著諸人麽 若道屈著卽且行脚去 若道不屈著也須合取口始得 珍重 又有時上堂曰 直是不遇梁朝 安國也謾不過 珍重 僧問 請師擧唱宗乘 師曰 今日打禾明日搬柴 問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香罏對繩床 僧曰 見後如何 師曰 門扇對露柱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若問家風卽答家風 僧曰 學人不問家風時作麽生 師曰 胡來漢去 問諸餘卽不問 省要處乞師一言 師曰 還得省要麽 師下堂曰 純陀獻供 珍重
●純陀 <梵><巴> cunda又作准陀 淳陀 周那 爲佛世時中印度波婆城之鐵匠 乃最後供養佛陀者 按長阿含三遊行經 彼以旃檀樹耳 供養佛陀 其旃檀樹耳槪爲一種菌類 於此土稱木耳 長阿含經亦隨此說 涅槃經等之譯本 則言美飯食 近世西洋學者根據巴利文大般涅槃經之記載 謂純陀所供養佛陀者 乃爲豕肉 [雜阿含經三十七 大毘婆沙論六十六 大唐西域記六拘尸那揭羅國條]
복주(福州) 안국원(安國院) 종귀선사(從貴禪師). 승문(僧問) 선궁(禪宮; 禪寺)이 대창(大敞; 매우 광대함)하고 법중(法衆; 僧衆)이 운진(雲臻; 雲集)했으니 향상일로(向上一路)를, 스님의 결택(決擇)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본디(素) 시류(時流; 世俗之輩)가 아니구나. 스님이 어떤 때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이르되 선(禪)과 도(道)는 집어다 일변(一邊)을 향해버리고 불(佛)과 조(祖)는 이 무슨 해진 짚신이냐. 이렇게 고보(告報)함이 제인(諸人)을 굴착(屈著; 굴복시킴)함이 아닐까. 만약 굴착(屈著)이라고 말한다면 곧 다만(且) 행각하여 갈 것이며 만약 굴착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또한 모름지기 입을 닫아야(合取口) 비로소 옳으리라. 진중(珍重). 또 어떤 때 상당하여 가로되 바로 이 양조(梁朝)를 만나지 못했다면 안국(安國)도 속이고 지나가지 못할 것이다. 진중(珍重). 승문(僧問) 스님에게 청하오니 종승(宗乘)을 거창(擧唱)하십시오. 사왈 금일은 타화(打禾)하고 명일은 반시(搬柴)한다.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향로(香罏)가 승상(繩床)을 대했다. 승왈(僧曰)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문선(門扇; 문짝)이 노주(露柱)를 대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만약 가풍을 묻는다면 곧 가풍을 답하겠다. 승왈 학인이 가풍을 묻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호래한거(胡來漢去; 호인이 오고 한인이 가다)한다. 묻되 제여(諸餘)는 곧 묻지 않습니다. 성요처(省要處)를, 스님의 일언(一言)을 구걸합니다. 사왈 도리어 성요를 얻었느냐. 스님이 하당(下堂)하며 가로되 순타(純陀)의 헌공(獻供)이다. 진중(珍重)하라.
●純陀; <범><파> cunda. 또 준타(准陀)ㆍ순타(淳陀)ㆍ주나(周那)로 지음. 불세(佛世) 시 중인도 파바성(波婆城)의 철장(鐵匠)이 됨. 곧 불타에게 최후로 공양한 자. 장아함3 유행경을 안험컨대 그가 전단수이(旃檀樹耳)로 불타에게 공양했는데 그 전단수이는 대개 일종의 균류(菌類; 버섯 종류)가 됨. 이 국토에선 목이(木耳)로 일컬음. 장아함경도 또한 이 설을 따름. 열반경 등의 역본엔 곧 말하기를 미반식(美飯食)이라 했음. 근세 서양의 학자들이 파리문(巴利文)의 대반열반경의 기재에 근거하여 이르기를 순타가 불타에게 공양한 바의 것은 곧 시육(豕肉; 돼지고기)이라 함 [잡아함경37. 대비바사론66 대당서역기6구시나게라국조].
福州怡山長慶藏用禪師 師上堂 衆集 師以扇子拋向地上曰 愚人謂金是土 智者作麽生 後生可畏 不可總守愚去也 還有麽 出來道看 時有僧出禮拜退後而立 師曰 別更作麽生 僧曰 和尙明鑒 師曰 千年桃核 問如何是伽藍 師曰 長溪莆田 僧曰 如何是伽藍中人 師曰 新羅白水 問如何是靈泉正主 師曰 南山北山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齋前厨蒸南國飯 午後罏煎北苑茶 問法身還受苦也無 師曰 地獄豈是天堂 僧曰 恁麽卽受苦去也 師曰 有什麽罪過
●千年桃核; 比喩超越語言知解及分別心 極難參究的禪機
복주(福州) 이산(怡山) 장경(長慶) 장용선사(藏用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이 모였다. 스님이 부채(扇子)를 지상(地上)을 향해 던지고 가로되 우인(愚人)은 금(金)을 일러 이 토(土)라 하거니와 지자(智者)는 어떠한가(作麽生).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니 모두 어리석음을 지킴은 옳지 못하다. 도리어 있느냐, 나와서 말해 보아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서 예배하고 뒤로 물러나서 섰다. 사왈(師曰) 달리 다시 어떠한가. 승왈(僧曰) 화상이 밝게 살피십시오(明鑒). 사왈 천 년 묵은 복숭아씨다(千年桃核). 묻되 무엇이 이 가람(伽藍)입니까. 사왈 장계(長溪)와 포전(莆田)이다. 승왈 무엇이 이 가람 중의 사람입니까. 사왈 신라(新羅)와 백수(白水)다. 묻되 무엇이 이 영천(靈泉)의 정주(正主)입니까. 사왈 남산과 북산이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재전(齋前)에 부엌에서 남국(南國; 저본에 南白으로 지었음)의 밥을 찌고(蒸). 오후(午後)에 화로(火罏)로 북원(北苑)의 차를 끓인다. 묻되 법신이 도리어 수고(受苦)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지옥이 어찌 이 천당이겠느냐. 승왈 이러하다면 곧 수고(受苦)하여 갈 것입니다. 사왈 무슨 죄과(罪過)가 있겠는가.
●千年桃核; 어언과 지해(知解) 및 분별심을 초월하여 극히 참구하기 어려운 선기(禪機)에 비유함.
福州永隆院彦端禪師 師上堂 大衆雲集 師從座起作舞 謂大衆曰 會麽 衆曰不會 師曰 山僧不捨道法而現凡夫事 作麽生不會 問本自圓成 爲什麽却分明晦 師曰 汝自檢責看
복주(福州) 영륭원(永隆院) 언단선사(彦端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이 운집했다. 스님이 법좌로 좇아 일어나 춤추고는(作舞)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아느냐, 대중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師曰) 산승이 도법(道法)을 버리지 않고 범부사(凡夫事)를 나타내었거늘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묻되 본래 저절로 원성(圓成)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분명히 어둡습니까(晦). 사왈 네가 스스로 검책(檢責; 檢査)해 보아라.
福州林陽山瑞峯院志端禪師 福州人也 依本部南㵎寺受業 年二十四 謁明眞大師 一日有僧問 如何是萬象之中獨露身 明眞擧一指 其僧不薦 師於是冥契玄旨 乃入室白曰 適來那僧問話 志端今有省處 明眞曰 汝見什麽道理 師亦擧一指曰 遮箇是什麽 明眞甚然之 師上堂擧拂子云 曹溪用不盡底 時人喚作頭角生 山僧拈來拂蚊子 薦得乾坤陷落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木馬走似煙 石人趁不及 問如何是禪 師曰 今年旱去年 僧曰 如何是道 師曰 冬田半折耗 問如何是學人自己 師便與一蹋 僧作接勢 師便與一摑 僧無對 師曰 賺殺人 問如何是逈絕人煙處佛法 師曰 巔山峭峙碧芬芳 僧曰 恁麽卽一眞之理華野不殊 師曰 不是遮箇道理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竹箸一文一雙 有僧夜參 師曰 阿誰 僧曰 某甲 師曰 泉州沙糖舶上檳榔 僧良久 師曰 會麽 僧曰 不會 師曰 爾若會卽廓淸五蘊吞盡十方
●沙糖; 指甘蔗汁經過太陽暴曬後而成的固體蔗糖
●檳榔; 慧琳音義八十一 檳榔 上音賓 下音郞 埤蒼云 檳榔果名也 其果似小螺 可生啖 能洽氣 出交廣 其名曰檳榔 爲樹苛乎如桂 其未吐穗 有似禾黍
복주(福州) 임양산(林陽山) 서봉원(瑞峯院) 지단선사(志端禪師). 복주 사람이며 본부(本部) 남간사(南㵎寺)에 의지하며 수업(受業)했다. 나이 24에 명진대사(明眞大師)를 참알했는데 어느 날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만상(萬象)의 가운데 독로(獨露)한 몸입니까. 명진이 한 손가락을 들었다. 그 중이 천(薦; 領悟)하지 못했고 스님이 이에 현지(玄旨)에 명계(冥契; 가만히 契合함)했다. 이에 입실하여 알려(白) 가로되 적래(適來)에 그 중(那僧)이 문화(問話)하매 지단(志端)이 방금 살핀 곳이 있습니다. 명진이 가로되 네가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스님이 또한 한 손가락을 들며 가로되 이것(遮箇)이 이 무엇입니까. 명진이 심(甚)히 그렇다 하였다. 스님이 상당하여 불자를 들고 이르되 조계(曹溪; 6조)가 써서 다하지 않은 것이다. 시인(時人)은 두각(頭角)이 생겨났다고 불러 짓고 산승은 집어 와서 모기(蚊子)를 떨치나니(拂) 천득(薦得; 領會)하면 건곤이 함락(陷落)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師曰) 목마(木馬)가 달리니 안개(煙)와 흡사하고 석인(石人)이 쫓아가매 미치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선(禪)입니까. 사왈 금년은 가물어(旱; 저본에 早로 지었음) 가는 해다. 승왈(僧曰)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동전(冬田)에 반은 부러져 없어졌다(折耗).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스님이 바로 한 번 밟아 주었다. 중이 접수하는 자세를 짓자 스님이 바로 한 번 후려갈겨 주었다. 중이 대답이 없자 사왈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人). 묻되 무엇이 이 인연(人煙)이 형절(逈絕; 멀리 끊어지다)한 곳의 불법입니까. 사왈 전산(巔山; 山頂의 산)이 초치(峭峙; 가파르게 솟은 모양)하고 푸름(碧)이 분방(芬芳; 향기를 뿜다)한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일진지리(一眞之理)가 화야(華野; 華麗한 들)와 다르지(殊) 않습니다. 사왈 이는 저개(遮箇)의 도리가 아니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대젓가락(竹箸)이 일문(一文; 동전 一枚)에 일쌍(一雙)이다. 어떤 중이 밤에 참알했다(夜參). 사왈 누구인가(阿誰). 승왈 모갑입니다. 사왈 천주(泉州)의 사당(沙糖)이며 박상(舶上)의 빈랑(檳榔)이다. 중이 양구(良久)했다. 사왈 아느냐. 승왈 알지 못합니다. 사왈 네가 만약 안다면 곧 5온(蘊)이 확청(廓淸; 비어서 깨끗함)하고 시방을 삼켜 없앨 것이다.
●沙糖; 감자(甘蔗)의 즙을 태양에 폭쇄(暴曬; 쬐고 말리다)함을 경과한 후 이루어진 고체의 자당(蔗糖; 사탕수수 즙을 끓여 만든 설탕).
●檳榔; 혜림음의81. 빈랑(檳榔) 상은 음이 빈이며 하는 음이 랑이다. 비창(埤蒼)에 이르되 빈랑은 과실의 이름이다. 그 과실은 작은 소라와 흡사하고 가히 생것으로 먹으며 능히 기운을 넉넉하게 한다. 교광(交廣)에서 산출되는데 그 이름을 가로되 빈랑이다. 나무의 가혹하기가 계수나무와 같고 그것이 이삭을 토하지 아니하여선 화서(禾黍; 벼와 기장)와 비슷함이 있다.
師開寶元年八月內遺偈曰 來年二月二 別汝暫相棄 爇灰散四林 勿占檀那地 此偈因侍者傳于外 四衆咸寫而記之 至明年正月二十八日 州民競入山瞻禮 師身無恙參問如常 至二月一日州主率諸官同至山偵伺經宵 院中如市 二日師齋罷上堂辭衆 時有圓應長老 出衆作禮問曰 雲愁霧慘大衆嗚呼 請師一言未在告別 師垂一足 應曰法鏡不臨於此土 寶月又照於何方 師曰 非君境界 應曰 恁麽卽漚生漚滅還歸水 師去師來是本常 師作噓聲 復有僧問數則語 師皆酬答然後下座 歸方丈安坐至亥時 問衆曰 世尊滅度是何時節 衆曰 二月十五日子時 師曰 吾今日子時前 言訖長往
스님이 개보(開寶) 원년(968) 8월 내에 유게(遺偈)하여 가로되 내년(來年; 저본에 年來로 지었음) 2월 2에/ 너희와 이별해 잠시 상기(相棄)하리라/ 재를 태워(爇灰) 사림(四林; 사방의 숲)에 흩고/ 단나(檀那)의 땅을 점거하지 말아라. 이 게를 시자가 외부에 전함으로 인해 사중(四衆)이 모두(咸) 베껴 그것을 기록했다. 명년 정월 28일에 이르자 주민(州民)이 다투어 입산하여 첨례(瞻禮)했는데 스님의 몸이 무양(無恙)했고 참문(參問)도 여상(如常; 평상시와 같음)했다. 2월 1일에 이르러 주주(州主)가 제관(諸官)을 인솔해 함께 산에 이르러 정사(偵伺; 偵探하며 살핌)하며 밤을 경과했고 원중(院中)이 시장과 같았다. 2일에 스님이 재(齋)를 마치자 상당하여 대중에게 고별했다. 때에 원응(圓應) 장로가 있어 대중에서 나와 작례(作禮)하고 문왈(問曰) 운수무참(雲愁霧慘; 구름도 愁心하고 안개도 慘憺함)하고 대중이 오호(嗚呼)합니다. 스님의 일언(一言)을 청하오니 고별에 있지 않습니다. 스님이 한 발을 내렸다(垂). 응왈(應曰) 법경(法鏡)이 차토(此土)에 임(臨)하지 않으면 보월(寶月)이 또 어느 방면을 비춥니까. 사왈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응왈(應曰) 이러하다면 곧 구생구멸(漚生漚滅)하여 물로 환귀(還歸)하고 사거사래(師去師來)함이 이 본상(本常; 본래의 常道)입니다. 스님이 허성(噓聲)을 지었다. 다시 어떤 중이 몇 칙(則)의 말을 물었는데 스님이 모두 수답(酬答; 응답)한 연후에 하좌(下座)했다. 방장으로 돌아가 안좌(安坐)하여 해시(亥時)에 이르자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세존이 멸도(滅度)함은 이 어떤 시절인가. 대중이 가로되 2월 15일 자시(子時)입니다. 사왈 나는 금일 자시 전이다. 말을 마치자 장왕(長往)했다.
福州興聖滿禪師 師上堂曰 覿面分付不待文宣 具眼投機喚作參玄上士 若能如此所以宗風不墜 僧問 昔日靈山會裏 今朝興聖筵中 和尙親傳如何擧唱 師曰 欠汝一問
복주(福州) 흥성만(興聖滿) 선사.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적면(覿面)하여 분부(分付)하고 문선(文宣; 문자로 宣揚함)을 기다리지 않으며 구안(具眼)하여 투기(投機)해야 참현(參玄)하는 상사(上士)라고 불러 짓는다. 만약 능히 이와 같다면 소이로 종풍이 추락하지 않는다. 승문(僧問) 석일(昔日)은 영산회(靈山會; 영산회상) 속이며 금조(今朝)는 흥성연(興聖筵; 흥성의 法筵) 가운데입니다. 화상이 친전(親傳)하여 어떻게 거창(擧唱)하시겠습니까. 사왈 너의 일문(一問)이 모자란다(欠).
福州僊宗院明禪師 師上堂曰 幸有如是門風 何不烜赫地紹續取去 若也紹得不在三界 若出三界卽壞三界 若在三界卽礙三界 不礙不壞 是出三界 是不出三界 恁麽徹去 堪爲佛法種子 人天有賴 有僧問 拏雲不假風雷便 迅浪如何透得身 師曰 何得棄本逐末
복주(福州) 선종원(僊宗院) 명선사(明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다행히 이와 같은 문풍(門風)이 있거늘 애 훤혁지(烜赫地; 밝게 빛남. 地는 조사) 소속(紹續)하여 취해 가지 않느냐. 만약에 소득(紹得)한다면 3계(界)에 있지 않으리라. 만약 3계를 벗어난다면 곧 3계를 무너뜨리고 만약 3계에 있다면 곧 3계에 막히리라. 막히지 않고 무너뜨리지 않으면 이는 3계를 벗어남이냐, 이는 3계를 벗어나지 않음이냐. 이렇게 투철(透徹)해 가야 가히(堪) 불법의 종자(種子)가 되고 인천(人天)이 신뢰함이 있으리라. 어떤 중이 묻되 구름을 붙잡으면서(拏) 풍뢰(風雷)의 편리를 빌리지 않으며 신속한 파랑이 어찌해야 몸을 투득(透得)합니까. 사왈 왜 근본을 버리고 지말(枝末)을 쫓음을 얻느냐.
福州安國院祥和尙 師上堂 頃間乃失聲云 大是無端 雖然如此事不得已 於中若有未覯者更開方便 還會麽 僧問 不涉方便乞師垂慈 師曰 汝問我答是方便 問應物現形如水中月 如何是月 師提起拂子 僧曰 古人爲什麽道水月無形 師曰 見什麽 問如何是宗乘中事 師曰 淮軍散後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衆眼難謾
복주(福州) 안국원(安國院) 상화상(祥和尙). 스님이 상당하여 경간(頃間; 頃刻間)에 곧(乃) 실성(失聲)하여 이르되 매우(大) 이 무단(無端)하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사부득이(事不得已)하여 어중(於中)에 만약 구(覯; 領悟)하지 못한 자가 있다면 다시 방편을 열겠다. 도리어 아느냐. 승문(僧問) 방편에 건너지 않고 스님의 수자(垂慈)를 구걸합니다. 사왈 네가 묻고 내가 답함이 이 방편이다. 묻되 사람(物)에 응해 형상을 나타냄이 수중의 달과 같다(金光明經二의 문구) 하니 무엇이 이 달입니까. 스님이 불자를 제기(提起)했다. 승왈 고인이 무엇 때문에 말하되 수월(水月)은 형상이 없다 했습니까. 사왈 무엇을 보느냐. 묻되 무엇이 이 종승(宗乘) 중의 일입니까. 사왈 회군(淮軍)이 흩어진 후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대중의 눈은 속이기 어렵다.
前漳州保福院從展禪師法嗣
泉州招慶院省僜淨修大師 師初參保福問答冥符 一日保福入大殿覩佛像 乃擧手問師曰 佛恁麽意作麽生 師對曰 和尙也是橫身 曰一橛我自收取 師曰 和尙非唯橫身 保福然之 後住招慶 初開堂升座少頃曰 大衆向後到處遇道伴 作麽生擧似他 若有人擧得 試對衆擧看 若擧得免孤負上祖 亦免埋沒後來 古人道 通心君子文外相見 還有遮箇人麽 況是曹谿門下子孫 合作麽生理論 合作麽生提唱 僧問 昔日覺城東際象王迴旋 今日閩嶺南方如何提接 師曰 會麽 曰恁麽卽一機啓處四句難追 未委從上宗門成得什麽邊事 師曰 退後禮拜隨衆上下 問全提不到請師商量 師曰 拊掌得麽 僧曰 恁麽卽領會去也 師曰 莫錯 問如何得不傷於己不負於人 師曰 莫屈著汝遮問麽 僧曰 恁麽上來已蒙師指也 師曰 汝又屈著我作麽
●橫身; 挺身 置身
●上祖; 先祖 先祖師
●覺城; 指印度摩揭陀國伽耶城 乃佛陀成正覺之都城 故稱覺城
●象王迴旋; 華嚴經隨疏演義鈔二 爾時文殊師利童子 無量自在菩薩圍繞 并其大衆 如象王迴觀諸比丘 故云象王迴旋
●提接; 提示接引
●全提; 完全徹底的提示 是超越言句義理的 直指人心的禪機施設
천주(泉州) 초경원(招慶院) 성등(省僜) 정수대사(淨修大師). 스님이 보복(保福)을 초참(初參)하여 문답하다가 명부(冥符; 默契)했다. 어느 날 보복이 대전(大殿; 大雄寶殿)에 들어가 불상을 보고는(覩) 이에 거수(擧手)하고 스님에게 물어 가로되 부처의 이러한 뜻이 무엇인가. 스님이 대답해 가로되 화상도 또한 이 횡신(橫身)해야 합니다. 가로되 한 말뚝(橛)은 내가 스스로 수취(收取)하겠다. 사왈(師曰) 화상은 횡신(橫身)했을 뿐만이 아닙니다. 보복이 그렇다 하였다. 후에 초경(招慶)에 주(住)했다. 처음 개당(開堂)하자 승좌(升座)하여 소경(少頃; 片刻)에 가로되 대중이 향후(向後)에 도처(到處)에서 도반(道伴)을 만나면 어떻게 그에게 들어 보이겠는가(擧似). 만약 어떤 사람이 거득(擧得)한다면 시험 삼아 대중(對衆)하여 들어보아라(擧看). 만약 거득(擧得)한다면 상조(上祖)를 저버림(孤負)을 면할 것이며 또한 후래(後來)를 매몰(埋沒)함을 면할 것이다. 고인이 말하되 마음을 통한 군자(君子)는 문외(文外)에서 상견한다. 도리어 이런(遮箇) 사람이 있느냐. 하물며 이 조계문하(曹谿門下)의 자손이 합당히 어떻게 이론(理論)하며 합당히 어떻게 제장(提唱)해야 하는가. 승문(僧問) 석일(昔日) 각성(覺城)의 동제(東際)에서 상왕이 회선(象王迴旋)했거니와 금일 민령(閩嶺)의 남방에서 어떻게 제접(提接)하시겠습니까. 사왈 아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일기(一機)를 연 곳(啓處)에 사구(四句)로 쫓기 어렵습니다. 알지 못하오니(未委) 종상(從上)의 종문은 어느 쪽의 일을 이루었습니까(成得). 사왈 뒤로 물러나 예배하고 대중 따라 오르내리거라(上下). 묻되 전제(全提)하여도 이르지 못하니 스님의 상량(商量)을 청합니다. 사왈 부장(拊掌; 拍掌)함을 얻느냐.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영회(領會)하여 가겠습니다. 사왈 착오하지 말아라. 묻되 어찌해야 자기를 상(傷)하지 않고 남을 저버리지 않음을 얻습니까. 사왈 너의 이 질문을 굴착(屈著)시킴이 아니냐. 승왈 이러하다면 상래(上來; 방금. 以上)에 이미 스님의 지시(指示)를 입었습니다(蒙). 사왈 네가 또 나를 굴착(屈著)시켜 무엇하리오.
●橫身; 정신(挺身; 몸을 똑바로 일으킴). 치신(置身; 存身).
●上祖; 선조(先祖). 선조사(先祖師).
●覺城; 인도 마갈타국 가야성을 가리킴. 곧 불타가 정각을 이룬 도성인지라 고로 명칭이 각성임.
●象王迴旋; 화엄경수소연의초2. 이때 문수사리동자가 무량한 자재보살이 위요(圍繞)했고 그 대중을 아울렀다. 마치 상왕이 모든 비구를 회관(迴觀; 돌아보다)함과 같은지라 고로 이르되 상왕회선(象王迴旋)이다.
●提接; 제시(提示)하고 접인(接引)함.
●全提; 완전하고도 철저한 제시(提示)임. 이것은 언구와 의리(義理)를 초월한 것이며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는 선기(禪機)의 시설(施設)임.
問當鋒一句請師道 師曰嗄 僧再問 師曰 瞌睡漢 師問僧 離什麽處 曰報恩 師曰僧堂大小 曰和尙試道看 師曰 何不待問 問學人全身不會請師指示 師曰 還解笑得麽 師又曰 叢林先達者不敢相觸忤 若是初心後學 未信直須信取 未省直須省取 不受掠虛 諸人本分去處 未有一時不顯露 未有一物解蓋覆得 如今若要知 不用移絲髮地 不用少許工夫 但向博地位中承當取 豈不省心力 旣能省得 便與諸佛齊肩 依而行之 緣此事是箇白淨去處 今日須得白淨身心合他始得 自然合古合今 脫生離死 古人云 識心達本 解無爲法 方號沙門 如今諸官大衆各須體取好 莫全推過師僧分上 佛法平等 上至諸佛下至一切 共同此事 旣然如此 誰有誰無 勤王之外亦須努力 適來說如許多般 蓋不得已而已 莫道從上宗門合恁麽語話 只如從上宗門合作麽生 還相悉麽 若有人相悉 山僧今日得雪去也 久立大衆珍重
●嗄; 聲破 ▲莊子庚桑楚 兒子終日嗥而嗌不嗄 和之至也
●博地; 廣闊的土地大地
●勤王; 一王室有難 起兵救援靖亂 2.爲王室盡力
묻되 당봉(當鋒)한 1구를,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사(嗄). 중이 다시 묻자 사왈 갑수한(瞌睡漢; 조는 자)아.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보은(報恩)입니다. 사왈 승당(僧堂)이 크던가(大小). 가로되 화상이 시험 삼아 말해 보십시오. 사왈 왜 물음을 기다리지 않느냐. 묻되 학인이 전신(全身)이 알지 못하오니 스님의 지시를 청합니다. 사왈 도리어 웃을 줄(笑得) 아느냐. 스님이 또 가로되 총림의 선달자(先達者)는 감히 서로 촉오(觸忤; 觸犯)하지 않는다. 만약 이 초심(初心)이나 후학이 믿지 못했거든 바로 꼭 신취(信取)하고 살피지 못했거든 바로 꼭 성취(省取)하여 약허(掠虛)를 받지 말아라. 제인의 본분의 거처(去處)는 일시라도 현로(顯露)하지 않음이 있지 않고 일물(一物)이라도 개부(蓋覆)함을 얻을 줄 앎이 있지 않다. 여금에 만약 요지(要知)코자 한다면 사발지(絲髮地)만큼도 옮김을 쓰지 않고 소허(少許)의 공부(工夫; 功夫와 같음)를 쓰지 않고 단지 박지위(博地位) 가운데를 향해 승당(承當)하여 취한다면 어찌 심력(心力)를 덜지(省) 않겠는가. 이미 능히 덞을 얻었다면 바로 제불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의지해 이를 행하리라. 차사(此事)는 시개(是箇; 이) 백정(白淨; 潔白)의 거처(去處)이기 때문에(緣) 금일 모름지기 백정(白淨)의 신심(身心)을 얻어 그에 합해야 비로소 옳나니 자연히 합고합금(合古合今)하고 탈생이사(脫生離死)하리라. 고인이 이르되 마음을 알아 근본을 통달하고 무위법(無爲法)을 알아야(解) 바야흐로 호가 사문이다. 여금에 제관(諸官)과 대중이 각자 췌취(體取; 體得)를 써야 좋고 전부 사승(師僧)의 분상(分上)으로 미루지(推過; 過는 조사) 말아라. 불법은 평등하여 위로 제불에 이르고 아래로 일체(一切)에 이르기까지 차사(此事)가 공동(共同)이다. 이미 그러하여 이와 같거늘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겠는가. 근왕지외(勤王之外)에 또한 꼭 노력하라. 적래(適來)에 설한 허다반(許多般; 허다한 여러 가지)과 같은 것은 대개 부득이하였을 따름이니 종상(從上)의 종문(宗門)이 합당히 이러한 어화(語話)라고 말하지 말아라. 지여(只如) 종상의 종문이 합당히 어떠한가. 도리어 상실(相悉; 알다)하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상실한다면 산승이 금일 씻음(雪)을 얻었다 하리라. 구립(久立)했다, 대중이여. 진중(珍重)하라.
●嗄; 성파(聲破; 음성이 깨어지다). ▲장자 경상초. 아이가 종일 울어도 목구멍이 쉬지(嗄) 않음은 화합의 지극함이다.
●博地; 광활한 토지와 대지.
●勤王; 1. 왕실에 난(難)이 있으면 기병(起兵)하여 구원하여 정란(靖亂)함. 2. 왕실을 위해 진력(盡力)함.
漳州保福院可儔明辯大師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雲在靑天水在缾 問如何是吹毛劍 師曰 瞥落也 僧曰 還用也無 師曰 莫鬼語
장주(漳州) 보복원(保福院) 가주(可儔) 명변대사(明辯大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구름은 청천(靑天)에 있고 물은 병(缾)에 있다. 묻되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사왈 갑자기(瞥) 떨어졌다. 승왈(僧曰) 도리어 씁니까(用) 또는 아닙니까. 사왈 귀어(鬼語)를 하지 말아라.
舒州白水海會院如新禪師 師上堂良久乃曰 禮煩卽亂 僧問 從上宗乘如何擧唱 師曰 轉見孤獨 僧曰 親切處乞師一言 師曰 不得雪也聽他 問如何是迦葉頓領底事 師曰 汝若領得我卽不悋 僧曰 恁麽卽不煩於師去也 師曰 又須著棒爭得不煩 僧問 古人橫說竪說猶未知向上一關棙子 如何是向上一關棙子 師曰 賴遇孃生臂短 問如何是祖師意 師曰 要道何難 僧曰 便請師道 師曰 將謂靈利又不仙陀 問羚羊挂角時如何 師曰 恁麽來又恁麽去 僧曰 爲什麽如此 師曰 只見好笑 不知爲什麽如此
서주(舒州) 백수(白水) 해회원(海會院) 여신선사(如新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양구(良久)하고 이에 가로되 예의가 번거로우면 곧 혼란(混亂)하다(禮煩卽亂). 승문(僧問) 종상(從上)의 종승을 어떻게 거창(擧唱)합니까. 사왈(師曰) 더욱 고독함을 본다(轉見孤獨). 승왈(僧曰) 친절한 곳을, 스님의 일언(一言)을 구걸합니다. 사왈 씻음(雪)을 얻지 못했으니 그것을 들어라(聽). 묻되 무엇이 이 가섭이 문득 영오(領悟)한 일입니까. 사왈 내가 만약 영득(領得; 領悟함을 얻다)했다면 내가 곧 아끼지(悋) 않겠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스님을 번거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사왈 또 착방(著棒; 棒을 쓰다. 棒을 잡다)함을 쓰거늘(須) 어찌 번거롭지 않음을 얻겠는가. 승문 고인(古人; 牛頭法融)이 횡설수설(橫說竪說)하면서 오히려 향상의 한 관려자(關棙子)를 알지 못했다 하니 무엇이 이 향상의 한 관려자입니까. 사왈 다행히 양생(孃生)의 팔이 짧음을 만났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의(祖師意)입니까. 사왈 말함을 요한다면 무엇 어렵겠는가. 승왈 스님의 말씀을 바로 청합니다. 사왈 장차 이르기를 영리(靈利)하다 하렸더니 또 선타(仙陀)가 아니구나. 묻되 영양(羚羊)이 괘각(挂角)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렇게(恁麽) 왔다가 또 이렇게 간다. 승왈 무엇 때문에 이와 같습니까. 사왈 다만 호소(好笑)를 보고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지 알지 못한다.
洪州漳江慧廉禪師 師初開堂有僧問 昔日梵王請佛 蓋爲奉法之心 今日朱紫臨筵 未審師如何拯濟 師曰 別不施行 僧曰 爲什麽不施行 師曰 什麽處去來 問師登寶座曲爲今時 四衆攀瞻請師接引 師曰 什麽處屈汝 僧曰 恁麽卽垂慈方便路 直下不孤人也 師曰 也須收取好 問如何是漳江境 師曰 地藏皺眉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普賢摻袂 問如何是漳江水 師曰苦 問如何是漳江第一句 師曰 到別處不得錯擧
●梵王請佛; 法華經一方便品 爾時諸梵王 及諸天帝釋 護世四天王 及大自在天 幷餘諸天衆 眷屬百千萬 恭敬合掌禮 請我轉法輪
●朱紫; 古代高級官員的服色或服飾 謂紅色紫色官服
●攀瞻; 攀附瞻視
●地藏; 地藏菩薩 在忉利天 受釋迦如來付屬 每日晨朝入恒沙禪定觀察衆機 於釋尊圓寂後至彌勒菩薩成道間之無佛時代 敎化六道衆生之大悲菩薩也 安忍不動猶如大地 靜慮深密猶如祕藏 故名地藏 [地藏十輪經一 大方廣十輪經一序品 占察善惡業報經上]
●摻袂; 執袖 猶握別
홍주(洪州) 장강(漳江) 혜렴선사(慧廉禪師). 스님이 처음 개당하자 어떤 중이 묻되 석일(昔日) 범왕이 청불(梵王請佛)함은 대개 봉법(奉法)하는 마음 때문(爲)이었습니다. 금일 주자(朱紫)가 법연(法筵)에 임했는데(臨筵) 미심하오니 스님이 어떻게 증제(拯濟)하겠습니까. 사왈(師曰) 달리 시행(施行)하지 않겠다. 승왈(僧曰) 무엇 때문에 시행하지 않습니까. 사왈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什麽處去來). 묻되 스님이 보좌(寶座)에 올라 위곡(委曲; 詳細)히 금시(今時)를 위하매 사중(四衆)이 반첨(攀瞻)하니 스님의 접인(接引)을 청합니다. 사왈 어느 곳이 너를 굴복시키느냐.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수자(垂慈)의 방편로(方便路)니 직하(直下; 즉시)에 사람을 저버리지(孤) 않음입니다. 사왈 또한 수취(收取)함을 써야(須) 좋다. 묻되 무엇이 이 장강경(漳江境)입니까. 사왈 지장(地藏)이 눈썹을 찌푸린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보현(普賢)이 삼몌(摻袂)한다. 묻되 무엇이 이 장강수(漳江水)입니까. 사왈 괴롭다(苦). 묻되 무엇이 이 장강(漳江)의 제1구입니까. 사왈 다른 곳에 이르거든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梵王請佛; 법화경1 방편품. 이때 모든 범왕(梵王)/ 및 모든 천제석과/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과/ 및 대자재천과/ 아울러 여타의 모든 천중(天衆)의/ 권속 백천만이/ 공경하고 합장하고 절하면서/ 나에게 법륜을 굴리라고 청하였다.
●朱紫; 고대 고급 관원의 복색 혹 복식이니 이르자면 홍색과 자색의 관복(官服).
●攀瞻; 반부(攀附; 依附)하여 첨시(瞻視)함.
●地藏; 지장보살(地藏菩薩)이니 도리천에 있으면서 석가여래의 부촉을 받아 매일 이른 아침 항사(恒沙)의 선정에 들어 중기(衆機)를 관찰했음. 석존이 원적한 후 미륵보살이 성도함에 이르는 사이의 무불시대(無佛時代)에 6도(道)의 중생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임. 안인(安忍)하며 부동(不動)함이 마치 대지와 같고 정려(靜慮)가 심밀(深密)함이 마치 비장(祕藏)과 같은지라 고로 이름이 지장(地藏)임 [지장십륜경1. 대방광십륜경1서품. 점찰선악업보경상].
●摻袂; 소매를 잡음. 악별(握別; 握手하며 고별함)과 같음.
福州報慈院文欽禪師 問如何是諸佛境 師曰 雨來雲霧暗 晴乾日月明 問如何是妙覺明心 師曰 今冬好晩稻 出自秋雨成 問如何是妙覺聞心 師曰 雲生碧岫雨降靑天 問如何是平常心合道 師曰 喫茶喫飯隨時過 看水看山實暢情
●晩稻; 一種生長期較長 成熟期較晩的稻 一般在霜降後收割
●妙覺聞心; 諸禪錄皆作妙用河沙
복주(福州) 보자원(報慈院) 문흠선사(文欽禪師). 묻되 무엇이 이 제불경(諸佛境)입니까. 사왈(師曰) 비가 오니 운무(雲霧)가 어둡고 청건(晴乾; 맑고 건조함)하니 일월이 밝다. 묻되 무엇이 이 묘각명심(妙覺明心)입니까. 사왈 금동(今冬)엔 좋은 만도(晩稻)니 나옴이 추우(秋雨)로부터 이루어진다. 묻되 무엇이 이 묘각문심(妙覺聞心)입니까. 사왈 구름이 벽수(碧岫)에서 발생하고 비가 청천(靑天)에서 강하(降下)한다. 묻되 무엇이 이 평상심이 도에 합함입니까. 사왈 차를 먹고 밥을 먹으며 시절 따라 지내고 물을 보고 산을 보며 실로 창정(暢情; 盡情)한다.
●晩稻; 일종의 생장기(生長期)가 조금 길고 성숙기가 조금 늦은 벼. 일반으로 상강(霜降) 후에 수할(收割)함.
●妙覺聞心; 여러 선록에 모두 묘용하사(妙用河沙)로 지었음.
泉州萬安院淸運資化禪師 僧問 龍溪一派晉水分燈 萬安臨筵如何指示 師曰 作麽生折合 僧曰 未審師還許也無 師曰 更作麽生 僧曰 昔日龍谿密旨 今朝萬安顯揚 人天側聆願垂開演 師曰 還聞麽 僧曰 恁麽卽五衆已蒙師指的 不異城東十眼開 師曰 五衆且置仁者作麽生 問久處幽冥全身不會乞師指示 師曰 莫屈著汝問麽 曰恁麽卽禮拜隨衆上下 師還許也無 師曰 靜處薩婆訶 問諸佛出世震動乾坤 和尙出世未審如何 師曰 向汝恁麽道 僧曰 恁麽卽不異諸聖去也 師曰 莫亂道 問如何是萬安家風 師曰 苔羹倉米飯 僧曰 忽遇上客來將何秖待 師曰 飯後三巡茶 問如何是萬安境 師曰 一塔松蘿望海淸
●折合; 一了結 結果 畢竟 二應對 對處 此指一
●五衆; 此指出家五衆 一比丘 二比丘尼 三式叉摩那 四沙彌 五沙彌尼 其中比丘比丘尼受具足戒 式叉摩那受六法 沙彌沙彌尼受十戒
●城東十眼開; 禪門拈頌集第二四則曰 城東老母 與佛同生一世而不欲見佛 每見佛來 卽便迴避 迴頭轉面 皆避不得 以手掩面 十指掌中 悉皆見佛 詳見觀佛三昧海經六
●幽冥; 一昏暗 暗昧 二陰間 此指一
천주(泉州) 만안원(萬安院) 청운(淸運) 자화선사(資化禪師). 승문(僧問) 용계(龍溪; 保福從展을 가리킴) 일파(一派)가 진수(晉水)에서 분등(分燈)했거니와 만안(萬安)이 임연(臨筵)하여 어떻게 지시하시렵니까. 사왈(師曰) 어떻게 절합(折合)하겠는가. 승왈(僧曰) 미심하오니 스님이 도리어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다시 어찌하겠는가. 승왈 석일(昔日)의 용계(龍谿; 龍溪와 같음)의 밀지(密旨)를 금조(今朝)에 만안(萬安)이 현양(顯揚)하니 인천(人天)이 측령(側聆)하며 개연(開演)을 드리움을 원합니다. 사왈 도리어 듣느냐. 승왈 이러하다면 곧 5중(五衆)이 이미 스님의 지적(指的)을 입어(蒙) 성동의 십안이 열림(城東十眼開)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왈 5중은 그래 두고 인자(仁者)는 어떠한가. 묻되 유명(幽冥)에 오래 거처하며 전신(全身)이 알지 못하오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너의 물음을 굴복시킴(屈著)이 아니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예배하고 대중 따라 오르내리겠으니 스님이 도리어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정처살바하(靜處薩婆訶). 묻되 제불이 출세하매 건곤을 진동(震動)시켰거니와 화상이 출세함은 미심하오니 어떻습니까. 사왈 너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제성(諸聖)과 다르지 않겠습니다. 사왈 어지럽게 말하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만안(萬安)의 가풍입니까. 사왈 이끼 국에 창고의 쌀의 밥이다(苔羹倉米飯). 승왈 홀연히 상객(上客)이 옴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지대(秖待)합니까. 사왈 반후(飯後)에 세 번 차를 돌린다. 묻되 무엇이 이 만안경(萬安境)입니까. 사왈 일탑(一塔)의 송라(松蘿)가 해청(海淸; 바다의 청정함)을 바라본다.
●折合; 1. 요결(了結). 결과. 필경. 2. 응대. 대처(對處).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五衆; 여기에선 출가 5중을 가리킴. 1은 비구며 2는 비구니며 3은 식차마나(式叉摩那)며 4는 사미며 5는 사미니임. 그 중에 비구와 비구니는 구족계를 받으며 식차마나는 6법을 받으며 사미와 사미니는 10계를 받음.
●城東十眼開; 선문염송집 제24칙에 가로되 성동노모(城東老母)는 부처와 1세(世)를 동생(同生)했으나 부처를 보지 않으려 했다. 매양 부처가 오는 것을 보면 곧 바로 회피했는데 머리를 돌리고 얼굴을 돌려도 다 회피함을 얻지 못했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나 열 손가락 손바닥 가운데 모두 다 부처가 보였다. 상세한 것은 관불삼매해경6을 보라.
●幽冥; 1. 혼암(昏暗). 암매(暗昧). 2. 음간(陰間; 人類가 사망한 후 그 영혼이 所在하는 空間).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漳州報恩院道熙禪師 初與保福送書往泉州王太尉處 太尉問 漳南和尙近日還爲人也無 師曰 若道爲人卽屈著和尙 若道不爲人 又屈著太尉來問 太尉曰 道取一句 待鐵牛能齧草 木馬解含煙 師曰 某甲惜口喫飯 太尉良久又問 驢來馬來 師曰 驢馬不同途 太尉曰 爭得到遮裏 師曰 特謝太尉領話 僧問 名言妙句卽不問 請師眞實 師曰 不阻來意
장주(漳州) 보은원(報恩院) 도희선사(道熙禪師). 처음 보복(保福)을 위해(與) 송서(送書)하면서 천주(泉州) 왕태위(王太尉)의 처소에 갔다. 태위가 묻되 장남(漳南) 화상이 근일 도리어 위인(爲人)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師曰) 만약 위인을 말한다면 곧 화상을 굴착(屈著)시킬 것이며 만약 위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또 태위의 내문(來問)을 굴착시킬 것입니다. 태위가 가로되 1구를 말하리니(道取) 철우(鐵牛)가 능히 풀을 씹음을 기다렸다가 목마(木馬)가 안개(煙)를 머금을 줄 압니다. 사왈 모갑이 입을 아꼈다가(惜; 저본에 借로 지었음) 밥을 먹겠습니다. 태위가 양구(良久)하고 또 묻되 나귀로 왔습니까 말로 왔습니까. 사왈 나귀와 말이 동도(同途)가 아닙니다. 태위가 가로되 어떻게 이 속에 이름을 얻었습니까. 사왈 태위가 영화(領話; 말을 領會)함에 특별히 감사합니다. 승문(僧問) 명언(名言)과 묘구(妙句)는 곧 묻지 않나니 스님의 진실을 청합니다. 사왈 내의(阻)를 막지 않겠다.
泉州鳳凰山從琛洪忍禪師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門風相似卽無阻矣 學人不是其人 僧曰 忽遇恁麽人時如何 師曰 不可預搔而待痒 問學人根思遲迴 方便門中乞師傍瞥 師曰 傍瞥 僧曰 深領師旨安敢言乎 師曰 太多也 師有時上堂 有僧出來禮拜退後立 師曰 我不如汝 僧應諾 師曰 無人處放下著 問昔日靈山會上 佛以一音演說 今日請師一音演說 師良久 僧曰 恁麽卽大衆頓息疑網去也 師曰 莫塗污大衆好 問諸佛皆以大事因緣故出現於世 未審和尙如何拯濟 師曰 大好風涼 問如何是學人自己事 師曰 暗算流年事可知 問如何是鳳凰境 師曰 雪夜觀明月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作人醜差 僧曰 爲人何在 師曰 莫屈著汝麽
●門風; 一指禪宗道法 二指流派的思想風格 敎學和儀規特色等 此指二
●傍瞥; 傍瞥語 略稱傍瞥 師家接化學人時 不以正面提示之方法 而由側面用言語 略加透露旨要 故稱傍瞥語
●流年; 歲月 光陰
●醜差; 醜陋 低劣
천주(泉州) 봉황산(鳳凰山) 종침(從琛) 홍인선사(洪忍禪師).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문풍(門風)이 상사(相似)해야 곧 막힘(阻)이 없나니 학인은 이, 그 사람이 아니다. 승왈(僧曰) 홀연히 이러한 사람을 만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미리 긁고서 가려움을 기다림은 옳지 않다. 묻되 학인은 근사(根思)가 지회(遲迴; 猶豫하며 定하지 못함)하니 방편문 가운데서 스님의 방별(傍瞥)을 구걸합니다. 사왈 방별(傍瞥)이다. 승왈 스님의 의지(意旨)를 깊이 영회(領會)했거늘 어찌 감히 말하겠습니까. 사왈 너무 많다(太多也). 스님이 어떤 때 상당하자 어떤 중이 나와서 예배하고 뒤로 물러나 섰다. 사왈 내가 너만 같지 못하다. 중이 응낙했다. 사왈 사람이 없는 곳에서 방하착(放下著; 내려놓다)하라. 묻되 석일(昔日) 영산회상에서 부처가 일음(一音)으로써 연설했거니와 금일 청컨대 스님이 일음으로 연설하십시오.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의망(疑網)을 돈식(頓息)하여 갈 것입니다. 사왈 대중을 도오(塗污)하지 말아야 좋으니라. 묻되 제불이 모두 대사인연(大事因緣)을 쓴 연고로 세상에 출현했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이 어떻게 증제(拯濟)하겠습니까. 사왈 대호(大好; 十分) 풍량(風涼)이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사(自己事)입니까. 사왈 유년(流年)을 암산(暗算)하면 일을 가히 알 것이다. 묻되 무엇이 이 봉황경(鳳凰境)입니까. 사왈 설야(雪夜)에 명월을 본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사람의 추차(醜差)를 짓는다. 승왈 위인(爲人)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왈 너를 굴착(屈著)시킴이 아니냐.
●門風; 1. 선종의 도법을 가리킴. 2. 유파(流派)의 사상과 풍격(風格), 교학과 의규(儀規)의 특색 등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傍瞥; 방별어(傍瞥語)니 약칭이 방별(傍瞥). 사가가 학인을 접화(接化)할 때 정면으로 제시하는 방법이 아니라 측면으로 말미암아 언어를 쓰면서 조금 투로(透露; 넌지시 드러내다)의 지요(旨要)를 가하므로 고로 명칭이 방별어임.
●流年; 세월. 광음(光陰).
●醜差; 추루(醜陋). 저열(低劣).
福州永隆院瀛和尙明慧禪師 師上堂曰 謂言侵早起 更有夜行人 似卽似是卽不是 珍重 問無爲無事人 爲什麽却是金鎖難 師曰 爲斷麁纖 貴重難留 曰爲什麽道無爲無事人逍遙實快樂 師曰 爲鬧亂且要斷送 有僧參 師曰 不要得許多般數 速道速道 僧無對 師有時示衆曰 日出卯 用處不須生善巧 問如何進向得達本源 師曰 依而行之
●斷送; 一打發 發送 餞送 二毀滅 此指二
복주(福州) 영륭원(永隆院) 영화상(瀛和尙) 명혜선사(明慧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가로되 일러 말하기를 침조(侵早)에 일어났다 하였더니 다시 야행(夜行)하는 사람이 있더라. 비슷하기야 곧 비슷하지만 옳기는 곧 옳지 않다. 진중(珍重)하라. 묻되 무위무사(無爲無事)한 사람이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이 금쇄난(金鎖難)입니까. 사왈(師曰) 추식(麁纖)을 끊기 위해 귀중(貴重)은 머물러두기 어렵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말하되 무위무사한 사람은 소요(逍遙)하며 실로 쾌락하다 합니까. 사왈 요란(鬧亂)하기 때문에 다만(且) 단송(斷送)을 요한다. 어떤 중이 참(參)하자 사왈 허다한 여러 가지 수(許多般數)를 얻음을 요하지 않나니 빨리 말하라, 빨리 말하라.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어떤 때 시중(示衆)하여 가로되 해가 묘시에 나오나니(日出卯) 용처(用處)에 선교(善巧)를 냄을 쓰지(須) 말아라. 묻되 어떻게 진향(進向)해야 본원(本源)에 도달함을 얻습니까. 사왈 의지하여 이를 행하라.
●斷送; 1. 타발(打發; 파견해서 일을 처리하게 함). 발송. 전송. 2. 훼멸(毀滅).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洪州淸泉山守淸禪師 福州閩縣人也 姓林氏 出家于巖背山 悟心之後受請居淸泉 玄侶臻集 問如何是佛 師曰問 僧曰 如何是祖 師曰答 僧問 和尙見古人得箇什麽便住此山 師曰 情知汝不肯 僧曰 爭知某甲不肯 師曰 鑒貌辨色 問親切處乞師一言 師曰 莫過此 問古人面壁爲何事 師曰屈 曰恁麽卽省心力 師曰 何處有恁麽人 問諸餘卽不問 如何是向上事 師曰 消汝三拜 不消汝三拜
홍주(洪州) 청천산(淸泉山) 수청선사(守淸禪師). 복주 민현(閩縣) 사람이며 성이 임씨(林氏)다. 암배산(巖背山)에서 출가했고 오심(悟心)한 후에 수청(受請)하여 청천(淸泉)에 거주했는데 현려(玄侶; 승려)가 진집(臻集; 모이다)했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물었다(問). 승왈(僧曰) 무엇이 이 조사입니까. 사왈 답했다(答). 승문(僧問) 화상은 고인(古人)의, 저(箇) 무엇을 얻음을 보고 바로 이 산에 거주합니까. 사왈 정지(情知; 思料)하노니 너는 불긍(不肯)한다. 승왈 모갑이 불긍하는지 어떻게 압니까. 사왈 모양을 살피고 색을 분변했다(鑒貌辨色). 묻되 친절한 곳을, 스님의 일언을 구걸합니다. 사왈 이것을 초과하지 못한다. 묻되 고인이 면벽한 것은 무슨 일 때문입니까(爲何事). 사왈 굴(屈)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심력(心力)을 덜 것입니다. 사왈 어느 곳에 이러한 사람이 있겠는가. 묻되 제여(諸餘)는 곧 묻지 않나니 무엇이 이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사왈 너의 삼배(三拜)를 수용(受用; 消)해야 할까, 너의 삼배를 수용하지 말아야 할까.
漳州報恩院行崇禪師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碓擣磨磨 問曹谿一路請師擧揚 師曰 莫屈著曹谿麽 曰恁麽卽群生有賴 師曰 汝也是老鼠喫鹽 問不涉公私如何言論 師曰 喫茶去 問丹霞燒木佛意作麽生 師曰 時寒燒火向 曰翠微迎羅漢意作麽生 師曰 別是一家春
●翠微迎羅漢; 見上十四翠微無學章
장주(漳州) 보은원(報恩院) 행숭선사(行崇禪師).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師曰) 방아로 찧고 맷돌로 간다. 묻되 조계(曹谿)의 일로(一路)를, 스님의 거양(擧揚)을 청합니다. 사왈 조계를 굴착(屈著)시킴이 아니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군생(群生)이 신뢰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너는 이 늙은 쥐가 소금을 먹었음이다. 묻되 공사(公私)에 건너지 않고 어떻게 언론(言論)합니까. 사왈 차 먹고 가거라. 묻되 단하(丹霞)가 목불을 태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때가 추우니 소화(燒火)하여 향했다. 가로되 취미가 라한을 맞이한(翠微迎羅漢)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별다른 이 일가(一家)의 봄이다.
●翠微迎羅漢; 위 14 취미무학장(翠微無學章)을 보라.
潭州嶽麓山和尙 師上堂良久 謂衆曰 昔日毘盧今朝嶽麓珍重 問如何是聲色外句 師曰 猿啼鳥叫 問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五音六律 問截舌之句請師擧揚 師曰 日能熱月能涼
담주(潭州) 악록산(嶽麓山) 화상. 스님이 상당하여 양구(良久)하고는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석일(昔日)의 비로(毘盧)가 금조(今朝)의 악록(嶽麓)이다. 진중(珍重)하라. 묻되 무엇이 이 성색(聲色) 밖의 구(外)입니까. 사왈(師曰) 원숭이가 울고 새가 부르짖는다. 묻되 스님은 뉘집의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 오음육률(五音六律)이다. 묻되 절설지구(截舌之句)를, 스님의 거양(擧揚)을 청합니다. 사왈 해는 능히 뜨겁고 달은 능히 서늘하다.
朗州德山德海禪師 僧問 靈山一會何人得聞 師曰 闍梨得聞 曰未審靈山說箇什麽 師曰 卽闍梨會 問如何是該天括地句 師曰 千界搖動 問從上宗乘以何爲驗 師曰 從上且置卽今作麽生驗 曰 大衆總見 師曰 話墮也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擘
낭주(朗州) 덕산(德山) 덕해선사(德海禪師). 승문(僧問) 영산일회(靈山一會)를 어떤 사람이 득문(得聞)합니까. 사왈(師曰) 사리(闍梨)가 득문(得聞)한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영산에서 저(箇) 무엇을 설했습니까. 사왈 곧 사리(闍梨)가 안다. 묻되 무엇이 이 하늘을 갖추고 땅을 묶는 구(該天括地句)입니까. 사왈 천계(千界)가 요동(搖動)한다. 묻되 종상의 종승은 무엇으로써 증험(證驗)합니까. 사왈 종상은 그래 두고 즉금은 어떻게 증험하는가. 가로되 대중이 모두(總) 봅니다. 사왈 화타(話墮)했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쪼개었다(擘).
泉州後招慶和尙 問末後一句請師商量 師曰 塵中人自老 天際月常明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一甁兼一鉢 到處是生涯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擾擾怱怱 晨雞暮鐘
●擾擾怱怱; 紛亂怱忙
천주(泉州) 후초경(後招慶) 화상. 묻되 말후일구(末後一句)를, 스님의 상량(商量)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진중(塵中)의 사람은 스스로 늙고 천제(天際)의 달은 늘 밝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일병(一甁)과 겸하여 일발(一鉢)이니 도처(到處)에 이 생애(生涯)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요요총총(擾擾怱怱)한 새벽의 닭이며 저녁의 종이다.
●擾擾怱怱; 분란(紛亂; 어수선하고 떠들썩함)하고 총망(怱忙; 바쁨)함.
朗州梁山簡禪師 師問新到僧 什麽處來 曰藥山來 師曰 還將得藥來麽 僧曰 和尙住山不錯
낭주(朗州) 양산간(梁山簡) 선사. 스님이 신도승(新到僧)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약산(藥山)에서 옵니다. 사왈 도리어 약을 가지고(將得) 왔느냐. 승왈(僧曰) 화상은 주산(住山)이 어긋나지(錯) 않습니다.
洪州高安縣建山澄禪師 開堂日有僧問 牧長請命 和尙如何擧揚宗敎 師曰 還聞麽 僧曰恁麽卽大衆有賴 師曰 還是不聞 問如何是法王劍 師曰 可惜許 曰如何是人王劍 師曰 塵埋床下履 風動架頭巾 問一代時敎接引今時 未審祖宗如何示人 師曰一代時敎已有人問了也 曰和尙如何示人 師曰惆悵庭前紅莧樹 年年生葉不生華 問故歲已去新歲到來 還有不受歲者無 師曰 作麽生 僧曰 恁麽卽不受歲也 師曰 城上已吹新歲角 窓前猶點舊年燈 僧曰 如何是舊年燈 師曰 臘月三十日
●祖宗; 原指爲始祖的祖上 禪林中 指祖師之宗旨宗風 又指祖師
●架頭; 架上 頭 後綴
홍주(洪州) 고안현(高安縣) 건산징(建山澄) 선사. 개당일에 어떤 중이 묻되 목장(牧長; 牧主)이 청명(請命)했는데 화상이 어떻게 종교(宗敎)를 거양(擧揚)하겠습니까. 사왈(師曰) 도리어 듣느냐.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대중이 신뢰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도리어 이 듣지 못했구나. 묻되 무엇이 이 법왕의 검입니까. 사왈 가석하다(可惜許). 가로되 무엇이 이 인왕(人王)의 검입니까. 사왈 먼지는 상하(床下)의 신을 매몰하고 바람은 가두(架頭)의 수건을 움직인다. 묻되 일대시교(一代時敎)는 금시(今時)를 접인(接引)하거니와 미심하오니 조종(祖宗)은 어떻게 시인(示人)합니까. 사왈 일대시교를 이미 어떤 사람이 물었다. 가로되 화상은 어떻게 시인(示人)합니까. 사왈 슬프다(惆悵) 뜰 앞의 홍현수(紅莧樹; 莧은 비름)여 해마다 잎이 나지만 꽃이 나지 않는구나. 묻되 고세(故歲)는 이미 가고 신세(新歲)가 도래했습니다. 도리어 수세(受歲)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왈 어떠한가(作麽生). 승왈 이러하다면 곧 수세하지 않음입니다. 사왈 성 위엔 이미 새해의 호각(號角; 喇叭)을 불었건만 창 앞엔 아직 구년(舊年)의 등을 켰다. 승왈 무엇이 이 구년(舊年)의 등입니까. 사왈 납월 30일이다.
●祖宗; 원래는 시조의 조상을 가리킴이나 선림 중에서 조사의 종지와 종풍을 가리킴. 또 조사를 가리킴.
●架頭; 가상(架上; 架는 시렁. 횃대). 두는 후철.
福州康山契穩法寶大師 初開堂有僧問 威音王已後次第相承 未審師今一會法嗣何方 師曰 象骨擧手龍谿點頭 問圓明湛寂非師旨 學人因底却不明 師曰 辨得未 僧曰 恁麽卽識性無根去也 師曰 隔靴搔癢
●底; 一結構助詞 或相當于的 或相當于地 二甚 什麽 此指二
●隔靴搔癢; 癢 同痒 隔著靴子搔痒處 喩指徒勞妄爲
복주(福州) 강산(康山) 계온(契穩) 법보대사(法寶大師). 처음 개당하자 어떤 중이 묻되 위음왕(威音王) 이후(已後)에 차제(次第)로 상승(相承)했거니와 미심하오니 스님의 지금(只今)의 일회(一會)는 법을 어느 방면에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상골(象骨; 설봉)이 거수(擧手)하매 용계(龍谿; 保福從展을 가리킴)가 점두(點頭; 머리를 끄덕이다)했다. 묻되 원명(圓明)하고 담적(湛寂)함은 스님의 의지(意旨)가 아니거니와 학인은 무엇 때문에(因底) 도리어 밝히지 못합니까. 사왈 분변했느냐 아니냐(辨得未).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식성(識性)이 근본이 없습니다. 사왈 격화소양(隔靴搔癢)이다.
●底;1. 결구조사(結構助詞). 혹 적(的)에 상당함. 혹 지(地)에 상당함. 2. 심(甚). 십마(什麽).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隔靴搔癢; 양(癢)은 양(痒)과 같음. 신발을 격착(隔著; 신발을 신은 채)하여 가려운 곳을 긁음이니 도로(徒勞; 헛수고)며 허망한 행위를 비유로 가리킴.
潭州延壽寺慧輪大師 僧問 寶劍未出匣時如何 師曰 不在外 曰出匣後如何 師曰 不在內 問如何是一色 師曰 靑黃赤白 曰大好一色 師曰將謂無人 也有一箇半箇
담주(潭州) 연수사(延壽寺) 혜륜대사(慧輪大師). 승문(僧問) 보검이 갑(匣)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밖에 있지 않다. 가로되 갑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안에 있지 않다. 묻되 무엇이 이 일색(一色)입니까. 사왈 청황적백이다. 가로되 대호(大好) 일색입니다. 사왈 장차 이르기를 사람이 없다고 하렸더니 또한 일개반개(一箇半箇)가 있구나.
泉州西明院琛禪師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竹箸瓦椀 僧曰 忽遇上客來時如何秖待 師曰 黃韲倉米飯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問取露柱看
천주(泉州) 서명원(西明院) 침선사(琛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대젓가락과 와완(瓦椀; 진흙으로 구워 만든 사발)이다. 승왈(僧曰) 홀연히 상객(上客)이 옴을 만났을 때 어떻게 지대(秖待)합니까. 사왈 누런 나물(黃韲)과 창미(倉米)의 밥이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노주(露柱)에게 문취(問取; 取는 조사)해 보아라.
前南嶽金輪可觀禪師法嗣
後南嶽金輪和尙 僧問 如何是金輪第一句 師曰 鈍漢 問如何是金輪一隻箭 師曰 過也 曰臨機一箭誰是當者 師曰 倒也
후남악금륜(後南嶽金輪) 화상. 승문(僧問) 무엇이 이 금륜(金輪)의 제1구입니까. 사왈(師曰) 둔한(鈍漢)아. 묻되 무엇이 이 금륜의 1척(隻) 화살입니까. 사왈 지나갔다(過也). 가로되 임기(臨機)의 1전(箭)을 누가 이 당(當)하는 자입니까. 사왈 넘어졌다.
前泉州睡龍山道溥禪師法嗣
漳州保福院淸豁禪師 福州永泰人也 少而聰敏 禮鼓山興聖國師落髮稟具 初謁大章山契如庵主〈有語具如庵主章出焉〉 後參睡龍 睡龍一日問曰 豁闍梨 見何尊宿來 還悟也未 曰淸豁嘗訪大章得箇信處 睡龍於是上堂 集大衆召曰 淸豁闍梨 出對衆燒香說悟處 老僧與汝證明 師乃拈香曰 香已拈 悟卽不悟 睡龍大悅而許之
●稟具; 稟受具足戒
장주(漳州) 보복원(保福院) 청활선사(淸豁禪師). 복주 영태(永泰) 사람이다. 소년(少年)에 총민(聰敏)했고 고산(鼓山) 흥성국사(興聖國師)를 예알하여 낙발(落髮)하고 품구(稟具)했다. 처음엔 대장산(大章山) 계여(契如) 암주를 참알했고〈말을 갖춤이 있음은 庵主章에 나온 것과 같다〉 후에 수룡(睡龍)을 참했다. 수룡이 어느 날 문왈(問曰) 활사리(豁闍梨)는 어떤 존숙을 상견하고 왔느냐. 도리어 깨달았는가 또는 아닌가. 가로되 청활(淸豁)이 대장(大章)을 참방하여 저(箇) 신처(信處)를 얻었습니다. 수룡이 이에 상당하여 대중을 모으고 불러 가로되 청활(淸豁; 저본에 請豁로 지었음) 사리는 나와서 대중(對衆)하여 소향(燒香)하고 깨친 곳을 설하라. 노승이 너에게 증명해 주겠다. 스님이 이에 염향(拈香)하고 가로되 향은 이미 염(拈)했으나 깨침은 곧 깨치지 못했습니다. 수룡이 대열(大悅)하며 허가했다.
●稟具; 구족계를 품수(稟受)함.
上堂謂衆曰 山僧今與諸人作箇和頭 和者默然不和者說 有頃間又曰 和與不和 切在如今 山僧帶些子事 珍重 僧問 家貧遭劫時如何 師曰 不能盡底去 曰爲什麽不盡底去 師曰 賊是家親 曰旣是家親 爲什麽翻成家賊 師曰 內旣無應外不能爲 曰忽然捉敗功歸何所 師曰 賞亦未曾聞 曰恁麽卽勞而無功 師曰 功卽不無成而不處 曰旣是成功爲什麽不處 師曰 不見道 太平本是將軍致 不使將軍見太平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胡人泣漢人悲 師將順世捨衆欲入山待滅 過苧谿石橋乃遺偈言 世人休說路行難 鳥道羊腸咫尺間 珍重苧谿谿畔水 汝歸滄海我歸山 卽往貴湖卓庵 未幾謂門人曰 吾滅後將遺骸 施諸蟲螘勿置墳塔 言訖潛入湖頭山 坐磐石儼然長往 弟子戒因入山尋見 稟遺命延留七日 竟無蟲螘之所侵食 遂就闍維散於林野 今泉州開元寺淨土院影堂存焉
●和頭; 和事(和解紛爭)
●家親; 家族中的長輩 多指父母
●捉敗; 挫敗 受挫
●鳥道羊腸; 狹窄彎曲又高又險的山上小路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산승이 금일 제인에게 저(箇) 화두(和頭)가 되어 주겠다. 화(和)하는 자는 묵연하고 불화(不和)하는 자는 설하라. 유경간(有頃間; 不久間) 또 가로되 화(和)와 불화(不和)는 온통(切) 여금에 있나니 산승이 사자사(些子事; 些少한 일)를 지녔다(帶).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집이 가난한데 겁탈(劫奪)을 만났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능히 바닥까지 없애진 못한다(盡底去). 가로되 무엇 때문에 바닥까지 없애지 못합니까. 사왈 도적이 이 가친(家親)이다. 가로되 이미 이 가친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翻) 가적(家賊)을 이룹니까. 사왈 안에서 이미 응함이 없으면 밖에서 능히 하지 못한다. 가로되 홀연히 착패(捉敗)시키면 공(功)이 어느 곳(何所)으로 돌아갑니까. 사왈 상(賞)도 또한 일찍이 듣지 못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노고(勞苦)만 하고 공(功)이 없습니다. 사왈 공은 곧 없지 않으나 이루어도 처(處)하지 않는다. 가로되 이미 이 성공(成功)했거늘 무엇 때문에 처하지 않습니까. 사왈 말함을 보지 못했는가, 태평은 본시(本是) 장군이 이루지만(致) 장군으로 하여금 태평을 보게 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호인(胡人)이 울고(泣) 한인(漢人)이 슬퍼한다(悲). 스님이 장차 순세(順世)하려 하자 대중을 버리고 입산하여 사멸(死滅)을 기다리려고 했다. 저계(苧谿)의 석교(石橋)에 이르러(過) 이에 게언(偈言)을 남겼다. 세인(世人)은 노행(路行)이 어렵다고 말하지 말지니(休說)/ 조도양장(鳥道羊腸)이 지척(咫尺) 사이다/ 진중(珍重)하라, 저계(苧谿)의 계반(谿畔)의 물이여/ 너는 창해(滄海)로 돌아가고 나는 산으로 돌아간다. 곧 귀호(貴湖)로 가서 암자를 세웠다. 오래지 않아(未幾) 문인(門人)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멸후(滅後)에 유해(遺骸)를 가져다 여러 충의(蟲螘; 벌레와 개미)에게 시여(施與)하고 탑묘(墳塔)를 설치하지 말아라. 말을 마치자 호두산(湖頭山)으로 잠입(潛入)하여 반석(磐石)에 앉아 엄연(儼然)히 장왕(長往)했다. 제자 계인(戒因)이 입산하여 찾아 보고는(尋見) 유명(遺命)을 품수(稟受)해 7일 동안 연류(延留; 留居)했는데 마침내(竟) 충의(蟲螘)의 침식(侵食 침범해 먹다)하는 바가 없었다. 드디어 사유(闍維)를 이루어(就) 임야(林野)에 흩었다. 지금 천주(泉州) 개원사(開元寺) 정토원에 영당(影堂)이 존재한다.
●和頭; 화사(和事; 분쟁을 화해함).
●家親; 가족 중의 장배(長輩)니 다분히 부모를 가리킴.
●捉敗; 좌패(挫敗; 좌절하여 패함). 좌절을 받음.
●鳥道羊腸; 협착하고 만곡(彎曲)하며 또 높고 또 험한 산상의 작은 길.
前韶州雲門山文偃禪師法嗣
韶州白雲祥和尙實性大師 初住慈光院 廣主劉氏召入府說法 時有僧問 覺華才綻正遇明時 不昧宗風乞師方便 師曰 我王有令 問敎意祖意同別 師曰 不別 曰恁麽卽同也 師曰 不妨領話 問諸佛未出世 普遍大千 白雲一會如何 師曰 賺却幾人來 曰恁麽卽四衆何依 師曰 勿交涉 問卽心卽佛示誨之辭 不涉前言如何指敎 師曰 東西且置南北作麽生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石橋那畔有遮邊無會麽 僧曰 不會 師曰 且作丁公吟 問衣到六祖爲什麽不傳 師曰 海晏河淸 問如何是和尙接人一路 師曰 來朝更獻楚王看 問從上宗乘如何擧揚 師曰 今日未喫茶
●海晏河淸; 大海安靜 黃河水淸 形容天下太平無事 禪宗多用以指心中十分寧靜 沒有煩惱
소주(韶州) 백운상(白雲祥) 화상 실성대사(實性大師). 처음 자광원(慈光院)에 주(住)했다. 광주(廣主) 유씨(劉氏)가 불러 입부(入府)하여 설법했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각화(覺華)가 겨우 터지자 밝은 때(明時)를 바로(正) 만났습니다. 종풍을 불매(不昧)하고 스님의 방편을 구걸합니다. 사왈(師曰) 우리 왕이 영(令)이 있다. 묻되 교의(敎意)와 조의(祖意)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왈 다르지 않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같습니다. 사왈 영화(領話; 話를 領會함)에 방애(妨礙)되지 않는다. 묻되 제불이 출세하지 않아도 대천(大千)에 널리 두루합니다만 백운(白雲)의 일회(一會)는 어떻습니까. 사왈 몇 사람이나 속여버리고(賺却) 왔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사중(四衆)이 어디에 의지합니까. 사왈 교섭(交涉)이 없다. 묻되 즉심즉불(卽心卽佛)은 시회지사(示誨之辭)니 전언(前言)에 건너지 않고 어떻게 지교(指敎)하겠습니까. 사왈 동서는 그래 두고 남북은 어떠한가.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석교(石橋) 나반(那畔)엔 있으나 저변(遮邊)엔 없나니 아느냐. 승왈(僧曰) 알지 못합니다. 사왈 다만(且) 정공음(丁公吟)을 지어라. 묻되 옷이 6조(祖)에 이르러 무엇 때문에 전하지 않았습니까. 사왈 해안하청(海晏河淸)이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접인(接人)하는 일로(一路)입니까. 사왈 내조(來朝)에 다시 초왕(楚王)에게 바쳐 보아라. 묻되 종상(從上)의 종승을 어떻게 거양(擧揚)합니까. 사왈 금일 차를 먹지 않았다.
●海晏河淸; 대해가 안정(安靜)되고 황하의 물이 맑음이니 천하가 태평무사함을 형용함. 선종에선 다분히 써서 심중에 십분 영정(寧靜)하고 번뇌가 있지 않음을 가리킴.
師上堂謂衆曰 諸人會麽 但街頭市尾 屠兒魁膾 地獄鑊湯處會取 若恁麽會 堪與人爲師爲匠 若向衲僧門下天地懸殊 更有一般底 只向長連床上作好人去 汝道此兩般人那箇有長處 無事珍重 師問僧 什麽處來 曰雲門來 師曰 裏許有多少水牛 曰一箇兩箇 師曰 好水牛 師問僧 不壞假名而譚實相作麽生 僧曰 遮箇是椅子 師以手撥云 將鞋袋來 僧無對〈雲門和尙聞之乃云 須是他始得〉師將示滅白衆曰 某甲雖提祖印 未盡其中 諸仁者且道其中事作麽生 莫是無邊中間內外已否 如是會解卽大地如鋪沙去 此卽他方相見 言訖告寂
●魁膾; 劊子手 舊時執行死刑的人
●天地懸殊; 意謂相距禪法極爲遙遠 含有斥責語氣
●鞋袋; 納鞋之袋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제인(諸人)은 아느냐. 단지 가두시미(街頭市尾)와 도아괴회(屠兒魁膾)와 지옥확탕(地獄鑊湯)의 처소에서 회취(會取; 理會하다)해야 하리니 만약 이렇게 이회(理會)한다면 가히(堪) 사람에게 스승이 되고 종장(宗匠; 匠)이 되어 주려니와 만약 납승문하(衲僧門下)를 향한다면 천지현수(天地懸殊)다. 다시 일반(一般)의 것이 있어 다만 장련상상(長連床上)을 향해 호인(好人)을 지어 가나니 너희가 말하라, 이 양반(兩般)의 사람에 어느 것(那箇)이 장처(長處)가 있는가. 무사(無事)하니 진중(珍重)하라.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운문(雲門)에서 옵니다. 사왈(師曰) 이허(裏許; 裏邊)에 다소(多少)의 수우(水牛; 물소)가 있더냐. 가로되 한 개나 두 개입니다. 사왈 좋은 수우(水牛)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가명(假名)을 무너뜨리지 않고 실상(實相)을 얘기한다(譚) 하니 어떠한가. 승왈 이것(遮箇)은 이 의자(椅子)입니다. 스님이 손으로써 제거(撥)하고 이르되 혜대(鞋袋)를 가지고 오너라. 중이 대답이 없었다〈雲門和尙이 이를 듣고 이에 이르되 모름지기 이는 그라야 비로소 옳다〉. 스님이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면서 백중(白衆)하여 가로되 모갑이 비록 조인(祖印)을 제지(提持)했으나 그 가운데를 다하지 못했다. 제인자(諸仁者)여 그래 말하라 그 가운데의 일이 어떠한가. 이 무변(無邊)ㆍ중간ㆍ내외가 아닐까. 이와 같이 회해(會解; 領悟)하면 곧 대지(大地)에 모래를 폄(鋪)과 같을 것이니 이는 곧 타방(他方)에서 상견함이다. 말을 마치자 고적(告寂)했다.
●魁膾; 회자수(劊子手)니 구시(舊時)에 사형(死刑)을 집행(執行)하는 사람.
●天地懸殊; 뜻으로 이르면 선법과 서로 떨어짐이 극히 요원(遙遠)함이니 척책(斥責)의 어기(語氣)를 함유했음.
●鞋袋; 신을 수납(受納)하는 주머니.
朗州德山第九世緣密圓明大師 師上堂示衆曰 僧堂前事時人知有 佛殿後事作麽生 師又曰 德山有三句語 一句函蓋乾坤 一句隨波逐浪 一句截斷衆流 時有僧問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三尺杖子攪黃河 問百華未發時如何 師曰 黃河水渾流 曰發後如何 師曰幡竿頭指天 問不犯辭鋒時如何 師曰 天台南嶽 曰便恁麽去如何 師曰 江西湖南 問佛未出世時如何 師曰 河裏盡是木頭船 曰出世後如何 師曰 遮頭蹋著那頭軒 問己事未明如何辨得 師曰 須彌山頂上 曰直恁麽去如何 師曰 脚下水淺深 問達磨未來時如何 師曰 千年松倒掛 曰來後如何 師曰 金剛努起拳
낭주(朗州) 덕산(德山) 제9세 연밀(緣密) 원명대사(圓明大師). 스님이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승당(僧堂) 앞의 일은 시인(時人)이 지유(知有)하거니와 불전(佛殿) 뒤의 일은 어떠한가. 스님이 우왈(又曰) 덕산이 3구어(句語)가 있나니 1구는 함개건곤(函蓋乾坤)이며 1구는 수파축랑(隨波逐浪)이며 1구는 절단중류(截斷衆流)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투법신구(透法身句; 법신을 투과하는 구)입니까. 사왈(師曰) 3척(尺)의 장자(杖子; 지팡이)로 황하(黃河)를 휘젓는다. 묻되 백화(百華)가 피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황하수(黃河水)가 뒤섞여(渾) 흐른다. 가로되 핀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번간두(幡竿頭; 頭는 조사)가 하늘을 가리킨다. 묻되 사봉(辭鋒)을 범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천태와 남악이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 가면 어떻습니까. 사왈 강서와 호남이다. 묻되 부처가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하리(河裏)에 모두 이 목두선(木頭船; 頭는 조사)이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저두(遮頭; 遮邊)가 나두(那頭; 那邊)의 추녀를 밟았다(蹋著). 묻되 기시(己事)를 밝히지 못했으니 어찌해야 변득(辨得)합니까. 사왈 수미산 정상이다. 가로되 바로(直) 이렇게 가면 어떻습니까. 사왈 각하(脚下)의 물이 얕은가 깊은가. 묻되 달마가 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천년송(千年松)이 거꾸로 걸렸다. 가로되 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금강(金剛; 금강역사)이 노(努)하여 주먹을 일으킨다.
問師未出世時如何 師曰 佛殿正南開 曰師出世後如何 師曰 白雲山上起 曰出與未出還分不分 師曰 靜處薩婆訶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南山起雲北山下雨 問如何是應用之機 師喝 僧曰 只遮箇爲復別有 師乃打之 問大用現前不存軌則時如何 師曰 黑地打破甕 僧退步 師乃打 問佛未出世時如何 師曰 猢猻繫露柱 曰出世後如何 師曰 猢猻入布袋 問文殊與維摩對談何事 師曰 幷汝三人無繩自縛 問如何是佛 師曰 滿目荒榛 曰學人不會 師曰 勞而無功 問盡大地致一問不得時如何 師曰 話墮也 曰大衆總見 師便打
●荒榛; 雜亂叢生的草木 引申爲荒蕪
묻되 스님이 출세하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사왈(便) 불전(佛殿)이 정남(正南)으로 열렸다. 가로되 스님이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백운이 산 위에서 일어난다. 가로되 출(出)과 미출(未出)을 도리어 나눕니까 나누지 않습니까. 사왈 정처살바하(靜處薩婆訶).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고 북산에 비가 내린다. 묻되 무엇이 이 응용지기(應用之機)입니까. 스님이 할(喝)했다. 승왈(僧曰) 다만 저개(遮箇)입니까 다시 달리 있음이 됩니까. 스님이 이에 때렸다. 묻되 대용(大用)이 현전(現前)하매 궤칙(軌則)을 두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흑지(黑地; 암흑)에 옹(甕; 독)을 타파한다. 중이 퇴보(退步)하자 스님이 이에 때렸다. 묻되 부처가 출세하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사왈 호손(猢猻; 원숭이)이 노주(露柱)에 묶였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호손이 포대(布袋)에 들어갔다. 묻되 문수와 유마가 무슨 일을 대담(對談)했습니까. 사왈 아울러 너까지 3인이 노끈 없이 스스로 묶였다(無繩自縛).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눈 가득히 황진(荒榛)이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노력만 하고 공이 없구나. 묻되 온 대지(大地)가 일문(一問)을 이룸(致)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화타(話墮)했다. 가로되 대중이 모두(總) 봅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荒榛; 잡란하게 총생(叢生; 빽백히 남)한 초목. 인신(引申; 轉義)하여 황무(荒蕪)가 됨.
潭州水西南臺道遵和尙法雲大師 師上堂謂衆曰 從上宗乘合作麽生提綱 合作麽生言論 將佛法兩字當得麽 眞如解脫當得麽 雖然如是 細不通風大通車馬 若約理化門中 一言啓口 震動乾坤 山河大地 海晏河淸 三世諸佛說法現前 若也分明 古佛殿前同登彼岸 無事珍重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下坡不走 問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著衣喫飯 曰見後如何 師曰 鉢盂壁上掛 問如何是眞如含一切 師曰 分明 曰爲什麽有利鈍 師曰 四天打鼓樓上擊鐘 問如何是南臺境 師云 金剛手指天 問如何是色空 師曰 道士著眞紅 問十二時中時時不離如何 師曰諦
담주(潭州) 수서(水西) 남대(南臺) 도준화상(道遵和尙) 법운대사(法雲大師).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을 합당히 어떻게 제강(提綱)하며 합당히 어떻게 언론(言論)하겠는가. 불법 양자(兩字)를 가지고 당함을 얻겠는가. 진여해탈이 당함을 얻겠는가.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작기로는(細) 바람도 통하지 않고 크기로는 거마(車馬)도 통한다. 만약 이화문중(理化門中; 이치로 교화하는 門中)을 대약(大約)하자면 일언(一言)을 입을 열면(啓口) 건곤을 진동(震動)하고 산하대지가 해안하청(海晏河淸)하고 삼세제불이 설법하며 현전(現前)한다. 만약에 분명하면 고불의 전전(殿前)에서 함께 피안(彼岸)에 오르리라. 무사(無事)하니 진중(珍重)하라.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언덕을 내려가며 달리지 않는다(下坡不走).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옷 입고 밥 먹는다(著衣喫飯).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발우(鉢盂)가 벽 위에 걸렸다. 묻되 무엇이 이, 진여(眞如)가 일체(一切)를 포함(包含)함입니까. 사왈 분명하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이둔(利鈍)이 있습니까. 사왈 사천(四天; 사천왕)이 타고(打鼓)하매 누상(樓上)에서 격종(擊鐘)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남대경(南臺境)입니까. 사운(師云) 금강(金剛; 금강역사)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묻되 무엇이 이 색공(色空)입니까. 사왈 도사(道士)가 진홍을 입었다(著眞紅). 묻되 12시 중 시시(時時)로 여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사왈 체(諦; 진실. 道理)다.
韶州雙峯山興福院竟欽和尙 慧眞廣悟禪師 益州人也 受業於峨眉洞溪山黑水寺 觀方慕道 預雲門法席密承指喻 乃開山創院漸成叢林 開堂日雲門和尙躬臨證明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日出方知天下朗 無油那點佛前燈 問如何是雙峯境 師曰 夜聽水流庵後竹 晝看雲起面前山 問如何是法王劍 師曰 鉛刀徒逞不若龍泉 曰用者如何 師曰 藏鋒猶不許 露刃更何堪 問賓頭盧應供四天下 還得遍也無 師曰 如月入水 問如何是用而不雜 師曰 明月堂前垂玉露 水精殿裏撒眞珠 有行者問 某甲遇賊來時 若殺卽違佛敎 不殺又違王勅 未審師意如何 師曰 官不容針私通車馬 廣主劉氏嘗親問法要 至太平興國二年三月 戒門人曰 吾不久去世 汝可就本山頂預修墳塔 至五月二十三日工畢 師曰 後日子時行矣 及期會雲門爽和尙溫門舜峯長老等七人夜話 侍者報三更 師索香焚之合掌而逝
●指喻; 指正告知
●龍泉; 龍泉劍 寶劍名 祖庭事苑一 越絶書云 楚王召風湖子 令之吳越 見歐治子 干將 使之爲鐵劒三枚 一曰龍泉 二曰太阿 三曰上市 楚王問之曰 何謂龍泉 風湖子曰 龍泉狀如登高山 臨深淵 何謂太阿 曰 巍巍翼如流水之波 何謂上市 曰 從文閒起 止脊而止 如珠而不抂 若流而不絶
●應供; (一)如來十號之一 梵語阿羅訶 譯曰應供 斷一切之惡 應受人天之供養者 於小乘佛敎中 指無學果之聖者 [涅槃經十八 智度論二十四 大乘義章二十末] (二)供應 供奉 供養 此指(二)
소주(韶州) 쌍봉산(雙峯山) 흥복원(興福院) 경흠화상(竟欽和尙) 혜진광오선사(慧眞廣悟禪師). 익주(益州) 사람이며 아미(峨眉) 동계산(洞溪山) 흑수사(黑水寺)에서 수업했다. 사방을 관람하며 모도(慕道)했고 운문의 법석에 참예(參預)하여 지유(指喻)를 몰래 승수(承受)했고 이에 개산(開山)하고 창원(創院)하여 점차 총림을 이루었다. 개당일에 운문화상이 몸소 임해 증명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師曰) 해가 나오매 바야흐로 천하가 밝은(朗) 줄 알거니와 기름이 없다면 어찌(那) 불전(佛前)의 등을 켜겠는가(點). 묻되 무엇이 이 쌍봉경(雙峯境)입니까. 사왈 밤에 물이 암후(庵後)의 대에 흐름을 듣고 낮에 구름이 면전의 산에 일어남을 본다. 묻되 무엇이 이 법왕의 검입니까. 사왈 연도(鉛刀)를 도연히 자랑함이(徒逞) 용천(龍泉)만 같지 못하다. 가로되 쓰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장봉(藏鋒)도 오히려 허락하지 않거늘 노인(露刃)을 다시 어찌 감내하리오. 묻되 빈두로(賓頭盧)가 사천하(四天下)에 응공(應供)했다 하니 도리어 두루함을 얻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달이 입수(入水)한 것과 같다. 묻되 무엇이 이 써도(用) 잡되지 않음입니까. 사왈 명월당(明月堂) 앞에 옥로(玉露)를 드리웠고 수정전(水精殿) 속에 진주(眞珠)를 뿌렸다(撒; 여러 선록에 璨으로 지었음). 어떤 행자가 묻되 모갑이 도적이 옴을 만났을 때 만약 죽이면 곧 불교에 위배되고 죽이지 않으면 또 왕칙(王勅)에 위배됩니다. 미심하오니 스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사왈 관에선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적으론 거마도 통한다(官不容針私通車馬). 광주(廣主) 유씨(劉氏)가 일찍이 법요를 친문(親問)했다. 태평흥국(太平興國) 2년(977) 3월에 이르러 문인(門人)에게 경계(警戒; 戒)해 가로되 내가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날 것이니 너희는 가히 본산의 꼭대기로 나아가 미리 분탑(墳塔)을 수축(修築)하거라. 5월 23일에 이르러 공사(工事)를 마쳤다. 사왈 후일 자시(子時)에 가겠다. 기일(期日)에 이르러(及) 운문상(雲門爽) 화상과 온문(溫門) 순봉(舜峯) 장로 등 7인이 모여 야화(夜話)했는데 시자가 3경(更)을 알리자 스님이 향을 찾아 그것을 사르고 합장하고 떠났다(逝).
●指喻; 지정(指正)하며 고지(告知)함.
●龍泉; 용천검(龍泉劍)이니 보검의 이름. 조정사원1. 월절서(越絶書)에 이르되 초왕(楚王)이 풍호자(風湖子)를 불러 오월(吳越)에 가서 구야자(歐冶子)와 간장(干將)을 상견케 하고 그로 하여금 철검 3매(枚; 量詞. 箇임)를 만들게 했는데 1은 가로되 용천(龍泉)이며 2는 가로되 태아(太阿)며 3은 가로되 상시(上市)다. 초왕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무엇을 일러 용천이라 하는가. 풍호자가 가로되 용천의 형상은 마치 높은 산에 올라 심연(深淵)에 임(臨)한 것 같습니다. 무엇을 일러 태아라 하는가. 가로되 외외(巍巍; 높고 큰 모양)한 날개가 마치 유수(流水)의 파도와 같습니다. 무엇을 일러 상시(上市)라 하는가. 가로되 무늬의 사이로부터 일어나 등성마루에 정지하여 멈추나니 구슬의 흐트러지지 않음과 같고 흘러서 끊어지지 않음과 같습니다.
●應供; (1)여래 10호의 하나. 범어 아라하(阿羅訶; 梵 arhat 或 arhant)는 번역해 가로되 응공이니 일체의 악을 끊고 응당 인천의 공양을 받을 자임. 소승불교 중에선 무학과(無學果)의 성자를 가리킴 [열반경18. 지도론24. 대승의장20말]. (2)공응(供應)ㆍ공봉(供奉)ㆍ공양.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韶州資福和尙 僧問 不問宗乘請師心印 師曰 不答遮箇話 曰爲什麽不答 師曰 不副前言 問覿面難逢處 如何顧險夷 乞師垂半偈 免使後人疑 師曰 鋒前一句超調御 擬問如何歷劫違 曰恁麽卽東山西嶺時人知有 未審資福庭前誰家風月 師曰 領取前話
●險夷; 崎嶇與平坦
소주(韶州) 자복화상(資福和尙). 승문(僧問) 종승(宗乘)을 묻지 않고 스님의 심인(心印)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저개(遮箇) (話)에 답하지 않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답하지 않습니까. 사왈 전언(前言)에 합당하지(副) 않다. 묻되 적면(覿面)하여 만나기 어려운 곳에서 어찌해야 험이(險夷)를 돌아봅니까. 스님에게 구걸하노니 반게(半偈)를 내려(垂) 후인으로 하여금 의심을 면하게 하십시오. 사왈 봉전(鋒前)의 1구가 조어(調御; 調御丈夫)를 초월하거늘 물으려고 헤아린다면(擬問) 어찌하여 역겁(歷劫)에 위배되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동산(東山)과 서령(西嶺)에서 시인(時人)이 지유(知有)하려니와 미심하오니 자복(資福)의 정전(庭前)에 뉘집(誰家)의 풍월입니까. 사왈 전화(前話)를 영취(領取; 領會)하라.
●險夷; 기구(崎嶇)와 평탄.
廣州新會黃雲元禪師 初開堂以手拊繩床云 諸人還識廣大須彌之座也無 若不識看老僧乃升座 問如何是大漢國境 師曰 歌謠滿路 問敎云 龍披一縷金翅不吞 和尙三事全披如何 師曰 還免得麽 師上堂拈古人語云 觸目未曾無 臨機何不道 又云 觸目未曾無 臨機道什麽
●大漢國; 摩訶支那 見上二不如密多章震旦
●龍披一縷金翅不吞; 翻譯名義集七 海龍王經 龍王白佛 如此海中無數種龍 有四金翅 常來食之 願佛擁護令得安穩 於是世尊脫身皂衣 告龍王 汝取是衣 分與諸龍 皆令周遍 於中有値一縷之者 金翅鳥王不能觸犯
●三事; 三事衣 言五條七條九條之三衣也 禪林之語
광주(廣州) 신회(新會) 황운원(黃雲元) 선사. 처음 개당하자 손으로써 승상(繩床)을 두드리고(拊) 이르되 제인은 도리어 광대한 수미지좌(須彌之座)를 아느냐 또는 아니냐. 만약 알지 못한다면 노승을 보아라. 이에 승좌했다. 묻되 무엇이 이 대한국(大漢國) 경계입니까. 사왈 가요(歌謠)가 길에 가득하다. 묻되 교운(敎云) 용이 한 올을 입으면 금시조가 삼키지 않는다(龍披一縷金翅不吞) 했거니와 화상은 삼사(三事)를 전부 입었는데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도리어 면함을 얻었느냐. 스님이 상당하여 고인의 말을 염(拈)해 이르되 촉목(觸目)하여 일찍이 없지 않거늘 임기(臨機)하여 왜 말하지 못하느냐. 우운(又云) 촉목하여 일찍이 없지 않나니 임기하여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大漢國; 마하지니(摩訶支那)니 위 2 불여밀다장(不如密多章) 진단(震旦)을 보라.
●龍披一縷金翅不吞; 번역명의집7. 해룡왕경. 용왕이 불타에게 사뢰었다. 이와 같은 바다 속 무수한 종류의 용에 4금시(金翅)가 있어 늘 와서 이를 먹습니다. 원컨대 불타께서 옹호하여 안온을 얻게 하소서. 이에 세존이 몸의 검은 옷을 벗어 용왕에게 고하셨다. 네가 이 옷을 취해 모든 용에게 나누어 주어 모두 주편(周遍)하게 하라. 이 중에 일루(一縷; 한 올)이라도 만남이 있는 자는 금시조왕이 능히 촉범(觸犯)하지 못한다.
●三事; 삼사의(三事衣)니 말하자면 5조(條)ㆍ7조ㆍ9조의 3의(衣)임. 선림의 말임.
廣州義寧龍境倫禪師 初開堂提起拂子曰 還會麽 若會卽頭上更增頭 若不會卽斷頭取活 問如何是大漢國境 師曰 亂走作麽 曰恰是雨下天晴 師便打 問如何是龍境水 師曰 腥臊臭穢 曰飮者如何 師曰 七通八達 問如何是龍境家風 師曰 蟲狼虎豹 問如何是佛 師曰 勤耕田 曰學人不會 師曰 早收禾 師問僧 什麽處來 曰黃雲來 師曰 作麽生是黃雲郞當媚癡抹躂爲人一句 僧無對 師上堂問衆曰 作麽生是長連床上取性一句道將來 衆無對
●七通八達; 逆順縱橫自由自在 通達無障礙之意 七或八表示多數 類似用語尙有七縱八橫 七顚八倒 七凹八凸等
광주(廣州) 의녕(義寧) 용경륜(龍境倫) 선사. 처음 개당하여 불자를 제기(提起)하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만약 안다면 곧 두상(頭上)에 다시 두(頭)를 더함이며 만약 알지 못한다면 곧 단두(斷頭)하고 삶을 취함이다. 묻되 무엇이 이 대한국(大漢國)의 경계입니까. 사왈(師曰) 어지럽게 달려 무엇하려느냐. 가로되 흡시(恰是) 비 내리고 하늘이 개였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용경수(龍境水)입니까. 사왈 성조취예(腥臊臭穢; 비린내와 나쁜 냄새와 더러움)다. 가로되 마시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칠통팔달(七通八達)이다. 묻되 무엇이 이 용경(龍境)의 가풍입니까. 사왈 충랑호표(蟲狼虎豹; 벌레ㆍ이리ㆍ범ㆍ표범)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부지런히 밭을 간다(耕田).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일찍 벼를 거둔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황운(黃雲)에서 옵니다. 사왈 무엇이 이 황운의 낭당(郞當)하고 미치(媚癡; 아첨과 어리석음)하고 말달(抹躂; 비비고 미끄러지다)하면서 위인(爲人)하는 1구인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물어 가로되 무엇이 이 장련상상(長連床上)에서 취성(取性; 任性)하는 1구인가, 말해 가져 오너라. 대중이 대답이 없었다.
●七通八達; 역순종횡(逆順縱橫)하며 자유자재하고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의 뜻. 7 혹 8은 다수를 표시함. 유사용어에 오히려 칠종팔횡ㆍ칠전팔도ㆍ칠요팔철(七凹八凸) 등이 있음.
韶州雲門山爽和尙 師上堂僧問 如何是佛 師曰 聖躬萬歲 問如何是透法身句 師曰 銀香臺上生蘿蔔
●萬歲; 祖庭事苑五 萬歲 呼萬歲 自古至周 未有此禮 桉春秋後語 趙惠王得楚和氏璧 秦昭王聞之 遺五書 願以十五城易之 趙遣藺相如奉璧入秦 秦王見相如奉璧 大喜 左右呼萬歲(見史記八十一) 又田單(戰國時代齊將)守卽墨 使老弱女子乘城上 僞約降 燕軍皆呼萬歲(見史記八十二) …… 至秦始皇 殿上上壽 群臣皆呼萬歲 見優孟傳(史記一二六作優旃) 蓋七國之時 衆所喜慶於君 皆呼萬歲 自漢已後 臣下對見於君及拜恩慶賀 以爲常制 又謂山呼者 漢武帝至中嶽 翌日親登崇高 御史乘屬在廟旁 吏卒盛聞呼萬歲者三(見漢書六) 山呼萬歲者 自漢武始也
소주(韶州) 운문산 상화상(爽和尙). 스님이 상당하자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성궁(聖躬) 만세(萬歲). 묻되 무엇이 이 투법신구(透法身句)입니까. 사왈 은향대(銀香臺) 위에 나복(蘿蔔; 무)이 난다.
●萬歲; 조정사원5. 만세(萬歲) 만세를 부른 것은 고대로부터 주(周)에 이르기까지 이 예(禮)가 있지 않았다. 춘추후어(春秋後語)를 안험하니 조혜왕(趙惠王)이 초(楚)의 화씨벽(和氏璧)을 얻자 진소왕(秦昭王)이 이를 듣고 5서(書)를 보내어 15성(城)으로써 그것과 바꾸기를 원했다. 조(趙)가 인상여(藺相如)를 보내어 벽(璧)을 받들고 진에 들어가게 했다. 진왕이 상여가 벽을 받든 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고 좌우가 만세를 불렀다(사기81을 보라). 또 전단(田單; 전국시대 齊의 장수)이 즉묵(卽墨)을 수비하면서 노약(老弱)과 여자로 하여금 성 위로 오르게 하고 거짓으로 항복을 약속하자 연군(燕軍)이 다 만세를 불렀다(사기82를 보라) …… 진시황에 이르러 전상(殿上)에서 상수(上壽; 百歲. 백세토록 살기를 祝壽함)하면서 군신이 다 만세를 불렀다. 우맹전(優孟傳; 우맹은 楚의 樂人. 滑稽家)을 보라(사기12 6에 優旃으로 지어졌음). 대개 7국(國)의 시대엔 뭇 사람이 군주에게 희경(喜慶; 기뻐서 慶賀)하는 바에 다 만세를 불렀다. 한(漢) 이후부터는 신하가 군주를 대견(對見)하거나 및 배은(拜恩; 은택에 拜謝)하거나 경하(慶賀)에 상제(常制)로 삼았다. 또 이르되 산호(山呼)란 것은 한무제가 중악(中嶽)에 이르러 다음날 친히 숭고(崇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어사(御史)와 승속(乘屬)이 묘(廟) 곁에 있었는데 이졸(吏卒)이 만세를 부름을 성대하게 들은 것이 세 번이었다(한서6을 보라). 산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한무제로부터 비롯했다.
韶州白雲聞和尙 師上堂良久 僧出曰 白雲一路全因今日 師曰 不是不是 僧曰 和尙如何 師曰 白雲一路草深一丈 問學人擬申一問 未審師還答也無 師曰 皁莢樹頭懸 風吹曲不成 問受施主供養將何報答 師曰 作牛作馬
●皁莢; 豆科之落葉喬木 又作皂莢 生長於亞洲 非洲 南美等地之山野中 臺灣亦有栽培 其莖枝均有刺 夏季開黃白色之花 類似栗花 可結約三十公分長之莢果 曬乾後亦稱皀莢 可供治療腹脹袪咳等之藥用 此外 莢果煮出之液 可作爲洗滌之用 其汁亦可製成洗粉 古來禪林中 多以之爲如廁後之洗手用品
소주(韶州) 백운문(白雲聞) 화상. 스님이 상당하여 양구(良久)했다. 중이 나와 가로되 백운일로(白雲一路)가 전부 금일(今日)에 기인(起因; 因)합니다. 사왈(師曰) 옳지 않다, 옳지 않다. 승왈(僧曰) 화상은 어떻습니까. 사왈 백운일로가 풀의 깊이가 1장(丈)이다. 묻되 학인이 일문(一問)을 펴려고(申) 하는데 미심하오니 스님이 도리어 답하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조협(皁莢)이 수두(樹頭; 樹上)에 매달려 바람이 불어도 곡(曲)을 이루지 않는다. 묻되 시주(施主)의 공양을 받으면 무엇을 가지고 보답합니까. 사왈 소가 되고 말이 된다.
●皁莢; 두과(豆科)의 낙엽교목. 또 조협(皁莢)으로 지음. 아주(亞洲; 아세아 주)ㆍ비주(非洲; 아프리카)ㆍ남미(南美) 등지의 산야 중에 생장함. 대만에도 또한 재배함이 있음. 그 줄기와 가지에 균일하게 침이 있고 하계에 황백색의 꽃이 피는데 밤꽃과 유사하며 가히 약 30㎝ 길이의 협과(莢果; 꼬투리로 맺히는 열매)를 맺음. 말려 건조시킨 후에 또한 명칭이 조협(皀莢)임. 가히 복창(腹脹; 몸이 붓는 증상)ㆍ거해(袪咳; 기침을 없앰)를 치료하는 약용으로 공급함. 이 밖에 협과(莢果)를 다려서 낸 액은 가히 세척하는 데 쓰며 그 즙도 또한 가히 세분(洗粉)을 제작해 만듦. 고래로 선림 중에서 다분히 이로서 측간에 간 후의 세수용품으로 삼았음.
韶州披雲智寂禪師 僧問 如何是披雲境 師曰 白日沒閑人 問以字不成八字不是 未審是什麽字 師說偈答曰 以字不是八不成 森羅萬象此中明 直饒巧說千般妙 不是謳阿不是經
●謳阿; 梵語也 有無之意 金光明經照解上 謳阿二字 謳爲有故向左 阿爲無故向右
소주(韶州) 피운(披雲) 지적선사(智寂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피운경(披雲境)입니까. 사왈(師曰) 백일(白日; 대낮)에 한인이 없다(沒閑人). 묻되 이자(以字)도 이루지 못하고 팔자(八字)도 이것이 아니라 하니 미심합니다, 이 무슨 글자입니까. 스님이 설게(說偈)하여 답왈(答曰) 이자(以字)도 이것이 아니며 팔(八)도 이루지 못함이여/ 삼라만상이 이 가운데 환하다(明)/ 직요(直饒; 가령) 교설(巧說)하여 천반(千般)으로 묘하더라도/ 이 구아(謳阿)가 아니며 이 경(經)이 아니다.
●謳阿; 범어니 유무(有無)의 뜻. 금광명경조해상 구아(謳阿) 2자 구(謳)는 유(有)가 되는 고로 향좌(向左)하고 아(阿)는 무(無)가 되는 고로 향우(向右)한다.
韶州淨法章和尙禪想大師 廣主劉氏問 如何是禪師 師乃良久 廣主罔測 因署其號 僧問 日月重明時如何 師曰 日月雖明不鑒覆盆之下 問旣是金山爲什麽鑿石 師曰 金山鑿石 問如何是道 師曰 去去迢迢十萬餘
소주(韶州) 정법장(淨法章) 화상 선상대사(禪想大師). 광주(廣主) 유씨(劉氏)가 묻되 무엇이 이 선사(禪師)입니까. 스님이 이에 양구(良久)했다. 광주가 망측(罔測)했고 인하여 그 호(號)를 서(署; 署號)했다. 승문(僧問) 일월이 거듭(重) 밝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일월이 비록 밝더라도 복분(覆盆; 엎어진 동이)의 아래는 비추지(鑒) 못한다. 묻되 이미 이 금산(金山)이거늘 무엇 때문에 착석(鑿石)합니까. 사왈 금산에 착석한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가거라, 가거라, 멀고 멀어 십만여(十萬餘)다.
韶州溫門山滿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胸題卍字 曰如何是祖 師曰 不遊西土 有人見壁上畫 問旣是千尺松爲什麽却在屋下 師曰 芥子納須彌作麽生 問隔牆見角便知是牛如何 師便打 師與一老宿在國門坐 老宿曰 紫衣師號又得也 更要箇什麽 師曰 要國師 老宿曰 佛尙不作豈況國師 師乃笑曰 長老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汝曾讀書麽 僧問 太子初生爲什麽不識父母 師曰 逈然尊貴
●國門; 國都的城門
소주(韶州) 온문산(溫門山) 만선사(滿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佛)입니까. 사왈(師曰) 가슴에 만자(卍字)를 제(題)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조(祖)입니까. 사왈 서토(西土)를 유행(遊行)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벽상(壁上)의 그림을 보고 묻되 이미 이 천척송(千尺松)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옥하(屋下)에 있습니까. 사왈 개자(芥子)가 수미(須彌)를 수납(受納)함은 어떠한가. 묻되 담 너머 뿔을 보고 바로 이 소인 줄 알면 어떻습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한 노숙(老宿)과 더불어 국문(國門)에 앉았는데 노숙이 가로되 자의(紫衣)와 사호(師號)를 또 얻었거늘 다시 저(箇) 무엇을 요망(要望; 要)합니까. 사왈 국사(國師)를 요망합니다. 노숙이 가로되 부처도 오히려 짓지 않거늘 어찌 하물며 국사이겠습니까. 스님이 이에 웃으며 가로되 장로(長老). 승문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네가 일찍이 독서했느냐. 승문 태자(太子)가 초생(初生)하여 무엇 때문에 부모를 알지 못합니까. 사왈 형연(逈然)히 존귀(尊貴)하다.
●國門; 국도(國都)의 성문(城門).
嶽州巴陵新開顥鑒大師 初在雲門 雲門擧 雪峯和尙云 開却門達磨來也 問師 意作麽生 師曰 築著和尙鼻孔 雲門曰 修羅王發業打須彌山一摑 𨁝跳上梵天報帝釋 爾爲什麽却去日本國裏藏身 師曰 莫恁麽心行好 雲門曰 汝道築著又作麽生 師住後僧問 祖意敎意是同是別 師曰 雞寒上樹鴨寒入水 僧問 三乘十二分敎卽不疑 如何是宗門中事 師曰 不是衲僧分上事 曰如何是衲僧分上事 師曰 貪觀白浪失却手橈 師將拂子遺人 人問曰 本來淸淨用拂子作什麽 師曰 旣知淸淨莫忘却〈梁山別云 也須拂却〉
●嶽州; 又稱巴陵 湖南省北東洞庭湖東岸嶽陽縣的古稱
●築著; 築 刺也
●修羅王; 阿修羅道之王 諸經典中 列擧不少阿修羅王之名 其中 法華經序品列有婆稚 佉羅騫馱 毘摩質多羅 羅睺等四大阿修羅王 各有百千眷屬 ◆阿修羅; <梵><巴> asura 略稱修羅 爲六道之一 八部衆之一 十界之一 又作阿蘇羅 阿素羅 阿素洛 阿須倫 阿須輪 此云非天 非同類 不端正 舊譯不酒 不飮酒 阿修羅爲印度最古諸神之一 是屬於戰鬥一類之鬼神 經常被視爲惡神 而與帝釋天(因陀羅神)爭鬥不休 以致出現了修羅場修羅戰等名詞 阿修羅之形像有多種 或謂九頭千眼 口中出火 九百九十手 六足 身形爲須彌山之四倍 或謂千頭二千手 萬頭二萬手 三頭六手 或謂三面靑黑色 忿怒裸形相 六臂 [長阿含經十 同二十一 大智度論十 同十一 同三十 佛地經論六 觀音經義疏記四 法華經文句二 慧苑音義上 翻譯名義集二]
●生; 五燈會元十五 生下有師無語門曰將知你祇是學語之流十四字
●梁山; 宋代曹洞宗僧緣觀 居鼎州梁山 同安觀志法嗣
악주(嶽州) 파릉(巴陵) 신개(新開; 新開禪院) 호감대사(顥鑒大師). 처음 운문(雲門)에 있었는데 운문이 거(擧)했다. 설봉화상이 이르되 문을 열어라(開却), 달마가 오셨다. 스님에게 묻되 뜻이 무엇인가(作麽生). 사왈(師曰) 화상의 콧구멍을 찔렀습니다(築著). 운문이 가로되 수라왕(修羅王)이 발업(發業)하여 수미산을 때려 한 번 후려갈겼더니 펄쩍 뛰어(𨁝跳) 범천(梵天)에 올라 제석(帝釋)에게 알리되(報) 네가 무엇 때문에 도리어 일본국(日本國) 속으로 가서 몸을 감추느냐. 사왈 이러한 심행(心行)을 하지 말아야 좋을 것입니다. 운문이 가로되 네가 말하라, 축착(築著)은 또 어떠한가(作麽生). 스님이 주후(住後)에 승문(僧問)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닭은 추우면 나무에 오르고 오리는 추우면 물에 들어간다. 승문(僧問) 삼승(三乘) 십이분교(十二分敎)는 곧 의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종문 중의 일입니까. 사왈 이 납승의 분상(分上)의 일이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납승의 분상의 일입니까. 사왈 백랑(白浪)을 탐해 보다가 수요(手橈; 손안의 노)를 잃어버렸다. 스님이 불자(拂子)를 가져다 사람에게 전했다(遺). 사람이 문왈(問曰) 본래 청정하거늘 불자를 써서 무엇 합니까. 사왈 이미 청정한 줄 알았으니 망각하지 말아라〈梁山이 別云 또한 꼭 털어버려라(拂却)〉
●嶽州; 또 명칭이 파릉(巴陵)이니 호남성 북동 동정호 동안(東岸)의 악양현(嶽陽縣)의 옛 명칭.
●築著; 축(築)은 자(刺)임.
●修羅王; 아수라도(阿修羅道)의 왕이니 여러 경전 중에 아수라왕의 이름을 열거함이 적지 않음. 그 중 법화경 서품에 바치ㆍ가라건타ㆍ비마질다라ㆍ라후 등 4대 아수라왕을 열거해 있으며 각기 백천 권속이 있음. ◆阿修羅; <범><파> asura. 약칭이 수라(修羅)며 6도(道)의 하나, 8부중(八部衆)의 하나, 10계(界)의 하나. 또 아소라(阿蘇羅)ㆍ아소라(阿素羅)ㆍ아소락(阿素洛)ㆍ아수륜(阿須倫)ㆍ아수륜(阿須輪)으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비천(非天)ㆍ비동류(非同類)ㆍ부단정(不端正)이며 구역(舊譯)은 부주(不酒)ㆍ불음주(不飮酒)임. 아수라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여러 신의 하나가 됨. 이것은 전투하는 일류(一類)의 귀신에 속하며 경상(經常) 악신(惡神)으로 보임을 입음. 제석천(帝釋天; 因陀羅神)과 쟁투(爭鬥)하여 쉬지 않는지라 수라장(修羅場)ㆍ수라전(修羅戰) 등의 명사(名詞)가 출현하기에 이르렀음. 아수라의 형상(形像)은 여러 종류가 있으니 혹은 이르기를 구두천안(九頭千眼)에 입속에서 불을 내고 990수(手)에 6족(足)이며 신형(身形)이 수미산의 4배가 된다 하며 혹은 이르기를 천두이천수(千頭二千手)ㆍ만두이만수(萬頭二萬手)에 3두6수(三頭六手)라 하며 혹은 이르기를 세 얼굴에 청흑색(靑黑色)이며 분노(忿怒)한, 벗은 형상(形相)에 6비(臂)라 함 [장아함경10, 동21. 대지도론10, 동11, 동30. 불지경론6. 관음경의소기4. 법화경문구2. 혜원음의상. 번역명의집2].
●生; 오등회원15 생(生) 아래 스님이 말이 없자 운문이 가로되 이에 아나니 너는 다만 이 말을 배우는 무리이다(師無語門曰將知你祇是學語之流) 14자가 있음.
●梁山; 송대 조동종승(曹洞宗僧) 연관(緣觀)이니 정주(鼎州) 양산(梁山)에 거주했음. 동안관지(同安觀志)의 법사(法嗣).
連州地藏院慧慈明識大師 僧問 旣是地藏院爲什麽塑熾盛光佛 師曰 過在什麽處 問如何是地藏境 師曰 無人不遊
●連州; 今廣東連縣
●熾盛光佛; 又名熾盛光如來 熾盛光者 金輪佛頂尊之別名 佛身之毛孔 放熾盛之光明 故名熾盛光如來 其本體爲金輪佛頂 故曰熾盛光佛頂如來
연주(連州) 지장원(地藏院) 혜자(慧慈) 명식대사(明識大師). 승문(僧問) 이미 이 지장원(地藏院)이거늘 무엇 때문에 치성광불(熾盛光佛)을 소조(塑造)했습니까. 사왈(師曰)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느냐. 묻되 무엇이 이 지장경(地藏境)입니까. 사왈 유람(遊覽)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連州; 지금의 광동 연현(連縣).
●熾盛光佛; 또 이름이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니 치성광이란 것은 금륜불정존(金輪佛頂尊)의 별명이며 불신(佛身)의 모공(毛孔)에서 치성한 광명을 방출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치성광여래임. 그 본체는 금륜불정이 되므로 고로 가로되 치성광불정여래(熾盛光佛頂如來)임.
英州大容諲禪師 師上堂僧問 天賜六銖披掛後 將何報答我皇恩 師曰 來披三事衲 歸掛六銖衣 問如何是大容水 師曰 還我一滴來 問當來彌勒下生時如何 師曰 慈氏宮中三春草 問如何是眞空 師曰 拈却拒陽 曰如何是妙用 師乃握拳 僧曰 眞空妙用相去幾何 師以手撥之 問長蛇偃月卽不問 匹馬單槍時如何 師曰 麻江橋下會麽 曰不會 師曰 聖壽寺前 問旣是大容爲什麽趁出僧 師曰 大海不容塵 小溪多搕〈鳥合切〉𢶍〈私盍切〉 問如何是古佛一路 師指地 僧曰 不問遮箇 師曰去 師與一老宿相期去別處 尋却因事不去 老宿曰 佛無二言 師曰 法無一向
●英州; 今廣東英德
●六銖; 銖 古衡制單位 一兩之二十四分之一爲一銖
●三事衲; 又曰三事衣 言五條七條九條之三衣也 禪林之語
●長蛇偃月; 陣法名 指長蛇陣與偃月陣
●搕𢶍; 又作榼𣜂 搕𣜂 本指糞 糞穢 雜穢 轉義爲無用而不値一顧之穢物
영주(英州) 대용인(大容諲) 선사. 스님이 상당하자 승문(僧問) 천자(天子)가 육수(六銖)를 주어 피괘(披掛; 입어 걸치다)한 후에 무엇을 가지고 우리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까. 사왈(師曰) 오면서 삼사납(三事衲)을 입었고(披) 돌아가면서 육수의(六銖衣)를 걸쳤다(掛). 묻되 무엇이 이 대용수(大容水)입니까. 사왈 나에게 일적(一滴; 한 방울)을 송환해 오너라. 묻되 당래(當來)에 미륵이 하생(下生)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자씨(慈氏)의 궁중(宮中)에 삼춘(三春)의 풀이다. 묻되 무엇이 이 진공(眞空)입니까. 사왈 거양(拒陽)을 집어 물리쳐라(拈却). 가로되 무엇이 이 묘용(妙用)입니까. 스님이 이에 주먹을 쥐었다. 승왈(僧曰) 진공과 묘용이 서로 떨어짐(相去)이 얼마입니까(幾何). 스님이 손으로써 제거(撥)했다. 묻되 장사언월(長蛇偃月)은 곧 묻지 않습니다. 필마단창(匹馬單槍)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마강교(麻江橋) 아래다.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성수사(聖壽寺) 앞이다. 묻되 이미 이 대용(大容)이거늘 무엇 때문에 중을 쫓아냅니까. 사왈 대해(大海)는 티끌을 용납하지 않고 소계(小溪; 저본에 小豁로 지었음)엔 갑(搕)〈鳥合切〉삽(𢶍)〈私盍切〉이 많다. 묻되 무엇이 이 고불의 일로(一路)입니까. 스님이 땅을 가리켰다. 승왈 이것을 물은 게 아닙니다. 사왈 가거라. 스님과 한 노숙이 서로 기약(期約)하여 다른 곳(別處)에 가기로 했으나 이윽고 도리어 사정(事情)으로 인해 가지 않았다. 노숙이 가로되 불(佛)은 이언(二言)이 없다. 사왈 법(法)은 일향(一向)이 없다.
●英州; 지금의 광동 영덕(英德).
●六銖; 수(銖)는 옛날의 형제(衡制)의 단위니 1량(兩)의 24분의 1이 1수(銖)가 됨.
●三事衲; 또 가로되 삼사의(三事衣)니 말하자면 5조(條)ㆍ7조ㆍ9조의 3의(衣)임. 선림의 말임.
●長蛇偃月; 진법(陣法)의 이름이니 장사진과 언월진을 가리킴.
●搕𢶍; 또 합삽(榼𣜂)ㆍ갑삽(搕𣜂)으로 지음. 본래는 똥ㆍ분예(糞穢; 더러운 물건)ㆍ잡예(雜穢; 잡란하고 불순한 것)를 가리킴. 전의(轉義)하여 쓸모가 없어 한 번 돌아볼 가치도 없는 더러운 물건이 됨.
廣州羅山崇禪師 僧問 如何是大漢國境 師曰 玉狗吠時天未曉 金雞啼後五更初 問丹霞訪居士 女子不携籃時如何 師曰 也要到遮裏一轉 問如何是羅山境 師曰 布水千尋
광주(廣州) 나산숭(羅山崇)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대한국(大漢國)의 경계입니까. 사왈(師曰) 옥구(玉狗)가 짖을 때 하늘이 밝지(曉) 않고 금계(金雞)가 운 후 5경(更)의 초(初)다. 묻되 단하(丹霞)가 거사를 방문하매 여자(女子; 방거사의 딸)가 광주리를 휴대(携帶)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또한 1전(轉; 量詞니 次, 回) 이 속에 이름을 요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나산경(羅山境)입니까. 사왈 포수(布水; 瀑布水)가 천 길이다.
韶州雲門寶和尙 師上堂示衆曰 至道無難唯嫌揀擇 還有揀擇麽珍重
소주(韶州) 운문보(雲門寶) 화상. 스님이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지도(至道)는 무난(無難)하지만 오직 간택(揀擇)을 꺼린다. 도리어 간택함이 있느냐. 진중(珍重).
郢州臨谿竟脫和尙 僧問 如何是透法身句 師曰 明眼人笑汝 問如何是法身 師曰 四海五湖賓 問如何是本來人 師曰 風吹滿面塵 問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富有多賓客 曰見後如何 師曰 貧窮絕往還 問如何是佛 師曰 十字路頭 曰如何是法 師曰 三家村裏 曰佛之與法是一是二 師曰 露柱渡三江 猶懷感恨長 問如何是無縫塔 師曰 復州城 曰如何是塔中人 師曰 龍興寺
●感恨; 怨恨 不滿 感 通憾
영주(郢州) 임계(臨谿) 경탈화상(竟脫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법신을 투과하는 구(透法身句)입니까. 사왈(師曰) 명안인(明眼人)이 너를 비웃는다(笑). 묻되 무엇이 이 법신입니까. 사왈 사해오호(四海五湖)의 빈(賓; 손)이다. 묻되 무엇이 이 본래인(本來人)입니까. 사왈 바람이 만면(滿面)의 티끌을 분다(吹).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부유(富裕)하면 빈객(賓客)이 많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빈궁(貧窮)하면 왕환(往還)이 끊긴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십자로두(十字路頭)다. 가로되 무엇이 이 법입니까. 사왈 삼가촌리(三家村裏)다. 가로되 불과 법이 이 하나입니까 이 둘입니까. 사왈 노주(露柱)가 삼강(三江)을 건너면서 오히려 감한(感恨)을 품음이 길다.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 복주성(復州城)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탑 가운데의 사람입니까. 사왈 용흥사(龍興寺)다.
●感恨; 원한. 불만. 감(感)은 감(憾)과 통함.
廣州華嚴慧禪師 僧問 承古人有言 妄心無處卽菩提 正當妄時還有菩提也無 師曰 來音已照 僧曰 不會 師曰 妄心無處卽菩提
광주(廣州) 화엄혜(華嚴慧) 선사. 승문(僧問) 듣건대(承) 고인이 말씀이 있어 망심(妄心)이 없는 곳이 곧 보리(菩提)다. 바로 망(妄)을 당했을 때 도리어 보리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師曰) 내음(來音)이 이미 비추었다(照). 승왈(僧曰)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망심이 없는 곳이 곧 보리다.
韶州舜峯韶和尙 初問雲門和尙 寶月爲什麽於此分輝 雲門曰 千光同照 師曰 謝和尙指示 雲門曰 見什麽 僧正入師方丈乃曰 方丈得恁麽黑 師曰 老鼠窟 僧正曰 放猫兒入好 師曰 試放看 僧正無對 師拊掌笑 師與老宿渡江次 師取錢與渡子 老宿曰 囊中若有靑銅片 師揖曰 長老莫笑
●僧正; 又稱僧主 統領敎團 竝匡正僧尼行爲之僧官 本制始於魏晉南北朝時代 爲中央僧官之職稱 惟自唐宋以來 多爲地方僧官 中央另設僧職機構 按大宋僧史略中立僧正條 正 政之意 僧正卽須先自正始得正人 蓋比丘戒律漸弛 習染俗風 乃揀擇僧衆中有德望者爲僧正 後秦姚興時 以僧䂮(道䂮)任僧主 統管秦地僧尼 爲僧正之初例 此後南朝歷代皆設有僧正之職 朝代不同 名稱亦互異
●渡子; 擺渡的船夫 子 泛指人
소주(韶州) 순봉소(舜峯韶) 화상. 처음 운문화상에게 묻되 보월(寶月)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서 광휘(光輝)를 나눕니까. 운문이 가로되 천광(千光)이 동조(同照)한다. 사왈(師曰) 화상의 지시에 감사합니다. 운문이 가로되 무엇을 보았느냐. 승정(僧正)이 스님의 방장에 들어와 이에 가로되 방장이 이렇게 어둠(黑)을 얻습니까. 사왈 노서(老鼠)의 굴(窟)입니다. 승정이 가로되 고양이(猫兒)를 방출(放出)해 들여야 좋겠습니다. 사왈 시험 삼아 방출해 보시오. 승정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부장(拊掌; 拍掌)하며 웃었다. 스님과 노숙이 도강(渡江)하던 차에 스님이 돈을 취해 도자(渡子)에게 주자 노숙이 가로되 주머니 속에 청동(靑銅) 조각이 있는 듯합니다. 스님이 읍(揖)하고 가로되 장로는 웃지 마시오.
●僧正; 또 승주(僧主)라고 일컬음. 교단을 통령(統領)하며 아울러 승니의 행위를 바르게 하는 승관(僧官)임. 본래의 제도는 위진남북조시대에 비롯했으며 중앙 승관의 직칭(職稱)이 됨. 오직 당송 이래로부터는 다분히 지방의 승관이 되며 중앙에 따로 승직의 기구를 설치했음. 대송승사략중(大宋僧史略中) 입승정조(立僧正條)를 안험컨대 정(正)은 정(政)의 뜻이니 승정은 곧 모름지기 먼저 스스로 발라야 비로소 사람들을 바르게 함을 얻는다. 대개 비구의 계율이 점차 느슨해져 속풍을 익히고 물들어 이에 승중 가운데 덕망이 있는 자를 간택해 승정으로 삼았다. 후진(後秦)의 요흥(姚興) 때 승략(僧䂮; 道䂮)을 승주(僧主)에 임명해 진지(秦地)의 승니를 통솔 관리했으며 승정의 처음 사례가 된다. 차후에 남조의 역대가 다 승정의 직을 설치해 있었음. 조대(朝代)가 같지 못하고 명칭도 또한 서로 달랐음.
●渡子; 파도(擺渡; 물을 헤쳐 건네줌)하는 선부(船夫; 뱃사공). 자(子)는 널리 사람을 가리킴.
隋州雙泉山師寬明敎大師 師上堂擧拂子曰 遮箇接中下之人 時有僧問 上上人來如何 師曰 打鼓爲三軍 問向上宗乘如何擧唱 師曰 不敢 曰恁麽卽含生有望 師曰 脚下水深淺 問凡有言句盡落有無 不落有無如何 師曰 東弗于代 曰遮箇猶落有無 師曰 支過雪山西 僧問洞山 如何是佛 洞山云 麻三斤 師聞之乃曰 向南有竹向北有木 師後住智門 僧問 不可以智知 不可以識識時如何 師曰 不入遮箇野狐群隊 問如何是定 師曰 鰕跳不出斗 曰如何出得去 師曰 南山起雲北山下雨 問北斗裏藏身意旨如何 師曰 雞寒上樹鴨寒入水 問竪起杖子意旨如何 師曰 一葉落知天下秋 師後終於智門
●三軍; 金光明經文句記五云 軍者 萬二千五百人曰軍 天子六軍 諸侯三軍 ▲論語子罕 子曰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東弗于代; 四大洲之一 又作東弗于逮 新曰毘提訶 東大洲名也 西域記一曰 東毘提訶洲 舊曰弗婆提 又曰弗于逮 訛也
●鰕跳不出斗; 比喩事物難以擺脫外境的制約 斗 量器 說文 斗 十升也 象形 有柄
수주(隋州) 쌍천산(雙泉山) 사관(師寬) 명교대사(明敎大師). 스님이 상당하여 불자를 들고 가로되 저개(遮箇; 이것)는 중하지인(中下之人)을 접인(接引)한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상상인(上上人)이 오면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북을 침은 삼군(三軍)을 위함이다. 묻되 향상(向上)의 종승(宗乘)을 어떻게 거창(擧唱)합니까. 사왈 불감(不敢). 가로되 이러하다면(恁麽) 곧 함생(含生)이 유망(有望; 희망이 있음)할 것입니다. 사왈 발 아래 물이 깊은가 얕은가. 묻되 무릇 언구(言句)가 있음은 모두(盡) 유무(有無)에 떨어집니다. 유무에 떨어지지 않음은 어떻습니까. 사왈 동불우대(東弗于代)다. 가로되 저개(遮箇)는 오히려 유무에 떨어집니다. 사왈 설산(雪山)의 서쪽을 가르며 지나간다(支過). 중이 동산(洞山; 守初)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동산이 이르되 마삼근(麻三斤; 삼이 3근)이다. 스님이 이를 듣고 이에 가로되 향남(向南; 남방)엔 대가 있고 향북(向北; 북방)엔 나무가 있다. 스님이 후에 지문(智門)에 주(住)했다. 승문(僧問) 가히 지(智)로써 지(知)하지 못하고 가히 식(識)으로써 식(識)하지 못할 때(時; 저본에 寺로 지었음) 어떻습니까. 사왈 저개(遮箇)의 야호(野狐)의 군대(群隊; 무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정(定)입니까. 사왈 새우(鰕; 저본에 鰕蟇로 지었음)가 뛰어도 말을 벗어나지 못한다(鰕跳不出斗). 가로되 어찌해야 벗어남을 얻습니까(出得去). 사왈 남산에 구름이 일어나고 북산에 비가 내린다. 묻되 북두(北斗) 속에 몸을 숨긴다는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닭은 추우면 나무에 오르고 오리는 추우면 물에 들어간다. 묻되 주장자를 세워 일으키는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한 잎이 떨어지면 천하가 가을인 줄 안다. 스님이 후에 지문(智門)에서 마쳤다.
●三軍; 금광명경문구기5에 이르되 군(軍)이란 것은 만2천5백 인을 가로되 군이다. 천자는 6군이며 제후는 3군이다. ▲논어9 자한. 공자가 가로되 3군에서 가히 장수를 뺏지만 필부(匹夫)에게서 가히 의지(意志)를 뺏지 못한다.
●東弗于代; 4대주(大洲)의 하나. 또 동불우체(東弗于逮)로 지음. 신역에 가로되 비제하(毘提訶; 梵 Videha)니 동대주(東大洲)의 이름임. 서역기1에 가로되 동비제하주(東毘提訶洲) 구역에 가로되 불바제 또 가로되 불우체는 그르다.
●鰕跳不出斗; 사물이 외경(外境)의 제약을 파탈(擺脫; 털어버리고 벗어남)하기 어려움에 비유함. 두(斗)는 양기(量器)임. 설문 두(斗) 10승(升; 되)이다. 상형(象形; 形狀을 본뜸)했으며 자루가 있다.
英州觀音和尙 因穿井 僧問 井深多少 師曰 沒汝鼻孔 問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英州觀音 曰見後如何 師曰 英州觀音 問如何是觀音妙智力 師曰 風射破窓鳴
영주(英州) 관음화상(觀音和尙). 우물을 뚫음으로 인해 승문(僧問) 우물의 깊이가 얼마입니까. 사왈(師曰) 너의 콧구멍을 침몰시킨다.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영주(英州) 관음(觀音)이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영주 관음이다. 묻되 무엇이 이 관음의 묘지력(妙智力)입니까. 사왈 바람이 파창(破窓)을 쏘아 울린다.
韶州林泉和尙 僧問 如何是林泉主 師曰 巖下白石 曰如何是林泉家風 師曰 迎賓待客 問如何是道 師曰 迢迢 曰學人便領會時如何 師曰 久久忘緣者 寧懷去住情
소주(韶州) 임천화상(林泉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임천(林泉)의 주(主)입니까. 사왈(師曰) 암하(巖下)의 백석(白石)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임천의 가풍입니까. 사왈 영빈대객(迎賓待客)한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멀고 멀다(迢迢). 가로되 학인이 바로 영회(領會)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오래 오래 망연(忘緣)한 자가 어찌(寧) 거주(去住)의 정(情)을 품겠는가.
韶州雲門煦和尙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今是什麽意 僧曰 恰是 師乃喝去
소주(韶州) 운문후(雲門煦) 화상.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사왈(師曰) 지금은 이 무슨 뜻(意)이냐. 승왈(僧曰) 흡시(恰是). 스님이 이에 할(喝)하고 내쫓았다(去).
益州靑城香林院澄遠禪師 初住西川導江縣迎祥寺天王院〈時謂水精宮〉 僧問 美味醍醐爲什麽變成毒藥 師曰 導江紙 問見色便見心時如何 師曰 適來什麽處去來 曰心境俱亡時如何 師曰 開眼坐睡 師後住靑城香林 僧問 北斗裏藏身意如何 師曰 月似彎弓少雨多風 問如何是諸佛心 師曰 淸卽始終淸 曰如何領會 師曰 莫受人謾好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蹋步者誰 問如何是和尙妙藥 師曰 不離衆味 曰喫者如何 師曰 𠯗啗看 問如何是室內一燈 師曰 三人證龜成鼈 問如何是衲衣下事 師曰 臘月火燒山
●三人證龜成鱉; 喩指衆口一詞 可以弄假成眞
익주(益州) 청성(靑城) 향림원(香林院) 징원선사(澄遠禪師). 처음에 서천(西川) 도강현(導江縣) 영상사(迎祥寺) 천왕원(天王院)〈당시에 이르기를 水精宮이라 했다〉에 주(住)했다. 승문(僧問) 미미(美味)의 제호(醍醐)가 무엇 때문에 변해 독약을 이룹니까. 사왈(師曰) 도강의 종이(導江紙)다. 묻되 색(色)을 보면 바로 심(心)을 볼 때 어떻습니까. 사왈 적래(適來)에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什麽處去來). 가로되 심경(心境)이 모두 망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눈 뜨고 앉아서 존다(睡). 스님이 후에 청성(靑城) 향림(香林)에 주(住)했다. 승문(僧問) 북두(北斗) 속에 몸을 숨길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달이 만궁(彎弓; 당긴 활)과 같으면 비가 적고 바람이 많다. 묻되 무엇이 이 제불의 마음입니까. 사왈 맑은 즉 시종 맑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사람의 속임을 받지 말아야 좋으니라.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걸음을 디디는(蹋步) 자가 누구인가.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묘약(妙藥)입니까. 사왈 중미(衆味; 뭇 맛)를 여의지 않는다. 가로되 먹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잡담(𠯗啗; 마시고 먹다)해 보아라. 묻되 무엇이 이 실내의 일등(一燈)입니까. 사왈 세 사람이면 거북을 증명해 자라를 이룬다(三人證龜成鼈). 묻되 무엇이 이 납의하사(衲衣下事)입니까. 사왈 납월에 불이 산을 태운다(臘月火燒山).
●三人證龜成鱉; 뭇 입으로 동일하게 말하면 가이(可以) 가짜를 희롱하여 진짜로 만듦을 비유로 가리킴.
問大衆雲集請師施設 師曰 三不待兩 問如何是學人時中事 師曰 恰恰 問如何是玄 師曰 今日來明日去 曰如何是玄中玄 師曰 長連床上 問如何是香林一脈泉 師曰 念無間斷 曰飮者如何 師曰 隨方斗秤 問如何是衲僧正眼 師曰 不分別 曰照用事如何 師曰 行路人失脚 問萬機俱泯迹 方識本來人時如何 師曰 淸機自顯 曰恁麽卽不別人 師曰 方見本來人 問魚游陸地時如何 師曰 發言必有後救 僧曰 却下碧潭時如何 師曰 頭重尾輕 問但有言句盡是賓 如何是主 師曰 長安城裏 曰如何領會 師曰 千家萬戶
●恰恰; 正好 適當之詞
●隨方斗秤; 謂隨處隨器之大小
묻되 대중이 운집했으니 스님의 시설(施設)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세 번 비를 기다리지 않았다(三不待兩).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시중사(時中事)입니까. 사왈 흡흡(恰恰). 묻되 무엇이 이 현(玄)입니까. 사왈 금일 왔다가 명일 간다(今日來明日去). 가로되 무엇이 이 현중현(玄中玄)입니까. 사왈 장련상상(長連床上)이다. 묻되 무엇이 이 향림(香林)의 1맥(脉)의 샘입니까. 사왈 염(念)이 간단(間斷)이 없다. 가로되 마시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수방두칭(隨方斗秤; 지방의 두칭을 따르다)한다. 묻되 무엇이 이 납승의 정안(正眼)입니까. 사왈 분별하지 않는다. 가로되 조용(照用; 照와 用)의 일이 어떻습니까(如何). 사왈 행로인(行路人)이 실각(失脚; 발을 헛디딤)했다. 묻되 만기(萬機)가 모두(俱) 자취가 소멸(消滅; 泯)해야 비로소 본래인(本來人)을 알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청기(淸機)가 저절로 나타난다(顯).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별다른 사람(別人)이 아니겠습니다. 사왈 비로소 본래인을 본다. 묻되 물고기가 육지에 헤엄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발언(發言)하면 반드시 뒤에 구원(救援; 救)함이 있다. 승왈(僧曰) 도리어 벽담(碧潭)에 내려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머리는 무겁고 꼬리는 가볍다. 묻되 단지 언구가 있으면 모두(盡) 이 빈(賓)입니다. 무엇이 이 주(主)입니까. 사왈 장안성(長安城) 속이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천가만호(千家萬戶)다.
●恰恰; 정호(正好)니 적당의 말.
●隨方斗秤; 이르자면 곳을 따라 그릇의 대소를 따름.
景德傳燈錄卷第二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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