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德傳燈錄卷第二十
吉州靑原山行思禪師第六世之四一百六人
洪州雲居山道膺禪師法嗣二十八人
杭州佛日和尙 1829
蘇州永光院眞禪師 1833
洪州同安丕禪師 1834
廬山歸宗澹權禪師 1837
池州廣濟和尙 1838
潭州水西南臺和尙 1839
歙州朱谿謙禪師 1840
揚州豐化和尙 1840
雲居山道簡禪師 1841
廬山歸宗懷惲禪師 1843
洪州大善慧海禪師 1844
朗州德山第七世和尙 1845
南嶽南臺和尙 1845
雲居山昌禪師 1845
池州嵆山章禪師 1846
晉州大梵和尙 1847
新羅雲住和尙 1847
雲居山懷岳禪師 1847
阾〈與嶺同〉珏和尙〈已上一十九人見錄〉 1848
潭州龍興寺悟空大師
建州白雲減禪師
潭州慕輔山和尙
舒州白水山瑋禪師
廬山冶父山和尙
南嶽法志禪師
新羅慶猷禪師
新羅慧禪師
洪州鳳棲山慧志禪師〈已上九人無機緣語句不錄〉
撫州曹山本寂禪師法嗣十四人
撫州荷玉光慧禪師 1848
筠州洞山道延禪師 1852
衡州育王山弘通禪師 1853
撫州金峯從志禪師 1854
襄州鹿門處眞禪師 1855
撫州曹山慧霞大師 1858
衡州華光範禪師 1858
處州廣利容禪師 1859
泉州廬山小谿院行傳禪師 1860
西川布水巖和尙 1861
蜀川西禪和尙 1861
華州草庵法義禪師 1862
韶州華嚴和尙〈已上一十三人見錄〉 1863
廬山羅漢池隆山主和尙〈一人無機緣語不錄〉
潭州龍牙山居遁禪師法嗣五人
潭州報慈藏嶼禪師 1863
襄州含珠山審哲禪師〈已上二人見錄〉 1865
鳳翔白馬弘寂禪師
撫州崇壽院道欽禪師
楚州觀音院斌禪師〈已上三人無機緣語句不錄〉
京兆華嚴寺休靜禪師法嗣三人
鳳翔府紫陵匡一禪師〈一人見錄〉 1867
饒州北禪院惟直禪師
濰州化城和尙〈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筠州九峯普滿大師法嗣一人
洪州同安威禪師〈一人見錄〉 1868
靑林師虔禪師法嗣六人
韶州龍光和尙 1869
襄州石門寺獻禪師 1871
襄州廣德和尙 1876
郢州芭蕉和尙 1877
定州石藏慧炬禪師〈已上五人見錄〉 1877
襄州延慶通性大師〈一人無機緣語句不錄〉
洛京白馬遁儒禪師法嗣二人
興元府靑剉山和尙〈一人見錄〉 1878
京兆保福和尙〈一人無機緣語句不錄〉
益州北院通禪師法嗣一人
京兆香城和尙〈一人見錄〉 1878
高安白水本仁禪師法嗣二人
京兆重雲智暉禪師 1879
杭州瑞龍幼璋禪師〈已上二人見錄〉 1883
撫州疎山匡仁禪師法嗣二十人
第二世疎山證禪師 1888
洪州百丈安禪師 1889
筠州黃檗慧禪師 1891
隨城山護國守澄禪師 1894
洛京靈泉歸仁禪師 1896
延州延慶奉璘禪師 1897
安州大安山省禪師 1898
洪州百丈超禪師 1899
洪州天王院和尙 1900
常州正勤院蘊禪師 1900
襄州後洞山和尙 1902
京兆三相和尙〈已上一十二人見錄〉 1902
筠州五峯山行繼禪師
商州高明和尙
華州西谿道泰禪師
撫州疎山和尙
筠州黃蘗山令約禪師
揚州祥光遠禪師
安州大安山傳性大師
筠州黃蘗山嬴禪師〈已上八人無機緣語句不錄〉
澧州欽山文邃禪師法嗣二人
洪州上藍院自古禪師
澧州太守雷滿〈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樂普山元安禪師法嗣十人
京兆永安善靜禪師 1902
蘄州烏牙山彦賓禪師 1907
鳳翔府靑峯傳楚禪師 1909
鄧州中度和尙 1910
嘉州洞谿和尙 1911
京兆臥龍和尙〈已上六人見錄〉 1911
嘉州黑水寺慧通大師
京兆盤龍和尙
單州東禪和尙
鄜州善雅和尙〈已上四人無機緣語句不錄〉
江西逍遙山懷忠禪師法嗣二人
泉州福淸師巍禪師 1912
京兆白雲無休禪師〈二人見錄〉 1912
袁州盤龍山可文禪師法嗣五人
江州廬山永安淨悟禪師 1913
袁州木平山善道禪師 1916
陝州龍谿和尙〈已上三人見錄〉 1918
桂陽志通大師
廬山壽昌院淨寂禪師〈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撫州黃山月輪禪師法嗣一人
郢州桐泉山和尙〈一人見錄〉 1919
洛京韶山寰普禪師法嗣二人
潭州文殊和尙〈一人見錄〉 1920
洋州大巖白和尙〈一人無機緣語句不錄〉
洪州上藍院令超禪師法嗣二人
河東北院簡禪師
洪州南平王鍾傳〈二人無機緣語句不錄〉
靑原山行思禪師第六世
前洪州雲居山道膺禪師法嗣
杭州佛日和尙 初遊天台山 嘗曰 如有人奪得我機者卽我師矣 尋抵于江西謁雲居膺和尙 作禮而問曰 二龍爭珠誰是得者 雲居曰 卸却業身來相見 對曰 業身已卸 曰珠在什麽處 師無對〈同安代云 廻頭卽勿交涉〉 師乃投誠入室 便禮雲居爲師 後參夾山 才入門見維那 維那曰 此間不著後生 師曰 某甲暫來禮謁和尙不宿 維那白夾山 夾山許見 未陞階便問 什麽處來 師曰 雲居來 曰卽今在什麽處 師曰 在夾山頂上 曰老僧行年在坎五鬼臨身 師乃上階禮拜 夾山又問 闍梨與什麽人爲同行 師曰 木上座 曰他何不來相看 師曰 和尙看他有分 曰在什麽處 師曰 在堂中 夾山便共師下到堂中 師遂去取得拄杖 擲于夾山面前 夾山曰 莫從天台得來否 師曰 非五嶽之所生 曰莫從須彌山得來否 師曰 月宮亦不逢 曰恁麽卽從他人得也 師曰 自己尙是冤家 從人得堪作什麽 曰冷灰裏有一粒豆子爆 喚維那來令安排向明窓下著 師却問 燈籠還解語也無 夾山曰 待燈籠解語卽向汝道 至明日夾山入堂問 昨日新到上座在什麽處 師出應諾 夾山曰 子未到雲居前在什麽處 對曰 天台國淸 夾山曰 天台有潺潺之瀑 淥淥之波 謝子遠來 子意如何 師曰 久居巖谷 不掛松蘿 夾山曰 此猶是春意 秋意如何 師良久 夾山曰 看君只是撑船漢 終歸不是弄潮人
●行年; 經歷的年歲 指當時年齡
●五鬼; 又稱五瘟 五瘟使者 五瘟使 是漢族民間傳說中的瘟神 分別是春瘟張元伯 夏瘟劉元達 秋瘟趙公明 冬瘟鍾士貴 總管中瘟史文業 他們是漢族民間信奉的司瘟疫之神 [百度百科]
●安排向明窓下; 謂寺院住持遇見靈利通悟的衲僧 按排于環境良好的席位 以示褒獎
●淥淥; 濕潤貌
●松蘿; 亦作松羅 卽女蘿 地衣門植物 體呈絲狀 直立或懸垂 灰白或灰綠色 基部多附著在松樹或別的樹的樹皮上 [百度漢語]
항주(杭州) 불일화상(佛日和尙). 처음 천태산을 유람했는데 일찍이 가로되 나의 기(機)를 탈득(奪得)할 사람이 있을 것 같으면 곧 나의 스승이다. 이윽고 강서(江西)에 다다라 운거응(雲居膺) 화상을 참알했다. 작례(作禮)하고 문왈(問曰) 2룡이 구슬을 다투면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운거가 가로되 업신(業身)을 내려놓아버리고(卸却) 와서 상견하라. 대왈(對曰) 업신을 이미 내려놓았습니다. 가로되 구슬이 어느 곳에 있느냐.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同安이 代云 廻頭하면 곧 交涉이 없습니다〉. 스님이 이에 투성(投誠)하여 입실했고 바로 운거에게 예배하며 스승으로 삼았다. 후에 협산(夾山)을 참하여 겨우 입문하자 유나(維那)를 보았다. 유나가 가로되 차간(此間)엔 후생(後生)을 붙이지 않습니다. 사왈(師曰) 모갑이 잠시 와서 화상을 예알(禮謁)하고 숙박하지 않습니다. 유나가 협산에게 알리자(白) 협산이 봄을 허락했다. 섬돌에 오르지도 아니한 전에 바로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 운거(雲居)에서 왔습니다. 가로되 즉금은 어느 곳에 있느냐. 사왈 협산의 정상(頂上)에 있습니다. 가로되 노승의 행년(行年)이 감(坎; ☵)에 있어서 오귀(五鬼)가 임신(臨身)했다. 스님이 이에 섬돌에 올라가 예배했다. 협산이 또 묻되 사리(闍梨)는 어떤 사람과 동행이 되는가. 사왈 목상좌(木上座; 拄杖)입니다. 가로되 그는 왜 와서 상간(相看)하지 않느냐. 사왈 화상이 그를 볼 분한이 있습니다. 가로되 어느 곳에 있느냐. 사왈 당중(堂中)에 있습니다. 협산이 바로 스님과 함께 내려가 당중에 이르렀다. 스님이 드디어 가서 주장(拄杖; 저본에 柱枝로 지었음)을 취득(取得)하여 협산의 면전에 던졌다. 협산이 가로되 천태로 좇아 얻어 오지 않았는가. 사왈 오악(五嶽)의 소생(所生)도 아닙니다. 가로되 수미산으로 좇아 얻어 오지 않았는가. 사왈 월궁(月宮)에서도 또한 만나지 못합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타인으로 좇아 얻었겠구나. 사왈 자기도 오히려 이 원가(冤家; 怨家와 같음)이거늘 타인으로 좇아 얻어 차마 무엇에 쓰겠습니까. 가로되 냉회(冷灰) 속에서 한 알의 두자(豆子; 子는 조사)가 있어 터지는구나(爆). 유나를 불러 와 명창하를 향해 안배(安排向明窓下)하게 했다. 스님이 도리어 묻되 등롱(燈籠)이 도리어 말할 줄 압니까 또는 아닙니까. 협산이 가로되 등롱이 말할 줄 앎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명일에 이르러 협산이 입당(入堂)하여 묻되 어제 신도(新到) 상좌는 어느 곳에 있는가. 스님이 나가서 응낙했다. 협산이 가로되 자네가 운거에 이르지 아니 한 전엔 어느 곳에 있었는가. 대왈(對曰) 천태 국청(國淸; 국청사)입니다. 협산이 가로되 천태에 잔잔지폭(潺潺之瀑)과 녹록지파(淥淥之波)가 있거늘 자네의 원래(遠來)에 감사한다. 자네의 뜻은 어떠한가. 사왈 암곡(巖谷)에 구거(久居)하며 송라(松蘿)를 걸치지 않았습니다. 협산이 가로되 이것은 오히려 이 춘의(春意)다. 추의(秋意)는 어떠한가.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협산이 가로되 그대를 보건대 다만 이 탱선한(撑船漢)인지라 마침내 돌아가더라도 이 농조인(弄潮人)이 아니다.
●行年; 경력한 연세니 당시의 연령을 가리킴.
●五鬼; 또 5온(瘟; 染病)ㆍ5온사자(五瘟使者)로 호칭함. 5온사(瘟使)는 이 한족 민간 전설 중의 온신(瘟神)이니 분별하자면 이 춘온(春瘟) 장원백ㆍ하온 유원달(劉元達)ㆍ추온 조공명ㆍ동온 종사귀ㆍ총관(總管) 중온(中瘟) 사문업임. 그들은 이 한족 민간에서 신봉하는 온역(瘟疫)을 맡은 신임 [백도백과].
●安排向明窓下; 이르자면 사원의 주지가 영리하고 통오(通悟; 통달해 깨침)한 납승을 만나보고 환경이 양호한 석위(席位)에 안배하여 포장(褒獎)을 보임.
●淥淥; 습윤(濕潤)한 모양.
●松蘿; 또한 송라(松羅)로 지음. 곧 여라(女蘿)니 지의문(地衣門) 식물. 체(體)는 사상(絲狀)을 보이고 직립하거나 혹 매달려 드리움. 회백(灰白) 혹 회록색(灰綠色)이며 기부(基部)가 다분히 소나무나 혹 다른 나무의 나무 껍질 위에 부착해 있음 [백도한어].
一日大普請 維那請師送茶 師曰 某甲爲佛法來不爲送茶來 維那曰 和尙敎上座送茶 曰和尙尊命卽得 乃將茶去作務處 搖茶椀作聲 夾山迴顧 師曰 釅茶三五椀 意在钁頭邊 夾山曰 甁有傾茶意 籃中幾箇甌 師曰 甁有傾茶意 籃中無一甌 便傾茶行之 時大衆皆擧目 師又問曰 大衆鶴望請師一言 夾山曰 路逢死蛇莫打殺 無底籃子盛將歸 師曰手執夜明符 幾箇知天曉 夾山曰 大衆有人歸去歸去 從此住普請歸院 衆皆仰歎 師後迴淛西住佛日而終
어느 날 대보청(大普請)했다. 유나가 스님에게 송다(送茶)를 청했다. 사왈(師曰) 모갑은 불법을 위해 왔고 송다하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다. 유나가 가로되 화상이 상좌로 하여금 송다하게 했습니다. 가로되 화상의 존명(尊命)이라면 곧 옳습니다. 이에 차(茶)를 가지고 작무처(作務處)로 가서 다완(茶椀; 찻사발)을 흔들어 소리를 지었다. 협산이 돌아보았다. 사왈 텁텁한 차(釅茶) 세댓 사발은 뜻이 곽두변(钁頭邊; 괭이 가)에 있습니다. 협산이 가로되 병엔 차를 기울이는 뜻이 있거니와(甁有傾茶意) 광주리 속에 몇 개의 사발인가(籃中幾箇甌). 사왈 병엔 차를 기울이는 뜻이 있지만 광주리 속엔 한 사발도 없습니다. 바로 차를 기울여 행했다. 때에 대중이 모두 눈을 들었다. 스님이 또 문왈(問曰) 대중이 학망(鶴望)하니 스님의 일언을 청합니다. 협산이 가로되 길에서 죽은 뱀을 만나거든 타살(打殺)하지 말고 바닥이 없는 광주리(籃子)에 담아 가지고 돌아가라. 사왈 손에 야명부(夜明符)를 가지매 몇 개가 하늘 밝은 줄 아는가. 협산이 가로되 대중이여 사람이 있다, 돌아가자, 돌아가자. 이로 좇아 보청을 멈추고(住) 귀원(歸院)했다. 대중이 모두 앙탄(仰歎)했다. 스님이 후에 절서(淛西; 淛은 浙과 같음)로 돌아가 불일(佛日)에 주(住)하다가 마쳤다.
蘇州永光院眞禪師 上堂謂衆曰 言鋒若差鄕關萬里 直須懸崖撒手自肯承當 絕後再蘇欺君不得 非常之旨人焉廋庾哉 問道無橫徑 立者皆危 如何得不被橫徑取侵去 師以拄杖驀口拄 僧曰 此猶是橫徑 師曰 合取
●鄕關萬里; 鄕關 故鄕 比喩相距本源十分遙遠향
소주(蘇州) 영광원(永光院) 진선사(眞禪師).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언봉(言鋒)이 만약 어긋나면 향관만리(鄕關萬里)니 바로 모름지기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懸崖撒手) 스스로 수긍해 승당(承當)하고 기절한 후에 다시 깨어나야 그대를 속임을 얻지 못한다. 비상(非常)한 의지(意旨)를 사람이 어떻게 찾겠는가(廋哉; 저본에 庾哉로 지었음). 도를 물음엔 횡경(橫徑; 지름길)이 없나니 세우는 자가 다 위험하다. 어찌해야 횡경(橫徑)이 취침(取侵; 침범을 취하다)함을 입지 않음을 얻겠는가. 스님이 주장자로써 입에다(驀口) 버텼다. 승왈(僧曰) 이것은 오히려 이 횡경입니다. 사왈(師曰) 닫아라(合取).
●鄕關萬里; 향관(鄕關)은 고향이니 본원(本源)과 서로 떨어짐이 십분 요원함에 비유함.
洪州鳳棲山同安丕禪師 問如何是無縫塔 師曰 吽吽 僧曰如何是塔中人 師曰 今日大有人從建昌來 問 一見便休去時如何 師曰 是也更來遮裏作麽 問如何是點額魚 師云 不透波瀾 僧曰 慚恥時如何 師曰 終不仰面 僧曰 恁麽卽不變其身也 師曰 是也靑雲事作麽生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金鷄抱子歸霄漢 玉兔懷兒向紫微 云忽遇客來將何秖待 師曰 金果朝來猿去摘 玉花晩後鳳銜歸 問路逢達道人不將語默對 未審將什麽對 師曰 要踢要拳
홍주(洪州) 봉서산(鳳棲山) 동안비(同安丕) 선사.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師曰) 우우(吽吽). 승왈(僧曰) 무엇이 이 탑중(塔中)의 사람입니까. 사왈 금일 대유인(大有人)이 건창(建昌)으로부터 왔다. 묻되 한 번 보고 바로 휴거(休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그러하나니(是也) 다시 이 속에 와서 무엇하리오. 묻되 무엇이 이 점액어(點額魚)입니까. 사운(師云) 파란(波瀾)을 투출(透出)하지 못했다. 승왈 참치(慚恥; 부끄러움)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마침내 앙면(仰面; 얼굴을 쳐들다)하지 못한다. 승왈 이러하다면 곧 그 몸을 변화하지 못했습니다. 사왈 그러하나니(是也) 청운(靑雲)의 일은 어떠한가.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금계(金鷄)는 포자(抱子; 새끼를 안다)하고 소한(霄漢)으로 돌아갔거늘 옥토(玉兔)는 회아(懷兒; 새끼를 품다)하고 자미(紫微)를 향한다. 이르되 홀연히 객이 옴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지대(秖待; 應待)합니까. 사왈 금과(金果)는 조래(朝來; 아침)에 원숭이가 가서 따고(摘) 옥화(玉花)는 만후(晩後)에 봉(鳳)이 물고 돌아간다. 묻되 길에서 달도(達道)한 사람을 만나면 어묵(語默)을 가지고 상대하지 않는다. 미심하오니 무엇을 가지고 상대합니까. 사왈 차기(踢)를 요하고 주먹질(拳)을 요한다.
問不傷王道如何 師曰 喫粥喫飯 曰莫便是不傷王道也無 師曰 遷流左降 問玉印開時何人受信 師曰 不是恁麽人 曰親宮事如何 師曰 道什麽 問如何是毘盧師 師曰 闍梨在什麽處出家 問如何是觸目菩提 師曰 面前佛殿 問片玉無瑕請師不觸 師曰 落汝後 問玉印開時何人受信 師云 不是小小 問如何是妙旨 師曰好 問迷頭認影如何止 師曰 告阿誰 曰如何卽是 師曰 從人覓卽轉遠也 曰不從人覓時如何 師曰 頭在什麽處 問如何是同安一隻箭 師曰 腦後看 曰腦後事如何 師曰 過也 問亡僧衣衆人唱 祖師衣什麽人唱 師曰打 問將來不相似 不將來時如何 師曰 什麽處著 問未有遮箇時作麽生行履 師曰 尋常又作麽生 曰恁麽卽不改舊時人也 師曰 作何行履
●左降; 由左面台階而下 貶官 多指京官降職到州郡
●唱; 此指高聲叫賣 僧人死後 寺院將遺留衣物 當衆呼價 賣給其他僧人 高聲叫賣叫買 都稱爲唱
묻되 왕도(王道)를 상(傷)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죽 먹고 밥 먹는다. 가로되 바로 이 왕도를 상하지 않음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천류(遷流)하여 좌강(左降)한다. 묻되 옥인(玉印)을 열었을 때 어떤 사람이 수신(受信)합니까. 사왈 이는 이러한 사람이 아니다. 가로되 친궁(親宮)하는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무어라고 말했느냐. 묻되 무엇이 이 비로(毘盧)의 스승입니까. 사왈 사리(闍梨)는 어느 곳에서 출가했느냐. 묻되 무엇이 이 촉목보리(觸目菩提)입니까. 사왈 면전(面前)에 불전(佛殿)이다. 묻되 편옥(片玉)이 티가 없으니 스님의 불촉(不觸; 부딪치지 않음)을 청합니다. 사왈 너의 뒤에 떨어졌다. 묻되 옥인(玉印)을 열었을 때 어떤 사람이 수신(受信)합니까. 사운(師云) 이 소소(小小)가 아니다. 묻되 무엇이 이 묘지(妙旨)입니까. 사왈 좋구나(好). 묻되 미두인영(迷頭認影)을 어떻게 멈춥니까(止). 사왈 누구(阿誰)에게 고하느냐. 가로되 어찌해야 곧 옳습니까. 사왈 타인으로 좇아 찾으면 곧 더욱 멀어진다. 가로되 타인으로 좇아 찾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사왈 머리가 어느 곳에 있느냐. 묻되 무엇이 이 동안(同安)의 1척(隻) 화살입니까. 사왈 뇌후(腦後)에서 보아라. 가로되 뇌후의 일이 무엇입니까. 사왈 지나갔다(過也). 묻되 망승(亡僧)의 옷은 중인(衆人)이 창(唱)합니다. 조사의 옷은 어떤 사람이 창합니까. 사왈 쳐라(打). 묻되 가지고 오면(將來) 상사(相似)하지 않습니다. 가지고 오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느 곳에 두겠는가(著). 묻되 저개(遮箇)가 있지 않을 때 어떻게 행리(行履)합니까. 사왈 심상(尋常)에 또 어떠한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구시인(舊時人)을 고치지 않음입니다. 사왈 어떤 행리(行履)를 짓느냐.
●左降; 좌면의 대계(台階)로부터 내려감. 폄관(貶官)이니 다분히 경관(京官)이 강직(降職)하여 주군(州郡)에 이름을 가리킴.
●唱; 여기에선 고성으로 매도(賣渡)를 부르짖음을 가리킴. 승인이 사후에 사원에서 유류(遺留)한 의물(衣物)을 가지고 당중(當衆)하여 호가(呼價)하여 기타의 승인에게 매급(賣給)하면서 고성으로 규매규매(叫賣叫買)함을 모두 일컬어 창(唱)이라 함.
廬山歸宗寺澹權禪師〈第二世〉 問金鷄未鳴時如何 師曰 失却威音王 曰鳴後如何 師曰 三界平沈 問盡身供養時如何 師曰 將得什麽來 曰所有不惜 師曰 供養什麽人 僧無語 問學人爲佛法來 如何是佛法 師曰 正閑空 曰便請商量 師曰 周匝有餘 問大衆雲集合譚何事 師曰 三三兩兩 問路逢達道人不將語默對 未審將什麽對 師曰 爭能肯得人 又曰 會麽 曰不會 師曰 長安路廁坑子 問學人不問諸餘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三枷五棒 問通會底人如何道 師曰 只今事作麽生 僧曰隨流 師曰 不隨流爭得息
●三三兩兩; 又作兩兩三三 三箇人兩箇人 聚在一處作事 形容人數不多 不太集中 但又陸續地行動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 담권선사(澹權禪師)〈第二世〉. 묻되 금계(金鷄)가 울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위음왕(威音王; 저본에 威音玉으로 지었음)을 잃어버렸다. 가로되 운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3계(界)가 평침(平沈; 沈沒)한다. 묻되 온몸(盡身)으로 공양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무엇을 가지고(將得) 왔느냐. 가로되 소유(所有)를 아끼지 않습니다. 사왈 어떤 사람에게 공양하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묻되 학인이 불법을 위해 왔습니다. 무엇이 이 불법입니까. 사왈 바로(正) 한공(閑空; 여러 선록에 空閑으로 지었음)하다. 가로되 바로 상량(商量)을 청합니다. 사왈 주잡(周匝)하고도 나머지가 있다. 묻되 대중이 운집했습니다. 합당히 무슨 일을 이야기합니까(譚). 사왈 삼삼양량(三三兩兩)이다. 묻되 길에서 달도(達道)한 사람을 만나면 어묵(語默)을 가지고 상대하지 않는다. 미심하오니 무엇을 가지고 상대합니까. 사왈 어찌 능히 타인을 긍정함을 얻겠는가. 또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장안로(長安路)의 뒷간 구덩이(廁坑子; 子는 조사)다. 묻되 학인이 제여(諸餘)를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삼가오방(三枷五棒; 枷는 칼)이다. 묻되 통회(通會; 通徹히 알다. 저본에 通通會로 지었음)한 사람은 어떻게 말합니까. 사왈 지금(只今)의 일은 어떠한가. 승왈(僧曰) 수류(隨流)합니다. 사왈 수류하지 않으면 어찌 쉼(息)을 얻겠는가.
●三三兩兩; 또 양량삼삼(兩兩三三)으로 지음. 세 개의 사람이나 두 개의 사람이 모여 한 곳에 있으면서 작사(作事)함. 사람 수가 많지 않으며 매우 집중하지 않으면서 다만 육속지(陸續地; 계속하며 끊이지 않음)에서 행동함을 형용함.
池州廣濟和尙 問匹馬單槍時如何 師曰 頭落也 問如何是方外之譚 師曰 汝道什麽 問如何是廣濟水 師曰 無饑渴 曰恁麽卽學人不虛設也 師曰 情知爾受人安排 問遠遠來投乞師指示 師曰 有口只解喫飯 問溫伯雪與仲尼相見時如何 師曰 此間無恁麽人 問不識不見請師道出 師曰 不昧 曰不昧時作麽生 師曰 汝喚作什麽
●溫伯雪; 祖庭事苑三 溫伯雪 南國(楚)賢人也 適齊 舍魯 仲尼見之而不言 子路曰 夫子欲見溫伯雪子久之 今見不言 何也 仲尼曰 若夫人者 目擊而道存矣 亦不可以容聲矣 見莊子(外篇 田子方)
지주(池州) 광제화상(廣濟和尙). 묻되 필마단창(匹馬單槍)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머리가 떨어졌다. 묻되 무엇이 이 방외의 말씀(方外之譚)입니까. 사왈 네가 무어라고 말했느냐. 묻되 무엇이 이 광제수(廣濟水)입니까. 사왈 기갈(饑渴)이 없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학인이 헛되이 베푼 게 아닙니다. 사왈 정지(情知; 思料)컨대 너는 타인의 안배(安排)를 받는다. 묻되 멀고도 멀리서 와서 투입했으니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입이 있어 다만 끽반(喫飯)할 줄 안다. 묻되 온백설(溫伯雪)과 중니(仲尼)가 상견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차간(此間)엔 이러한 사람이 없다. 묻되 알지 못하고 보지 못했으니 스님의 말씀해 냄을 청합니다. 사왈 어둡지 않다(不昧). 가로되 어둡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무엇이라고 불러 짓느냐.
●溫伯雪; 조정사원3. 온백설(溫伯雪)은 남국(南國; 楚)의 현인(賢人)이다. 제나라로 가다가 노나라에 머물렀다(舍는 쉴 사). 중니가 그를 보고 말하지 않았다. 자로가 가로되 부자(夫子)가 온백설자(溫伯雪子)를 보고 싶어 한 게 오래되었는데 이제 보고서도 말을 하지 않음은 왜입니까. 중니가 가로되 이에(若) 무릇 사람이란 것은 목격(目擊)하매 도가 존재하나니 또한 가히 소리를 용납하지 않는다. 장자(외편 田子方)를 보라.
潭州水西南臺和尙 僧問 如何是此間一滴水 師曰 入口卽抉出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靴頭線綻 問祖祖相傳 未審傳箇什麽 師曰 不因闍梨問 老僧亦不知
담주(潭州) 수서(水西) 남대화상(南臺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차간(此間)의 한 방울 물입니까. 사왈(師曰) 입에 들면 곧 긁어 낸다(抉出; 저본에 擭出로 지었음).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 가죽신(靴頭; 頭는 조사)의 실이 터졌다(線綻). 묻되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한다. 미심하오니 저(箇) 무엇을 전합니까. 사왈 사리(闍梨)의 물음을 인하지 않으면 노승도 또한 알지 못한다.
歙州朱谿謙禪師 饒州刺史與師造大藏殿 師與一僧同看殿次 師喚某甲 僧應諾 師曰 此殿著得多少佛 曰著卽不無有人不肯 師曰 我不問遮箇人 曰恁麽卽某甲亦未曾秖對 珍重 師後住兜率山而終
흡주(歙州) 주계겸(朱谿謙) 선사. 요주자사(饒州刺史)가 스님을 위해(與) 대장전(大藏殿)을 건조했다. 스님이 1승과 함께 보던 차에 스님이 부르되 모갑(某甲). 중이 응낙했다. 사왈(師曰) 차전(此殿)에 다소(多少)의 불(佛)을 착득(著得; 安置하다)했는가. 가로되 안치(著)는 곧 없지 않으나 어떤 사람은 불긍(不肯)합니다. 사왈 나는 저개(遮箇)의 사람을 묻지 않았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모갑도 또한 일찍이 지대(秖對)하지 않았습니다. 진중(珍重). 스님이 후에 도솔산에 거주하다가 마쳤다.
揚州豐化和尙 問如何是敵國一著碁 師曰 下來 問一棒打破虛空時如何 師曰 把一片來 問上無片瓦下無卓錐 學人向什麽處立 師曰 莫飄露麽
●上無片瓦下無卓錐; 義同上無片瓦下無寸土 無安身之處 本爲極端貧困義 禪錄用例多謂悟道者蕩盡凡慮俗念 知識情解
양주(揚州) 풍화화상(豐化和尙). 묻되 무엇이 이 적국(敵國)의 일착(一著)의 바둑(碁)입니까. 사왈(師曰) 내려라(下來). 묻되 1방(棒)으로 허공을 타파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일편(一片)을 잡아 오너라. 묻되 위론 한 조각의 기와도 없고 아래론 송곳 세울 땅도 없다면(上無片瓦下無卓錐) 학인이 어느 곳을 향해 서야 합니까. 사왈 표로(飄露; 나부끼며 드러남)하지 않느냐.
●上無片瓦下無卓錐; 뜻이 위로는 편와도 없고 아래론 촌토도 없다(上無片瓦下無寸土)와 같음. 안신(安身)할 곳이 없음. 본래는 극단적으로 빈곤함의 뜻이 되지만 선록의 용례는 다분히, 오도한 자가 범려속념(凡慮俗念)과 지식정해(知識情解)를 탕진함을 이름.
雲居山昭化禪師道簡〈第二世住〉 范陽人也 久入雲居之室 密受眞印 而分掌寺務典司樵爨 以臘高居堂中爲第一座 屬膺和尙將臨順寂 主事僧問 誰堪繼嗣 曰堂中簡 主事僧雖承言而未曉其旨 謂之揀選 乃與衆僧僉議擧第二座爲化主 然且備禮先請第一座 必若謙讓卽堅請第二座焉 時簡師旣密承師記略不辭色 卽自持道具入方丈 攝衆演法 主事僧等不愜素志 罔循規式 師察其情乃棄院潛下山 其夜山神號泣 詰旦主事大衆奔至麥莊 悔過哀請歸院 衆聞山神連聲唱云 和尙來也
운거산(雲居山) 소화선사(昭化禪師) 도간(道簡)〈第二世住〉. 범양(范陽) 사람이며 오래 운거(雲居; 雲居道膺)의 실(室)에 들어가 몰래 진인(眞印)을 받았으며 사무(寺務)를 나누어 관장하며 초찬(樵爨)을 맡았다(典司). 납(臘)이 높은지라 당중(堂中)에서 제1좌가 되었다. 응화상(膺和尙)이 장차 순적(順寂)함에 임(臨)함을 만나자(屬) 주사승(主事僧)이 묻되 누가 계사(繼嗣)를 감당합니까. 가로되 당중(堂中)의 간(簡)이다. 주사승이 비록 승언(承言)했으나 그 의지(意旨)를 깨닫지 못해 이를 일러 간선(揀選)이라 했다. 이에 중승(衆僧)과 다 의논해(僉議) 제2좌를 천거(薦擧; 擧)해 화주(化主; 주지)로 삼았다. 그러나 또 비례(備禮)하여 먼저 제1좌에게 요청하기로 했다. 반드시 만약 겸양하면 곧 제2좌에게 견청(堅請)하리라 했다. 때에 간사(簡師)는 이미 사기(師記)를 밀승(密承)한지라 조금도 사색(辭色; 저본에 辭免으로 지었음)이 없이 곧 도구(道具)를 스스로 가지고 방장에 들어갔다. 대중을 거두어 연법(演法)했으나 주사승 등이 본디의 의지(意志)에 맞지 않았으므로 규식(規式)을 따르지 않았다. 스님이 그 정황(情況)을 살피고 이에 기원(棄院)하고 몰래 하산했다. 그날 밤에 산신(山神)이 호읍(號泣)했다. 힐단(詰旦; 詰은 밝는 아침 힐. 곧 이른 아침)에 주사(主事)와 대중이 달려가 맥장(麥莊)에 이르러 회과(悔過)하며 귀원(歸院)을 애청(哀請)했다. 대중이, 산신이 연성(連聲)으로 창(唱)하며 이르되 화상이 오셨다 함을 들었다.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隨處得自在 問維摩豈不是金粟如來 師曰是 曰爲什麽却預釋迦會下聽法 師曰 他不爭人我 問橫身蓋覆時如何 師曰 還蓋覆得麽 問蛇子爲什麽却吞蛇師 師曰 在裏不傷 問諸聖道不得處 和尙還道得麽 師曰 汝道什麽處諸聖道不得 問路逢猛虎時如何 師曰 千人萬人不逢 偏汝便逢 問孤峯獨宿時如何 師曰 閑著七間僧堂不宿 阿誰敎汝孤峯獨宿 師示滅後 廬州帥張崇施財建石塔於本山 至今存焉
●蛇師; 蠑螈的別名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곳을 따라 자재(自在)를 얻는다. 묻되 유마(維摩)가 어찌 이 금속여래(金粟如來)가 아니겠습니까. 사왈(師曰) 그렇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석가회하(釋迦會下)에 참예(參預)하여 청법(聽法)합니까. 사왈 그는 인아(人我)를 다투지 않는다. 묻되 횡신(橫身)하여 개부(蓋覆)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도리어 개부(蓋覆)함을 얻느냐. 묻되 사자(蛇子; 뱀. 子는 조사)가 무엇 때문에 도리어 사사(蛇師)를 삼킵니까. 사왈 속에 있어도 상(傷)하지 않는다. 묻되 제성(諸聖)이 말함을 얻지 못하는 곳을 화상이 도리어 말함을 얻습니까. 사왈 네가 말하라, 어느 곳을 제성이 말함을 얻지 못하느냐. 묻되 길에서 맹호를 만났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천 인 만 인이 만나지 않거늘 오로지(偏) 너만 바로 만나는구나. 묻되 고봉(孤峯)에서 독숙(獨宿)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7간(間)의 승당(僧堂)을 한적(閑寂)하게 하여(閑著) 숙박하지 않고 누가(阿誰) 너로 하여금 고봉에서 독숙하게 하느냐. 스님이 시멸(示滅)한 후 여주수(廬州帥) 장숭(張崇)이 시재(施財)하여 본산에 석탑을 건립했는데 지금(至今) 존재한다.
●蛇師; 영원(蠑螈; 도롱뇽)의 별명.
廬山歸宗寺懷惲禪師〈第三世住〉 問無佛無衆生時如何 師曰 什麽人如此 問水淸魚現時如何 師曰 把一箇來 僧無對〈同安代云 動卽失〉 問如何是五老峯 師曰 突兀地 問截水停輪時如何 師曰磨不轉 曰如何是磨不轉 師曰 不停輪 問如何是塵中子 師曰 灰頭土面〈同安代云 不拂拭〉 問世尊無說說 迦葉不聞聞事如何 師曰 正恁麽時作麽生 曰不同無聞說 師曰 是什麽人 問學人不到處請師說 師曰 汝不到什麽處來
●突兀; 高聳貌
●灰頭土面; 與拖泥帶水 和光同塵同義 於禪林中 藉以形容修行者悟道之後 爲濟度衆生而甘願投身於群衆之中 不顧塵世之汚濁
여산(廬山) 귀종사(歸宗寺) 회운선사(懷惲禪師)〈第三世住〉. 묻되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은가. 묻되 물이 맑고 고기가 나타날 때 어떻습니까. 사왈 한 개를 잡아 오너라. 중이 대답이 없었다〈同安이 代云 動하면 곧 잃습니다〉. 묻되 무엇이 이 오로봉(五老峯)입니까. 사왈 돌올지(突兀地; 地는 조사)다. 묻되 물을 끊어(截水) 바퀴가 멈출(停輪) 때 어떻습니까. 사왈 맷돌이 돌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맷돌이 돌지 않음입니까. 사왈 바퀴가 멈추지 않음이다. 묻되 무엇이 이 진중(塵中)의 자(子)입니까. 사왈 회두토면(灰頭土面)했다〈同安이 代云 拂拭하지 않았습니다〉. 묻되 세존은 설함 없이 설하고(無說說) 가섭은 들음 없이 듣는(不聞聞)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바로 이러한 때 어떠한가. 가로되 문설(聞說)이 없음과 같지 않습니다. 사왈 이 어떤 사람인가. 묻되 학인 이르지 않은 곳(不到處)을 청컨대 스님이 설하십시오. 사왈 네가 어느 곳에 이르지 않고 왔느냐.
●突兀; 높이 솟은 모양.
●灰頭土面; 타니대수(拖泥帶水)ㆍ화광동진(和光同塵)과 같은 뜻. 선림 중에서 가차(假借; 藉)하여, 수행자가 오도한 후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군중 속으로 투신하여 진세의 오탁을 돌아보지 않음을 달게 원함을 형용.
洪州大善慧海禪師 問不坐靑山時如何 師曰 是什麽人 問如何是解作客底人 師曰不占上 問靈泉忽逢時如何 師曰 從什麽處來 問如何道卽不違於師 師曰 莫惜口 曰道後如何 師曰 道什麽 問如何道得相親去 師曰 快道 曰恁麽卽不道之 師曰 用口作什麽 師後住百丈而終
홍주(洪州) 대선(大善) 혜해선사(慧海禪師). 묻되 청산에 앉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이 어떤 사람인가. 묻되 무엇이 이 객 노릇 할 줄 아는 사람입니까. 사왈 위를 차지하지 않음이다(不占上). 묻되 영천(靈泉)을 홀연히 만났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묻되 어떻게 말해야 곧 스님을 위배하지 않습니까. 사왈 입을 아끼지 말아라. 가로되 말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무어라고 말했는가. 묻되 어떻게 말함을 얻어야 상친(相親)하여 갑니까. 사왈 쾌(快)히 말하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왈 입을 써서 무엇하겠느냐. 스님이 후에 백장(百丈)에 거주하다가 마쳤다.
朗州德山和尙〈第七世住〉 問路逢達道人不將語默對 未審將什麽對 師曰 只恁麽 僧良久 師曰 汝更問 僧再問 師乃喝出
낭주(朗州) 덕산화상(德山和尙)〈第七世住〉. 묻되 길에서 달도(達道)한 사람을 만나면 어묵(語默)을 가지고 상대하지 않는다. 미심하오니 무엇을 가지고 상대합니까. 사왈(師曰) 다만 이러하라(只恁麽). 중이 양구(良久)했다. 사왈 네가 다시 물어라. 중이 다시 묻자 스님이 이에 할(喝)하고 내쫓았다.
衡州南嶽南臺和尙 問直上融峯時如何 師曰見麽
형주(衡州) 남악(南嶽) 남대화상(南臺和尙). 묻되 융봉(融峯)에 바로 오를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보느냐.
雲居山昌禪師〈第三世住〉 問相逢不相識時如何 師曰 旣相逢爲什麽不相識 問紅鑪猛焰時如何 師曰 裏頭是什麽 問不受商量時如何 師曰 來作什麽 曰來亦不商量 師曰 空來何益 問方丈前容身時如何 師曰 汝身大小
●裏頭; 裏邊 事物的內部
운거산(雲居山) 창선사(昌禪師)〈第三世住〉. 묻되 상봉하여도 서로 알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이미 상봉했거늘 무엇 때문에 서로 알지 못하느냐. 묻되 홍로(紅鑪)에 맹염(猛焰)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두(裏頭)에 이 무엇인가. 묻되 상량(商量)을 받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와서 무엇하리오. 가로되 와도 또한 상량하지 않습니다. 사왈 공연히 와서 무슨 이익이리오. 묻되 방장 앞에 몸을 용납(容身)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너의 몸이 큰가(大小).
●裏頭; 이변(裏邊)이니 사물의 내부.
池州嵆山章禪師 曾在投子作柴頭 投子喫茶次謂師曰 森羅萬象總在遮一椀茶裏 師便覆却茶云 森羅萬象在什麽處 投子曰 可惜一椀茶 師後謁雪峯和尙 雪峯問 莫是章柴頭麽 師乃作輪椎勢 雪峯肯之
●柴頭; 禪林職位之一 司掌柴木之供給
지주(池州) 혜산장(嵆山章) 선사. 일찍이 투자(投子)에 있으면서 시두(柴頭)가 되었다. 투자가 끽다(喫茶)하던 차에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이 한 사발의 차 속에 있다. 스님이 바로 차를 엎어버리고 이르되 삼라만상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투자가 가로되 한 사발의 차가 가석(可惜)하구나. 스님이 후에 설봉화상을 참알했다. 설봉이 묻되 이 장시두(章柴頭)가 아닌가. 스님이 이에 망치를 돌리는 자세(輪椎勢)를 지었다. 설봉이 이를 수긍했다.
●柴頭; 선림 직위의 하나. 시목(柴木)의 공급을 사장(司掌; 管掌)함.
晉州大梵和尙 僧問 如何是學人顧望處 師曰 井底竪高樓 曰恁麽卽超然也 師曰 何不擺手
진주(晉州) 대범화상(大梵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학인이 돌아볼 곳입니까. 사왈(師曰) 우물 밑에 고루(高樓)를 세우거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초연(超然)합니다. 사왈 왜 손을 흔들지(擺手) 않느냐.
新羅雲住和尙 問諸佛道不得 什麽人道得 師曰 老僧道得 曰諸佛道不得 和尙作麽生道 師曰 諸佛是我弟子 曰請和尙道 師曰 不對君王 好與二十棒
신라(新羅) 운주화상(雲住和尙). 묻되 제불이 말함을 얻지 못하나니 어떤 사람이 말함을 얻습니까. 사왈(師曰) 노승이 말함을 얻는다. 가로되 제불이 말함을 얻지 못하거늘 화상이 어떻게 말합니까. 사왈 제불이 이 나의 제자다. 가로되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군왕(君王)을 상대하지 않았으니 좋게 20방(棒) 준다.
雲居山懷岳號達空禪師〈第四世住〉 問如何是大圓鏡 師曰 不鑑照 曰忽遇四方八面來怎麽生 師曰 胡來胡現 曰大好不鑑照 師便打 問如何是一丸療萬病底藥 師曰 汝患什麽
●大好; (一)諷刺性地重復對方語句時 前加大好 相當于好一箇 (二)十分 非常 此指(一)
운거산(雲居山) 회악(懷岳) 호 달공선사(達空禪師)〈第四世住〉. 묻되 무엇이 이 대원경(大圓鏡)입니까. 사왈(師曰) 감조(鑑照; 비추다)하지 않는다. 가로되 홀연히 사방팔면에서 옴을 만나면 어떻습니까(怎麽生). 사왈 호래호현(胡來胡現)한다. 가로되 대호(大好) 감조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1환(丸)으로 만병을 치료하는 약입니까. 사왈 너의 질환이 무엇이냐.
●大好; (1). 풍자성지(諷刺性地)에서 상대방의 어구를 중복할 때 앞에 대호(大好)를 더함. 호일개(好一箇)에 상당함. (2). 십분(十分). 비상(非常).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阾珏和尙 問學人不負師機 還免披毛戴角也無 師曰 闍梨也可畏對面不相識 曰恁麽卽吞盡百川水 方明一點心 師曰 雖脫毛衣猶披鱗甲 曰好來和尙具大慈悲 師曰 盡力道 也出老僧格不得
●鱗甲; 泛指一切有鱗和甲的動物
영각화상(阾珏和尙). 묻되 학인이 스님의 기(機)를 저버리지 않으면 도리어 피모대각(披毛戴角)을 면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사리(闍梨)는 대면하여 서로 알지 못함을 가히 두려워해야 하리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백천수(百川水)를 삼켜 없애 바야흐로 일점심(一點心)을 밝힙니다. 사왈 비록 모의(毛衣)를 벗었으나 오히려 인갑(鱗甲)을 입었구나. 가로되 좋게(好來) 화상이 대자비를 갖추셨습니다. 사왈 진력(盡力)하여 말해도 또한 노승의 격(格)을 벗어남을 얻지 못한다.
●鱗甲; 널리 일체 비늘과 껍데기가 있는 동물을 가리킴.
前撫州曹山本寂禪師法嗣
撫州荷玉山玄悟大師光慧 初住龍泉 上堂謂衆曰 雪峯和尙爲人如金翅鳥入海取龍相似 時有僧問 和尙如何 師曰 什麽處去來 問如何是西來的的意 師曰 不禮拜更待何時 問如何是密傳底心 師良久 僧曰 恁麽卽徒勞側耳 師喚侍者云 來燒火著 問古人道 若記一句論劫作野狐精 未審古人意如何 師曰 龍泉僧堂未曾鎖 曰和尙如何 師曰 風吹耳朵 問路逢猛獸時如何 師曰 憨作麽 問如何是聲前一句 師曰 恰似不道 問古人云 如紅鑪上一點雪 意旨如何 師曰 惜取眉毛好 問如何指示卽不昧於時中 師曰 不可雪上更加霜 曰恁麽卽全因和尙去也 師曰 因什麽 問如何履踐卽得不昧於宗風 師曰 須道龍泉好手 曰請和尙好手 師曰却憶鍾期
●金翅鳥; 金翅鳥是印度神話之鳥 同迦樓羅鳥 又作妙翅鳥 於佛敎中 爲八部衆之一 翅翮金色 兩翼廣三十六萬里 住於須彌山下層 此鳥有卵生胎生濕生化生四種 觀海之龍命將盡者 以翅劈海取卵胎濕化之諸龍爲食 [法華文句二下 長阿含經十九 華嚴經探玄記二 俱舍論光記八 慧苑音義上] ▲慧琳音義二十一 迦樓羅 或曰揭路茶 此云食吐悲苦聲也 謂此鳥凡取得龍 先內嗉中 復吐食之時 其龍猶活 此時楚痛出悲苦聲也 或云大嗉項鳥 謂此鳥常貯龍於嗉內 益其項麁也 舊云金翅妙翅者 且就狀而名 非敵對翻也 然其翅有種種寶色 非唯金耳也
●鍾期; 卽鍾子期 比喩知音者
무주(撫州) 하옥산(荷玉山) 현오대사(玄悟大師) 광혜(光慧). 처음 용천(龍泉)에 주(住)했다.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설봉화상이 위인(爲人)함은 마치 금시조(金翅鳥)가 입해(入海)하여 용을 취함과 상사(相似)하다. 때에 어떤 중이 묻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什麽處去來). 묻되 무엇이 이 서래(西來)의 적적(的的; 확실)한 뜻입니까. 사왈 예배하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묻되 무엇이 이 밀전(密傳)한 마음입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도로(徒勞) 귀를 기울였습니다. 스님이 시자를 부르며 이르되 와서 불사르거라(燒火著). 묻되 고인이 말하되 만약 1구라도 기억한다면 논겁(論劫)토록 야호정(野狐精)이 된다. 미심하오니 고인의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용천(龍泉)의 승당(僧堂)은 일찍이 자물쇠를 채우지(鎖) 않았다. 가로되 화상은 어떻습니까. 사왈 바람이 이타(耳朵; 귓불)에 분다. 묻되 길에서 맹수를 만났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리석어 무엇하랴(憨作麽). 묻되 무엇이 이 성전(聲前)의 1구입니까. 사왈 말하지 않음과 흡사하다. 묻되 고인이 이르되 홍로(紅鑪) 위의 한 점 눈과 같다.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눈썹을 아껴야(惜取) 좋으리라. 묻되 어떻게 지시해야 곧 시중(時中)에 매(昧)하지 않습니까. 사왈 설상에 다시 가상(雪上更加霜)함은 옳지 못하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전부 화상을 인(因)합니다. 사왈 무엇을 인하느냐. 묻되 어떻게 이천(履踐)해야 곧 종풍에 매(昧)하지 않음을 얻습니까. 사왈 용천(龍泉)이 호수(好手)라고 꼭 말하거라. 가로되 화상의 호수(好手)를 청합니다. 사왈 도리어 종기(鍾期)를 추억한다.
●金翅鳥; 금시조는 이 인도 신화의 새임. 가루라조(迦樓羅鳥)와 같음. 또 묘시조(妙翅鳥)로 지음. 불교 중에선 8부중의 하나임. 날개죽지가 금색이며 양 날개의 넓이는 36만 리며 수미산 하층에 거주함. 이 새는 난생ㆍ태생ㆍ습생ㆍ화생의 4종이 있음. 바다의 용의 목숨이 거의 마치려는 자를 보고는 날개로 바다를 갈라 난태습화(卵胎濕化)의 여러 용을 취해 먹이로 삼음 [법화문구2하. 장아함경19. 화엄경탐현기2. 구사론광기8. 혜원음의상]. ▲혜림음의21. 가루라(迦樓羅; 梵 garuḍa. 巴 g aruḷa) 혹 가로되 갈로다(揭路茶)니 여기에선 이르되 식토비고성(食吐悲苦聲)이다. 이르자면 이 새가 무릇 용을 취득하면 먼저 모이주머니 속에 넣고 다시 먹이를 토할 때 그 용이 오히려 아직 살았으므로 이때 초통(楚痛: 아프고 괴로움)으로 비고성(悲苦聲)을 낸다. 혹은 이르되 대소항조(大嗉項鳥)니 이르자면 이 새는 늘 용을 모이주머니 속에 저장하므로 그 목을 더해 커진다. 구역에 이른 금시ㆍ묘시란 것은 다만 형상으로 나아가 이름했으며 적대(敵對)의 번역이 아니다. 그러나 그 날개는 갖가지 보색(寶色)이 있으므로 금색 뿐만이 아니다.
●鍾期; 곧 종자기(鍾子期)니 지음자(知音者)에 비유함.
問古人道 生也不道死也不道意如何 師良久 僧禮拜 師曰 會麽 曰不會 師曰 也是厨寒甑足塵 師有時擧拄杖示衆曰 從上皆留此一路方便接人 時有僧出曰 和尙又是從頭起也 師曰 謝相悉 問機關不轉請師商量 師曰 啞得我口麽 問如何是文殊 師曰 不可有第二月也 曰卽今事如何 師曰 正是第二月 問如何是如來語 師曰 猛風可繩縛 問如何是妙明眞性 師曰 寬寬莫搕損 師上堂良久 有僧出曰 爲衆竭力禍出私門 未審放過不放過 師默然 問如何是和尙爲人一句 師曰 汝是九色鹿 問抱璞投師時如何 師曰 不是自家珍 曰如何是自家珍 師曰 不琢不成珍
●從頭; 一一 全部
●禍出私門; 災禍發生 往往是由自家引起的 私 個人的 自己的 與公相對
●九色鹿; 昔有一人爲水漂溺 或出或沒 時有鹿角白如雪 其毛九色 入河救人命得存 後王索此鹿 知者重賞 其人示處 將殺鹿 時其人著癩 王問知其故 不殺鹿 其人乃發心 [九色鹿經]
묻되 고인(古人; 道吾圓智)이 말하되 살았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죽었다고도 말하지 못한다.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중이 예배하자 사왈(師曰)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또한 이 부엌이 추운 증족(甑足)의 티끌이다. 스님이 어떤 때 주장자를 들어 시중(示衆)하며 가로되 종상(從上)에 모두 이 일로(一路)의 방편을 머물러 접인(接人)했다. 때에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화상이 또 이 종두(從頭)하여 일으켰습니다. 사왈 상실(相悉; 다 알다)에 감사한다. 묻되 기관(機關)이 돌지 않으니 스님의 상량(商量)을 청합니다. 사왈 나의 입을 벙어리가 되게 하려느냐. 묻되 무엇이 이 문수(文殊)입니까. 사왈 제2월(第二月)이 있음은 옳지 못하다. 가로되 즉금의 일은 어떻습니까. 사왈 바로 이 제2월이다. 묻되 무엇이 이 여래어(如來語)입니까. 사왈 맹풍(猛風)을 가히 노끈으로 묶는다. 묻되 무엇이 이 묘명(妙明)한 진성(眞性)입니까. 사왈 관관(寬寬; 자꾸 寬大)하고 갑손(搕損; 쳐서 損傷하다)하지 말아라. 스님이 상당하여 양구(良久)했다. 어떤 중이 나와 가로되 대중을 위해 힘을 다해도(竭力) 화가 사문에서 나옵니다(禍出私門). 미심하오니 방과(放過)합니까, 방과하지 않습니까. 스님이 묵연(默然)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1구(句)입니까. 사왈 너는 이 구색록(九色鹿)이다. 묻되 박(璞)을 안고 스님에게 투신(投身)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 자가(自家)의 보배(珍)가 아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자가의 보배입니까. 사왈 쪼지 않으면 보배를 이루지 못한다.
●從頭; 하나하나. 전부.
●禍出私門; 재화(災禍)가 발생함은 왕왕 이는 자가(自家)로 말미암아 인기(引起)하는 것임. 사(私)는 개인적, 자기적이니 공(公)과 상대됨.
●九色鹿; 옛적에 어떤 한 사람이 물에 표류하다가 빠지게 되어 혹은 나오고 혹은 잠겼는데 때에 사슴이 있어 뿔의 희기가 백설 같았으며 그 털은 9색이었다. 강에 들어가 인명을 구제하여 생존함을 얻었다. 후에 왕이 이 사슴을 수색하면서 아는 자는 중상(重賞; 상을 후하게 줌)한다 했다. 그 사람이 거처를 보였고 장차 사슴을 죽이려 하는데 때에 그 사람이 문둥병에 걸렸으며 왕이 물어 그 연고를 알고 사슴을 죽이지 않았으며 그 사람도 이에 발심했다 [구색록경].
筠州洞山道延禪師〈第四世住 時號鹿頭和尙〉 始因曹山和尙垂語云 有一人向萬丈崖頭騰身擲下 此是什麽人 衆皆無對 師出對曰 不存 曹山曰 不存箇什麽 曰始得撲不碎 曹山深肯之 僧問 請和尙密付眞心 師曰 欺者裏無人作麽
균주(筠州) 동산(洞山) 도연선사(道延禪師)〈第四世住. 당시의 호가 鹿頭和尙〉. 처음에(始) 조산화상(曹山和尙)이 수어(垂語)하여 이르되 한 사람이 있어 만장(萬丈)의 애두(崖頭; 낭떠러지. 頭는 조사)를 향해 몸을 솟구쳐(騰身) 던져 떨어뜨린다. 이것이 이 어떤 사람인가. 대중이 모두 대답이 없음으로 인해 스님이 나가서 대답해 가로되 존재하지 않습니다(不存). 조산이 가로되 저(箇) 무엇이 존재하지 않느냐. 가로되 쳐도 부서지지 않음을 비로소 얻습니다. 조산이 깊이 수긍했다. 승문(僧問) 화상에게 청하오니 진심(眞心)을 밀부(密付)하십시오. 사왈 이 속(者裏)을 속이려고 해도 사람이 없음을 어찌하랴.
衡州常寧縣育王山弘通禪師 僧問 混沌未分時如何 師曰 混沌 僧云 分後如何 師曰 混沌 上堂示衆曰 釋迦如來出世四十九年說不到底句 今夜某甲不避羞恥 與諸尊者共譚 師良久云 莫道錯珍重 僧問 學人有病請師醫 師曰 將病來與汝醫 曰便請師醫 師曰 還老僧藥價錢來 問曹源一路卽不問 衡陽江畔事如何 師曰 紅鑪焰上無根草 碧潭深處不逢魚 問心法雙忘時如何 師曰 三脚蝦蟇背大象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老僧毛豎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直待文殊過卽向爾道 曰文殊過也 請和尙道 師便打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渾身不直五分錢 曰太恁貧寒生 師曰 古代如是 曰如何施設 師曰 隨家豐儉
●曹源; 曹溪根源 卽指曹溪慧能
형주(衡州) 상녕현(常寧縣) 육왕산(育王山) 홍통선사(弘通禪師). 승문(僧問) 혼돈(混沌)하여 나뉘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혼돈이다. 승운(僧云) 나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혼돈이다.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석가여래가 출세하여 사십구 년 동안 설하여 이르지 못한 구(句)를 금야(今夜)에 모갑이 수치(羞恥)를 피하지 않고 여러 존자(尊者)와 더불어 함께 이야기 하겠다. 스님이 양구(良久)하고 이르되 틀렸다고 말하지 말아라, 진중(珍重). 승문(僧問) 학인이 병이 있으니 스님의 치료(醫)를 청합니다. 사왈 병을 가지고 온다면 너에게 치료해 주겠다. 가로되 스님의 치료를 바로 청합니다. 사왈 노승에게 약값의 돈을 송환해 오너라. 묻되 조원(曹源)의 일로(一路)는 곧 묻지 않습니다. 형양강반(衡陽江畔)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홍로(紅鑪)의 화염 위의 뿌리 없는 풀이며 벽담(碧潭)의 깊은 곳에서 고기를 만나지 못한다. 묻되 심법(心法)을 쌍망(雙忘)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세 다리의 두꺼비(蝦蟇)가 대상(大象)을 짊어졌다(背).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노승의 털이 선다(毛豎).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바로 문수(文殊)가 이름(過)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가로되 문수가 이르렀습니다.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온몸(渾身)이 오푼전(五分錢)의 가치도 되지 않는다. 가로되 매우 이렇게 빈한합니다(太恁貧寒生; 生은 조사). 사왈 고대(古代)에도 이와 같았다. 가로되 어떻게 시설(施設)합니까. 사왈 집의 풍검(豐儉)을 따른다.
●曹源; 조계 근원이니 곧 조계혜능을 가리킴.
撫州金峯從志號玄明大師 有進上座問 如何是金峯正主 師曰 此去鎭縣不遙 闍梨莫造次 進曰何不道 師曰 口如磉盤 問千峯萬峯如何是金峯 師乃斫額而已 問千山無雲萬里絕霞時如何 師曰 飛猿嶺那邊何不猛吐却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壁邊有鼠耳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金峯門前無五里牌 師後住金陵報恩院入滅 諡圓廣禪師 塔曰歸寂
●口如磉盤; 形容杜口無言之樣子 口重不動以比礎石 磉盤卽柱下石
무주(撫州) 금봉(金峯) 종지(從志) 호 현명대사(玄明大師). 진상좌(進上座)가 있어 묻되 무엇이 이 금봉(金峯)의 정주(正主)입니까. 사왈(師曰) 여기에서 진현(鎭縣)과의 거리(距離; 去)가 멀지(遙) 않으니 사리(闍梨)는 조차(造次; 경솔)하지 말아라. 진(進)이 가로되 왜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왈 입이 상반과 같다(口如磉盤). 묻되 천봉만봉(千峯萬峯)에 무엇이 이 금봉(金峯)입니까. 스님이 이에 작액(斫額)할 따름이었다. 묻되 천산(千山)에 구름이 없고 만 리에 노을이 끊겼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비원령(飛猿嶺) 나변(那邊; 저쪽)에서 왜 세차게(猛) 토해버리지 않느냐.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벽 가에 서이(鼠耳)가 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금봉(金峯)의 문 앞에 오리패(五里牌)가 없다. 스님이 후에 금릉(金陵) 보은원(報恩院)에 주(住)하다가 입멸했다. 시호가 원광선사(圓廣禪師)며 탑왈(塔曰) 귀적(歸寂)이다.
●口如磉盤; 입을 닫고 말이 없는 양자(樣子; 모양)를 형용. 입이 무거워 움직이지 않음을 초석(礎石)에 비교함이니 상반(磉盤)은 곧 기둥 아래의 돌임.
襄州鹿門山華嚴院處眞禪師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有鹽無醋 問如何是道人 師曰 有口似鼻孔 曰忽遇客來時將何秖對 師曰 柴門草戶謝汝經過 問祖祖相傳是什麽物 師曰 金襴袈裟 問如何是函中般若 師曰 佛殿挾頭六百卷 問和尙百年後向什麽處去 師曰 山下李家作〈有本作使〉牛去 曰還許學人相隨也無 師曰 汝若相隨莫同頭角 曰諾 師曰 合到什麽處 曰佛眼辨不得 師曰 若不放過亦是茫茫 問如何是鹿門高峻處 師曰 汝曾上主山也無 問如何是禪 師曰 鸞鳳入鷄籠 曰如何是道 師曰 藕絲牽大象 問劫壞時此箇還壞也無 師曰 臨崖覷虎眼 特地一場愁 問如何是和尙轉身處 師曰 昨夜三更失却枕子 問一句下豁然時如何 師曰 汝是誰家生 師有一偈 示衆曰 一片凝然光燦爛 擬意追尋卒難見 炳然擲著豁人情 大事分明皆總辦 是快活無繫絆 萬兩黃金終不換 任他千聖出頭來 從是向渠影中現
●金襴袈裟; 金縷織成之袈裟 又曰金色衣 金色㲲衣 黃金㲲衣 金縷袈裟 印度早已行之 佛母大愛道 上之於釋尊 其因緣散見諸經論
●主山; 中國歷代營造宮室時 槪以北方吉相而高 南方較低 故北方之山爲主山 南方之山則稱案山 由此 寺院以後山(卽北方之山)稱爲主山 又有以主山案山代表主客之關係 於禪林中 乃以主山騎案山一語 表示主客一如之境界 又以主山高案山低一語 表示主客之差別世界
●藕絲; 折斷蓮花梗與地下莖 牽連之絲狀物
양주(襄州) 녹문산(鹿門山) 화엄원 처진선사(處眞禪師).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소금은 있으나 초(醋)가 없다. 묻되 무엇이 이 도인(道人)입니까. 사왈 입이 있으나 콧구멍과 흡사하다. 가로되 홀연히 객이 옴을 만났을 때 무엇을 가지고 지대(秖對; 응대)합니까. 사왈 시문초호(柴門草戶)가 너의 경과(經過)에 감사한다. 묻되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함은 이 무슨 물건입니까. 사왈 금란가사(金襴袈裟)다. 묻되 무엇이 이 함중(函中)의 반야(般若)입니까. 사왈 불전(佛殿)의 협두(挾頭; 挾冊. 頭는 조사)가 6백 권이다. 묻되 화상이 백 년 후에 어느 곳을 향해 갑니까. 사왈 산 아래 이가(李家)에 소가 되어(作)〈어떤 本엔 使로 지었다〉 간다. 가로되 학인이 상수(相隨)함을 도리어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네가 만약 상수하려면 두각(頭角)이 같지 말아야 한다. 가로되 낙(諾; 예). 사왈 합당히 어느 곳에 이르느냐. 가로되 불안(佛眼)이라도 분변함을 얻지 못합니다. 사왈 만약 방과(放過)하지 않는다면 역시(亦是) 망망(茫茫)하다. 묻되 무엇이 이 녹문(鹿門)의 고준처(高峻處)입니까. 사왈 네가 일찍이 주산(主山)에 올랐느냐 또는 아니냐. 묻되 무엇이 이 선(禪)입니까. 사왈 난봉(鸞鳳)이 계롱(鷄籠)에 들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우사(藕絲)로 대상(大象)을 견인(牽引)한다. 묻되 겁(劫)이 괴(壞)할 때 이것(此箇)은 도리어 괴(壞)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임애(臨崖)하여 호안(虎眼)을 엿보니 특지(特地) 한바탕 근심이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전신처(轉身處)입니까. 사왈 어젯밤 3경(更)에 베개(枕子)를 잃어버렸다. 묻되 1구(句) 아래 활연(豁然)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너는 이 누구 집에서 출생했느냐. 스님이 1게가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일편(一片)이 응연(凝然)하여 빛이 찬란(燦爛)하나니/ 의의(擬意; 思慮)하여 추심(追尋)하면 마침내 보기 어렵다/ 병연(炳然; 환한 모양)히 던져버리면(擲著) 인정(人情)이 뚫리나니(豁)/ 대사(大事)가 분명하여 모두 다 판별(判別; 辦)한다/ 이는 쾌활하여 계반(繫絆; 묶임)이 없나니/ 만량(萬兩)의 황금으로도 마침내 바꾸지 못한다/ 저 천성(千聖)이 출두하여 옴에 맡기더라도/ 이로 좇아(從是; 여러 선록에 總是로 지었음) 거(渠)의 영중(影中)을 향해 나타난다.
●金襴袈裟; 금실로 짜서 이룬 가사임. 또 가로되 금색의ㆍ금색첩의ㆍ황금첩의ㆍ금루가사. 인도에서 일찍 이미 이를 행했으니 불모 대애도(大愛道)가 석존에게 바쳤음. 그 인연은 여러 경론에 가끔 보임.
●主山; 중국에서 역대에 궁실(宮室)을 영조(營造)할 때 대개 북방이 길상이면서 높고 남방은 조금 낮은지라 고로 북방의 산을 주산(主山)으로 삼고 남방의 산은 곧 일컬어 안산(案山)이라 했음. 이로 말미암아 사원도 후산(後山; 곧 북방의 산)을 일컬어 주산이라 했음. 또 주산과 안산으로 주객의 관계를 대표함이 있음. 선림 중에선 곧 주산이 안산을 탔다(騎)라는 1어(語)로 주객일여(主客一如)의 경계를 표시함. 또 주산은 높고 안산은 낮다 라는 1어로 주객의 차별세계를 표시함.
●藕絲; 연화의 줄기와 지하의 줄기를 절단(折斷)하매 견련(牽連)하는 사상(絲狀)의 물질.
撫州曹山慧霞了悟大師〈第二世住 先住荷玉山〉 問 佛未出世時如何 師曰 曹山不如 曰佛出世後如何 師曰 不如曹山 問四山相逼時如何 師曰 曹山在裏許 曰還求出也無 師曰 若在裏許卽求出 僧侍立 師曰 道者可殺炎熱 曰是 師曰 只如炎熱向什麽處迴避得 曰向鑊湯鑪炭裏迴避 師曰 只如鑊湯鑪炭 作麽生迴避得 曰衆苦不能到 師默置
●炎熱; 猶炎暑 氣候極熱 指溫度高
무주(撫州) 조산혜하(曹山慧霞) 요오대사(了悟大師)〈第二世住 먼저 荷玉山에 住했다〉. 묻되 부처가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조산(曹山)이 같지 못하다(不如). 가로되 부처가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조산만 같지 못하다. 묻되 사산(四山)이 상핍(相逼)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조산이 이허(裏許; 裏邊)에 있다. 가로되 도리어 나오기를 구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만약 이허에 있다면 곧 나오기를 구한다. 중이 시립(侍立)했다. 사왈 도자(道者)야, 가히 매우 염열(炎熱)하구나. 가로되 그렇습니다. 사왈 지여(只如) 염열(炎熱)에 어느 곳을 향해 회피함을 얻느냐. 가로되 확탕노탄(鑊湯鑪炭) 속을 향해 회피합니다. 사왈 지여(只如) 확탕노탄에 어떻게 회피함을 얻느냐. 가로되 중고(衆苦)가 능히 이르지 못합니다. 스님이 묵치(默置; 묵연)했다.
●炎熱; 염서(炎暑)와 같음. 기후가 극히 더움. 온도가 높음을 가리킴.
衡州華光範禪師 問如何是無縫塔 師指僧堂曰 此間僧堂無門戶 師問僧曾到紫陵無 曰曾到 師曰 曾到鹿門無 曰曾到 師曰嗣紫陵卽是 嗣鹿門卽是 曰卽今嗣和尙得麽 師曰 人情不打卽不可 問非隱現是學人 阿那箇是和尙 師曰 盡乾坤 曰此猶是學人 阿那箇是和尙 師曰 適來道不錯
형주(衡州) 화광범(華光範) 선사.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스님이 승당(僧堂)을 가리키며 가로되 차간(此間)의 승당은 문호(門戶)가 없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일찍이 자릉(紫陵)에 이르렀느냐 아니냐. 가로되 일찍이 이르렀습니다. 사왈 일찍이 녹문(鹿門)에 이르렀느냐 아니냐. 가로되 일찍이 이르렀습니다. 사왈 자릉을 잇는(嗣) 게 곧 옳으냐, 녹문을 잇는 게 곧 옳으냐. 가로되 즉금 화상을 이음을 얻겠습니까. 사왈 인정(人情)을 치지 않으면(不打) 곧 옳지 못하다. 묻되 은현(隱現)이 아닌 게 이 학인입니다. 어느 것(阿那箇)이 이 화상입니까. 사왈 온 건곤이다. 가로되 이것은 오히려 이 학인입니다. 어느 것이 이 화상입니까. 사왈 적래(適來)에 말이 틀리지 않았다.
處州廣利容禪師〈先住貞谿〉 有僧新到 師擧拂子曰 貞谿老師還具眼麽 曰某甲不敢見人過 師曰 死在闍梨手裏也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謝闍梨道破 問西院拍手笑噓噓意作麽生 師曰 卷上簾子著 問自己不明如何明得 師曰 不明 曰爲什麽不明 師曰 不見道自己事 問魯祖面壁意作麽生 師良久曰 還會麽 曰不會 師曰 魯祖面壁 因郡守受代歸 師出送接 話次郡守問 和尙遠出山門 將什麽物來 師曰 無盡之寶呈獻 太守無對 後有人進語曰 便請 師曰 太守尊嚴 問千途路絕語思不通時如何 師曰 猶是階下漢 師謂衆曰 若來到廣利門下 須道得第一句 卽開一線道與兄弟商量 時有僧出禮拜 師曰 將謂是異國舶主 元來是此郡商人
처주(處州) 광리용(廣利容) 선사〈먼저 貞谿에 住했다〉. 어떤 중이 신도(新到)했다. 스님이 불자를 들고 가로되 정계(貞谿) 노사(老師)가 도리어 눈을 갖췄느냐. 가로되 모갑은 감히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습니다. 사왈(師曰) 사리(闍梨)의 손안에 죽어 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사리가 말해 깨뜨림(道破)에 감사한다. 묻되 서원(西院)이 박수(拍手)하고 허허(噓噓) 웃은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발(簾子; 子는 조사)을 걷어 올려라. 묻되 자기를 밝히지 못했으니 어찌해야 밝힘을 얻습니까. 사왈 밝히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밝히지 못합니까. 사왈 자기사(自己事)라고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 묻되 노조(魯祖)가 면벽한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도리어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노조의 면벽이다. 군수(郡守)가 수대(受代; 交代를 받음)하고 돌아감으로 인해 스님이 출송(出送)하여 접대(接對)했다. 화차(話次)에 군수가 묻되 화상이 산문을 멀리 나왔으니 무슨 물건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사왈 무진지보(無盡之寶)를 정헌(呈獻)합니다. 태수(太守)가 대답이 없었다. 후에 어떤 사람이 말을 진행해 가로되 바로 청합니다. 사왈 태수가 존엄(尊嚴)합니다. 묻되 천도(千途)의 길이 끊어져 어사(語思)가 통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오히려 이 계하한(階下漢)이다.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만약 광리문하(廣利門下)에 내도(來到)했다면 모름지기 제1구를 말해 얻어야 곧 일선도(一線道)를 열어 형제와 더불어 상량(商量)하리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예배했다. 사왈 장차 이르기를 이 이국(異國)의 박주(舶主)라 하렸더니 원래 이 차군(此郡)의 상인(商人)이로구나.
泉州廬山小谿院行傳禪師 靑原人也 姓周氏 本州石鍾院出家 福州太平寺受戒 自曹山印可而居小谿 僧問 久嚮廬山石門 爲什麽入不得 師曰 鈍漢 曰忽逢猛利者還許也無 師曰喫茶去
천주(泉州) 여산(廬山) 소계원(小谿院) 행전선사(行傳禪師). 청원(靑原) 사람이며 성이 주씨(周氏)다. 본주(本州) 석종원(石鍾院)에서 출가했고 복주(福州) 태평사에서 수계했다. 조산(曹山)이 인가(印可)함으로부터 소계(小谿)에 거주했다. 승문(僧問) 여산(廬山)의 석문(石門)을 구향(久嚮)했는데 무엇 때문에 들어감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둔한(鈍漢)아. 가로되 홀연히 맹리(猛利)한 자를 만나면 도리어 허가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차 먹고 가게.
西川布水巖和尙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一迴思著一傷心 問寶劍未磨時如何 師曰 用不得 曰磨後如何 師曰 觸不得
서천(西川) 포수암(布水巖) 화상.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일회(一迴) 생각하면(思著) 한 번 상심(傷心)한다. 묻되 보검을 갈지 않은 때 어떻습니까. 사왈 씀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닿음을 얻지 못한다.
蜀川西禪和尙 問佛是摩耶降 未審和尙是誰家子 師曰 水上卓紅旗 問三十六路阿那箇一路最妙 師曰 不出第一手 曰忽被出頭時如何 師曰 脊著地也不難
●摩耶; 又作摩訶摩耶 摩訶摩邪 意譯大幻化 大術 妙 卽釋尊之生母 迦毘羅衛城淨飯王之妃 臨産前 依時俗 返回娘家待産 途中於其父天臂城主須菩提之別宮藍毘尼園 休息時 生下釋尊 七日後逝世 據傳其死後生於忉利天 釋尊曾於某夏 昇至忉利天 爲其母說法 [雜阿含經十九 中阿含經八未曾有法 長阿含經四遊行經 增一阿含經二十八]
촉천(蜀川) 서선화상(西禪和尙). 묻되 부처는 이 마야(摩耶)에게서 강생(降生)했습니다. 미심하오니 화상은 이 뉘집의 아들입니까. 사왈(師曰) 수상(水上)에 홍기(紅旗)를 세웠다(卓). 묻되 삼십육로(三十六路)에 어느 것(阿那箇)의 일로(一路)가 가장 묘합니까. 사왈 제일수(第一手)를 벗어나지 않는다. 가로되 홀연히 출두함을 입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등마루(脊)가 착지(著地)함이 또한 어렵지 않다.
●摩耶; 또 마하마야(摩訶摩耶; 梵 Mahāmāyā)ㆍ마하마야(摩訶摩邪)로 지음. 의역으론 대환화(大幻化)ㆍ대술(大術)ㆍ묘(妙)니 곧 석존의 생모며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 정반왕(淨飯王)의 왕비임. 산전(産前)에 임하자 시속(時俗; 당시의 풍속)에 의해 낭가(娘家; 친정)로 돌아가 출산을 기다리려고 했음. 도중에 그의 부친 천비성주(天臂城主) 수보리의 별궁인 람비니원(藍毘尼園; 梵 lumbinī)에서 휴식할 때 석존을 출생했으며 7일 후에 세상을 떠났음. 전(傳)에 의거하자면 그가 사후에 도리천에 태어났고 석존이 일찍이 어느 여름에 올라가 도리천에 이르러 그 모친을 위해 설법했음 [잡아함경19. 중아함경8미증유법. 장아함경4유행경. 증일아함경28].
華州草菴法義禪師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爛炒浮漚飽滿喫 問擬心卽差動念卽乖 學人如何進道 師曰 有人常擬爲什麽不差 曰卽今事如何 師曰 早成差也
화주(華州) 초암(草菴) 법의선사(法義禪師).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뜬 거품을 데치고 볶아 배부르게(飽滿) 먹었다. 묻되 의심(擬心)하면 곧 어긋나고 동념(動念)하면 곧 어그러집니다. 학인이 어떻게 도로 나아갑니까(進道). 사왈 어떤 사람은 늘 헤아리거늘(擬) 무엇 때문에 어긋나지 않느냐. 가로되 즉금의 일은 어떻습니까. 사왈 벌써 어긋남을 이루었다.
韶州華嚴和尙 問旣是華嚴還將得來麽 師曰 孤峯頂上千華秀 一句當機對聖明 問如何是道 師曰 靈樹無橫枝 天機道合同
●聖明; 聖君之聰明
소주(韶州) 화엄화상(華嚴和尙). 묻되 이미 이 화엄(華嚴)이니 도리어 가지고(將得) 오셨습니까. 사왈(師曰) 고봉정상(孤峯頂上)에 천화(千華)가 빼어나니 1구(句)가 당기(當機)하여 성명(聖明)에 대(對)했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영수(靈樹)는 횡지(橫枝)가 없고 천기(天機)의 도는 합동(合同)한다.
●聖明; 성군의 총명.
前潭州龍牙山居遁禪師法嗣
潭州報慈藏嶼匡化大師 僧問 心眼相見時如何 師曰 向汝道什麽 問如何是實見處 師曰 絲毫不隔 曰恁麽卽見也 師曰 南泉甚好去處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昨夜三更送過江 問臨機便用時如何 師曰 海東有果樹頭心 問如何是眞如佛性 師曰 阿誰無 問如何是向上一路 師曰 郴連道永 問 和尙年多少 師曰 秋來黃葉落 春到便開花 師嘗著眞贊曰 日出連山 月圓當戶 不是無身 不欲全露 一日師在帳內坐 僧問 承師有言 不是無身不欲全露 請師全露 師乃撥開帳〈法眼別云 飽叢林〉
●飽叢林; 謂長期於禪林中參禪辨道 與少叢林相對 又長期從事參禪修業者 亦稱飽叢林 或稱舊參 老參 久參
●眞贊; 猶眞讚 圖畵坐貌謂眞也
담주(潭州) 보자(報慈; 報慈院) 장서(藏嶼) 광화대사(匡化大師). 승문(僧問) 심안(心眼; 마음과 눈)이 상견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너를 향해 무어라고 말하더냐. 묻되 무엇이 이 진실한 견처(實見處)입니까. 사왈 실터럭(絲毫; 저본에 絲豪로 지었음)만큼도 막히지 않았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견(見)입니다. 사왈 남천(南泉)이 거처가 심히 좋다(甚好去處).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어젯밤 3경에 전송해 강에 이르렀다(送過江). 묻되 임기(臨機)하여 바로 쓸 때 어떻습니까. 사왈 해동(海東)에 과수두(果樹頭; 頭는 조사)의 마음이 있다. 묻되 무엇이 이 진여불성입니까. 사왈 누군들(阿誰) 없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향상일로(向上一路)입니까. 사왈 침련의 길이 멀다(郴連道永). 묻되 화상은 나이가 얼마입니까. 사왈 가을이 오면 황엽이 떨어지고 봄이 이르면(到) 바로 꽃을 피운다. 스님이 일찍이 진찬(眞贊)을 지어 가로되 해가 나와 산에 잇닿았고/ 달이 둥글어 지게(戶)에 당했다/ 이, 몸이 없음이 아니라/ 전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음이다. 어느 날 스님이 장내(帳內)에 앉았는데 승문(僧問) 듣건대(承) 스님이 말씀이 있기를 이, 몸이 없음이 아니라 전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음이다. 스님의 전로(全露)를 청합니다. 스님이 이에 장막을 헤쳐 열었다〈法眼이 別云 飽叢林이로구나〉.
●飽叢林; 이르자면 장기간 총림 중에서 참선변도(參禪辨道)했음이니 소총림(少叢林)과 상대됨. 또 장기간 참선에 종사하며 수업한 자도 또한 일컬어 포총림 혹은 호칭이 구참(舊參)ㆍ노참(老參)ㆍ구참(久參)임.
●眞贊; 진찬(眞讚)과 같음. 도화(圖畵)의 좌모(坐貌)를 일러 진(眞)이라 함.
問如何是湖南境 師曰 樓船戰櫂 曰還許學人遊翫也無 師曰 一任闍梨打僜 問和尙百年後 有人問如何秖對 師曰 分明記取 問如何是龍牙山 師曰 益陽那邊 曰如何卽是 師曰 不擬 曰如何是不擬去 師曰 恁麽卽不是 問古人面壁意如何 師良久却喚某甲 學人應諾 師曰 爾去別時來 師垂語曰 一句遍大地 一句才問便道 一句問亦不道 問如何是遍大地句 師曰 無空缺 如何是才問便道句 師曰 低聲低聲 如何是問亦不道句 師曰 便合知時
●樓船; 中國古代戰船 因船高首寬 外觀似樓 而得名
●益陽; 明一統志六十三湖廣長沙府曰 益陽縣在府城西北二百里
묻되 무엇이 이 호남(湖南)의 경계(境界)입니까. 사왈(師曰) 누선(樓船)과 전도(戰櫂; 戰船)다. 가로되 학인이 유완(遊翫; 노닐며 구경함)함을 도리어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사리(闍梨)가 오르는대로(打僜) 일임한다. 묻되 화상의 백 년 후에 어떤 사람이 물으면 어떻게 지대(秖對)해야 합니까. 사왈 분명히 기취(記取)하라. 묻되 무엇이 이 용아산(龍牙山)입니까. 사왈 익양(益陽)의 나변(那邊)이다. 가로되 어찌해야 곧 옳습니까. 사왈 헤아리지 않음이다(不擬). 가로되 어찌해야 이 헤아리지 않습니까. 사왈 이러하다면 곧 옳지 않다. 묻되 고인이 면벽한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가 도리어 모갑을 불렀다. 학인이 응낙했다. 사왈 네가 갔다가 다른 때 오너라. 스님이 수어(垂語)하여 가로되 1구는 대지에 두루하고 1구는 겨우 물으면 바로 말하고 1구는 물으면 또한 말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대지에 두루한 구입니까. 사왈 공결(空缺)함이 없다. 무엇이 이 겨우 물으면 바로 말하는 구입니까. 사왈 소리를 낮추어라, 소리를 낮추어라. 무엇이 이 물으면 또한 말하지 않는 구입니까. 사왈 바로 합당히 때를 알아라.
●樓船; 중국의 고대 전선(戰船). 배가 높고 머리가 넓으며 외관이 누각과 비슷함으로 인해 이름을 얻었음.
●益陽; 명일통지63 호광 장사부(長沙府)에 가로되 익양현은 부성(府城) 서북 2백 리에 있다.
襄州含珠山審哲禪師 僧問 如何是深深處 師曰 寸釘入木八牛拽不出 問如何是正法眼 師曰 三門前神子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貧女抱子渡 恩愛競隨流 師問僧曰 有亦不是 無亦不是 不有不無俱不是 汝本來名箇什麽 曰學人已具名了 師曰 具名卽不無名箇什麽 曰只遮莫便是否 師曰 且喜沒交涉 曰如何卽是 師曰 親切處更請一問 曰學人道不得請和尙道 師曰 別日來與汝道 曰卽今爲什麽不道 師曰 覓箇領話人不可得 師又問一僧曰 姓王姓張姓李俱不是 汝本來姓什麽 曰與和尙同姓 師曰 同姓卽且從 本來姓箇什麽 曰待漢水逆流卽向和尙道 師曰 卽今爲什麽不道 曰漢水逆流也未 師乃休
●漢水; 中國中部的一條河 長江最長支流 發源於陝西南部米倉山 流經陝西南部及湖北 在武漢入長江 全長一五三二公里 [百度漢語]
양주(襄州) 함주산(含珠山) 심철선사(審哲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심심처(深深處)입니까. 사왈(師曰) 한 치의 못이 나무에 들어가면 8우(牛)로 끌어도 나오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사왈 삼문(三門) 앞의 신자(神子; 子는 조사)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빈녀(貧女)가 아들을 안고 건너니 은애(恩愛)가 다투어 흐름을 따른다. 스님이 중에게 물어 가로되 유(有)도 또한 옳지 않으며 무(無)도 또한 옳지 않으며 불유불무(不有不無)도 모두 옳지 않다. 너의 본래의 이름이 이(箇) 무엇인가. 가로되 학인이 이미 이름을 갖추었습니다. 사왈 이름을 갖춤은 곧 없지 않으나 이름이 이 무엇인가. 가로되 다만 이것이(遮)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다만 교섭이 없음을 기뻐한다(且喜沒交涉). 가로되 어찌해야 곧 옳습니까. 사왈 친절처(親切處)를 다시 일문(一問)을 청하라. 가로되 학인은 말함을 얻지 못하오니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다른 날 온다면 너에게 말해 주겠다. 가로되 즉금은 무엇 때문에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왈 저 영화(領話; 話를 領會)하는 사람을 찾으매 가히 얻지 못한다. 스님이 또 1승에게 물어 가로되 성이 왕(王), 성이 장(張), 성이 이(李)는 모두 옳지 못하다. 너의 본래의 성이 무엇이냐. 가로되 화상과 동성(同姓)입니다. 사왈 동성은 곧 다만 좇겠지만 본래 성은 이 무엇인가. 가로되 한수(漢水)가 역류(逆流)함을 기다렸다가 곧 화상을 향해 말하겠습니다. 사왈 즉금은 무엇 때문에 말하지 않느냐. 가로되 한수가 역류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이에 쉬었다.
●漢水; 중국 중부의 한 줄기 하(河)니 장강(長江) 최장의 지류(支流). 섬서 남부 미창산에서 발원하여 섬서 남부 및 호북을 유경(流經)하여 무한(武漢)에서 장강으로 들어감. 전장(全長) 1,532㎞ [백도한어].
前京兆華嚴寺休靜禪師法嗣
鳳翔府紫陵匡一定覺大師 師到盤龍見僧問盤龍云 碧潭淸似鏡 盤龍何處安 龍曰 沈沙不見底 浮浪足巑岏 師不肯 自答曰 金剛迴透靑霄外 潭中豈曉玉輪機 盤龍肯之 師住後僧問曰 未作人身已前作箇什麽來 師曰 石牛步步水中行 返顧休銜日中草
봉상부(鳳翔府) 자릉(紫陵) 광일(匡一) 정각대사(定覺大師). 스님이 반룡(盤龍)에 이르러 보매 중이 반룡에게 물어 이르되 벽담(碧潭)의 맑기가 거울과 같은데 반룡(盤龍)이 어느 곳에 안정(安定)합니까. 반룡이 가로되 잠긴 모래(沈沙)는 바닥이 보이지 않고 뜬 파랑은 찬완(巑岏; 산이 높은 모양)에 더한다(足). 스님이 불긍(不肯)하고 스스로 답왈(答曰) 금강(金剛; 금강신)은 청소(靑霄; 푸른 하늘) 밖을 돌아 투출(透出)하거늘 담중(潭中)에 어찌 옥륜(玉輪)의 기(機)를 깨닫겠는가(曉). 반룡이 수긍했다. 스님이 주후(住後)에 중이 문왈(問曰) 인신(人身)을 짓지 아니한 이전에 저(箇) 무엇을 지어 왔습니까. 사왈(師曰) 석우(石牛)는 걸음걸음 수중(水中)을 다니는데 반고(返顧; 돌아보다)하며 일중(日中)의 풀을 묾을 쉬었다.
前筠州九峯普滿大師法嗣
洪州鳳棲山同安院威禪師 僧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路邊神廟子 見者盡擎拳 曰見後如何 師曰 室內無靈床 渾家不著孝 問祖意敎意如何 師曰 玉兔不曾知曉意 金烏爭肯夜頭明 問如何是同安一曲 師曰 靈琴不引人間韻 知音豈度伯牙門 曰誰人知得 師曰 木馬嘶時從彼聽 石人拊掌阿誰聞 曰知音如何 師曰 知音不度耳 達者豈同聞
●靈床; 指入殮前停放屍體的床鋪等 語出後漢書張奐傳 措屍靈牀 幅巾而已 [百度百科]
●夜頭; 夜間 晩上
홍주(洪州) 봉서산(鳳棲山) 동안원(同安院) 위선사(威禪師). 승문(僧問)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노변(路邊)의 신묘자(神廟子; 子는 조사)를 보는 자가 모두 주먹을 받든다(擎拳).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실내에 영상(靈床)이 없어 온 집(渾家)이 효복(孝服)을 입지 않는다(不著孝).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어떻습니까. 사왈 옥토(玉兔)가 일찍이 새벽의 뜻을 알지 못하거늘 금오(金烏)가 어찌 야두(夜頭)의 밝음을 긍정하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동안(同安)의 일곡(一曲)입니까. 사왈 영금(靈琴)은 인간의 운(韻)을 당기지 않거늘 지음(知音)이 어찌 백아(伯牙)의 문(門)에 건너겠는가(度). 가로되 어떤 사람(誰人)이 지득(知得)합니까. 사왈 목마가 울 때 그로 좇아 듣거니와 석인이 손뼉 치매 누가(阿誰) 듣는가. 가로되 지음(知音)은 어떻습니까. 사왈 지음은 귀에 건너지(度) 않거늘 달자(達者)가 어찌 함께 듣겠는가.
●靈床; 입렴(入殮; 시체를 관에 넣는 일)하기 전에 시체를 정방(停放; 안치)하는 상포(床鋪; 나무로 만든 상) 등을 가리킴. 말이 후한서 장환전(張奐傳)에 나옴. 시체를 영상(靈牀)에 두고 폭건(幅巾; 머리에 쓰는 건)할 따름이다 했음 [백도백과].
●夜頭; 야간. 만상(晩上; 夜裏).
前靑林師虔禪師〈洞山第三世住〉法嗣
韶州龍光和尙 僧問 人王與法王相見時如何 師曰 越國君王不按劍 龍光一句不曾虧 師上堂良久云 不煩珍重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胡風一扇漢地成機 問撥塵見佛時如何 師拊掌顧視 問如何是龍光一句子 師曰 不空羂索 曰學人不會 師曰唵 問如何是極則爲人處 師曰 慇懃付囑後人看 問賓頭盧一身爲什麽赴四天下供 師曰 千江同一月 萬戶盡逢春 師有偈曰 龍光山頂寶月輪 照耀乾坤爍暗雲 尊者不移元一質 千江影現萬家春
●唵; <梵> oṃ 胎藏界之陀羅尼冠曩莫之語 金剛界之陀羅尼冠唵之語 祕藏記末曰 唵字有五種義 一歸命 二供養 三驚覺 四攝伏 五三身
●賓頭盧; <梵> Piṇḍola 又作賓頭盧頗羅墮誓 賓頭盧頗羅墮 賓度羅跋羅墮闍 賓頭盧突羅闍 爲佛弟子 十六羅漢之一 永住於世 現白頭長眉之相 賓頭盧爲名 譯作不動 跋羅墮闍爲姓 譯作利根 捷疾 重瞳 爲婆羅門十八姓之一 師原爲優塡王輔相之子 年少出家學道 證得阿羅漢果 有神通 曾以顯神通於世人之前 受佛陀呵責 不許住於閻浮提 令至西瞿耶尼洲施化 後雖聽還 而不許其入於涅槃 使永住於南天之摩梨山度化衆生 [雜阿含經二十三 同四十三 十誦律三十七 四分律五十一 大智度論二十六 阿育王傳三]
소주(韶州) 용광화상(龍光和尙). 승문(僧問) 인왕(人王)과 법왕(法王)이 상견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월국(越國)의 군왕(君王)이 검을 어루만지지 않고 용광(龍光)의 1구(句)는 일찍이 이지러지지 않았다. 스님이 상당해 양구(良久)하고 이르되 번거롭게 하지 않겠다. 진중(珍重)하라.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호풍(胡風)이 한 번 부채질하자 한지(漢地)에 기(機)를 이루었다. 묻되 티끌을 헤쳐 부처를 볼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손뼉 치고 돌아보았다. 묻되 무엇이 이 용광(龍光)의 1구자(句子; 子는 조사)입니까. 사왈 불공견삭(不空羂索)이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옴(唵). 묻되 무엇이 이(是; 補入) 극칙(極則)으로 위인(爲人)하는 곳입니까. 사왈 은근(慇懃)히 후인(後人)에게 부촉(付囑)하나니 보아라. 묻되 빈두로(賓頭盧)의 일신(一身)이 무엇 때문에 사천하(四天下; 下字 補入)의 공양에 다다랐습니까. 사왈 천강(千江)에 동일(同一)한 달이니 만호(萬戶)가 모두 봄을 만났다.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용광(龍光) 산정(山頂)의 보배 월륜(月輪)이/ 건곤을 조요(照耀)하며 암운(暗雲)을 녹였다(爍)/ 존자가 원래의 일질(一質)을 옮기지 않고/ 천강(千江)에 그림자를 나타내니 만가(萬家)가 봄이다.
●唵; <범> oṃ. 태장계(胎藏界)의 다라니의 으뜸 낭모(曩莫)의 말이며 금강계의 다라니의 으뜸 옴(唵)의 말임. 비장기말에 가로되 옴자(唵字)는 5종의 뜻이 있다. 1은 귀명이며 2는 공양이며 3은 경각이며 4는 섭복(攝伏)이며 5는 3신(身)이다.
●賓頭盧; <범> Piṇḍola. 또 빈두로파라타서ㆍ빈두로파라타ㆍ빈두로발라타사(賓度羅跋羅墮闍; 梵 Piṇḍola–bhāradvāja)ㆍ빈두로돌라사로 지음. 불타의 제자가 되며 16라한의 하나. 영원히 세상에 거주하며 흰 머리에 긴 눈썹의 형상을 나타냄. 빈두로(賓頭盧)는 이름이 되고 번역하면 부동(不動)으로 지으며 발라사타(跋羅墮闍)는 성이 되고 번역하면 이근(利根)ㆍ첩질(捷疾)ㆍ중동(重瞳)이 됨. 바라문 18성(姓)의 하나가 됨. 스님은 원래 우전왕의 보상(輔相)의 아들이 되며 연소할 적에 출가하여 학도했고 아라한과를 증득했으며 신통이 있었음. 일찍이 신통을 세인들의 앞에서 나타낸지라 불타의 가책(呵責)을 받아 염부제에 거주함을 불허했고 서구야니주에 이르러 교화를 베풀게 했음. 후에 비록 귀환을 청허했으나 그에게 열반에 듦을 허락하지 않고 남천축의 마리산(摩梨山)에 영주하며 중생을 도화(度化)하게 했음 [잡아함경23, 동43. 십송률37. 사분율51. 대지도론26. 아육왕전3].
襄州鳳凰山石門寺獻禪師 京兆人也 自靑林受記兩處開法 凡對機多云好好大哥 時謂大哥和尙 初居衡嶽宴坐巖室 屬夾山和尙歸寂 衆請師住持 師遂至潭州 時楚王馬氏出城延接 王問 如何是祖師西來大道 師曰 好好大哥 御駕六龍千古秀 玉堦排仗出金門 王仰重延入天冊府供養數日 方至夾山坐道場 僧問 今日一會何異靈山 師曰 天垂寶蓋重重異 地湧金蓮葉葉新 曰未審將何法示人 師曰 無絃琴韻流沙界 淸和普應大千機 問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一曲宮商看品弄 辨寶須知碧眼胡 曰恁麽卽淸流分洞下 滿月照靑林 師曰 多子塔前分的意 至今異世度洪音
●宮商; 宮商角徵羽五音之略
●碧眼胡; 碧眼胡僧 原指西域印度等地來的碧眼僧人 於禪林 則專稱初祖達磨大師 略稱碧眼 碧眼胡
●多子塔; <梵> Bahuputraka-caitya 祖庭事苑八 多子塔 辟支論(辟支佛因緣論下)曰 王舍城大長者 財富無量 生育男女各三十人 適行游觀 到一林間 見人斫於大樹 枝柯條葉 繁美茂盛 使多象挽 不能令出 次斫一小樹 無諸枝柯 一人獨挽都無滯㝵 見是事已 卽說偈言 我見伐大樹 枝葉極繁多 稠林相鈎挂 無由可得出 世間亦如是 男女諸眷屬 愛憎繫縛心 於生死稠林 不可得解脫 小樹無枝柯 稠林不能㝵 觀彼覺悟我 斷絶於親愛 於生死稠林 自然得解脫 卽於彼處得辟支佛 以至現通入滅 時諸眷屬爲造塔廟 時人因名多子塔
양주(襄州) 봉황산(鳳凰山) 석문사(石門寺) 헌선사(獻禪師). 경조(京兆) 사람이다. 청림(靑林)에서 수기(受記)함으로부터 두 곳에서 개법(開法)했다. 무릇 대기(對機)하면서 많이 이르되 호호대가(好好大哥)라 했고 당시에 이르기를 대가화상(大哥和尙)이라 했다. 처음 형악(衡嶽)에 거주하며 암실(巖室)에서 연좌(宴坐)했는데 협산화상(夾山和尙)이 귀적(歸寂)함을 당해(屬) 대중이 스님을 주지로 청했다. 스님이 드디어 담주(潭州)에 이르자 때에 초왕(楚王) 마씨(馬氏)가 출성(出城)하여 연접(延接)했다. 왕이 묻되 무엇이 이 조사가 서래한 대도(大道)입니까. 사왈(師曰) 호호대가(好好大哥)여, 어가(御駕)의 육룡(六龍)이 천고(千古)에 빼어난데 옥계(玉堦)에 배장(排仗; 儀仗을 排列)하여 금문(金門; 궁궐문)을 나서셨습니다. 왕이 앙중(仰重)하며 천책부(天冊府)로 연입(延入)하여 며칠 공양했고 비로소 협산에 이르러 도량(道場)에 앉았다. 승문(僧問) 금일의 일회(一會)가 어찌 영산(靈山)과 다르겠습니까. 사왈 하늘이 보개(寶蓋)를 드리우니 중중(重重)으로 다르고 땅이 금련(金蓮)을 솟구치니(湧) 엽엽(葉葉)이 새롭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떤 법을 가지고 시인(示人)하겠습니까. 사왈 무현금(無絃琴)의 운(韻)이 사계(沙界)에 흐르는데 청화(淸和)가 대천(大千)의 기(機)에 보응(普應)한다. 묻되 스님은 뉘집의 곡조를 창(唱)하며 종풍은 누구에게 이었습니까. 사왈 일곡(一曲)의 궁상(宮商)은 품격을 보며 희롱하나니 보배를 분변하려면 벽안호(碧眼胡)를 꼭 알아야 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청류(淸流)가 동하(洞下)에 나뉘고 만월(滿月)이 청림(靑林)을 비춥니다. 사왈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적의(的意; 진실한 뜻)를 분부(分付)하여 지금(至今)의 이세(異世)에 홍음(洪音)을 건넨다(度).
●宮商; 궁ㆍ상ㆍ각ㆍ치ㆍ우, 5음의 약칭.
●碧眼胡; 벽안호승(碧眼胡僧)이니 원래 서역이나 인도 등의 지역에서 온 벽안의 승인을 가리키지만 선림에선 곧 오로지 초조 달마대사를 일컬음. 약칭이 벽안ㆍ벽안호.
●多子塔; <범> Bahuputraka-caitya. 조정사원8. 다자탑(多子塔) 벽지론(벽지불인연론하)에 가로되 왕사성의 대장자(大長者)가 재물이 풍부하여 무량하였으며 아들과 딸 각 30인을 낳아 길렀다. 마침 가서 유관(游觀)하다가 한 임간(林間)에 이르러 사람들이 대수(大樹)를 쪼갬을 보았다. 지간(枝柯)와 조엽(條葉)이 번미(繁美)하고 무성했으며 많은 코끼리를 시켜 당겼으나 능히 발출하게 하지 못했다. 다음에 한 소수(小樹)를 쪼개는데 모든 지가(枝柯)가 없어 한 사람이 홀로 당겨도 도대체 체애(滯㝵)가 없었다. 이 일을 보고는 곧 게를 설해 말하되 내가 대수를 벌목함을 보매/ 지엽이 극히 번다하고/ 조림(稠林; 稠는 빽빽할 조)이 서로 구괘(鈎挂)하여/ 가히 득출(得出)할 인유가 없다/ 세간도 또한 이와 같아서/ 남녀의 모든 권속이/ 애증으로 마음을 계박하여/ 생사의 조림에서/ 가히 해탈을 얻지 못한다/ 소수는 지가(枝柯)가 없어/ 조림이 능히 장애치 않나니/ 그것을 보다가 나를 각오하여/ 친애를 단절하고/ 생사의 조림에서/ 자연히 해탈을 얻었다. 곧 그곳에서 벽지불을 얻었으며 따라서(以) 신통을 나타내고 입멸함에 이르렀다. 때에 모든 권속이 위하여 탑묘를 조성했는데 당시의 사람이 인하여 다자탑이라 이름했다.
師自夾山遷至石門 開山創寺再闡玄風 上堂示衆曰 瑠璃殿上光輝之日 日無私 七寶山中晃耀之頭 頭有據 泥牛運步木馬嘶聲 野老謳歌樵人舞袖 太陽路上古曲玄音 林下相逢復有何事 僧問 月生雲際時如何 師曰 三箇童兒抱華鼓 好好大哥 莫來攔我毬門路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騎駿馬驟高樓 鐵鞭指盡胡人路 問如何是石門境 師曰 遍界黃金無異色 往來遊子罷追尋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無相不居凡聖位 經行鳥道沒蹤由 問衆手淘金誰是得者 師曰 張三李四出金門 遍握乾坤石人在 曰恁麽卽不從人得也 師曰 三公九卿排班位 看取金雞豎也無 問道界無窮際 通身絕點痕時如何 師曰 渺渺白雲漫雪岳 轉身玄路莫遲遲 曰未審轉身路在什麽處 師曰 石人擧手分明記 萬年枯骨笑時看 問如如不動時如何 師曰 有什麽了日 曰如何卽是 師曰 石戶非關鎖 問如何是石門境 師曰 烏鳶飛叫頻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風射舊簾櫳 因般若寺遭焚 有人問曰 旣是般若爲什麽被火燒 師曰 萬里一條鐵
●華鼓; 又作花鼓 有花紋的鼓
●三公九卿; 三公是中國古代最尊顯的三個官職的合稱 周代已有此詞 西漢今文經學家據尙書大傳 禮記等書 以爲三公指司馬司徒司空 古文經學家則據周禮 以爲太傅太師太保爲三公 西漢初承秦制 輔佐皇帝治國者 主要是丞相和御史大夫 另有最高軍事長官太尉 但不常置 從武帝時起 因受經學影響 丞相御史大夫和太尉 也被稱爲三公 西漢時九卿是列卿或衆卿之意 先秦文獻中有三公九卿之說 但秦西漢初 不見九卿名稱 僅武帝以後由於儒家復古思想的影響 人們就以秩爲中二千石一類的高官附會成古代九卿 [百度百科]
스님이 협산(夾山)으로부터 옮겨 석문(石門)에 이르렀고 개산(開山)하고 창사(創寺)하여 현풍(玄風)을 재천(再闡)했다.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유리전상(瑠璃殿上)에 광휘(光輝; 빛나다)하는 날에 해가 무사(無私)하고 칠보산중(七寶山中)에 황요(晃耀; 밝게 빛남)하는 첫머리(頭)에 머리가 유거(有據; 근거가 있음)하다. 이우(泥牛)는 걸음을 옮기고 목마는 소리지르고(嘶聲) 야로(野老)는 구가(謳歌; 노래하다)하고 초인(樵人)은 무수(舞袖)한다. 태양(太陽)의 노상(路上)에 고곡(古曲)의 현음(玄音)인데 임하(林下)에서 상봉하매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승문(僧問) 달이 구름 가에 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세 개의 동아(童兒; 아동)가 화고(華鼓)를 안고서, 호호대가(好好大哥)여, 나의 구문(毬門)의 길을 막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준마(駿馬)를 타고 고루(高樓)로 달려 철편(鐵鞭)으로 호인(胡人)의 길을 가리켜 다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석문경(石門境)입니까. 사왈 온 세계(遍界)가 황금이라 다른 색이 없고 왕래하는 유자(遊子)가 추심(追尋)함을 그만둔다(罷).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무상(無相)은 범성(凡聖)의 지위(地位)에 거처하지 않고 조도(鳥道)를 경행(經行)하면서 종유(蹤由)가 없다. 묻되 중수(衆手)가 금을 일면(淘)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 장삼이사(張三李四)가 금문(金門)을 나서서 건곤을 두루 쥐매 석인(石人)이 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사람으로 좇아 얻음이 아닙니다. 사왈 삼공구공(三公九卿)이 반위(班位)를 배치(排置)했나니 금계(金雞)를 간취(看取)하라, 섰느냐(豎) 또는 아니냐. 묻되 도계(道界)는 무궁한 변제(邊際)며 온몸(通身)에 점흔(點痕)이 끊겼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묘묘(渺渺; 아득한 모양)한 백운이 설악(雪岳)에 가득한데(漫) 현로(玄路)로 전신(轉身)하며 지지(遲遲)하지 말아라. 가로되 미심하오니 전신(轉身)하는 길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석인(石人)이 거수(擧手)하니 분명히 기억하고 만 년의 고골(枯骨)이 웃을 때 보아라. 묻되 여여(如如)하여 부동(不動)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무슨 깨칠 날(了日)이 있으랴. 가로되 어찌해야 곧 옳습니까. 사왈 석호(石戶)를 빗장으로 잠그지 않았다(非關鎖). 묻되 무엇이 이 석문경(石門境)입니까. 사왈 까마귀와 솔개가 날며 부르짖음이 잦다(叫頻).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바람이 옛 염롱(簾櫳; 발과 창살문)을 쏜다. 반야사(般若寺)가 불탐을 만남으로 인해 어떤 사람이 문왈(問曰) 이미 이 반야이거늘 무엇 때문에 불에 탐을 입었습니까. 사왈 만 리에 한 가닥의 철(鐵)이다.
●華鼓; 또 화고(花鼓)로 지음. 화문(花紋)이 있는 북.
●三公九卿; 3공(公)은 이 중국 고대 가장 존현(尊顯; 지위가 높고 이름이 드러남)한 3개의 관직의 합칭임. 주대(周代)에 이미 이 말이 있었음. 서한(西漢)의 금문경학가(今文經學家)는 상서대전(尙書大傳) ㆍ예기 등의 서책에 근거하여 사마(司馬)ㆍ사도(司徒)ㆍ사공(司空)을 가리켜 3공으로 삼고 고문경학가(古文經學家)는 곧 주례에 근거하여 태부(太傅)ㆍ태사(太師)ㆍ태보(太保)를 3공으로 삼음. 서한 초 진제(秦制)를 계승하여 황제를 보좌하여 나라를 다스린 자에 주요한 이는 이 승상(丞相)과 어사대부(御史大夫)였고 따로 최고 군사장관인 태위(太尉)가 있었는데 다만 상치(常置)하지는 않았음. 무제(武帝) 때로부터 일어나 경학의 영향을 받음으로 인해 승상ㆍ어사대부ㆍ태위가 또한 3공으로 호칭됨을 입었음. 서한(西漢) 때 9경(卿)은 이 열경(列卿) 혹 중경(衆卿)의 뜻이었음. 선진(先秦)의 문헌 중에 3공9경(三公九卿)의 설이 있으나 단지 진(秦)ㆍ서한초(西漢初)엔 9경의 명칭이 보이지 않고 겨우 무제 이후에 유가(儒家)의 복고사상(復古思想)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바로(就) 질(秩; 祿俸. 관직)이 2천석(二千石) 가운데가 되는 1류(類)의 고관(高官)을 부회(附會; 말이나 이론을 억지로 끌어다 붙임)하여 고대의 9경으로 이루었음 [백도백과].
襄州萬銅山廣德和尙〈第一世住〉 僧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山前人不住 山後更茫茫 問如何是透法身句 師曰 無力登山水 茅戶絕知音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始嗟黃葉落 又見柳條靑 問盡大地是一箇死屍 向什麽處葬 師曰 北邙山下千丘萬丘 師因不安 僧問和尙患箇什麽太羸瘦生 師曰 無思不墜的 曰恁麽卽知和尙病源也 師曰 爾道老僧患什麽 曰和尙忌口好 師便打
●北邙山; 位於河南省洛陽市北 黃河南岸 是秦嶺山脈的餘脈 崤山支脈 北邙山 又名北芒 邙山 北山 平逢山 太平山 郟山 海拔三百米左右 東西橫亘數百里 [百度百科]
양주(襄州) 만동산(萬銅山) 광덕화상(廣德和尙)〈第一世住〉.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산 앞엔 사람이 거주하지 않고 산 뒤엔 다시 망망(茫茫)하다. 묻되 무엇이 이 법신을 투과하는 구입니까. 사왈 산수(山水)에 오를 힘이 없고 모호(茅戶)엔 지음(知音)이 끊겼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바야흐로(始) 황엽(黃葉)이 떨어짐을 차탄(嗟歎)했는데 또 유조(柳條)의 푸름을 본다. 묻되 온 대지가 이 일개의 사시(死屍)니 어느 곳을 향해 안장(安葬)합니까. 사왈 북망산(北邙山) 아래 천구만구(千丘萬丘)다. 스님이 불안(不安; 병환을 가리킴)함으로 인해 승문(僧問) 화상은 저(箇) 무슨 질환으로 매우 이수합니까(羸瘦生; 파리하다. 生은 조사). 사왈 추락하지 않는 것을 사유함이 없다(無思不墜的).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화상의 병원(病源)을 알겠습니다. 사왈 네가 말하라, 노승이 무슨 질환이냐. 가로되 화상은 기구(忌口)해야 좋을 것입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北邙山; 하남성 낙양시 북방, 황하의 남안에 위치함. 이것은 진령산맥의 여맥(餘脈)인 효산(崤山)의 지맥(支脈)임. 북망산은 또 명칭이 북망(北芒)ㆍ망산ㆍ북산ㆍ평봉산ㆍ태평산ㆍ겹산. 해발 300m 좌우며 동서로 수백 리 가로 뻗혔음 [백도백과].
郢州芭蕉和尙 問十二時中如何用心 師曰 攏摠一木盆
영주(郢州) 파초화상(芭蕉和尙). 묻되 12시 중에 어떻게 용심(用心)합니까. 사왈 하나의 목분(木盆)을 농총(攏摠; 쥐어 總括하다. 저본에 櫳樬으로 지었음)하라.
定州石藏慧炬和尙 問如何是伽藍 師曰 只遮箇 曰如何是伽藍中人 師曰 作麽作麽 曰忽遇客來將何秖待 師曰 喫茶去
●秖待; 應待 秖 與秪祇用同
정주(定州) 석장(石藏) 혜거화상(慧炬和尙). 묻되 무엇이 이 가람(伽藍)입니까. 사왈 다만 이것이다(遮箇). 가로되 무엇이 이 가람 중의 사람입니까. 사왈 무어라고(作麽), 무어라고. 가로되 홀연히 객이 옴을 만나면 무엇을 가지고 지대(秖待)합니까. 사왈 차 먹고 가게.
●秖待; 응대(應待) 지(秖)는 지(秪)ㆍ지(祇)와 용이 같음.
前洛京白馬遁儒禪師法嗣
興元府靑剉山和尙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無底籃子拾生菜 問如何是白馬境 師曰 三冬華木秀 九夏雪霜飛
흥원부(興元府) 청좌산(靑剉山) 화상.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바닥 없는 광주리에 생채(生菜)를 거둔다(拾). 묻되 무엇이 이 백마경(白馬境)입니까. 사왈 삼동(三冬)에 화목(華木)이 빼어나고 구하(九夏)에 설상(雪霜)이 난다(飛).
前益州北院通禪師法嗣
京兆香城和尙 初參通和尙問 一似兩箇時如何 通曰 一箇賺汝 師乃省悟 僧問 三光景色謝照燭事如何 師曰 朝邑峯前卓五彩 曰不涉文彩事作麽生 師曰 如今特地過江來 問向上一路請師擧唱 師曰 釣絲鉤不出 問牛頭還得四祖意否 師曰 沙書不點落千字 曰下點後如何 師曰 別將一撮俵人天 曰恁麽卽人人有分也 師曰 汝又作麽生 問囊無繫螘之絲 厨絕聚蠅之糝時如何 師曰 日捨不求思從妄得
●沙書; 一種技藝表演 其法用手撮細沙或石粉揮灑成字 能表現出一定的風格
경조(京兆) 향성화상(香城和尙). 통화상(通和尙)을 초참(初參)하여 묻되 하나가 두 개와 흡사할 때 어떻습니까. 통왈(通曰) 한 개가 너를 속인다(賺). 스님이 이에 성오(省悟)했다. 승문(僧問) 삼광(三光)의 경색(景色)이 조촉(照燭)을 그만두는(謝)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조읍봉(朝邑峯) 앞에 오채(五彩)를 세웠다(卓). 가로되 문채(文彩)에 건너지 않는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여금에 특지(特地; 특별) 강을 지나 왔다. 묻되 향상일로(向上一路)를, 스님의 거창(擧唱)을 청합니다. 사왈 낚싯줄에서 갈고리가 나오지 않았다. 묻되 우두(牛頭)가 도리어 4조의 뜻을 얻었습니까. 사왈 사서(沙書)는 떨어뜨리지(點) 않아도 천자(千字)가 떨어진다. 가로되 떨어뜨린(下點)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따로 한 움큼(一撮) 가져서 인천(人天)에 나누어 준다(俵).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사람마다 분한이 있습니다. 사왈 너는 또 어떠한가. 묻되 주머니에 개미를 묶을 실이 없고 부엌에 파리를 모를 쌀알(糝)이 끊겼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날마다 버려서 구하지 말아야 하나니 사상(思想)은 허망으로 좇아 얻는다.
●沙書; 일종의 기예(技藝)의 표연(表演). 그 방법은 손을 사용하여 세사(細沙)나 혹 석분(石粉)을 움켜쥐어 휘두르며 뿌려서 글자를 이룸. 능히 일정한 풍격(風格)을 표현해 냄.
前高安白水本仁禪師法嗣
京兆重雲智暉禪師 咸秦人也 姓高氏 總角之歲好遊佛宇 誓志出家父不能止 禮圭峯溫和尙剃度 後謁高安仁和尙 獨領微言潛通祕鍵 尋迴洛卜于中灘 創溫室院常施藥 有比丘患白癩衆惡之 惟師延迎供養與摩洗垢穢 斯須有神光異香 旣而辭去遂失所在 所遺瘡痂馨香酷烈 遂聚而塑觀音像以藏之 梁開平五年忽思林泉 乃歸終南圭峯舊居 師一日閑步 巖岫間倏覩摩衲數珠銅甁椶笠 觸之卽壞 謂侍者曰 此吾前身道具耳 欲就茲建寺以醻昔因 當薙草開基有祥雲蔽日 屯于峯頂久而不散 因目爲重雲山 先是谷多猛獸皆自引去 及塞龍潭以通徑 潭中龍亦徙他所 後唐明宗賜額曰長興 學侶臻萃
●總角; 古時少兒男未冠 女未笄時的髮型 頭髮梳成兩個髮髻 如頭頂兩角 後代稱兒童時期
경조(京兆) 중운(重雲) 지휘선사(智暉禪師). 함진(咸秦) 사람이며 성이 고씨(高氏)다. 총각(總角)의 나이에 불우(佛宇; 佛寺)를 유람하기 좋아했고 출가를 서지(誓志; 서원을 발하며 뜻을 세움)했고 부친이 능히 저지(沮止)하지 못했다. 규봉온(圭峯溫) 화상을 예알하여 체도(剃度)했고 후에 고안인(高安仁) 화상을 참알해 홀로 미언(微言)을 영회(領會)했고 비건(祕鍵)을 몰래 통했다. 이윽고 낙(洛)으로 돌아가 중탄(中灘)을 간택(卜)해 온실원(溫室院)을 창건했고 늘 약을 베풀었다. 어떤 비구가 백라(白癩)의 질환으로 대중이 싫어했는데 오직 스님만 연영(延迎; 불러들여 맞이함)하여 공양했고 구예(垢穢)를 마세(摩洗)해 주었다. 사수(斯須; 잠시)에 신광(神光)과 이향(異香)이 있었고 이미 그러고선 고별하고 떠났는데 드디어 소재(所在)를 잃었다. 남긴 바 창가(瘡痂; 헌데딱지)는 형향(馨香)이 혹렬(酷烈)했고 드디어 모아서 관음상을 빚어(塑) 그것을 저장했다. 양(梁) 개평(開平) 5년(911) 홀연히 임천(林泉)을 생각하고 이에 종남산 규봉(圭峯)의 구거(舊居)로 돌아갔다. 스님이 어느 날 한가히 걷는데 바위굴(巖岫) 사이에서 갑자기 마납(摩衲)ㆍ수주(數珠; 염주)ㆍ동병(銅甁)ㆍ종립(椶笠)을 보았는데 접촉하자 곧 부서졌다. 시자에게 일러 가로되 이것은 나의 전신(前身)의 도구(道具)일 뿐이다. 여기로 나아가 건사(建寺)하여 석인(昔因)에 보답(醻)하고자 한다. 풀을 깎고 개기(開基)함에 당해 상운(祥雲)이 있어 해를 가렸고 봉정(峯頂)에 주둔(駐屯)하면서 오래 흩어지지 않은지라 인하여 중운산(重雲山)으로 명목(名目)했다. 이에 앞서 골짜기에 맹수가 많았는데 모두 스스로 인솔해 떠났고 및 용담(龍潭)을 메워 길을 통하자 담중(潭中)의 용도 또한 다른 곳으로 옮겼다. 후당(後唐) 명종(明宗)이 사액(賜額)해 가로되 장흥(長興)이라 했고 학려(學侶)가 진췌(臻萃; 모이다)했다.
●總角; 옛 시절 소아(少兒)의 남자가 미관(未冠; 20세 미만)이거나 여자가 미계(未笄; 미성년. 笄는 비녀) 때의 발형(髮型). 두발을 빗질하여 두 개의 발계(髮髻; 상투 머리)를 이룸이 머리 꼭대기의 두 뿔과 같음. 후대에 아동 시기를 일컬었음.
師上堂有僧問 如何是歸根得旨 師曰 早是忘却 問不意塵生 如何是進身一路 師曰 足下已生草 前程萬丈坑 問要路坦然如何履踐 師曰 我若指汝則東西南北去也 問佛未出世時如何 師曰 一堆泥土 問如何是重雲稱 師曰 任將天下勘 問如何是截鐵之言 師曰 寧死不犯 問如何是重雲境 師曰四時不開華 三冬盛芳草 師再歸故山創寺聚徒 涉四十五年 誨人之暇撰歌頌千餘首 度弟子一千五百人 永興節度使王彦超 早遊師戶庭嘗欲披緇 師止之曰 汝後當榮顯爲敎門外護則可矣 厥後果如師言 及鎭永興與師再會益加尊禮 周顯德三年丙辰夏六月 師詣府辭王公 屬以山門事 至七月二十四日體中無恙 垂誡門人倂示一偈曰 我有一間舍 父母爲修蓋 住來八十年 近來覺損壞 早擬移住處 事涉有憎愛 待他摧毀時 彼此無相礙 趺坐而逝 壽八十有四 臘六十四 塔于本山
●榮顯; 榮華顯貴
●無恙; 禪林疏語考證二 神異經曰 北方有獸曰㺊 㺊恙也 黃帝殺之 由是人無憂疾 謂之無恙
스님이 상당하자 어떤 중이 묻되 어찌해야 이 귀근(歸根)하여 득지(得旨)합니까. 사왈(師曰) 벌써 이 망각했다. 묻되 티끌이 생겨남을 뜻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이 이 진신(進身)의 일로(一路)입니까. 사왈 발 아래 이미 풀이 났고 앞 노정(路程)에 만 장(丈)의 구덩이다. 묻되 요로(要路)가 탄연(坦然)한데 어떻게 이천(履踐)해야 합니까. 사왈 내가 만약 너에게 지시하면 곧 동서남북으로 가리라. 묻되 부처가 출세하지 아니한 때 어떻습니까. 사왈 한 무더기의 진흙(泥土)이다. 묻되 무엇이 이 중운(重雲)의 저울(稱)입니까. 사왈 가져다 천하에서 감험(勘驗)하는 대로 일임한다. 묻되 무엇이 이 절철지언(截鐵之言)입니까. 사왈 차라리 죽더라도 범하지 않겠다. 묻되 무엇이 이 중운경(重雲境)입니까. 사왈 사시(四時)에 개화(開華)하지 않고 삼동(三冬)에 방초(芳草)가 성하다. 스님이 다시 고산(故山)으로 돌아가 창사(創寺)하고 취도(聚徒)했고 45년을 지났다(涉). 사람들을 가르치는(誨) 여가(餘暇)에 가송(歌頌) 천여수(千餘首)를 지었고 제자 1천5백 인을 득도(得度)시켰다. 영흥절도사(永興節度使) 왕언초(王彦超)가 스님의 호정(戶庭)에 일찍 노닐다가 일찍이 피치(披緇)하려고 하자 스님이 그것을 저지하며 가로되 너는 후에 마땅히 영현(榮顯)하리니 교문(敎門)의 외호(外護)가 됨이 곧 옳다. 그 후에 과연 스님의 말과 같았다. 영흥(永興)을 진수(鎭守)함에 이르러(及) 스님과 재회(再會)했고 더욱 존례(尊禮)를 더했다. 주(周) 현덕(顯德) 3년 병진(丙辰; 956) 하(夏) 6월 스님이 부(府)로 나아가 왕공(王公)에게 고별하며 산문(山門)의 일을 부촉(付囑)했다. 7월 24일에 이르자 몸 속에 무양(無恙)했고 문인(門人)에게 수계(垂誡)하고 아울러 1게를 보여 가로되 나에게 일간(一間)의 집이 있는데/ 부모가 수개(修蓋; 修建)하였다/ 거주한 지 8십 년인데/ 근래에 손괴(損壞)를 느낀다/ 일찍 주처(住處)를 옮기려고 했지만/ 사정(事情)이 증애(憎愛)가 있음에 건넜다/ 그것이 최훼(摧毀)될 때를 기다릴지니/ 피차 서로 장애가 없으리라. 부좌(趺坐)하고 떠났으니 나이는 84며 납은 64며 본산에 탑을 세웠다.
●榮顯; 영화(榮華)와 현귀(顯貴; 地位가 드러나게 높음).
●無恙; 선림소어고증2. 신이경(神異經)에 가로되 북방에 짐승이 있으니 가로되 양(㺊)이다. 양(㺊)이 양(恙; 근심. 병)이었다. 황제(黃帝)가 그것을 죽였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우질(憂疾)이 없어졌으니 이를 일러 무양(無恙)이라 한다.
杭州瑞龍院幼璋禪師 唐相國夏矦孜之猶子也 大中初伯父司空出鎭廣陵 師方七歲遊慧照寺 聞諷蓮經志求出家 伯父初不允 因絕不飮食 不得已而許之 禮慧遠爲師 十七具戒 二十五遊諸禪會 薯山白水咸受心訣 二宗匠深器之 咸通十三年至江陵 會騰騰和尙囑之曰 汝往天台尋靜而棲遇安卽止 又値憨憨和尙撫而記曰 汝却後四十年 有巾子山下菩薩 王於江南 當此時吾道昌矣 二逸士各有密言授之 尋抵天台山於靜安鄕創福唐院 乃契騰騰之言 又衆請住隱龍院 中和四年浙東饑疫 師於溫台明三郡 收瘞遺骸數千 時謂悲增大士 乾寧中雪峯和尙經遊 遺師椶櫚拂子而去 天祐三年錢尙父遣使童建 齎衣服香藥入山致請 師領徒至府庭 署志德大師 就功臣堂安置 日親問法 師請每年於天台山建金光明道場 諸郡黑白大會逾月而散〈光明大會始於師也〉 師將辭歸山 王加戀慕於府城建瑞龍院〈文穆王改爲寶山院〉延請開法 時禪門興盛 斯則憨憨懸記應矣
●猶子; 兄弟之子
●錢尙父: 卽錢鏐(852-932) 五代十國時期 吳越國的創建者 後梁郢王朱友圭弑父篡位 隨卽尊錢鏐爲尙父
항주(杭州) 서룡원(瑞龍院) 유장선사(幼璋禪師). 당 상국(相國) 하후자(夏矦孜)의 유자(猶子)다. 대중(大中; 847-860) 초 백부(伯父) 사공(司空)이 광릉(廣陵)으로 출진(出鎭; 나가서 鎭守)했는데 스님은 바야흐로 7세였고 혜조사(慧照寺)를 유람했다. 연경(蓮經; 연화경)을 외움(諷)을 듣고 뜻(志)에 출가를 구했다. 백부가 처음엔 윤허(允許)하지 않았으나 단절해 음식(飮食)하지 않음으로 인해 부득이하여 허락했다. 혜원(慧遠)을 예알해 스승으로 삼았고 17에 구계(具戒)했고 25에 여러 선회(禪會)에 노닐었다. 서산(薯山)과 백수(白水)에게서 모두(咸) 심결(心訣)을 받았는데 두 종장(宗匠)이 깊이 법기로 여겼다. 함통(咸通) 13년(872) 강릉에 이르렀는데 마침(會) 등등화상(騰騰和尙)이 부촉해 가로되 너는 천태로 가서 정(靜)을 찾아 쉬고(棲) 안(安)을 만나면 곧 머물러라(止). 또 감감화상(憨憨和尙)을 만났는데(値) 어루만지며 기(記; 예언)하여 가로되 너는 도리어 40년 후에 건자산(巾子山; 山字 보입) 아래의 보살이 있어 강남(江南)에서 왕 노릇을 하리니 이때에 당해 오도(吾道; 우리의 도)가 창성(昌盛)하리라. 두 일사(逸士)가 각자 밀언(密言)이 있어 그에게 주었다. 이윽고 천태산에 다다라 정안향(靜安鄕)에 복당원(福唐院)을 창건했으니 등등(騰騰)의 말에 계합했다. 또 대중의 청으로 은룡원(隱龍院)에 주(住)했다. 중화(中和) 4년(884) 절동(浙東)이 기역(饑疫; 굶주림과 疫病)이었는데 스님이 온태명(溫台明) 3군(郡)에서 유해(遺骸) 수천(數千)을 거두어 묻었으며(瘞) 당시에 이르기를 비증대사(悲增大士)라 했다. 건녕(乾寧; 894-898) 중 설봉화상이 경유(經遊; 경력하며 遊方)하다가 스님에게 종려불자(椶櫚拂子)를 남기고(遺) 떠났다. 천우(天祐) 3년(906) 전상부(錢尙父)가 사자(使者) 동건(童建)을 보내어 의복과 향약(香藥)을 가지고(齎) 입산하여 치청(致請; 청함)했다. 스님이 도중(徒衆)을 거느리고 부정(府庭)에 이르자 지덕대사(志德大師)로 서(署; 署號)했고 곧(就) 공신당(功臣堂)에 안치했고 날마다 친근하면서 문법(問法)했다. 스님이 청하여 매년 천태산에 금광명도량(金光明道場)을 건립했고 제군(諸郡)의 흑백(黑白; 승속)이 대회(大會)하여 달을 넘기고서야 흩어졌다〈光明大會는 스님에서 비롯했다〉. 스님이 이에(將) 고별하고 귀산(歸山)하려 하자 왕이 연모(戀慕)를 더하면서 부성(府城)에 서룡원(瑞龍院)을 건립해〈文穆王이 고쳐 寶山院이라 했다〉 연청(延請)하여 개법(開法)했으니 당시에 선문이 흥성했다. 이것(斯)은 곧 감감(憨憨)의 현기(懸記; 예언)에 부응(符應)했다.
●猶子; 형제의 아들.
●錢尙父: 곧 전류(錢鏐; 852-932)니 오대십국 시기 오월국(吳越國)의 창건자. 후량(後梁) 영왕(郢王) 주우규(朱友圭)가 시부(弑父)하고 찬위(篡位)했고 곧바로 전류(錢鏐)를 존칭해 상부(尙父)라 했음.
師上堂謂衆曰 老僧頃年遊歷江外嶺南荊湖 但有知識叢林無不參問來 蓋爲今日與諸人聚會 各要知箇去處 然諸方終無異說 只敎當人歇却狂心休從他覓 但隨方任眞亦無眞可任 隨時受用亦無時可用 設垂慈苦口 且不可呼晝作夜 更饒善巧 終不能指東爲西 脫或能爾 自是神通作怪非干我事 若是學語之輩 不自省己知非 直欲向空裏采華波中取月 還著得心力麽 汝今各且退思忽然肯去 始知瑞龍老漢事不獲已迂迴太甚 還肯麽 時有僧問 如何是瑞龍境 師曰 汝道不見得麽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後生可畏 問廓然無雲 如何是中秋月 師曰 最好是無雲 曰恁麽卽一輪高掛萬國同觀去也 師曰 揑目之子難與言 至天成二年丁亥夏四月 師乞墳塔 尙父命陸仁璋 於西關選勝地建塔創院 賜名額令僧守護 仍改天台隱龍爲隱迹 修塔畢 師入府庭辭尙父 囑以護法恤民之事 剋期順寂 尙父悲悼遣僧主集在城宿德 迎引入塔 壽八十有七 臘七十
●隨方任眞; 亦作隨處任眞 謂得道者具平常心 處處事事順其自然 禪家認爲如此可養護悟心 也體現道法的日常運用
●脫或; 倘或 脫 或者 倘若
●可畏; 可以畏敬 廣雅 畏 敬也 ▲論語子罕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墳塔; 僧人死後 造塔爲墓 稱作墳塔
●剋期; 卽限定日期之意
스님이 상당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노승이 경년(頃年; 近年. 往年) 강외(江外)의 영남(嶺南)과 형호(荊湖)를 유력(遊歷)하며 단지 지식의 총림이 있으면 참문(參問)하여 오지 않음이 없었다. 대개 금일 제인(諸人)과 더불어 취회(聚會)함은 각자 저(箇) 거처(去處)를 알고자 함이다. 그러나 제방에서 마침내 이설(異說)이 없나니 다만 당인(當人)으로 하여금 광심(狂心)을 쉬어버리고 타인으로 좇아 찾음을 쉬게 함이다. 단지 수방하여 임진(隨方任眞)해야 하지만 또한 가히 맡길(任) 진(眞)이 없으며 수시(隨時)하여 수용(受用)해야 하지만 또한 가히 쓸(用) 시(時)가 없다. 설사(設使) 수자(垂慈)하여 고구(苦口)하더라도 다만(且) 낮을 일러 밤으로 지음은 옳지 못하다. 다시 설령(設令; 饒) 선교(善巧)하더라도 마침내 능히 지동위서(指東爲西)하지 못하며 탈혹(脫或) 능히 그러하더라도 스스로 이는 신통으로 작괴(作怪)함이며 나의 일에 상간(相干)되지 않는다. 만약 이 학어지배(學語之輩)일진대 스스로 자기를 살펴 그름을 알지 못하고 바로(直) 허공 속을 향해 꽃을 캐고(采) 파도 속에서 달을 취하려고 하리니 도리어 심력(心力)을 붙이겠는가. 너희는 이제 각자 다만 물러나 생각할지니 홀연히 수긍하여 간다면 서룡(瑞龍) 노한이 사불획이(事不獲已)하여 우회(迂迴)가 너무 심했음을 비로소 알 것이다. 도리어 수긍하느냐. 때에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서룡경(瑞龍境)입니까. 사왈 네가 말하라, 견득(見得)하지 못하겠느냐(不見得麽).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후생(後生)이 가외(可畏)다. 묻되 확연(廓然)하여 구름이 없습니다. 무엇이 이 중추(中秋)의 달입니까. 사왈 가장 좋기로는 이, 구름이 없음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일륜(一輪)이 높이 걸리매 만국(萬國)이 함께(同) 보아 갈 것입니다. 사왈 날목지자(揑目之子)는 더불어 말하기 어렵다. 천성(天成) 2년 정해(丁亥; 927) 하(夏) 4월에 이르러 스님이 분탑(墳塔)을 구걸했다. 상부(尙父)가 육인장(陸仁璋)에게 명해 서관(西關)에서 승지(勝地)를 가려 건탑(建塔)하고 창원(創院)하고 명액(名額)을 주고 승인으로 하여금 수호하게 했으며 인하여(仍) 천태 은룡(隱龍)을 고쳐 은적(隱迹)이라 했다. 수탑(修塔)을 마치자 스님이 부정(府庭)에 들어가 상부(尙父)에게 고별하고 호법과 휼민(恤民)의 일을 부촉하고 극기(剋期)하여 순적(順寂)했다. 상부가 비도(悲悼)하고 승주(僧主; 여러 선록에 僧正으로 지었음)를 보내어 재성(在城)하는 숙덕(宿德)을 모아 영입(迎引)하여 입탑(入塔)했다. 나이는 87이며 납은 70이다.
●隨方任眞; 또한 수처임진(隨處任眞)으로 지음. 이르자면 도를 얻은 사람이 평상심을 갖추어 처처사사(處處事事)에 그 자연에 순응함임. 선가에서 인식하기를 이와 같아야 가히 오심(悟心)을 양호(養護)하고 또 도법의 일상의 운용을 체현(體現)한다 함.
●脫或; 당혹(倘或; 혹시)이니 탈(脫)은 혹자(或者)ㆍ당약(倘若).
●可畏; 가이(可以) 외경(畏敬)할 만함. 광아 외(畏) 경(敬)이다. ▲논어 자한(子罕). 후생이 가외(可畏)니 어찌 뒤에 오는 자가 여금만 같지 못하다고 알겠는가.
●墳塔; 승인이 사후에 탑을 조성해 묘를 삼음을 일컬어 분탑이라 함.
●剋期; 곧 한정된 일기(日期; 날짜. 기간)의 뜻.
前撫州疎山匡仁禪師法嗣
疎山證禪師〈第二世住〉 初參仁和尙 得旨後遊歷諸方 謁投子同禪師 投子問曰 近離什麽處 曰延平來 投子曰 還將得劍來麽 曰將得來 投子曰 呈似老僧看 師乃指面前地上 投子便休 師遂去 三日後投子問主事 新到僧在什麽處 曰當時去也 投子曰 三十年學馬伎 昨日被驢撲 師住後僧問 如何是就事學 師曰 著衣掃地 曰如何是就理學 師曰 騎牛去穢 曰向上事如何 師曰 溥際不收 問如何是聲色中混融一句 師曰 不辨消不及 曰如何是聲色外別行一句 師曰 難逢不可得
●延平; 延平津 今福建省延平 禪門拈頌集第七三一則 拈頌說話曰 延平津 雷煥失劍之地 ▲祖庭事苑三 射斗牛 晉書(36) 雷煥善天文 張華因望斗牛間 常有異氣 乃邀煥夜登樓仰視 煥曰 僕察之久矣 乃寶劍之精上於天 在豫章酆城縣界 華乃薦煥爲酆城令 煥至 修獄 掘基得石匣 有雙劍 光甚艶發 使送一與張公 一留自佩 華後被誅 劍遂失 煥卒 子爲州從事 佩父劍之延平 於腰間忽躍墮水 使人投之 但見兩龍長數丈 燔瑩有文章 投者懼而返
소산증(疎山證) 선사〈第二世住〉. 인화상(仁和尙; 匡仁)을 초참(初參)하여 득지(得旨)한 후 제방을 유력(遊歷)했다. 투자동(投子同; 大同) 선사를 참알하자 투자가 문왈(問曰)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연평(延平)에서 왔습니다. 투자가 가로되 도리어 검(劍)을 가지고(將得) 왔느냐. 가로되 가지고 왔습니다. 투자가 가로되 노승에게 정사(呈似; 보여주다)해 보아라. 스님이 이에 면전의 지상(地上)을 가리켰다. 투자가 바로 쉬었다. 스님이 드디어 떠났다. 3일 후에 투자가 주사(主事)에게 묻되 신도승(新到僧)이 어느 곳에 있느냐. 가로되 당시에 떠났습니다. 투자가 가로되 삼십 년 동안 마기(馬伎; 馬技와 같음)를 배웠더니 어제 나귀에게 차임(撲)을 입었다. 스님이 주후(住後)에 승문(僧問) 무엇이 이 취사학(就事學; 事로 나아가는 學)입니까. 사왈 옷 입고 땅을 쓴다(掃). 가로되 무엇이 이 취리학(就理學)입니까. 사왈 소 타고 오예(汚穢; 穢)를 제거한다. 가로되 향상사(向上事)는 어떻습니까. 사왈 보제(溥際; 물가. 浦口 가)에서 거두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성색 중에 혼융(混融)한 1구입니까. 사왈 분변하지 못하면 소화(消化)가 미치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성색 밖에 따로 행하는 1구입니까. 사왈 만나기 어려움을 불가득이다.
●延平; 연평진(延平津)이니 지금의 복건성 연평(延平). 선문염송집 제731칙. 염송설화에 가로되 연평진(延平津)은 뇌환(雷煥)이 검을 잃은 곳이다. ▲조정사원3. 사두우(射斗牛) 진서(36) 뇌환(雷煥)은 천문(天文)을 잘했다. 장화(張華)가 두우(斗牛; 北斗星과 牽牛星) 사이를 보매 늘 이기(異氣)가 있음으로 인하여 이에 뇌환을 불러 밤에 등루(登樓)하여 앙시(仰視)했다. 뇌환이 가로되 제(僕은 自謙辭)가 그것을 살핀 지 오래되었습니다. 곧 보검의 정기(精氣)가 하늘에 오른 것인데 예장(豫章)의 풍성현(酆城縣) 경계에 있습니다. 장화가 이에 뇌환을 천거해 풍성령(酆城令)이 되게 했다. 뇌환이 이르러 뇌옥(牢獄)을 수리하면서 기저(基底)를 파다가 석갑(石匣)을 얻었는데 쌍검이 있었고 빛이 매우 곱게 빛났다. 시켜 보내어 한 개는 장공(張公)에게 주고 한 개는 스스로 찼다. 장화가 뒤에 주살(誅殺)을 입었고 검은 드디어 잃어버렸다. 뇌환이 죽고 아들이 주(州)의 종사(從事)가 되었다. 아버지의 검을 차고 연평(延平)으로 가는데 허리 사이에서 홀연히 도약해 물에 떨어졌다. 사람을 시켜 그곳에 투입했는데 단지 두 마리의 용의 길이가 몇 장(丈)이며 번쩍거리며(燔은 사를 번. 瑩은 밝을 형) 문장(文章; 무늬)이 있음이 보였다. 투입된 자가 두려워하며 돌아왔다.
洪州百丈安和尙號明照禪師〈第十世住〉 問一藏圓光如何是體 師曰 勞汝遠來 曰莫是一藏圓光麽 師曰 更喫一椀茶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手巾寸半布 問萬法歸一一歸何處 師曰 未有一箇不問 問如何是極則事 師曰 空王殿裏登九五 野老門前不立人 問隨緣認得時如何 師曰 未認得時作麽生 師本新羅國人 自百丈統衆所度弟子 道亘等凡七人 各從參嗣僉化一方 師滅後門人寫影 法眼讚曰 對目誰寫蟾輝 碧池日面月面 輪圓須彌須彌 一指月面毫芒 明照禪師詎曰 違方方塵不指 大悲何起我謂 玄功胡是非是
●一藏; 一梵語藏有包蘊意 故佛敎謂一切敎法爲一藏 二指一部藏經 此指一
●九五; 祖庭事苑六 九五 易之乾卦爻辭也 九五 飛龍在天 卽大人有爲造物之時也 故以卽帝位者 謂之登九五焉
●毫芒; 至小
홍주(洪州) 백장안(百丈安) 화상 호 명조선사(明照禪師)〈第十世住〉. 묻되 일장(一藏)의 원광(圓光)에 무엇이 이 체()體입니까. 사왈(師曰) 노고롭게 네가 멀리서 왔다. 가로되 이 일장의 원광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다시 한 사발의 차를 먹어라.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수건(手巾)은 촌반(寸半)의 베다. 묻되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거니와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 사왈 한 개라도 묻지 않음이 있지 않다. 묻되 무엇이 이 극칙사(極則事)입니까. 사왈 공왕전(空王殿) 속에서 구오(九五)에 오르고 야로(野老)의 문 앞에 사람을 세우지 않는다. 묻되 수연(隨緣)하여 인득(認得)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인득하지 않을 때 어떠한가. 스님은 본래 신라국 사람이다. 백장에서 통중(統衆)함으로부터 득도(得度)한 바의 제자가 도긍(道亘) 등 무릇 7인이며 각자 참사(參嗣)함으로 좇아 다 일방(一方)을 교화했다. 스님이 멸후(滅後) 문인(門人)이 사영(寫影)했고 법안(法眼)이 찬왈(讚曰) 눈을 대해 누가 섬휘(蟾輝; 월광)를 베끼는가/ 벽지(碧池)에 일면월면(日面月面)이다/ 윤원(輪圓; 바퀴처럼 둥긂)한 수미수미(須彌須彌)니/ 일지(一指)의 월면(月面)이 호망(毫芒; 저본에 豪芒으로 지었음)이다/ 명조선사(明照禪師)가 어찌(詎) 가로되/ 방위를 위배하여 방진(方塵)을 가리키지 않는다 하겠는가/ 대비(大悲)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내가 이르노니/ 현공(玄功)이 어찌(胡) 시(是)와 비시(非是)이겠는가.
●一藏; 1. 범어 장(藏)엔 포온(包蘊)의 뜻이 있음. 고로 불교는 일체의 교법을 일러 1장(藏)이라 함. 2. 일부(一部)의 장경을 가리킴.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九五; 조정사원6. 구오(九五) 역의 건괘의 효사(爻辭)임. 구오 비룡이 하늘에 있다. 곧 대인이 조물(造物)을 함이 있는 때임. 고로 제위에 즉위하는 자를 이를 일러 구오에 오른다 함.
●毫芒; 지극히 작음.
筠州黃蘗山慧禪師 洛陽人也 少出家業經論學 因增受菩薩戒而歎曰 大士攝律儀與吾本受聲聞戒 俱止持作犯也 然於篇聚增減支本通別制意且殊 旣微細難防 復於攝善中未嘗行於少分 況饒益有情乎 且世間泡幻身命 何可留戀哉 由是置講課 欲以身捐於水中飼鱗甲之類 念已將行 偶二禪者接之款話 謂南方頗多知識 師何滯於一隅也 師從此迴志參尋 屬關津嚴緊 乃謂守吏曰 吾非翫山水 誓求祖道 他日必不忘恩也 守者察其志遂不苛留 且謂之曰 師旣爲法忘身 迴時願無吝所聞 師欣謝直造疎山 時仁和尙坐法堂受參 師先顧視大衆然後致問曰 刹那便去時如何 疎山曰畐塞虛空汝作麽生去 師曰 畐塞虛空不如不去 疎山便休 師下堂參第一座 第一座曰 適觀座主秖對和尙語甚奇特 師曰 此乃率爾實自偶然 敢望慈悲開示愚迷 第一座曰 一刹那間還有擬議否 師於言下頓省禮謝 退於茶堂悲喜交盈 如是三日 尋住黃蘗山聚衆開法〈第二世住〉 終于本山 今塔中全身如生
●菩薩戒; 大乘菩薩所受持之戒律 又作大乘戒 佛性戒 方等戒 反之 小乘聲聞所受持之戒律 稱小乘聲聞戒 說菩薩戒之大乘典籍甚多 可綜合爲梵網與瑜伽二類律典 今則盛行梵網戒 其戒相爲十重禁戒 四十八輕戒 不論出家在家 皆可受持
●聲聞戒; 爲小乘聖者受持之戒律 如五戒 八戒 十戒 具足戒等戒
●攝律儀; 攝律儀戒 三聚淨戒之一 受持五八十具等一切之戒律者
●止持作犯; 對殺盜之惡法而言 止者持戒也 作者犯戒也 反之 對慈悲等之善法而言 則止者犯戒也 作者持戒也
●攝善; 攝善法戒 三聚淨戒之一 以修一切善法爲戒者
●款話; 懇談
●率爾; 輕率 急遽
균주(筠州) 황벽산(黃蘗山) 혜선사(慧禪師). 낙양 사람이다. 소년(少年)에 출가하여 경론학(經論學)에 종사(從事; 業)했다. 보살계(菩薩戒)를 증수(增受)함으로 인해 탄식해 가로되 대사(大士)의 섭율의(攝律儀)와 내가 본래 받은 성문계(聲聞戒)는 모두(俱) 지지작범(止持作犯)이다. 그러나 편취(篇聚)의 증감(增減)과 지본(支本)의 통별(通別)에 제의(制意)가 또 다르다(殊). 이미 미세(微細)는 방지하지 어렵고 다시 섭선(攝善) 중에 일찍이 소분(少分)도 행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유정(有情)을 요익(饒益)함이겠는가. 또(且) 세간(世間)의 포환(泡幻)의 신명(身命)에 어찌 가히 유련(留戀)하겠는가. 이로 말미암아 강과(講課)를 방치(放置)하고 몸을 수중(水中)에 버려(捐) 인갑지류(鱗甲之類)에게 먹이려고(飼) 했다. 생각하고 나서 장차 행하려는데 우연히 두 선객이 그를 접인(接引)하여 관화(款話)했다. 이르기를 남방에 지식이 파다(頗多)하거늘 스님이 왜 한 모퉁이에 체재(滯在)하는가. 스님이 이로 좇아 회지(迴志)하여 참심(參尋)했다. 관진(關津)이 엄긴(嚴緊)함에 속한지라 이에 수리(守吏)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산수(山水)를 구경(翫)함이 아니라 맹서코 조도(祖道)를 구합니다. 다른 날 반드시 망은(忘恩)하지 않겠습니다. 수자(守者)가 그 의지(意志)를 살피더니 드디어 가류(苛留; 까다롭게 抑留)하지 않았고 또 일러 가로되 스님이 이미 위법망신(爲法忘身)하니 돌아올 때 들은 바를 아끼지(吝) 않기를 바랍니다. 스님이 흔연(欣然)히 감사하고 바로 소산(疎山)으로 나아갔다. 때에 인화상(仁和尙)이 법당에 앉아 수참(受參; 參問을 받음)했는데 스님이 먼저 대중을 돌아본 연후에 질문해(致問) 가로되 찰나에 바로 갈 때 어떻습니까. 소산이 가로되 허공에 복색(畐塞; 가득 참)하거늘 네게 어떻게 가겠는가. 사왈 허공에 복색하니 가지 않음만 같지 못합니다. 소산이 바로 쉬었다. 스님이 하당(下堂)하여 제1좌를 참(參)하자 제1좌가 가로되 아까(適) 좌주(座主)가 화상에게 지대(秖對)한 말을 보건대 심히 기특했다. 사왈 이것은 이에 솔이(率爾)했고 실로는 저절로 우연(偶然)이었습니다. 감히 자비를 바라오니 우미(愚迷)에게 개시(開示)하십시오. 제1좌가 가로되 일찰나(一刹那) 사이에 도리어 의의(擬議)함이 있는가. 스님이 언하에 돈성(頓省)하고 예사(禮謝)했다. 다당(茶堂)으로 물러나 비희(悲喜)가 교영(交盈)했는데 이와 같음이 3일이었다. 이윽고 황벽산에 주(住)하면서 취중(聚衆)하여 개법했고〈第二世住〉. 본산에서 마쳤다. 지금(至今) 탑중의 전신(全身)이 산 것과 같다.
●菩薩戒; 대승보살이 수지하는 바의 계율이니 또 대승계ㆍ불성계ㆍ방등계로 지음. 이에 반해 소승 성문이 수지하는 바의 계율을 소승성문계로 일컬음. 보살계를 설하는 대승경전이 매우 많음. 가히 종합하자면 범망(梵網)과 유가(瑜伽)의 두 종류의 율전이 됨. 여금엔 곧 범망계가 성행함. 그 계상(戒相)은 십중금계(十重禁戒)ㆍ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가 됨. 출가와 재가를 논하지 않고 모두 가히 수지함.
●聲聞戒; 소승성자(小乘聖者)가 수지하는 계율이니 5계ㆍ8계ㆍ10계ㆍ구족계 등과 같은 계임.
●攝律儀; 섭율의계(攝律儀戒)니 삼취정계(三聚淨戒)의 하나. 5계ㆍ8계ㆍ10계ㆍ구(具; 구족계)등의 일체의 계율을 수지하는 것.
●止持作犯; 살도(殺盜)의 악법에 대해 말하면 지(止)란 것은 지계(持戒)며 작(作)이란 것은 범계(犯戒)임. 이와 반대로 자비 등의 선법에 대해 말하면 곧 지(止)란 것은 범계(犯戒)며 작(作)이란 것은 지계(持戒)임.
●攝善; 섭선법계(攝善法戒)니 삼취정계(三聚淨戒)의 하나. 일체의 선법(善法)을 닦음으로써 계를 삼는 것.
●款話; 간담(懇談; 懇切한 談話).
●率爾; 경솔(輕率). 급거(急遽).
隋州隋城山護國院守澄淨果大師 問如何是佛 師曰 遮驢漢 問盡大地是一隻眼底人來師如何 師曰 堦下漢 問諸佛不到處什麽人履踐 師曰 聃耳鬅頭 曰何人通得彼中信 師曰 驢面獸顋 問隨緣認得時如何 師曰錯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一人傳虛萬人傳實 問不落干將手 如何是太阿 師曰 七星光采耀 六國罷煙塵
●聃耳; 聃 下垂之意 舊說 耳垂長者壽高 後引申爲老貌
●干將; 古代劍名 亦匠人名 祖庭事苑六 干將 吳人也 與歐冶子同師闔閭 使造劒二枚 一曰干將 二曰鏌邪 鏌邪 干將妻名 干將作劒 金鐵之精未肯流 夫妻乃翦髮斷指 投之鑢中 金鐵乃濡 遂以成劒 陽曰干將 而作龜文 陰曰鏌邪 而作漫理 干將而匿其陽 出其陰 獻之闔閭 見吳越春秋
●太阿; 祖庭事苑一 太阿 越絶書云 楚王召風湖子 令之吳越 見歐治子 干將 使之爲鐵劒三枚 一曰龍泉 二曰太阿 三曰上市 楚王問之曰 何謂龍泉 風湖子曰 龍泉狀如登高山 臨深淵 何謂太阿 曰 巍巍翼如流水之波 何謂上市 曰 從文閒起 止脊而止 如珠而不抂 若流而不絶
●七星; 祖庭事苑三 七星 劍飾也 西京雜記云 高祖斬白蛇劍 劍上有七星珠 九華玉以爲飾 雜廁五色瑠璃爲匣 劍在室中 光影猶照於外 與挺劍不殊 十二年一加磨鎣 刃上常若霜雪 開匣拔鞘 輒有風氣 光彩射人
●煙塵; 煙霧和塵埃 二烽煙和戰場上揚起的塵土 指戰火 此指二
●六國; 空谷集第三十七則 六門六戶六國六出 皆六根之異號也 ▲止觀輔行傳弘決五之一 六國者 韓齊楚魏燕趙 幷秦以爲七雄
수주(隋州) 수성산(隋城山) 호국원(護國院) 수징(守澄) 정과대사(淨果大師).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이 여한(驢漢)아. 묻되 온 대지가 이 일척안(一隻眼)인 사람이 온다면 스님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왈 계하한(堦下漢)아. 묻되 제불이 이르지(到; 저본에 倒로 지었음) 못하는 곳을 어떤 사람이 이천(履踐)합니까. 사왈 담이붕두(聃耳鬅頭; 귀는 아래로 처지고 머리카락은 헝크러짐)다. 가로되 어떤 사람이 그 가운데의 소식(消息; 信)을 통득(通得)합니까. 사왈 나귀 얼굴에 짐승의 뺨이다. 묻되 수연(隨緣)하여 인득(認得)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틀렸다(錯).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한 사람이 허(虛)를 전하매 만 사람이 실(實)로 전한다. 묻되 간장(干將; 저본에 于將으로 지었음)의 손에 떨어지지 않나니 무엇이 이 태아(太阿)입니까. 사왈 칠성(七星)의 광채(光采)가 빛나니(耀) 육국(六國)에 연진(煙塵)을 마쳤다(罷).
●聃耳; 담(聃)은 아래로 처짐의 뜻. 구설에 귀가 드리운 장자(長者)는 수고(壽高)라 함. 후에 인신(引申)하여 늙은 모양으로 삼음.
●干將; 고대의 검명. 또한 장인의 이름임. 조정사원6. 간장(干將)은 오나라 사람이다. 구야자와 함께 합려를 사사(師事)했는데 검 2매를 만들게 했다. 하나는 가로되 간장(干將)이며 둘은 가로되 막야(鏌邪)니 막야는 간장의 처의 이름이다. 간장이 검을 만드는데 금철(金鐵)의 정기(精氣)가 흐름을 긍정치 않는지라 부처(夫妻)가 이에 머리카락을 자르고 손가락을 끊어 화로 속에 던지자 금철이 이에 부드러워져 드디어 검을 이루었다. 양을 가로되 간장이며 거북의 무늬를 지었고 음을 가로되 막야니 질펀한 결을 지었는데 간장이 그 양을 감추고 그 음을 내어 합려에게 바쳤다. 오월춘추를 보라.
●太阿; 조정사원1. 태아(太阿) 월절서(越絶書)에 이르되 초왕(楚王)이 풍호자(風湖子)를 불러 오월(吳越)에 가서 구야자(歐冶子)와 간장(干將)을 상견케 하고 그로 하여금 철검 3매(枚; 量詞. 箇임)를 만들게 했는데 1은 가로되 용천(龍泉)이며 2는 가로되 태아(太阿)며 3은 가로되 상시(上市)다. 초왕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무엇을 일러 용천이라 하는가. 풍호자가 가로되 용천의 형상은 마치 높은 산에 올라 심연(深淵)에 임(臨)한 것 같습니다. 무엇을 일러 태아라 하는가. 가로되 외외(巍巍; 높고 큰 모양)한 날개가 마치 유수(流水)의 파도와 같습니다. 무엇을 일러 상시(上市)라 하는가. 가로되 무늬의 사이로부터 일어나 등성마루에 정지하여 멈추나니 구슬의 흐트러지지 않음과 같고 흘러서 끊어지지 않음과 같습니다.
●七星; 조정사원3. 칠성(七星)은 검의 장식(粧飾)임. 서경잡기에 이르되 고조(高祖; 漢高祖)가 백사(白蛇)를 벤 검이다. 검 위에 칠성주(七星珠)가 있는데 구화옥(九華玉)으로 장식을 삼았고 오색 유리(瑠璃)로 잡측(雜廁; 廁은 섞일 측)하여 갑(匣)을 만들었다. 검이 실중에 있으면 광영(光影)이 오히려 밖을 비추었다. 빼어난 검과 다르지 않지만 12년에 한 번 마형(磨鎣; 鎣은 갈 형)을 가한다. 칼날 위가 늘 상설(霜雪)과 같으며 갑을 열어 칼집에서 뽑으면 문득 풍기(風氣)가 있고 광채가 사람을 쏘았다.
●煙塵; 연무(煙霧)와 진애(塵埃). 2. 봉연(烽煙)과 전장상(戰場上) 양기(揚起)하는 진토(塵土)니 전화(戰火)를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六國; 공곡집 제37칙. 6문(門)ㆍ6호(戶)ㆍ6국(國)ㆍ6출(出)은 모두 6근(根)의 다른 호칭이다. ▲지관보행전홍결5지1. 육국(六國)이란 것은 한ㆍ제ㆍ초ㆍ위ㆍ연ㆍ조다. 진(秦)을 아울러 7웅으로 삼는다.
洛京長水靈泉歸仁禪師 問如何是祖師意 師曰 仰面獨揚眉 迴頭自拍手 問如何是祖師西來的的意 師曰 洛河水逆流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騎牛戴席帽 過水著靴衫
●洛河; 古稱雒水 黃河右岸重要支流 因河南境內的伊河爲重要支流 亦稱伊洛河 [百度百科]
●靴衫; 唐開元天寶年間 從駕宮人或士人之婦乘馬時的胡裝服式 [百度百科]
낙경(洛京) 장수(長水) 영천(靈泉) 귀인선사(歸仁禪師).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얼굴을 우러러 홀로 눈썹을 치키고 머리를 돌리며 스스로 박수(拍手)한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가 서래한 적적의(的的意; 진실한 뜻)입니까. 사왈 낙하수(洛河水)가 역류한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기우(騎牛)하면 석모(席帽)를 이고(戴) 과수(過水)하면 화삼(靴衫)을 입는다.
●洛河; 옛 명칭은 낙수(雒水). 황하 우안(右岸)의 중요한 지류(支流). 하남(河南) 경내(境內)의 이하(伊河)가 중요한 지류가 됨으로 인해 또한 명칭이 이락하(伊洛河) [백도백과].
●靴衫; 당 개원(開元; 713-741) 천보(天寶; 742-756)년 간 종가(從駕)의 궁인 혹 사인(士人)의 부인(婦人)이 승마(乘馬)할 때의 호장복식(胡裝服式) [백도백과].
延州伏龍山延慶院奉璘禪師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橫身臥海 日裏挑燈 問如何是伏龍境 師曰 山峻水流急 三春足異華 問和尙還愛財色也無 師曰 愛 曰旣是善知識 爲什麽却愛財愛色 師曰 知恩者少負恩者多 師問火頭 培火了未 曰低聲 師曰 什麽處得遮消息來 曰不假多言 師曰 省錢易飽喫了還飢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長虀冷飯 曰又太寂寞生 師曰 僧家合如是
●延州; 今陝西延安
●太寂寞生; 太 表示程度過分 相當于甚 生 語助辭 相當于然或樣字
연주(延州) 복룡산(伏龍山) 연경원(延慶院) 봉린선사(奉璘禪師).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몸을 가로 놓아(橫身) 바다에 누웠고 일리(日裏; 대낮)에 등을 돋운다. 묻되 무엇이 이 복룡경(伏龍境)입니까. 사왈 산이 험준하고 물 흐름이 급하며 삼춘(三春)에 이화(異華)가 족(足)하다. 묻되 화상이 도리어 재색(財色)을 좋아합니까(愛) 또는 아닙니까. 사왈 좋아한다. 가로되 이미 이 선지식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애재애색(愛財愛色)합니까. 사왈 은혜를 아는 자는 적고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많다. 스님이 화두(火頭)에게 묻되 불을 배양(培養)했느냐, 아니냐. 가로되 소리를 낮추십시오. 사왈 어느 곳에서 이 소식을 얻어 왔느냐. 가로되 다언(多言)을 빌리지 않습니다. 사왈 돈을 덜면(省錢) 배부르기 쉽지만 먹고 나면 도리어 배고프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장제냉반(長虀冷飯; 늘 채소 절임에 찬 밥)이다. 가로되 매우 적막합니다(太寂寞生). 사왈 승가가 합당히 이와 같다.
●延州; 지금의 섬서(陝西) 연안(延安).
●太寂寞生; 태(太)는 정도가 과분함을 표시하며 심(甚)에 상당함. 생(生)은 어조사며 연(然) 혹 양자(樣字)에 상당함.
安州大安山省禪師〈第三世住〉 問失路迷人請師直指 師曰 三門前去 問擧步臨危請師指月 師曰 不指月 曰爲什麽不指月 師曰 臨坑不推人 問離四句絕百非請和尙道 師曰 我王庫內無如是刀 問重重關鎖信息不通時如何 師曰 爭得到遮裏 曰到後如何 師曰 彼中事作麽生 問如何是眞中眞 師曰 十字路頭泥佛子
●我王庫內無如是刀; 涅槃經八 佛言 譬如二人共爲親友 一是王子 一是貧賤 如是二人互相往返 是時貧人見是王子有一好刀 淨妙第一 心中貪著 王子後時捉持是刀 逃至他國 於是貧人後於他家寄臥止宿 卽於眠中寱語刀刀 傍人聞之收至王所 …… 王復問言 卿見刀時相貌何類 答言 大王 臣所見者如羖羊角 王聞是已欣然而笑 語言 汝今隨意所至 莫生憂怖 我庫藏中都無是刀
안주(安州) 대안산(大安山) 성선사(省禪師)〈第三世住〉. 묻되 길 잃은 미인(迷人)이니 스님의 직지(直指)를 청합니다. 사왈(師曰) 삼문(三門) 앞으로 가거라. 묻되 걸음을 들면 위험에 임했으니 스님의 지월(指月)를 청합니다. 사왈 지월하지 않겠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지월하지 않습니까. 사왈 구덩이에 임해 사람을 밀지 않는다. 묻되 이사구절백비(離四句絕百非)하고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나의 왕고 안엔 이와 같은 칼이 없다(我王庫內無如是刀). 묻되 겹겹이 관쇄(關鎖; 빗장을 걸어 잠금)라 신식(信息; 音訊. 消息)이 불통(不通)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찌 이 속에 이름을 얻었느냐. 가로되 이른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그 중의 일이 어떠한가. 묻되 무엇이 이 진중진(眞中眞)입니까. 사왈 십자로두(十字路頭)의 이불자(泥佛子; 子는 조사)다.
●我王庫內無如是刀; 열반경8. 불타가 말씀하셨다. 비여(譬如) 두 사람이 함께 친우가 되었는데 하나는 이 왕자며 하나는 이 빈천(貧賤)했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이 호상 왕반(往返)했다. 이때 빈인(貧人)이 이 왕자가 한 호도(好刀가 있음을 보았는데 정묘(淨妙)하여 제일이었으며 심중에 탐착(貪著)했다. 왕자가 후시(後時; 뒷날)에 이 칼(刀)을 착지(捉持)하고 도주하여 다른 나라에 이르렀다. 이에 빈인이 후에 다른 집에서 기와(寄臥; 기탁해 누움)하며 지숙(止宿; 止는 머물 지)하다가 곧 수면 중에 잠꼬대로 말하기를 도(刀), 도(刀). 곁의 사람이 이를 듣고 거두어(收) 왕의 처소에 이르렀다 …… 왕이 다시 물어 말하되 경(卿)이 도(刀)를 보았을 때 상모(相貌)가 어떤 종류였던가. 답해 말하되 대왕이시여 신이 본 바의 것은 고양각(羖羊角)과 같았습니다. 왕이 이를 듣고 나서 흔연(欣然)히 웃으며 어언(語言)하되 너는 지금 이르는 곳을 뜻대로 하고 우포(憂怖)를 내지 말아라. 나의 고장(庫藏) 중엔 도무지 이런 도(刀)가 없다.
洪州大雄山百丈超禪師 海東人也 問祖意與敎意同別 師曰 金鷄玉兔聽遶須彌 問日落西山去 林中事若何 師曰 洞深雲出晩 㵎曲水流遲 僧辭問曰 今日下山有人問和尙說什麽法 向他道什麽 師曰 但向他道 大雄山上虎生師子兒
홍주(洪州) 대웅산(大雄山) 백장초(百丈超) 선사. 해동(海東) 사람이다.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사왈(師曰) 금계(金鷄)와 옥토(玉兔)가 들으면서 수미를 돈다(聽遶須彌). 묻되 해가 서산으로 떨어져 가나니 임중(林中)의 일이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골(洞)이 깊어 구름이 나옴이 늦고 개울이 굽어 물 흐름이 더디다. 중이 고별하며 문왈(問曰) 금일 하산하매 어떤 사람이 묻되 화상이 무슨 법을 설하시는가 한다면 그를 향해 무어라고 말해야 합니까. 사왈 단지 그를 향해 말하되 대웅산 위의 범이 사자아(師子兒; 兒는 後綴)를 낳았다 하라.
洪州天王院和尙 問國內按劍者是誰 師曰 天王 問百骸俱潰散一物鎭長靈如何 師曰 不墮無壞爛 問如何是佛 師曰錯
홍주(洪州) 천왕원(天王院) 화상. 묻되 국내에 안검(按劍)하는 자가 이 누구입니까. 사왈(師曰) 천왕(天王)이다. 묻되 백해(百骸)가 모두 궤산(潰散)해도 일물(一物)이 늘(鎭) 장령(長靈)함이 어떻습니까. 사왈 떨어지지 않으면 괴란(壞爛; 파괴되고 문드러짐)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틀렸다(錯).
常州正勤院蘊禪師〈第一世住〉 魏府人也 姓韓氏 幼而出家老有童顔 得法於疎山之室 僧問 師唱誰家曲 宗風事若何 師曰 適然簫韶外 六律不能過 曰不過底事作麽生 師曰 聲前拍不散 句後覓無蹤 僧問 如何是正勤一條路 師曰 埿深三尺 曰如何得到 師曰 闍梨從什麽處來 問如何是禪 師曰 石裏蓮華火裏泉 曰如何是道 師曰 楞伽峯頂一莖草 曰禪道相去多少 師曰 泥人落水木人撈 師晉天福中將順寂 預告大衆 及期闔城士女奔走至院 師囑付訖 怡然坐化 門人葬于院後 經二稔發塔覩全身 儼然髮爪俱長 乃於城東闍維 收舍利眞骨重建塔
●適然; 偶然 當然
●簫韶; 舜樂名 泛指美妙的仙樂
●六律; 六律與六呂 六律 黃鐘 太簇 姑洗 蕤賓 夷則 無射 六呂 大呂 夾鐘 仲呂 林鐘 南呂 應鐘
상주(常州) 정근원(正勤院) 온선사(蘊禪師)〈第一世住〉. 위부(魏府) 사람이며 성이 한씨(韓氏)다. 어릴 적에 출가했고 늙어서도 동안(童顔)이 있었고 소산지실(疎山之室)에서 득법했다.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의 노래를 부르며 종풍의 일은 어떻습니까(若何). 사왈(師曰) 적연(適然)히 소소(簫韶) 밖이라 육률(六律)이 능히 넘지(過) 못한다. 가로되 넘지 못하는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성전(聲前)이라 두드려도(拍) 흩어지지 않고 구후(句後)라 찾아도 종적이 없다. 승문 무엇이 이 정근(正勤)의 한 가닥 길입니까. 사왈 진흙(埿)의 깊이가 3척이다. 가로되 어찌해야 득도(得到)합니까. 사왈 사리(闍梨)가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묻되 무엇이 이 선(禪)입니까. 사왈 돌 속의 연화(蓮華)며 불 속의 샘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릉가봉정(楞伽峯頂)의 한 줄기 풀이다. 가로되 선도(禪道)가 서로 떨어짐(去)이 얼마입니까. 사왈 이인(泥人)이 물에 떨어지매 목인(木人)이 건진다. 스님이 진(晉) 천복(天福; 936-943) 중 장차 순적(順寂)하려 하면서 대중에게 예고(預告)했는데 기일(期日)에 이르자 합성(闔城; 全城)의 사녀(士女)가 분주(奔走)히 사원에 이르렀다. 스님이 촉부(囑付)하여 마치자 이연(怡然)히 좌화(坐化)했다. 문인(門人)이 원후(院後)에 안장(安葬)했는데 두 해가 지나 발탑(發塔)하여 전신(全身)을 보매 엄연(儼然)히 발조(髮爪)가 모두 자랐다. 이에 성동(城東)에서 사유(闍維)하여 사리진골(舍利眞骨)을 거두어 탑을 중건(重建)했다.
●適然; 우연(偶然). 당연(當然).
●簫韶; 순(舜)의 음악 이름. 널리 미묘한 선악(仙樂)을 가리킴.
●六律; 육률(六律)과 육려(六呂). 육률은 황종ㆍ태주ㆍ고선ㆍ유빈ㆍ이칙ㆍ무역. 육려는 대려ㆍ협종ㆍ중려ㆍ임종ㆍ남려ㆍ응종.
襄州後洞山和尙 問道有又無時如何 師曰 龍頭蛇尾腰間一劍
양주(襄州) 후동산(後洞山) 화상. 묻되 도가 있다가 또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용두사미야, 허리 사이의 일검(一劍)이다.
京兆三相和尙 問如何是無縫塔 師曰 覓縫不得 曰如何是塔中人 師曰 對面不得見
경조(京兆) 삼상화상(三相和尙).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師曰) 솔기(縫)를 찾아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탑중(塔中)의 사람입니까. 사왈 대면해도 봄을 얻지 못한다.
前樂普元安禪師法嗣
京兆永安院善靜禪師 京兆人也 姓王氏 父任牧守 母因夢金像覺而有娠 師幼習儒學博通群言 年二十七忽厭浮幻 潛詣終南山禮廣度禪師披削受具 唐天復中南謁樂普安禪師 安器之容其入室 仍典園務力營衆事 有僧辭樂普 樂普曰 四面是山闍梨向什麽處去 僧無對 樂普曰 限汝十日內下語得中 卽從汝發去 其僧冥搜久之無語 因經行偶入園中 師怪問曰 上座豈不是辭去 今何在此 僧具陳所以堅請代語 師不得已代曰 竹密豈妨流水過 山高那阻野雲飛 其僧喜踊 師囑之曰 秖對和尙 不須言是善靜語也 僧遂白樂普 樂普曰 誰下此語 曰某甲 樂普曰 非汝之語 其僧具言園頭所敎 樂普至晩上堂謂衆曰 莫輕園頭 他日住一城隍五百人常隨也 師尋辭樂普 北還故山結盧而止 道俗歸向 復遊峨眉迴住興元 連帥王公禮重 後歸故鄕 屬兵火之後舊寺荒廢 節帥創永安禪苑以居之 徒衆五百餘
●牧守; 州郡的長官
●浮幻; 浮世的虛幻
●城隍; 祖庭事苑六 城隍 音皇 說文 城池也 有水曰池 無水曰隍
●盧; 房屋 庵類也 後作廬
●兵火; 指戰爭造成的災難 戰亂
경조(京兆) 영안원(永安院) 선정선사(善靜禪師). 경조(京兆) 사람이며 성이 왕씨(王氏)다. 부(父)는 목수(牧守)에 임직(任職)했고 모(母)가 금상(金像)을 꿈꾸고 깨자 임신(妊娠)이 있었다. 스님이 어릴 적에 유학(儒學)을 익혀 군언(群言)에 박통(博通)했다. 나이 27에 홀연히 부환(浮幻)을 싫어했고 몰래(潛) 종남산으로 나아가 광도선사(廣度禪師)를 예알하여 피삭(披削)하고 수구(受具)했다. 당 천복(天復; 901-903) 중 남쪽으로 낙보안(樂普安) 선사를 참알하자 안(安; 저본에 師로 지었음)이 법기로 여기고 그 입실(入室)을 용납했다. 인하여(仍) 원무(園務)를 맡아(典) 중사(衆事)를 역영(力營; 힘써 經營)했다. 어떤 중이 낙보에게 고별하자 낙보가 가로되 사면이 이 산인데 사리(闍梨)가 어느 곳을 향해 가겠는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낙보가 가로되 너에게 기한(期限)하여 십 일 내에 하어(下語)하여 맞힘을 얻으면 곧 너의 떠나감(發去)을 좇겠다. 그 중이 몰래 수색(搜索)했으나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경행(經行)함으로 인해 우연히 원중(園中)에 들어갔는데 스님이 괴이히 여겨 문왈(問曰) 상좌는 어찌 이 사거(辭去; 고별하고 떠남)하지 않고 지금 왜 여기에 있는가. 중이 소이(所以)를 갖추어 진술하고 대어(代語)를 견청(堅請)했다. 스님이 부득이하여 대왈(代曰) 대가 빽빽한들 어찌 유수(流水)의 지나감을 방애(妨礙)할 것이며 산이 높은들 어찌(那) 야운(野雲)의 낢을 막겠는가(阻). 그 중이 기뻐서 뛰었다(踊). 스님이 그에게 부촉하여 가로되 화상에게 지대(秖對)하면서 이 선정(善靜)의 말이라고 말함을 쓰지(須) 말아라. 중이 드디어 낙보에게 사뢰자(白) 낙보가 가로되 누가 이 말을 내렸는가. 가로되 모갑입니다. 낙보가 가로되 너의 말이 아니다. 그 중이 말을 갖추어 원두(園頭)가 가르친 바라 하자 낙보가 저녁에 이르러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원두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다른 날 한 성황(城隍)에 거주하면서 5백 인이 상수(常隨)할 것이다. 스님이 이윽고 낙보에게 고별하고 고산(故山)으로 북환(北還)하여 오두막(盧)을 엮어 머물렀는데 도속(道俗)이 귀향(歸向)했다. 다시 아미(峨眉)를 유람하고는 흥원(興元)으로 돌아가 거주했는데 연수(連帥) 왕공(王公)이 예중(禮重)했다.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병화(兵火)의 뒤에 구사(舊寺)가 황폐(荒廢)함에 속했는데 절수(節帥; 節度使)가 영안선원(永安禪苑)을 창건해 거주케 했고 도중(徒衆)이 5백 남짓이었다.
●牧守; 주(州)나 군(郡)의 장관(長官).
●浮幻; 부세(浮世)의 허환(虛幻).
●城隍; 조정사원6. 성황(城隍). 음이 황임. 설문 성지(城池)다. 물이 있음을 가로되 지(池)며 물이 없음을 가로되 황(隍)이다.
●盧; 방옥(房屋). 암자 종류임. 후에 려(廬)로 지었음.
●兵火; 전쟁이 조성한 재난ㆍ전란(戰亂)을 가리킴.
僧問 知有道不得時如何 師曰 知有箇什麽 曰不可無也 師曰 恁麽卽合道得 曰道卽不無爭奈語偏 師曰 水凍魚難躍 山寒花發遲 問如何是衲衣向上事 師曰 龍魚不出海 水月不吞光 問不可以智知 不可以識識時如何 師曰 鶴鷺竝頭蹋雪睡 月明驚起兩遲疑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壁上畫枯松 蜂來不見蘂 問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異境靈松覩者皆羨 曰見後如何 師曰 葉落已枝摧 風來不得韻 問如何得生如來家 師曰 披衣望曉論劫不明 曰劫後如何明 師曰 一句不可得 師往遊棘道 避昭宗蒙塵之亂 以漢開運丙午歲冬 鳴犍稚集僧囑累 入方丈東向右脅而化 壽八十有九 臘六十 勅諡淨悟禪師
●遲疑; 猶豫不決 遲 猶豫
●棘; 諸禪錄皆作𤏡 𤏡 僰的異體字 中國古代稱西南地區的某一少數民族
●犍稚; <梵> ghaṇṭā 又作犍椎 犍槌 犍地 揵穉 楗稚 揵稚 揵槌 揵遲 揵鎚 爲報時之器具 此云鈴 鼓 鐸 本爲木製 後世多爲銅製 敲打揵稚之規則 稱爲鼓儀 ▲慧琳音義十七 揵椎 直追反 經中或作揵遲 案梵本臂吒揵稚 臂吒此云打 揵稚所打之木 或檀或桐 此無正翻 以彼無鍾磬故也 但椎稚相濫 所以爲誤已久也
승문(僧問) 지유(知有)하지만 말함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저(箇) 무엇을 지유(知有)하느냐. 가로되 가히 없다고 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왈 이러하다면 곧 합당히 말함을 얻어야 한다. 가로되 말함은 곧 없지 않으나 말(語)이 치우침은 어찌 하겠습니까. 사왈 물이 얼면 고기가 뛰기 어렵고 산이 추우면 꽃 핌이 더디다. 묻되 무엇이 이 납의(衲衣)의 향상사(向上事)입니까. 사왈 용어(龍魚)가 바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월(水月)이 빛을 삼키지 못한다. 묻되 가히 지(智)로써 지(知)하지 못하고 가히 식(識)으로써 식(識)하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학과 백로(白鷺)가 머리를 나란히 하여 눈을 밟고 자다가 월명(月明)에 경기(驚起)하여 둘 다 지의(遲疑)한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벽 위에 고송(枯松)을 그리매 벌이 와서 꽃술을 보지 못한다. 묻되 우두(牛頭)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경(異境)의 영송(靈松)을 보는(覩) 자가 모두 부러워한다. 가로되 본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잎이 떨어지고 이미 가지가 부러진지라 바람이 와도 운(韻)을 얻지 못한다. 묻되 어찌해야 여래가(如來家)에 출생함을 얻습니까. 사왈 옷 입고 새벽을 바라보면 논겁(論劫)토록 밝히지 못한다. 가로되 겁후(劫後)엔 어떻게 밝힙니까. 사왈 1구(句)도 불가득이다. 스님이 극도(棘道)에 왕유(往遊)하며 소종(昭宗)의 몽진지란(蒙塵之亂)을 피했다. 한(漢) 개운(開運) 병오세(丙午歲; 946) 겨울 건치(犍稚)를 울려 집승(集僧)하고 촉루(囑累)하고는 방장에 들어가 동향(東向)하여 우협(右脅)으로 화(化)했다. 나이는 89며 납은 60이며 칙시가 정오선사(淨悟禪師)다.
●遲疑; 유예하며 결정하지 못함. 지(遲)는 예(豫)와 같음.
●棘; 여러 선록에 모두 북(𤏡)으로 지었음. 북(𤏡) 북(僰)의 이체자. 중국 고대 서남지구의 모(某) 하나의 소수민족을 일컬었음.
●犍稚; <범> ghaṇṭā. 또 건추犍椎ㆍ건추(犍槌)ㆍ건지(犍地)ㆍ건치(揵穉)ㆍ건치(楗稚)ㆍ건치(揵稚)ㆍ건추(揵槌)ㆍ건지(揵遲)ㆍ건추(揵鎚)로 지음. 시각을 알리기 위한 기구임. 여기에선 이르되 령(鈴; 방울. 요령)ㆍ북ㆍ탁(鐸; 방울)임. 본래 나무로 제작했으나 후세에 다분히 구리로 제작했음. 건치를 두드리는 규칙을 일컬어 고의(鼓儀)라 함. ▲혜림음의17. 건추(揵椎) 직추반(直追反)이다. 경중에 혹 건지(揵遲)로 짓는다. 범본의 비타건치(臂吒揵稚)를 안험하니 비타는 여기에선 이르되 타(打)며 건치는 두드리는 바의 나무다. 건치로 두드리는 바의 나무는 혹은 박달나무며 혹 오동나무다. 여기에서 바른 번역이 없다. 거기엔 종이나 경쇠가 없는 연고이다. 단지 추치(椎稚)가 상람(相濫)하여 소이로 오류가 된 지 이미 오래다.
蘄州烏牙山彦賓禪師 問未作人身以前作什麽來 師曰 三脚石牛坡上走 一枝瑞氣月前分 問匹馬單槍直入時如何 師曰 饒爾雄信解拈槍 猶較秦王一步在 問久戰沙場爲什麽功名不就 師曰 雙鵰隨箭落 李廣不當名 問百步穿楊 中的者誰 師曰 將軍不上便橋 金牙徒勞拈筈 問螮蝀飮雲根時如何 師曰 金輪天子下閻浮 鐵饅頭上金花異
●李廣; (?-前119) 善射者也 隴西成紀(今甘肅天水秦安縣)人 西漢時期的名將 漢文帝十四年(前166) 從軍擊匈奴因功爲中郞 景帝時 先後任北部邊域七郡太守 武帝卽位 召爲未央宮衛尉 元光六年(前129) 任驍騎將軍 領萬餘騎出雁門(今山西右玉南)擊匈奴 因衆寡懸殊負傷被俘 匈奴兵將其置臥於兩馬間 李廣佯死 於途中趁隙躍起 奔馬返回 後任右北平郡(治平剛縣 今內蒙古寧城西南)太守 匈奴畏服 稱之爲飛將軍 數年不敢來犯 元狩四年(前119) 漠北之戰中 李廣任前將軍 因迷失道路 未能參戰 憤愧自殺 年六十餘 [百度百科 史記一百九] ▲史記一百九李將軍列傳 廣出獵 見草中石 以爲虎而射之 中石沒鏃 視之石也 因復更射之 終不能復入石矣
●便橋; 供短時使用的簡便橋梁
●雲根; 一深山雲起之處 二山石 三道院僧寺
●金輪天子; 又作金輪王 四種輪王之一 於人壽八萬四千歲時出世 統治四洲
기주(蘄州) 오아산(烏牙山) 언빈선사(彦賓禪師). 묻되 인신(人身)을 짓지 아니한 이전에 무엇을 지어 왔습니까. 사왈(師曰) 삼각(三脚)의 석우(石牛)가 언덕 위를 달리고 일지(一枝)의 서초(瑞氣)가 달 앞에 나뉘었다. 묻되 필마단창(匹馬單槍)으로 직입(直入)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가령(饒) 네가 웅신(雄信; 雄才와 信義)으로 창을 잡을 줄 알더라도 오히려 진왕(秦王)과 일보(一步) 어긋나 있다. 묻되 오래 사장(沙場)에서 전투했는데 무엇 때문에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합니까. 사왈 쌍조(雙鵰; 두 독수리)가 화살 따라 떨어지니 이광(李廣)이 이름에 당하지 못한다. 묻되 백보(百步)에서 버들잎을 꿰면 표적을 맞히는 자가 누구입니까. 사왈 장군은 편교(便橋)에 오르지 않거늘 금아(金牙)가 도로(徒勞) 오늬를 잡는다(拈筈). 묻되 체동(螮蝀; 무지개)이 운근(雲根)을 마실 때 어떻습니까. 사왈 금륜천자(金輪天子)가 염부(閻浮)에 하생(下生)하니 철만두(鐵饅頭) 위에 금화(金花)가 다르다.
●李廣; (?-前 119) 잘 쏘는 자임. 농서 성기(지금의 감숙 천수 진안현) 사람. 서한 시기의 명장. 한문제 14년(前 166) 종군(從軍)하여 흉노를 격파했으며 공으로 인해 중랑(中郞)이 되었음. 경제 시 선후로 북부 변역(邊域) 7군(郡)의 태수에 임명되었음. 무제가 즉위하자 불러 미앙궁(未央宮) 위위(衛尉)로 삼았음. 원광 6년(前 129) 효기장군(驍騎將軍)에 임명되었으며 1만여 기(騎)를 거느리고 안문(지금의 산서 우옥 남)으로 나가서 흉노를 공격했는데 중과(衆寡; 무리가 적음)가 현격하게 다름으로 인해 부상(負傷)하고 포로로 잡혔음. 흉노 병사가 그를 가지고 두 말 사이에 안치해 눕혔는데 이광이 죽은 척했음. 도중에 틈을 좇아 뛰어 일어나 말을 달려 돌아왔음. 후에 우북평군(右北平郡; 치소는 평강현이며 지금의 내몽고 영성 서남) 태수에 임명되자 흉노가 두려워하며 복종했음. 그를 일컬어 비장군(飛將軍)이라 했으며 몇 년 동안 감히 내범(來犯)하지 못했음. 원수 4년(前 119) 막북지전(漠北之戰) 중에 이광이 전장군(前將軍)에 임명되었는데 도로를 미실(迷失)함으로 인해 능히 참전하지 못하고 울분과 부끄러움으로 자살했음. 나이 60여 [백도백과. 사기109]. ▲사기109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이광이 사냥을 나가서 풀 속의 돌을 보았는데 범이라고 하여 그것을 쏘았다. 돌에 적중하여 화살깃마저 잠겼다. 그것을 보니 돌이었다. 인하여 다시 그것을 쏘았는데 마침내 능히 다시 돌에 들어가지 않았다.
●便橋; 단시(短時)의 사용에 이바지하는 간편(簡便)한 교량(橋梁).
●雲根; 1. 심산(深山)에 구름이 일어나는 곳. 2. 산석(山石). 3. 도원(道院)이나 승사(僧寺).
●金輪天子; 또 금륜왕으로 지음. 4종 윤왕(輪王)의 하나. 인수(人壽) 8만4천 세 시에 출세하며 4주(洲)를 통치함.
鳳翔府靑峯山傳楚禪師 涇州人也 性淳貌古眼有三角 承樂普開示心地 俾宰于衆事 一日樂普問曰 院主汝去什麽處來 師曰 掃雪來 曰雪深多少 師曰 樹上總是 曰得卽也得 汝向後有山住箇雪窟定矣 自受記乃訪于白水 白水問 樂普有生機一路是否 師曰是 白水曰 止却生路向熟路上來 師曰 生路上死人無數 熟路上不著活漢 白水曰 此是樂普底爾作麽生 師曰 非但樂普夾山亦不奈何 曰夾山爲什麽不奈何 師曰 不見道生機一路 師住後有僧問 佛魔未現向什麽處應 師曰 諸上座聽秖對 問如何是臨機一句 師曰 便道將來 曰請和尙道 師曰 穿過髑髏不知痛處 問如何是明了底人一句 師曰 駿馬寸步不移 鈍鳥昇騰出路
●涇州; 今甘肅涇川
봉상부(鳳翔府) 청봉산(靑峯山) 전초선사(傳楚禪師). 경주(涇州) 사람이다. 성품이 순후(淳厚; 淳)하고 모습이 고아(古雅; 古)했고 눈에 삼각(三角)이 있었다. 낙보(樂普)가 심지(心地)를 개시(開示)함을 승수(承受)했고 중사(衆事)를 주재(主宰)하라고 시켰다(俾). 어느 날 낙보가 문왈(問曰) 원주(院主) 너는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 사왈(師曰) 눈을 쓸고 왔습니다. 가로되 눈의 깊이가 얼마이더냐. 사왈 수상(樹上)이 모두 이것이었습니다. 가로되 옳기는(得) 곧 또한 옳으나 너는 향후(向後)에 산이 있어 저(箇) 설굴(雪窟)에 거주함이 정해졌다. 수기(受記)함으로부터 이에 백수(白水)를 방문했다. 백수가 묻되 낙보가 생기(生機)의 일로(一路)가 있다 하니 그런가. 사왈 그렇습니다. 백수가 가로되 생로(生路)는 멈추어버리고(止却) 숙로상(熟路上)을 향해 오너라. 사왈 생로상(生路上)에 사인(死人)이 무수(無數)하고 숙로상(熟路上)에 활한(活漢)을 붙이지 않습니다. 백수가 가로되 이것은 이 낙보의 것이니 너는 어떠한가. 사왈 단지 낙보만이 아니라 협산(夾山)일지라도 또한 어찌하지 못합니다. 가로되 협산이 무엇 때문에 어찌하지 못하느냐. 사왈 생기(生機)의 일로(一路)라고 말한 것을 보지 못합니까. 스님이 주후(住後)에 어떤 중이 묻되 불마(佛魔)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느 곳을 향해 응합니까. 사왈 제상좌(諸上座)가 지대(秖對)를 듣는다. 묻되 무엇이 이 임기(臨機)의 1구입니까. 사왈 바로 말해 가지고 오너라. 가로되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촉루(髑髏)를 천과(穿過)했거늘 통처(痛處)를 알지 못하는구나. 묻되 무엇이 이 명료(明了)한 사람의 1구입니까. 사왈 준마(駿馬)는 촌보(寸步)도 옮기지 못하거늘 둔조(鈍鳥)가 승등(昇騰; 騰躍)하여 길을 나선다.
●涇州; 지금의 감숙 경천(涇川).
鄧州中度和尙 問海內不逢師 如何是寰中主 師曰 金鷄常報曉 時人不自知 問如何是暗中明鏡 師曰 萬機昧不得 曰未審照何物 師曰 什麽物不照 問如何是實際理地不受一塵 佛事門中不捨一法 師曰 眞常塵不染 海內百川流 問請和尙離聲色外答 師曰 木人常對語 有性不能言
●實際; 眞實際極之意 卽指絶離虛妄之涅槃實證 又指眞如之理體 禪宗常用實際理地一語 表示超越斷絶一切差別妄見的平等一如之世界 或眞實究竟之境地
등주(鄧州) 중도화상(中度和尙). 묻되 해내(海內)에서 스승을 만나지 못하나니 무엇이 이 환중주(寰中主)입니까. 사왈(師曰) 금계(金鷄)는 늘 새벽을 알리건만 시인(時人)이 스스로 알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암중(暗中)의 명경(明鏡)입니까. 사왈 만기(萬機)가 매(昧)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미심(未審)하오니 어떤 물건을 비춥니까. 사왈 어떤 물건을 비추지 못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실제(實際)의 이지(理地)에선 일진(一塵)도 받지 않지만 불사(佛事)의 문중(門中)에선 일법(一法)도 버리지 않음입니까. 사왈 진상(眞常)은 티끌에 물들지 않고 해내(海內)엔 백천(百川)이 흐른다. 묻되 화상에게 청하오니 성색(聲色)을 여읜 밖에 답하십시오. 사왈 목인(木人)이 늘 상대해 말하지만 자성이 있으나 능히 말하지 못한다.
●實際; 진실제(眞實際)의 궁극의 뜻. 곧 허망을 절리(絶離)한 열반의 실증(實證)을 가리킴. 또 진여의 이체(理體)를 가리킴. 선종에서 상용하는 실제이지(實際理地)의 1어(語)는 일체의 차별과 망경(妄見)을 초월하고 단절한 평등일여(平等一如)의 세계, 혹 진실구경(眞實究竟)의 경지를 표시함.
嘉州洞谿和尙 初問樂普 月樹無根枝覆蔭 請師直指妙幽微 樂普曰 森羅秀處事不相依 淥水千波孤峯自異 師於是領旨承嗣 問蛇師爲什麽被蛇吞 師曰 幾度扣門拈不出
가주(嘉州) 동계화상(洞谿和尙). 처음 낙보(樂普)에게 묻되 월수(月樹)는 뿌리가 없으나 가지가 부음(覆蔭; 그늘을 덮다)합니다. 스님에게 청하오니 묘하고 유미(幽微)함을 직지(直指)하십시오. 낙보가 가로되 삼라(森羅)의 수처(秀處)에 일(事)이 상의(相依)하지 않고 녹수(淥水)의 천파(千波)에 고봉(孤峯)이 스스로 다르다. 스님이 이에 영지(領旨)하고 승사(承嗣)했다. 묻되 사사(蛇師; 도롱뇽)가 무엇 때문에 뱀이 삼킴을 입습니까. 사왈 몇 차례나 구문(扣門)했으나 집어 내지 못했다(拈不出).
京兆臥龍和尙 初開堂 有僧問 杲日符天際 珠光照舊都 浦津通法海 今日意如何 師曰 寶劍暉時豈該明暗
경조(京兆) 와룡화상(臥龍和尙). 처음 개당하자 어떤 중이 묻되 고일(杲日; 밝은 해)은 천제(天際)에 부합(符合)하고 주광(珠光)은 구도(舊都)를 비추고 포진(浦津)은 법해(法海)에 통하나니 금일의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師曰) 보검(寶劍)이 빛날(暉) 때 어찌 명암을 갖추겠는가(該).
前江西逍遙山懷忠禪師法嗣
泉州福淸院師巍和尙號通玄禪師 僧問 枝分夾嶺 的紹逍遙 寶座旣登 法雷請震 師曰 逍遙逈物外 物外霞不生 問如何是西來的的意 師曰 立雪未爲勞 斷臂方爲的 曰恁麽卽一華開五葉 芬芳直至今 師曰 因圓三界外 果滿十方知
천주(泉州) 복청원(福淸院) 사외화상(師巍和尙) 호 통현선사(通玄禪師). 승문(僧問) 가지(枝)는 협령(夾嶺; 夾山)에서 나뉘고 적실(的實; 的)히 소요(逍遙)를 이었습니다. 보좌(寶座)에 이미 올랐으니 법뢰(法雷)를 진동(震動)하기를 청합니다. 사왈(師曰) 소요(逍遙)하며 멀리 물외(物外)인지라 물외엔 진동이 생기(生起)하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西來)의 적적(的的; 확실. 진실)한 뜻입니까. 사왈 입설(立雪)은 노고(勞苦)가 되지 않고 단비(斷臂)라야 비로소 적실(的實)함이 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일화(一華)에 오엽(五葉)이 열려 분방(芬芳)이 바로 여금에 이릅니다. 사왈 인이 원만(因圓)함은 3계 밖이며 과가 원만(果滿)함은 시방이 안다.
京兆白雲無休禪師 問路逢猛虎如何降伏 師曰 歸依佛歸依法歸依僧 問如何是白雲境 師曰 月夜樓邊海客愁
●海客; 居無定所的江湖人
경조(京兆) 백운 무휴선사(無休禪師). 묻되 길에서 맹호를 만나면 어떻게 항복시킵니까. 사왈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 묻되 무엇이 이 백운경(白雲境)입니까. 사왈 월야(月夜)의 누변(樓邊)에 해각(海客)이 수심(愁心)한다.
●海客; 거처에 정한 곳이 없는 강호 사람.
前袁州盤龍山可文禪師法嗣
江州廬山永安淨悟禪師 僧問 如何是出家底事 師曰 萬丈懸崖撒手去 曰如何是不出家底事 師曰 逈殊雪嶺安巢節 有異許由掛一瓢 問六門不通如何通信 師曰 闍梨外邊與誰相識 問脫籠頭卸角馱來時如何 師曰 換骨洗腸投紫塞 洪門切忌更銜蘆 問從上諸聖將何示人 師曰 有異祖龍行化節 逈超棲鳳越揚塵 問如何是解作客底人 師曰 寶御珍床猶尙棄 誰能歷劫傍他門 問衆手淘金誰是得者 師曰 黃帝不曾遊赤水 珠承罔象也虛然 問雪覆蘆華時如何 師曰 雖則沍凝呈瑞色 太陽輝後却迷人
●許由; 從容錄第二十八則 史記 許由隱於箕山 依山而食 就河而飮 堯讓帝位 由聞之臨河洗耳 巢父飮牛問曰 凡人洗面 公獨洗耳 由曰 聞堯請我爲九州長 故洗是非 父曰 豫章之木生於高山 工人莫得 子欲避世 何不深藏 今游人間苟求名譽 行待下飮 恐汚牛口 乃牽上流飮之
●籠頭; 被於馬首之具
●角馱; 角 也用爲禽獸的代稱 馱 同䭾 玉篇 馱 馬負貌 ▲祖庭事苑二 角䭾 徒箇切 負重也 謂驢馬負物也
●紫塞; 長城北方邊塞
●洪門; 諸禪錄皆作鴈門 鴈門 一般指雁門關 雁門關 位於山西省忻州市代縣縣城以北約20公里處20的雁門山中
●祖龍,中國古代神話傳說中最古老的龍 也就是生有鬣毛的應龍
●黃帝; (前2717-前2599) 古華夏部落聯盟首領 中國遠古時代華夏民族的共主 五帝之首 被尊爲中華人文初祖 據說他是少典與附寶之子 本姓公孫 後改姬姓 故稱姬軒轅 居軒轅之丘 號軒轅氏 建都於有熊 亦稱有熊氏 也有人稱之爲帝鴻氏 史載黃帝因有土德之瑞 故號黃帝 黃帝以統一華夏部落與征服東夷九黎族 而統一中華的偉績載入史冊 黃帝在位期間 播百穀草木 大力發展生産 始制衣冠 建舟車 制音律 創醫學等 [百度百科]
●罔象; 又作象罔 碧巖錄第八十八則曰 黃帝游於赤水沈珠 令離朱尋之不見 令喫詬尋之亦不得 後令象罔尋之方獲之 故云 象罔到時光燦爛 離婁行處浪滔天
●虛然; 空虛的樣子
강주(江州) 여산(廬山; 저본에 盧山으로 지었음) 영안(永安) 정오선사(淨悟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출가한 일입니까. 사왈(師曰) 만장(萬丈)의 현애(懸崖;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고(撒手) 간다. 가로되 무엇이 이 출가하지 않은 일입니까. 사왈 아득히 다른(逈殊) 설령(雪嶺)의, 둥지를 안치한 마디에 다른 허유(許由)가 있어 한 표주박을 걸었다. 묻되 육문(六門)이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통신(通信)합니까. 사왈 사리(闍梨)의 외변(外邊)에 누구와 서로 아는가. 묻되 농두(籠頭)를 벗고 각타(角馱)를 내려놓고 올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환골세장(換骨洗腸)하고 자새(紫塞)에 투입하고 홍문(洪門)에서 다시 갈대를 묾을 간절히 꺼린다. 묻되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이 무엇을 가지고 사람에게 보였습니까. 사왈 다른 조룡(祖龍)이 있어 화절(化節; 변화의 節槪)을 행하고 멀리 뛰어난(逈超) 서봉(棲鳳)이 양진(揚塵)을 초월한다. 묻되 무엇이 이 객 노릇 할 줄 아는 사람입니까. 사왈 보어(寶御; 보배의 御座)와 진상(珍床)도 오히려(猶尙) 버리거늘 누가 능히 역겁(歷劫)에 타문(他門; 다른 문)을 가까이 하겠는가(傍). 묻되 뭇 손이 금을 일면(淘) 누가 이 얻는 자입니까. 사왈 황제(黃帝)가 일찍이 적수(赤水)에 노닐지 않았거늘 구슬을 승수(承受)한 망상(罔象)이 또한 허연(虛然)하다. 묻되 눈이 노화(蘆華)를 덮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비록 곧 호응(沍凝; 얼어붙다)하여 서색(瑞色)을 보이지만(呈) 태양이 빛난(輝) 후에 도리어 미인(迷人)이다.
●許由; 종용록 제28칙. 사기(史記) 허유(許由)가 기산(箕山)에 은거(隱居)하면서 산에 의지해 먹고 내에 나아가 마셨다. 요(堯)가 제위(帝位)를 양위(讓位)하려 했는데 허유가 그것을 듣고 내에 와서 귀를 씻었다. 소부(巢父. 父는 보로도 발음함)가 소에게 (물을) 먹이려 하다가 물어 가로되 범인(凡人)은 얼굴을 씻거늘 공(公)은 유독(惟獨) 귀를 씻는가. 허유가 가로되 요(堯)가 나를 청해 구주(九州; 禹가 중국을 아홉 주로 나누었으니 곧 冀ㆍ兗ㆍ靑ㆍ徐ㆍ荊ㆍ雍ㆍ豫ㆍ揚 梁)의 장(長)을 삼겠다 함을 들은지라 고로 시비를 씻음이라네. 소부가 가로되 예장(豫章; 木名)의 나무는 고산(高山)에 나는지라 공인(工人)이 얻지 못하거늘 자네가 세상을 피하고 싶다면 어찌 깊이 감추지 않고 이제 인간에 노닐면서 구차히 명예를 구하는가. 가서 아래에서 먹기를 기다리다간 소의 입을 더럽힐까 염려스럽네 하고는 곧 상류(上流)로 이끌어 그것을 먹게 했다.
●籠頭; 말의 머리에 입히는 도구.
●角馱; 각(角)은 또한 금수(禽獸)의 대칭(代稱)으로 사용함. 타(馱)는 태(䭾)와 같음. 옥편 타(馱) 말이 짊어진 모습이다. ▲조정사원2. 각타(角䭾) 도개절(徒箇切)이니 무거운 것을 짊어짐임. 이르자면 나귀나 말이 물건을 짊어짐임.
●紫塞; 장성(長城) 북방의 변새(邊塞).
●洪門; 여러 선록에 모두 안문(鴈門; 雁門과 같음)으로 지었음. 안문(鴈門)은 일반으로 안문관(雁門關)을 가리킴. 안문관은 산서성 흔주시(忻州市) 대현(代縣) 현성(縣城) 이북 약 20㎞ 곳의 안문산(雁門山) 가운데 위치함.
●祖龍,중국 고대 신화전설 중의 가장 고로(古老)한 용. 또한 바로 이 출생하면서 갈기(鬣毛)가 있는 응룡(應龍; 전설상의 일종의 용).
●黃帝; (前 2717-前 2599) 옛 화하(華夏) 부락연맹(部落聯盟)의 수령이니 중국 원고시대(遠古時代) 화하민족(華夏民族)의 공주(共主)며 5제(帝)의 으뜸이며 피존(被尊)하여 중화인문(中華人文)의 초조(初祖)라 함. 설에 의하면 그는 이 소전(少典)과 부보(附寶)의 아들이며 본성은 공손(公孫)인데 후에 희성(姬姓)으로 고친지라 고로 일컬어 희헌원(姬軒轅)이라 함. 헌원의 언덕에 거주한지라 호가 헌원씨며 유웅(有熊)에 건도(建都)한지라 또한 명칭이 유웅씨임. 또 어떤 사람은 그를 일컬어 제홍씨(帝鴻氏)라 함. 사(史)의 기재에 황제는 토덕(土德)의 서상(瑞祥)이 있기 때문에 고로 호가 황제(黃帝)임. 황제는 화하(華夏)의 부락을 통일하고 동이(東夷) 구리족(九黎族)을 정복하여 중화(中華)를 통일한 위적(偉績)이 사책(史冊)에 재입(載入)되었음. 황제가 재위하던 기간에 백곡(百穀)과 초목을 퍼뜨렸고 대력(大力)으로 생산을 발전했고 처음으로 의관(衣冠)을 제정했고 주거(舟車)를 건조했고 음률을 제정했고 의학 등을 창시했음 [백도백과].
●罔象; 또 상망(象罔)으로 지음. 벽암록 제88칙에 가로되 황제(黃帝)가 적수(赤水)에 노닐다가 구슬을 빠뜨렸다. 이주(離朱)를 시켜 그것을 찾게 했으나 보지 못했고 끽후(喫詬)를 시켜 그것을 찾게 했으나 또한 얻지 못했다. 후에 상망(象罔)을 시켜 그것을 찾게 하자 비로소 그것을 얻었다. 고로 이르되 상망이 이를 때 빛이 찬란하더니 이루(離婁)가 행하는 곳에 물결이 하늘에 넘친다.
●虛然; 공허한 양자(樣子).
袁州木平山善道禪師 初謁樂普問 一漚未發已前 如何辨其水脈 樂普曰 移舟諳水勢 擧棹別波瀾 師不愜意乃參盤龍 語同前問 盤龍曰 移舟不辨水 擧棹卽迷源 師從此悟入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石羊頭子向東看 問如何是正法眼 師曰 拄杖孔 問如何是不動尊 師曰 浪浪宕宕 問如何是木平一句 師曰 畐塞虛空 曰畐塞虛空卽不問 如何是一句 師乃打之 師凡有新到僧 未許參禮先令運土三擔 而示偈曰 南山路仄東山低 新到莫辭三轉泥 嗟汝在途經日久 明明不曉却成迷 師肉髻螺紋 金陵李氏嚮其道譽 迎請供養待以師禮 嘗問 如何是木平 師曰 不動斤斧 曰如何不動斤斧 師曰 木平 時大法眼禪師 有偈贈曰 木平山裏人 貌古年復少 相看陌路同 論心秋月皎 壞衲線非蠶 助歌聲有鳥 城闕今日來 一漚曾已曉 師異迹頗多 此不繁述 滅後門人建塔刊石影 本國諡眞寂禪師 塔曰普慧
●頭子; 動物的頭 子 後綴 今西北方言把人或植物的頭叫頭蛋子(靑海樂都 甘肅蘭州)
●不動尊; 卽不動明王 亦泛指佛菩薩 因其不爲生死煩惱所動 世間所尊 故稱
●浪浪宕宕; 悠然自在
●陌路; 一田間的小路 二在路上相遇不熟悉的人 亦稱陌路人 此指二
원주(袁州) 목평산(木平山) 선도선사(善道禪師). 처음 낙보(樂普)를 참알해 묻되 일구(一漚)가 일어나지 아니한 이전에 어떻게 그 수맥(水脈)을 분변합니까. 낙보가 가로되 배를 이동하면 수세(水勢)를 알고(諳) 노를 들면 파란(波瀾)을 분별한다. 스님이 뜻에 맞지 않아 이에 반룡(盤龍)을 참(參)했는데 말은 전문(前問)과 같았다. 반룡이 가로되 배를 이동하면 물을 분변하지 못하고 노를 들면 곧 근원을 미(迷)한다. 스님이 이로 좇아 오입(悟入)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석양(石羊)의 두자(頭子)가 동쪽을 향해 본다. 묻되 무엇이 이 정법안(正法眼)입니까. 사왈 주장자의 구멍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부동존(不動尊)입니까. 사왈 낭랑탕탕(浪浪宕宕)하다. 묻되 무엇이 이 목평(木平)의 1구입니까. 사왈 허공에 복색(畐塞; 가득차다)하다. 가로되 허공에 복색함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1구입니까. 스님이 이에 때렸다. 스님은 무릇 신도승(新到僧)이 있으면 참례를 허락하지 않고 먼저 흙을 세 짐(三擔) 운반하게 했다. 게를 보여 가로되 남산의 길은 기울었고(仄) 동산은 낮나니/ 신도(新到)는 3전(轉; 量詞)의 진흙을 사양하지 말아라/ 슬프다, 너희가 길에 있으며 지난 날이 오래니/ 밝고 밝게 깨치지(曉) 못하고 도리어 미(迷)를 이루었다. 스님은 육계(肉髻)에 나문(螺紋; 저본에 羅紋으로 지었음)이었다. 금릉(金陵) 이씨가 그 도예(道譽)를 향(嚮)했고 영청(迎請)하여 공양했고 스승의 예절로 접대(接待)했다. 일찍이 묻되 무엇이 이 목평(木平)입니까. 사왈 근부(斤斧; 도끼)를 움직이지 않습니다. 가로되 어떻게 근부를 움직이지 않습니까. 사왈 목평(木平)입니다. 당시에 대법안(大法眼) 선사가 게가 있어 증정(贈呈)해 가로되 목평산 속의 사람은/ 모습이 고아(古雅)하고 나이가 다시 젊었다(少)/ 상간(相看)하매 맥로(陌路)와 같지만/ 마음을 논하매 추월(秋月)처럼 밝다(皎)/ 괴납(壞衲)의 실은 잠사(蠶絲)가 아니고/ 조가(助歌)의 소리는 새가 있다/ 성궐(城闕)은 금일 래로/ 일구(一漚)에 일찍이 이미 밝았다(曉). 스님은 이적(異迹)이 파다(頗多)했는데 여기에선 번거롭게(繁) 서술하지 않는다. 멸후에 문인(門人)이 건탑(建塔)하고 석영(石影)을 새겼다. 본국에서 시호를 진적선사(眞寂禪師)라 했고 탑왈 보혜(普慧)다.
●頭子; 동물의 머리니 자는 후철. 여금의 서북 방언에 사람이나 혹 식물의 머리를 잡아 두단자(頭蛋子)라고 부름 (청해의 낙도와 감숙의 난주).
●不動尊; 즉 부동명왕(不動明王)이니 또한 널리 불보살을 가리킴. 그것이 생사와 번뇌에 움직이는 바가 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세간에서 존중하는 바인지라 고로 일컬음.
●浪浪宕宕; 유연(悠然)히 자재(自在)함.
●陌路; 1. 밭 사이의 작은 길. 2. 노상에서 서로 만나매 잘 알지 못하는 사람. 또한 명칭이 맥로인(陌路人).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陝府龍谿和尙 上堂謂衆曰 直饒說似箇無縫塔 也不免老僧下一箇橛 作麽生免得下橛 衆無對 師自代曰 下去 僧問 如何是無縫塔 師曰 百寶莊嚴今已了 四門開豁已多時
섬부(陝府) 용계화상(龍谿和尙).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직요(直饒; 가령) 저(箇) 무봉탑(無縫塔)을 설해 주더라도(說似) 또한 노승이 한 개의 말뚝을 내림을 면하지 못하나니 어찌해야 말뚝을 내림을 면득(免得)하겠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이 스스로 대왈(代曰) 내렸다(下去). 승문(僧問) 무엇이 이 무봉탑입니까. 사왈(師曰) 백보(百寶)로 장엄하여 여금에 이미 마쳤고 사문(四門)을 열어 공활(空豁)한 지 이미 다시(多時)다.
前撫州黃山月輪禪師法嗣
郢州桐泉山和尙 初參黃山 問天門一合十方無路 有人道得擺手出漳江 師對曰 蟄戶不開龍無龍句 黃山曰 是爾恁麽道 師曰 是卽直言是 不是直言不是 黃山曰 擺手出漳江 黃山復問 卞和到處荊山秀 玉印從他天子傳時如何 師曰 靈鶴不於林下憩 野老不重太平年 黃山深肯之 師住後僧問 如何是相傳底事 師曰 龍吐長生水 魚吞無盡漚 問請師挑揥〈他狄切〉 師曰 攂鼓轉船頭 棹挑波裏月
●天門; 一指天 二皇家正門 此指一
●漳江; 原名霄溪 福建省南部主要獨流入海河流之一 [百度百科]
●蟄戶; 蟄居的門戶
●挑揥; 挑剔 指點 點檢
영주(郢州) 동천산(桐泉山) 화상. 황산(黃山)을 초참(初參)하자 묻되 천문(天門)이 한 번 닫히면(合) 시방에 길이 없다. 어떤 사람이 말함을 얻으면 손을 흔들고(擺) 장강(漳江)을 벗어날 것이다. 스님이 대왈(對曰) 칩호(蟄戶)가 열리지 않았으니 용(龍)이 용구(龍句)가 없습니다. 황산이 가로되 이는 네가 이렇게 말하는가. 사왈(師曰) 옳으면(是) 곧 옳다고 바로(直) 말하고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바로 말합니다. 황산이 가로되 손을 흔들고 장강(漳江)을 벗어났다. 황산이 다시 묻되 변화(卞和)가 이르는 곳에 형산(荊山)이 빼어나고(秀) 옥인(玉印)은 저 천자로 좇아 전할 때 어떠한가. 사왈 영학(靈鶴)은 임하(林下)에 쉬지(憩) 않고 야로(野老)는 태평년(太平年)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황산이 깊이 수긍했다. 스님이 주후(住後)에 승문(僧問) 무엇이 이 상전(相傳)하는 일입니까. 사왈 용은 장생수(長生水)를 토하고 고기는 무진구(無盡漚)를 삼킨다. 묻되 스님의 도체(挑揥)〈他狄切〉를 청합니다. 사왈 북을 쳐서(攂) 선두(船頭)를 돌리고 노로 파도 속의 달을 들어올린다(挑). .
●天門; 1. 천(天)을 가리킴. 2. 황가(皇家)의 정문.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漳江; 원명(原名)은 소계(霄溪). 이는 복건성 남부의 주요한 독류(獨流)며 입해(入海)하는 하류(河流)의 하나 [백도백과].
●蟄戶; 칩거(蟄居)하는 문호(門戶).
●挑揥; 도척(挑剔)이니 지점(指點)ㆍ점검.
前洛京韶山寰普禪師法嗣
潭州文殊和尙 僧問 如何是祝融峯前事 師曰 巖前瑞草生 問仁王登位萬姓霑恩 和尙出世何如 師曰 萬里長沙駕鐵船 問如何是本爾莊嚴 師曰 菊華原上景 行人去路長
●祝融峯; 南嶽衡山祝融峰 南嶽小錄曰 祝融峰 去地高九千七百八十丈 在諸峰之北 最高 擁諸峰而直上
담주(潭州) 문수화상(文殊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축융봉(祝融峯) 앞의 일입니까. 사왈(師曰) 암전(巖前)에 서초(瑞草)가 난다. 묻되 인왕(仁王)이 등위(登位)하면 만성(萬姓)이 점은(霑恩; 은혜에 젖다)하거니와 화상이 출세하여 어떻습니까(何如). 사왈 만 리의 장사(長沙)에 철선(鐵船)을 부린다. 묻되 무엇이 이 본이(本爾; 본래)의 장엄입니까. 사왈 국화(菊華)는 언덕 위(原上)의 풍경(風景)이며 행인의 갈 길이 멀다(去路長).
●祝融峯; 남악 형산 축융봉이니 남악소록(南嶽小錄)에 가로되 축융봉은 땅과 떨어진 높이가 9천7백8십 장(丈)이다. 모든 봉우리의 북쪽에 있으며 가장 높다. 모든 봉우리를 안고 직상(直上)했다.
景德傳燈錄卷第二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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