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23 계유선사(啓柔禪師)-청면선사(淸免禪師)

태화당 2025. 10. 5. 13:36

景德傳燈錄卷第二十三

 

吉州靑原山行思禪師第七世下

韶州雲門山文偃禪師法嗣下三十六人

南嶽般若啓柔禪師 2094

筠州黃檗法濟禪師 2095

襄州洞山守初大師 2095

信州康國耀和尙 2101

潭州谷山豐禪師 2102

頴州羅漢匡果禪師 2102

朗州滄谿璘和尙 2103

筠州洞山淸稟禪師 2104

蘄州北禪寂和尙 2105

洪州泐潭道謙禪師 2106

廬州南天王永平禪師 2106

湖南永安朗禪師 2107

湖南潭明和尙 2107

金陵淸涼明禪師 2108

金陵奉先深禪師 2108

西川靑城乘和尙 2109

潞府妙勝臻禪師 2109

興元普通封和尙 2110

韶州燈峯和尙 2111

韶州大梵圓和尙 2112

澧州藥山圓光禪師 2112

信州鵝湖雲震禪師 2113

廬山開先淸耀禪師 2114

襄州奉國淸海禪師 2115

韶州慈光和尙 2116

潭州保安師密禪師已上二十六人見錄2116

洪州雲居山融禪師

衡州大聖寺守賢禪師

廬州北天王徽禪師

郢州芭蕉山弘義禪師

眉州福化院光禪師

廬州東天王廣慈禪師

信州西禪欽禪師

江州慶雲眞禪師

筠州洞山凜禪師

韶州雙峯慧眞大師已上十人無機緣語句不錄

隨州雙泉山永禪師法嗣一人

廣州大通和尙一人無機緣語句不錄

台州瑞巖師彦禪師法嗣二人

南嶽橫龍和尙 2117

溫州瑞峯院神祿禪師已上二人見錄 2117

懷州玄泉彦禪師法嗣五人

鄂州黃龍誨機大師 2118

洛京柏谷和尙 2120

池州和龍和尙 2121

懷州玄泉第二世和尙 2121

潞府妙勝玄密禪師已上五人見錄2122

福州羅山道閑禪師法嗣十九人

洪州大寧隱微禪師 2122

婺州明招德謙禪師 2125

衡州華光範禪師 2132

福州羅山紹孜禪師 2133

西川慧禪師 2133

建州白雲令弇禪師 2135

虔州天竺義證禪師 2136

吉州淸平惟曠禪師 2137

婺州金柱義昭和尙 2138

潭州谷山和尙 2138

湖南道吾山從盛禪師 2138

福州羅山義因禪師 2139

灌州靈巖和尙 2140

吉州匡山和尙 2140

福州興聖重滿禪師 2141

潭州寶應淸進禪師已上十六人見錄2142

漢州綿竹縣延慧禪師

潭州龍會山鑒禪師

安州穆禪師已上三人無機緣語句不錄

安州白兆山志圓禪師法嗣十三人

朗州大龍山智洪禪師 2142

襄州白馬山行靄禪師 2142

郢州大陽山行沖禪師 2143

安州白兆山懷楚禪師 2143

蘄州四祖山淸皎禪師 2144

蘄州三角山志操禪師 2144

晉州興敎師普禪師 2145

蘄州三角山眞鑒禪師已上八人見錄2146

郢州興陽山和尙

郴州東禪玄偕禪師

新羅國慧雲禪師

安州慧日院玄諤禪師

京兆大秦寺彦賓禪師已上五人無機緣語句不錄

潭州藤霞和尙法嗣二人

澧州藥山第七世和尙一人見錄2146

潭州雲蓋山和尙一人無機緣語句不錄

洪州鳳樓山同安常察禪師法嗣一人

袁州仰山良供禪師一人無機緣語句不錄

吉州禾山無殷禪師法嗣五人

廬山永安慧度禪師

撫州曹山義崇禪師

吉州禾山契雲禪師

漳州保福和尙

洪州翠嚴師陰禪師已上五人無機緣語句不錄

潭州雲蓋山景和尙法嗣三人

衡嶽南臺藏禪師 2147

幽州潭柘水從實禪師 2148

潭州雲蓋山證覺禪師三人見錄2148

廬山歸寂寺澹權禪師法嗣二人

鄂州黃龍蘊和尙

壽州泊山和尙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廬山歸宗懷惲禪師法嗣二人

歸宗第四世弘章禪師一人見錄2149

歸宗寺巖密禪師一人無機緣語句不錄

池州嵆山章禪師法嗣一人

隋州雙泉山道虔禪師一人見錄 2149

洪州雲居山懷岳禪師法嗣五人

揚州風化院令崇禪師 2150

澧州藥山忠彦禪師 2150

梓州龍泉和尙已上三人見錄2151

雲居山住緣和尙

雲居山住滿和尙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撫州荷玉山光慧禪師法嗣一人

荷玉山福禪師一人無機緣語句不錄

筠州洞山道延禪師法嗣二人

筠州上藍慶禪師一人見錄2151

洞山敏禪師第五世一人無機緣語句不錄

撫州金峯從志大師法嗣二人

洪州大寧神降禪師

澧州藥山彦禪師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襄州鹿門山處眞禪師法嗣六人

益州崇眞和尙 2152

鹿門山第二世譚和尙 2152

襄州谷隱智靜大師 2153

廬山佛手巖行因禪師已上四人見錄2153

襄州靈谿山明禪師

洪州大安寺眞上坐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撫州曹山慧霞禪師法嗣三人

嘉州東汀和尙一人見錄2155

雄州華嚴正慧大師

泉州招慶院堅上座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華州草庵法義禪師法嗣一人

泉州龜洋慧忠禪師一人見錄2155

潭州報慈藏嶼禪師法嗣一人

益州聖興寺存和尙一人無機緣語句不錄

襄州含珠山審哲禪師法嗣六人

洋州龍穴山和尙 2158

唐州大乘山和尙 2159

襄州延慶歸曉大師 2159

襄州含珠山眞和尙已上四人見錄 2159

含珠山璋禪師

第二世含珠山偃和尙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鳳翔府紫陵匡一大師法嗣三人

幷州廣福道隱禪師 2160

紫陵第二世微禪師 2160

興元府大浪和尙已上三人見錄 2161

洪州同安威禪師法嗣二人

陳州石鏡和尙一人見錄2161

中同安志和尙一人無機緣語句不錄

襄州石門山獻禪師法嗣一人

石門山第二世慧徹禪師一人見錄2161

襄州廣德義和尙法嗣三人

襄州廣德第二世延和尙一人見錄2164

荊州上泉和尙

廣德周和尙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京兆香城和尙法嗣一人

鄧州羅紋和尙一人無機緣語句不錄

杭州瑞龍院幼璋禪師法嗣一人

西川德言禪師一人無機緣語句不錄

隋州護國守澄禪師法嗣八人

隋州智門守欽大師 2166

護國第二世知遠大師 2167

安州大安山能和尙 2168

頴州薦福院思禪師 2168

潭州延壽和尙 2168

護國第三世志朗大師已上六人見錄2169

舒州香鑪峯瓊和尙

京兆盤龍山滿和尙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洛京靈泉歸仁禪師法嗣二人

襄州石門寺遵和尙

郢州大陽山堅和尙已上二人無機緣語句不錄

京兆永安院善靜禪師法嗣一人

大明山和尙一人無機緣語句不錄

蘄州烏牙山彦賓禪師法嗣三人

安州大安山興古禪師 2169

蘄州烏牙山行朗禪師已上二人見錄2170

虢州廬山常禪師一人無機緣語句不錄

鳳翔府靑峯和尙法嗣七人

西川靈龕和尙 2170

京兆紫閣山端己禪師 2171

房州開山懷畫禪師 2171

幽州傳法和尙 2172

益州淨衆歸信禪師 2172

靑峯第二世淸免禪師已上六人見錄2173

鳳翔府長平山滿禪師一人無機緣語句不錄

洋州大巖白和尙法師一人

卭州碧雲和尙一人無機緣語句不錄

吉州靑原山行思禪師第七世下

 

韶州雲門山文偃禪師法嗣

南嶽般若寺啓柔禪師 僧問 西天以蠟人爲驗 此土如何 師曰 新羅人草鞋 問如何是千聖同歸底道理 師曰 未達苦空境 無人不歎嗟 師上堂 聞三下板聲大衆始集 師因示一偈曰 妙哉三下板 諸德盡來參 旣善分時節 今吾不再三 師次住荊南延壽 後住京兆廣敎院示滅

板聲; 板 打鳴器具之一 又作版 鈑 板掛於寺院內一定之場所 是報知時刻或集會時敲打之器具 大多爲木製 板面上竝書寫生死事大等偈語 亦有用靑銅製造者 然爲數極少 又依板之形狀 而有雲板 魚板等名稱 禪林中 板有大板小板等分別 懸掛於庫司前之板 比其他諸堂之板較大 故稱大板 懸於方丈室前之板 稱爲方丈板 懸於衆寮前 稱爲外板 懸於衆寮內 稱爲內板 懸於半鐘之下 稱爲鐘板 其他另有首座板 照堂板 客板等

 

남악(南嶽) 반야사 계유선사(啓柔禪師). 승문(僧問) 서천(西天)에선 납인(蠟人; 저본에 臘人으로 지었음)으로써 시험합니다만 차토(此土)는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신라인(新羅人)의 초혜(草鞋; 짚신). 묻되 무엇이 이 천성(千聖)이 한가지로 돌아가는 도리입니까. 사왈 고()가 공()한 경계에 도달하지 못하면 탄차(歎嗟; 嗟歎)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스님이 상당하자 3(; 量詞)의 판성(板聲)을 듣고 대중이 비로소 모였다. 스님이 인하여 1게를 보여 가로되 묘하구나(妙哉) 3()의 판성(板聲; )이여/ 여러 대덕(大德; )이 다 내참(來參)하는구나/ 이미 잘 시절을 분변(分辨)하니/ 이제 내가 재삼(再三)하지 않겠다. 스님이 다음에 형남(荊南) 연수(延壽)에 주()했고 후에 경조(京兆) 광교원(廣敎院)에 주()하다가 시멸(示滅)했다.

板聲; ()은 타명기구(打鳴器具)의 하나. 또 판()ㆍ판()으로 지음. ()은 사원 내의 일정한 장소에 걸며 이는 시각 혹 집회를 보지(報知)할 때 고타(敲打)하는 기구임. 대다(大多)가 목제가 되며 판면(板面) 위에 아울러 생사사대(生死事大) 등의 게어(偈語)를 서사함. 또한 청동을 사용하여 제조하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수가 극히 적음이 됨. 또 판의 형상(形狀)에 의해 운판(雲板)ㆍ어판(魚板) 등의 명칭이 있음. 선림 중에서 판은 대판소판(大板小板) 등의 분별이 있으며 고사(庫司) 앞에 매달아 거는 판은 기타 제당(諸堂)의 판에 비해 조금 크므로 고로 명칭이 대판이며 방장실 앞에 매다는 판은 일컬어 방장판이라 하며 중료(衆寮) 앞에 매달면 일컬어 외판(外板)이라 하고 중료 안에 매달면 일컬어 내판(內板)이라 하고 반종(半鐘)의 아래 매달면 일컬어 종판(鐘板)이라 함. 기타 따로 수좌판(首座板)ㆍ조당판(照堂板)ㆍ객판(客板) 등이 있음.

 

筠州黃檗山法濟禪師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與天下人作榜樣 師上堂示衆曰 空生大覺中 如海一漚發 各各當人無事 又上堂良久曰 若識得黃檗帳子 平生行脚事畢 珍重

 

균주(筠州) 황벽산(黃檗山) 법제선사(法濟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천하인에게 방양(榜樣; 저본에 膀樣으로 지었음)을 지어준다. 스님이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허공이 대각(大覺) 가운데 생겨남이 바다에 한 물거품이 일어남과 같나니(楞嚴經六) 각각의 당인(當人)이 무사(無事)하다. 또 상당하여 양구(良久)하고 가로되 만약 황벽(黃檗)의 장자(帳子; 後綴)를 식득(識得)하면 평생의 행각사(行脚事)를 마친다. 진중(珍重)하라.

 

襄州洞山守初崇慧大師 初參雲門 雲門問 近離什麽處 師曰 楂渡 門曰 夏在甚處 師曰 湖南報慈 曰甚時離彼 師曰 八月二十五 門曰 放汝三頓棒 師至明日却上問訊 曰昨日蒙和尙放三頓棒 不知過在什麽處 門曰 飯袋子 江西湖南便與麽去 師於言下大悟 遂云從今已去 向十字街頭 不畜一粒米 不種一莖菜 接待十方往來一箇箇 敎伊拈却膱脂帽子 脫却鶻臭布衫 敎伊洒洒落落地作箇明眼衲僧 豈不快哉 雲門云 飯袋子 身如椰子大 開得許大口

飯袋子; 猶今言飯桶 甚罵詈之語 子 助詞 喩指意在飮食用功 除食飮之外 一無所能者 與酒囊同義

膱脂帽子鶻臭布衫; 沾染油脂的帽子 帶著鶻腥的布衫 喩指無明煩惱 情識知見等

洒洒落落; 又作灑灑落落 灑灑 形容心不迷惑 落落 謂不停滯於物 卽心不執著 遠離所有束縛與染汚

椰子; 椰子樹的果實

許大口; 許 這樣 這般

 

양주(襄州) 동산수초(洞山守初) 숭혜대사(崇慧大師). 운문을 초참(初參)하자 운문이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사왈(師曰) 사도(楂渡)입니다. 문왈(門曰) 여름은 어느 곳에 있었느냐. 사왈 호남 보자(報慈)입니다. 가로되 어느 때 거기를 떠났느냐. 사왈 825입니다. 문왈(門曰) 너에게 3()의 방()을 놓는다. 스님이 명일에 이르자 도리어 올라가 문신(問訊)하고 가로되 어제 화상이 3돈의 방을 놓으심을 입었거니와()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문왈(門曰) 반대자(飯袋子), 강서니 호남이니 하면서 바로 이렇게 가느냐(; 去字 補入). 스님이 언하에 대오했다. 드디어 이르되 금일로부터 이거(已去; 이후)에 십자가두를 향해 한 톨의 쌀도 저축하지 않고 한 줄기의 채소도 심지 않고 시방의 왕래하는 일개개(一箇箇; 한 개마다)를 접대(接待)하면서 그로 하여금 직지모자(膱脂帽子)를 집어 버리고(拈却) 골취포삼(鶻臭布衫)을 벗어버리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쇄쇄낙락지(洒洒落落)에서 저() 명안납승이 되게 한다면 어찌 시원하지 않겠습니까. 운문이 이르되 반대자(飯袋子), 몸은 야자(椰子)의 크기와 같으면서 이다지도 큰 입(許大口)을 여느냐(開得).

飯袋子; 여금에 밥통(飯桶)이라고 말함과 같음. 매우 욕하는 말임. ()는 조사. 뜻이 음식에만 공력(功力)을 씀이 있고 식음(食飮)을 제한 밖엔 하나도 능한 바가 없는 자를 비유로 가리킴. 주낭(酒囊)과 같은 뜻.

膱脂帽子鶻臭布衫; 유지(油脂)에 첨염(沾染; 오염)된 모자와 골성(鶻腥; 새매의 비린 냄새)을 가진 포삼(布衫)이니 무명번뇌와 정식지견(情識知見)등을 비유로 가리킴.

洒洒落落; 또 쇄쇄낙락(灑灑落落)으로 지음. 쇄쇄(灑灑)는 마음이 미혹하지 않음을 형용하고 낙락(落落)은 이르자면 사물에 정체하지 않음임. 곧 마음이 집착하지 않고 소유한 속박과 염오(染汚)를 멀리 여읨.

椰子; 야자수(椰子樹)의 과실(果實).

許大口; ()는 저양(這樣). 저반(這般).

 

師住後僧問 迢迢一路時如何 師曰 天晴不肯去直待雨淋頭 曰諸聖作麽生 師曰 入泥入水 問心未生時法在什麽處 師曰 風吹荷葉動 決定有魚行 問師登師子座 請師唱道情 師曰 晴乾開水道 無事設曹司 曰恁麽卽謝師指示 師曰 賣鞋老婆脚䟐趚上郞擊切 下七迹切 問如何是三寶 師曰 商量不下 問如何是無縫塔 師曰 十字街頭石師子 問如何是免得生死底法 師曰 見之不取思之三年 問離却心機意識 請師一句 師曰 道士著黃瓮裏坐 問非時親覲請師一句 師曰 到處怎生擧 曰據現定擧 師曰 放汝三十棒 曰過在什麽處 師曰 罪不重科

天晴不肯去直待雨淋頭; 本爲民間諺語 禪家用來批評學人不能抓住時機當下悟入

師子座; 又作猊座 師子床 獅子座 原指釋迦牟尼之座席 佛爲人中獅子 故佛所坐之處(床 地等) 總稱師子座 又坐此座說無爲師子吼法 故亦稱師子座 後泛指寺院中佛菩薩之臺座以及高僧說法時之座席 文殊菩薩像 跨乘獅子 意亦如上述 [長阿含十七沙門果經 大智度論七 同八 華嚴經探玄記三]

曹司; 一官署 曹郞中職司所在 二吏目(官職名)

䟐趚; 行貌 廣韻 䟐 䟐趚 行貌

罪不重科; 重 重複 科 判決 懲處

 

스님이 주후(住後)에 승문(僧問) 일로(一路)가 멀고 멀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하늘이 개였을 적엔 떠남을 수긍하지 않고 바로 비 쏟아짐을 기다린다(天晴不肯去直待雨淋頭). 가로되 제성(諸聖)은 어떻습니까. 사왈 입니입수(入泥入水)한다. 묻되 마음이 나지 않았을 때 법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바람이 불어 하엽(荷葉; 연잎)이 움직이면 결정코 물고기의 다님이 있다. 묻되 스님이 사자좌(師子座)에 올랐으니 청컨대 스님이 도정(道情)을 창()하십시오. 사왈 청건(晴乾; 개이고 乾燥)하면 수도(水道)를 열고 무사(無事)하면 조사(曹司)를 설치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의 지시에 감사합니다. 사왈 신을 파는 노파의 발이 역속(䟐趚)郞擊切이며 七迹切하다. 묻되 무엇이 이 삼보(三寶)입니까. 사왈 상량하지 못한다(商量不下). 묻되 무엇이 이 무봉탑(無縫塔)입니까. 사왈 십자가두의 석사자(石師子). 묻되 무엇이 이 생사를 면득(免得)하는 법입니까. 사왈 이를 보고도 취하지 않으면 이를 생각함이 3년이다. 묻되 심기(心機)와 의식(意識)을 여의어버리고 스님의 1구를 청합니다. 사왈 도사(道士)가 황의(黃衣; )를 입고() 독 속에 앉았다. 묻되 비시(非時)에 친히 뵙니다(). 스님의 1구를 청합니다. 사왈 도처(到處)에 어떻게(怎生) ()하는가. 가로되 현정(現定)에 의거해 거()합니다. 사왈 너에게 30() 놓는다. 가로되 허물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죄부중과(罪不重科).

天晴不肯去直待雨淋頭; 본래 민간의 언어(諺語; 속담)가 됨. 선가에서 학인이 능히 시기를 잡아(抓住) 당하에 오입하지 못함을 비평함에 사용함.

師子座; 또 예좌(猊座)ㆍ사자상(師子床)ㆍ사자좌(獅子座)로 지음. 원래 석가모니의 좌석을 가리킴. 불타는 사람 중의 사자가 되는지라 고로 불타가 앉는 바의 곳()을 모두 사자좌로 일컬음. 또 이 좌에 앉아 무위의 사자후법을 설하는지라 고로 또 명칭이 사자좌임. 후에 널리 사원 중의 불보살의 대좌(臺座)와 그리고 고승이 설법할 때의 좌석을 가리켰음. 문수보살상은 사자를 과승(跨乘; 타다)했는데 뜻이 또 위의 서술과 같음 [장아함십7사문과경. 대지도론7, 8. 화엄경탐현기3].

曹司; 1. 관서(官署)니 조낭중(曹郞中)의 직사(職司; 직무)가 있는 곳. 2. 이목(吏目; 관직의 이름).

䟐趚; 행모(行貌). 광운 력() 역속(䟐趚)이니 행모(行貌).

罪不重科; ()은 중복(重複)이며 과()는 판결, 징처(懲處; 징벌하여 처분함).

 

問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楚山頭倒卓 曰出水後如何 師曰 漢水正東流 問如何是吹毛劍 師曰 金州客尼 問車住牛不住時如何 師曰 用駕車漢作麽 問如何是衲僧分上事 師曰 雲裏楚山頭 決定多風雨 問海竭人亡時如何 師曰 難得 曰便恁麽去時如何 師曰 雲在靑天水在缾 問有無雙泯 權實兩忘 究竟如何 師曰 楚山頭倒卓 曰還許學人領會也無 師曰 也有方便 曰請師方便 師曰 千里萬里 問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楖栗木拄杖 曰見後如何 師曰 竇八布衫 問如何是佛 師曰 灼然諦當 問萬緣俱息意旨如何 師曰 甕裏石人賣棗團 問如何是洞山劍 師曰 作麽 僧曰 學人要知 師曰 罪過 問乾坤休著意 宇宙不留心 學人只恁麽 師又作麽生 師曰 峴山亭起霧 灘峻不留船 問大衆雲臻 請師撮其樞要略擧大綱 師曰 水上浮漚呈五色 海底蝦蟇叫月明 問正當恁麽時 文殊普賢在什麽處 師曰 長者八十一其樹不生耳 曰意旨如何 師曰 一則不成二則不是

金州; 今陝西安康

樞要; 禪法之要旨

長者八十一其樹不生耳; 見上二第十五祖迦那提婆章

 

묻되 연화(蓮華)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초산(楚山)의 꼭대기()가 거꾸로 섰다(倒卓).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한수(漢水)가 정동(正東)으로 흐른다. 묻되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사왈 금주(金州)의 객니(客尼). 묻되 수레는 머물지만 소는 머물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수레를 부리는 자(駕車漢)를 써서 무엇하리오. 묻되 무엇이 이 납승의 분상(分上)의 일입니까. 사왈 구름 속의 초산의 꼭대기(楚山頭)엔 결정쿄 풍우가 많다. 묻되 바다는 고갈(枯渴; )하고 사람은 사망(死亡; )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얻기 어렵다. 가로되 바로 이렇게 갈 때 어떻습니까. 사왈 구름은 청천(靑天)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 묻되 유무(有無)가 쌍민(雙泯)하고 권실(權實)을 양망(兩忘)하면 구경(究竟; 필경)에 어떠합니까. 사왈 초산(楚山)의 꼭대기()가 거꾸로 섰다. 가로되 도리어 학인이 영회(領會)함을 허락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또한 방편이 있다. 가로되 스님의 방편을 청합니다. 사왈 천리만리(千里萬里).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즐률목(楖栗木; 저본에 榔栗木으로 지었음) 주장자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두팔(竇八; 구멍이 여덟)의 포삼(布衫)이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작연(灼然)히 체당(諦當; 穩當)하다. 묻되 만연(萬緣)을 모두() 쉰다()는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옹리(甕裏)의 석인(石人)이 조단(棗團)을 판다. 묻되 무엇이 이 동산(洞山)의 검()입니까. 사왈 무어라고(作麽). 승왈(僧曰) 학인이 알기를 요합니다. 사왈 죄과(罪過). 묻되 건곤에 착의(著意)함을 쉬고() 우주에 유심(留心)하지 않나니 학인은 다만 이러합니다만 스님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현산정(峴山亭)에 안개가 일어나니 여울()이 험준해 배를 머물지 못한다. 묻되 대중이 운진(雲臻; 운집)했으니 청컨대 스님이 그 추요(樞要)를 모으고() 대강(大綱)을 약거(略擧)하십시오. 사왈 수상(水上)의 부구(浮漚)가 오색(五色)을 보이고() 해저의 하마(蝦蟇; 두꺼비)월명(月明)을 부르짖는다. 묻되 바로 이러함을 당한 때 문수와 보현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장자가 81에 그 나무에 귀가 나지 않는다(長者八十一其樹不生耳). 가로되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일()은 곧 이루지 못하고 이()는 곧 이것이 아니다.

金州; 지금의 섬서(陝西) 안강(安康).

樞要; 선법(禪法)의 요지(要旨).

長者八十一其樹不生耳; 2 15조 가나제바장(迦那提婆章)을 보라.

 

信州康國耀和尙 僧問 文殊與維摩對譚何事 師曰 汝向髑髏後會始得 曰古人道 髑髏裏薦取又如何 師曰 汝還薦得麽 曰恁麽卽遠人得遇於師去也 師曰 莫謾語好

 

신주(信州) 강국요(康國耀) 화상. 승문(僧問) 문수와 유마가 무슨 일을 대담(對譚)했습니까. 사왈(師曰) 네가 촉루(髑髏) 뒤를 향해 이회(理會)해야 비로소 옳다. 가로되 고인이 말하되 촉루 속을 천취(薦取)하라 함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도리어 천득(薦得)하느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원인(遠人)이 스님을 득우(得遇)하고 갑니다. 사왈 속이는 말을 하지 말아야 좋으니라.

潭州谷山豐禪師亦住興元府普通院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雪嶺梅華綻 雲洞老僧驚 師上堂示衆曰 駿馬機前異 遊人肘後懸 旣參雲外客 試爲老僧看 才有僧出 師便打云 何不早出頭來

肘後; 百度百科 肘後符 晉葛洪曾撰醫書肘後備急方 簡稱肘後方 意謂卷帙不多 可以懸於肘後 後因借以泛指隨身攜帶的丹方

 

담주(潭州) 곡산풍(谷山豐) 선사또한 興元府 普通院했다.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의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설령(雪嶺)에 매화가 터지매 운동(雲洞)의 노승이 놀란다. 스님이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준마(駿馬)는 기전(機前)에 다르고() 유인(遊人)은 주후(肘後)에 매달았나니 이미 운외객(雲外客)을 참()했으니 시험 삼아 노승을 위해 보아라. 겨우 어떤 중이 나오자 스님이 바로 때리고 이르되 왜 일찍 출두(出頭)하여 오지 않느냐.

肘後; 백도백과. 주후부(肘後符) () 갈홍(葛洪)이 일찍이 의서(醫書)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을 지었는데 간칭이 주후방(肘後方). 뜻으로 이르자면 권질(卷帙)이 많지 않아 가이(可以) 주후에 매달았음. 후에 인하여 가차(假借)해 널리 수신(隨身)하며 휴대하는 단방(丹方)을 가리켰음.

 

頴州羅漢匡果禪師 僧問 如何是吹毛劍 師曰了 問和尙百年後 忽有人問 和尙向什麽處去 如何醻對 師曰 久後遇作家分明擧似 曰誰是知音者 師曰 知音者卽不恁麽問 問如何是羅漢境 師曰 松檜古貌 問鑿壁偸光時如何 師曰錯 曰爭奈苦志專心 師曰 錯錯

鑿壁偸光; 祖庭事苑一 鑿壁 西京雜記云 匡衡 字雉圭 東陽人 好讀書 家貧無油燭 乃鑿隣壁孔 映光讀書 位至丞相

苦志; 苦其心志 謂磨練自己的意志 猶苦心

 

영주(頴州) 라한(羅漢) 광과(匡果; 저본에 匡界로 지었음)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사왈(師曰) (). 묻되 화상이 백년후(百年後)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묻되 화상은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한다면 어떻게 수대(醻對; 와 같음. 應對할 수. 곧 응대)하겠습니까. 사왈 오랜 후에 작가를 만나거든 분명히 들어 보여라(擧似). 가로되 누가 이 지음자(知音者)입니까. 사왈 지음자는 곧 이렇게 묻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라한경(羅漢境)입니까. 사왈 송회(松檜)가 옛 모습(古貌)이다. 묻되 벽을 뚫어 빛을 훔칠(鑿壁偸光) 때 어떻습니까. 사왈 틀렸다. 가로되 고지(苦志)로 전심(專心)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틀렸다, 틀렸다.

鑿壁偸光; 조정사원1. 착벽(鑿壁)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이르되 광형(匡衡)은 자()가 치규며 동양 사람이다. 독서를 좋아했으나 집이 가난해 유촉(油燭)이 없는지라 이에 이웃 벽 구멍을 뚫어 빛을 비춰 독서했는데 지위가 승상에 이르렀다.

苦志; 그 심지(心志)를 애씀()이니 이르자면 자기의 의지(意志)를 마련(磨練). 고심(苦心)과 같음.

 

朗州滄谿璘和尙 僧問 如何是滄谿境 師曰 面前水正東流 問如何是滄谿家風 師曰 入來便見 問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雲門和尙向什麽處去也 師曰 見麽 曰錯 師曰錯錯 問如何是西來意 師曰 不錯 師因事有頌曰 天地指前徑 時人莫彊移 箇中生解會 眉上更安眉

世間相常住; 爲表示俗諦常住之用語 法華經方便品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낭주(朗州) 창계린(滄谿璘) 화상. 승문(僧問) 무엇이 이 창계경(滄谿境)입니까. 사왈(師曰) 면전의 물이 정동(正東)으로 흐른다. 묻되 무엇이 이 창계(滄谿)의 가풍입니까. 사왈 들어오면 바로 본다. 묻되 이 법이 법위(法位)에 머물면서 세간상으로 상주한다(世間相常住) 하니 운문화상이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보느냐. 가로되 틀렸습니다(). 사왈 틀렸다 틀렸다(錯錯).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틀리지 않았다. 스님이 사건(事件)으로 인해 송이 있어 가로되 천지(天地)가 전경(前徑; 앞의 길)을 가리키니/ 시인(時人)은 억지로() 옮기지 말아라/ 개중(箇中; 此中)에 해회(解會; 理解)를 내면/ 눈썹 위에 다시 눈썹을 안치함이다.

世間相常住; 속제(俗諦)가 상주함을 표시하는 용어가 됨. 법화경 방편품. 이 법이 법위에 머물면서 세간상으로 상주한다(世間相常住).

 

筠州洞山普利院第八世住淸稟禪師 泉州仙遊人也 姓李氏 幼禮中峯院鴻謐爲師 年十六福州太平寺受戒 初詣南嶽參惟勁頭陀未染指 及抵韶陽禮祖塔 迴造雲門 雲門問曰 今日離什麽處 曰慧林 雲門擧拄杖曰 慧林大師恁麽去 汝見麽 曰深領此問 雲門顧左右微笑而已 師自此入室印悟 乃之金陵 國主李氏請居光睦 未幾復命入澄心堂 集諸方語要 經十稔迎住洞山 開堂日維那白槌曰 法筵龍象衆當觀第一義 師曰 也好消息 只恐汝錯會 僧問 雲門一曲師親唱 今日新豐事若何 師曰 也要道却

法筵龍象衆當觀第一義; 禪院開堂時的儀式語 新任住持僧說法之前 由維那或其他有地位的僧人擊槌之後當衆念誦

 

균주(筠州) 동산(洞山) 보리원(普利院) 8세주(第八世住) 청품선사(淸稟禪師). 천주(泉州) 선유(仙遊) 사람이며 성이 이씨(李氏). 유년(幼年)에 중봉원(中峯院) 홍밀(鴻謐)을 예알하여 스승으로 삼았고 나이 16에 복주(福州) 태평사에서 수계했다. 처음 남악(南嶽)으로 나아가 유경(惟勁) 두타(頭陀)를 참()해 염지(染指)하지 못했고 및 소양(韶陽)에 다다라 조탑(祖塔)을 참례하고 돌아와 운문으로 나아갔다(). 운문이 문왈(問曰) 금일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혜림(慧林)입니다. 운문이 주장자를 들고 가로되 혜림대사(慧林大師)가 이렇게 가는데 네가 보느냐. 가로되 차문(此問)을 깊이 영회(領會)했습니다. 운문이 좌우를 돌아보며 미소할 따름이었다. 스님이 이로부터 입실하여 인오(印悟; 깨침을 인가 받음)했다. 이에 금릉(金陵)으로 가자 국주(國主) 이씨의 청으로 광목(光睦)에 거주했다. 오래지 않아(未幾) 다시 명()하여 징심당(澄心堂)에 들어갔는데 제방의 어요(語要)를 모았으며 10(; )을 경과하자 동산(洞山)으로 맞이해 주()하게 했다. 개당일에 유나가 백추(白槌)하고 가로되 법연의 용상중이여 마땅히 제1의를 관하라(法筵龍象衆當觀第一義; 저본에 으로 지었음). 사왈 또한 좋은 소식이나 다만 네가 착회(錯會)할까 염려스럽다. 승문(僧問) 운문의 일곡(一曲)을 스님이 친창(親唱)하셨거니와 금일 신풍사(新豐事; 洞山事)는 어떻습니까. 사왈 또한 말해버림을 요한다.

法筵龍象衆當觀第一義; 선원 개당 시의 의식어(儀式語). 신임 주지승이 설법하기 전, 유나 혹 기타 지위가 있는 승인으로 부터의 격추(擊槌) 뒤에 당중(當衆)하여 염송(念誦).

 

蘄州北禪寂和尙悟通大師 師問僧 什麽處來 曰黃州來 師曰 在什麽院 曰資福 師曰 福將何資 曰兩重公案 師曰爭奈在北禪手裏何 曰在手裏卽收取 師便打

 

기주(蘄州) 북선적(北禪寂) 화상 오통대사(悟通大師).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황주(黃州)에서 왔습니다. 사왈(師曰) 어느 원()에 있었느냐. 가로되 자복(資福)입니다. 사왈 복()은 무엇을 가지고 도우느냐(). 가로되 양중공안(兩重公案)입니다. 사왈 북선(北禪)의 손안에 있음을 어찌하겠는가. 가로되 손안에 있거든 곧 수취(收取)하십시오. 스님이 바로 때렸다.

 

洪州泐潭道謙禪師 僧問 如何是泐潭家風 師曰 闍梨到來幾日 問但有纖毫卽是塵 不有時作麽生 師以手掩兩目 問當陽擧唱誰是聞者 師曰 老僧不患耳聾

 

홍주(洪州) 늑담(泐潭) 도겸선사(道謙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늑담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사리(闍梨)가 도래(到來)한 지 며칠인가. 묻되 단지 섬호(纖毫)가 있으면 즉시(卽是) 티끌이니 있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두 눈을 가렸다(). 묻되 당양(當陽)하여 거창(擧唱)하면 누가 이 듣는 자입니까. 사왈 노승은 이롱(耳聾; 귀가 먹다)의 질환이 아니다.

 

廬州南天王永平禪師 僧問 如何是西來意 師曰 不撒沙 問如何是南天王境 師曰 一任觀看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且領前話 問久戰沙場爲什麽功名不就 師曰 只爲眠霜臥雪深 曰恁麽卽罷息干戈 束手歸朝去也 師曰 指揮使未到爾作

 

여주(廬州) 남천왕(南天王) 영평선사(永平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사왈(師曰) 모래를 뿌리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남천왕경(南天王境)입니까. 사왈 관간(觀看)하는 대로 일임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다만() 전화(前話)를 영회(領會; )하라. 묻되 오래 사장(沙場)에서 전투했는데 무엇 때문에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합니까. 사왈 다만 면상와설(眠霜臥雪)함이 깊기 때문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간과(干戈; 방패와 창. 전쟁)를 파식(罷息)하고 속수(束手)하여 조정(朝廷; )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왈 지휘사(指揮使)가 이르지 않았는데 네가 짓는구나.

 

湖南永安朗禪師 僧問 如何是洞陽家風 師曰 入門便見 曰如何是入門便見 師曰 客是相師 問如何是至極之譚 師曰 愛別離苦

相師; 舊指以相術供職或爲業的人

愛別離苦; 謂常所親愛之人 乖違離散不得共處

 

호남(湖南; 저본에 潮南으로 지었음) 영안랑(永安朗)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동양(洞陽)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입문(入門)하면 바로 본다. 가로되 무엇이 이 입문하면 바로 봄입니까. 사왈 객이 이 상사(相師). 묻되 무엇이 이 지극한 말씀()입니까. 사왈 애별리고(愛別離苦).

相師; 옛적에 상술(相術)로써 공직(供職)하거나 혹 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리켰음.

愛別離苦; 이르자면 늘 친애하던 바의 사람과 괴위(乖違; 反常)하고 이산(離散)하여 함께 거처함을 얻지 못함.

 

湖南潭明和尙 僧問 如何是湘潭境 師曰 山連大嶽水接瀟湘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便合知時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百惑謾勞

謾勞; 徒勞 謾 通漫

 

호남 담명화상(潭明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상담경(湘潭境)입니까. 사왈(師曰) 산은 대악(大嶽)에 잇닿았고() ()는 소상(瀟湘)에 접()했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바로 합당히 때를 안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백혹(百惑)으로 만로(謾勞)하는 신()이다.

謾勞; 헛수고(徒勞). ()은 만()과 통함.

 

金陵淸涼明禪師 江南國主請師上堂 小長老問 凡有言句盡落方便 不落方便請師速道 師曰 國主在此不敢無禮

 

금릉(金陵) 청량명(淸涼明) 선사. 강남국주(江南國主)가 스님의 상당을 청했다. 소장로(小長老)가 묻되 무릇 언구(言句)가 있음은 모두 방편에 떨어집니다. 방편에 떨어지지 않고 청컨대 스님이 속히 말하십시오. 사왈(師曰) 국주(國主)가 여기에 계시니 감히 무례(無禮)하지 않겠다.

 

金陵奉先深禪師 江南國主請開堂日才升座 維那白槌曰 法筵龍象衆當觀第一義 師便云 果然不識 鈍置殺人 時有僧出禮拜問 如何是第一義 師曰 賴遇道了也 曰如何領會 師曰 速禮三拜 師又拈曰 大衆汝道 鈍置落阿誰分上

 

금릉(金陵) 봉선심(奉先深) 선사. 강남국주(江南國主)가 청하여 개당(開堂)하던 날 겨우 승좌(升座)하자 유나(維那)가 백추(白槌)하고 가로되 법연의 용상중이여 마땅히 제1의를 관하라(法筵龍象衆當觀第一義). 스님이 바로 이르되 과연 알지 못하는구나, 사람을 너무 둔치한다(鈍置殺人).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예배하고 묻되 무엇이 이 제1(第一義)입니까. 사왈(師曰) 다행히() 말했음을 만났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속히 삼배(三拜) 예배하라. 스님이 또 염왈(拈曰) 대중이여 너희가 말하라, 둔치(鈍置)가 누구(阿誰)의 분상(分上)에 떨어졌는가.

 

西川靑城大面山乘和尙 僧問 如何是相輪峯 師曰 直聳煙嵐際 曰向上事如何 師曰 入地三尺五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興義門前鼕鼕鼓 曰學人不會 師曰 朝打三千暮打八百

鼕鼕鼓; 祖庭事苑六 鼕鼕鼓 京師街衢置鼓於小樓上 以警昏曉 本朝()太宗時 張公洎製坊名 列牌於樓上 按唐司馬周始建議置鼕鼕鼓 唯兩京有之 後北都亦有鼕鼕鼓 是則京都之製也 近不作街鼓之聲 金吾職廢矣 見春明集

 

서천(西川) 청성(靑城) 대면산(大面山) 승화상(乘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상륜봉(相輪峯)입니까. 사왈(師曰) 연람(煙嵐; 이내. 嵐氣)의 가에 곧게 솟았다. 가로되 향상사(向上事)가 무엇입니까. 사왈 땅에 35(三尺五) 들어갔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사왈 흥의문(興義門) 앞의 동동고(鼕鼕鼓).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아침에 3천을 때리고 저녁에 8백을 때린다.

鼕鼕鼓; 조정사원6. 동동고(鼕鼕鼓) 경사(京師)의 가구(街衢; 는 네거리 구)의 작은 누각 위에 북을 설치해 혼효(昏曉; 저녁과 새벽. 밤과 낮)를 경각했음. 본조(本朝; ) 태종 때 장공(張公)이 방명(坊名)을 지음에 이르러 누상에 패를 나열했음. 안험하건대 당의 사마주가 처음으로 건의하여 동동고를 설치했는데 오직 양경(兩京; 낙양과 장안)에만 그것이 있었으나 뒤에 북도(北都; 太原)에도 또한 동동고가 있었으니 이러한 즉 경도(京都)의 제작임. 근래엔 가고(街鼓)의 소리를 짓지 않으므로 금오직(金吾職)이 폐지되었음. 춘명집을 보라.

 

潞府妙勝臻禪師 僧問 如何是妙勝境 師曰 龍藏開時貝葉分明 問金粟如來爲什麽却降釋迦會裏 師曰 香山南雪山北 曰南贍部洲事又作麽生 師曰 黃河水急浪華麁 問心心寂滅卽不問 如何是向上一路 師曰 一條濟水貫新羅 問遠嚮雲門 南北縱橫四維上下事作麽生 師曰 今日明日

濟水; 又稱濟河 古水名 發源於今河南省濟源市 流經河南山東 入渤海 [百度百科]

 

노부(潞府) 묘승진(妙勝臻)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묘승경(妙勝境)입니까. 사왈(師曰) 용장(龍藏)을 열었을 때 패엽(貝葉)이 분명하다. 묻되 금속여래(金粟如來)가 무엇 때문에 도리어 석가회리(釋迦會裏)에 강림(降臨; )했습니까. 사왈 향산(香山)의 남이며 설산(雪山)의 북이다. 가로되 남섬부주(南贍部洲)의 일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황하(黃河)의 물이 급하고 낭화(浪華)가 거칠다(). 묻되 심심(心心)이 적멸(寂滅)임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향상일로(向上一路)입니까. 사왈 한 가닥 제수(濟水)가 신라를 관통(貫通; )했다. 묻되 멀리서 운문을 향()했습니다. 남북종횡(南北縱橫)과 사유상하(四維上下)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금일이며 명일이다.

濟水; 또 명칭이 제하(濟河)니 옛 물 이름임. 지금의 하남성 제원시에서 발원하여 흘러 하남 산동을 경유하여 발해로 들어감 [백도백과].

 

興元府普通封和尙 僧問 今日一會何似靈山 師曰 震動乾坤 問如何是普通境 師曰 庭前有竹三冬秀 戶內無燈午夜

午夜; 半夜 指零時前後的一段時間 午 泛指白天或夜晩的中間時段 如午前 午餐 午夜

 

흥원부(興元府) 보통봉(普通封) 화상. 승문(僧問) 금일의 일회(一會)가 영산(靈山)과 어찌 같습니까(何似). 사왈(師曰) 건곤을 진동(震動)한다. 묻되 무엇이 이 보통경(普通境)입니까. 사왈 뜰 앞에 대가 있어 삼동(三冬)에도 빼어나고() 호내(戶內)에 등이 없지만 오야(午夜)에도 밝다.

午夜; 반야(半夜)0시 전후의 1()의 시간을 가리킴. ()는 널리 백천(白天; 대낮) 혹 야만(夜晩; )의 중간 시단(時段)을 가리킴. 예컨대() 오전ㆍ오찬ㆍ오야.

 

韶州燈峯淨原和尙 師上堂謂衆曰 古人道 山河大地普眞如 大衆若得眞如者 卽隱却他山河大地 若不得者 卽違他古德至言 衆中道得者出來 道不得卽各自歸堂珍重 僧問 如何是和尙爲人一句 師曰 不著力

 

소주(韶州) 등봉(燈峯) 정원화상(淨原和尙).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고인이 말하되 산하대지가 널리 진여(眞如). 대중이 만약 진여를 얻은 자면 곧 저 산하대지를 숨겨버리겠지만(隱却) 만약 얻지 못한 자면 곧 저 고덕(古德)의 지언(至言)에 위배되리라. 중중(衆中)에서 말함을 얻을 자는 나오고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곧 각자 귀당(歸堂)하라. 진중(珍重).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착력(著力)하지 않는다.

 

韶州大梵圓和尙 師上堂示衆曰 大衆好箇時光 直須努力時不待人 各自歸堂參取本善知識去 僧問 大衆雲集請師擧唱 師曰 有疑請問 師因見聖僧便問僧 此箇聖僧年多少 僧曰 恰共和尙同年 師喝之曰 遮竭斗不易道得

竭斗; 其義有二 一比喩黠慧狡猾之徒的倔傲爭鬥 淨心誡觀法下誡觀晩出家人心行法第二十五 夫晩出家者有十種罪過 一者健鬥 世言竭斗 俗氣成性 我心自在 意凌徒衆 不受呵責 二指出類拔萃之人物

 

소주(韶州) 대범원(大梵圓) 화상. 스님이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대중이여 호개(好箇)의 시광(時光)이니 바로 꼭 노력하라, 시일이 사람을 기다리지 않나니 각자 귀당(歸堂)하여 본래의 선지식을 참취(參取)하러 가거라, 승문(僧問) 대중이 운집했으니 스님의 거창(擧唱)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의심이 있거든 청문(請問)하라. 스님이 성승(聖僧)을 봄으로 인해 바로 중에게 묻되 차개(此箇)의 성승은 나이가 얼마인가. 승왈(僧曰) 마침() 화상과 함께 동년(同年)입니다. 스님이 할()하고 가로되 이() 갈두(竭斗), 말함을 얻음이 쉽지 않다.

竭斗; 그 뜻이 둘이 있음. 1. 힐혜(黠慧; 약은 지혜)와 교활한 무리의 고집과 오만으로 쟁투함에 비유함. 정심계관법하 계관만출가인심행법제25. 무릇 만년에 출가한 자는 10종의 죄과가 있다. 1자는 건투(健鬥; 전투)니 세상에서 말하는 갈두(竭斗). 속기가 성격을 이루어 아심이 자재하고 뜻이 도중을 능멸하며 가책을 받지 않는다. 2. 무리를 뛰어난 발췌의 인물을 가리킴.

 

澧州藥山圓光禪師 僧問 藥嶠燈連師當第幾 師曰 相逢盡道休官去 林下何曾見一人 問水陸不涉者 師還接否 師曰 蘇嚕蘇嚕 師問新到僧 南來北來 曰北來 師曰 不落言詮速道 曰某甲是福建道人 善會鄕譚 師曰 參衆去 曰灼然 師曰 𨁝跳便打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道什麽

林下; 田野 山野 山林 常指遠離塵囂的僧人修行之地 又隱退閑居之地

 

예주(澧州) 약산(藥山) 원광선사(圓光禪師). 승문(僧問) 약교(藥嶠; 藥山)의 등()이 연속(連續)하거니와 스님은 몇 번째(第幾)에 당합니까. 사왈(師曰) 상봉하면 모두 말하기를 벼슬을 쉬고 간다지만 임하(林下)에서 어찌 일찍이 한 사람이라도 보았는가. 묻되 수륙(水陸)에 건너지 않는 자를 스님이 도리어 접인(接引)합니까. 사왈 소로소로(蘇嚕蘇嚕). 스님이 신도승(新到僧)에게 묻되 남에서 왔느냐 북에서 왔느냐. 가로되 북에서 왔습니다. 사왈 언전(言詮)에 떨어지지 말고 속히 말하라. 가로되 모갑은 이 복건(福建)의 도인(道人)인지라 향담(鄕譚)을 잘 압니다. 사왈 대중을 참()하러 가거라. 가로되 작연(灼然)합니다. 사왈 펄쩍 뛰는구나(𨁝跳). 바로 때렸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무어라고 말했느냐.

林下; 전야(田野; 논밭과 들). 산야. 산림. 늘 진효(塵囂; 속세의 소란함과 번거로움)를 멀리 여읜 승인의 수행의 땅을 가리킴. 또 은퇴하여 한가하게 거주하는 땅.

 

信州鵝湖山雲震禪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闍梨不是 師問僧 近離什麽處 曰兩淛 師曰 還將得吹毛劍來否 僧展兩手 師曰 將謂是箇爛柯仙 元來却是樗蒱 問如何是鵝湖家風 師曰 客是主人相師 曰恁麽卽謝師周旋 師曰 難下陳蕃之榻

兩淛; 兩浙 浙東(金塘江以南)與浙西(金塘江以北)

爛柯; 或柯爛 用晉王質伐木入石室山典 喩時間久遠 見上二十一子儀心印章只待局終不知柯爛

樗蒱; 樗蒲 博戱之名 此物或如棗核狀 擲樗蒲賭之 以爲戱樂 略如民間賭博之擲骰子 又由於這種骰子五枚一組 所以又稱五木之戲

陳蕃之榻; 陳蕃(?-168) 指東漢時期名臣陳蕃 豫章有一名士徐穉 字孺子 陳蕃對他非常敬重 唯爲他做了一個床榻 平時卦在墻上 徐孺子來訪時 就把床榻放下來 兩個人惺惺相惜 秉燭夜談 徐孺子去了 就把榻懸於梁上 [百度百科] 陳蕃; 字仲擧 汝南平輿(今河南平輿北)人 東漢時期名臣 與竇武劉淑合稱三君 [百度百科]

 

신주(信州) 아호산(鵝湖山) 운진선사(雲震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사리(闍梨)는 이것이 아니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양절(兩淛)입니다. 사왈 도리어 취모검(吹毛劍)을 가지고(將得) 왔느냐. 중이 두 손을 폈다. 사왈 장차 이르기를 시개(是箇)의 난가선(爛柯)이라 하렸더니 원래 도리어 이 저포한(樗蒱)이로구나. 묻되 무엇이 이 아호(鵝湖)의 가풍입니까. 사왈 객이 이 주인의 상사(相師).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스님의 주선(周旋)에 감사합니다. 사왈 진번지탑(陳蕃之榻)을 내리기 어렵다.

兩淛; 양절(兩浙)과 같음. 절동(金塘江 이남)과 절서(금당강 이북).

爛柯; 혹 가란(柯爛)이니 진() 왕질(王質), 벌목하러 석실산에 든 전고(典故)를 씀이니 시간의 구원(久遠)에 비유함. 21 자의심인장(子儀心印章) 지대국종부지가란(只待局終不知柯爛)을 보라.

樗蒱; 곧 저포(樗蒲)니 박희(博戱; 노름)의 이름. 이 물건은 혹 대추씨와 같은 형상이며 저포를 던져 도박하면서 희락(戱樂)으로 삼음. 대략 민간 도박의 투자(骰子; 주사위)를 던짐과 같음. 또 이런 종류의 투자가 51(五枚一組)임으로 말미암아 소이로 또 명칭이 오목지희(五木之戲).

陳蕃之榻; 진번(陳蕃; ?-168)은 동한 시기의 명신 진번을 가리킴. 예장에 한 명사 서치(徐穉)가 있었으니 자는 유자(孺子)며 진번이 그에 대해 비상(非常)으로 경중(敬重)했음. 오직 그를 위해 1개의 상탑(床榻)을 만들었는데 평시에는 담장 위에 걸어 두었다가 서유자(徐孺子)가 내방할 때 바로 상탑을 잡아 내려놓았음. 두 개의 사람이 성성(惺惺)히 상석(相惜)했고 병촉(秉燭; 촛불을 손에 잡음. 곧 촛불을 켬)하고 야담(夜談)했음. 서유자가 떠나면 바로 상탑을 잡아 대들보 위에 매달았음 [백도백과].

 

廬山開先淸耀禪師 僧問 如何是燈燈不絕 師曰 靑楊翻遞植 曰學人不會 師曰 無根樹下唱虛名 問披雲一句師親唱 長慶今朝事若何 師曰 家家觀世音 問如何是披雲境 師曰 一甁淥水安窓下 便當生涯度幾秋 問如何是長慶境 師曰 堂裏老僧頭雪白 曰二境同歸應當別理 師曰 在處得人疑 問古㵎寒泉誰人能到 師曰乾 曰恁麽卽到也 師曰 深多少

 

여산(廬山) 개선(開先) 청요선사(淸耀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등등(燈燈)이 끊기지 않음입니까. 사왈(師曰) 청양(靑楊)을 갈마들며(翻遞) 심는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무근수하(無根樹下)에서 허명(虛名)을 창()한다. 묻되 피운(披雲)1구를 스님이 친창(親唱)했거니와 장경(長慶)의 금조(今朝)의 일은 어떻습니까(若何). 사왈 집집마다 관세음이다. 묻되 무엇이 이 피운경(披雲境)입니까. 사왈 한 병()의 녹수(淥水)를 창 아래 안치했으니 바로 생애를 당해 몇 가을을 지냈던가(; 와 통함). 묻되 무엇이 이 장경경(長慶境)입니까. 사왈 당리(堂裏)의 노승의 머리가 설백(雪白; 눈처럼 흼)이다. 가로되 2()이 한가지로 돌아가나 응당 다른 이치(別理)일 것입니다. 사왈 재처(在處)에 사람의 의심을 얻는다. 묻되 고간한천(古㵎寒泉)에 어떤 사람(誰人)이 능히 이릅니까. 사왈 말랐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이르렀습니다. 사왈 깊이가 얼마이던가.

 

襄州奉國淸海禪師 僧問 靑靑翠竹盡是眞如 如何是眞如 師曰 點瓦成金客 聞名不見形 曰恁麽卽禮謝下去也 師曰 昔時妄想至今存 問承古人云 見月休觀指 歸家罷問程 如何是家 師曰 試擧話頭看 問放過卽東道西說 不放過怎生道 師曰 二年同一春

東道西說; 形容漫無目的地隨意講說 亦指言辭多

 

양주(襄州) 봉국(奉國) 청해선사(淸海禪師). 승문(僧問) 청청(靑靑)한 취죽(翠竹)이 모두 이 진여(眞如)라 하니 무엇이 이 진여입니까. 사왈(師曰) 기와에 점 찍어 금을 이루는 객을, 이름은 들었지만 형상을 보지 못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예사(禮謝)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사왈 석시(昔時)의 망상이 지금(至今)도 존재하는구나. 묻되 듣건대() 고인이 이르되 견월(見月)했거든 손가락 봄을 쉬고() 귀가(歸家)했거든 노정(路程) 물음을 그만둔다(). 무엇이 이 가()입니까. 사왈 시험 삼아 화두를 들어 보아라. 묻되 방과(放過)하면 곧 동도서설(東道西說)함이니 방과하지 않으면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사왈 2년에 동일한 봄이다.

東道西說; 부질없이 목적이 없는 경지에서 뜻대로 강설함을 형용. 또 언사가 많음을 가리킴.

 

昭州慈光和尙 僧問 卽心卽佛誘誨之言 不涉前蹤如何指敎 師曰 東西且置南北事作麽生 曰恁麽卽學人罔測也 師曰 龍頭蛇尾

昭州; 今廣西樂平

 

소주(昭州; 어떤 책엔 韶州로 지었음) 자광화상(慈光和尙). 승문(僧問) 즉심즉불(卽心卽佛)은 유회(誘誨)하는 말입니다. 전종(前蹤)에 건너지 않으면 어떻게 지교(指敎)하겠습니까. 사왈(師曰) 동서는 그래 두고 남북의 일은 어떠한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학인이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罔測). 사왈 용두사미로구나.

昭州; 지금의 광서(廣西) 낙평(樂平).

 

潭州保安師密禪師 僧問 輥芥投鋒時如何 師曰 落在什麽處梁山云 落在汝眼裏問不犯辭鋒時如何 師曰 天台南嶽 曰便恁麽時如何 師曰 江西湖南

 

담주(潭州) 보안(保安) 사밀선사(師密禪師). 승문(僧問) 개자(芥子)를 굴려() 봉망(鋒鋩; , 칼 따위의 뾰족한 끝)에 던질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떨어져 어느 곳에 있느냐梁山이 이르되 떨어져 안리(眼裏)에 있다). 묻되 사봉(辭鋒)을 범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천태와 남악이다. 가로되 바로 이러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강서와 호남이다.

 

前台州瑞巖師彦禪師法嗣

南嶽橫龍和尙 楚王馬氏請住金輪 僧問 如何是金輪第一句 師曰 鈍漢 問如何是金輪一隻箭 師曰 過也 問如何是祖燈 師曰 八風吹不滅 曰恁麽卽暗冥不生也 師曰 白日沒閑人

 

남악 횡룡화상(橫龍和尙). 초왕(楚王) 마씨(馬氏)가 청해 금륜(金輪)에 주()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금륜(金輪)의 제1구입니까. 사왈(師曰) 둔한(鈍漢). 묻되 무엇이 이 금륜의 1()의 화살입니까. 사왈 지나갔다(過也). 묻되 무엇이 이 조등(祖燈)입니까. 사왈 팔풍(八風)이 불어도 꺼지지 않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암명(暗冥)이 생겨나지 않겠습니다. 사왈 백일(白日; 대낮)에 한인이 없다(沒閑人).

 

溫州溫嶺瑞峯院神祿禪師 福州福淸人也 本邑天竺寺出家 得法於瑞巖久爲侍者 後開山創院學侶依附 師有偈曰 蕭然獨處意沈吟 誰信無絃發妙音 終日法堂唯靜坐 更無人問本來心 時有朋彦上坐 躡前偈而問曰 如何是本來心 師召曰 朋彦 彦應諾 師曰 與老僧點茶來 彦於是信入朋彦卽廣法大師 後嗣天台國師 住蘇州長壽師太平興國元年示滅 壽百有五歲

 

온주(溫州) 온령(溫嶺) 서봉원(瑞峯院) 신록선사(神祿禪師). 복주 복청(福淸) 사람이니 본읍(本邑) 천축사에서 출가했고 서암(瑞巖)에게서 득법했고 오래 시자가 되었다. 후에 개산하고 창원(創院)하자 학려(學侶)가 의부(依附)했다.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소연(蕭然; 호젓하고 쓸쓸함)히 홀로 거처하매 뜻이 침음(沈吟)한데/ 누가 무현(無絃; 無絃琴)이 묘음(妙音)을 냄을 믿겠는가/ 종일 법당에서 오직 고요히 앉았는데/ 다시 본래심(本來心)을 묻는 사람이 없구나. 때에 붕언(朋彦) 상좌가 있어 전게(前偈)를 따라() 문왈(問曰) 무엇이 이 본래심입니까. 스님이 불러 가로되 붕언. 붕언이 응낙(應諾)했다. 사왈(師曰) 노승을 위해() 점다(點茶)하여 오너라. 붕언이 이에 신입(信入)했다붕언은 곧 廣法大師니 후에 天台國師를 이었고 蘇州 長壽했다. 스님이 태평흥국(太平興國) 원년(元年; 976) 시멸(示滅)했고 나이는 105세다.

 

前懷州玄泉彦禪師法嗣

鄂州黃龍山晦機禪師 淸河人也 姓張氏 唐天祐中遊化至此山 節帥施俸錢建法宇 奏賜紫衣號超慧大師 大張法席 僧問 不問祖佛邊事 如何是平常之事 師曰 我住山得十五年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瑠璃鉢盂無底 問如何是君王劍 師曰 不傷萬類 曰佩者如何 師曰 血濺梵天 曰大好不傷萬類 師便打 問佛在日爲衆生說法 佛滅後有人說法也無 師曰 慚愧佛 問毛吞巨海芥納須彌 不是學人本分事 如何是學人本分事 師曰 封了合盤市裏揭 問切急相投請師通信 師曰 火燒裙帶香 問如何是大疑底人 師曰 對坐盤中弓落盞 曰如何是不疑底人 師曰 再坐盤中弓落盞 問風恬浪靜時如何 師曰 百丈竿頭五兩垂 師將順世有僧問 百年後鉢囊子什麽人將去 師曰 一任將去 曰裏面事如何 師曰 線綻方知 曰什麽人得 師曰 待海燕雷聲卽向汝道 言訖告寂

法宇; 寺院之通稱

合盤; 合 盒子 後作盒

弓落盞; 法華經三大部補注十四 壁畫蛇影入酒杯中 晉書 樂廣 字彦輔 有賓親 久闊不復來 廣詣問其故 客曰 前在座蒙賜酒 見杯中有蛇 甚惡之 旣飮之而疾 廣曰 于時河南廳壁上有角弓 角弓邊漆畫作蛇 杯中卽蛇影也 廣重置酒於故 客乃解患卽除

 

악주(鄂州) 황룡산(黃龍山) 회기선사(晦機禪師). 청하(淸河) 사람이며 성이 장씨(張氏). 당 천우(天祐; 904-907) 중 유화(遊化)하다가 이 산에 이르렀다. 절수(節帥)가 봉전(俸錢)을 보시해 법우(法宇)를 건립했고 주청(奏請)하여 자의(紫衣)를 주고 호를 초혜대사(超慧大師)라 했고 법석을 크게 벌였다. 승문(僧問) 조불변사(祖佛邊事)는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평상지사(平常之事)입니까. 사왈(師曰) 내가 주산(住山)한 지 15년이 지났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유리(瑠璃) 발우가 밑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군왕검(君王劍)입니까. 사왈만류(萬類)를 상해(傷害; )하지 않는다. 가로되 찬()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피를 범천(梵天)에 흩뿌린다(). 가로되 대호(大好) 만류를 상해하지 않습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묻되 부처가 계시던 날에 중생을 위해 설법하셨거니와 부처가 멸후(滅後) 설법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 부처에게 참괴(慚愧)스럽다. 묻되 터럭이 거해(巨海)를 삼키고 개자(芥子)가 수미(須彌)를 납수(納受)함은 이 학인의 본분사(本分事)가 아닙니다. 무엇이 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사왈 합반(合盤)을 봉하고 나서(封了) 시가(市街) 속에서 높이 들어라(). 묻되 절급(切急)하여 상투(相投)하니 스님의 통신(通信)을 청합니다. 사왈 불로 군(; 치마. 下裳)을 태우니 향을 띠었다(). 묻되 무엇이 이 크게 의심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대좌(對坐)한 소반(小盤; ) 가운데 활이 잔에 떨어졌다(弓落盞). 가로되 무엇이 이 의심하지 않는 사람입니까. 사왈 재좌(再坐)한 소반 가운데 활이 잔에 떨어졌다. 묻되 바람이 고요하고 파랑이 고요할(風恬浪靜) 때 어떻습니까. 사왈 백장(百丈)의 간두(竿頭)5()을 드리웠다(). 스님이 장차 순세(順世)하려 하자 어떤 중이 묻되 백년후(百年後) 발낭자(鉢囊子; 는 조사)를 어떤 사람이 가지고 갑니까. 사왈 가져 가는 대로 일임한다. 가로되 이면(裏面)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선(; )이 터져야() 바야흐로 안다. 가로되 어떤 사람이 얻습니까. 사왈 해연(海燕; 불가사리. 혹 갈매기)이 뇌성(雷聲)함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말을 마치자 고적(告寂)했다.

法宇; 사원의 통칭(通稱).

合盤; ()은 합자(盒子)니 후에 합()으로 지었음.

弓落盞; 법화경삼대부보주14. 벽화사영입주배중(壁畫蛇影入酒杯中) 진서(晉書) 낙광(樂廣)은 자가 언보다. 손이 있어 친했는데 구활(久闊; 오랫동안 소식이 없거나 만나지 못함)하였고 다시 오지 않았다. 낙광이 나아가 그 연고를 물었다. 객이 가로되 전에 좌석에 있으면서 사주(賜酒)를 받았는데 술잔 가운데를 보매 뱀이 있었다. 매우 그것을 더럽게 여겼는데 이미 그것을 마시고선 질병이 되었다. 낙광이 가로되 당시에 하남청(河南廳) 벽상에 각궁(角弓)이 있었고 각궁 가의 칠화(漆畫)가 뱀을 지었다. 술잔 가운데는 곧 뱀의 그림자다. 낙광이 다시 벗에게 주석을 설치했다. 객이 이에 우환이 풀려 곧 제거되었다.

 

洛京柏谷和尙 僧問 普滋法雨時如何 師曰 有道傳天位 不汲鳳凰池 問九旬禁足三月事如何 師曰 不墜蠟人機

九旬禁足; 謂九十日安居期間中 不出山門 專力坐禪

 

낙경(洛京) 백곡화상(柏谷和尙). 승문(僧問) 법우(法雨)를 널리 뿌릴()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도가 있으면 천위(天位; 天子의 지위)를 전하고 봉황지(鳳凰池)에서 물 긷지 않는다. 묻되 9순 동안 금족(九旬禁足)하는 석 달의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납인(蠟人)의 기()에 떨어지지() 않는다.

九旬禁足; 이르자면 90일 안거 기간 중에 산문을 나서지 않고 전력(專力)으로 좌선함.

 

池州和龍和尙 僧問 如何是祖祖相傳底心 師曰 再三囑爾 問如何是從上宗旨 師曰 向闍梨口裏著到得麽 問省要處乞師一接 師曰 甚是省要

著到; 黏著執著于虛妄之事物 不能脫離和超越 稱爲著到

 

지주(池州) 화룡화상(和龍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하는 마음입니까. 사왈(師曰) 재삼(再三) ()에게 부촉(付囑; )한다. 묻되 무엇이 이 종상(從上)의 종지(宗旨)입니까. 사왈 사리(闍梨)의 입속을 향해 착도(著到)함을 얻겠는가. 묻되 성요처(省要處), 스님의 일접(一接; 한 번 接引)을 구걸합니다. 사왈 심히() 이 성요(省要).

著到; 허망한 사물에 점착(黏著)하고 집착하여 능히 탈리(脫離)함과 초월하지 못함을 일컬어 착도(著到)라 함.

 

懷州玄泉第二世和尙 僧問 辭窮理盡時如何 師曰 不入理豈同盡 問妙有玄珠如何取得 師曰 不似摩尼絕影豔 碧眼胡人豈能見 曰有口道不得時如何 師曰 三寸不能齊鼓韻 啞人解唱木人歌

碧眼胡人; 原指西域印度等地來的人 禪錄中多指達磨大師

 

회주(懷州) 현천(玄泉) 2세 화상. 승문(僧問) 언사가 다하고 이치가 다했을(辭窮理盡)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입리(入理)하지 못했다면 어찌 다함()과 같겠는가. 묻되 묘하게 현주(玄珠)가 있거니와 어떻게 취득(取得)합니까. 사왈 마니(摩尼)에 그림자가 끊긴 아름다움()과 같지 못하거늘 벽안호인(碧眼胡人)이 어찌 능히 보겠는가. 가로되 입이 있으나 말함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삼촌(三寸; )이 능히 고운(鼓韻)과 제등(齊等)하지 못하지만 아인(啞人; 벙어리)이 목인(木人)의 노래를 창()할 줄 안다.

碧眼胡人; 원래 서역이나 인도 등의 지역에서 온 사람을 가리키지만 선록 중에선 다분히 달마대사를 가리킴.

 

潞府妙勝玄密禪師 僧問 四山相向時如何 師曰 紅日不垂影 暗地莫知音 曰學人不會 師曰 鶴透群峯何伸向背 問二龍爭珠時如何 師曰 力士無心獻 奮迅却沈光 問雪峯一曲千人唱 月裏挑燈誰最明 師曰 無音和不齊 明暗豈能收

 

노부(潞府) 묘승(妙勝) 현밀선사(玄密禪師). 승문(僧問) 사산(四山)이 상향(相向)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홍일(紅日)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으니 암지(暗地)에서 지음하지 못한다(莫知音).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학이 군봉(群峯)을 투출(透出)하면서 어찌 향배(向背)를 펴겠는가(). 묻되 2()이 쟁주(爭珠)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역사(力士)가 무심히 바치자 분신(奮迅)하며 도리어 빛을 가라앉힌다(). 묻되 설봉의 일곡(一曲)을 천 인이 창()하거니와 달 속에서 등을 돋우면(挑燈) 누가 가장 밝습니까. 사왈 무음(無音)이라서 화()가 가지런하지 못하거늘 명암으로 어찌 능히 거두겠는가.

 

前福州羅山道閑禪師法嗣

洪州大寧院隱微禪師 豫章新淦人也 姓楊氏 誕夕有光明貫室 年七歲依本邑石頭院道堅禪師出家 二十於開元寺智稱律師受具 歷參宗匠至羅山 法寶大師導以師子在窟出窟之要 因之惺悟 盤桓數稔 尋迴江表 會龍泉邑宰李孟俊請居十善道場 始揚宗致 師上堂謂衆曰 還有騰空底麽出來 衆無出者 師說偈曰 騰空正是時 應須眨上眉 從茲出倫去 莫待白頭兒 僧問 如何是十善橋 師曰險 曰過者如何 師曰喪 問資福和尙遷化 向什麽處去也 師曰 草鞋破 問如何是黃梅一句 師曰 卽今恁麽生 曰如何通信 師曰 九江路絕

宗致; 如言宗趣 謂主義至極之所云致

 

홍주(洪州) 대녕원(大寧院) 은미선사(隱微禪師). 예장(豫章) 신감(新淦) 사람이며 성이 양씨(楊氏)니 탄석(誕夕)에 광명이 있어 실내를 관통했다. 나이 7세에 본읍(本邑) 석두원(石頭院) 도견선사(道堅禪師)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20에 개원사(開元寺) 지칭율사(智稱律師)에게서 수구(受具)했다. 종장(宗匠)을 역참(歷參)하다가 나산(羅山)에 이르자 법보대사(法寶大師; 羅山道閑)가 사자의 재굴출굴(在窟出窟)의 종요(宗要; )로써 인도(引導)했고 이로 인해 성오(惺悟)했다. 반환(盤桓; 徘徊. 滯留)하기 몇 해에 이윽고 강표(江表; 江南)로 돌아갔는데 마침() 용천읍재(龍泉邑宰) 이맹준(李孟俊)의 청으로 십선도량(十善道場)에 거주하면서 처음으로() 종치(宗致)를 선양(宣揚; )했다.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도리어 등공(騰空; 허공에 오르다)할 이가 있느냐, 나오너라. 대중에서 나오는 자가 없자 스님이 게를 설해 가로되 등공(騰空)이 바로 이때(是時)/ 응당 꼭 눈썹을 깜작여라(眨上; 은 조사)/ 이로 좇아 무리()에서 초출하여 가고/ 백두아(白頭兒)를 기다리지 말아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십선교(十善橋)입니까. 사왈(師曰) 위험하다. 가로되 지나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상(; 죽다. 잃다)한다. 묻되 자복화상(資福和尙)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짚신이 해어졌다(). 묻되 무엇이 이 황매(黃梅)1구입니까. 사왈 즉금은 무엇인가(恁麽生). 가로되 어떻게 통신(通信)해야 합니까. 사왈 구강(九江)의 길이 끊어졌다.

宗致; 종취(宗趣)라고 말함과 같음. 이르자면 주의(主義)의 지극한 곳을 이르되 치().

 

問初心後學如何是學 師曰 頭戴天 曰畢竟如何 師曰 脚蹈地 問如何是法王劍 師曰露 曰還殺人也無 師曰 作麽 問如何是龍泉劍 師曰 不出匣 曰便請出之 師曰 星辰失位 問國界安寧爲什麽珠不現 師曰 落在什麽處 周廣順元年辛亥 金陵李氏嚮德 召入居龍光禪苑後改名奉先署覺寂禪師 暨建隆二年辛酉 隨江南李氏至洪井 住大寧精舍重敷玄旨 其年十月示疾 二十七日剃髮澡身升堂辭衆安坐而逝 明年二月六日歸葬于吉州吉水縣 遵遺誡也 壽七十有六 臘五十六 諡玄寂禪師 塔曰常寂

 

묻되 초심과 후학이 어떻게 이 배워야 합니까. 사왈(師曰) 머리는 하늘을 이었다(). 가로되 필경 어떻습니까. 사왈 발은 땅을 밟았다. 묻되 무엇이 이 법왕검(法王劍)입니까. 사왈 드러났다(). 가로되 도리어 살인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무엇이라고(作麽). 묻되 무엇이 이 용천검(龍泉劍)입니까. 사왈 갑()에서 나오지 않았다. 가로되 바로 청컨대 그것을 내십시오(出之). 사왈 성신(星辰)이 실위(失位)한다. 묻되 국계(國界)가 안녕한데 무엇 때문에 구슬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사왈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 광순(廣順) 원년(元年) 신해(辛亥; 951) 금릉 이씨가 향덕(嚮德)했고 불러들여 용광선원(龍光禪苑)후에 奉先으로 改名했다에 거주케 했고 서(; 署號. 저본에 로 지었음)하여 각적선사(覺寂禪師)라 했다. 건륭(建隆) 2년 신유(辛酉; 961)에 이르자() 강남 이씨를 따라 홍정(洪井)에 이르러 대녕정사(大寧精舍)에 주()하며 현지(玄旨)를 거듭 폈다(重敷). 그 해 10월에 시질(示疾)했고 27일 체발(剃髮)하고 조신(澡身)하고 승당(升堂)하여 대중에게 고별하고(辭衆) 안좌(安坐)하여 서거했다. 명년 26일 길주(吉州) 길수현(吉水縣)으로 귀장(歸葬)했으니 유계(遺誡)를 준수(遵守)했음이다. 나이는 76이며 납은 56이며 시호는 현적선사(玄寂禪師)며 탑왈 상적(常寂)이다.

 

婺州明招德謙禪師 受羅山印記 靡滯於一隅 激揚玄旨 諸耆宿皆畏其敏捷 後學鮮敢當其鋒者 師在泉州招慶大殿上 以手指壁畫問僧曰 那箇是甚麽神 曰護法善神 師曰 沙汰時向什麽處去來 僧無對 師却令僧去問演侍者 演曰 汝什麽劫中遭此難來 其僧迴擧似師 師曰 直饒演上座他後聚一千衆有什麽用處 僧乃禮拜請別語 師曰 什麽處去也 淸八路擧仰山插鍬話問師 古人意在叉手處 意在插鍬處 師曰 淸上座 淸應諾 師曰 還曾夢見仰山麽 淸曰 不要下語只要上座商量 師曰 若要商量堂頭自有一千五百人老師在

耆宿; 又作耆舊 長老 老宿 卽年老德高道行深湛之老者

堂頭; 指住持也 又謂住持居室也

 

무주(婺州) 명초덕겸(明招德謙) 선사. 나산(羅山)의 인기(印記)를 받고는 한 모퉁이에 체류하지 않고() 현지(玄旨)를 격양(激揚)했는데 여러 기숙(耆宿)이 모두 그 민첩함을 두려워 했고 후학은 감히 그 봉(; 機鋒)에 당할 자가 드물었다(). 스님이 천주(泉州) 초경(招慶) 대전상(大殿上; 大雄寶殿上)에 있으면서 손으로써 벽화를 가리키며 중에게 물어 가로되 나개(那箇; 저것)는 이 무슨 신(甚麽神)이냐. 가로되 호법선신(護法善神)입니다. 사왈(師曰) 사태(沙汰) 때 어느 곳을 향해 갔다 왔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도리어 중으로 하여금 가서 연시자(演侍者)에게 묻게 했다. 연왈(演曰) 네가 어느 겁 중에 이 난()을 만나 왔느냐. 그 중이 돌아와 스님에게 들어 보였다. 사왈 직요(直饒; 가령) 연상좌가 타후에 일천중(一千衆)을 모으더라도 무슨 쓸 곳이 있으리오. 중이 이에 예배하고 별어(別語)를 청했다. 사왈 어느 곳으로 갔느냐. 청팔로(淸八路; 여러 선록에 모두 淸上座로 지었음)가 앙산의 삽초화(插鍬話)를 들어 스님에게 묻되 고인의 뜻이 차수처(叉手處)에 있는가. 뜻이 삽초처(插鍬處)에 있는가. 사왈 청상좌(淸上座). 청이 응낙했다. 사왈 도리어 일찍이 꿈에라도 앙산을 보았느냐. 청왈(淸曰) 하어(下語)를 요하지 않고 다만 상좌의 상량(商量)을 요한다. 사왈 만약 상량을 요한다면 당두(堂頭)에 저절로 15백 인의 노사(老師)가 있다.

耆宿; 또 기구(耆舊)ㆍ장로ㆍ노숙으로 지음. 즉 연로하고 덕이 높고 도행이 깊고 맑은 노자(老者; 노인).

堂頭; 주지를 가리킴. 또 이르자면 주지의 거실임.

 

師到雙巖 雙巖長老覩師風彩乃曰 某甲致一問問闍梨 若道得便捨院 道不得卽不捨 金剛經云 一切諸佛及諸佛法皆從此經出 且道 此經是何人說 師曰 說與不說一時拈向那邊著 只如和尙決定喚什麽作此經 雙巖無對 師擧經云 一切賢聖皆以無爲法而有差別 斯則以無爲法爲極則 憑何而有差別 且如差別是過不是過 若是過一切賢聖盡有過 若不是過決定喚什麽作差別 雙巖亦無語 師曰 雪峯道底 師在婺州智者寺居第一座 尋常不受淨水 主事僧問曰 因什麽不識觸淨 水不肯受 師下床拈起淨甁曰 遮箇是淨 主事無語 師乃撲破淨甁 師自爾道聲遐播 衆請居明招山開法 四來禪者盈于堂室

觸淨; 觸 汚 不淨

 

스님이 쌍암(雙巖)에 이르자 쌍암 장로가 스님의 풍채(風彩)를 보고 이에 가로되 모갑이 일문(一問)을 이루어() 사리(闍梨)에게 묻는데 만약 말함을 얻는다면 바로 사원(捨院)하겠지만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곧 버리지() 않겠다. 금강경에 이르되 일체제불(一切諸佛) 및 제불법(諸佛法)이 모두 이 경으로 좇아나온다. 그래 말하라, 이 경은 이 어떤 사람이 설했는가. 사왈(師曰) ()과 불설(不說)은 일시에 집어다가 나변(那邊)을 향하라. 지여(只如) 화상은 결정코 무엇을 일러 이 경이라 하는가. 쌍암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들되 경운(經云) 일체 현성이 모두 무위법(無爲法)을 써서 차별이 있다. 이는() 곧 무위법을 극칙(極則)으로 삼음이거니와 무엇에 의빙(依憑)해 차별이 있는가. 차여(且如) 차별은 이 허물()인가 이 허물이 아닌가. 만약 이 허물이라면 일체의 현성이 모두() 허물이 있을 것이며 만약 이 허물이 아니라면 결정코 무엇을 일러 차별이라 하는가. 쌍암이 또한 말이 없었다. 사왈 설봉이 말한 것이다(雪峯道底). 스님이 무주(婺州) 지자사(智者寺)에 있으면서 제1좌에 거처했는데 심상(尋常)에 정수(淨水)를 받지 않았다. 주사승(主事僧)이 문왈(問曰) 무엇 때문에 촉정(觸淨)을 알지 못하고 물을 받음을 긍정하지 않는가. 스님이 하상(下床)하여 정병(淨甁)을 염기(拈起)하고 가로되 이것(遮箇)은 이 정()인가. 주사(主事)가 말이 없자 스님이 이에 정병을 쳐서 깨뜨렸다. 스님이 이로부터 도성(道聲)이 멀리 전파(傳播)되었고 대중의 청으로 명초산()明招山에 거주하며 개법(開法)했고 사방에서 온(四來) 선자(禪者)가 당실(堂室)에 가득했다().

觸淨; ()은 오(). 부정(不淨).

 

師謂衆曰 希逢一箇 下坡不走快便難逢 若有同生同死何妨一展 僧問 師子本出窟時如何 師曰 俊鷂趁不及 曰出窟後如何 師曰 萬里正紛紛 曰欲出不出時如何 師曰嶮 曰向上事如何 師曰劄 問如何是透法身外一句子 師曰 北斗後翻身 問十二時中如何趣向 師曰 拋向金剛地上著 問文殊與維摩對譚何事 師曰 葛巾紗帽已拈向那邊著也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齩得著是好手 問無煙之火是什麽人向得 師曰 不惜眉毛底 曰和尙還向得麽 師曰 汝道我有多少莖眉毛在 師見新到僧才上法堂 乃擧拂子却擲下 其僧珍重便下去 師曰 作家作家 問全身佩劍時如何 師曰 忽遇正恁麽時又作麽生 僧無對

 

스님이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일개(一箇)를 만남을 희망하나니 언덕을 내려가면서 달리지 않으면 쾌편(快便)을 만나기 어렵다. 만약 동생동사(同生同死)할 이가 있다면 어찌 일전(一展)함에 방애(妨礙)되리오. 승문(僧問) 사자가 본래 출굴(出窟)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준요(俊鷂)가 쫓아가도 미치지 못한다. 가로되 출굴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만 리에 바로 분분(紛紛)하다. 가로되 나오려고(欲出) 하나 나오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위험하다(). 가로되 향상사(向上事)는 어떻습니까. 사왈 찌르는구나(; 저본에 으로 지었음). 묻되 무엇이 이 법신 밖을 투과하는 일구자(一句子; 는 조사)입니까. 사왈 북두(北斗) 뒤에서 몸을 뒤집는다(翻身). 묻되 12시 중에 어떻게 취향(趣向)해야 합니까. 사왈 금강지상(金剛地上)을 향해 던져라. 묻되 문수와 유마가 무슨 일을 대담(對譚)했습니까. 사왈 갈건(葛巾)과 사모(紗帽)는 이미 집어 나변(那邊)을 향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깨물어야(齩得著) 이 호수(好手). 묻되 무연지화(無煙之火)는 이 어떤 사람이 향함을 얻습니까. 사왈 눈썹을 아끼지 않는 이(不惜眉毛底). 가로되 화상은 도리어 향함을 얻습니까. 사왈 네가 말하라, 내가 몇(多少) 줄기()의 눈썹이 있느냐. 스님이 신도승(新到僧)이 겨우 법당에 오름을 보자 이에 불자를 들어 도리어 던져 떨어뜨렸다. 그 중이 진중(珍重)이라 하고 바로 내려갔다. 사왈 작가(作家)로다, 작가로다. 묻되 전신이 검을 찼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홀연히 바로 이러함을 만났을 때 또 어떠한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師問國泰瑫和尙 古人道俱胝只念三行呪 便得名超一切人 作麽生與他拈却三行呪 便得名超一切人 國泰竪起一指 師曰 不因今日爭識得瓜洲客 師有師叔在廨院患甚 附書來問曰 某甲有此大病 如今正受疼痛 一切處安置伊不得 還有人救得麽 師乃迴信曰 頂門上中此金剛箭透過那邊去也 有一僧曾在師法席 辭去住庵一年 後來禮拜曰 古人道 三日不相見 莫作舊時看 師乃露胸問曰 汝道我有多少莖蓋膽毛 僧無對 師却問 汝什麽時離庵 曰今朝 師曰 來時折脚鐺子 分付與阿誰 僧又無語 師乃喝出

俱胝; 俱胝和尙 唐代僧 名元修 福淸(今屬福建)人 武宗時 結庵於靈石山 嘗誦七俱胝咒 故名 宣宗四年(849) 創翠石院 曾參杭州天龍 龍竪一指 遂得悟 自是凡有學者參問 唯竪一指曰 吾得天龍一指禪 一生用不盡 後住婺州金華山 [五燈會元四 傳燈錄十一 祖堂集十九]

瓜洲客; 同瓜州客 字彙 洲 本作州 後人加水以別州縣之字也 碧巖錄第十九則種電鈔云 杜詩 何人爲覓鄭瓜州 注曰 瓜州鎭對江地名 因瓜憶鄭審 爲金陵有瓜州號鄭瓜州 皆詞人風流趹蕩之態也

 

스님이 국태도(國泰瑫) 화상에게 묻되 고인이 말하되 구지(俱胝)는 다만 3()의 주()를 외워() 바로 이름이 일체인을 초월함을 얻었다. 어떻게 해야(作麽生) 그에게 3행의 주를 집어 물리치게(拈却) 해 주어 바로 이름이 일체인을 초월함을 얻겠는가. 국태가 한 손가락을 세워 일으켰다. 사왈(師曰) 금일을 인하지 않았다면 어찌 과주객(瓜洲客)을 식득(識得)하겠는가. 스님에게 사숙(師叔)이 있어 해원(廨院)에 있으면서 질환이 심했다. 글을 부쳐 와서 문왈(問曰) 모갑이 이 대병(大病)이 있어 여금에 바로 동통(疼痛)을 받으며 일체처에 그()를 안치함을 얻지 못한다. 도리어 구득(救得)할 사람이 있느냐. 스님이 이에 회신(迴信)하여 가로되 정문상(頂門上)에 이 금강전(金剛箭)이 적중(的中; )해 나변(那邊)을 투과(透過)해 갑니다. 1()이 있어 일찍이 스님의 법석에 있었는데 고별하고 가서 주암(住庵)하기 1년이었다. 후에 와서 예배하고 가로되 고인이 말하되 3일 동안 상견하지 않았다면 구시(舊時)의 봄을 짓지 말아라 했습니다. 스님이 이에 가슴을 드러내고 문왈(問曰) 네가 말하라, 나에게 몇(多少) 줄기()의 개담모(蓋膽毛; 胸毛)가 있느냐.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도리어 묻되 네가 어느 때 암자를 떠났느냐. 가로되 금조(今朝)입니다. 사왈 올 때 다리 부러진 쟁자(鐺子; . 는 조사)를 누구(阿誰)에게 분부해 주었느냐. 중이 또 말이 없었다. 스님이 이에 할()하고 쫓아내었다.

俱胝; 구지화상(俱胝和尙)이니 당대승. 이름은 원수(元修)며 복청(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 무종 때 영석산에 암자를 엮어 늘 칠구지주(七俱胝咒)를 외운지라 고로 이름함. 선종 4(849) 취석원을 창건했음. 일찍이 항주의 천룡(天龍)을 참알했는데 천룡이 한 손가락을 세우자 드디어 깨침을 얻었음. 이로부터 무릇 학자의 참문(參問)이 있으면 오직 한 손가락을 세우고 가로되 내가 천룡의 일지선(一指禪)을 얻어 일생에 써도 다하지 않는다. 후에 무주의 금화산에 거주했음 [오등회원4. 전등록11. 조당집19].

瓜洲客; 과주객(瓜州客)과 같음. 자휘(字彙) () 본래 주()로 지었다. 후인이 수()를 더해 주현(州縣)의 글자와 구별하였다. 벽암록 제19칙 종전초에 이르되 두시(杜詩) 어떤 사람이 정과주(鄭瓜州)를 심멱(尋覓)하는가. ()에 가로되 과주진(瓜州鎭)은 대강(對江)의 땅 이름이다. ()로 인해 정심(鄭審)을 추억한다 함이다. 금릉에 과주(瓜州)가 있으므로 호가 정과주가 되나니 다 사인(詞人)이 풍류로 결탕(趹蕩)하는 모습이다.

 

問承師有言 我住明招頂 興傳古佛心 如何是明招頂 師曰 換却眼 曰如何是古佛心 師曰 汝還氣急麽 問學人拏雲攫浪上來請師展鉢 師曰 拶破汝頂 曰也須仙陀去 師乃棒趁出 師別有頌示衆曰 明招一拍和人希 此是眞宗上妙機 石火瞥然何處去 朝生鳳子合應知 師住明招山四十載 語句流布諸方 將欲遷化上堂告衆囑付 其夜展足問侍者曰 昔釋迦如來展開雙足放百寶光明 汝道吾今放多少 侍者曰 昔日鶴林今日和尙 師以手拂眉曰 莫孤負麽 又說偈曰 驀刀叢裏逞全威 汝等應當善護持 火裏鐵牛生犢子 臨岐誰解湊吾機 偈畢安坐寂然長往 今塔院存焉

驀刀; 唐宋時代步兵所持的一種長刀

 

묻되 듣건대() 스님이 말씀이 있어 내가 명초정(明招頂)에 거주하면서 고불심(古佛心)을 흥전(興傳)한다. 무엇이 이 명초정입니까. 사왈(師曰) 눈을 바꾸어버린다. 가로되 무엇이 이 고불심입니까. 사왈 네가 도리어 기급(氣急)한가. 묻되 학인이 나운확랑(拏雲攫浪; 구름을 붙잡고 파랑을 움켜쥐다)하며 올라왔으니 스님의 전발(展鉢)을 청합니다. 사왈 너의 정수리를 찰파(拶破; 짓눌러 깨뜨리다)한다. 가로되 또한 선타(仙陀)를 써야() 하겠습니다. 스님이 이에 방으로 치고() 쫓아내었다. 스님이 따로 송이 있어 시중(示衆)해 가로되 명초(明招)의 일박(一拍)에 화()하는 사람이 드무나니()/ 이것은 이 진종상(眞宗上)의 묘기(妙機)/ 석화(石火)가 별연(瞥然)히 어느 곳으로 가느냐/ 조생(朝生)의 봉자(鳳子)가 합당히 응당 안다. 스님이 명초산에 거주한 지 40()에 어구(語句)가 제방에 유포되었다. 장차 천화(遷化)하려고 하자 상당하여 고중(告衆)하여 촉부(囑付)하고 그날 밤 발을 펴고 시자에게 물어 가로되 옛적()에 석가여래가 쌍족(雙足)을 전개(展開)하고 백보광명(百寶光明)을 방출했거니와 네가 말하라 내가 이제 얼마(多少)를 방출하느냐. 시자가 가로되 석일(昔日)의 학림(鶴林)이 금일의 화상입니다. 스님이 손으로써 눈썹을 털고() 가로되 고부(孤負; 저버리다)함이 아니냐. 또 게를 설해 가로되 맥도(驀刀)의 숲 속(叢裏)에 전위(全威)를 자부(自負; )하나니/ 너희 등은 응당 잘 호지(護持)하라/ 불 속의 철우(鐵牛)가 송아지(犢子)를 낳았나니/ 기로(岐路)에 임해 누가 나의 기()에 모일() 줄 아는가(). 게를 마치자 안좌(安坐)하여 적연(寂然)히 장왕(長往)했다. 지금 탑원(塔院)이 존재한다.

驀刀; 당송시대 보병이 소지했던 일종의 긴 칼.

 

衡州華光範禪師 僧問 靈臺不立 還有出身處也無 師曰有 曰如何是出身處 師曰出 問如何是西來意 師曰道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驗 問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自由自在 曰見後如何 師曰 自由自在 問如何是佛法中事 師曰了

 

형주(衡州) 화광범(華光範) 선사. 승문(僧問) 영대(靈臺; 일심. 진여)도 세우지 않는데 도리어 출신(出身; 省悟)할 곳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왈(師曰)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출신할 곳입니까. 사왈 출().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입니까. 사왈 도().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험(). 묻되 우두(牛頭)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자유자재(自由自在)하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자유자재하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 중의 일입니까. 사왈 요().

 

福州羅山紹孜禪師 上堂 有數僧爭出問話 師曰 但一時出來問 待老僧一時答却 僧便問 學人一齊問 請師一齊答 師曰得 問學人乍入叢林 祖師的的意請師直指 師曰好

 

복주(福州) 나산(羅山) 소자선사(紹孜禪師). 상당하자 몇 중이 있어 다투어 나와 문화(問話)했다. 사왈(師曰) 단지 일시에 나와 묻고 노승이 일시에 답각(答却)함을 기다려라. 중이 바로 묻되 학인이 일제(一齊)히 물었으니 스님이 일제히 답하기를 청합니다. 사왈 득(). 묻되 학인은 총림에 처음() 들어왔습니다. 조사의 적적(的的; 확실. 진실)한 뜻을 청컨대 스님이 직지(直指)하십시오. 사왈 호().

 

西川慧禪師 初參羅山見十七卷羅山章 羅山問 什麽處來 師曰 遠離西蜀近發開元 卽今事作麽生 羅山揖曰 喫茶去 師良久無言 羅山曰 秋氣稍暖去 羅山來日上堂 師出問 豁開戶牖當軒者誰 羅山乃喝 師良久 羅山曰 毛羽未備且去一本云 初參羅山 纔禮拜起 山云 甚處來 師云 遠離西蜀 近發開元 却近前云 卽今事作麽生 羅山揖云喫茶去 師擬議間 羅山云 秋氣稍暖出去 師到法堂自歎云 我在西川峨眉山脚下 拾得一隻蓬蒿箭 擬擬亂天下 今日到福建道陳老師寨裏 弓折箭盡去也 休休 羅山明日升堂 師又出問 豁開戶牖當軒者誰 山便喝 師無對 山云 羽毛未備 翼梢未全且去 師因而摳衣久承印記 後謁台州勝光 光在繩床上坐 師直入到身邊叉手立 光問什麽處來 師曰猶待答話在 師便下去 光拈得拄杖拂子下 僧堂前見師提起拂子問曰 闍梨喚遮箇作什麽 師曰 敢死喘氣 光低頭歸方丈

擬擬; 思慮 遲疑

敢死; 指勇敢不怕死 通常指勇敢的人

 

서천혜(西川慧) 선사. 나산(羅山)을 초참(初參)하자17羅山章을 보라 나산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師曰) 멀기로는 서촉(西蜀)을 떠났고 요즘 개원(開元)에서 출발했습니다만 즉금의 일이 무엇입니까(作麽生). 나산이 읍()하며 가로되 차 먹고 가게. 스님이 양구(良久)하며 말이 없자 나산이 가로되 추기(秋氣)가 조금() 따뜻해 간다. 나산이 내일 상당하자 스님이 나가서 묻되 호유(戶牖)를 활짝() 열었으니 당헌(當軒)한 자가 누구입니까. 나산이 이에 할()했다. 스님이 양구(良久)하자 나산이 가로되 모우(毛羽)를 갖추지 못했으니 다만 가거라(且去)一本에 이르되 羅山初參해 겨우 예배하고 일어나자 나산이 이르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師云 멀기로는 西蜀을 떠났고 요사이 開元에서 출발했습니다. 도리어 近前하며 이르되 卽今事는 무엇입니까. 나산이 하며 이르되 차 먹고 가게. 스님이 擬議하는 사이 나산이 이르되 秋氣가 조금 따뜻해 가니 나가거라. 스님이 법당에 이르러 自歎하며 이르되 내가 西川 峨眉山 脚下에 있으면서 一隻蓬蒿箭拾得하여 擬擬하며 천하를 어지럽히려 했는데 금일 福建 道陳老師의 채리(寨裏)에 이르러 弓折箭盡하였다. 쉬어라, 쉬어라. 나산이 명일 升堂하자 스님이 또 나가서 묻되 戶牖를 활짝 열었으니 當軒한 자가 누구입니까. 나산이 바로 했다. 스님이 대답이 없자 山云 羽毛를 갖추지 못했고 익초(翼梢)가 온전하지 않으니 且去하라. 스님이 인하여 구의(摳衣)했고 오래되자 인기(印記)를 승수(承受)했다. 후에 태주(台州) 승광(勝光)을 예알했는데 승광이 승상(繩床) 위에 앉았었다. 스님이 직입(直入)하여 신변(身邊)에 이르러 차수(叉手)하고 서자 승광이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사왈 오히려 답화(答話)를 기다립니다 하고는 스님이 바로 내려갔다. 승광이 주장자와 불자를 염득(拈得)하여 내려가 승당 앞에서 스님을 보고 불자를 제기(提起)하며 문왈(問曰) 사리(闍梨)는 이것(遮箇)을 일러 무엇이라 하느냐. 사왈 감사(敢死)의 천기(喘氣)입니다. 승광이 머리를 숙이고 방장으로 돌아갔다.

擬擬; 사려. 지의(遲疑; 주저하며 의심함).

敢死; 용감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을 가리킴. 통상(通常) 용감한 사람을 가리킴.

 

建州白雲令弇和尙 師上堂謂衆曰 遣往先生門 誰云對喪主 珍重 僧問 己事未明以何爲驗 師曰 木鏡照素容 曰驗後如何 師曰 不爭多 問三台有請四衆臨筵 旣處當仁請師一唱 師曰 要唱卽不難 曰便請師唱 師曰 夜靜水淸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先生; 一一般在一個男子姓氏後所用的一個習慣性的表示禮貌的稱呼 二舊時稱以說書 相面 算卦 看風水等爲職業的人 三對長者的尊稱 [百度漢語]

三台; 喻三公 祖庭事苑三 台輔 春秋曰 三公上應三台星 故曰台輔

當仁; 猶言當之無愧 謂勇爲不辭 指勇爲不辭的人

 

건주(建州) 백운 영엄화상(令弇和尙).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견왕(遣往)하는 선생(先生)의 문에서 상주(喪主)를 대한다고 누가 이르는가.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기사(己事)를 밝히지 못했으니 무엇으로써 증험(證驗; )합니까. 사왈(師曰) 목경(木鏡)으로 소용(素容; 化粧하지 아니한 얼굴)을 비춘다. 가로되 증험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많음을 다투지 않는다. 묻되 삼태(三台)가 청함이 있고 사중(四衆)이 임연(臨筵)했습니다. 이미 당인(當仁)에 처했으니 스님의 일창(一唱)을 청합니다. 사왈 창()을 요한다면 곧 어렵지 않다. 가로되 바로 스님의 창을 청합니다. 사왈 밤은 고요하고 물은 맑고 물고기는 먹지 않으니 배 가득 공연히 달 밝음을 싣고 돌아온다.

先生; 1. 일반으로 일개 남자 성씨 뒤에 두고 쓰는 바의 일개의 습관성의 예모(禮貌)를 표시하는 칭호. 2. 구시에 설서(說書; 일종의 說唱形式의 곡예)ㆍ상면(相面; 관상을 보다)ㆍ산괘(算卦; 卦象으로 점을 치다)ㆍ간풍수(看風水) 등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호칭. 3. 장자(長者)에 대한 존칭 [백도한어].

三台; 삼공(三公)에 비유함. 조정사원3 태보(台輔) 춘추에 가로되 삼공(三公)은 위로 삼태성(三台星)에 응하는지라 고로 가로되 태보(台輔).

當仁; 이를 당해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함과 같음. 이르자면 용감하여 사양하지 않음. 용감하여 사양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킴.

 

虔州天竺義澄常眞禪師 初參羅山棲泊數載 後因羅山在疾 師問 百年後忽有人問 和尙以何指示 羅山乃放身便倒 師從此契悟 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寒暑相催 問聖皇請命大衆臨筵 請師擧 師曰 領領 曰恁麽卽人天有賴也 師曰 汝作麽生

 

건주(虔州) 천축 의징(義澄) 상진선사(常眞禪師). 나산을 초참(初參)하여 서박(棲泊)하기 몇 해였다. 후에 나산이 재질(在疾)함으로 인해 사문(師問) 백년후(百年後) 홀연히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 화상이 무엇으로써 지시하겠습니까. 나산이 이에 방신(放身)하여 바로 넘어졌다. 스님이 이로 좇아 계오(契悟)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師曰) 한서(寒暑)가 상최(相催)한다. 묻되 성황(聖皇)이 청명(請命)하셨고 대중이 임연(臨筵)했으니 스님의 거()를 청합니다. 사왈 영(; 領會)하라, ()하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인천(人天)이 신뢰함이 있을 것입니다. 사왈 너는 어떠한가.

 

吉州淸平惟曠眞寂禪師 師上堂云 不動神情便有輸贏之意 還有麽出來 時有僧出禮拜 師云 不是作家出去 僧問 如何是第一句 師曰 要頭將取去 問如何是活人劍 師曰 會麽 曰如何是殺人刀 師叱之 問如何是師子兒 師曰 毛頭排宇宙

神情; 人面部的表情或神態

輸贏; 同輸嬴 負勝也 輸 負 在較量中失敗

 

길주(吉州) 청평(淸平) 유광(惟曠) 진적선사(眞寂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이르되 신정(神情)을 동()하지 않아도 바로 수영(輸贏)의 뜻이 있다. 도리어 있느냐, 나오너라. 때에 어떤 중이 나와 예배했다. 사운(師云) 이 작가가 아니니 나가거라.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제1구입니까. 사왈(師曰) 머리를 요하거든 가져 취해 가거라. 묻되 무엇이 이 활인검입니까. 사왈 아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살인도입니까. 스님이 꾸짖었다. 묻되 무엇이 이 사자아(師子兒)입니까. 사왈 모두(毛頭; 後綴)에 우주를 배치(排置)했다.

神情; 인면부(人面部)의 표정 혹 신태(神態).

輸贏; 수영(輸嬴)과 같음. 부승(負勝). ()는 짐()이니 교량(較量) 중에서 실패함.

 

婺州金柱義昭和尙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開門作活 僧云 忽遇賊來又怎麽生 師曰然 有新到僧參 師揭簾以手作除帽子勢 僧擬欲近前 師云 賺殺人 師因事而有頌曰 虎頭生角人難措 石火電光須密布 假饒烈士也應難 懞底那能解差互

 

무주(婺州) 금주(金柱) 의소화상(義昭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문 열고 활계(活計; )를 짓는다. 승운(僧云) 홀연히 도적이 옴을 만나면 또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그렇다(). 어떤 신도승(新到僧)이 참()했다. 스님이 발을 걷어올리고(揭簾) 손으로써 모자를 제거하는 자세를 지었다. 중이 근전(近前)하려고 하자 사운(師云) 사람을 너무 속이는구나(賺殺人). 스님이 인사(因事)하여 송이 있어 가로되 호두(虎頭)에 뿔이 나면 사람이 조치(措置)하기 어렵나니/ 석화전광(石火電光)을 밀포(密布)함을 써라()/ 가요(假饒; 가령) 열사(烈士)라도 또한 응당 어렵거늘/ 어리석은 이(懞底)가 어찌 능히 차호(差互; 交錯)를 알겠는가.

 

潭州谷山和尙 僧問 省要處乞師一言 師乃起去 問羚羊掛角時如何 師曰 爾向什麽處覓 曰掛角後如何 師曰走

 

담주(潭州) 곡산화상(谷山和尙). 승문(僧問) 성요처(省要處), 스님의 일언(一言)을 구걸합니다. 스님이 이에 일어나 떠났다. 묻되 영양(羚羊)이 뿔을 걸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가 어느 곳을 향해 찾겠는가. 가로되 뿔을 건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달린다().

 

湖南瀏陽道吾山從盛禪師 師初住高安龍迴 有僧問 如何是覿面事 師曰 新羅國去也 問如何是龍迴家風 師曰 縱橫射直 問如何是靈源 師曰 嫌什麽 曰近者如何 師曰 如人飮水 問窮子投師乞師拯濟 師曰 莫是屈著汝麽 曰爭奈窮何 師曰 大有人見

 

호남 유양(瀏陽) 도오산(道吾山) 종성선사(從盛禪師). 스님이 고안(高安) 용회(龍迴)에 초주(初住)했다. 어떤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적면(覿面)의 일입니까. 사왈(師曰) 신라국(新羅國)에 간다. 묻되 무엇이 이 용회(龍迴)의 가풍입니까. 사왈 종횡으로 사직(射直; 一直으로 쏘다)한다. 묻되 무엇이 이 영원(靈源)입니까. 사왈 무엇을 혐의(嫌疑; )하느냐. 가로되 가까이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사람이 음수(飮水)함과 같다. 묻되 궁자(窮子)가 스님에게 투신하니 스님의 증제(拯濟)를 구걸합니다. 사왈 이는 너를 굴착(屈著)함이 아니냐. 가로되 궁()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대유인(大有人)이 본다.

 

福州羅山義因禪師 師上堂示衆曰 若是宗師門下客 必不怪於羅山 珍重 僧問 承古人有言 自從認得曹谿路 了知生死不相關 曹谿卽不問 如何是羅山路 師展兩手 僧曰 恁麽卽一路得通 諸路亦然 曰什麽諸路 僧近前立 師曰 靈鶴煙霄外 鈍鳥不離窠 問承敎中有言 順法身萬象俱寂 隨智用萬象齊生 如何是萬象俱寂 師曰 有什麽 曰如何是萬象齊生 師曰 繩床椅子

 

복주(福州) 나산(羅山) 의인선사(義因禪師). 스님이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가로되 만약 이 종사의 문하객(門下客)일진대 반드시 나산(羅山)을 괴이히 여기지 않을 것이다. 진중(珍重)하라. 승문(僧問) 듣건대() 고인(古人; 永嘉玄覺)이 말씀이 있어 조계로(曹谿路)를 인득(認得)함으로부터 생사에 상관되지 않음을 요지(了知)했다. 조계는 곧 묻지 않거니와 무엇이 이 나산로(羅山路)입니까. 스님이 두 손을 폈다.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일로(一路)를 통함을 얻으매 제로(諸路)도 또한 그러합니다. 가로되 무엇이 제로인가(什麽諸路). 중이 근전(近前)하여 섰다. 사왈(師曰) 영학(靈鶴)은 연소(煙霄; 雲霄) 밖이거늘 둔조(鈍鳥)는 둥지를 여의지 못하는구나. 묻되 듣건대() 교중(敎中)에 말씀이 있어 법신(法身)에 순(; 저본에 로 지었음)하면 만상(萬象)이 구적(俱寂)하고 지용(智用)을 따르면 만상이 제생(齊生)한다. 무엇이 이 만상이 구적(俱寂)함입니까. 사왈 무엇이 있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만상이 제생(齊生)함입니까. 사왈 승상(繩床)과 의자(椅子).

 

灌州靈巖和尙 僧問 如何是道中寶 師曰 地傾東南天高西北 曰學人不會 師曰 落照機前異 師頌石鞏接三平曰 解擘當胸箭 因何只半人 爲從途路曉 所以不全身

灌州; 今四川省都江堰市一帶

 

관주(灌州) 영암화상(靈巖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중보(道中寶)입니까. 사왈(師曰) 땅은 동남으로 기울었고 하늘은 서북이 높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낙조(落照; 落日)는 기전(機前)에 다르다. 스님이, 석공(石鞏)이 삼평(三平)을 접인(接引)한 것을 송해 가로되 당흉(當胸)한 화살을 쪼갤 줄 알았거늘/ 무엇으로 인해 다만 반인(半人)인가/ 도로(途路)의 밝음()을 좇았기 때문에/ 소이로 전신(全身)이 아니었다.

灌州; 지금의 사천성 도강언시(都江堰市) 일대(一帶).

 

吉州匡山和尙 師有示徒頌曰 匡山路匡山路 巖崖嶮峻人難措 遊人擬議隔千山 一句分明超佛祖 又有白牛頌曰 我有古壇眞白牛 父子藏來經幾秋 出門直透孤峯頂 迴來暫跨虎谿頭

 

길주(吉州) 광산화상(匡山和尙). 스님이 시도송(示徒頌)이 있어 가로되 광산로(匡山路)는 광산로는/ 암애(巖崖)가 험준하여 사람이 조처(措處)하기 어렵다/ 유인(遊人)이 의의(擬議)하면 천산(千山)에 막히지만/ 1구가 분명하여 불조를 초월한다. 또 백우송(白牛頌)이 있어 가로되 나에게 고단(古壇)의 진백우(眞白牛)가 있나니/ 부자(父子)가 숨겨온 지 몇 가을을 지냈던가/ 출문(出門)하매 고봉정(孤峯頂)을 직투(直透)하고/ 회래(迴來)하매 호계두(虎谿頭; 虎谿邊)를 잠시 넘는다().

 

福州興聖重滿禪師 上堂示衆曰 覿面分付不待文宣 對眼投機喚作參玄上士 若能如此所以宗風不墜 僧問 如何是宗風不墜底句 師曰 老僧不忍 問昔日靈山會裏 今朝興聖筵中 和尙親傳如何擧唱 師曰 欠汝一問

 

복주(福州) 흥성(興聖) 중만선사(重滿禪師). 상당하여 시중해 가로되 적면(覿面)하여 분부하고 문선(文宣; 文句宣揚)을 기다리지 않나니 대안(對眼)하여 투기(投機)해야 참현(參玄)하는 상사(上士)라고 불러 짓는다. 만약 능히 이와 같다면 소이로 종풍이 추락하지 않는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종풍이 추락하지 않는 구()입니까. 사왈(師曰) 노승이 참지 못한다. 묻되 석일(昔日)은 영산(靈山)의 회리(會裏)며 금조(今朝)는 흥성(興聖)의 연중(筵中)입니다. 화상이 친전(親傳)한 것을 어떻게 거창(擧唱)하시겠습니까. 사왈 너의 일문(一問)이 모자란다.

 

潭州寶應淸進禪師 僧問如何是實相 師曰沒却汝 問至理無言如何通信 師曰千差萬別 曰得力處乞師指示 師曰瞌睡漢

 

담주(潭州) 보응(寶應) 청진선사(淸進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실상(實相)입니까. 사왈(師曰) 너를 가라앉혀버린다(沒却). 묻되 지리(至理)는 무언(無言)이거늘 어떻게 통신(通信)하겠습니까. 사왈 천차만별이다. 가로되 득력처(得力處), 스님의 지시를 구걸합니다. 사왈 갑수한(瞌睡漢; 조는 자).

 

前安州白兆山志圓禪師法嗣

朗州大龍山智洪弘濟大師 僧問 如何是佛 師曰 卽汝是 曰如何領會 師曰 更嫌鉢盂無柄那 問如何是微妙 師曰 風送水聲來枕畔 月移山影到床邊 問如何是極則處 師曰 懊惱三春月 不及九秋光

 

낭주(朗州) 대룡산(大龍山) 지홍(智洪) 홍제대사(弘濟大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師曰) 곧 네가 이것이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다시 발우가 자루가 없음을 혐의하느냐. 묻되 무엇이 이 미묘(微妙)입니까. 사왈 바람이 수성(水聲)을 보내어 침반(枕畔)에 오고 달이 산영(山影)을 옮겨 상변(床邊)에 이른다. 묻되 무엇이 이 극칙처(極則處)입니까. 사왈 오뇌(懊惱)하는 삼춘(三春)의 달이 구추(九秋)의 빛에 미치지 못한다.

 

襄州白馬山行靄禪師 僧問 如何是淸淨法身 師曰 井底蝦蟇吞却月 問如何是白馬正眼 師曰 向南看北斗

 

양주(襄州) 백마산(白馬山) 행애선사(行靄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청정한 법신입니까. 사왈(師曰) 우물 밑의 두꺼비(蝦蟇)가 달을 삼켜버렸다. 묻되 무엇이 이 백마의 정안(正眼)입니까. 사왈 남방을 향하여 북두(北斗)를 본다.

 

郢州大陽山行沖禪師第一世住僧問 如何是無盡藏 師良久 僧無語 師曰 近前來 僧才近前 師曰去

 

영주(郢州) 대양산(大陽山) 행충선사(行沖禪師)第一世住. 승문(僧問) 무엇이 이 무진장(無盡藏)입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중이 말이 없없다. 사왈(師曰) 앞으로 다가오너라. 중이 겨우 앞으로 다가가자 사왈 가거라.

 

安州白兆山竺乾院懷楚禪師第二世住僧問 如何是句句須行玄路 師曰 沿路直到湖南 問如何是師子兒 師曰 德山嗣龍潭 問如何是和尙爲人一句 師曰 與汝素無冤讎 一句元在遮裏 曰未審在什麽方所 師曰 遮鈍漢

 

안주(安州) 백조산(白兆山) 축건원(竺乾院) 회초선사(懷楚禪師)第二世住. 승문(僧問) 무엇이 이 구구(句句)마다 모름지기 현로(玄路)를 행함입니까. 사왈(師曰) 길 따라(沿路) 바로() 호남에 이른다. 묻되 무엇이 이 사자아(師子兒)입니까. 사왈 덕산이 용담(龍潭)을 이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이 위인(爲人)하는 1구입니까. 사왈 너와 본디() 원수(冤讎; 怨讎와 같음)가 아니니() 1구가 원래 저리(遮裏; 이 속)에 있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어느 방소(方所)에 있습니까. 사왈 이 둔한(鈍漢).

 

蘄州四祖山淸皎禪師 福州人也 姓王氏 初住郢州大陽山爲第二世 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楷師巖畔祥雲起 寶壽峯前震法雷 師次住安州慧日院 後遷止蘄州四祖山爲第一世 年七十時遺偈云 吾年八十八 滿頭垂白髮 顒顒鎭雙峯 明明千江月 黃梅揚祖敎 白兆承宗訣 日日告兒孫 勿令有斷絕 淳化四年癸巳八月二十三日入滅 年八十八

顒顒; 溫和的樣子

宗訣; 禪法要旨

 

기주(蘄州) 사조산(四祖山) 청교선사(淸皎禪師). 복주 사람이며 성이 왕씨(王氏). 영주(郢州) 대양산(大陽山)에 초주(初住)했고 제2세가 된다.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해사암반(楷師巖畔)에 상운(祥雲)이 일어나고 보수봉전(寶壽峯前)에 법뢰(法雷)가 진동(震動)한다. 스님이 안주(安州) 혜일원(慧日院)에 차주(次住)했고 후에 기주(蘄州) 사조산(四祖山)으로 옮겨 머물렀고 제1세가 된다. 나이 70 때 유게(遺偈)하여 이르되 나의 나이 팔십팔에/ 머리 가득히 백발을 드리우리라/ 옹옹(顒顒)하게 쌍봉(雙峯)을 진수(鎭守)하고/ 명명(明明)한 천강(千江)의 달이다/ 황매(黃梅)는 조교(祖敎)를 선양했고/ 백조(白兆)는 종결(宗訣)을 승수(承受)했다/ 날마다 아손에게 고하나니/ 단절이 있게 하지 말아라. 순화(淳化) 4년 계사(癸巳; 993) 823일 입멸했고 나이는 88이다.

顒顒; 온화(溫和)한 양자(樣子).

宗訣; 선법(禪法)의 요지(要旨).

 

蘄州三角山志操禪師第三世住 僧問 敎法甚多宗歸一貫 和尙爲什麽說得許多周遊者也 師曰 爲爾周遊者也 曰請和尙卽古卽今 師以手敲繩床

一貫; 一種道理貫穿於萬事萬物 論語里仁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周遊者也; 謂言語紛繁迂曲 亦作周由者也 者也周由

 

기주(蘄州) 삼각산 지조선사(志操禪師)第三世住. 승문(僧問) 교법(敎法)이 심히 많으나 종()은 일관(一貫)으로 돌아가거늘 화상은 무엇 때문에 허다한 주유자야(周遊者也)를 설함을 얻습니까. 사왈 네()가 주유자야(周遊者也)이기 때문이다. 가로되 화상의 즉고즉금(卽古卽今)을 청합니다. 스님이 손으로써 승상(繩床)을 두드렸다.

一貫; 일종(一種)의 도리가 만사만물을 관천(貫穿). 논어 이인(里仁). 공자가 가로되 삼(; 曾參이니 曾子의 이름), 나의 도는 일로써 그것을 꿴다(一以貫之). 증자(曾子)가 가로되 예(). 공자가 나가자 문인이 물어 가로되 무엇을 이르심인가. 증자가 가로되 부자(夫子)의 도는 충서(忠恕)일 따름이다.

周遊者也; 이르자면 언어가 분번(紛繁)하고 우곡(迂曲). 또한 주유자야(周由者也)ㆍ자야주유(者也周由)로 지음.

 

晉州興敎師普禪師 僧問 盈龍宮溢海藏眞詮卽不問 如何是敎外別傳底法 師曰 眼裏耳裏鼻裏 曰只此便是否 師曰 是什麽 僧咄 師亦咄 問僧 近離什麽處 曰下寨 師曰 還逢著賊麽 曰今日捉下 師曰 放汝三十棒

海藏; 大海龍宮的寶藏

 

진주(晉州) 흥교(興敎) 사보선사(師普禪師). 승문(僧問) 용궁에 가득하고 해장(海藏)에 넘치는() 진전(眞詮)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법입니까. 사왈(師曰) 안리(眼裏), 이리(耳裏), 비리(鼻裏). 가로되 다만 이것이 바로 이것입니까. 사왈 이 뭣고(是什麽). 중이 돌()했다. 스님도 또한 돌()했다.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하채(下寨; 山寨에서 내려오다)했습니다. 사왈 도리어 도적을 만났느냐. 가로되 금일 잡았습니다(捉下). 사왈 너에게 30()을 놓는다.

海藏; 대해 용궁의 보장(寶藏).

 

蘄州三角山眞鑒禪師第四世住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忽然行政令 便見下堂階

政令; 政府發布的法令

 

기주(蘄州) 삼각산 진감선사(眞鑒禪師)第四世住.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홀연히 정령(政令)을 행하매 바로 하당(下堂)의 섬돌을 본다.

政令; 정부에서 발포(發布)하는 법령.

 

前潭州藤霞和尙法嗣

澧州藥山和尙第七世住師上堂謂衆曰 夫學般若菩薩不懼得失 有事近前 時有僧問 藥山祖裔請師擧唱 師曰 萬機挑不出 曰爲什麽萬機挑不出 師曰 他緣岸谷 問如何是藥山家風 師曰 葉落不如初 問法雷哮吼時如何 師曰 宇宙不曾震 曰爲什麽不曾震 師曰 遍地娑婆未嘗哮吼 曰不哮吼底事如何 師曰 闔國無人知

 

예주(澧州) 약산화상(藥山和尙)第七世住. 스님이 상당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무릇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득실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유사(有事)거든 근전(近前)하라. 때에 어떤 중이 묻되 약산(藥山)의 조예(祖裔)니 스님의 거창(擧唱)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만기(萬機)를 돋우어도() 나오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만기를 돋우어도 나오지 않습니까. 사왈 그는 안곡(岸谷)을 반연(攀緣; )한다. 묻되 무엇이 이 약산의 가풍입니까. 사왈 잎이 떨어짐이 처음만 같지 못하다. 묻되 법뢰(法雷)가 효후(哮吼)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우주는 일찍이 진동(震動)하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일찍이 진동하지 않습니까. 사왈 온 땅(遍地)이 사바(娑婆)라 일찍이 효후하지 않는다. 가로되 효후하지 않는 일은 어떻습니까. 사왈 합국(闔國; 全國)에 아는 사람이 없다.

 

前潭州雲蓋山景和尙法嗣

衡嶽南臺寺藏禪師 問遠遠投師請師一接 師曰 不隔戶 問如何是南臺境 師曰 松韻拂時石不點 孤峯山下壘難齊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巖前栽野果 接待往來賓 曰恁麽卽謝供養 師曰 怎生滋味 問如何是法堂 師曰 無壁落 問不顧諸緣時如何 師良久

 

형악(衡嶽) 남대사(南臺寺) 장선사(藏禪師). 묻되 멀고 멀리서 스님에게 투신했으니 스님의 일접(一接)을 청합니다. 사왈(師曰) 문호(門戶)가 막히지() 않았다. 묻되 무엇이 이 남대경(南臺境)입니까. 사왈 송운(松韻)이 떨칠() 때 돌이 끄덕이지() 않고 고봉(孤峯)의 산 아래 보루(堡壘; )는 제등(齊等; )하기 어렵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암전(巖前)에 야과(野果)를 심어() 왕래하는 손을 접대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공양에 감사합니다. 사왈 자미(滋味)가 어떻더냐(怎生). 묻되 무엇이 이 법당입니까. 사왈 벽락(壁落; 벽 울타리)이 없다. 묻되 제연(諸緣)을 돌아보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양구(良久)했다.

 

幽州潭柘水從實禪師 僧問 如何是道 師曰 箇中無紫皁 曰如何是禪 師曰 不與白雲連 師問僧 作什麽來 曰親近來 師曰 任汝白雲朝嶽頂 爭奈靑霄不展顔

 

유주(幽州) 담자(潭柘) 수종실(水從實)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師曰) 개중(箇中)에 자조(紫皁)가 없다. 가로되 무엇이 이 선()입니까. 사왈 백운과 잇닿지() 않았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무엇 하러 왔느냐(作什麽來). 가로되 친근(親近)하려고 왔습니다. 사왈 너 백운이 악정(嶽頂)을 향함에() 맡기나니 청소(靑霄)는 얼굴()을 펴지 않음을 어찌하리오.

 

潭州雲蓋山證覺禪師 僧問 如何是和尙家風 師曰 四海不曾通 問如何是一塵含法界 師曰 通身體不圓 曰如何是九世刹那分 師曰 繁興不布彩 問如何是宗門中的的意 師曰 萬里胡僧不入波瀾

 

담주(潭州) 운개산(雲蓋山) 증각선사(證覺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師曰) 사해(四海)에 일찍이 통하지 않았다. 묻되 무엇이 이 일진(一塵)이 법계를 함유(含有; )함입니까. 사왈 통신(通身; 온 몸)의 체()가 원만하지 못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구세(九世)가 찰나에 나뉨입니까. 사왈 번흥(繁興)하여도 문채(文彩; )를 펴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종문 중의 적적(的的; 진실. 확실)한 뜻입니까. 사왈 만 리의 호승(胡僧)이 파란(波瀾)에 들지 않는다.

 

前廬山歸宗懷惲禪師法祠

歸宗寺弘章禪師第四世住 僧問 學人有疑時如何 師曰 疑來多少時也 問小船渡大海時如何 師曰 較些子 曰如何得渡 師曰 不過來 問枯木生華時如何 師曰 把一朵來 問混然覓不得時如何 師曰 是什麽

 

귀종사(歸宗寺) 홍장선사(弘章禪師)第四世住. 승문(僧問) 학인이 의심이 있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의심하여 온 지 얼마의 시일이냐. 묻되 소선(小船)으로 대해(大海)를 건널() 때 어떻습니까. 사왈 조금은 상당하다(較些子). 가로되 어떻게 건넘을 얻습니까. 사왈 지나지 못한다(不過來). 묻되 고목(枯木)이 꽃을 피울(生華) 때 어떻습니까. 사왈 한 떨기 가지고 오너라. 묻되 혼연(混然)하여 찾아도 얻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이 뭣고.

 

前池州嵆山章禪師法嗣

隨州雙泉山道虔禪師 僧問 洪鍾未扣時如何 師曰 絕音響 曰扣後如何 師曰 絕音響 問如何是在道底人 師曰 無異念 問如何是希有底事 師曰 白蓮華向半天開 師後住安州法雲院示滅

 

수주(隨州) 쌍천산(雙泉山) 도건선사(道虔禪師). 승문(僧問) 홍종(洪鍾)을 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음향이 끊긴다. 가로되 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음향이 끊긴다. 묻되 무엇이 이 도()에 있는 사람입니까. 사왈 이념(異念)이 없다. 묻되 무엇이 이 희유(希有)한 일입니까. 사왈 백련화(白蓮華)가 반천(半天)을 향해 피었다(). 스님이 후에 안주(安州) 법운원(法雲院)에 주()하다가 시멸(示滅)했다.

 

前洪州雲居第四世懷岳禪師法嗣

揚州風化院令崇禪師第一世住舒州宿松人 七歲出家 二十登戒 契緣於雲居懷岳和尙 開法於信州鵝湖 廬州節帥周本於維揚西南隅創院請師居之 僧問 如何是敵國一著棊 師曰 下將來 問一棒打破虛空時如何 師曰 把將一片來

 

양주(揚州) 풍화원(風化院) 영숭선사(令崇禪師)第一世住. 서주(舒州) 숙송(宿松) 사람이니 7세에 출가했고 20에 등계(登戒)했다. 운거(雲居) 회악화상(懷岳和尙)에게 인연이 계합했고 신주(信州) 아호(鵝湖)에서 개법(開法)했다. 여주(廬州) 절수(節帥) 주본(周本)이 유양(維揚) 서남 모퉁이에 창원(創院)하고 스님을 청해 거주하게 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적국(敵國)의 일착(一著) 바둑()입니까. 사왈(師曰) 착수하여 가져 오너라(下將來). 묻되 1()으로 허공을 타파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일편(一片)을 잡아 가져 오너라.

 

澧州藥山忠彦禪師第八世住僧問 敎云 諸佛放光明 助發實相義 光明卽不問 如何是助發實相義 師曰 會麽 曰莫便是否 師曰 是什麽 問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雲嶺龍昌月 神風洞上泉

 

예주(澧州) 약산(藥山) 충언선사(忠彦禪師)第八世住. 승문(僧問) ()에 이르되 제불이 광명을 놓아 실상(實相)의 뜻을 조발(助發; 도와 發揮)한다. 광명은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실상의 뜻을 조발함입니까. 사왈(師曰) 아느냐. 가로되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이 뭣고. 묻되 스님은 뉘집의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 운령(雲嶺)의 용창(龍昌)의 달이며 신풍(神風)의 동상(洞上)의 샘이다.

 

梓州龍泉和尙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不在闍梨分上 問學人欲跳萬丈洪崖時如何 師曰 撲殺

梓州; 今四川省三臺

 

재주(梓州) 용천화상(龍泉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사리(闍梨)의 분상(分上)에 있지 않다. 묻되 학인이 만장(萬丈)의 홍애(洪崖)를 뛰어넘으려고(欲跳)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쳐 죽인다(撲殺; 擊殺).

梓州; 지금의 사천성 삼대(三臺).

 

前筠州洞山道延禪師法嗣

筠州上藍院慶禪師 初遊方問雪峯 如何是雪峯的的意 雪峯以杖子敲師頭 師應諾 峯大笑 師後承洞山印解居于上藍 僧問如何是上藍無刃劍 師曰無 僧曰 爲什麽無 師曰 闍梨諸方有

印解; 印證解決之義

 

균주(筠州) 상람원(上藍院) 경선사(慶禪師). 처음 유방(遊方)하다가 설봉에게 묻되 무엇이 이 설봉의 적적(的的)한 뜻입니까. 설봉이 주장자로써 스님의 머리를 두드렸다(). 스님이 응낙하자 설봉이 크게 웃었다. 스님이 후에 동산(洞山)의 인해(印解)를 승수(承受)하고 상람(上藍)에 거주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상람의 칼날이 없는 검(無刃劍)입니까. 사왈(師曰) 없다. 승왈(僧曰) 무엇 때문에 없습니까. 사왈 사리(闍梨)와 제방에는 있다.

印解; 인증(印證)하고 해결함의 뜻.

 

前襄州鹿門山處眞禪師法嗣

益州崇眞和尙 僧問 如何是禪 師曰 澄潭釣玉兔 問如何是大人相 師曰 泥揑三官土地堂

三官; 三官大帝 屬於道敎尊奉的三位天神 一說是堯舜禹 指天官地官和水官 中國上古就有祭天祭地和祭水的禮儀 [百度百科]

 

익주(益州) 숭진화상(崇眞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선()입니까. 사왈(師曰) 징담(澄潭)에서 옥토(玉兔)를 낚는다(). 묻되 무엇이 이 대인상(大人相)입니까. 사왈 진흙으로 빚은 3(三官)의 토지당(土地堂)이다.

三官; 삼관대제(三官大帝)니 도교에서 존봉(尊奉)하는 3위의 천신에 속함. 일설엔 이 요순우(堯舜禹)라 함. 천관ㆍ지관과 수관을 가리킴. 중국 상고에 곧() 제천(祭天)ㆍ제지(祭地)와 제수(祭水)의 예의가 있었음 [백도백과].

 

襄州鹿門山第二世譚和尙志行大師 僧問 如何是實際理地 師曰 南贍部洲北欝單越 曰恁麽則事同一家也 師曰 隔須彌在 問遠遠投師請師接 師曰 從什麽處來 曰江北來 師曰 南堂裏安下 問如何是淸淨法身 師曰 戌亥年生

安下; 安置住下

 

양주(襄州) 녹문산(鹿門山) 2세 담화상(譚和尙) 지행대사(志行大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실제이지(實際理地)입니까. 사왈(師曰) 남섬부주(南贍部洲)며 북울단원(北欝單越)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사()가 일가(一家)와 같습니다. 사왈 수미(須彌)가 격()해 있다. 묻되 멀고 멀리서 스님에게 투신했으니 스님의 접인(接引)을 청합니다. 사왈 어느 곳으로부터 왔느냐. 가로되 강북에서 왔습니다. 사왈 남당(南堂) 속에 안하(安下)하라. 묻되 무엇이 이 청정법신입니까. 사왈 술해년생(戌亥年生)이다.

安下; 안치하여 아래에 머묾.

 

襄州谷隱智靜悟空大師 僧問 如何是和尙轉身處 師曰 臥單子下 問如何是道 師曰 鳳林關下 曰學人不會 師曰 直至荊南 問如何是指歸之路 師曰 莫用伊 曰還使學人到也無 師曰 什麽處著得汝 問靈山一會何異今時 師曰 不異如今 曰不異底事作麽生 師曰 如來密旨迦葉不傳

臥單; 被套

鳳林關; 四分律鈔批八 更河西西上至河州 有鳳林關

 

양주(襄州) 곡은(谷隱) 지정(智靜) 오공대사(悟空大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전신처(轉身處)입니까. 사왈(師曰) 와단자(臥單; 後綴) 아래다.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봉림관(鳳林關) 아래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바로 형남(荊南)에 이른다. 묻되 무엇이 이 지귀(指歸; 主旨)의 길입니까. 사왈 그()를 쓰지 말아라. 가로되 도리어 학인으로 하여금 이르게 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어느 곳에 너를 붙이겠는가(著得). 묻되 영산(靈山)의 일회(一會)가 금시(今時)와 어찌 다르겠습니까. 사왈 여금과 다르지 않다. 가로되 다르지 않는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여래의 밀지(密旨)를 가섭이 전하지 않았다.

臥單; 피투(被套; 이불솜. 이불잇. 이불 홑청).

鳳林關; 사분율초비8. 다시 하서(河西)의 서쪽 위에서 하주(河州)에 이르면 봉림관이 있다.

 

廬山佛手巖行因禪師者雁門人也 未詳姓氏 早習儒學 一旦捨俗出家 志求眞諦乃遊方 首謁襄陽鹿門山眞禪師 師資道契 尋抵江淮登廬山 山之北有巖如五指 下有石窟深邃可三丈餘 師宴處其中 因號佛手巖和尙 不度弟子 有隣庵僧爲之供侍 常有異鹿錦囊鳥 馴繞其側 江南國主李氏嚮仰 三遣使徵召不起 堅請就棲賢寺開法 不踰月潛歸巖室 僧問如何是對現色身 師竪起一指法眼別云 還有也未 一日示有微疾 謂侍僧曰 日將午吾去矣 侍僧方對 師下床行數步屹立而化 巖頂上有松一株同日枯瘁 壽七十餘 國主命畫工寫影 備香薪焚爇收遺骨 塔于巖之陰

 

여산(廬山) 불수암(佛手巖) 행인선사(行因禪師)란 자는 안문(雁門) 사람이며 성씨가 미상이다. 일찍 유학(儒學)을 익혔고 하루아침에 사속(捨俗)하고 출가했다. 의지(意志)가 진제(眞諦)를 구했고 이에 유방(遊方)했다. 처음()에 양양(襄陽) 녹문산(鹿門山) 진선사(眞禪師)를 참알하여 사자(師資)의 도가 계합했다. 이윽고 강회(江淮)에 다다라() 여산(廬山)에 올랐는데 산의 북쪽에 다섯 손가락과 같은 암()이 있었고 아래에 석굴이 있었는데 심수(深邃; 깊이)가 가히 3() 남짓이었다. 스님이 그 가운데 편안히 거처했고(宴處) 인하여 호가 불수암(佛手巖) 화상이다. 제자를 득도(得度)시키지 않았고 이웃 암자의 승인(僧人)이 있어 공시했다(爲之供侍). 늘 이록(異鹿)과 금낭조(錦囊鳥)가 있어 길들여져() 그 곁을 돌았다(). 강남국주(江南國主) 이씨가 향앙(嚮仰)하여 세 번 사자(使者)를 보내어 징소(徵召)했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견청(堅請)하자 서현사(棲賢寺)로 나아가 개법(開法)했으나 달을 넘기지(踰月) 않고 몰래() 암실(巖室)로 돌아갔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색신(色身)을 대현(對現; 상대해 나타냄)함입니까. 스님이 한 손가락을 세워 일으켰다法眼別云 도리어 있느냐 또는 아니냐. 어느 날 미질(微疾)이 있었고 시승(侍僧)에게 일러 가로되 해가 거의() ()면 내가 떠나겠다. 시승이 바야흐로 응대하려는데 스님이 상()에서 내려와 몇 걸음 다니더니 우뚝하게 서서(屹立) (; 遷化)했다. 바위() 정상(頂上)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같은 날 고췌(枯瘁; 마르고 병듦)했다. 나이는 70 남짓이다. 국주(國主)가 화공(畫工)에게 명()해 사영(寫影)했고 향신(香薪)을 갖추어 분설(焚爇; 불사르다)하여 유골을 거두어 암()의 그늘에 탑을 세웠다.

 

前撫州曹山第二世慧霞禪師法嗣

嘉州東汀和尙 僧問 如何是却去底人 師曰 石女紡麻纑 曰如何是却來底人 師曰 扇車關捩良計

扇車; 也稱風扇車 用扇風的方法 淸除穀物中殼和米粒分開 這種農具由木箱和裝有葉片的軸構成

 

가주(嘉州) 동정화상(東汀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각거(却去; 後退)하는 사람입니까. 사왈(師曰) 석녀(石女)가 마로(麻纑; 삼의 실)를 길쌈()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각래(却來; 歸來)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선차(扇車)의 관려(關捩)良計가 끊어졌다.

扇車; 또 명칭이 풍선차(風扇車)니 선풍(扇風)의 방법을 사용하여 곡물 중의 껍질과 미립(米粒)을 청제(淸除)하여 분개(分開; 분리). 이런 종류의 농구는 나무 상자와 엽편(葉片)을 장착해 있는 축()으로 말미암아 구성(構成).

 

前華州草庵法義禪師法嗣

泉州龜洋慧忠禪師 本州僊遊縣人也 姓陳氏 九歲依本山出家 旣具戒杖錫觀方謁草庵和尙 草庵問曰 何方而來 師曰 六眸峯來 草庵曰 還具六通否 師曰 患非重瞳 草庵然之 師迴故山 屬唐武宗廢敎爲白衣 暨宣宗中興 師曰 古人有言 上昇道士不受 成佛沙彌不具戒法 遂過中不食不宇而禪 乃述偈三首曰 雪後始諳松桂別 雲收方見濟河分 不因世主敎還俗 那辨雞群與鶴群 多年塵事謾騰騰 雖著方袍未是僧 今日修行依善慧 滿頭留髮候然燈 形容雖變道常存 混俗心源亦不昏 更讀善財巡禮偈 當時何處作沙門 師始從參禮以至返初示滅未嘗下山 葬于無了和尙塔之東隅二百步 目爲東塔 經數載其塔忽坼裂連階丈餘 時主塔僧將發之 於夜宴寂中 見西塔定身言曰 吾之遺質旣勞汝重瘞 今東塔不煩更出也 塔主稟乎靈感 召檀信重修補嚴飾 逮今香燈不絕 時謂陳沈二眞身是也 其無了禪師嗣馬祖事迹 廣如別章

; 按照規定 按舊規慣例 副詞

; 符籙 道士畫的一種驅使鬼神的圖形

過中不食; 過午不食 日中 午 日中

濟河; 又稱濟水 古水名 發源於今河南省濟源市 流經河南山東入渤海

陳沈; 慧忠姓陳 無了姓沈

 

천주(泉州) 귀양(龜洋) 혜충선사(慧忠禪師). 본주(本州) 선유현(僊遊縣) 사람이니 성이 진씨(陳氏). 9세에 본산(本山)에 의지해 출가했고 이미 구계(具戒)하자 장석(杖錫; 錫杖支撑하다)하고 지방을 관람하다가(觀方) 초암화상(草庵和尙)을 참알했다. 초암이 문왈(問曰) 어느 지방에서 오는가. 사왈(師曰) 육모봉(六眸峯)에서 옵니다. 초암이 가로되 도리어 육통(六通)을 갖추었느냐. 사왈 우환(憂患; )은 중동(重瞳)이 아님입니다. 초암이 그렇다 하였다. 스님이 고산(故山)으로 돌아왔는데 당 무종(武宗)의 폐교(廢敎)에 당해() ()로 백의(白衣)가 되었다. 선종(宣宗)이 중흥함에 이르러() 사왈 고인(古人)이 말씀이 있어 상승(上昇)한 도사는 녹()을 받지 않고 성불한 사미는 계법(戒法)을 갖추지 않는다. 드디어 과중불식(過中不食)했고 우(; 佛宇佛寺)가 아니어도 참선했다(). 이에 게() 3()를 진술했으니 가로되 설후(雪後)에 송계(松桂)의 특별함을 비로소 알고(始諳)/ 운수(雲收; 구름이 걷힘)라야 바야흐로 제하(濟河)가 분명()함을 본다/ 세주(世主; 國君)가 환속(還俗)하게 함을 인하지 않았다면/ 계군(雞群)과 학군(鶴群)을 어찌() 분변하리오. 다년(多年)에 진사(塵事)로 헛되이() 등등(騰騰)했으니/ 비록 방포(方袍; 袈裟)를 입었어도 이 중이 아니다/ 금일의 수행은 선혜(善慧)에 의함이니/ 머리 가득히 유발(留髮)하여 연등(然燈; 연등불)을 기다리노라(). 형용(形容)은 비록 변했으나 도는 상존(常存)하나니/ 혼숙(混俗)해도 심원(心源)은 또한 어둡지() 않다/ 선재(善財)의 순례게(巡禮偈)를 다시 읽나니/ 당시에 어느 곳에 사문(沙門)을 지었던가. 스님이 시종 순례()하면서 반초(返初)하고 시멸(示滅)함에 이르기까지(以至) 일찍이 하산(下山)하지 않았다. 무료화상탑(無了和尙塔)의 동우(東隅) 2백 보()에 안장(安葬)했고 명목(名目)해 동탑(東塔)이라 했다. 몇 해가 지나() 그 탑이 홀연히 탁렬(坼裂; 터져 갈라짐)하여 섬돌에 잇닿은 게 장여(丈餘)였다. 때에 주탑승(主塔僧)이 장차 그것을 발출(發出; )하려고 했는데 밤의 연적(宴寂) 중에 서탑(西塔)의 정신(定身)을 보았으니 말해 가로되 나의 유질(遺質)을 이미 너를 노고롭게 해 거듭 묻었거니와 여금에 동탑(東塔)을 번거롭게 다시 발출(發出; )하지 말아라. 탑주(塔主)가 영감(靈感)을 받자() 단신(檀信; 施主)을 불러 거듭 수보(修補)하고 엄식(嚴飾)했다. 지금에 이르도록() 향등(香燈)이 끊기지 않으며 때에 이르기를 진심(陳沈) 2진신(眞身)이라 한 게 이것이다. 그 무료선사(無了禪師)가 마조(馬祖)를 이은 사적(事迹)의 광록(廣錄; )은 별장(別章)과 같다.

; 규정을 안조(按照; 안험하여 대조함)함이니 구규(舊規)의 관례를 안험함. 부사(副詞).

; 부록(符籙)이니 도사(道士)가 그린 일종의 귀신을 구사(驅使)하는 도형(圖形).

過中不食; 과오불식(過午不食)이닝 중()은 일중(日中), ()는 일중(日中).

濟河; 또 명칭이 제수(濟水)니 옛 물 이름임. 지금의 하남성 제원시에서 발원하여 흘러 하남과 산동을 경유하여 발해로 들어감.

陳沈; 혜충(慧忠)은 성이 진()이며 무료(無了)는 성이 심().

 

前襄州含珠山審哲禪師法嗣

洋州龍穴山和尙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騎虎唱巴歌 問大善知識爲什麽却與土地燒錢 師曰 彼上人者難爲醻對

巴歌; 祖庭事苑四 巴歌 西漢 注云 巴 巴人也 當高祖初爲漢王 得巴兪人 竝趫揵(疑健)善鬬 與之定三秦滅楚 因存其武樂也 卽今之巴州兪州 宋玉所謂下俚巴歌 國中屬而和者數千人矣 趫 丘祅切

양주(洋州) 용혈산(龍穴山) 화상.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師曰) 범을 타고 파가(巴歌)를 부른다. 묻되 대선지식이 무엇 때문에 도리어 토지(土地; 토지신)를 위해() 소전(燒錢)합니까. 사왈 그 상인(上人)이란 자는 수대(醻對; 응대)하기 어렵다.

巴歌; 조정사원4. 파가(巴歌) 서한(西漢; 전한) ()에 이르되 파()는 파인(巴人)이다. 고조(高祖)가 처음 한왕(漢王)이 됨에 당하여 파주(巴州)와 유주(兪州) 사람을 얻었는데 모두 재빠르고 굳세며(; 으로 의심됨) 잘 싸웠다. 그들과 더불어 삼진(三秦)을 정()하고 초()를 멸했으며 인하여 그 무악(武樂)을 존치(存置)했다. 즉금의 파주(巴州)와 유주(兪州)니 송옥(宋玉)이 이른 바 하리파가(下俚巴歌)를 국중에서 이어 화응하는 자가 수천인(數千人)이라 한 것임. ()는 구요절(丘祅切; ).

 

唐州大乘山和尙 問枯樹逢春時如何 師曰 世間希有 問如何是四面上事 師曰 升子裏𨁝跳 斗子內轉身

 

당주(唐州) 대승산(大乘山) 화상. 묻되 고수(枯樹)가 봄을 만났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세간에 희유(希有)하다. 묻되 무엇이 이 사면상(四面上)의 일입니까. 사왈 되(升子; 는 조사) 속에서 발도(𨁝跳; 펄쩍 뛰다)하고 말(斗子; 는 조사) 안에서 전신(轉身)한다.

 

襄州鳳山延慶院歸曉慧廣大師 僧問 言語道斷時如何 師曰兩重公案 曰如何領會 師曰 分明擧似洞山 問如何是鳳山境 師曰 好生看取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識麽

好生; 於敦促注意時所用之語 生 語助詞 好生一語 於宋代以來廣爲一般人所用

 

양주(襄州) 봉산(鳳山) 연경원(延慶院) 귀효(歸曉) 혜광대사(慧廣大師). 승문(僧問) 언어도단(言語道斷)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양중공안(兩重公案)이다. 가로되 어떻게 영회(領會)해야 합니까. 사왈 분명히 동산(洞山; 여러 선록에 이 2자가 없음)에게 들어 보여라. 묻되 무엇이 이 봉산경(鳳山境)입니까. 사왈 호생(好生) 간취(看取)하라.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아느냐(識麽).

好生; 주의(注意)를 돈촉(敦促; 재촉)할 때 쓰는 바의 말이니 생은 어조사. 호생 1()는 송대 이래로 널리 일반인이 쓰는 바가 되었음.

 

襄州含珠山眞和尙第三世住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含珠密意同道者知 曰恁麽卽不假羽翼便登翠嶺也 師曰鈍 問古鏡未磨時如何 師曰 昧不得 曰磨後如何 師曰 黑如漆

 

양주(襄州) 함주산(含珠山) 진화상(眞和尙)第三世住.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함주(含珠)의 밀의(密意)는 동도자(同道者)라야 안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우익(羽翼)을 빌리지 않고 바로 취령(翠嶺)에 오르겠습니다. 사왈 둔()하다. 묻되 고경(古鏡)을 갈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매(; 어둠)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간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검기가 칠()과 같다.

 

前鳳翔府紫陵匡一大師法嗣

幷州廣福道隱禪師 僧問 如何是指南一路 師曰 妙引靈機事 澄波顯異輪 問三家同到請 未審赴誰家 師曰 月應千家水 門門盡有僧

 

병주(幷州) 광복(廣福) 도은선사(道隱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지남(指南)의 일로(一路)입니까. 사왈(師曰) 영기(靈機)의 일을 묘하게 당기니 징파(澄波)에 이륜(異輪)이 나타난다(). 묻되 3()가 함께 이르러 청하면 미심하나니 누구의 집에 다다라야 합니까. 사왈 달은 천가(千家)의 물에 응하나니 문문(門門)마다 모두 중이 있다.

 

紫陵微禪師第二世住僧問 如何是紫陵境 師曰 寂照燈光夜已深 曰如何是境中人 師曰 猿啼虎嘯 問寶劍未出匣時如何 師曰 磐陀石上栽松柏

磐陀石; 陀 團狀物

 

자릉미(紫陵微) 선사第二世住. 승문(僧問) 무엇이 이 자릉경(紫陵境)입니까. 사왈(師曰) 고요히 비추는 등광(燈光)의 밤이 이미 깊었다. 가로되 무엇이 이 경중인(境中人)입니까. 사왈 원숭이가 울고 범이 읊조린다. 묻되 보검이 갑()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반타석(磐陀石; 너럭바위) 위에 송백(松柏; 저본에 上柏으로 지었음)을 심는다.

磐陀石; ()는 원상(團狀)의 물건.

 

興元府大浪和尙 僧問 旣是喝河神 爲什麽却被水推却 師曰 隨流始得妙 倚岸却成迷

 

흥원부(興元府) 대랑화상(大浪和尙). 승문(僧問) 이미 이 할하신(喝河神; 내를 하는 신)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물이 밀어버림(推却)을 입습니까. 사왈(師曰) 수류(隨流)하면 비로소 묘()를 얻고 의안(倚岸)하면 도리어 미()를 이룬다.

 

前洪州鳳棲山同安威禪師法嗣

陳州石鏡和尙 僧問 石鏡不磨還照也無 師曰 前生是因今生是果

 

진주(陳州) 석경화상(石鏡和尙). 승문(僧問) 석경(石鏡)을 갈지 않으면 도리어 비춥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師曰) 전생은 이 인()이며 금생은 이 과().

 

前襄州石門山獻禪師法嗣

石門山乾明寺慧徹禪師第二世住問金烏出海光天地 與此光陰事若何 師曰 龍出洞兮風雨至 海嶽傾時日月明 問從上諸聖向什麽處去也 師曰 露柱掛燈籠 問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片雲生鳳嶺 樵子處處明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解接無根樹 能挑海底燈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少林澄九鼎 動浪百華新 問如何是佛法大意 師曰 三門外松樹子見生見長 問一毫未發時如何 師曰 羿善不調弓 箭透三江口 問如何是佛 師曰 樵子度荒郊 騎牛草不露

九鼎; 是中國的代名詞 相傳 夏朝初年 夏王大禹劃分天下爲九州 令九州州牧貢獻青銅 鑄造九鼎 象徵九州 周顯王時 九鼎沒於泗水下 後世帝王非常看重九鼎的權利象徵與意義 亦曾屢次重鑄九鼎 武則天宋徽宗也曾鑄九鼎 [百度百科] 祖庭事苑五 九鼎 左氏(春秋左氏傳 宣公三年)云 昔夏之方有德也 遠方圖物 貢金九枚 鑄鼎象物 百物而爲之備 使民知神姦 故民入川澤山林 不逢不若 魑魅魍魎 莫能逢之 用能協于上下 以承天休 桀有昏德 鼎遷于商 載祀六百 商紂暴虐 鼎遷于周 德之休明 雖小 重也 其姦回昏亂 雖大 輕也 天祚明德 有所底 成王定鼎于郟鄏 卜世三十 卜年七百 天所命也 類合志云 禹鑄九鼎 五者以應陽法 四者以象陰數 使二師以雌金爲陰鼎 以雄金爲陽鼎 鼎中水常滿 以占氣之休否 當夏桀之世 鼎水忽自沸煎 及傳周 周末九鼎咸震 能應亡滅之兆也 楊子曰 或問 周寶九鼎 寶乎 曰 器寶也 器寶待人而後寶 底 音旨 致也 郟鄏 上古洽切 下音辱 郟鄏 今河南

羿; 後漢書二十八 昔有窮後羿 恃其善射 不思患難 以至於斃 釋氏稽古略一 羿趨田家 衆殺羿而烹之 以食其子 其子不忍食 殺于窮門 羿在位八年 論語憲問 羿善射 淮南子六覽冥訓 羿請不死之藥於西王母 姮娥竊以奔月

 

석문산(石門山) 건명사(乾明寺) 혜철선사(慧徹禪師)第二世住. 묻되 금오(金烏; )가 바다에서 나와 천지(天地)를 비추니() 이 광음(光陰)의 일과 어떻습니까(若何). 사왈(師曰) 용이 동(; )에서 나오니 풍우가 이르고 해악(海嶽)이 기울 때 일월이 밝다. 묻되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이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 노주(露柱)에 등롱(燈籠)이 걸렸다. 묻되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 편운(片雲)이 봉령(鳳嶺)에 생겨나니 초자(樵子)가 곳곳에 밝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뿌리 없는 나무를 접붙일 줄 알고(解接) 바다 밑의 등()을 능히 돋운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소림(少林)이 구정(九鼎)을 맑히고() 파랑을 움직이니 백화(百華)가 새롭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삼문(三門) 밖의 송수자(松樹子; 는 조사)가 현생현장(見生見長; 현재 생장)한다. 묻되 일호(一毫)가 일어나지 않을(未發)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예(羿)가 조절되지 않은 활(不調弓)을 잘 쏘아() 화살이 삼강의 입구(三江口)를 투과했다().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초자(樵子; 나무꾼)가 황교(荒郊)를 지나면서() 기우(騎牛)했으나 풀이 드러나지 않는다.

九鼎; 이는 중국의 대명사임. 서로 전하기를 하조(夏朝) 초년 하왕 대우가 천하를 획분하여 9()로 삼고 9주의 주목에게 청동을 바치게 하여 9()을 주조했는데 9주를 상징했음. 주 현왕 때 9정이 사수(泗水) 아래 잠겼음. 후세의 제왕이 비상으로 9정의 권리, 상징과 의의를 중요하게 보았으므로 또한 일찍이 누차 9정을 중주(重鑄)하였음. 무측천과 송 휘종도 또한 일찍이 9정을 주조했음 [백도백과]. 조정사원오 구정(九鼎) 좌씨(춘추좌씨전. 선공 3)에 이르되 옛적에 하()가 바야흐로 덕이 있자 원방에서 물건을 그려서 금 9매를 바쳤다. 솥을 주조해 물건을 형상했는데 백물을 갖추어 인민으로 하여금 신간(神姦; 鬼神의 간사)을 알게 했다. 고로 인민이 천택이나 산림에 들어가면 불약(不若; 같지 않은 것)을 만나지 않으므로 이매망량(魑魅魍魎)이 능히 그를 만나지 못한다. 써서 능히 상하를 도우고 천휴(天休; 하늘의 아름다운 도리. 하늘의 칭찬)를 승수했다. ()이 혼덕(昏德)이 있어 솥이 상()으로 옮겨가서 해마다 제사하기가 600번이었다. 상의 주()가 포학하여 솥이 주()로 옮겨갔다. 덕이 휴명(休明)하면 비록 작으나 무거우며 그 간회(姦回; 는 간사할 회)하고 혼란하면 비록 크더라도 가볍다. 천조(天祚; 帝位 . 곧 천자의 자리)가 덕을 밝히면 이르는() 바가 있다. 성왕(의 제2대 왕)이 솥을 겹욕(郟鄏)에 정하고 세대를 점치매() 30이며 년()을 점치매 700이었으니 하늘이 명령한 바이다. 유합지(類合志)에 이르되 우()9정을 주조했는데 5(五者; 다섯 개)는 양법에 응하고 4자는 음수(陰數)를 형상했다. 두 사장(師匠)으로 하여금 자금(雌金)으로써 음정(陰鼎)을 만들고 웅금(雄金)으로써 양정(陽鼎)을 만들게 했다. 솥 가운데 물이 늘 가득해 기후의 좋고 나쁨을 점쳤다. 하걸(夏桀; 하의 걸왕)의 세상에 당해서 솥의 물이 홀연히 스스로 비전(沸煎; 는 끓을 비. 은 끓을 전)했다. 및 주()에 전해졌는데 주말(周末)9정이 다 진동하여 능히 망멸(亡滅; 멸망)의 징조에 응했다. 양자(楊子)에 가로되 혹은 묻기를 주나라 보배인 9정이 보배인가. 가로되 기보(器寶)이다. 기보는 사람을 기다린 후에 보배다. ()는 음이 지니 치(). 겹욕(郟鄏)은 상은 고흡절(古洽切)이며 하의 음은 욕임. 겹욕은 지금의 하남임.

羿; 후한서28. 옛적에 궁후예(窮後羿)가 있었는데 그 잘 쏨을 믿고 환난(患難)을 생각하지 않다가 죽음에 이르렀다. 석씨계고략1. (羿)가 전가(田家)에 달아나자 군중이 예를 죽여서 삶았으며 그 자식에게 먹이자 그 자식이 차마 먹지 못했는데 궁문(窮門)에서 죽였다. 예는 재위가 8년이다. 논어 헌문. (羿)는 잘 쏘았다. 회남자6 남명훈. (羿)가 불사의 약을 서왕모에게 청했는데 항아(姮娥)가 훔쳐 달로 달아났다.

 

前襄州萬銅山廣德義和尙法嗣

襄州廣德延和尙第二世住初謁廣德義和尙 作禮而問曰 如何是和尙深深處 曰隱身不必須巖谷 闤闠堆堆覩者希 師曰 恁麽卽酌水獻華也 曰忽然雲霧靄 闍梨作麽生 師曰 采汲不虛施 曰大衆看取第二代廣德 師次踵山門聚徒開法 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魚躍無源水 鶯啼萬古松 問如何是常在底人 師曰 臘月死蛇當大路 觸著傷人不奈何 問如何是大通智勝佛時 師曰 盛夏日輪新霽後 汝莫當輝瞪目觀 曰如何是大通智勝佛後 師曰 孤輪罷照鷲峯頂 汝報巴猿莫斷腸 問如何是作得無間業 師曰 猛火然鐺煮佛喋 師因事有頌曰 才到洪山便垛根 四平八面不言論 他家自有眠雲志 蘆管橫吹宇宙分

堆堆; 一久坐不動的樣子 二堆積在一面的樣子 此指二

瞪目; 睁大眼睛 瞪 直視貌 怒目直視貌 用力睁大()

斷腸; 斷腸之痛 萬善同歸集上 昔有禪僧鄧隱峰 未出家時 曾射一猿子 墮地而終 須臾 猿母亦墮而死 因剖腹開 見肝腸寸寸而斷 遂捨其射業 因此出家 是知人形獸質 受報千差 愛結情根 其類一等

蘆管; 一蘆葦的莖 二卽蘆笳

 

양주(襄州) 광덕연(廣德延) 화상第二世住. 광덕의(廣德義) 화상을 초알(初謁)하여 작례(作禮)하고 문왈(問曰) 무엇이 이 화상의 심심처(深深處)입니까. 가로되 은신(隱身)하는데 암곡(巖谷)을 씀()이 필요치 않나니 환궤(闤闠; 街市. 街道)에 퇴퇴(堆堆)하지만 보는 자가 드물다(覩者希). 사왈(師曰) 이러하다면 곧 작수(酌水; 물을 잔질하다)하여 헌화(獻華)함입니다. 가로되 홀연히 운무(雲霧)가 자욱하면() 사리(闍梨)가 어떻게 하겠는가(作麽生). 사왈 채급(采汲; 섶을 캐고 물을 긷다)을 헛되이 베풂이 아닙니다. 가로되 대중은 제2대 광덕(廣德)을 간취(看取)하라. 스님이 산문(山門)을 다음으로 이어(次踵) 취도(聚徒)하고 개법했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물고기가 무원수(無源水)에 뛰고 꾀꼬리가 만고송(萬古松)에 운다(). 묻되 무엇이 이 늘 있는 사람입니까. 사왈 납월(臘月)에 사사(死蛇)가 대로(大路)에 당했나니 건드리면(觸著) 사람을 상해(傷害; )함을 어찌하지 못한다(不奈何). 묻되 무엇이 이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 때입니까. 사왈 성하(盛夏)에 일륜(日輪)이 새로 갠() 후에 네가 광휘(光輝; )를 당해 눈을 부릅 뜨고(瞪目) 보지() 말아라. 가로되 무엇이 이 대통지승불의 뒤입니까. 사왈 고륜(孤輪)이 취봉정(鷲峯頂)에 비춤을 마쳤는데() 네가 파원(巴猿; 巴峽의 원숭이)에게 알리기를() 단장(斷腸)하지 말아라. 묻되 무엇이 이 무간업(無間業)을 작득(作得)함입니까. 사왈 맹화(猛火)로 솥을 불사르며 부처를 삶느라 재재거린다(; 음이 첩). 스님이 인사(因事)하여 송이 있어 가로되 겨우 홍산(洪山)에 이르자 바로 타근(垛根; 停止)하나니/ 사평팔면(四平八面)에서 언론(言論)하지 말아라/ 타가(他家)는 스스로 면운(眠雲)의 의지(意志)가 있어/ 노관(蘆管)을 횡취(橫吹)하니 우주가 나뉜다.

堆堆; 1. 오랫동안 앉아 움직이지 않는 양자(樣子). 2. 퇴적(堆積)하여 한 면에 있는 양자.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瞪目; 눈동자를 정대(睁大; 부릅뜨다). ()은 직시(直視)하는 모양. 노목(怒目)으로 직시하는 모양. 힘을 써서 ()을 정대(睁大).

斷腸; 단장의 고통. 만선동귀집상. 옛날에 등은봉이란 선승이 있었다. 출가하지 아니한 때 일찍이 한 마리의 원숭이 새끼를 쏘았는데 땅에 떨어져 죽었다. 수유(須臾)에 원숭이 어미도 또한 떨어져 죽었다. 인하여 배를 갈라 열어 간장(肝腸)을 보니 마디마디 끊어졌었다. 드디어 그 쏘는 업을 버리고 이로 인해 출가했다. 이로 알지니 사람의 형제와 짐승의 바탕이 과보를 받음은 천차지만 애결(愛結)과 정근(情根)은 그 종류가 일등(一等; 동일)하다.

蘆管; 1. 갈대의 줄기. 2. 곧 노가(蘆笳; 갈대 피리).

 

前隋州隋城山護國守澄禪師法嗣

隋州龍居山智門寺守欽圓照大師 僧問 兩鏡相對爲什麽中間無像 師曰 自己亦須隱 曰鏡破臺亡時如何 師竪起拳 問如何是和尙家風 師曰 額上不帖牓

 

수주(隋州) 용거산(龍居山) 지문사(智門寺) 수흠(守欽) 원조대사(圓照大師). 승문(僧問) 양경(兩鏡)을 상대하면 무엇 때문에 중간에 영상(影像)이 없습니까. 사왈(師曰) 자기도 또한 숨김을 써라(). 가로되 거울이 깨어지고 경대(鏡臺; )도 망했을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주먹을 세워 일으켰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사왈 액상(額上)에 방()을 붙이지(; 과 같음) 않았다.

 

隋城山護國知遠演化大師第二世住 僧問 擧子入門時如何 師曰 緣情體物是作麽生 問乾坤休駐意 宇宙不留心時如何 師曰 總是戰爭收拾得 却因歌舞破除休 問直截根源佛所印 摘葉尋枝我不能 意旨如何 師曰 罷攀雲樹三秋果 休戀碧潭孤月輪

擧子; 應科擧考試人

緣情; 順乎人情

體物; 描述事物

 

수성산(隋城山) 호국 지원(知遠) 연화대사(演化大師)第二世住 승문(僧問) 거자(擧子)가 입문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연정(緣情)하여 체물(體物)함은 이 어떠한가(作麽生). 묻되 건곤에 뜻을 머묾()을 쉬고 우주에 마음을 머물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모두() 이 전쟁(戰爭)으로 수습(收拾)해 얻었나니 도리어 가무(歌舞)를 파제(破除)함으로 인해 쉰다(). 묻되 근원을 직절(直截)함은 불타가 인() 친 바며 잎을 따고 가지를 찾음은 내가 능하지 않다(증도가의 2).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운수(雲樹)의 삼추(三秋)의 과실(果實)에 반등(攀登; 잡고 오르다)함을 마치고() 벽담(碧潭)의 외로운 월륜을 연모함을 쉬어라().

擧子; 과거고시에 응하는 사람.

緣情; 인정(人情)에 순().

體物; 사물을 묘술(描述; 描寫하여 敍述).

 

安州大安山能和尙崇敎大師 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打起南山鼓 唱起北山歌 問如何是三冬境 師曰 千山添翠色 萬樹鎖銀華

 

안주(安州) 대안산(大安山) 능화상(能和尙) 숭교대사(崇敎大師).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남산의 북을 쳐서 일으키고 북산의 노래를 불러 일으킨다. 묻되 무엇이 이 삼동(三冬)의 경계입니까. 사왈 천산(千山)에 취색(翠色)을 더했고 만수(萬樹)에 은화(銀華)가 에웠다().

 

穎州薦福院思禪師曾住唐州天目山僧問 古殿無佛時如何 師曰 梵音何來 又問 不假修證如何得成 師曰 修證卽不成

穎州; 今安徽阜陽

 

영주(穎州) 천복원(薦福院) 사선사(思禪師)일찍이 唐州 天目山했다. 승문(僧問) 고전(古殿)에 부처가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범음(梵音)이 어디서 왔느냐. 우문(又問) 수증(修證)을 빌리지 않으면 어떻게 이룸을 얻습니까. 사왈 수증하면 곧 이루지 못한다.

穎州; 지금의 안휘 부양(阜陽).

 

潭州延壽和尙 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煬帝以汴水爲榮 老僧以書湖作伴

汴水; 古水名 一說唐宋人稱隋所開通濟渠的東段爲汴水汴渠或汴河 發源於滎陽大周山洛口 經中牟北五里的官渡 從利澤水門和大通水門 流入里城 橫貫今之後河街 州橋街 袁宅街 胭脂河街一帶 折而東南經上善水門 流出外城 過陳留 杞縣 與泗水 淮河滙集 [百度百科]

 

담주(潭州) 연수화상(延壽和尙).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양제(煬帝)는 변수(汴水)를 영화(榮華)로 삼았고 노승은 서호(書湖)를 반려로 삼는다(作伴; 저본에 池畔으로 지었음).

汴水; 옛 물 이름이니 일설에 당ㆍ송 사람들이 일컫기를 수()에서 개통한 바 제거(濟渠)의 동단(東段)을 변수(汴水)ㆍ변거(汴渠) 혹 변하(汴河)라 했음. 형양의 대주산(大周山) 낙구(洛口)에서 발원하여 중모(中牟) 북쪽 5리의 관도(官渡)를 경유하여 이택수문(利澤水門)과 대통수문(大通水門)을 좇아 이성(里城)에 유입하여 지금의 후하가(後河街)ㆍ주교가(州橋街)ㆍ원택가(袁宅街)ㆍ연지하가(胭脂河街) 일대를 횡관(橫貫)하여 꺾어 동남에서 상선수문(上善水門)을 지나 외성(外城)으로 유출하여 진류ㆍ기현과 사수ㆍ회하(淮河)를 통과하며 회집(滙集)[백도백과].

 

隋城山護國志朗圓明大師第三世住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曰 淨果嫡子疎山之孫 問如何是萬法之根源 師曰 空中收不得 護國不能該

 

수성산(隋城山) 호국(護國) 지랑(志朗) 원명대사(圓明大師)第三世住. 승문(僧問) 스님은 뉘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사왈(師曰) 정과(淨果; 守澄)의 적자(嫡子)며 소산(疎山; 匡仁)의 손()이다. 묻되 무엇이 이 만법의 근원입니까. 사왈 공중(空中)이 거둠을 얻지 못하고 호국(護國)이 능히 갖추지() 못한다.

 

前蘄州烏牙山彦賓禪師法嗣

安州大安山興古禪師 僧問 亡僧遷化向什麽處去也 師曰 昨夜三更月上峯 問維摩寂默是說不是說 師曰 暗裏石牛兒 超然不出戶

 

안주(安州) 대안산(大安山) 흥고선사(興古禪師). 승문(僧問) 망승(亡僧)이 천화(遷化)하여 어느 곳을 향해 갔습니까. 사왈(師曰) 어젯밤 3()에 달이 봉우리에 올랐다. 묻되 유마가 적묵(維摩)함은 이 설()입니까, 이 설이 아닙니까. 사왈 암리(暗裏)의 석우아(石牛兒; 는 조사)가 초연(超然)히 문호(門戶)를 나서지 않았다.

 

蘄州烏牙山行朗禪師 僧問 未作人身已前作什麽來 師曰 海上石牛歌三拍 一條紅線掌間分 問迦葉上行衣 何人合得披 師曰 天然無相子 不掛出塵衣

迦葉上行衣; 禪門拈頌集第六四八則 拈頌說話曰 迦葉上行者 於諸行中 頭陁行爲最也 衣者 糞掃衣義 迦葉相傳地事也

 

기주(蘄州) 오아산(烏牙山) 행랑선사(行朗禪師). 승문(僧問) 인신(人身)을 짓지 아니한 이전(已前)에 무엇을 지어 왔습니까. 사왈(師曰) 해상(海上)의 석우(石牛)가 노래하며 세 번 박수(拍手)하니 일조(一條)의 홍선(紅線)이 손바닥 사이에 나뉜다. 묻되 가섭상행의(迦葉上行衣)는 어떤 사람이 합당히 입음을 얻습니까. 사왈 천연의 무상(無相)의 남자는 출진(出塵)의 옷을 걸치지 않는다.

迦葉上行衣; 선문염송집 제648칙 염송설화에 가로되 가섭상행이란 것은 제행 가운데 두타행이 으뜸이 됨이다. 의란 것은 분소의(糞掃衣)의 뜻이니 가섭이 서로 전한 일이다.

 

前鳳翔府靑峯和尙法嗣

西川靈龕和尙 僧問 如何是諸佛出身處 師曰 出處非干佛 春來草自靑 問碌碌地時如何 師曰 試進一步看

 

서천(西川) 영감화상(靈龕和尙). 승문(僧問) 무엇이 이 제불의 출신처(出身處)입니까. 사왈(師曰) 출처는 부처와 상간(相干)되지 않나니 봄이 오매 풀이 저절로 푸르다. 묻되 녹록지(碌碌地; 轆轆地와 같음)일 때 어떻습니까. 사왈 시험 삼아 한 걸음 나아가 보아라.

 

京兆紫閣山端己禪師 僧問 四相俱盡立什麽爲眞 師曰 爾什麽處去來 問渭水正東流時如何 師曰 從來無間斷

四相; 指顯示諸法生滅變遷之生住異滅等四相

渭水; 源出甘肅省渭源縣鳥鼠山 流經陝西省與涇河 北洛河合 至潼關縣入黃河

 

경조(京兆) 자각산(紫閣山) 단기선사(端己禪師). 승문(僧問) 4(四相)이 모두() 없어지면 무엇을 세워 진()으로 삼습니까. 사왈(師曰) 네가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什麽處去來). 묻되 위수(渭水)가 정동(正東)으로 흐를 때 어떻습니까. 사왈 종래로 간단(間斷)이 없다.

四相; 제법의 생멸과 변천을 현시(顯示)하는 생ㆍ주ㆍ이ㆍ멸 등 4상을 가리킴.

渭水; 수원(水源)이 감숙성 위원현 조서산에서 나와 섬서성과 경하(涇河)를 유경(流經; 흘러 경유)하여 북쪽 낙하(洛河)와 합쳐 동관현에 이르렀다가 황하로 유입함.

 

房州開山懷晝禪師 僧問 作何行業卽得不違千聖 師曰 妙行無倫匹 情玄體自殊 問有耳不臨淸水洗 無心誰爲白雲幽 師曰 無木掛千金 曰掛後如何 師曰 杳杳人難辨

倫匹; 同等比輩 倫 匹也 又倫 類也 匹 配也 [慧琳音義二十七]

 

방주(房州) 개산(開山) 회주선사(懷晝禪師). 승문(僧問) 어떤 행업(行業)을 지어야 천성(千聖)에 위배되지 않음을 곧 얻습니까. 사왈(師曰) 묘행(妙行)은 윤필(倫匹)이 없고 정현(情玄; 뜻이 玄妙)하면 체()가 저절로 다르다(). 묻되 귀가 있으나 청수(淸水)에 임해 씻지 않거늘 무심(無心)하면 누가 백운의 그윽함()이 됩니까. 사왈 천금(千金)을 걸() 나무가 없다. 가로되 건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묘묘(杳杳)하여 사람이 분변하기 어렵다.

倫匹; 동등한 비배(比輩; 가까운 무리; 비교할 만한 무리). ()은 필(; ). 또 륜()은 류()며 필()은 배()[혜림음의27].

 

幽州傳法和尙 僧問 敎意與祖意是同是別 師曰 華開金線秀 古洞白雲深 問別人爲什麽徒弟多 師爲什麽無徒弟 師曰 海島龍多隱 茆茨鳳不棲

茆茨; 亦作茅茨 茅草編的屋頂 亦指茅屋

 

유주(幽州) 전법화상(傳法和尙). 승문(僧問) 교의(敎意)와 조의(祖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師曰) 꽃이 피니 금선(金線; 금실)이 빼어나고() 옛 골(古洞)에 백운이 깊다. 묻되 다른 사람은 무엇 때문에 도제(徒弟)가 많고 스님은 무엇 때문에 도제가 없습니까. 사왈 해도(海島)엔 용이 많이 숨었고 모자(茆茨)엔 봉()이 깃들지 않는다.

茆茨; 또한 모자(茅茨)로 지음. 모초(茅草)로 짠 옥정(屋頂). 또한 모옥(茅屋)을 가리킴.

 

益州淨衆寺歸信禪師 僧問 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菡萏滿池流 曰出水後如何 師曰 葉落不知秋 問不假浮囊便登巨海時如何 師曰 紅嘴飛超三界外 綠毛也解道煎茶

菡萏; 慧琳音義二十三 菡萏 菡 胡感反 萏 徒感反 說文曰 芙渠花未發者爲菡萏 已發者爲芙蓉也 祖庭事苑四 菡萏 爾雅 荷 芙蕖 別名芙蓉 江東呼荷 其莖茄 其葉蕸 其木蔤 其花菡萏 其實蓮 其根藕 其中的(同菂 蓮子) 的中薏 薏 音憶 蕸 音遐

浮囊; 渡江人所帶防溺之物 若無浮囊則有溺水之憂

 

익주(益州) 정중사(淨衆寺) 귀신선사(歸信禪師). 승문(僧問) 연화가 물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함담(菡萏)이 못 가득히 흐른다. 가로되 물에서 나온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잎이 떨어져도 가을을 알지 못한다. 묻되 부낭(浮囊)을 빌리지 않고 거해(巨海)에 바로 오를 때 어떻습니까. 사왈 홍취(紅嘴)는 날아 삼계(三界) 밖을 초월하고 녹모(綠毛)는 또한 전다(煎茶)한다고 말할 줄 안다.

菡萏; 혜림음의23. 함담(菡萏) ()은 호감반(胡感反; )이며 담()은 도감반(徒感反; ). 설문에 가로되 부거화(芙渠花)가 피지 않은 것은 함담(菡萏)이라 하고 이미 핀 것은 부용(芙蓉)이라 한다. 조정사원4. 함담(菡萏) 이아(爾雅) (; 연꽃 하)는 부거(芙蕖; 는 연꽃 부. 는 연꽃 거)니 별명이 부용(芙蓉)이며 강동(江東)에서 하()라고 부른다. 그 줄기는 가(; 연줄기)며 그 잎은 하(; 연잎새)며 그 나무는 밀(; 연밑둥)이며 그 꽃은 함담(菡萏)이며 그 열매는 련(; 연밥)이며 그 뿌리는 우(; 연뿌리)며 그 가운데는 적(; 과 같음. 蓮子; 연밥)이며 적() 가운데 억(; 연밥알)이다. ()은 음이 억이며 하()는 음이 하임.

浮囊; 도강하는 사람이 가지는 바의 익사를 방지하는 물건. 만약 부낭이 없다면 곧 물에 빠질 근심이 있음.

 

靑峯山淸免禪師第二世住僧問 久醞蒲萄酒 今日爲誰開 師曰 飮者方知 問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耨池無一滴 四海自滔滔

耨池; 阿耨池 卽阿耨達池 爲閻浮提四大河之發源地 又作阿耨大泉 阿那達池 阿那婆答多池 阿那婆踏池 略稱阿耨 此云淸涼池 無熱惱池 此池位於大雪山之北香醉山 有龍王居之 名爲阿耨達 池東爲恆河出口 南爲信度河 西爲縛芻河 北爲徙多河 [長阿含經十八 起世經一 大樓炭經一 西域記一 翻譯名義集七]

 

청봉산(靑峯山) 청면선사(淸免禪師)第二世住. 승문(僧問) 오래 포도주(蒲萄酒)를 빚어() 금일 누구를 위해 엽니까(). 사왈(師曰) 마시는 자가 비로소 안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뇩지(耨池)엔 한 방울도 없고 사해(四海)는 스스로 도도(滔滔)하다.

耨池; 아뇩지(阿耨池)니 곧 아뇩달지(阿耨達池; anavatapta. 염부제 4대하(大河)의 발원지가 됨. 또 아뇩대천ㆍ아나달지ㆍ아나바답다지ㆍ아나바답지로 지으며 약칭이 아뇩(阿耨). 여기에선 이르되 청량지(淸涼池)ㆍ무열뇌지(無熱惱池)며 이 못은 대설산의 북방 향취산(香醉山)에 위치하며 용왕이 이에 거주해 있으며 이름해 아뇩달임. 못의 동쪽은 항하(恆河)의 출구가 되고 남쪽은 신도하(信度河)가 되고 서쪽은 박추하(縛芻河)가 되고 북쪽은 사다하(徙多河)가 됨 [장아함경18. 기세경1. 대루탄경1. 서역기1. 번역명의집7].

 

景德傳燈錄卷第二十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