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燈會元卷第六
靑原下五世
石霜諸禪師法嗣
潭州大光山居誨禪師
京兆人也 初造石霜 長坐不臥 麻衣草履 亡身爲法 霜遂令主性空塔院 一日 霜知緣熟 試其所得 問曰 國家每年放擧人及第 朝門還得拜也無 師曰 有一人不求進 霜曰 憑何 師曰 他且不爲名 霜曰 除却今日 別更有時也無 師曰 他亦不道今日是 如是酬問 往復無滯 盤桓二十餘祀 衆請出世 僧問 祇如達磨是祖否 師曰 不是祖 曰 旣不是祖 又來作甚麽 師曰 祇爲汝不薦 曰 薦後如何 師曰 方知不是祖 問 混沌未分時如何 師曰 時敎阿誰敘 上堂 一代時敎 祇是整理時人手脚 直饒剝盡到底 也祇成得箇了事人 不可將當衲衣下事 所以道四十九年明不盡 標不起 到這裏合作麽生 更若忉忉 恐成負累 珍重
●擧人及第; 及第等級高 鄉試考中的叫秀才 會試考中的叫擧人 殿試考中的叫進士 其中一甲共三人 分別是狀元 榜眼 探花 叫做進士及第 [百度知道]
●朝門; 一古代專指天子宮殿中的應門 因由此門入正朝﹐故稱 二泛指進入朝堂之門
●盤桓; 一徘徊 滯留 盤 盤桓不進貌 正字通 桓 盤桓難進貌 又盤通磐 易 屯卦 象辭曰 雖磐桓 志行正也 二(情意)厚重懇切 此指一
●負累; 連累 負擔
담주(潭州) 대광산(大光山) 거회선사(居誨禪師)
경조(京兆) 사람이다. 처음 석상(石霜)으로 나아가(造)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며 마의(麻衣)와 초구(草屨; 짚신)로 몸을 잊고(亡) 법을 위했다. 석상이 드디어 성공탑원(性空塔院)을 주지(主持)하게 했다. 어느 날 석상(石霜)이 기연(機緣; 緣)이 익었음을 알고 그의 소득(所得)을 시험하려고 물어 가로되 국가에서 매년 거인급제(擧人及第)를 방출(放出)하거니와 조문(朝門)에 도리어 배(拜; 授官)를 얻었느냐 또는 아니냐. 사왈(師曰) 어떤 한 사람은 진입(進入; 進)을 구하지 않습니다. 상왈(霜曰) 무엇에 빙거(憑據)하느냐. 사왈 그는 또한(且) 명성(名聲; 名)을 위하지 않습니다. 상왈(霜曰) 금일을 제해버리고(除却) 달리 다시 때가 있느냐 또는 없느냐. 사왈 그는 또한 금일이 이것(是)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수문(酬問; 應酬하고 질문)하며 왕복하되 막힘(滯)이 없었다. 반환(盤桓)하기 20여 사(祀; 해)에 대중의 청으로 출세했다. 중이 묻되 지여(祇如) 달마는 이 조사(祖師; 祖)입니까. 사왈 이 조사(祖師; 祖)가 아니다. 가로되 이미 이 조사가 아니면 또 와서 무엇합니까. 사왈 다만 네가 천(薦; 領會)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로되 천후(薦後)엔 어떻습니까. 사왈 비로소 이 조사가 아닌 줄 안다. 묻되 혼돈(混沌)하여 나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시교(時敎; 一代時敎)를 누가(阿誰) 서술했는가. 상당(上堂) 일대시교(一代時敎)는 다만 이 시인(時人)의 수각(手脚)을 정리(整理)한다. 직요(直饒; 가령) 박탈(剝奪; 剝)해 없애 도저(到底; 徹底)하더라도 또한 다만 저(箇) 요사인(了事人)을 이룸을 얻는다. 가져 납의하사(衲衣下事)에 당(當; 當敵)함은 옳지 못하다. 소이로 말하되 사십구 년 동안 밝혀 다하지 못했고 표(標)하여 일으키지 못했다. 이 속에 이르러 합당히 어떠한가. 다시 만약 도도(忉忉; 말이 많음)한다면 부루(負累)를 이룰까 염려스럽다. 진중(珍重)하라.
●擧人及第; 급제(及第)는 등급이 높음. 향시고중(鄉試考中)의 것은 수재(秀才)라 부르고 회시고중(會試考中)의 것은 거인(擧人)이라 부르고 전시고중(殿試考中)의 것은 진사(進士)라 부르는데 그 중에 일갑(一甲)이 공(共)히 3인이니 분별하면 이 장원(狀元)ㆍ방안(榜眼)ㆍ탐화(探花)며 진사급제(進士及第)로 불러 지음 [백도지도].
●朝門; 1. 고대에 오로지 천자의 궁전 중의 응문(應門; 正門)을 가리켰음. 이 문을 인유(因由)하여 정조(正朝)에 드는 연고로 일컬음. 2. 널리 조당(朝堂)으로 진입하는 문을 가리킴.
●盤桓; 1. 배회. 체류. 반(盤)은 반환(盤桓)하며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 정자통 환(桓) 반환하며 나아가기 어려운 모양이다. 또 반(盤)은 반(磐; 머뭇거림)과 통하나니 역 둔괘(屯卦) 상사(象辭)에 가로되 비록 반환(磐桓)하더라도 지행(志行)은 바르다. 2.(情意)가 후중(厚重)하고 간절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負累; 연루(連累). 부담(負擔).
瑞州九峯道虔禪師
福州人也 甞爲石霜侍者 洎霜歸寂 衆請首座繼住持 師白衆曰 須明得先師意始可 座曰 先師有甚麽意 師曰 先師道 休去 歇去 冷湫湫地去 一念萬年去 寒灰枯木去 古廟香爐去 一條白練去 其餘則不問 如何是一條白練去 座曰 這箇祇是明一色邊事 師曰 元來未會先師意在 座曰 你不肯我那 但裝香來 香煙斷處 若去不得 卽不會先師意 遂焚香 香煙未斷 座已脫去 師拊座背曰 坐脫立亡卽不無 先師意未夢見在
서주(瑞州) 구봉(九峯) 도건선사(道虔禪師)
복주(福州) 사람이다. 일찍이 석상(石霜)의 시자가 되었다. 석상이 귀적(歸寂)함에 이르자(洎) 대중이 수좌(首座)에게 청해 주지(住持)를 잇게 했다. 스님이 대중에게 알려(白) 가로되 모름지기 선사(先師)의 뜻을 명득(明得; 밝힘을 얻다)해야 비로소 옳다(可). 좌왈(座曰) 선사(先師)께서 무슨 뜻이 있으신가. 사왈(師曰) 선사께서 말씀하시되 휴거(休去)하고 헐거(歇去)하고 냉추추지거(冷湫湫地去; 차가와 매우 서늘하여 감)하고 일념만년거(一念萬年去; 일념이 만년이 되게 함)하고 한회고목거(寒灰枯木去; 차가운 재와 고목처럼 되어 감)하고 고묘향로거(古廟香爐去; 고묘의 향로처럼 되어 감)하고 일조백련거(一條白練去; 한 가닥의 흰 베가 되어 감)하라 하셨다. 그 나머지는 묻지 않는다. 무엇이 이 일조백련거(一條白練去)인가. 좌왈(座曰) 이것(這箇)은 다만 이 일색변(一色邊)의 일을 밝힌 것이다. 사왈 원래 선사(先師)의 뜻을 알지 못했다. 좌왈(座曰) 네가 나를 긍정하지 않느냐. 단지 장향래(裝香來; 향을 꾸려 옴)하라. 향 연기가 끊어지는 곳에 만약 감을 얻지 못한다면 곧 선사(先師)의 뜻을 알지 못했다 하리라. 드디어 분향(焚香)했고 향 연기가 끊어지지 아니하여서 수좌가 이미 탈거(脫去)했다 스님이 수좌의 등을 어루만지며(拊) 가로되 좌탈입망(坐脫立亡)은 곧 없지 않으나 선사의 뜻은 꿈에도 보지 못했다.
住後 僧問 無間中人行甚麽行 師曰 畜生行 曰 畜生復行甚麽行 師曰 無間行 曰 此猶是長生路上人 師曰 汝須知有不共命者 曰 不共甚麽命 師曰 長生氣不常 師乃曰 諸兄弟還識得命麽 欲知命 流泉是命 湛寂是身 千波競涌 是文殊境界 一亘晴空 是普賢牀榻 其次 借一句子是指月 於中事是話月 從上宗門中事 如節度使信旗相似 且如諸方先德 未建許多名目指陳已前 諸兄弟約甚麽體格商量 到這裏不假三寸試話會看 不假耳試釆聽看 不假眼試辯白看 所以道 聲前拋不出 句後不藏形 盡乾坤大地都來 是汝當人箇體 向甚麽處安眼耳鼻舌 莫但向意根下圖度作解 盡未來際亦未有休歇分 所以洞山道 擬將心意學玄宗 大似西行却向東 珍重
●無間; 梵語阿鼻 譯曰無間 如無間地獄 永嘉證道歌云 證實相 無人法 刹那滅却阿鼻業 ◆無間地獄; 梵語阿鼻 阿鼻旨 此云無間 爲八熱地獄之第八 位於南贍部洲(卽閻浮提)之地下二萬由旬處 深廣亦二萬由旬 墮此地獄之有情 受苦無間 凡造五逆罪之一者 死後必墮於此 無間之義有五 一趣果無間 捨身生報故 二受苦無間 中無樂故 三時無間 定一劫故 四命無間 中不絶故 五形無間 如阿鼻相 縱廣八萬由旬 一人多人 皆遍滿故 [翻譯名義集二 俱舍論十一]
●信旗; 祖庭事苑三 信旗 崔豹古今注 信幡 古徽號也 幡亦旗屬 以題表官號 以爲符信 故爲信幡 若乘輿則畫白虎 取其義而有威信之德也 魏有東靑龍 南朱雀 西白虎 北玄武 畿內黃龍 亦信也 今晉朝唯白虎示信 用鳥取其飛騰輕疾也 一曰鴻鴈燕乙 有去來之信是也
●體格; 體裁格式
●話會; 通過言句而交流或領會
●都來; 都 全部 來 後綴
●圖度; 以俗情世念去揣度 議論或解釋
주후(住後) 승문(僧問) 무간(無間) 중의 사람은 어떤 행(甚麽行)을 행합니까. 사왈(師曰) 축생행(畜生行)이다. 가로되 축생은 다시 어떤 행을 행합니까. 사왈 무간행(無間行)이다. 가로되 이는 오히려 이 장생로상(長生路上)의 사람입니다. 사왈 너는 공명(共命)하지 않는 자가 있음을 수지(須知)해야 한다. 가로되 무슨 명(命)을 함께(共)하지 않습니까. 사왈 장생(長生)의 기(氣)가 항상하지 않는다(不常). 스님이 이에 가로되 제형제(諸兄弟)여, 도리어 명(命)을 식득(識得)하느냐. 명(命)을 알고자 한다면 유천(流泉)이 이 명(命)이며 담적(湛寂)은 이 신(身)이다. 천파(千波)가 경용(競涌)함은 이 문수경계(文殊境界)며 일(一)이 청공(晴空)에 뻗쳤음(亘)은 이 보현상탑(普賢牀榻)이다. 그 다음 일구자(一句子; 子는 조사)를 빌림(借)은 이 지월(指月)이며 가운데의 일(於中事)은 이 화월(話月)이다. 종상(從上)의 종문중사(宗門中事)는 마치 절도사(節度使)의 신기(信旗)와 상사(相似)하나니 차여(且如) 제방의 선덕(先德)이 허다한 명목(名目)을 건립하여 지진(指陳; 指示하고 陳述)하지 아니한 이전(已前)에 제형제(諸兄弟)가 무슨 체격(體格)을 대약(大約)하여 상량(商量)하는가. 이 속에 이르러 삼촌(三寸; 三寸의 혀)을 빌리지 않고 시험 삼아 화회(話會)해 보아라. 귀를 빌리지 않고(不假) 시험 삼아 변청(釆聽; 分辨해 듣다)해 보아라. 눈을 빌리지 않고 시험 삼아 변백(辯白; 辨白과 같음. 鑑別. 辨明)해 보아라. 소이로 말하되 성전(聲前)에 던져도(拋) 나가지 않고 구후(句後)에 형상(形相; 形)을 감추지 못한다. 온 건곤 대지가 모두(都來) 이 너희 당인(當人)의 개체(箇體; 個體와 같음)거늘 어느 곳을 향해 안이비설(眼耳鼻舌)을 안치하느냐. 단지 의근(意根) 아래를 향해 도탁(圖度)하며 작해(作解)하지 말아라. 미래제(未來際)를 다하더라도 또한 휴헐(休歇)할 분한(分限; 分)이 있지 않다. 소이로 동산(洞山)이 말하되 심의(心意)를 가지고 현종(玄宗; 현묘한 宗乘)을 배우려고 한다면 서행(西行)하려고 하면서 도리어 향동(向東)함과 매우 흡사하다(大似). 진중(珍重).
●無間; 범어 아비(阿鼻; 梵 Avīci)는 번역해 가로되 무간(無間)이니 무간지옥(無間地獄)과 같음. 영가증도가에 이르되 실상을 증득하니 인과 법이 없어 찰나에 아비업(阿鼻業)을 멸각한다. ◆無間地獄; 범어 아비(阿鼻; 梵 Avīci)ㆍ아비지(阿鼻旨)는 여기에선 이르되 무간이니 팔열지옥(八熱地獄)의 제8. 남섬부주(즉 염주제)의 지하 2만 유순(由旬)의 곳에 위치하며 깊이와 넓이도 또한 2만 유순임. 이 지옥에 떨어지는 유정은 수고가 무간(無間)임. 무릇 5역죄의 하나를 지은 자는 사후에 반드시 여기에 떨어짐. 무간의 뜻에 다섯이 있음. 1은 취과무간(趣果無間)이니 몸을 버리면 과보가 나는 연고임. 2는 수고무간(受苦無間)이니 중간에 낙이 없는 연고임. 3은 시무간(時無間)이니 1겁을 확정한 연고임. 4는 명무간(命無間)이니 중간에 끊어지지 않는 연고임. 5는 형무간(形無間)이니 아비(阿鼻)의 모양과 같음. 가로 세로가 8만 유순이며 1인과 다인(多人)이 다 두루 가득한 연고임 [번역명의집2. 구사론11].
●信旗; 조정사원3. 신기(信旗) 최표의 고금주(古今注) 신번(信幡)이니 고대의 휘호(徽號; 徽는 아름다울 휘)다. 번(幡)도 또한 기속(旗屬; 旗 종류)이니 관호(官號)를 표제(題表)하여 부신(符信; 符節의 信標)으로 삼으므로 고로 신번(信幡)이 된다. 만약 수레를 타면 곧 백호(白虎)를 그려 그 뜻을 취해 위신(威信)의 덕이 있음이다. 위(魏)에선 동은 청룡이며 남은 주작(朱雀; 남방 星宿의 이름. 붉은 봉황으로 형상화하였음)이며 서는 백호며 북은 현무(玄武; 북방의 신. 水神으로서 형상은 거북과 뱀이 하나가 된 모양)며 기내(畿內)는 황룡이 있었으니 또한 신표다. 지금의 진조(晉朝)에선 오직 백호로 신표를 보이거니와 새를 씀은 그 비등(飛騰)의 경질(輕疾)을 취함이다. 혹은 가로되 홍안(鴻鴈; 큰 기러기)과 연을(燕乙; 제비니 乙은 새 을)이니 거래의 신(信)이 있음이 이것이다.
●體格; 체재(體裁)와 격식.
●話會; 언구를 통과하여 교류하거나 혹 영회(領會)함.
●都來; 도(都)는 전부며 래(來)는 후철.
●圖度; 속정과 세념으로 췌탁(揣度; 헤아리다)하며 의논하거나 혹 해석함.
問 承古有言 向外紹則臣位 向內紹則王種 是否 師曰 是 曰 如何是外紹 師曰 若不知事極頭 祇得了事 喚作外紹 是爲臣種 曰 如何是內紹 師曰 知向裏許承當擔荷 是爲內紹 曰 如何是王種 師曰 須見無承當底人 無擔荷底人 始得同一色 同一色了 所以借爲誕生 是爲王種 曰 恁麽則內紹亦須得轉 師曰 灼然有承當擔荷 爭得不轉 汝道內紹便是人王種 你且道如今還有紹底道理麽 所以古人道 紹是功 紹了非是功 轉功位了 始喚作人王種 曰 未審外紹還轉也無 師曰 外紹全未知有 且敎渠知有 曰 如何是知有 師曰 天明不覺曉 問 如何是外紹 師曰 不借別人家裏事 曰 如何是內紹 師曰 推爺向裏頭 曰 二語之中 那語最親 師曰 臣在門裏 王不出門 曰 恁麽則不出門者 不落二邊 師曰 渠也不獨坐世界裏紹王種 名外紹王種姓 所以道 紹是功名臣 是偏中正 紹了轉功名君 是正中偏 問 誕生還更知聞也無 師曰 更知聞阿誰 曰 恁麽則莫便是否 師曰 若是古人爲甚麽道誕生王有父 曰 旣有父 爲甚麽不知聞 師曰 同時不識祖 問 古人云 直得不恁麽來者 猶是兒孫 意旨如何 師曰 古人不謾語 曰 如何是來底兒孫 師曰 猶守珍御在 曰 如何是父 師曰 無家可坐 無世可興
●外紹; 五家宗旨纂要中洞宗內外紹 外紹 外者 偏位 今時門中一切對境觸物處也 向外紹則臣位 如修行人不明自心 不見自性 不了正因 全未知有 且敎渠知有續起功用 故名外紹
●內紹; 五家宗旨纂要中 洞宗內外紹 內紹 紹 繼也 續也 相續不斷之義 內者 正位中威音那畔是也 知向裏許承當擔荷 是爲內紹 如修行人明心見道 於日用中頭頭顯現 物物分明 實無差互 左右逢原 不假修進 不假行持 當體便證無上菩提 猶如誕生 本來尊貴 故名王種 以能紹繼君位也
●極頭; 最高品第 第一等
●偏中正; 洞宗偏正五位之第二 五家宗旨纂要中洞宗偏正五位 偏中正 偏中正者 爲學人著於物象 滯在今時 則孤事而缺理 故立偏中正 舍事入理 攝用歸體 有語中無語也
●正中偏; 洞宗偏正五位之第一 五家宗旨纂要中 正中偏 正位卽空界 本來無物 偏位卽色界 有萬象形 正中偏者 爲學人不知轉動 滯在劫外 則孤理而缺事 故立正中偏 背理就事 從體起用 無語中有語也
●珍御; 珍奇御服 御 對帝王所作所爲及所用物的敬稱
묻되 듣건대(承) 고인(古人; 古)이 말씀이 있기를 외소(外紹)를 향하면 곧 신위(臣位)며 내소(內紹)를 향하면 곧 왕종(王種)이라 하니 그렇습니까(是否). 사왈(師曰) 그렇다. 가로되 무엇이 이 외소(外紹)입니까. 사왈 만약 일의 극두(極頭)를 알지 못하면 다만 요사(了事)를 얻나니 외소라고 불러 지으며 이는 신종(臣種)이 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내소(內紹)입니까. 사왈 이허(裏許; 裏邊)를 향해 승당(承當)하고 담하(擔荷)할 줄 앎이니 이는 내소가 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왕종(王種)입니까. 사왈 모름지기 승당(承當)하는 사람이 없고 담하(擔荷)하는 사람이 없음을 보아야 비로소 동일(同一)한 색(色)을 얻고 동일한 색인지라 소이로 가차(假借)하여 탄생(誕生)이라 하나니 이것이 왕종이 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恁麽) 곧 내소(內紹)도 또한 꼭 전(轉)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사왈 작연(灼然)하나니 승당(承當)하고 담하(擔荷)함이 있거늘 어찌 전(轉)하지 않음을 얻겠는가. 네가 말하되 내소(內紹)가 바로 이 인왕종(人王種)이라 하니 네가 그래 말하라, 여금에 도리어 잇는(紹) 도리가 있느냐. 소이로 고인(古人)이 말하되 이음(紹)은 이 공(功)이니 이어 마치면(紹了) 이 공(功)이 아니다. 공위(功位)를 전(轉)해 마쳐야 비로소 인왕종(人王種)이라고 불러 짓는다. 가로되 미심(未審)하오니 외소(外紹)는 도리어 전(轉)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외소(外紹)는 전혀 지유(知有)가 아니니 또(且) 거(渠)로 하여금 지유(知有)케 해야 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지유(知有)입니까. 사왈 천명(天明)에 새벽(曉)을 깨닫지 못한다. 묻되 무엇이 이 외소(外紹)입니까. 사왈 다른 사람의 집안 일을 빌리지 않는다. 가로되 무엇이 이 내소(內紹)입니까. 사왈 이두(裏頭)를 향해 아버지(爺)를 민다(推). 가로되 2어(語) 가운데 어떤 어(那語)가 가장 친합니까. 사왈 신(臣)이 문 안에 있으면 왕이 출문(出門)하지 못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출문하지 못하는 자가 이변(二邊)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사왈 거(渠)는 세계 속에 홀로 앉아 왕종을 잇지 않나니 이름이 외소(外紹)의 왕종성(王種姓)이다. 소이로 말하되 이음(紹)은 이 공(功)이며 이름이 신(臣)이니 이는 편중정(偏中正)이다. 이어 마치고는 공(功)을 전(轉)해야 이름이 군(君)이니 이는 정중편(正中偏)이다. 묻되 탄생(誕生)하면 도리어 다시 들을(聞) 줄 압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다시 들을 줄 아는 것은 누구(阿誰)인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바로 이것(是)이 아닙니까. 사왈 만약 이것(是)이라면 고인이 무엇 때문에 말하되 탄생(誕生)한 왕에게 부(父)가 있다 했는가. 가로되 이미 부(父)가 있거늘 무엇 때문에 들을 줄 알지 못합니까. 사왈 동시에 조(祖; 祖父)를 알지 못한다. 묻되 고인이 이르되 바로 이렇게(恁麽) 오지 않음을 얻는 자라도 오히려 이는 아손(兒孫)이라 한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사왈 고인은 헛된 말(謾語; 謾은 徒然)을 하지 않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오는(來底) 아손입니까. 사왈 오히려 진어(珍御)를 지키고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부(父)입니까. 사왈 가히 앉을 집이 없고 가히 일으킬(興) 세(世; 世代)가 없다.
●外紹; 오가종지찬요중 동종(洞宗) 내외소. 외소(外紹) 외(外)란 것은 편위(偏位)니 금시문중(今時門中)의 일체의, 대경(對境)하여 촉물(觸物)하는 곳이다. 외소를 향함은 곧 신위(臣位)니 예컨대(如) 수행인이 자심을 밝히지 못하고 자성을 보지 못하고 정인(正因)을 요지하지 못하고 온전히 지유(知有)하지 못하면 다만 그로 하여금 지유(知有)하게 하여 공용(功用)을 속기(續起)하게 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외소(外紹)다.
●內紹; 오가종지찬요중. 동종내외소 내소(內紹) 소(紹)는 계(繼)다, 속(續)이다. 상속하여 단절되지 않음의 뜻이다. 내(內)란 것은 정위 중의 위음나반이 이것이다. 이허(裏許; 속)를 향해 승당하고 담하(擔荷)할 줄 아는 것이니 이것이 내소가 된다. 예컨대(如) 수행인이 마음을 밝혀 도를 보면 일용 중에 두두마다 환히 나타나고 물물마다 분명하여 실로 차호(差互)가 없다. 좌우에서 근원을 만나고 수진(修進)을 빌리지 않고 행지(行持)를 빌리지 않는다. 당체(當體)에서 바로 무상보리를 증득함이 마치 탄생하면서 본래 존귀함과 같은지라 고로 이름이 왕종이니 능히 군위(君位)를 소계(紹繼)한다.
●極頭; 최고의 품제(品第; 등급). 제1등.
●偏中正; 동종(洞宗) 편정오위의 제2. 오가종지찬요중 동종편정오위. 편중정(偏中正) 편중정이란 것은 학인이 물상(物象)에 집착하여 금시(今時)에 체재(滯在)하면 곧 고사(孤事)하면서 결리(缺理)하므로 고로 편중정(偏中正)을 세웠다. 사(事)를 버리고(舍) 이(理)에 들어가며 용(用)을 거두어 체(體)로 돌아감이니 유어(有語) 중 무어(無語)다.
●正中偏; 동종(洞宗) 편정5위(偏正五位)의 제1. 오가종지찬요중. 정중편(正中偏) 정위(正位)는 곧 공계(空界)니 본래 무물(無物)이며 편위(偏位)는 곧 색계니 만상형(萬象形)이 있다. 정중편이란 것은 학인이 전동(轉動)을 알지 못해 겁외(劫外)에 체재(滯在)하여 곧 고리(孤理)로 결사(缺事)하므로 고로 정중편을 세웠다. 배리취사(背理就事)하고 종체기용(從體起用)함이니 무어(無語) 중의 유어(有語)다.
●珍御; 진기한 어복(御服). 어(御)는 제왕의 소작(所作)과 소위(所爲) 및 소용(所用)의 사물에 대한 경칭.
問 諸聖間出 祇是箇傳語底人 豈不是和尙語 師曰 是 曰 祇如世尊生下 一手指天 一手指地云 天上天下 唯我獨尊 爲甚麽喚作傳語底人 師曰 爲他指天指地 所以喚作傳語底人 僧禮拜而退
묻되 제성(諸聖)이 가끔(間) 출생함은 다만 이(是箇) 전어(傳語)하는 사람이다. 어찌 이 화상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그렇다. 지여(祇如) 세존이 탄생하자(生下; 下는 동작의 완성을 표시)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이르되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했는데 무엇 때문에 전어(傳語)하는 사람이라고 불러 짓습니까. 사왈 그가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켰기 때문에(爲) 소이로 전어하는 사람이라고 불러 짓는다. 중이 예배하고 물러났다.
問 九重無信 恩赦何來 師曰 流光雖徧 閫內不周 曰 流光與閫內相去多少 師曰 綠水騰波 靑山秀色 問 人人盡言請益 未審師將何拯濟 師曰 汝道巨嶽還曾乏寸土也無 曰 恁麽則四海參尋 當爲何事 師曰 演若迷頭心自狂 曰 還有不狂者麽 師曰 有 曰 如何是不狂者 師曰 突曉途中眼不開 問 如何是學人自己 師曰 更問阿誰 曰 便恁麽承當時如何 師曰 須彌還更戴須彌 問 祖祖相傳 復傳何事 師曰 釋迦慳 迦葉富 曰 如何是釋迦慳 師曰 無物與人 曰 如何是迦葉富 師曰 國內孟嘗君 曰 畢竟傳底事作麽生 師曰 百歲老人分夜燈 問 諸佛非我道 如何是我道 師曰 我非諸佛 曰 旣非諸佛 爲甚麽却立我道 師曰 適來暫喚來 如今却遣出 曰 爲甚麽却遣出 師曰 若不遣出 眼裏塵生 問 一切處覓不得 豈不是聖 師曰 是甚麽聖 曰 牛頭未見四祖時 豈不是聖 師曰 是聖境未忘 曰 二聖相去幾何 師曰 塵中雖有隱形術 爭奈全身入帝鄕
●九重; 指宮門 指帝王 ▲禪林寶訓音義 九重 天子之門有九重也
●恩赦; 指帝王登極等大慶時 下詔赦免罪犯
●閫內; 一家庭 內室 二國內 此指國內
●參尋; 欲參禪法 尋訪禪師
●演若迷頭; 演若 演若達多之略 又作延若達多 耶若達多 人名 譯曰祠授 因祠天而授之義 [俱舍光記三十 唯識述記一本] 楞嚴經四 室羅城中演若達多 忽於晨朝以鏡照面 愛鏡中頭眉目可見 瞋責己頭不見面目 以爲魑魅無狀狂走(狀 禮貌也)
●突曉; 突 忽然 猝然 又凌犯 冲撞 曉 曉天
●諸佛非我道; 第九祖伏馱蜜多語 本錄卷一云 父母非我親 誰是最親者 諸佛非我道 誰爲最道者
●帝鄕; 一帝王之鄕 京師 二天帝之鄕 此指一
묻되 구중(九重)에서 소식(消息; 信)이 없는데 은사(恩赦)가 어디에서 옵니까. 사왈(師曰) 유광(流光)이 비록 두루하지만(遍) 곤내(閫內; 국내)에 두루하지(周) 않다. 가로되 유광(流光)과 곤내(閫內)가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多少). 사왈 녹수(綠水)는 번등(翻騰)하는 파랑이며(騰波) 청산(靑山)은 아름다운 색이다(秀色). 묻되 사람마다 다(盡) 청익(請益)을 말합니다. 미심하오니 스님은 무엇을 가지고 증제(拯濟)하십니까. 사왈 네가 말하라, 거악(巨嶽)이 도리어 일찍이 촌토(寸土)가 모자라느냐 또는 아니냐.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사해(四海)가 참심(參尋)함은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함입니까. 사왈 연야가 미두함은(演若迷頭) 마음이 스스로 미친 것이다. 가로되 도리어 미치지 않은 자가 있습니까. 사왈 있다. 가로되 무엇이 이 미치지 않은 자입니까. 사왈 돌효(突曉)의 도중(途中)에 눈을 뜨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학인의 자기입니까. 사왈 다시 누구(阿誰)에게 묻느냐. 가로되 바로 이렇게 승당(承當)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수미(須彌)가 도리어 다시 수미를 이느냐(戴). 묻되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한다 하니 다시 어떤 일을 전합니까. 사왈 석가는 인색(吝嗇; 慳)하고 가섭은 부유(富裕; 富)하다. 가로되 무엇이 이 석가의 인색입니까. 사왈 물건을 사람에게 줌이 없다. 가로되 무엇이 이 가섭의 부유입니까. 사왈 국내의 맹상군(孟嘗君)이다. 가로되 필경 전하는 일이 무엇입니까(作麽生). 사왈 백 살의 노인이 야등(夜燈)을 나눈다. 묻되 제불이 나의 도가 아니라(諸佛非我道) 하니 무엇이 이 나의 도입니까. 사왈 나는 제불(諸佛)이 아니다. 가로되 이미 제불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도리어 나의 도를 세웁니까. 사왈 아까 잠시 불러 왔다가 여금에 도리어 견출(遣出; 떠나 보내다)했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도리어 견출했습니까. 사왈 만약 견출하지 않으면 눈 속(眼裏)에 티끌이 생겨난다. 묻되 일체처에서 찾아도 얻지 못함이 어찌 이 성(聖)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이 무슨 성(聖)인가. 가로되 우두(牛頭; 法融)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찌 이 성이 아니겠습니까. 사왈 이 성경(聖境)을 잊지 못했다. 가로되 이성(二聖)이 서로 떨어짐이 얼마입니까(幾何). 사왈 진중(塵中)에 비록 은형술(隱形術)이 있더라도 전신(全身)이 제향(帝鄕)에 들어감을 어찌하겠는가.
●九重; 궁문을 가리킴. 제왕을 가리킴. ▲선림보훈음의. 구중(九重) 천자의 문은 아홉 겹이 있다.
●恩赦; 제왕(帝王)이 등극(登極)하는 등의 큰 경사(慶事) 때 하조(下詔)하여 죄범(罪犯)을 사면(赦免)함을 가리킴.
●閫內; 1. 가정. 내실(內室). 2. 국내(國內). 여기에선 국내를 가리킴.
●參尋; 선법을 참구하려고 선사를 심방(尋訪)함.
●演若迷頭; 연야(演若)는 연야달다(演若達多; 梵 Yajñadatta)의 약칭. 또 연야달다(延若達多)ㆍ야야달다(耶若達多)로 지음. 사람 이름이며 번역해 가로되 사수(祠授)니 하늘에 제사함으로 인해 주었다는 뜻임 [구사광기30. 유식술기1본]. 릉엄경4. 실라성(室羅城) 중의 연야달다(演若達多)가 홀연히 이른 아침에 거울로 얼굴을 비추며 거울 속의 머리와 미목(眉目)을 가히 볼 만함을 사랑하다가 자기 머리에서 면목(面目)이 보이지 않음을 성내며 책망하고는 도깨비에 홀림이 되어 무상광주(無狀狂走; 狀은 禮貌임)했다.
●突曉; 돌(突)은 홀연ㆍ졸연(猝然; 갑작스럽게). 또 능범(凌犯; 지나치게 침범함)ㆍ충당(冲撞; 부딪치다. 충돌하다). 효(曉)는 효천(曉天; 새벽 하늘).
●諸佛非我道; 제9조 복타밀다(伏馱蜜多)의 말이니 본록(本錄) 권1에 이르되 부모가 나의 친함이 아니니/ 누가 이 가장 친한 자인가/ 제불이 나의 도가 아니니(諸佛非我道)/ 누가 가장 도가 되는 자인가.
●帝鄕; 1. 제왕의 마을이니 경사(京師). 2. 천제지향(天帝之鄕).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問 古人道 因眞立妄 從妄顯眞 是否 師曰 是 曰 如何是眞心 師曰 不雜食是 曰 如何是妄心 師曰 攀緣起倒是 曰 離此二途 如何是本體 師曰 本體不離 曰 爲甚麽不離 師曰 不敬功德天 誰嫌黑暗女 問 盡乾坤都來是箇眼 如何是乾坤眼 師曰 乾坤在裏許 曰 乾坤眼何在 師曰 正是乾坤眼 曰 還照矚也無 師曰 不借三光勢 曰 旣不借三光勢 憑何喚作乾坤眼 師曰 若不如是 髑髏前見鬼人無數 問 一筆丹靑 爲甚麽邈誌公眞不得 師曰 僧繇却許誌公 曰 未審僧繇得甚麽人證旨 却許誌公 師曰 烏龜稽首須彌柱 問 動容沉古路 身沒乃方知 此意如何 師曰 偸佛錢買佛香 曰 學人不會 師曰 不會卽燒香供養本爺娘 師後住泐潭而終 諡大覺禪師
●功德天; 新譯曰吉祥天 舊譯曰功德天 本爲婆羅門神 而取入於佛敎者 父德叉迦 母鬼子母 毘沙門天之妹 功德成就 與大功德於衆生 或云爲毘沙門天之后妃 然無確實經軌之說 [大集經五十七 金光明經二 陀羅尼集經十 毘沙門天王經 寶藏天女陀羅尼法]
●黑暗女; 功德天女 能使人財寶盈滿 黑暗女 能令人耗盡財寶 前者爲姊 後者爲妹 姊妹常不相離 功德天女所到之處 黑闇女亦必伴之 [涅槃經十二]
●三光; 日月星之三光
●髑髏前見鬼人無數; 指有很多人 極爲普遍 髑髏 死人的頭骨 俗謂人死後其鬼魂還在髑髏 故見髑髏卽見鬼
●丹靑; 一古代繪畫常用紅靑兩色 故稱畫爲丹靑 二丹靑手 此指一
●邈誌公眞不得; 見上三寶誌禪師章
●僧繇; 張僧繇 梁代居士 著名畵家 吳(江蘇蘇州)人 以孝悌聞 嘗爲吳興太守 善作佛天像 武帝所造諸寺 多命之繪飾 所作定光 大日諸如來像 世推神品 又嘗雜繪孔子十哲於佛天之列 後有滅法者 盡毁諸寺 獨此宇得全
●誌公; 南朝僧寶誌 又作寶志 保誌 世稱寶公 誌公和尙
●烏龜; 隸屬於龜科 烏龜屬的一種 有時特指烏龜 別稱金龜草龜泥龜山龜等
묻되 고인이 말하되 진(眞)으로 인해 망(妄)을 세우고 망(妄)으로 좇아 진(眞)을 나타낸다 하니 그렇습니까. 사왈(師曰) 그렇다. 가로되 무엇이 이 진심(眞心)입니까. 사왈 잡식(雜食)하지 않음이 이것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망심(妄心)입니까. 사왈 반연(攀緣)하여 기도(起倒; 일어남과 넘어짐)함이 이것이다. 가로되 이 이도(二途)를 여의면 무엇이 이 본체(本體)입니까. 사왈 본체는 여의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 때문에 여의지 못합니까. 사왈 공덕천(功德天)을 공경하지 않으면 누가 흑암녀(黑暗女)를 싫어 하겠는가. 묻되 온 건곤이 도래(都來; 모두) 이(是箇) 눈이라 하니 무엇이 이 건곤안(乾坤眼)입니까. 사왈 건곤이 이허(裏許; 裏邊)에 있다. 가로되 건곤안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왈 바로 이것이 건곤안이다. 가로되 도리어 비추어 봅니까(照矚) 또는 아닙니까. 사왈 삼광(三光)의 세(勢)를 빌리지 않는다. 가로되 이미 삼광의 세를 빌리지 않으면 무엇에 의빙하여 건곤안이라고 불러 짓습니까. 사왈 만약 이와 같지 않으면 촉루 앞에 귀인을 봄이 무수하리라(髑髏前見鬼人無數). 묻되 일필(一筆)로 단청(丹靑)하는데 무엇 때문에 지공(誌公)의 진(眞; 肖像)을 막(邈; 묘사해 그림)함을 얻지 못했습니까(邈誌公眞不得). 사왈 승요(僧繇)가 도리어 지공(誌公)을 허락했다. 가로되 미심하오니 승요가 어떤 사람의 증지(證旨; 證한 意旨)를 얻어 도리어 지공을 허락했습니까. 사왈 오귀(烏龜)가 수미주(須彌柱)에 계수(稽首)한다. 묻되 동용(動容)에 고로(古路)에 잠기매(沈) 몸이 침몰(沈沒; 沒)해야 이에 비로소 안다. 이 뜻이 무엇입니까. 사왈 불전(佛錢)을 훔쳐 불향(佛香)을 산다. 가로되 학인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왈 알지 못하거든 곧 소향(燒香)하고 본래의 야랑(爺娘; 아비와 어미)에게 공양하라. 스님이 후에 늑담(泐潭)에 주(住)하다가 마쳤다. 시호는 대각선사(大覺禪師)다.
●功德天; 신역은 가로되 길상천(吉祥天)이며 구역은 가로되 공덕천임. 본래 바라문신이 되는데 불교에 취입(取入)한 것임. 아버지는 덕차가며 어머니는 귀자모니 비사문천의 누이임. 공덕을 성취하여 중생에게 큰 공덕을 줌. 혹은 이르기를 비사문천의 후비(后妃)라 하거니와 그러나 확실한 경궤(經軌; 경전과 儀式의 法軌)의 설이 없음 [대집경57. 금광명경2. 다라니집경10. 비사문천왕경. 보장천녀다라니법].
●黑暗女; 공덕천녀(功德天女)는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재보(財寶)가 영만(盈滿)하게 하고 흑암녀(黑暗女)는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재보를 소모하여 없어지게 함. 전자(前者)는 언니가 되고 후자는 누이가 됨. 자매는 늘 서로 떨어지지 않으며 공덕천녀가 이르는 바의 곳에 흑암녀도 또한 반드시 그와 동반함 [열반경12].
●三光; 해ㆍ달ㆍ별의 3광.
●髑髏前見鬼人無數; 매우 많은 사람이 있음을 가리킴. 극히 보편(普遍)이 됨. 촉루(髑髏)는 죽은 사람의 두골이니 세속에서 이르기를 사람이 사후에 그 귀혼(鬼魂)이 도리어 촉루에 있다고 하는지라 고로 촉루를 보면 곧 귀(鬼)를 봄.
●丹靑; 1. 고대의 회화에 늘 홍ㆍ청 두 색을 썼으므로 고로 그림을 일컬어 단청이라 함. 2. 단청수(丹靑手). 여기에선 1을 가리킴.
●邈誌公眞不得; 위 3 보지선사장(寶誌禪師章)을 보라.
●僧繇; 장승요(張僧繇)니 양대(梁代) 거사며 저명한 화가니 오(강소 소주) 사람. 효제(孝悌)로 알려졌음. 일찍이 오흥태수가 되었고 불ㆍ천상(天像)을 잘 만들었음. 무제가 건조한 바 여러 사원에 많이 그에게 회식(繪飾)을 명했음. 만든 바 정광(定光)ㆍ대일(大日) 여러 여래상(如來像)은 세상에서 신품(神品)으로 받듦(推). 또 일찍이 공자와 10철(哲)을 불천(佛天)의 열(列)에 잡회(雜繪)했는데 후에 멸법자(滅法者)가 있어 모든 사원은 모두 훼멸했지만 유독 이 사우(寺宇)만 온전함을 얻었음.
●誌公; 남조승 보지(寶誌)는 또 보지(寶志)ㆍ보지(保誌)로 지으며 세칭이 보공(寶公)ㆍ지공화상(誌公和尙)임.
●烏龜; 귀과(龜科)에 예속되며 오귀속(烏龜屬)의 일종. 어떤 때는 특별히 오귀를 가리키고 별칭은 금귀(金龜)ㆍ초귀(草龜)ㆍ이귀(泥龜)ㆍ산귀(山龜) 등임 [백도백과].
台州涌泉景欣禪師
泉州人也 自石霜開示而止涌泉 一日 不披袈裟喫飯 有僧問 莫成俗否 師曰 卽今豈是僧邪 彊德二禪客於路次見師騎牛 不識師 忽曰 蹄角甚分明 爭柰騎者不鑒 師驟牛而去 彊德憩於樹下煎茶 師回 却下牛問曰 二禪客近離甚麽處 彊曰 那邊 師曰 那邊事作麽生 彊提起茶盞 師曰 此猶是這邊事 那邊事作麽生 彊無對 師曰 莫道騎者不鑒好
태주(台州) 용천(涌泉) 경헌선사(景欣禪師)
천주(泉州) 사람이다. 석상(石霜)이 개시(開示)함으로부터 용천(涌泉)에 머물렀다(止). 어느 날 가사(袈裟)를 입지 않고 끽반(喫飯)하자 어떤 중이 묻되 속인(俗人; 俗)을 이루지 않겠습니까. 사왈(師曰) 즉금은 어찌 이 승(僧)이겠는가. 강(彊)ㆍ덕(德) 2선객이 노차(路次; 路中)에서 소를 탄 스님을 보았으나 스님을 알지 못하고 홀연히 가로되 제각(蹄角; 굽과 뿔)이 심히 분명하지만 기자(騎者)가 살피지(鑒) 못함을 어찌하리오. 스님이 소를 달려 떠났다. 강(彊)ㆍ덕(德)이 나무 아래에서 휴게(休憩)하며 전다(煎茶)했다. 스님이 돌아와 도리어 소에서 내려 문왈(問曰) 2선객은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는가. 강왈(彊曰) 나변(那邊)입니다. 사왈 나변사(那邊事)가 어떠한가(作麽生). 강(彊)이 찻잔을 들어 일으켰다(提起). 사왈 이것은 오히려 이 저변사(遮邊事)다. 나변사가 어떠한가. 강(彊)이 대답이 없었다. 사왈 기자(騎者)가 살피지(鑒) 못한다고 말하지 말아야 좋으니라.
上堂 我四十九年在這裏 尙自有時走作 汝等諸人莫開大口 見解人多 行解人萬中無一箇 見解言語總要知通 若識不盡 敢道輪回去在 爲何如此 蓋爲識漏未盡 汝但盡却今時 始得成立 亦喚作立中功 轉功就他去 亦喚作就中功 親他去 我所以道 親人不得度 渠不度親人 恁麽譬喻 尙不會薦取 渾崙底 但管取性 亂動舌頭 不見洞山道 相續也大難 汝須知有此事 若不知有 啼哭有日在 上堂 拍盲不見佛 開眼遇途人 借問途中事 渠無丈六身 不從五天來 漢地不曾踏 不是張家生 誰云李家子 三人拄一杖臥一牀 似伊不似伊 拈來搭肩上 爲他十八兒 論不奈伊何
●走作; 謂心神浮盪不定 走來走去 又指超出本來之規範
●渾崙; 又作渾侖 渾淪 混淪 鶻侖 渾圇 囫圇 原指天地未形成前 陰陽未分 暗黑不明 一團迷濛混濁之狀態 禪林中 轉指不分明 渾然一片 或物之不可分 又指無差別而平等之眞性
●取性; 隨意適性 任性
●拍盲; 謂以手拍打己眼 若欲見物 如盲相似之義
●丈六身; 指丈六金身 丈六 身長一丈六尺 是通常化身佛之身量也 據諸經所載 佛世之時 凡人之身長約八尺 佛陀倍之 故爲丈六 金身 黃金色之身 謂佛身也 ▲佛說十二遊經 調達身長 丈五四寸 佛身長 丈六尺 難陀身長 丈五四寸 阿難身長 丈五三寸 其貴姓舍夷 長一丈四尺 其餘國皆長丈三尺
●五天; 五天竺 中古時期 印度全域分劃爲東西南北中五區 稱爲五天竺 又稱五印度 略稱五天 五竺 五印 按大唐西域記二 五印之境 周長九萬餘里 三面垂海 北背雪山 其地形北廣南狹 形如半月 計有七十餘國
상당(上堂) 내가 사십구 년 동안 이 속에 있으면서 오하려 스스로 어떤 때는 주작(走作)하거늘 너희 등 제인(諸人)은 큰 입(大口)을 벌리지 말아라. 견해(見解; 보고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만 행해(行解; 행하며 이해)하는 사람은 만중(萬中)에 한 개도 없다. 견해와 언어는 모두(總) 지통(知通; 알고 통달함)을 요하나니 만약 식(識)이 다하지 않으면 감히 말하노니 윤회하여 간다. 무엇 때문에(爲何) 이와 같은가. 대개 식루(識漏)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단지 금시(今時)를 없애버려야(盡却) 비로소 입(立)을 이룸을 얻나니 또한 입중(立中)의 공(功)이라고 불러지으며 공(功)을 전(轉)해 그(他)로 나아가야 또한 취중(就中)의 공(功)이라고 불러 지으며 그를 친한다(親他去). 내가 소이로 말하되 친인(親人)은 제도(濟度)함을 얻지 못하며 거(渠)는 친인을 제도하지 않는다. 이렇게 비유(譬喻)해도 오히려 천취(薦取; 領悟)할 줄 알지 못하고 혼륜(渾崙)한 이는 단지 관대(管帶)하여 취성(取性)하면서 혀(舌頭)를 어지럽게 움직인다. 보지 못하느냐, 동산(洞山)이 말하되 상속(相續)하기가 매우 어렵다(大難). 너희는 모름지기 차사(此事; 宗門의 一大事)가 있는 줄 알아야(知有) 하나니 만약 있는 줄 알지(知有) 못한다면 제곡할 날이 있으리라(啼哭有日在). 상당(上堂) 박맹(拍盲)은 부처를 보지 못하나니 눈뜨고 도인(途人)을 만난다. 도중(途中)의 일을 차문(借問)하나니 거(渠)는 장륙신(丈六身)이 없다. 오천(五天)으로 좇아오지 않았고 한지(漢地)도 일찍이 밟지 않았다. 이 장가(張家)에서 나지(生) 않았거늘 누가 이르되 이가(李家)의 자식이라 하는가. 세 사람이 한 지팡이에 지탱(支撐; 拄)하며 한 상(牀)에 누웠다. 그(伊)와 비슷하나 그와 비슷하지 않고 집어 와서 어깨 위에 싣는다(搭). 그(他) 십팔아(十八兒)를 위하여 논해도 그(伊)를 어찌하지 못한다.
●走作; 이르자면 심신(心神)이 부탕(浮盪; 떠서 흔들림)하여 안정하지 못하고 주래주거(走來走去)함. 또 본래의 규범을 초출함을 가리킴.
●渾崙; 또 혼륜(渾侖)ㆍ혼륜(渾淪)ㆍ혼륜(混淪)ㆍ골륜(鶻侖)ㆍ혼륜(渾圇)ㆍ홀륜(囫圇)으로 지음. 원래(原來)는 천지가 형성되지 아니한 전, 음양이 나뉘지 않음, 암흑이라 분명하지 않음, 한 덩어리의 미몽(迷濛)과 혼탁의 상태(狀態)를 가리킴. 선림 중에선 전(轉)하여 불분명, 혼연일편(渾然一片), 혹은 사물의 불가분(不可分)을 가리킴. 또 무차별(無差別)하여 평등한 진성(眞性)을 가리킴.
●取性; 수의적성(隨意適性; 뜻에 따르고 본성에 맞춤). 임성(任性; 본성에 맡김).
●拍盲; 이르자면 손으로 자기의 눈을 때림임. 만약 사물을 보려하면 마치 맹인과 상사함의 뜻.
●丈六身; 장륙금신(丈六金身)을 가리킴. 장륙은 신장이 1장6척이니 이는 통상 화신불의 신량(身量)임. 여러 경의 소재(所載)에 의거하면 불세(佛世)의 시절에 평범한 사람의 신장은 약 8척이었고 불타는 배(倍)니 고로 장륙이 됨. 금신은 황금색의 몸이니 불신(佛身)을 말함. ▲불설십이유경. 조달(調達)의 신장은 장오사촌(丈五四寸)이며 불타의 신장은 장륙척(丈六尺)이며 난타(難陀)의 신장은 장오사촌(丈五四寸)이며 아난의 신장은 장오삼촌(丈五三寸)이다. 그 귀성(貴姓) 사이(舍夷)는 신장이 1장4척이다. 그 나머지 나라는 모두 신장이 장삼척(丈三尺)이다.
●五天; 5천축이니 중고시기(中古時期) 인도 전역을 분획(分劃)하여 동ㆍ서ㆍ남ㆍ북ㆍ중 5구(區)로 삼았으며 일컬어 5천축이라 함. 또 명칭이 5인도며 약칭이 5천(天)ㆍ5축(竺)ㆍ5인(印)임. 대당서역기2를 안험컨대 5인(印)의 경계는 둘레의 길이가 9만여 리며 3면(面)이 대해에 드리웠고 북쪽은 설산(雪山)을 등졌다. 그 지형은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으며 형상(形狀)이 반월(半月)과 같다. 합계 70여 국이 있다.
潭州雲葢山志元圓淨禪師
遊方時問雲居曰 志元不奈何時如何 居曰 祇爲闍黎功力不到 師不禮拜 直造石霜 亦如前問 霜曰 非但闍黎 老僧亦不奈何 師曰 和尙爲甚麽不奈何 霜曰 老僧若奈何 拈過汝不奈何 師便禮拜 僧問石霜 萬戶俱閉卽不問 萬戶俱開時如何 霜曰 堂中事作麽生 僧無對 經半年 方始下一轉語曰 無人接得渠 霜曰 道卽太煞道 祇道得八成 曰 和尙又且如何 霜曰 無人識得渠 師知乃禮拜 乞爲擧 霜不肯 師乃抱霜上方丈曰 和尙若不道 打和尙去在 霜曰 得在 師頻禮拜 霜曰 無人識得渠 師於言下頓省
담주(潭州) 운개산(雲葢山) 지원(志元) 원정선사(圓淨禪師)
유방(遊方)할 때 운거(雲居)에게 물어 가로되 지원(志元)이 불나하(不奈何; 어찌하지 못하다) 시(時) 어떻습니까. 운거가 가로되 다만 사리(闍黎)의 공력(功力)이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님이 예배하지 않고 바로 석상(石霜)으로 나아가 또한 앞과 같이 묻자 상왈(霜曰) 단지 사리 만이 아니라 노승도 또한 불나하(不奈何)다. 사왈(師曰) 화상이 무엇 때문에 불나하입니까. 상왈(霜曰) 노승이 만약 나하(奈何; 어찌하다)라면 너의 불나하를 집었을 것이다(拈過; 過는 조사). 스님이 바로 예배했다. 중이 석상(石霜)에게 묻되 만호(萬戶)가 모두 닫혔음은 곧 묻지 않습니다. 만호가 모두 열렸을 때는 어떻습니까. 상왈(霜曰) 당중사(堂中事)는 어떠한가. 중이 대답이 없었다. 반 년이 지나서 바야흐로 비로소 일전어(一轉語)를 내려 가로되 거(渠)를 접득(接得)할 사람이 없습니다. 상왈(霜曰) 말은 곧 매우 심하게 말했으나(大煞道) 다만 팔성(八成; 八分成就)을 말해 얻었다. 가로되 화상은 우차(又且) 어떻습니까. 상왈(霜曰) 거(渠)를 식득(識得)할 사람이 없다. 스님이 알고서 이에 예배하고 들기를(擧) 구걸했지만 석상이 긍낙(肯諾; 肯)하지 않았다. 스님이 이에 석상을 안고 방장에 올라가 가로되 화상이 만약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화상을 때리겠습니다. 상왈(霜曰) 옳다(得在; 在는 조사). 스님이 자꾸(頻) 예배하자 상왈(霜曰) 거(渠)를 식득(識得)할 사람이 없다. 스님이 언하에 문득 성찰했다.
住後 僧問 如何是佛 師曰 黃面底是 曰 如何是法 師曰 藏裏是 問 然燈未出時如何 師曰 昧不得 問 蛇爲甚麽呑却師 師曰 通身色不同 問 如何是衲僧 師曰 參尋訪道 潭州道正表聞馬王 乞師論義 王請師上殿相見 茶罷 師就王乞劒 師握劒問道正曰 你本敎中道 恍恍惚惚 其中有物 是何物 杳杳冥冥 其中有精 是何精 道得不斬 道不得卽斬 道正茫然 便禮拜懺悔 師謂王曰 還識此人否 王曰 識 師曰 是誰 王曰 道正 師曰 不是 其道若正 合對得臣僧 此祇是箇無主孤魂 因茲道士更不紛紜
●師; 傳燈錄十六作蛇師 蠑螈的別名
●訪道; 訪問高僧探求佛法
●道正; 道觀的住持 觀主
●杳杳冥冥; 道德經從道章第二十一 道之爲物 惟恍惟惚 惚兮恍兮 其中有象 恍兮惚兮 其中有物 窈兮冥兮 其中有精 其精甚眞 其中有信
주후(住後) 중이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사왈 황면(黃面)인 것(底)이 이것이다. 가로되 무엇이 이 법(法)입니까. 사왈 장(藏; 藏殿) 속이 이것이다. 묻되 연등(然燈; 연등불)이 출현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어둠(昧)을 얻지 못한다. 묻되 뱀이 무엇 때문에 사(師)를 삼켜버립니까. 사왈 온몸(通身)의 색이 같지 못하다. 묻되 무엇이 이 납승입니까. 사왈 참심(參尋)하고 방도(訪道)한다. 담주(潭州) 도정(道正)이 마왕(馬王)에게 표문(表聞; 표를 올려 알림)하여 스님과 논의하기를 구걸했다. 왕이 드디어 스님을 초청해 상전(上殿)하여 상견케 했다. 차를 마치자 스님이 왕으로부터 검을 취해 스님이 검을 움켜쥐고 도정에게 물어 가로되 너희의 본교(本敎; 道德經을 가리킴) 중에 말하되 황황홀홀(恍恍惚惚)한 그 가운데 물이(物)이 있다 했으니 이 무슨 물이며 묘묘명명(杳杳冥冥)한 그 가운데 정(精)이 있다 했으니 이 무슨 정인가. 도득(道得)하면 곧 베지 않으려니와 말함을 얻지 못한다면 곧 베리라. 도정이 망연(茫然)했고 바로 예배하고 참회했다. 스님이 왕에게 일러 가로되 도리어 이 사람을 아십니까. 왕왈(王曰) 압니다. 사왈 이 누구입니까. 왕왈 도정(道正)입니다. 사왈 그렇지 않습니다. 그 도(道)가 만약 바르다면(正) 합당히 노승에게 대답함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만 이(是箇) 무주고혼(無主孤魂)입니다. 이로 인해 도사(道士)가 다시 분운(紛紜)하지 않았다.
●師; 전등록16에 사사(蛇師)로 지었음. 영원(蠑螈; 도룡농)의 별명.
●訪道; 고승을 방문하여 불법을 탐구(探求)함.
●道正; 도관(道觀)의 주지(住持)ㆍ관주(觀主).
●杳杳冥冥; 도덕경 종도장(從道章) 제21. 도(道)의 물건됨이 오직 황(恍; 황홀할 황. 어슴푸레할 황)하고 오직 홀(惚; 황홀할 홀. 어슴푸레할 홀)하거니와 홀(惚)하고 황(恍)함이여 그 중에 상(象)이 있고 황(恍)하고 홀(惚)함이여 그 중에 물(物)이 있으며 요(窈)하고 명(冥)함이여 그 중에 정(精)이 있으니 그 정이 심히 참다워서 그 가운데 신(信)이 있다.
潭州谷山藏禪師
僧問 法尙應捨 何況非法 如何是法尙應捨 師曰 空裏撒醍醐 曰 如何是非法 師曰 嵩山道士詐明頭 問 逼迫出來時如何 師曰 還曾拶著汝麽
담주(潭州) 곡산장(谷山藏) 선사
승문(僧問) 법도 오히려 응당 버리거늘 어찌 하물며 비법(非法)이겠는가. 무엇이 이 법도 오히려 응당 버림입니까. 사왈(師曰) 허공 속에 제호(醍醐)를 뿌린다. 가로되 무엇이 이 비법(非法)입니까. 사왈 숭산(嵩山) 도사(道士)가 명두(明頭)인 체한다. 묻되 핍박(逼迫)하여 나올 때 어떻습니까. 사왈 도리어 일찍이 너를 찰착(拶著; 핍박)했느냐.
潭州中雲葢禪師
僧問 和尙開堂 當爲何事 師曰 爲汝驢漢 曰 諸佛出世 當爲何事 師曰 爲汝驢漢 問 祖佛未出世時如何 師曰 像不得 曰 出世後如何 師曰 闍黎也須側身始得 問 如何是向上一句 師曰 文殊失却口 曰 如何是門頭一句 師曰 頭上插花子 問 如何是超百億 師曰 超人不得肯
●驢漢; 騎驢的人
담주(潭州) 중운개(中雲葢) 선사
승문(僧問) 화상이 개당(開堂)함은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함입니까. 사왈(師曰) 너, 여한(驢漢)을 위함이다. 가로되 제불이 출세함은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함입니까. 사왈 너, 여한(驢漢)을 위함이다. 묻되 조불(祖佛)이 출세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상(像)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사리(闍黎)가 모름지기 측신(側身; 몸을 기울이다)해야 비로소 옳다. 묻되 무엇이 이 향상일구(向上一句)입니까. 사왈 문수(文殊)가 입을 잃어버렸다. 가로되 무엇이 이 문두(門頭; 門首)의 1구입니까. 사왈 두상(頭上)에 꽃을 꽂았다(插花子). 묻되 무엇이 이 백억을 초과함입니까. 사왈 초인(超人)이 수긍함을 얻지 못한다.
●驢漢; 나귀를 탄 사람.
河中南際山僧一禪師
僧問 幸獲親近 乞師指示 師曰 我若指示 卽屈著汝 曰 敎學人作麽生卽是 師曰 切忌是非 問 如何是衲僧氣息 師曰 還曾薰著汝也無 問 同類卽不問 如何是異類 師曰 要頭斫將去 問 如何是法身主 師曰 不過來 問 如何是毗盧師 師曰 不超越 師終于長慶 諡本淨大師
●河中; 河中府 今山西省永濟縣蒲州鎭 唐開元八年(720) 開蒲州升爲府 因位於黃河中流而得名河中府 [百度百科]
하중(河中) 남제산(南際山) 승일선사(僧一禪師)
승문(僧問) 다행히 친근(親近)함을 얻었으니(獲) 스님의 지시를 걸구(乞求)합니다. 사왈(師曰) 내가 만약 지시한다면 곧 너를 굴착(屈著; 屈伏. 著은 조사)하게 한다. 가로되 학인으로 하여금 어떻게(作麽生) 하게 해야 곧 옳습니까(是). 사왈 시비를 간절히 기피(忌避; 忌)하라. 묻되 무엇이 이 납승의 기식(氣息)입니까. 사왈 도리어 일찍이 너를 훈착(熏著; 熏習. 著은 조사)했느냐 또는 아니냐. 묻되 동류(同類)는 곧 묻지 않습니다, 무엇이 이 이류(異類)입니까. 사왈 머리를 요하거든 베어(斫) 가지고 가거라. 묻되 무엇이 이 법신의 주인(法身主)입니까. 사왈 지나오지 못한다(不過來). 묻되 무엇이 이 비로의 스승(毗盧師)입니까. 사왈 초월하지 못한다. 스님이 장경(長慶; 長慶禪苑)에서 마쳤다. 시(諡)는 본정대사(本淨大師)다.
●河中; 하중부(河中府)니 지금의 산서성 영제현(永濟縣) 포주진(蒲州鎭)이니 당 개원 8년(720) 개포주를 승격시켜 부(府)로 삼았음. 황하 중류에 위치함으로 인해 하중부란 이름을 얻었음 [백도백과].
廬山棲賢懷祐禪師
泉州人也 僧問 如何是五老峰前事 師曰 萬古千秋 曰 恁麽則成絕嗣去也 師曰 躊躇欲與誰 問 自遠趨風 請師激發 師曰 他不憑時 曰 請師憑時 師曰 我亦不換 問 如何是法法無差 師曰 雪上更加霜 上堂 若會此箇事 無有下口處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井底寒蟾 天中明月
●五老峰; 廬山中有五老香爐漢陽白雲雙劍等數十峰
●萬古千秋; 形容歷經無數的年代
●寒蟾; 月亮 傳說月中有蟾 故稱
여산(廬山) 서현(棲賢) 회우선사(懷祐禪師)
천주(泉州) 선유(僊遊) 사람이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오로봉(五老峰) 앞의 일입니까. 사왈(師曰) 만고천추(萬古千秋)다. 가로되 이러하면(恁麽) 곧 절사(絕嗣; 嗣法이 단절함)를 이룰 것입니다. 사왈 주저(躊躇)하여 누구와 함께 하려느냐(與誰). 묻되 먼 데로부터 도풍(道風; 風)을 향했으니(趨) 스님의 격발(激發; 激勵)을 청합니다. 사왈 그는 시일에 의빙(憑時)하지 않는다. 가로되 스님의 빙시(憑時)를 청합니다. 사왈 나도 또한 바꾸지(換)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법법(法法)이 차이(差異)가 없음입니까. 사왈 눈 위에 다시 서리를 더했다(雪上更加霜). 상당(上堂) 만약 차개사(此箇事; 此事. 箇는 조사)를 안다면 하구(下口; 開口)할 곳이 있지 않다.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사왈 우물 밑의 한섬(寒蟾)이며 하늘 가운데의 명월이다.
●五老峰; 여산(廬山) 가운데 오로(五老)ㆍ향로ㆍ한양ㆍ백운ㆍ쌍검 등 수십 봉(峰)이 있음.
●萬古千秋; 무수한 연대(年代)를 역경(歷經)함을 형용.
●寒蟾; 월량(月亮; 月光)이니 전설에 달 속에 두꺼비가 있다 하는지라 고로 일컬음.
福州覆船山洪薦禪師
僧問 如何是本來面目 師便閉目吐舌 又開目吐舌 曰 本來有許多面目 師曰 適來見甚麽 僧無語 問 如何是師子 師曰 善哮吼 僧拊掌曰 好手好手 師曰 靑天白日 却被鬼迷 僧作掀禪牀勢 師便打 曰 驢事未去 馬事到來 師曰 灼然作家 僧拂袖便出 師曰 將甌盛水 擬比大洋 問 如何是玄妙 師曰 未聞已前 道吾問 久嚮和尙會禪 是否 師曰 蒼天蒼天 吾近前掩師口曰 低聲低聲 師與一掌 吾曰 蒼天蒼天 師把住曰 得恁麽無禮 吾却與一掌 師曰 老僧罪過 吾拂袖便行 師呵呵大笑曰 早知如是 不見如是
복주(福州) 복선산(覆船山) 홍천선사(洪薦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본래면목(本來面目)입니까 스님이 눈을 감고 혀를 토했다가(吐舌) 또 눈을 뜨고 혀를 토했다. 가로되 본래 허다한 면목이 있군요. 사왈(師曰) 아까 무엇을 보았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묻되 무엇이 이 사자(師子)입니까. 사왈 잘 효후(哮吼)한다. 중이 부장(拊掌; 拍掌)하고 가로되 호수(好手)입니다, 호수입니다. 사왈 청천백일(靑天白日)에 도리어 귀신에게 홀림(迷)을 입었다. 중이 선상(禪牀)을 번쩍 들 자세를 지었다. 스님이 바로 때렸다. 가로되 여사(驢事)가 가지 않았는데 마사(馬事)가 도래하는구나. 사왈 작연(灼然)히 작가로다. 중이 소매를 떨치고 바로 나갔다. 사왈 사발(甌)을 가지고 물을 채워 대양(大洋)에 비교하려 하는구나. 묻되 무엇이 이 현묘(玄妙)입니까. 사왈 듣지 아니한 이전(已前)이다. 도오(道吾)가 묻되 화상이 선(禪)을 안다 함을 구향(久嚮)했는데 그런가. 사왈 창천(蒼天), 창천. 도오가 앞으로 다가가 스님의 입을 가리고(掩) 가로되 소리를 낮추어라(低聲), 소리를 낮추어라. 스님이 1장(掌) 주었다. 도오가 가로되 창천(蒼天), 창천. 스님이 파주(把住)하고 가로되 이렇게 무례함을 얻는가. 도오가 도리어 1장(掌) 주었다. 사왈 노승의 죄과(罪過)로다. 도오가 소매를 떨치고 바로 갔다. 스님이 하하대소(呵呵大笑)하고 가로되 일찍 이와 같음을 알았더라면 이와 같음을 보지 않았으리라.
僧參 師便作起勢 僧便出 師曰 闍黎且來人事 僧回作抽坐具勢 師却歸方丈 僧曰 蒼天蒼天 師曰 龍頭蛇尾 僧近前叉手立 師曰 敗將投王 不存性命 問 抱璞投師 師還接否 師以手拍香臺 僧禮拜 師曰 禮拜則不無 其中事作麽生 僧却拍香臺 師曰 舌頭不出口 師將示寂 三日前令侍者喚第一座來 師臥出氣一聲 座喚侍者曰 和尙渴 要湯水喫 師乃面壁而臥 臨終令集衆 乃展兩手出舌示之 時第三座曰 諸人和尙舌根硬也 師曰 苦哉苦哉 誠如第三座所言 舌根硬去也 言訖而寂 諡紹隆大師
●性命; 有情之性與命也 ▲圓覺經 一切衆生從無始際 由有種種恩愛貪欲 故有輪迴 若諸世界一切種性 卵生胎生濕生化生 皆因婬欲而正性命
●舌根; 六根之一 舌爲知味發言之根本 故云舌根
중이 참(參)하자 스님이 바로 일어나는 자세를 지었다. 중이 바로 나갔다. 사왈 사리(闍黎)는 다만(且) 와서 인사(人事)하라. 중이 돌아와 좌구(坐具)를 뽑는 자세를 지었다. 스님이 도리어 방장으로 돌아갔다. 승왈(僧曰) 창천(蒼天), 창천. 사왈 용두사미(龍頭蛇尾)로구나. 중이 앞으로 다가가 차수(叉手)하고 섰다. 사왈 패장(敗將)이 왕에게 투항(投降; 投)하면 성명(性命)을 보존하지 못한다. 묻되 박(璞)을 안고 스님에게 투신(投身)하오니 스님이 도리어 접인(接引)하겠습니까. 스님이 손으로써 향대(香臺)를 쳤다(拍). 중이 예배했다. 사왈 예배는 곧 없지 않으나 그 가운데의 일이 어떠한가. 중이 도리어 향대(香臺)를 쳤다. 사왈 설두(舌頭; 혀)가 입을 벗어나지 않는다. 스님이 장차 시적(示寂)하려 하면서 3일 전에 시자를 시켜 제1좌(第一坐)를 불러 오게 했다. 스님이 누워 일성(一聲) 출기(出氣)하자 좌(座; 제1좌)가로되 화상이 목마르니(渴) 탕수(湯水)를 먹기를 요하신다. 스님이 이에 면벽(面壁)하고 누웠다. 임종(臨終)에 집중(集衆)하게 하고 이에 두 손을 펴고 출설(出舌)하여 보였다. 때에 제3좌가 가로되 제인(諸人)이여, 화상의 설근(舌根)이 굳었다(硬). 사왈 괴롭다(苦哉), 괴롭다. 참으로(誠) 제3좌가 말한 바와 같이 설근이 굳어 간다(硬去). 말을 마치자 적(寂; 입적)했다. 시(諡)는 소륭대사(紹隆大師)다.
●性命; 유정(有情)의 성(性)과 명(命)임. ▲원각경. 일체중생이 무시제(無始際)로부터 갖가지 은애(恩愛)와 탐욕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고로 윤회가 있다. 이에 모든 세계의 일체 종성(種性)인 난생ㆍ태생ㆍ습생ㆍ화생이 모두 음욕(婬欲)으로 인해 성명(性命)을 결정(決定; 正)한다.
●舌根; 6근의 하나. 혀는 지미(知味; 맛을 앎)와 발언의 근본이 되므로 고로 이르되 설근임.
鼎州德山存德慧空禪師
僧問 如何是一句 師曰 更請問 問 如何是和尙先陀婆 師曰 昨夜三更見月明
낭주(朗州) 덕산(德山) 존덕(存德) 혜공선사(慧空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일구(一句)입니까. 사왈(師曰) 다시 청문(請問)하라.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선타바(先陀婆; 仙陀婆와 같음)입니까. 사왈 작야(昨夜) 삼경(三更)에 달 밝음을 보았다.
吉州崇恩禪師
僧問 祖意敎意是同是別 師曰 少林雖有月 葱嶺不穿雲 問 如何是類 師曰 奈何橋畔嘶聲切 劒樹林中去復來
길주(吉州) 숭은선사(崇恩禪師)
승문(僧問)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師曰) 소림(少林)엔 비록 달이 있지만 총령(葱嶺)엔 구름을 뚫지(穿) 않았다. 묻되 무엇이 이 류(類)입니까. 사왈 나하교반(奈何橋畔)에 울부짖는 소리가 간절하고 검수림중(劒樹林中)에 갔다가 다시 온다.
石霜暉禪師
僧問 世尊出世 先度五俱輪 和尙出世 先度何人 師曰 總不度 曰 爲甚麽不度 師曰 爲伊不是五俱輪
●五俱輪; 楞嚴經箋一云 且先度五俱輪 梵云俱輪 華言親 是佛之親 爲其說十二行法輪 說了問佗五人云 阿若多(翻云解) 陳那起來云 阿若多 五者 三人家族 一阿濕波 華言馬勝 二跋提 三摩訶男俱利 二人舅氏 一憍陳那 二十力迦葉
석상휘(石霜暉) 선사
승문(僧問) 세존이 출세하여 먼저 오구륜(五俱輪)을 제도하셨거니와 화상은 출세하여 먼저 어떤 사람을 제도하셨습니까. 사왈(師曰) 모두 제도하지 않았다(總不度). 가로되 무엇 때문에 제도하지 않았습니까. 사왈 그들(伊)은 이 오구륜이 아니기 때문이다.
●五俱輪; 릉엄경전1(楞嚴經箋一)에 이르되 또 먼저 5구륜(俱輪)을 제도했다. 범어로 이르되 구륜(俱輪)은 화언(華言)으로 친(親)이니 이는 불타의 친(親)이다. 그들을 위해 12행법륜(十二行法輪)을 설했다. 설하고 나서 그들 5인에게 물어 이르되 아야다(阿若多; 번역해 이르되 解). 진나(陳那)가 일어나 이르되 아야다(阿若多)니다. 5자에 3인은 가족이다. 1은 아습바(阿濕波)니 화언으로 마승(馬勝)이며 2는 발제(跋提)며 3은 마하남구리(摩訶男俱利)다. 2인은 구씨(舅氏; 외삼촌)니 1은 교진나(憍陳那)며 2는 십력가섭(十力迦葉)이다.
郢州芭蕉禪師
僧問 從上宗乘 如何擧唱 師曰 已被人冷眼覷破了 問 不落諸緣 請師直指 師曰 有問有答 問 如何是和尙爲人一句 師曰 祗恐闍黎不問 問 如何是向去底人 師曰 董家稚子聲聲哭 曰 如何是却來底人 師曰 枯木驪龍露爪牙
●驪龍; 傳說中的一種黑龍 典出莊子列禦寇 莊子說 河邊窮苦人家的兒子 去潭底黑龍的頷下取珠 [百度百科]
●驪龍; 傳說中的一種黑龍 典出莊子列禦寇 莊子說 河邊窮苦人家的兒子 去潭底黑龍的頷下取珠 [百度百科]
영주(郢州) 파초선사(芭蕉禪師)
승문(僧問) 종상(從上)의 종승(宗乘)을 어떻게 거창(擧唱; 擧說)합니까. 사왈(師曰) 이미 냉안인(冷眼人)에게 처파(覷破; 엿봄)됨을 입었다. 묻되 제연(諸緣)에 떨어지지 않고 스님의 직지(直指)를 청합니다. 사왈 물음이 있고 답이 있다. 묻되 무엇이 이 화상의 위인(爲人)하는 1구(句)입니까. 사왈 다만 사리(闍黎)가 묻지 않을까 염려한다. 묻되 무엇이 이 향거(向去)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동가(董家)의 치자(稚子; 어린아이)가 소리(聲) 소리 곡(哭)한다. 무엇이 이 각래(却來)하는 사람입니까. 사왈 고목(枯木)의 이룡(驪龍)이 조아(爪牙)를 드러냈다.
●冷眼人; 냉정한 안목으로써 모사모인(某事某人)을 관찰하는 방관인(傍觀人).
●驪龍; 전설 중의 1종의 흑룡. 전고(典故)는 장자 열어구에 나옴. 장자에 설하되 냇가의 궁고(窮苦)한 인가의 아이가 못 바닥에 가서 흑룡의 턱 아래에서 구슬을 취했다 [백도백과].
潭州肥田慧覺伏禪師
僧問 如何是未出世邊事 師曰 髻中珠未解 石女斂雙眉 曰 出世後如何 師曰 靈龜呈卦兆 失却自家身 問 此地名甚麽 師曰 肥田 曰 宜種甚麽 師便打 師有偈曰 修多好句枉工夫 返本還源是大愚 祖佛不從修證得 縱行玄路也崎嶇
●卦兆; 卦象和龜兆 指占卜所得的預示吉凶的徵象
●崎嶇; 山路不平 比喩處境艱難
담주(潭州) 비전(肥田) 혜각복(慧覺伏) 선사
승문(僧問) 무엇이 이 출세하지 아니한 가의 일입니까. 사왈(師曰) 계중주(髻中珠; 髻珠)를 풀지(解) 않았는데 석녀(石女)가 두 눈썹을 거둔다(斂). 가로되 출세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영귀(靈龜)가 괘조(卦兆)를 보이고(呈) 자가(自家; 자기)의 몸을 잃어버린다. 묻되 이 땅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사왈 비전(肥田)이다. 가로되 마땅히(宜) 무엇을 심어야 합니까. 스님이 바로 때렸다. 스님이 게가 있어 가로되 많은 호구(好句)를 수식(修飾)함은 헛된 공부(枉工夫)며/ 반본환원(返本還源; 本源으로 返還)해도 이 큰 어리석음(大愚)이다/ 조불(祖佛)은 수승(修證)으로 좇아 얻지 않나니/ 비록(縱) 현로(玄路)를 행하더라도 또한 기구(崎嶇)하다.
●卦兆; 괘상과 귀조(龜兆). 점복으로 얻는 바의, 길흉을 미리 보이는 징상(徵象; 상징)을 가리킴.
●崎嶇; 산길이 평탄하지 않음이니 처한 경지가 간난(艱難; 어려움)함에 비유.
潭州鹿苑暉禪師
僧問 不假諸緣 請師道 師敲火爐曰 會麽 曰 不會 師曰 瞌睡漢 問 牛頭未見四祖時如何 師曰 如月在水 曰 見後如何 師曰 如水在月 問 祖祖相傳 未審傳箇甚麽 師曰 汝問我 我問汝 曰 恁麽則緇素不分也 師曰 甚麽處去來
담주(潭州) 녹원휘(鹿苑暉) 선사
승문(僧問) 제연(諸緣)을 빌리지 않고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스님이 화로(火爐)를 두드리고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師曰) 갑수한(瞌睡漢; 조는 자)아. 묻되 우두(牛頭; 法融)가 4조를 뵙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달이 물에 있음과 같다. 가로되 뵌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물이 달에 있음과 같다. 묻되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한다. 미심하오니 저(箇) 무엇을 전합니까. 사왈 네가 나에게 묻고 내가 너에게 묻는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치소(緇素; 僧俗)를 나누지 못합니다. 사왈 어느 곳에 갔다 왔느냐(甚麽處去來).
潭州寶葢約禪師
僧問 寶葢高高挂 其中事若何 請師言下旨 一句不消多 師曰 寶葢挂空中 有路不曾通 儻求言下旨 便是有西東
담주(潭州) 보개약(寶葢約) 선사
승문(僧問) 보개(寶葢)를 높고 높게 걸었으니/ 그 중의 일이 어떠합니까(若何)/ 스님의 언하의 지취를 청하오니/ 1구론 많은 것을 소멸(消滅; 消)하지 못합니다. 사왈(師曰) 보개(寶葢)를 공중에 걸었으니/ 길이 있어도 일찍이 통하지 못한다/ 만일(儻) 언하의 지취를 구한다면/ 바로 이, 서동(西東)이 있다.
越州雲門山拯迷寺海晏禪師
僧問 如何是衲衣下事 師曰 如齩硬石頭 問 如何是古寺一爐香 師曰 歷代無人齅 曰 齅者如何 師曰 六根俱不到 問 久嚮拯迷 到來爲甚麽不見拯迷 師曰 闍黎不識拯迷
월주(越州) 운문산(雲門山) 증미사(拯迷寺) 해안선사(海晏禪師)
승문(僧問) 무엇이 이 납의하사(衲衣下事)입니까. 사왈(師曰) 사람이 경석두(硬石頭; 단단한 돌. 頭;는 조사)를 깨묾(齩)과 같다. 묻되 무엇이 이 고사(古寺)의 일로향(一爐香)입니까. 사왈 역대(歷代)에 사람이 냄새 맡지(齅; 음이 후) 못한다. 가로되 냄새 맡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6근(根)이 모두 이르지 못한다. 묻되 증미(拯迷; 迷情을 拯濟하다)를 구향(久嚮)했더니 도래하매 무엇 때문에 증미(拯迷)를 보지 못합니까. 사왈 사리(闍黎)가 증미를 알지 못하는구나.
湖南文殊禪師
僧問 僧繇爲甚麽邈誌公眞不得 師曰 非但僧繇 誌公也邈不得 曰 誌公爲甚麽邈不得 師曰 彩繪不將來 曰 和尙還邈得也無 師曰 我亦邈不得 曰 和尙爲甚麽邈不得 師曰 渠不以苟我顔色 敎我作麽生邈 問 如何是密室 師曰 緊不就 曰 如何是密室中人 師曰 不坐上色牛
●彩繪; 指丹靑 常用於中國傳統建築上繪制的裝飾畫 後來傳到朝鮮半島和日本
호남(湖南) 문수선사(文殊禪師)
승문(僧問) 승요(僧繇)가 무엇 때문에 지공(誌公)의 진(眞; 肖像)을 막(貌; 묘사해 그림)함을 얻지 못했습니까. 사왈(師曰) 단지 승요 만이 아니라 지공도 막(貌)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지공이 무엇 때문에 막(貌)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채회(彩繪)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가로되 화상은 도리어 막득(貌得)하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나도 또한 막(貌)함을 얻지 못한다. 가로되 화상이 무엇 때문에 막함을 얻지 못합니까. 사왈 거(渠)는 나의 안색(顔色)을 탐하지(苟) 않거늘 나로 하여금 어떻게 막(貌)하게 하겠는가. 묻되 무엇이 이 밀실(密室)입니까. 사왈 긴급해 나아가지 못한다(緊不就). 가로되 무엇이 이 밀실 중의 사람입니까. 사왈 상색(上色; 上等)의 소에 앉지 못한다.
●彩繪; 단청을 가리킴. 중국 전통 건축상의 회제(繪制)의 장식화(裝飾畫)로 상용함. 후래에 조선반도와 일본에 전도(傳到)되었음.
鳳翔府石柱禪師
遊方時到洞山 時虔和尙垂語曰 有四種人 一人說過佛祖 一步行不得 一人行過佛祖 一句說不得 一人說得行得 一人說不得行不得 阿那箇是其人 師出衆曰 一人說過佛祖行不得者 祇是無舌不許行 一人行過佛祖一句說不得者 祇是無足不許說 一人說得行得者 祇是函葢相稱 一人說不得行不得者 如斷命求活 此是石女兒 披枷帶鎻 山曰 闍黎分上作麽生 師曰 該通分上卓卓寧彰 山曰 祇如海上明公秀又作麽生 師曰 幻人相逢 拊掌呵呵
●虔和尙; 師虔 五代後梁僧 洞山良价法嗣 靑原下五世 從洞山得法後 初住山南府靑銼山住庵 經十年 往隨州 衆請住靑林 後遷洞山 爲第三代洞山主人 [五燈會元十三]
●披枷帶鎻; 比喩束縛和限制 枷 鎻 古代犯人刑具
●卓卓; 獨立無倚貌
●海上明公秀; 明公 或指日輪 或指蜃樓 未知孰是
봉상부(鳳翔府) 석주선사(石柱禪師)
유방(遊方)할 때 동산(洞山)에 이르렀는데 때에 건화상(虔和尙)이 수어(垂語)하여 가로되 4종(種)의 사람이 있다. 1인은 설(說)이 불조(佛祖)를 초과하지만 1보(步)도 행함을 얻지 못하며 1인은 행(行)이 불조를 초과하지만 1구(句)도 설함을 얻지 못하며 1인은 설함도 얻고 행함도 얻으며 1인은 설함도 얻지 못하고 행함도 얻지 못한다. 어느 것(阿那箇)이 이 기인(其人; 悟道者)인가. 스님이 대중에서 나와 가로되 1인은 설(說)이 불조를 초과하지만 행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다만 이 무설(無舌)이라서 행(行)을 허락하지 않음이며 1인은 행(行)이 불조를 초과하지만 1구(句)도 설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다만 이 무족(無足)이라서 설(說)을 허락하지 않음이며 1인은 설함도 얻고 행함도 얻는다는 것은 다만 이 함개(函葢)가 상칭(相稱)함이며 1인은 설함도 얻지 못하고 행함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마치 목숨을 끊고 삶을 구함과 같으며 이것은 이 석녀아(石女兒)가 피가대쇄(披枷帶鎻)한 것입니다. 동산이 가로되 사리(闍黎)의 분상(分上)은 어떠한가. 사왈 해통(該通; 博通)의 분상(分上)에 탁탁(卓卓)하지만 어찌 드러나겠습니까(寧彰). 동산이 가로되 지여(祇如) 해상에 명공이 아름다움(海上明公秀)은 또 어떠한가. 사왈 환인(幻人)이 상봉하여 손뼉치며(拊掌) 하하(呵呵)합니다.
●虔和尙; 사건(師虔)이니 오대 후량승. 동산양개의 법사며 청원하 5세. 동산으로부터 득법한 후 처음엔 산남부 청좌산에 거주하며 주암(住庵)하다가 10년을 경과하자 수주(隨州)로 갔으며 대중의 요청으로 청림(靑林)에 거주했음. 후에 동산(洞山)으로 옮겼으며 제3대(代) 동산의 주인이 됨 [오등회원13].
●披枷帶鎻; 속박과 한제(限制)에 비유함. 가(枷; 칼)와 쇄(鎻; 수갑)는 고대 범인(犯人)의 형구(刑具).
●卓卓; 독립하여 의지함이 없는 모양.
●海上明公秀; 명공(明公)은 혹 일륜(日輪)을 가리키며 혹 신루(蜃樓; 신기루)를 가리킴. 어떤 게 옳은지 알지 못함.
河中府棲巖山大通院存壽禪師
初講經論 後於石霜之室忘筌 住後 僧問 如何是和尙得力處 師曰 不居無理位 豈坐白牛車 問 蓮華未出水時如何 師曰 汝莫問出水後蓮華事麽 僧無語 師平居罕言 叩之則應 諡眞寂禪師
하중부(河中府) 서암산(棲巖山) 대통원(大通院) 존수선사(存壽禪師)
처음 경론을 강설했고 후에 석상지실(石霜之室)에서 망전(忘筌)했다. 주후(住後) 승문(僧問) 무엇이 이 화상의 득력처(得力處)입니까. 사왈(師曰) 무리위(無理位; 이치가 없는 자리)에 거처하지 않거늘 어찌 백우거(白牛車)에 앉겠는가. 묻되 연화(蓮華)가 출수(出水)하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출수(出水) 후의 연화사(蓮華事)를 물음이 아니겠는가. 중이 말이 없었다. 스님이 평거(平居; 平日. 平素)엔 말이 드물었고(罕) 물으면(叩) 곧 응했다. 시(諡)가 진적선사(眞寂禪師)다.
南嶽玄泰禪師
沉靜寡言 未甞衣帛 時謂之泰布衲 始見德山 陞于堂矣 後謁石霜 遂入室焉 掌翰二十年 與貫休齊己爲友 後居蘭若 曰金剛臺 誓不立門徒 四方後進依附 皆用交友之禮 甞以衡山多被山民斬伐燒畬 爲害滋甚 乃作畬山謠曰 畬山兒畬山兒無所知 年年斫斷靑山嵋 就中最好衡嶽色 杉松利斧摧貞枝 靈禽野鶴無因依 白雲回避靑煙飛 猿猱路絕巖崖出 芝朮失根茆草肥 年年斫罷仍再鉏 千秋終是難復初 又道今年種不多 來年更斫當陽坡 國家嶽域尙如此 不知此理如之何 遠邇傳播 達於九重 有詔禁止 故嶽中蘭若無復延燎 師之力也 將示滅 乃召一僧令備薪蒸 留偈曰 今年六十五 四大將離主 其道自玄玄 箇中無佛祖 不用剃頭 不須澡浴 一堆猛火 千足萬足 端坐垂一足而逝 闍維收舍利 建塔於迎雲亭側
●掌翰; 管掌翰墨
●貫休; (832-912) 唐末五代僧 以詩畫著稱於世 婺州蘭谿(浙江金華)人 俗姓姜 字德隱 一字德遠 七歲出家於金華縣和安寺圓貞座下 受具足戒後 卽入浙東五洩山 修禪十年 曾參無相禪師 後往洪州開元寺聽講法華經及大乘起信論 皆能通達奧義 師善繪佛像 尤工水墨羅漢 又擅篆隸草書 其詩亦頗爲士林所稱譽 唐乾寧初 嘗謁吳越王錢鏐 竝獻詩章 頗見禮重 昭宗天復(901-904)年間入蜀 前蜀蜀主王建 其子王衍 同優遇之 因賜紫衣 署號禪月大師 乾化二年示寂 壽八十一 著有西嶽集 弟子曇域更其名爲禪月集 [宋高僧傳三十 釋氏稽古略三 五燈會元六]
●齊己; 唐末五代詩僧 湖南益陽人 俗姓胡 自號衡嶽沙門 幼於潙山同慶寺出家習學律儀 性喜吟詠 不求名利 後赴潭州石霜山慶諸會下 請知僧務 龍德元年(921) 後唐莊宗請師任僧正 師作渚宮莫問詩十五首(收於白蓮集五)表己志 愛樂山水 不近王侯 師之頸有瘤 時人戱稱爲詩囊 其所作詩 氣調淸淡 與同時先輩詩僧貫休爲唐代詩僧之首 遺詩有光憲所編白蓮集十卷 按釋氏疑年錄五 師示寂於後唐長興(930-933)末年 世壽七十餘 [宋高僧傳三十 釋氏稽古略三 通志略二十二 大淸一統志三六九]
●嵋; 峨嵋 山名 在四川 現規範寫作峨眉
남악(南嶽) 현태선사(玄泰禪師)
침정(沉靜)하고 과언(寡言)했으며 일찍이 비단을 입지(衣帛) 않았고 당시에 이르기를 태포납(泰布衲)이라 했다. 처음(始)에 덕산(德山; 宣鑒)을 참견(參見; 見)하여 당(堂)에 올랐고 후에 석상(石霜)을 참알하여 드디어 입실했고 20년 동안 장한(掌翰)했다. 관휴(貫休)ㆍ제기(齊己)와 벗이 되었고 후에 란야(蘭若; 佛寺)에 거주했으니 가로되 금강대(金剛臺)다. 문도(門徒)를 세우지 않겠다고 맹서하여 사방에서 후진(後進)이 의부(依附)하면 모두 교우지례(交友之禮)를 썼다. 일찍이 형산(衡山)이, 산민(山民)이 참벌(斬伐)하고 소여(燒畬)함을 입었기 때문에(以) 해(害)가 됨이 자심(滋甚; 더욱 심함)했다. 이에 여산요(畬山謠)를 지었으니 가로되 여산(畬山)의 아이가 여산의 아이가 아는 바가 없어/ 해마다(年年) 청산 미(嵋)를 작단(斫斷)하네/ 그 중(就中)에 최호(最好)는 형악(衡嶽)의 색(色)인데/ 삼송(杉松)을 이부(利斧)로 정지(貞枝)를 꺾는구나(摧)/ 영금(靈禽)과 야학(野鶴)이 인의(因依; 依托)할 게 없고/ 백운은 회피(回避)하고 청연(靑煙)이 나는구나(飛)/ 원노(猿猱)의 길이 끊기고 암애(巖崕; 崖)가 돌출(突出; 出)되고/ 지출(芝朮; 약초의 이름)은 실근(失根)하고 모초(茆草)가 살찌네(肥)/ 해마다 베어 마치고 잉연(仍然)히 다시 김매지만/ 천추(千秋)에도 마침내 이, 처음을 회복(回復; 復)하기 어렵다/ 또 말하노니 금년에 심음(種)이 많지(多; 저본에 來로 지었음) 않은데/ 내년에 다시 베니 당양(當陽)의 언덕이다/ 국가의 악역(嶽域; 南嶽 衡山을 가리킴)도 오히려(尙; 저본에 向으로 지었음) 이와 같으니/ 이 이치를 어찌할지(如之何) 알지 못하겠네. 원이(遠邇; 遠近)에 전파(傳播)되어 구중(九重; 宮門)에 도달(到達)했다. 조칙(詔勅)이 있어 금지(禁止)한지라 고로 악중(嶽中)의 란야(蘭若)가 다시 연료(延燎; 蔓延하여 타다)함이 없었으니 스님의 힘이었다.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자 이에 1승(僧)을 불러 신증(薪蒸; 薪柴)을 갖추게 했다. 또 게를 남겨(留偈) 가로되 금년에 육십오니/ 4대(大)가 장차 주인을 떠나려고 한다/ 그 도가 저절로 현현(玄玄)하나니/ 개중(箇中; 이 중)에 불조가 없다/ 체두(剃頭)를 쓰지(用) 말고/ 조욕(澡浴)을 쓰지 말아라/ 한 무더기의 맹화(猛火)에/ 천족만족(千足萬足)이다. 단좌(端坐)하여 한 발을 내리고 서거(逝去; 逝)했다. 사유(闍維)해 사리를 거두어 영운정(迎雲亭) 곁에 건탑(建塔)했다.
●掌翰; 한묵(翰墨; 필묵)을 관장(管掌)함.
●貫休; (832-912) 당말 오대승. 시와 그림으로 세상에 명칭이 드러났음. 무주 난계(절강 금화) 사람이며 속성은 강, 자는 덕은이며 다른 자는 덕원임. 7세에 금화현 화안사 원정의 좌하(座下)에서 출가했음. 구족계를 받은 후에 곧 절동 오설산으로 들어가 수선(修禪)하기 10년이었음. 일찍이 무상선사를 참했으며 후에 홍주 개원사로 가서 법화경 및 대승기신론을 청강했으며 다 능히 오묘한 뜻을 통달했음. 스님은 불상을 잘 그렸고 특히 수묵라한(水墨羅漢)에 공교(工巧)했음. 또 전ㆍ예ㆍ초서를 독천(獨擅)했으며 그의 시도 또한 자못 사림(士林)에서 칭예(稱譽)하는 바가 됨. 당 건녕 초에 일찍이 오월왕 전류를 알현하고 아울러 시장(詩章)을 바치자 자못 예의로 존중함을 보였음. 소종 천복(901-904)년 사이에 촉에 들어갔는데 전촉(前蜀)의 촉주 왕건과 그 아들 왕연이 한가지로 넉넉히 그를 대우했으며 인하여 자의(紫衣)를 주고 서호(署號)하여 선월대사(禪月大師)라 했음. 건화 2년 시적했음. 나이 81. 저서에 서악집이 있는데 제자 담역이 그 이름을 고쳐 선월집(禪月集)이라 했음 [송고승전30. 석씨계고략3. 오등회원6].
●齊己; 당말 오대 시승(詩僧). 호남 익양 사람이며 속성은 호며 자호(自號)는 형악사문. 어릴 적에 위산 동경사에서 출가하여 율의(律儀)를 습학(習學)했음. 성격이 음영(吟詠)을 좋아했고 명리를 구하지 않았음. 후에 담주 석상산 경제의 회하(會下)에 다다랐고 요청하여 승무(僧務)를 지(知; 主宰)했음. 용덕 원년(9 21) 후당 장종이 스님을 초청해 승정(僧正)에 임명하자 스님이 저궁막문시(渚宮莫問詩) 15수(白蓮集五에 수록되었음)를 지어 자기의 의지(意志)를 표했음. 산수를 애요(愛樂)했고 왕후를 가까이하지 않았음. 스님의 목에 혹이 있어 시인(時人)이 희롱으로 시낭(詩囊)이라 호칭했음. 그가 지은 바 시는 기조(氣調)가 청담(淸淡)했고 같은 시대의 선배 시승 관휴(貫休)와 더불어 당대(唐代) 시승의 으뜸이었음. 유시(遺詩)에 광헌(光憲)이 편(編)한 바 백련집(白蓮集) 10권이 있음. 석씨의년록5를 안험컨대 스님은 후당 장흥(930-933) 말년에 시적했고 세수는 70여임 [송고승전30. 석씨계고략3. 통지략22. 대청일통지369].
●嵋; 아미(峨嵋)니 산 이름. 사천(四川)에 있음. 현재의 규범(規範)으론 아미(峨眉)로 사작(寫作)함.
潭州雲葢禪師
僧問 佛未出世時如何 師曰 月中藏玉兔 曰 出後如何 師曰 日裏背金烏 問 不可以情測時如何 師曰 無舌童兒機智盡 風穴參 師問 石角穿雲路 携笻意若何 穴曰 紅霞籠玉象 擁嶂照川源 師曰 相隨來也 穴曰 和尙也須低聲 師曰 且坐喫茶
담주(潭州) 운개선사(雲葢禪師)
승문(僧問) 부처가 출세하지 않는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달 속에 옥토(玉兔)를 감췄다. 가로되 출세(出世; 出)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왈 해 속에 금오(金烏)를 등졌다. 묻되 가히 정(情)으로써 헤아리지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혀 없는 동아(童兒)가 기지(機智)가 다했다. 풍혈(風穴)이 참(參)했다. 스님이 묻되 석각(石角)으로 운로(雲路)를 뚫고 지팡이(笻)를 가진 뜻이 어떠한가(若何). 혈왈(穴曰) 홍하(紅霞)가 옥상(玉象)을 둘러싸고는(籠) 산봉우리를 안고(擁嶂) 천원(川源)을 비춘다. 사왈 서로 따라온다(相隨來也). 혈왈(穴曰) 화상도 또한 꼭 소리를 낮추어야 합니다. 사왈 다만 앉아서 끽다(喫茶)하게.
邵武軍龍湖普聞禪師
唐僖宗太子也 幼不茹葷 長無經世意 僖宗鍾愛之 然百計陶寫 終不能回 中和初 僖宗幸蜀 師斷髮逸遊 人無知者 造石霜問曰 祖師別傳事 肯以相付乎 霜曰 莫謗祖師 師曰 天下宗旨盛大 豈妄爲之邪 霜曰 是實事那 師曰 師意如何 霜曰 待案山點頭 卽向汝道 師於言下頓省 辭去至邵武城外 見山鬱然深秀 遂撥草 至煙起處 有一苦行居焉 苦行見師至 乃曰 上人當興此 長揖而去 師居十餘年
●茹葷; 本指吃蔥韭等辛辣的蔬菜 後指吃魚肉等
●陶寫; 怡悅情性 消愁解悶
●案山; 前山 專指宅基地或墳地對面的山
●點頭; 點 向下微動
●苦行; (一)卽斷除肉體欲望 堪忍諸種難忍之苦行 主要指印度諸外道爲求生天而行諸苦行 佛敎之苦行 稱爲頭陀 (二)從事苦役之行者 又寺內之淨人 亦稱苦行 此指(二)
●上人; 對智德兼備而可爲衆僧及衆人師者之高僧的尊稱 ▲釋氏要覽上 內有智德 外有勝行 在衆人之上者爲上人 ▲大品般若經十七 若菩薩摩訶薩 能一心行阿耨多羅三藐三菩提 護持心不散亂 稱爲上人
소무군(邵武軍) 용호(龍湖) 보문선사(普聞禪師)
당 희종(僖宗)의 태자(太子)다. 유년(幼年; 幼)에 여훈(茹葷)하지 않았고 장성(長成; 長)하여서는 경세(經世)의 뜻이 없었다. 희종이 종애(鍾愛; 몹시 총애)했다. 그러나 백계(百計)로 도사(陶寫)해도 마침내 능히 돌이키지 못했다. 중화(中和; 881-884) 초 희종이 행촉(幸蜀; 촉으로 거둥함)하자 스님이 단발(斷髮)하고 일유(逸遊; 放縱하며 遊樂)했는데 사람이 아는 자가 없었다. 석상(石霜)으로 나아가 문왈(問曰) 조사가 별전(別傳)한 일을 긍낙(肯諾)하여 상부(相付; 分付)하시겠습니까. 상왈(霜曰) 조사를 비방하지 말아라. 사왈(師曰) 천하에 종지(宗旨)가 성대(盛大)함이 어찌 허망하겠습니까. 상왈(霜曰) 이것이 실사(實事)냐. 사왈 스님의 뜻은 어떻습니까. 상왈(霜曰) 안산(案山; 앞 산)이 점두(點頭; 머리를 끄덕이다)함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겠다. 스님이 언하에 문득 성찰했다. 고별하고 떠나 소무성(邵武城) 밖에 이르렀는데 산이 울연(鬱然; 울창함)하고 심수(深秀)함을 보았다. 드디어 풀을 헤치고 연기(煙氣)가 일어나는 곳에 이르렀는데 한 고행(苦行)이 있어 거주했다. 고행이 스님이 이름(至)을 보자 이에 가로되 상인(上人)은 마땅히 여기에서 흥할 것입니다. 길게 읍(揖)하고 떠났다. 스님이 10여 년을 거주했다.
●茹葷; 본래 파와 부추 등 신랄한 소채(蔬菜; 채소)를 먹음을 가리키나 후에 어육(魚肉) 등을 먹음을 가리켰음.
●陶寫; 정성(情性)을 기쁘게 하여 근심을 없애고 고민을 해결함.
●案山; 앞 산임. 오로지 가택의 기지(基地)나 혹 분지(墳地)가 대면한 산을 가리킴.
●點頭; 점(點)은 아래를 향해 조금 움직임.
●苦行; (1). 곧 육체의 욕망을 단제(斷除)하고 여러 가지 참기 어려움을 감인(堪忍)하는 고행임. 인도의 여러 외도가 천상에 태어남을 구하기 위해 행하는 여러 고행을 주요하게 가리키며 불교의 고행은 일컬어 두타(頭陀)라 함. (2). 고역에 종사하는 행자나 또 사내의 정인(淨人)을 또한 일컬어 고행이라 함. 여기에선 (2)를 가리킴.
●上人; 지덕을 겸비하여 가히 중승 및 중인의 스승이 되는 고승에 대한 존칭. ▲석씨요람상. 안으로 지덕(智德)을 갖추고 밖으로 승행(勝行)이 있으며 중인의 위에 있는 자를 상인이라 한다. ▲대품반야경17. 만약 보살마하살이 능히 일심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행하고 호지하는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일컬어 상인(上人)이라 한다.
一日有一老人拜謁 師問 住在何處 至此何求 老人曰 住在此山 然非人 龍也 行雨不職 上天有罰當死 願垂救護 師曰 汝得罪上帝 我何能致力 雖然可易形來 俄失老人所在 視坐傍有一小蛇 延緣入袖 至暮雷電震山 風雨交作 師危坐不傾 達旦晴霽 垂袖 蛇墮地而去 有頃 老人拜而泣曰 自非大士慈悲 爲血腥穢此山矣 念何以報斯恩 卽穴巖下爲泉曰 此泉爲他日多衆之設 今號龍湖 邦人聞其事 施財施力 相與建寺 衲子雲趨 師闡化三十餘年 臨示寂聲鍾集衆 說偈曰 我逃世難來出家 宗師指示箇歇處 住山聚衆三十年 尋常不欲輕分付 今日分明說似君 我斂目時齊聽取 安然而逝 塔於本山 諡圓覺禪師
●上天; 一天上 二古人觀念中的天地主宰者
●緣; 裝飾衣邊
●危坐; 指端坐 亦指坐時敬謹端直
●達旦; 直到天明
어느 날 한 노인이 있어 배알(拜謁)했다. 스님이 묻되 어느 곳에 주재(住在)하며 여기에 이르러 무엇을 구하는가. 노인이 가로되 이 산에 주재(住在)하지만 그러나 사람이 아니고 용(龍)입니다. 비를 행하면서 부직(不職; 職務를 감당하지 못함)한지라 상천(上天)이 벌(罰)이 있어 마땅히 죽어야 하니 원컨대 구호(救護)를 내리십시오(垂). 사왈 네가 상제(上帝)에게 득죄(得罪)했거늘 내가 어찌 능히 치력(致力; 盡力)하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형체를 바꾸어 옴이 옳다. 갑자기(俄) 노인의 소재(所在)를 잃었는데 보매 자리(傍) 곁에 한 소사(小蛇)가 있었고 연(緣; 가縇)을 늘이어(延) 소매에 넣었다. 저녁에 이르자 뇌전(雷電)이 산을 진동(震動)하고 풍우(風雨)가 교작(交作)했다. 스님이 위좌(危坐; 端坐)하여 기울어지지 않았다. 달단(達旦)에 맑게 개였고(晴霽) 소매를 드리우자 뱀이 땅에 떨어져 떠났다. 이윽고(有頃; 不久) 노인이 예배하고 울며(泣) 가로되 스스로 대사(大士)의 자비가 아니었다면 피로 이 산이 성예(腥穢; 더럽히다)하였을 것입니다. 무엇으로써 이 은혜에 보답할지를 생각합니다. 곧 암하(巖下)를 뚫어(穴) 샘(泉)으로 만들고 가로되 이 샘은 타일(他日)의 다중(多衆)을 위해 시설(施設; 設)했습니다. 지금의 호(號)는 용호(龍湖)다. 방인(邦人; 國人)이 그 일을 듣고 시재(施財)하고 시력(施力)하며 서로 더불어 건사(建寺)했고 납자(衲子)가 운추(雲趨; 구름처럼 좇음)했다. 스님이 30여 년 천화(闡化)했고 시적(示寂)에 임해 종을 울려(聲鍾) 대중을 모아 게를 설해 가로되 내가 세난(世難)을 피해 출가했고/ 종사(宗師)가 저(箇) 헐처(歇處)를 지시했다/ 주산(住山)하며 취중(聚衆)한 지 삼십 년이며/ 심상(尋常)에 경솔하게 분부(分付)하려 하지 않았다/ 금일 분명히 그대에게 설해 주나니/ 내가 눈을 거둘 때 일제히 청취(聽取)하라. 안연(安然)히 서거했다. 본산에 탑을 세웠고 시(諡)가 원각선사(圓覺禪師)다.
●上天; 1. 천상. 2. 고인의 관념 중의 천지의 주재자.
●緣; 의변(衣邊)의 장식(裝飾).
●危坐; 단좌(端坐)를 가리킴. 또한 앉았을 때 경근(敬謹)하고 단직(端直)함을 가리킴.
●達旦; 바로 천명(天明; 동이 트다)에 이름.
張拙秀才
因禪月大師指參石霜 霜問 秀才何姓 曰 姓張名拙 霜曰 覓巧尙不可得 拙自何來 公忽有省 乃呈偈曰 光明寂照徧河沙 凡聖含靈共我家 一念不生全體現 六根纔動被雲遮 斷除煩惱重增病 趣向眞如亦是邪 隨順世緣無𦊱礙 涅槃生死等空花
●一念不生全體現; 謂一念不生時 則大道之全體自然顯現
장졸수재(張拙秀才)
선월대사(禪月大師)의 지시(指示; 指)로 인해 석상(石霜)을 참(參)했다. 석상이 묻되 수재(秀才) 무슨 성(姓)인가. 가로되 성이 장(張)이며 이름이 졸(拙)입니다. 석상이 가로되 교(巧)를 찾아도 오히려 불가득이거늘 졸(拙)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공(公)이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이에 게를 보여(呈) 가로되 광명이 적조(寂照)하여 하사(河沙)에 두루하니/ 범성(凡聖)과 함령(含靈)이 모두 나의 집이다/ 일념이 나지 않으면 전체가 나타나지만(一念不生全體現)/ 6근(根)이 겨우 동(動)하면 구름에 가림을 입는다/ 번뇌를 단제(斷除)하면 거듭 병(病)을 더하고/ 진여로 취향(趣向; 향해 감)해도 또한 이는 삿됨이다/ 세연(世緣)을 수순(隨順)해도 괘애(罣礙)가 없나니/ 열반과 생사가 제등(齊等)히 공화(空花)다.
●一念不生全體現; 이르자면 일념이 나지 않을 때 곧 대도의 전체가 자연히 현현(顯現)함.
夾山會禪師法嗣
澧州洛浦山元安禪師
鳳翔麟遊人也 丱年出家 具戒通經論 問道臨濟 後爲侍者 濟甞對衆美之曰 臨濟門下一隻箭 誰敢當鋒 師蒙印可 自謂已足 一日侍立次 有座主參濟 濟問 有一人於三乘十二分敎明得 有一人不於三乘十二分敎明得 且道此二人是同是別 主曰 明得卽同 明不得卽別 師曰 這裏是甚麽所在 說同說別 濟顧師曰 汝又作麽生 師便喝 濟送座主回 問師 汝豈不是適來喝老僧者 師曰 是 濟便打 師後辭濟 濟問 甚麽處去 師曰 南方去 濟以拄杖畫一畫曰 過得這箇便去 師乃喝 濟便打 師作禮而去 濟明日陞堂曰 臨濟門下有箇赤梢鯉魚 搖頭擺尾向南方去 不知向誰家虀甕裏淹殺
예주(澧州) 낙포산(洛浦山) 원안선사(元安禪師)
봉상(鳳翔) 인유(麟遊) 사람이다. 관년(丱年; 童年)에 출가했고 구계(具戒)하고는 경론을 통달했다. 임제(臨濟)에게 문도(問道)했고 후에 시자가 되었다. 임제가 일찍이 대중을 상대로 그를 찬미(讚美; 美)해 가로되 임제문하(臨濟門下)의 1척(隻)의 화살이거늘 누가 감히 당봉(當鋒)하겠는가. 스님이 인가(許可)를 입고(蒙) 스스로 이르되 이미 족하다. 어느 날 시립(侍立)하던 차에 어떤 좌주(座主)가 임제를 참(參)했다. 임제가 묻되 어떤 한 사람은 삼승(三乘)ㆍ십이분교(十二分敎)에 명달(明達; 明)함을 얻었고 어떤 한 사람은 삼승ㆍ십이분교에 명달함을 얻지 못했다. 차도(且道)하라, 이 두 사람이 이 같은가 이 다른가. 좌주가 가로되 명달함을 얻으면 곧 같고 명달함을 얻지 못하면 곧 다릅니다. 사왈(師曰) 이 속에 이 무엇이 소재(所在)하기에 같음을 설하고 다름을 설하는가. 임제가 스님을 돌아보며 가로되 너는 또 어떠한가.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임제가 좌주를 송별하고 돌아와 스님에게 묻되 너는 어찌 이 아까 노승을 할(喝)한 자가 아니겠는가. 사왈 그렇습니다. 임제가 바로 때렸다. 스님이 후에 임제에게 고별하자 임제가 묻되 어느 곳으로 가느냐. 사왈 남방으로 갑니다. 임제가 주장자로써 그어 한 번 긋고 가로되 저개(這箇; 이것)를 지나감을 얻는다면 곧 가거라. 스님이 이에 할(喝)했다. 임제가 바로 때렸다. 스님이 작례(作禮)하고 떠났다. 임제가 명일(明日) 승당(陞堂)해 가로되 임제 문하에 저(箇) 붉은 꼬리 잉어(赤梢鯉魚)가 있었는데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치면서(搖頭擺尾) 남방으로 향해 갔다. 누구 집 양념 항아리(虀甕) 속을 향해 빠져 죽을지 알지 못한다.
師遊歷罷 直往夾山卓庵 經年不訪夾山 山乃修書 令僧馳往 師接得便坐却 再展手索 僧無對 師便打曰 歸去擧似和尙 僧回擧似 山曰 這僧若開書 三日內必來 若不開書 斯人救不得也 師果三日後至 見夾山不禮拜 乃當面叉手而立 山曰 鷄棲鳳巢 非其同類 出去 師曰 自遠趨風 請師一接 山曰 目前無闍黎 此間無老僧 師便喝 山曰 住住 且莫草草怱怱 雲月是同 谿山各異 截斷天下人舌頭卽不無闍黎 爭敎無舌人解語 師佇思 山便打 因茲服膺〈興化代云 但知作佛 莫愁衆生〉
●趨風; 引申指瞻仰風采
●草草怱怱; 同草草匆匆 十分匆忙倉促的樣子
스님이 유력(遊歷)을 마치자(罷) 바로 협산(夾山)에 가서 탁암(卓庵)했다. 해를 지나도(經年) 협산을 참방하지 않았다. 협산이 이에 수서(修書; 書信을 쓰다)하여 중을 시켜 달려가게 했다. 스님이 접득(接得)하고는 바로 앉혀버리고(坐却) 다시 손을 펴 찾았다(索). 중이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바로 때리고 가로되 돌아가서 화상에게 들어 보여라. 중이 돌아가 들어 보이자 산왈(山曰) 이 중이 만약 개서(開書)한다면 3일 내에 반드시 올 것이다. 만약 개서하지 않으면 이 사람(斯人)은 구제(救濟; 救)를 얻지 못한다. 스님이 과연 3일 후에 이르렀다. 협산을 보고도 예배하지 않고 이에 당면(當面)하여 차수(叉手)하고 섰다. 산왈(山曰) 계서(鷄棲; 닭의 둥지)와 봉소(鳳巢; 봉의 둥지)는 그 동류(同類)가 아니니 나가거라. 사왈 먼 데로부터 추풍(趨風)했으니 스님의 일접(一接)을 청합니다. 산왈(山曰) 목전에 사리(闍黎)가 없고 차간(此間)에 노승이 없다. 스님이 바로 할(喝)했다. 산왈(山曰) 멈추어라(住), 멈추어라, 또 초초총총(草草怱怱)하지 말아라. 구름과 달은 이 같으나 개울(谿)과 산은 각기 다르다. 천하인의 설두(舌頭; 頭는 조사)를 절단(截斷)함은 곧 사리(闍黎)가 없지 않으나 어찌 혀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할 줄 알게 하겠는가. 스님이 저사(佇思; 우두커니 서서 생각함)했다. 협산이 바로 때렸다. 이(茲)로 인해 복응(服膺)했다〈興化가 代云 단지 作佛할 줄만 알고 중생을 근심하지 않습니다〉.
●趨風; 인신(引申; 轉義)하여 풍채(風采)를 첨앙함을 가리킴.
●草草怱怱; 초초총총(草草匆匆)과 같음. 십분 총망(匆忙)하고 창촉(倉促; 倉卒)한 양자(樣子; 形狀).
一日問山 佛魔不到處如何體會 山曰 燭明千里像 闇室老僧迷 又問 朝陽已昇 夜月不現時如何 山曰 龍銜海珠 游魚不顧 山將示滅 垂語曰 石頭一枝 看看卽滅矣 師曰 不然 山曰 何也 師曰 他家自有靑山在 山曰 苟如是 卽吾宗不墜矣 暨夾山順世 師抵于涔陽 遇故人因話武陵事 問曰 倐忽數年 何處逃難 師曰 秖在闤闠中 曰 何不向無人處去 師曰 無人處有何難 曰 闤闠中如何逃避 師曰 雖在闤闠中 要且人不識 故人罔測 又問 佛佛相應 祖祖相傳 彼此不垂曲時如何 師曰 野老門前 不話朝堂之事 曰 合譚何事 師曰 未逢別者 終不開拳 曰 有人不從朝堂來 相逢還話會否 師曰 量外之機 徒勞目擊 師尋之澧陽洛浦山卜築宴處 後遷止朗州蘇谿 四方玄侶 憧憧奔湊
●體會; 體驗領會 通達領會
●朝陽; 一早晨的太陽 二向日 面相向前人曰朝 陽 日也 此指一
●看看; 眼看著 卽將
●故人; 一先人 二故友 此指故友
●武陵事; 禪門拈頌集第九五七則 拈頌說話曰 武陵事者 武陵卽朗州 五代史 雷滿 武陵人 廣明中與滿同里人 起兵聚諸蠻 號土團軍 都武陵
●闤闠; 街市 街道
어느 날 협산(夾山; 山)에게 묻되 불(佛)과 마(魔)가 이르지 않는 곳을 어떻게 체회(體會)합니까. 산왈(山曰) 등불(燭)이 천 리의 상(像; 形像)을 밝히지만 암실(闇室)의 노승은 혼미(昏迷; 迷)하다. 또 묻되 조양(朝陽)이 이미 떠올랐으나(昇) 야월(夜月)이 나타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산왈(山曰) 용이 해주(海珠)를 머금었으나 유어(游魚)는 돌아보지 않는다. 협산이 장차 시멸(示滅)하려 하면서 수어(垂語)하여 가로되 석두(石頭; 希遷)의 일지(一枝)가 간간(看看; 장차) 곧 멸한다. 사왈 그렇지 않습니다. 산왈(山曰) 왜냐. 사왈 타가(他家)는 스스로 청산이 있습니다. 산왈(山曰) 참으로(苟) 이와 같다면 곧 오종(吾宗)이 불추(不墜)하리라. 협산이 순세(順世)함에 이르자(暨) 스님이 잠양(涔陽)에 다다라 고인(故人)을 만났고 인하여 무릉사(武陵事)를 이야기했다(話). 문왈(問曰) 숙홀(倏忽; 갑자기) 몇 년입니다. 어느 곳에서 난(難)을 도피했습니까. 사왈 다만 환궤(闤闠; 저자거리) 중에 있었습니다. 가로되 왜 사람이 없는 곳을 향해 가지 않았습니까. 사왈 사람이 없는 곳에 무슨 난(難)이 있으리오. 가로되 환궤 중에서 어떻게 도피합니까. 사왈 비록 환궤 중에 있었지만 요차(要且; 도리어. 終乃) 사람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고인이 헤아리지 못했다(罔測). 또 묻되 불불(佛佛)이 상응(相應)하고 조조(祖祖)가 상전(相傳)하거니와 피차(彼此) 수곡(垂曲; 委曲을 내리다)하지 않을 시 어떻습니까. 사왈 야로(野老)의 문전(門前)에선 조당(朝堂; 朝廷)의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가로되 합당히 무슨 일을 이야기합니까(譚). 사왈 특별한 자를 만나지 못하면 마침내 주먹을 열지 않습니다. 가로되 어떤 사람이 조당(朝堂)으로 좇아오지 않았다면 상봉하매 도리어 화회(話會; 領會)합니까. 사왈 양외(量外; 思量 밖)의 기(機)라도 도로(徒勞) 목격(目擊)합니다. 스님이 이윽고 예양(澧陽) 낙포산(洛浦山)으로 가서 연처(宴處)를 선택(選擇; 卜)해 건축(建築; 築)했고 후에 낭주(朗州) 소계(蘇谿)로 옮겨 머물렀다(止). 사방의 현려(玄侶)가 동동(憧憧) 분주(奔湊; 集聚. 會合)했다.
●體會; 체험하여 영회(領會; 了解)함. 통달하여 영회함.
●朝陽; 1. 조신(早晨; 이른 아침)의 태양. 2. 향일(向日). 얼굴이 앞 사람을 상향(相向)함을 가로되 조(朝)며 양(陽)은 해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看看; 눈으로 간착(看著). 즉 장(將; 장차).
●故人; 1. 선인(先人; 前代의 사람). 2. 고우(故友 오래도록 사귄 벗). 여기에선 고우(故友)를 가리킴.
●武陵事; 선문염송집 제957칙. 염송설화에 가로되 무릉사(武陵事)란 것은 무릉은 곧 낭주(朗州)다. 오대사(五代史) 뇌만(雷滿)은 무릉 사람이다. 광명(廣明; 880-881) 중에 뇌만의 동리(同里) 사람과 기병(起兵)하여 여러 만(蠻)을 모았으니 호가 사단군(土團軍)이며 무릉에 도읍했다.
●闤闠; 가시(街市). 가도(街道).
上堂 末後一句 始到牢關 鎻斷要津 不通凡聖 尋常向諸人道 任從天下樂欣欣 我獨不肯 欲知上流之士 不將佛祖言敎貼在額頭上 如龜負圖自取喪身之兆 鳳縈金網 趍霄漢以何期 直須旨外明宗 莫向言中取則 是以石人機似汝 也解唱巴歌 汝若似石人 雪曲也應和 指南一路 智者知疏 僧問 瞥然便見時如何 師曰 曉星分曙色 爭似太陽輝 又問 恁麽來不立 恁麽去不泯時如何 師曰 鬻薪樵子貴 衣錦道人輕 問 供養百千諸佛 不如供養一箇無心道人 未審百千諸佛有何過 無心道人有何德 師曰 一片白雲橫谷口 幾多歸鳥盡迷巢
●鎻斷要津; 猶把定封疆 是禪家本分施設 扼斷語路 使無可用心 其目的在于剿絶種種學解知見妄情俗念
●如龜負圖自取喪身之本; 從容錄第十則云 宋元君夢人被髮曰 予自宰路之淵 予爲淸江使河伯之所 漁者余且得予 覺占之 神龜也 漁者果有余且 網得白龜 其圓五尺 君欲活之 卜之曰 殺龜以卜吉 乃刳龜 七十二鑽而無遺筴 乃其事也 洛浦曰 欲知上流之士 不將佛祖言敎貼在額頭 如龜負圖自取喪身之兆
●巴歌; 祖庭事苑四 巴歌 西漢 注云 巴 巴人也 當高祖初爲漢王 得巴兪人 竝趫揵(疑健)善鬬 與之定三秦滅楚 因存其武樂也 卽今之巴州兪州 宋玉所謂下俚巴歌 國中屬而和者數千人矣 趫 丘祅切
●雪曲; 指陽春白雪 祖庭事苑三 陽春白雪 古樂府曲名也 唐顯慶二年(657) 太常上言 禮記家語云 舜彈五絃之琴 歌南風之詩 是知琴操曲弄 皆合於歌 又張華博物志云 白雪 是大帝(黃帝的尊稱)使素女鼓五十絃瑟曲名 又楚大夫宋玉 嘗對楚襄王云 客有歌於郢中者 其始曰下俚巴人 國中屬而和者數千人 其爲陽歌薤露 國中屬而和者數百人 其爲陽春白雪 國中屬而和者數十人而已 引商刻羽 雜以流徵 國中屬而和者不過數人 是以唱彌高 其和彌寡也 是知白雪琴曲 本宜合歌 以其調高 人和遂寡 自宋玉之後 未有能和者 五年(660) 呂才造琴歌白雪等曲 製歌辭 編入樂府
상당(上堂) 말후의 1구(句)라야 비로소 뇌관(牢關)에 이르나니 요진을 쇄단(鎻斷要津)하여 범성이 통하지 않는다. 심상(尋常)에 제인(諸人)을 향해 말하되 천하가 즐거워 흔흔(欣欣)하는 대로 맡기나니 나는 홀로 수긍하지 않는다. 상류(上流)의 사내를 알고자 한다면 불조(佛祖)의 언교(言敎)를 가지고 액두상(額頭上; 頭는 後綴)에 붙이지 않나니 마치 거북이 부도(負圖)하여 스스로 몸을 잃는 근본을 취함과 같다(如龜負圖自取喪身之本). 봉(鳳)이 금망(金網)에 얽히면(縈) 소한(霄漢; 하늘)으로 달려감을 어찌 기약하리오. 바로 꼭 지외(旨外)에 종지(宗旨; 宗)를 밝히고 언중(言中)을 향해 법칙(法則; 則)을 취하지 말아라. 이런 까닭으로 석인(石人)의 기(機)가 너와 같다면 또한 파가(巴歌)도 부를 줄 알려니와 네가 만약 석인과 같다면 설곡(雪曲)도 또한 응당 화응하리라. 지남(指南)의 일로(一路)를 지자(智者)가 소통(疏通; 疏)할 줄 안다. 승문(僧問) 별연(瞥然; 갑자기)히 바로 볼 때 어떻습니까. 사왈 효성(曉星)이 서색(曙色; 새벽 빛)을 나누지만 어찌 태양의 빛남과 같겠는가. 또 묻되 이렇게 옴을 세우지 않고(恁麽來不立) 이렇게 감을 없애지(泯)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육신(鬻薪; 섶을 팔다)하는 초자(樵子; 나무꾼)는 존귀(尊貴; 貴)하고 의금(衣錦; 비단옷을 입다)한 도인(道人)은 경이(輕易; 輕)하다. 묻되 백천(百千) 제불을 공양함이 일개(一箇)의 무심도인(無心道人)에게 공양함만 같지 못하다 하니 미심합니다, 백천 제불은 무슨 허물이 있으며 무심도인은 무슨 덕이 있습니까. 사왈 일편(一片)의 백운이 골 입구에 가로 놓이매 얼마나 많은 귀조(歸鳥)가 모두 둥지를 미(迷)하던가.
●鎻斷要津; 파정봉강(把定封疆)과 같음. 이는 선가의 본분 시설임. 어로(語路)를 잡아 끊어서 가히 용심하지 못하게 하는 그 목적은 갖가지 학해(學解)ㆍ지견ㆍ망념ㆍ속념(俗念)을 초절(剿絶)함에 있음.
●如龜負圖自取喪身之本; 종용록 제10칙에 이르되 송원군(宋元君)의 꿈에 머리카락에 덮힌 사람이 가로되 나는 재로(宰路)의 연못에서 비롯하였으며 나는 청강(淸江)을 위해 하백(河伯)의 처소에 사신이 되었으나 어자(漁者. 어부)인 여차(余且)가 나를 획득했습니다 하였다. 꿈을 깨 그것을 점치매 신귀(神龜)였다. 어자에 과연 여차란 이가 있었고 흰 거북을 그물로 잡았는데 그 둘레가 다섯 자였다. 원군(元君)이 그것을 살려주려고 했는데 그것을 점치매 가로되 거북을 죽여야 점괘가 길하다 하므로 이에 거북을 갈라 72번 뚫었으나 유책(遺筴)이 없었다(筴은 점대, 점칠 적마다 적중함) 한 게 곧 그 일이다. 낙포가 가로되 상류의 사내를 알고자 한다면 불조의 언교(言敎)를 가지고 이마에 붙이지 않나니 마치 거북이 부도(負圖)하여 스스로 몸을 잃는 조짐을 취함과 같다.
●巴歌; 조정사원4. 파가(巴歌) 서한(西漢; 전한) 주(注)에 이르되 파(巴)는 파인(巴人)이다. 고조(高祖)가 처음 한왕(漢王)이 됨에 당하여 파주(巴州)와 유주(兪州) 사람을 얻었는데 모두 재빠르고 굳세며(揵; 健으로 의심됨) 잘 싸웠다. 그들과 더불어 삼진(三秦)을 정(定)하고 초(楚)를 멸했으며 인하여 그 무악(武樂)을 존치(存置)했다. 즉금의 파주(巴州)와 유주(兪州)니 송옥(宋玉)이 이른 바 하리파가(下俚巴歌)를 국중에서 이어 화응하는 자가 수천인(數千人)이라 한 것임. 교(趫)는 구요절(丘祅切; 교).
●雪曲; 양춘백설(陽春白雪)을 가리킴. 조정사원3. 양춘백설(陽春白雪) 고악부(古樂府)의 곡명(曲名)임. 당 현경 2년(657) 태상(太常)이 상주(上奏)해 말했다. 예기(禮記; 제19 樂記)와 가어(家語; 孔子家語)에 이르기를 순(舜)이 5현(絃)의 거문고를 탄주해 남풍(南風)의 시를 노래했다 했습니다. 이로 알지니 거문고 가락(琴操)과 곡(曲)의 희롱이 다 가(歌)에 합당함. 또 장화(張華)의 박물지(博物志)에 이르되 백설(白雪)은 이 대제(大帝; 黃帝의 존칭)가 소녀(素女)로 하여금 50현(絃)의 큰 거문고를 두드리게 한 곡명이다. 또 초(楚)의 대부(大夫) 송옥(宋玉)이 일찍이 초양왕(楚襄王)을 대해 이르되 객이 영중(郢中; 郢은 楚의 수도)에서 노래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 처음에 가로되 하리파인(下俚巴人)이라 했습니다. 국중(國中)에 따라서(屬은 이을 촉) 화응하는 자가 수천인이었으며 그가 양가(陽歌)와 해로(薤露; 曲名. 薤는 부추 해. 염교 해)를 하자 국중에 따라서 화응하는 자가 수백 인이었으며 그가 양춘(陽春; 曲名)과 백설(白雪; 曲名)을 하자 국중에 따라서 화응하는 자가 수십 인이었을 뿐입니다. 상(商; 五音 중의 하나)을 당겨 우(羽; 五音 중의 하나)에 새기고 섞어 치(徵; 五音 중의 하나)에 유입(流入)하자 국중에 따라서 화응하는 자가 몇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 까닭으로 창(唱)이 더욱 높아지면 그 화응이 더욱 적습니다. 이로 알지니 백설(白雪)의 금곡(琴曲)은 본래 의당 가(歌)에 알맞으며 그 곡조가 높기 때문에 사람이 화응함이 적음. 송옥(宋玉)의 후로부터 능히 화응하는 자가 있지 않았음. 5년(660) 여재(呂才)가 금가(琴歌)인 백설(白雪) 등의 곡을 짓고 가사를 제작해 악부(樂府)에 편입했음.
問 日未出時如何 師曰 水竭滄溟龍尙隱 雲騰碧漢鳳猶飛 問 如何是本來事 師曰 一粒在荒田 不耘苗自秀 曰 若也不耘 莫被草埋却也無 師曰 肌骨異蒭蕘 稊稗終難隱 問 不傷物命者如何 師曰 眼花山影轉 迷者謾彷徨 問 不譚今古時如何 師曰 靈龜無卦兆 空殻不勞鑽 曰 爭奈空殻何 師曰 見盡無機所 邪正不可立 曰 恁麽則無棲泊處也 師曰 玄象始於未形 虛勞煩於飾彩 問 龍機不吐霧滋益事如何 師曰 道本無名 不存明暗 曰 不挂明暗底事 又作麽生 師曰 言中易擧 意外難提 問 不生如來家 不坐華王座時如何 師曰 汝道火爐重多少 問 祖意敎意 是同是別 師曰 師子窟中無異獸 象王行處絕狐蹤 問 一時擧來時如何 師曰 獻璞不知機 徒勞招刖足
●蒭蕘; 割草打柴 也指割草打柴的人
●卦兆; 卦象和龜兆 指占卜所得的預示吉凶的徵象
●如來家; 指如來所安住之眞如法界 又指大乘菩薩已過凡夫地 而入菩薩位以後之階段
묻되 해가 나오지 않았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물이 다한(竭) 창명(滄溟; 四海)에 용(龍)이 오히려 숨고 구름이 오르는(騰) 벽한(碧漢; 天空)에 봉(鳳)이 오히려 난다(飛). 묻되 무엇이 이 본래사(本來事)입니까. 사왈 일립(一粒)이 황전(荒田)에 있으니 김매지(耘) 않아도 묘(苗)가 저절로 빼어나다(秀). 가로되 만약에 김매지 않는다면 풀에 매몰(埋沒)되어버리지 않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기골(肌骨)이 기이(奇異; 異) 추요(蒭蕘)라 제패(稊稗; 피)가 마침내 숨기(隱) 어렵다. 묻되 물명(物命; 物類의 생명)을 상해(傷害)하지 않는 자는 어떻습니까. 사왈 안화(眼花)로 산영(山影)이 이전(移轉)하니 미자(迷者)가 도연히(謾) 방황(彷徨)한다. 묻되 금고(今古)를 얘기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영귀(靈龜)가 괘조(掛兆)함이 없으니 공각(空殼)을 노고롭게 뚫지(鑽) 말아라. 가로되 공각(空殻)임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왈 견(見)이 다하면 기소(機所)가 없으며 사정(邪正)을 가히 세우지 못한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서박(棲泊)할 곳이 없습니다. 사왈 현상(玄象; 天象)은 미형(未形)에서 비롯하거늘 헛되이 식채(飾彩)에 노번(勞煩)한다. 묻되 용기(龍機)가 안개를 토하지 않아도 이익이 불어나는 일(滋益事)이 어떻습니까. 사왈 도는 본래 무명(無名)이며 명암(明暗)을 두지 않는다. 가로되 명암(明暗)을 걸지(挂) 않는 일은 또 어떻습니까. 사왈 언중(言中)에선 들기(擧) 쉽지만 의외(意外)에선 들기(提) 어렵다. 묻되 여래가(如來家)에 출생하지 않고 화왕자(華王座; 寶華의 왕좌)에 앉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네가 말하라, 화로(火鑪)의 무게가 얼마냐.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사자굴(師子窟) 속엔 다른 짐승이 없고 상왕(象王)이 다니는 곳엔 여우의 자취가 끊긴다. 묻되 일시에 들어 올 때(擧來時) 어떻습니까. 사왈 헌박(獻璞)하면서 기(機)를 알지 못하면 도로(徒勞) 월족(刖足)을 초래한다.
●蒭蕘; 할초타시(割草打柴; 풀을 베고 땔감을 채취함). 또 할초타시하는 사람을 가리킴.
●卦兆; 괘상(卦象)과 귀조(龜兆). 점복으로 얻는 바의, 길흉을 미리 보이는 징상(徵象; 상징)을 가리킴.
●如來家; 여래가 안주하는 바의 진여법계를 가리킴. 또 대승보살이 이미 범부지(凡夫地)를 초과해 보살위에 든 이후의 계급을 가리킴.
問僧 近離甚處 曰 荊南 師曰 有一人與麽去 還逢麽 曰 不逢 師曰 爲甚不逢 曰 若逢卽頭粉碎 師曰 闍黎三寸甚密 雲門於江西見其僧 乃問 還有此語否 曰 是 門曰 洛浦倒退三千里 問 行不思議處如何 師曰 靑山常擧足 白日不移輪 問 枯盡荒田獨立事如何 師曰 鷺倚雪巢猶可辯 烏投漆立事難分 問 如何是主中賓 師曰 逢人常問路 足下鎭長迷 曰 如何是賓主雙擧 師曰 枯樹無橫枝 鳥來難措足 問 終日朦朧時如何 師曰 擲寶混沙中 識者天然異 曰 恁麽則展手不逢師也 師曰 莫將鶴唳悞作鶯啼 問 圓伊三點人皆會 洛浦家風事若何 師曰 雷霆一震 布鼓聲銷
●圓伊三點; 伊字係由三點組成 關於伊字之書體有多種 灌頂(561-632)於大般涅槃經疏六 認爲伊字有新舊之分 竝以舊伊字譬喩別敎敎理之無法圓融 而以新伊字譬喩圓敎之圓融相卽之理 此種新伊(圓伊) 又稱眞伊
●布鼓; 以布製成的鼓 祖庭事苑三 布鼓 漢 王尊爲東平相 謂王之太傅曰 毋持布鼓向雷門 說者曰 雷門 越之會稽城門也 有大鼓 越擊之 聲聞洛陽 布鼓 以布爲鼓 無聲也 毋 音無
중에게 묻되 최근에 어느 곳을 떠났느냐. 가로되 형남(荊南)입니다. 사왈 어떤 한 사람이 이렇게 갔는데 도리어 만났는가. 가로되 만나지 못했습니다. 사왈 무엇 때문에 만나지 못했는가. 가로되 만약 만났다면 곧 머리가 분쇄(粉碎)되었을 것입니다. 사왈 사리(闍黎)는 삼촌(三寸; 혀)이 매우 촘촘하다(密). 운문(雲門)이 강서에서 그 중을 보았는데 이에 묻되 도리어 이 말씀이 있느냐. 가로되 그렇습니다. 문왈(門曰) 낙포(洛浦)가 3천 리 거꾸로 물러났다. 묻되 부사의한 곳을 행하면 어떻습니까. 사왈 청산이 늘 발을 들고(擧足) 백일(白日)이 바퀴를 옮기지 않는다. 묻되 고진(枯盡)한 황전(荒田)에 독립(獨立)한 일이 어떻습니까. 사왈 백로(白鷺)가 설소(雪巢)에 의지하면(倚) 오히려 가히 분변(分辨; 辯)하지만 까마귀가 칠(漆; 옻)에 투입해 서면 일을 분별하기 어렵다. 묻되 무엇이 이 주중빈(主中賓)입니까. 사왈 사람을 만나 늘 길을 물으면 발 아래 늘(鎭) 길이(長) 미(迷)한다. 가로되 무엇이 이 빈주(賓主)를 쌍거(雙擧)함입니까. 사왈 고수(枯樹)에 횡지(橫枝)가 없어 새가 와서 발을 두기(措) 어렵다. 묻되 종일 몽롱(朦朧)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보배를 던져 모래 속에 섞으매(混; 저본에 淵으로 지었음) 아는 자는 천연(天然)으로 다르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전수(展手)해도 스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사왈 학려(鶴唳; 학의 울움)를 가지고 앵제(鸎啼; 꾀꼬리 울음)로 오작(悞作)하지 말아라. 묻되 원이삼점(圓伊三點)을 사람이 모두 알거니와 낙포(洛浦)의 가풍사(家風事)는 어떠합니까(若何). 사왈 뇌정(雷霆; 천둥소리)이 한 번 진동(震動)하매 포고(布鼓)의 소리가 사라진다(銷).
●圓伊三點; 이자(伊字; ∴)는 이 3점(點)으로 말미암아 조성(組成)되었고 이자의 서체(書體)에 관해 여러 종류가 있음. 관정(灌頂; 561-632)이 대반열반경소6에서 인식하기를 이자는 신구(新舊)의 구분이 있다 했으며 아울러 구이자(舊伊字)로 별교(別敎) 교리의 원융한 법이 없음에 비유했고 신이자(新伊字)로 원교(圓敎)의 원융상즉(圓融相卽)의 이치에 비유했음. 이 종류의 신이(新伊; 圓伊)를 또 일컬어 진이(眞伊)라 함.
●布鼓; 베로 만들어 이룬 북. 조정사원3. 포고(布鼓) 한(漢)의 왕존(王尊)이 동평(東平)의 재상이 되었다. 왕의 태부에게 가로되 포고(布鼓)를 가지고 뇌문(雷門)을 향하지 말라. 설자(說者)가 가로되 뇌문은 월(越)의 회계성문(會稽城門)이다. 대고(大鼓)가 있는데 월(越)이 그것을 치면 소리가 낙양에 들렸다. 포고는 포(布)로써 북을 만든 것이니 소리가 없음. 무(毋)는 음이 무임.
問 正當亭午時如何 師曰 亭午猶虧半 烏沈始得圓 要會箇中意 牛頭尾上安 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曰 颯颯當軒竹 經霜不自寒 僧擬進語 師曰 祇聞風擊響 知是幾千竿 上堂 孫臏收鋪去也 有卜者出來 僧曰 請和尙卜 師曰 汝家爺死 僧無對〈法眼代拊掌三下〉 問 如何是西來意 師以拂子擊禪牀曰 會麽 曰 不會 師曰 天上忽雷驚宇宙 井底蝦蟇不擧頭 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雪覆孤峰峰不白 雨滋石笋笋須生 問 法身無爲 不墮諸數 是否 師曰 惜取眉毛好 曰 如何免得斯咎 師曰 泥龜任你千年 終不解隨雲鶴 曰 直是孫臏 也遭貶剝 師曰 不穿鼻孔底牛 有甚禦處 僧便作牛吼 師曰 這畜生 僧便喝 師曰 掩尾露牙 終非好手
●孫臏; 戰國時代兵家 祖庭事苑五云 按本傳 孫賓 孫武子後 善兵法 設減竈之術 敗龐涓於馬陵 以此名顯天下 世傳其兵法 今禪家流謂設鋪市卜 不知於何而得是說 學者詳焉 賓因臏其足 故更名焉 臏 毘忍切 去膝蓋刑名
●惜取眉毛; 禪家常語 有以向人妄說之因 受眉鬚墮落之果之語
묻되 바로(正) 정오(停午; 正午. 中午)에 당한 때 어떻습니까. 사왎(師曰) 정오(停午)는 오히려 반이 이지러지고 오(烏)가 잠겨야 비로소 원(圓)을 얻는다. 개중(箇中; 此中)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우두(牛頭)가 미상(尾上)에 놓였다(安). 묻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입니까. 사왈 삽삽(颯颯; 바람 소리)한 당헌(當軒)의 대(竹)가 서리를 겪어도 스스로 춥지 않다. 중이 진어(進語)하려고 하자 사왈 다만 바람이 치는 음향만 들어도 이 몇 천 간(竿; 竹竿)인지 안다. 상당(上堂) 손빈(孫臏)이 점포(店鋪)를 거두어 떠난다. 점칠 자(卜者)가 있거든 나오너라. 승왈(僧曰) 화상의 점복(占卜; 卜)을 청합니다. 사왈 너의 집 아비(爺)가 죽었다. 중이 말이 없었다〈法眼이 代하여 세 번 拊掌했다〉. 묻되 무엇이 이 서래의(西來意)입니까. 스님이 불자(拂子)로써 선상을 치고 가로되 아느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 사왈 천상엔 홀연히 우레가 쳐 우주를 경동(驚動; 驚)하거늘 우물 밑의 두꺼비는 머리를 들지 않네. 묻되 무엇이 이 불법의 대의(大意)입니까. 사왈 눈이 고봉(孤峰)을 덮어도 산봉우리는 희지 않고 비가 석순(石笋)에 뿌리니(滋) 석순이 꼭 난다(生). 묻되 법신은 무위(無爲)라서 제수(諸數)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니 그렇습니까. 눈썹을 아껴야(惜取眉毛) 좋다. 가로되 어찌해야 이 허물(咎)을 면득(免得)하겠습니까. 사왈 이귀(泥龜)는 그의 천 년에 맡기나니 마침내 운학(雲鶴)을 따를 줄 알지 못한다. 가로되 바로 이 손빈(孫臏)일지라도 또한 폄박(貶剝)을 만날 것입니다. 사왈 콧구멍이 뚫리지 않은 소가 무슨 막을(禦) 곳이 있으랴. 중이 바로 우후(牛吼)를 지었다. 사왈 이 축생(畜生)아. 중이 바로 할(喝)했다. 사왈 꼬리를 가리고 어금니를 드러내면 마침내 호수(好手)가 아니다.
●孫臏; 전국시대의 병가(兵家). 조정사원5에 이르되 본전(本傳)을 안험컨대 손빈(孫賓)은 손무자(孫武子)의 후예다. 병법을 잘하여 감조지술(減竈之術; 부뚜막의 수를 점차 줄이는 술수)을 시설해 방연(龐涓)을 마릉(馬陵)에서 패배시켰다. 이로써 이름이 천하에 드러났으며 세상에서 그 병법을 전한다. 여금에 선가류(禪家流)가 이르기를 점포를 시설해 시장에서 점친다(卜) 함은 어디에서 이 설을 얻었는지 알지 못하겠다. 학자가 상고(詳考)해야 하리라. 빈(賓)이 그 발을 빈(臏; 정강이뼈를 베는 형벌)한지라 고로 이름을 바꿨다. 빈(臏)은 비인절(毗忍切; 빈)이니 슬개(膝蓋; 종지뼈)를 제거하는 형벌의 이름이다.
●惜取眉毛; 선가의 상어(常語)니 타인을 향해 망설(妄說)한 인유로 눈썹이 떨어지는 과보를 받는다는 말이 있음.
問 萬丈懸崖撒手去 如何免得喪於身時如何 師曰 須彌繫藕絲 曰 是何境界 師曰 刹竿頭上仰蓮心 曰 恁麽則湛湛澄澄去也 師曰 須彌頂上再翻身 曰 恁麽則兢兢切切去也 師曰 空隨媒鴿走 虛喪網羅身 曰 如何得不隨去 師曰 罌鵝缾項小 擬透望天飛 問 露不垂羣木時如何 師曰 有虎鴉須噪 無人鳥不驚 問 撥亂乾坤底人來 師還接否 師竪拂子 僧曰 恁麽則得遇明君去也 師曰 依稀似曲纔堪聽 又被風吹別調中 問 佛魔不到處 如何辨得 師曰 演若頭非失 鏡中認取乖 問 如何是救離生死 師曰 執水苟延生 不聞天樂妙 問 四大從何而有 師曰 湛水無波 漚因風激 曰 漚滅歸水時如何 師曰 不渾不濁 魚龍任躍 問 如何離得生死去 師曰 一念忘機 太虛無玷 問 如何是道 師曰 存機猶滯迹 去杌却通途 問 如何是一大藏敎收不得者 師曰 雨滋三草秀 片玉本來輝 問 一毫呑盡巨海 於中更復何言 師曰 家有白澤之圖 必無如是妖怪〈保福別云 家無白澤之圖 亦無如是妖怪〉
●藕絲; 折斷蓮花梗與地下莖 牽連之絲狀物
●湛湛澄澄; 透明澄澈貌
●兢兢切切; 謹愼恐懼貌
●媒鴿; 媒 謀介 使雙方發生關系的人或事物 鴿 經人工馴化後 能夠傳遞書信 常用做和平的象徵
●撥亂; 治亂 說文 撥 治也 廣韻 撥 理也
●白𤢟; 同白澤 一古代神話中想像的神獸 二師子的異名 ▲明代李昱撰白澤賦云 桓山之陽 溟海之北 粤有神獸 名爲白澤 麐角而鼇趾 龍身而虎額 牙參差而礪銳 目閃爍而洞射 百獸逄之駭膽慄魄 此形容其彷彿者也
묻되 만장(萬丈)의 현애(懸崖; 낭떠러지)에서 살수(撒手; 손을 놓다)하면 어찌해야 몸을 잃음을 면득(免得)할까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수미(須彌)가 우사(藕絲; 연뿌리 속의 섬유)에 묶였다(繫). 가로되 이 무슨 경계입니까. 사왈 찰간두상(刹竿頭上)에서 연심(蓮心; 연밥)을 우러러본다.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담담징징(湛湛澄澄)할 것입니다. 사왈 수미정상에서 거듭 몸을 뒤집어라.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긍긍절절(兢兢切切)할 것입니다. 사왈 공연히 매합(媒鴿)을 따라 달리면 헛되이 망라(網羅)의 몸을 잃는다(喪). 가로되 어찌해야 따라가지 않음을 얻습니까. 사왈 앵아병罌鵝缾)의 목이 작거늘 하늘을 뚫고 바라보며 날려고 한다. 묻되 이슬이 군목(羣木)에 내리지(垂)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범이 있으면 갈까마귀(鴉)가 꼭 떠들고(噪) 사람이 없으면 새가 놀라지 않는다. 묻되 건곤을 발란(撥亂)하는 사람이 오면 스님이 도리어 접인(接引)하겠습니까. 스님이 불자를 세웠다. 승왈(僧曰) 이러하다면 곧 명군(明君)을 득우(得遇)했습니다. 사왈 어슴푸레(依稀) 곡조와 같아 겨우 가히 들을 만하더니 또 바람 붊을 입어 별다른 곡조 가운데다. 묻되 불마(佛魔; 불과 마)가 이르지 않는 곳을 어떻게 변득(辨得)합니까. 사왈 연야(演若; 演若達多)가 머리를 잃지 않았거늘 경중(鏡中)에서 어긋남(乖)을 인취(認取)한다. 묻되 무엇이 이 생사를 구리(救離; 救濟하여 여의다)함입니까. 사왈 물을 가지고(執水) 구차(苟且)하게 생(生)을 연명(延命; 延)하면서 천악(天樂; 천상의 음악)의 묘함을 듣지 못한다. 묻되 4대(大)가 어디로 좇아 있습니까. 사왈 담수(湛水)에 파도가 없지만 물거품(漚)은 바람이 침으로(風擊) 인(因)한다. 가로되 물거품이 없어져(滅) 물로 돌아갔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불혼불탁(不渾不濁; 혼탁하지 않음)하여 어룡(魚龍)이 마음대로 도약(跳躍)한다(任躍). 묻되 어찌해야 생사(生死)를 여읨을 얻습니까. 사왈 일념에 망기(忘機)하면 태허(太虛)에 티가 없다(無玷). 묻되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왈 존기(存機)하면 오히려 체적(滯迹; 痕迹에 막힘)하고 거올(去杌; 杌은 등걸)하면 도리어 통도(通途; 도로가 통함)한다. 묻되 무엇이 이 일대장교(一大藏敎)로도 거둠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까. 사왈 비를 뿌리면(滋) 삼초(三草)가 빼어나고(秀) 편옥(片玉)은 본래 빛난다. 묻되 한 터럭으로 거해(巨海)를 삼켜 없애면 가운데에 또 다시(更復)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사왈 집에 백택지도(白𤢟之圖)가 있다면 반드시 이와 같은 요괴(妖怪)가 없다〈保福이 別云 집에 白𤢟之圖가 없더라도 또한 이와 같은 요괴가 없다〉.
●藕絲; 연화의 줄기와 지하의 줄기를 절단하매 견련(牽連)하는 사상(絲狀)의 물질.
●湛湛澄澄; 투명하고 징철(澄澈; 아주 맑음)한 모양.
●兢兢切切; 근신하며 공구(恐懼; 두려워하다)하는 모양.
●媒鴿; 매(媒)는 매개니 쌍방으로 하여금 관계를 발생하게 하는 사람 혹 사물. 합(鴿)은 인공(人工)으로 순화(馴化)함을 겪은 후에 능히 서신을 전체(傳遞; 차례로 전하여 보냄)함에 이름(夠). 상용하여 화평의 상징으로 지음.
●撥亂; 난을 다스림. 설문 발(撥) 치(治)다. 광운 발(撥) 리(理; 다스리다)다.
●白𤢟; 백택(白澤)과 같음. 1. 고대 신화 중의 상상의 신수(神獸). 2. 사자의 다른 이름. ▲명대 이욱이 지은 백택부(白澤賦)에 이르되 환산(桓山)의 양(陽)과 명해(溟海)의 북(北), 이에 신수(神獸)가 있으니 이름해 백택(白澤)이다. 기린의 뿔이면서 자라의 발이며 용의 몸에 범의 이마다. 이빨은 참치(參差; 길고 짧고 들쭉날쭉하여 가지런하지 아니함)하고 여예(礪銳; 숫돌에 간 듯 예리함)하며 눈은 번쩍이면서 환히 쏜다. 백수가 이를 만나면 간담이 놀라고 혼백이 벌벌 떠나니 이것은 그 방불(彷彿; 비슷함)함을 형용한 것이다.
問 凝然時如何 師曰 時雷應節 震嶽驚蟄 曰 千般運動 不異箇凝然時如何 師曰 靈鶴翥空外 鈍鳥不離巢 曰 如何 師曰 白首拜少年 擧世人難信 問 諸聖恁麽來 將何供養 師曰 土宿雖持錫 不是婆羅門 問 祖意敎意 是同是別 師曰 日月竝輪輝 誰家別有路 曰 恁麽則顯晦殊途 事非一槩 師曰 但自不亡羊 何須泣岐路 問 學人擬歸鄕時如何 師曰 家破人亡 子歸何處 曰 恁麽則不歸去也 師曰 庭前殘雪日輪消 室內游塵遣誰掃 乃有偈曰 決志歸鄕去 乘船渡五湖 擧篙星月隱 停棹日輪孤 解䌫離邪岸 張帆出正途 到來家蕩盡 免作屋中愚
●時雷; 應時的雷聲
●驚蟄; 驚蟄是二十四節氣中的第三個節氣 驚蟄春雷始鳴 驚醒了蟄伏於地下冬眠的昆蟲 ▲月令七十二候集解 二月節 …… 萬物出乎震 震爲雷 故曰驚蟄 是蟄蟲驚而出走矣
●亡羊; 列子說符 楊子之鄰人亡羊 旣率其黨 又請楊子之豎追之 楊子曰 嘻 亡一羊何追者之衆 鄰人曰 多歧路 旣反 問 獲羊乎 曰 亡之矣 曰 奚亡之 曰 歧路之中又有歧焉 吾不知所之 所以反也 楊子戚然變容 不言者移時 不笑者竟日
묻되 응연(凝然)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師曰) 시뢰(時雷)가 절기(節氣)에 응하니 산악을 진동(震動)하여 경칩(驚蟄)한다. 가로되 천반(千般)의 운동(運動)이 저(箇) 응연(凝然)과 다르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사왈 영학(靈鶴)은 허공 밖으로 날아오르는데(翥) 둔조(鈍鳥)는 둥지를 여의지 못한다. 가로되 무엇입니까(如何). 사왈 백수(白首)가 소년(少年)에게 예배하니 거세(擧世; 전 세상)의 사람이 믿기 어렵다. 묻되 제성(諸聖)이 이렇게(恁麽) 오면 무엇을 가지고 공양합니까. 사왈 토수(土宿; 土星)가 비록 석장(錫杖)을 가졌어도 이 바라문(婆羅門)이 아니다. 묻되 조의(祖意)와 교의(敎意)가 이 같습니까 이 다릅니까. 사왈 일월이 아울러 돌며 빛나거늘(輪輝) 뉘집에 달리 길이 있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현회(顯晦)가 수도(殊途; 다른 길)며 사(事)가 일개(一槩)가 아닙니다. 사왈 단지 스스로 망양(亡羊)하지 않았거늘 어찌 기로(岐路)에서 읍(泣)함을 쓰겠는가(須). 묻되 학인이 귀향(歸鄕)하려고 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가파인망(家破人亡)했거늘 자네가 어느 곳으로 돌아가겠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사왈 정전(庭前)의 잔설(殘雪)은 일륜(日輪)이 녹이지만 실내(室內)의 유진(遊塵)은 누구를 보내 소제(掃除; 掃)할까. 이에 게가 있어 가로되 결지(決志; 決然한 意志)로 귀향할지니/ 승선(乘船)하여 오호(五湖)를 건너거라/ 상앗대(篙)를 드니 성월(星月)이 숨고/ 노를 멈추니(停棹) 일륜(日輪)이 외롭다/ 닷줄을 풀매(解䌫) 사안(邪岸)을 떠나고/ 돛을 펼치매(張帆) 정도(正途)로 출발한다/ 도래(到來)하매 집을 탕진(蕩盡)하여/ 옥중(屋中)의 어리석음을 지음을 면한다.
●時雷; 때에 응하는 뇌성(雷聲).
●驚蟄; 경칩은 이 24절기 중의 제3개 절기. 경칩에 춘뢰(春雷)가 비로소 울리고 지하에 칩복(蟄伏)하면서 동면하던 곤충을 경성(驚醒)함. ▲월령칠십이후집해 이월절(二月節) …… 만물이 진(震; 천둥)을 낸다. 진(震)이 뢰(雷)가 되는지라 고로 가로되 경칩(驚蟄)이다. 이는 칩충(蟄蟲)이 놀라서(驚) 출주(出走)함이다.
●亡羊; 열자(列子) 설부(說符). 양자(楊子)의 이웃 사람이 망양(亡羊; 양을 잃음)했다. 이윽고 그 무리를 거느리고 또 양자의 아이(豎)를 요청하여 그것을 추격했다. 양자가 가로되 의(嘻; 아. 감동하여 내는 소리). 한 마리의 양이 도망갔거늘 왜 추격하는 자가 많은가. 이웃 사람이 가로되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돌아오자 묻되 양을 획득했는가. 가로되 놓쳤습니다. 가로되 어찌하여 그것을 놓쳤는가. 가로되 갈림길 가운데 또 갈림길이 있은지라 내가 간 곳을 알지 못했습니다. 소이로 돌아왔습니다. 양자가 슬퍼하며 변용(變容; 안색을 바꿈)했다. 말하지 않은 게 이시(移時; 一段의 시간을 지남)였으며 웃지 않은 것이 하루 종일이었다.
問 動是法王苗 寂是法王根 根苗卽不問 如何是法王 師擧拂子 僧曰 此猶是法王苗 師曰 龍不出洞 誰人奈何 侍者謂師曰 肇法師制得四論 甚奇怪 師曰 肇公甚奇怪 要且不見祖師 者無對〈法燈代云 和尙甚麽處是 雲居錫云 甚麽處是肇公不見祖師處 莫是有許多言語麽 又云 肇公有多少言語〉 問 如何是生機一路 師曰 敲空有響 擊木無聲
●四論; 肇論全書分爲宗本義 物不遷論 不眞空論 般若無知論 涅槃無名論等五部分 末附劉遺民書問及答劉遺民書
묻되 동(動)은 이 법왕(法王)의 묘(苗)며 적(寂)은 이 법왕의 근(根)입니다. 근묘(根苗)는 곧 묻지 않거니와 무엇이 이 법왕입니까. 스님이 불자를 들었다. 승왈(僧曰) 이것은 오히려 이 법왕의 묘(苗)입니다. 사왈 용이 동굴(洞窟)에서 나오지 않았으니 어떤 사람이 어찌하겠는가(奈何). 시자가 스님에게 일러 가로되 조법사(肇法師)가 4론(四論)을 제득(制得)했으니 심히 기괴합니다. 사왈 조공(肇公)이 심히 기괴하지만 요차(要且; 도리어. 終乃) 조사를 보지 못했다. 시자가 대답이 없었다〈法燈이 代云 화상은 어느 곳이 옳습니까(是). 雲居錫이 이르되 어느 곳이 이 조공이 조사를 보지 못한 곳인가. 이는 허다한 언어가 있음이 아닐까. 又云 조공이 다소의 언어가 있는가〉. 묻되 무엇이 이 생기(生機)의 일로(一路)입니까. 사왈 허공을 두드리매 음향이 있고 나무를 치매(擊) 소리가 없다.
●四論; 조론은 전서(全書)를 종본의(宗本義)ㆍ물불천론(物不遷論)ㆍ불진공론(不眞空論)ㆍ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ㆍ열반무명론(涅槃無名論) 등의 5부분으로 나누었으며 마지막에 유유민서문(劉遺民書問) 및 답유유민서(答劉遺民書)를 첨부했음.
師兩山開法 語播諸方 光化元年八月 誡主事曰 出家之法 長物不留 播種之時 切宜減省 締搆之務 悉從廢停 流光迅速 大道玄深 苟或因循 曷由體悟 雖激厲懇切 衆以爲常 略不相儆 至冬示微疾 亦不倦參請 十二月一日告衆曰 吾非明卽後也 今有一事問汝等 若道這箇是 卽頭上安頭 若道不是 卽斬頭求活 第一座對曰 靑山不擧足 日下不挑燈 師曰 是甚麽時節 作這箇語話 時有彦從上座對曰 離此二途 請和尙不問 師曰 未在更道 曰 彦從道不盡 師曰 我不管汝盡不盡 曰 彦從無侍者祇對和尙 師便休 至夜令侍者喚從問曰 闍黎今日祇對 甚有道理 汝合體得先師意 先師道 目前無法 意在目前 不是目前法 非耳目之所到 且道那句是賓 那句是主 若擇得出 分付鉢袋子 曰 彦從不會 師曰 汝合會 曰 彦從實不會 師喝出 乃曰 苦苦〈玄覺云 且道從上座實不會 是怕見鉢袋子粘著伊〉 二日午時 別僧擧前話問師 師曰 慈舟不棹淸波上 劒峽徒勞放木鵝 便告寂
●長物; 長 剩餘 指比丘不合受容之物
●流光; 指如流水逝去的時光
●因循; 一踏襲 隨順舊習而不改 二猶豫不決 三就這麽過日子
●參請; 卽學人向師家請問竝受敎 亦同參問請益
●劒峽; 又稱劍閣 自長安之蜀的要害地 在於今之四川省劍閣縣大劍山小劍山間 守劍門天險 劍閣崢嶸而崔嵬 一夫當關 萬夫莫開 ▲明一統志六十八 劍閣在劍州北三十里 兩岸峻拔 鑿石架閣 而爲棧道 連山絶險 故謂之劍閣
●木鵝; 從容錄三第四十一則云 杭州五雲和尙坐禪箴云 沿流劍閣無滯木鵞 蓋劍水嶮隘迅流 如二舡相觸必碎 故先斫木浮下 謂之木鵝 諸方異說難憑 莫若禪箴爲良證也
스님(師; 저본에 曰로 지었음)이 양산(兩山)에서 개법(開法)했고 언어가 제방에 전파되었다. 광화(光化) 원년(898) 8월 주사(主事)에게 경계(警戒; 誡)하여 가로되 출가지법(出家之法)은 장물(長物)을 머물지(留) 말아야 한다. 파종(播種)할 때는 간절히 의당(宜當) 감성(減省; 節省. 減少)해야 하고 체구(締搆; 建造)의 업무(業務)는 모두(悉) 폐정(廢停; 廢止停止)을 좇아야 한다. 유광(流光)이 신속하고 대도는 현심(玄深)하니 만약 혹(苟或) 인순(因循)한다면 무엇을 말미암아(曷由) 체오(體悟)하겠는가. 비록 격려(激厲; 勉勵)가 간절했지만 대중이 심상(尋常)히 여겨 조금도 서로 경계(警戒; 儆)하지 않았다. 겨울에 이르러 스님이 미질(微疾)이 있음을 보였지만 또한 참청(參請)에 게으르지 않았다. 12월 1일 대중에게 고해 가로되 내가 명일(明日)이 아니면 곧 후일(後日)이다. 지금 일사(一事)가 있어 너희 등에게 묻나니 만약 이것(這箇)이 옳다고 말하면 곧 두상에 머리를 안치함이며(頭上安頭) 만약 옳지 않다고 말한다면 곧 머리를 베고 삶을 구함이다(斬頭求活). 제1좌가 대왈(對曰) 청산이 발을 들지 않고 일하(日下)에 등(燈)을 돋우지(挑) 않습니다. 사왈(師曰) 이 어떤 시절이기에 저개(這箇) 어화(語話)를 짓느냐. 때에 언종(彦從) 상좌(上座)가 있어 대답해 가로되 이 이도(二途)를 여의고 화상의 불문(不問)을 청합니다. 사왈 미재(未在; 不然)니 다시 말하라. 가로되 언종은 말을 다하지(盡) 않았습니다. 사왈 나는 너의 다함과 다하지 않음에 상관(相管)하지 않는다. 가로되 언종은 화상에게 지대(祇對; 응대)하게 할 시자(侍者)가 없습니다. 스님이 바로 쉬었다. 밤에 이르러 시자를 시켜 언종을 불러 물어 가로되 사리(闍黎)의 금일 지대(祇對)는 심히 도리가 있다. 너는 합당히 선사(先師)의 의지(意旨)를 체득하리라. 선사가 말씀하되 목전에 법이 없으나 뜻은 목전에 있거니와 이 목전의 법이 아닌지라 이목(耳目)이 이를(到) 바가 아니다. 그래 말하라, 어느 구(那句)가 이 빈(賓)이며 어느 구가 이 주(主)인가. 만약 간택해 냄을 얻는다면 발대자(鉢袋子; 子는 조사)를 분부(分付)하겠다. 가로되 언종은 알지 못합니다(不會). 사왈 너는 합당히 안다, 가로되 언종은 실로 알지 못합니다(不知). 스님이 할(喝)하며 쫓아내고 이에 가로되 괴롭다(苦), 괴롭다〈玄覺이 이르되 且道하라 從上座가 실로 알지 못했는가, 이는 鉢袋子가 그에게 붙을까(粘著) 두렵게 본 것인가〉. 2일 오시(午時) 다른 중이 전화(前話)를 들어 스님에게 물었다. 사왈 자주(慈舟)를 청파(淸波) 위에 노 젓지 않는데 검협(劒峽)에서 도로(徒勞; 헛수고하다) 목아(木鵝)를 놓는구나. 바로 고적(寂壽)했다.
●長物; 장(長)은 잉여(剩餘)니 비구가 수용하기에 합당하지 않는 물건을 가리킴.
●流光; 유수와 같이 서거(逝去)하는 시광(時光)을 가리킴.
●因循; 1. 답습(踏襲)이니 구습(舊習)을 수순(隨順)하며 고치지 않음. 2. 유예하며 결정하지 못함. 3. 그대로 이렇게 일자를 지냄.
●參請; 곧 학인이 사가를 향해 청문하고 아울러 가르침을 받음. 또 참문청익(參問請益)과 같음.
●劒峽; 또 명칭이 검각(劍閣)이니 장안으로부터 촉으로 가는 요해(要害; 군사 요충지)의 땅임. 지금의 사천성 검각현 대검산(大劍山)과 소검산 사이에 있음. 수검문(守劍門)이 천험(天險)하고 검각(劍閣)이 쟁영(崢嶸)하면서 최외(崔嵬)하여 일부(一夫)가 당관(當關)하면 만부(萬夫)가 열지 못함. ▲명일통지68. 검각은 검주의 북쪽 30리에 있다. 양안이 준발(峻拔; 높고 험함)하였고 돌을 뚫어 전각을 가설(架設)해 잔도(험한 벼랑 같은 곳에 낸 길. 선반처럼 달아서 냄)를 만들었다. 연이은 산이 절험(絶險; 아주 험함)하여 고로 이를 일러 검각이라 한다.
●木鵝; 종용록3 제41칙에 이르되 항주 오운화상(五雲和尙)의 좌선잠(坐禪箴; 箴은 바늘 잠. 경계할 잠)에 이르되 검각(劍閣)을 따라 흐르면서 목아(木鵞)를 체류케 하지 말라 했는데 대개 검수(劍水)는 험하고 좁고 신속히 흐르므로 두 배가 서로 부딪힐 것 같으면 반드시 부서지므로 고로 먼저 나무를 쪼개어 떠내려 보내나니 이를 일러 목아(木鵝)라 한다. 제방의 이설(異說)은 빙거하기 어려우니 선잠(禪箴)으로 양증(良證)을 삼음만 같지 못하다.
撫州逍遙山懷忠禪師
僧問 不似之句還有人道得否 師曰 或卽五日齋前 或卽五日齋後 問 劒鏡明利 毫毛何惑 師曰 不空罥索 問 洪鑪猛燄 烹鍛何物 師曰 烹佛烹祖 曰 佛祖作麽生烹 師曰 業在其中 曰 喚作甚麽業 師曰 佛力不如 問 四十九年不說一句 如何是不說底句 師曰 隻履西行 道人不顧 曰 莫便是和尙消停處也無 師曰 馬是官馬不用印 問 如何是一老一不老 師曰 三從六義 曰 如何是奇特一句 師曰 坐佛牀 斫佛朴 問 祖與佛阿那箇最親 師曰 眞金不肯博 誰肯換泥丸 曰 恁麽則不肯去也 師曰 汝貴我賤 問 懸劒萬年松時如何 師曰 非言可及 曰 當爲何事 師曰 爲汝道話 曰 言外事如何明得 師曰 日久年多筋骨成 問 不敵魔軍 如何證道 師曰 海水不勞杓子舀 問 不住有雲山 常居無底船時如何 師曰 果熟自然香 曰 更請師道 師曰 門前眞佛子 曰 學人爲甚麽不見 師曰 處處王老師
●不空罥索; 同不空羂索 不空罥索菩薩 又不空罥索觀音也 梵名阿牟伽皤賒 譯爲不空罥索 胎藏界觀音院之一尊也 或列爲六觀音之一 此菩薩持不空之罥索 鉤取人天之魚於菩提之岸 以此標幟而得名 罥索譬菩薩之四攝法 其罥索必有所獲 故云不空 [不空羂索神變眞言經八 同二十二 祕藏記末]
●四十九年不說一句; 禪門拈頌集第三四則 世尊臨入涅槃 文殊請佛再轉法輪 世尊咄云 文殊 吾四十九年住世 未曾說一字 汝請再轉法輪 是吾曾轉法輪 ◆四十九年; 謂世尊轉法輪四十九年(一說四十五年)
●消停; 停止 停歇 休息
●三從六義; 三從者 大戴禮記本命篇云 有三從之道 在家從父 適人從夫 夫死從子 六義者 毛詩大義云 詩有六義焉 一曰風 二曰賦 三曰比 四曰興 五曰雅 六曰頌
●魔軍; 謂惡魔之軍兵 以軍譬喩魔衆之勢力 故稱魔軍
무주(撫州) 소요산(逍遙山) 회충선사(懷忠禪師)
승문(僧問) 흡사하지 않은 구(不似之句)를 도리어 도득(道得; 말함을 얻다)할 사람이 있습니까. 사왈(師曰) 혹은 곧 오일재(五日齋)의 앞이며 혹은 곧 오일재의 뒤다. 묻되 검과 거울이 밝고 예리한데 호모(毫毛; 터럭)가 어찌 혹란(惑亂)합니까. 사왈 불공견삭(不空罥索)이다. 묻되 홍로(洪鑪)의 맹염(猛燄)에 어떤 물건을 팽단(烹鍛)합니까. 사왈 팽불팽조(烹佛烹祖)한다. 가로되 불조를 어떻게 팽(烹)합니까. 사왈 업(業)이 그 가운데 있다. 가로되 무슨 업이라고 불러 짓습니까. 사왈 불력(佛力)이라도 같지 못하다(不如). 묻되 사십구 년 동안 1구도 설하지 않았다(四十九年不說一句) 하니 무엇이 이 설하지 않은 구(句)입니까. 사왈 척리(隻履; 외짝 신)로 서행(西行)한 도인은 돌아보지 않는다. 가로되 바로 이 화상의 소정처(消停處)가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왈 마(馬)는 이 관마(官馬)니 인가(印可)가 쓰이지 않는다. 묻되 무엇이 이 일로일불로(一老一不老)입니까. 사왈 삼종육의(三從六義)다. 가로되 무엇이 이 기특한 1구입니까. 사왈 불상(佛牀)에 앉아 불박(佛朴; 佛의 質朴)을 쪼갠다. 묻되 조(祖)와 불(佛)에 어느 것(阿那箇)이 가장 친(親)합니까. 사왈 진금(眞金)은 교환(交換; 博)을 긍정치 않거늘 누가 이환(泥丸)과 바꿈(換)을 긍정하겠는가. 가로되 이러하다면 곧 긍정하지 않습니다. 사왈 너는 귀(貴)하고 나는 천(賤)하다. 묻되 만년송(萬年松)에 검을 매달(懸劒) 때 어떻습니까. 사왈 말이 가히 미치지 못한다. 가로되 마땅히 무슨 일을 위함입니까. 사왈 너를 위해 말하는 얘기(道話)이다. 가로되 언외사(言外事)를 어떻게 밝힘을 얻습니까. 사왈 일구연다(日久年多)면 근골(筋骨)을 이룬다. 묻되 마군(魔軍)을 대적(對敵)하지 않고 어떻게 증도(證道)합니까. 사왈 해수(海水)는 노고롭게 작자(杓子; 구기. 子는 조사)로 퍼지(舀; 저본에 臽으로 지었음) 않는다. 묻되 구름이 있는 산에 머물지 않고(不住) 늘 바닥이 없는 배에 거주할 때 어떻습니까. 사왈 과실(果實)이 익으면 자연히 향기롭다. 가로되 다시 스님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왈 문앞에 참 불자(佛子)다. 가로되 학인은 무엇 때문에 보지 못합니까. 사왈 처처(處處)에 왕노사(王老師; 南泉普願)다.
●不空罥索; 불공견삭(不空羂索)과 같음. 불공견삭보살임. 또 불공견삭관음임. 범명(梵名) 아모가파사(阿牟伽皤賒; 梵 Amogha-pāśa)는 번역하면 불공견삭이니 태장계(胎藏界; 밀교 兩界의 하나니 금강계와 상대함) 관음원의 1존(尊; 量詞)임. 혹은 6관음의 하나로 배열함. 이 보살은 불공(不空)의 견삭(罥索)을 가지고 인과 천의 물고기를 보리의 언덕으로 끌어당기므로 이로써 표치(標幟)하여 이름을 얻었음. 견삭은 보살의 4섭법(攝法)에 비유함. 그 견삭은 반드시 포획하는 바가 있으므로 고로 이르되 불공임 [불공견삭신변진언경8, 동22. 비장기말].
●四十九年不說一句; 선문염송집 제34칙. 세존이 열반에 듦에 임하여 문수가 다시 전법륜(轉法輪)하기를 불타에게 청했다. 세존이 꾸짖으며 이르되 문수야 내가 49년 동안 주세(住世)하면서 일찍이 한 글자도 설하지 않았거늘(未曾說一字) 네가 다시 전법륜하기를 청하니 이 내가 일찍이 전법륜했느냐. ◆四十九年; 이르자면 세존이 49년(일설에 45년) 동안 전법륜했음.
●消停; 정지(停止). 정헐(停歇). 휴식.
●三從六義; 3종(從)이란 것은 대대예기(大戴禮記) 본명편에 이르되 3종(從)의 도가 있다. 집에 있으면 부친을 좇고 타인에게 시집가면(適) 지아비를 좇고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을 좇는다. 6의(義)란 것은 모시대의(毛詩大義)에 이르되 시(詩)에 6의(義)가 있다. 1은 가로되 풍(風)이며 2는 가로되 부(賦)며 3은 가로되 비(比)며 4는 가로되 흥(興)이며 5는 가로되 아(雅)며 6은 가로되 송(頌)이다.
●魔軍; 이르자면 악마의 군병(軍兵)임. 군으로써 마중(魔衆)의 세력에 비유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마군임.
오등회원 주역(五燈會元 註譯) 주문 제본
2024. 12월 말 번역 필. 5책 1질. 합4,615쪽. 本註와 補註 총 6,50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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