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상

나호야록상 태사(太史) 황공노직(黃公魯直; 黃庭堅)

태화당 2025. 10. 13. 08:15

太史黃公魯直 元祐間 丁家艱 館黃龍山 從晦堂和尙遊 而與死心新老 靈源淸老尤篤方外契 晦堂因語次 孔子弟子 以我爲隱乎 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丘也 於是請公詮釋而至于再 晦堂不然其說 公怒形於色 沈默久之 時當暑退凉生 秋香滿院 晦堂乃曰 聞木犀香乎 公曰 聞 晦堂曰 吾無隱乎爾 公欣然領解 及在黔南 致書死心曰 往日甞蒙苦口提撕 常如醉夢 依俙在光影中 蓋疑情不盡 命根不斷 故望崖而退耳 謫官在黔州道中 晝臥覺來 忽然廓爾 尋思平生被天下老和尙謾了多少 唯有死心道人不肯 乃是第一相爲也 靈源以偈寄之曰 昔日對面隔千里 如今萬里彌相親 寂寥滋味齋粥 快活談諧契主賓 室內許誰參化女 眼中休自覓瞳人 東西南北難藏處 金色頭陀笑轉新 公和曰 石工來斵鼻端塵 無手人來斧始親 白牯狸奴心卽 龍睛虎眼主中賓 自𢹂缻去沽村酒 却著衫來作主人 萬里相看常對面 死心寮裏有淸新 黃公爲文章主盟 而能銳意斯道 於黔南機感相應 以書布露 以偈發揮 其於淸新二老道契可槩見矣 噫 世之所甚重者 而已 公旣究明 則杜子美謂文章一小技 豈虛也哉

●太史; 官職名 夏商周三代爲史官與曆官之宅 朝廷大臣 後職位漸低 秦稱太史令 漢屬太常 掌天文曆法 魏晉以後太史僅掌管推算曆法 至明淸兩朝 修史之事由翰林院負責 又稱翰林爲太史 [百度漢語]

●黃公魯直; 黃庭堅(1045-1105) 宋代黃龍派居士 洪州分寧人 字魯直 號山谷 擅長詩 文 詞 草書 擧進士曾入仕途 政績卓著 然以黨見遭謫貶 嗣黃龍祖心(1025-1100)之法 嘗遊學安徽山谷寺 自號山谷道人 晩年築精舍於涪濱 修行淨土之法 又號涪翁 門人於其逝世後 私諡文節先生 又其所作之詩文 廣爲流行於日本足利時代之五山僧人之間 日本漢文學史之影響頗鉅 著有山谷內外集 別集等 [宋史四四四 宋史新編一七一 元祐黨人傳四 五燈會元十七]

●家艱; 父母的喪事

●晦堂; 祖心(1025-1100) 宋代黃龍派僧 廣東始興人 俗姓鄔 號晦堂 年十九依龍山寺惠全 翌年試經得度 住受業院奉持戒律 後參雲峰文悅 隨侍三年 未久參黃檗山慧南 留侍四年 後還文悅 時文悅示寂 乃依止石霜楚圓 一日 閱傳燈錄 讀多福禪師之語大悟 後隨慧南移黃龍山 慧南示寂 遂繼黃龍之席 居十二年 後入京師 駙馬都尉王詵盡禮迎之 然師僅菴居國門之外 晩年移菴深入 棧絶學者二十餘年 宋元符三年十一月示寂 壽七十六 諡號寶覺禪師 遺有寶覺祖心禪師語錄一卷 冥樞會要三卷等 [禪林僧寶傳二十三 續傳燈錄十五 五燈會元十七 釋氏稽古略四]

●和尙; <梵> upādhyāya 指德高望重之出家人 又作和上 和闍 和社等 梵云鄔波馱耶 優婆陀訶 郁波第耶夜 此云親敎師 力生 近誦 ▲翻譯名義集一 和尙 或和闍 羯磨疏云 自古翻譯多雜蕃胡 胡傳天語不得聲實 故有訛僻 傳云 和尙梵本正名鄔波遮迦 傳至于闐 翻爲和尙 傳到此土 什師翻名力生

●靈源淸; 惟淸(?-1117) 宋代黃龍派僧 字覺天 自號靈源叟 南州武寧人 族陳氏 年十七爲大僧 印心於晦堂祖心(嗣黃龍) 初住舒之太平 次遷黃龍靈源寺 黃魯直 程伊川皆與爲友 師旣託疾告閑 居昭默堂十有五年 宋徽宗政和七年九月 安坐趨寂 [普燈錄六 續傳燈錄二十二]

●擧; 擧起公案也

●孔子; (前551-前479) 宗統編年四 周靈王庚戌二十一年(前551) 儒敎聖人孔子生於魯 夾注云 十一月初四日 生于魯國兗州鄒邑縣平鄕晉昌里 按殷本紀 孔子父姓叔梁 名紇 爲鄒邑縣宰 先娶鄒氏女 生子孟皮 不才 後娶顔氏女曰徵在 禱于尼邱山神 而生孔子 生而有髮 身長九尺六寸 腰帶十圍 垂手過膝 河眸海口 龍顔方顙 鳳顒燕頷 虬髭虎視 有中和之德 衣莊而嚴 色溫而厲 有四十二表 自易姓曰孔 名丘 字仲尼 先祖殷之後裔 穎考叔弗何 至紇移居魯 易姓叔梁 孔子追昔殷宋之後 以子配一 更姓孔氏 ▲佛祖統紀五十四 周靈王二十一年(前551) 十一月庚子 孔子生魯陬邑 景王十年(前535) 孔子朝周 問禮於老子 敬王十九年(前501) 爲魯中都宰 二十一年爲司空 二十二年爲大司寇 誅少正卯墮三都 魯定公受齊女樂 三日不聽政 孔子遂適衛 三十六年(前484)自衛反魯 刪詩定書繫周易作春秋 以曾參孝爲作孝經 三十九年 哀公西狩獲麟 孔子傷麟出非時 遂絶筆於春秋 四十一年(前479)四月乙丑 孔子卒 葬泗水上 弟子三千人 身通六藝者七十二人(前551-前479)

●弟子; 禪林寶訓音義 弟子 學於師後曰弟 智從師生曰子

●提撕; 一指示 提示 二探究 參究 此指一

●光影; 喩指虛幻不實之物 亦常指禪家接人之方便法門 方便法門非眞實大法 故稱

●黔州; 轄境相當於當今湖南沅水澧水流域 湖北淸江流域 重慶黔江流域和貴州東北一部分 後來稱貴州省爲黔 [百度百科]

●廓爾; 開悟貌 空闊貌

●滋味; 滋 美味

●齋粥; 齋 午食 粥 朝餐 齋粥 泛指僧堂飮食之事 一般爲早餐食粥 午餐食飯 卽曉光漸現至得見掌中紋時 爲粥時 又若於早粥與午飯之間 約十時至十一時頃進食 則稱爲半齋 [釋門正統三]

●瞳人; 瞳孔 也作瞳仁 瞳孔中有看它的人的像 故稱瞳孔爲瞳人

●金色頭陀; 金色迦葉也 卽摩訶迦葉 彼身有金色之光 爲頭陀行第一 故名也 又稱大飮光 金色尊者 乃禪宗之第一祖 ◆頭陀; <梵> dhuta 梵語也 又作杜荼(同茶) 杜多 投多 偸多 謂去除塵垢煩惱 苦行之一 此翻爲抖擻 修治 棄除 沙汰 浣洗 搖振 意卽對衣食住等棄其貪著 以修鍊身心 有十二頭陀行 迦葉爲頭陀行第一 故有迦葉頭陀 金色頭陀之名

●白牯; 白牛也 玉篇 牯 牝牛 正字通 牯 俗稱牡牛曰牯

●狸奴; 猫的別名 畜養之可令食鼠 故稱狸奴 狸 山猫 玉篇 狸 似猫 廣韻 狸 野猫

●佛; <梵> buddha 四十二章經解 佛者 梵語 具云佛陀 此翻覺者 謂自覺覺他覺行圓滿 自覺不同凡夫 覺他不同二乘 覺滿不同菩薩 卽是釋迦牟尼如來萬德慈尊 娑婆世界之敎主也

●銳意; 意志堅決

●道; ①梵語末伽 此云道 能通之義 大要有三種 一有漏道 善業通人使至善處 惡業通人使趣惡處 故善惡二業謂之道 所至所趣之處亦名爲道 如地獄等之六道是也 二無漏道 七覺八正等法 能通行人使至涅槃 故謂之道 又行體虛融無礙 故爲通之義 以通故 名爲道 如道諦 道品 聲聞道 佛道等 梵言菩提是也 三涅槃之體 排除一切障礙 無礙自在 謂之道 [慧琳音義二十七 大乘義章八末 同十六 俱舍論二十五 法界次第中之下 華嚴大疏十八 涅槃無名論] ▲五燈會元四趙州從諗 他日問泉曰 如何是道 泉曰 平常心是道 ②指佛敎或佛敎徒 ▲五燈會元八酒仙遇賢 唯事飮酒 醉則成歌頌 警道俗 因號酒仙 ③宇宙萬物的本原本體 ▲老子第二十五混成章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爲天下母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易 繫辭上 一陰一陽之謂道 陰陽不測之謂神 ▲元叟行端語錄八 易之一陰一陽 老之道可道 淸涼尤加擯斥

●杜子美; 杜甫(712-770) 唐代詩人 字子美 鞏縣(河南鞏義)人 祖籍襄陽(今屬湖北) 居杜陵 自稱杜陵布衣 又稱少陵野老 肅宗至德二年(757) 拜右拾遺 後爲工部侍郞 善爲詩歌 雄渾奔放 與李白齊名 好與方外遊 其詩有漠漠世界黑 區區爭奪繁 唯有摩尼珠 照耀濁水源 傳燈無白日 布地有黃金 願聞第一義 回向初地心 有杜工部集 [佛法金湯編八]

 

태사(太史) 황공노직(黃公魯直; 黃庭堅)은 원우(元祐; 1086 -1094) 간 가간(家艱)을 당해(丁) 황룡산(黃龍山)에 우거(寓居; 館)하면서 회당화상(晦堂和尙)을 좇아 노닐었고 사심신로(死心新老; 悟新)ㆍ영원청로(靈源淸老; 惟淸)와 더불어 더욱(尤) 방외(方外)의 계(契; 交際)가 돈독(敦篤; 篤)했다. 회당(晦堂)이 말하던 차로 인해 거()했다. 공자(孔子)가 제자(弟子)에게 이르되 내가 숨긴다고 하느냐(以我爲隱乎) 나는 너희에게 숨긴 게 없다(吾無隱乎爾). 내가 행하면서 이삼자(二三子)와 함께하지 않은 것이 없나니 이것이 구(丘; 孔丘)다. 이에 공(公)에게 전석(詮釋; 해석)을 청했는데 재차(再次; 再)에 이르렀다. 회당이 그 설을 그렇지 않다 하자 공이 노기(怒氣; 怒)를 얼굴빛(色)에 나타내면서(形) 침묵함이 오래였다. 때가 더위가 물러나고 서늘함이 발생함에 당했고 추향(秋香)이 만원(滿院)했다. 회당이 이에 가로되 목서(木犀)의 향을 맡는가(聞). 공왈(公曰) 맡습니다. 회당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숨긴 게 없다. 공이 흔연(欣然)하며 영해(領解)했다. 검남(黔南)에 있음에 이르러(及) 사심(死心)에게 치서(致書; 寄信)하여 가로되 왕일(往日)에 일찍이 고구(苦口)로 제시(提撕)함을 입었으나(蒙) 늘 취몽(醉夢; 취한 듯 꿈꾸는 듯)이라 어슴푸레(依俙) 광영(光影) 중에 있음과 같음은 대개(大蓋) 의정(疑情)이 다하지 않고 명근(命根)이 단절되지 않아 고로 망애(望崖)하고 물러날 뿐입니다. 적관(謫官; 左遷)되어 검주(黔州) 도중(道中)에 있으면서 낮에 누웠다가 깨어나며 홀연히 확이(廓爾)했고 심사(尋思; 깊이 생각함)하니 평생 천하 노화상들에게 속임을 입은 게 다소(多少)이던가. 오직 사심도인(死心道人)이 있어 불긍(不肯)했으니 이에 이 첫째의 상위(相爲)입니다. 영원(靈源)이 게를 기탁해 가로되 지난날엔 대면해도 천 리를 격(隔)했더니/ 여금엔 만 리라도 더욱(彌) 서로 친하다/ 적료(寂寥)한 자미(滋味)가 재죽(齋粥)과 같나니/ 쾌활하게 담해(談諧; 說笑)하며 주빈(主賓)이 계합한다/ 실내(室內)에 누구에게 허락하여 화녀(化女)에게 참(參)하는가/ 안중(眼中)에 스스로 동인(瞳人)을 찾음을 쉬어라/ 동서남북에 숨기기 어려운 곳에/ 금색두타(金色頭陀)의 웃음이 더욱(轉) 새롭다. 공(公)이 화왈(和曰) 석공(石工)이 와서 코끝의 티끌을 깎으매(斵)/ 무수인(無手人)이 와서 도끼질해야(斧) 비로소 친하다/ 백고(白牯)와 이노(狸奴)의 마음이 곧 부처()니/ 용정(龍睛)과 호안(虎眼)은 주중빈(主中賓)이다/ 스스로 병(缻)을 가지고 가서 촌주(村酒)를 사는데(沽)/ 도리어 적삼을 입고 와서 주인 노릇을 하누나/ 만 리에서 상간(相看)하지만 늘 대면했나니/ 사심(死心)의 요리(寮裏)에 청신(淸新; 惟淸과 悟新)이 있다. 황공(黃公)은 문장(文章)의 주맹(主盟; 盟主)이 되었고 능히 사도(斯道)에 예의(銳意)였다. 검남(黔南)에서 기감(機感)이 상응하여 서(書)로써 포로(布露; 公布. 揭示)하고 게(偈)로써 발휘(發揮)했다. 그가 청신(淸新) 이로(二老)에 도가 계합했음을 가히 대개(大槪; 槩) 볼 것이다. 희(噫)라, 세상에서 심히 중하게 여기는 바의 것은 도()일 따름이다. 공(公)이 이미 구명(究明)했으니 곧 두자미(杜子美; 杜甫)가 이른 문장은 일소기(一小技)라 한 게 어찌 헛되다 하겠는가.

●太史; 관직의 이름이니 하상주(夏商周) 3대(代)에 사관(史官)과 역관(曆官) 댁(宅)의 조정 대신이 되었는데 후에 직위가 점차 낮아졌음. 진(秦)에선 태사령이라 일컬었고 한(漢)에선 태상(太常)에 속했으며 천문과 역법(曆法)을 관장했음. 위진(魏晉) 이후의 태사는 다만 역법의 추산(推算)을 관장했음. 명ㆍ청 양조(兩朝)에 이르러선 수사지사(修史之事)는 한림원으로 말미암아 부책(負責)했고 또 한림을 일컬어 태사라 했음 [백도한어].

●黃公魯直;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이니 송대 황룡파 거사. 홍주 분녕 사람이며 자(字)가 노직(魯直)이며 호가 산곡(山谷). 시(詩)ㆍ문(文)ㆍ사(詞)ㆍ초서(草書)에 천장(擅長; 뛰어나다. 정통하다)했음. 진사(進士)에 선발(擧)되어 일찍이 사도(仕途)에 들었으며 정적(政績)이 탁저(卓著)했음. 그러나 당견(黨見) 때문에 적폄(謫貶)을 만나기도 했음. 황룡조심(黃龍祖心; 1025-1100)의 법을 이었으며 일찍이 안휘(安徽) 산곡사(山谷寺)에 유학(遊學)하면서 자호(自號)를 산곡도인(山谷道人)이라 했음. 만년에 부빈(涪濱)에 정사(精舍)를 건축하고 정토의 법을 수행하면서 또 호를 부옹(涪翁)이라 했음. 문인(門人)들이 그가 서세(逝世)한 후에 사시(私諡)하여 문절선생(文節先生)이라 했음. 또 그가 지은 바의 시문(詩文)은 일본 족리시대(足利時代)의 오산승인(五山僧人)의 사이에 널리 유행(流行)했으며 일본 한문학사(漢文學史)의 영향이 자못 컴. 저서에 산곡내외집(山谷內外集)과 별집(別集) 등이 있음 [송사444. 송사신편171. 원우당인전4. 오등회원17].

●家艱; 부모의 상사(喪事).

●晦堂; 조심(祖心; 1025-1100)이니 송대 황룡파승. 광동 시흥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오(鄔)며 호는 회당(晦堂). 나이 19에 용산사 혜전에게 의지했고 다음해에 시경득도(試經得度)했음. 수업원(受業院)에 머물며 계율을 봉지(奉持)하다가 뒤에 운봉문열(雲峰文悅)을 참알(參謁)해 수시(隨侍)하기 3년이었으며 오래지 않아 황벽산(黃檗山)의 혜남(慧南)을 참알해 머물며 시봉하기 4년이었음. 뒤에 문열에게 돌아갔는데 때에 문열은 시적(示寂)한지라 이에 석상초원(石霜楚圓)에게 의지했음. 어느 날 전등록을 열람했는데 다복선사(多福禪師)의 말을 읽다가 대오했음. 후에 혜남을 따라 황룡산(黃龍山)으로 이주했고 혜남이 시적하자 드디어 황룡의 법석을 승계했으며 거주하기 12년이었음. 후에 경사(京師)에 들어갔더니 부마도위(駙馬都尉) 왕선(王詵)이 예(禮)를 다해 환영했지만 그러나 스님은 근근(僅僅)히 국문(國門)의 밖에 암거(菴居)하였음. 만년에 암자를 옮겨 깊이 들어가 잔도(棧道)로 학자를 사절(辭絶)하기 20여년이었음. 송(宋) 원부(元符) 3년 11월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76이며 시호는 보각선사(寶覺禪師). 유작(遺作)에 보각조심선사어록(寶覺祖心禪師語錄) 1권과 명추회요(冥樞會要) 3권 등이 있음 [선림승보전23. 속전등록15. 오등회원17. 석씨계고략4].

●和尙; <범> upādhyāya. 덕이 높고 신망(信望)이 두터운 출가인을 가리킴. 또 화상(和上)ㆍ화사(和闍)ㆍ화사(和社) 등으로 지음. 범어로는 이르되 오파타야(鄔波馱耶)ㆍ우파타하(優婆陀訶)ㆍ욱파제야야(郁波第耶夜)니 여기에선 이르되 친교사(親敎師)ㆍ역생(力生)ㆍ근송(近誦)임. ▲번역명의집1. 화상(和尙) 혹은 화사(和闍)임. 갈마소(羯磨疏)에 이르되 자고로 번역이 번호(蕃胡; 蕃은 중국에서 옛적에 서방 변경의 각 소수민족과 외국에 대한 통칭. 뒤에 番으로 지었음)가 많이 섞여 호인(胡人)이 천축국 말을 전하면서 소리의 진실을 얻지 못해 고로 그릇되고 치우침이 있었다. 전(傳)에 이르되 화상의 범본(梵本)의 바른 이름은 오파자가(鄔波遮迦)이다. 전해 우전(于闐)에 이르러 화상으로 번역되었고 전하여 이 국토에 이르러선 집사(什師; 구마라집)가 번역해 역생(力生)으로 이름했다.

●靈源淸; 유청(惟淸); ?-1117)이니 송대 황룡파승. 자는 각천이며 자호(自號)가 영원수(靈源叟)니 남주 무녕 사람이며 족(族)은 진씨. 나이 17에 대승(大僧)이 되었고 회당조심(晦堂祖心; 황룡을 이었음)에게서 인심(印心)했음. 처음은 서(舒)의 태평에 거주했고 다음은 황룡 영원사로 옮겼음. 황로직(黃魯直)과 정이천(程伊川)이 모두 더불어 벗이 되었음. 스님이 이미 탁질(託疾)하여 고한(告閑)하고는 소묵당에 거주하기 15년이었음. 송 휘종 정화 7년 9월에 안좌하여 취적(趨寂)했음 [보등록6. 속전등록22].

●擧; 공안(公案)을 들어 일으킴.

●孔子; 종통편년4. 주(周) 영왕(靈王) 경술 21년(前 551)유교 성인 공자가 노나라에 탄생했다. 협주(夾注)에 이르되 11월 초 4일에 노나라 연주 추읍현 평향 진창리에 탄생했다. 은본기(殷本紀)를 살펴보니 공자 아버지의 성은 숙량(叔梁)이며 이름은 흘(紇)이며 추읍의 현재(縣宰)다. 먼저 추씨의 딸에게 장가들어 아들 맹피(孟皮)를 낳았으나 부재(不才)였다. 후에 안씨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가로되 징재(徵在)였다. 이구산(尼邱山)의 신에게 기도하여 공자를 낳았다. 태어나자 머리카락이 있었으며 신장이 9척 6촌이며 허리 둘레가 열 아름이었다. 손을 내리면 무릎을 지났고 강의 눈에 바다의 입이며 용의 얼굴에 네모진 이마였으며 봉의 머리통에 제비의 턱이며 규룡의 수염에 범의 눈초리였다. 중화(中和)의 덕이 있으며 옷은 장식하여 위엄스러웠고 안색은 온화하면서 맑았다. 마흔둘의 표시가 있었다. 스스로 성을 바꾸어 가로되 공(孔)이며 이름은 구(丘)며 자는 중니(仲尼)다. 선조는 은나라의 후예인 영고숙불하(穎考叔弗何)이다. 흘(紇)에 이르러 노나라로 이거(移居)했으며 성을 바꾸어 숙량(叔梁)이라 했다. 공자가 옛적에 은나라와 송나라의 후예임을 추억해 자(子)에 일(一)을 배합해 성을 바꾸어 공씨(孔氏)라 했다. ▲불조통기54. 주 영왕 21년(前 551) 11월 경자(庚子)에 공자가 노나라 추읍(陬邑)에서 탄생했으며 경왕 10년(前 535) 공자가 주나라를 방문해 노자에게 예(禮)를 물었다. 경왕 19년(前 501) 노나라의 중도재(中都宰)가 되었고 21년에 사공(司空)이 되었고 22년에 대사구(大司寇)가 되었다. 소정묘(少正卯)를 죽이고 삼도(三都)를 무너뜨렸다. 노 정공이 제나라의 여악(女樂)을 받아들여 3일 동안 정무를 듣지 않자 공자가 드디어 위나라로 갔다. 36년(前 484) 위나라로부터 노(魯)로 돌아와 시를 산취(刪取)하고 서(書)를 정하고 주역을 계사(繫辭)하고 춘추를 지었다. 증삼이 효자라 위하여 효경을 지었다. 39년에 애공(哀公)이 서쪽으로 사냥하다 기린을 잡았는데 공자가 기린이 비시(非時)에 출현함에 상심하여 드디어 춘추에서 절필했다. 41년(前 479) 4월 을축(乙丑)에 공자가 졸했으며 사수상(泗水上)에 장사 지냈다. 제자가 3천 인이며 몸이 6예(藝)를 통달한 자 72인이다.

●弟子; 선림보훈음의. 제자(弟子) 스승의 뒤에서 배움을 가로되 제(弟)며 지(智)가 스승으로부터 남을 가로되 자(子)다.

●提撕; 1. 지시임. 제시(提示)임. 2. 탐구. 참구.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光影; 허환하여 실답지 못한 사물을 비유로 가리킴. 또한 늘 선가에서 접인(接人)하는 방편법문을 가리킴. 방편법문은 진실한 대법이 아니므로 고로 일컬음.

●黔州; 관할 경계는 당금 호남의 원수ㆍ예수 유역, 호북의 청강 유역, 중경의 검강 유역과 귀주 동북 1부분에 상당함. 후래에 귀주성을 일컬어 검(黔)이라 했음 [백도백과].

●廓爾; 개오(開悟)하는 모양. 공활한 모양.

●滋味; 자(滋)는 좋은 맛.

●齋粥; 재는 오식(午食)이며 죽은 조찬이니 재죽은 널리 승당의 음식의 일을 가리킴. 일반으로 조찬은 죽을 먹고 오찬은 밥을 먹음이 됨. 곧 새벽 빛이 점차 나타나서 손바닥 속의 무늬를 득견(得見)할 때에 이르면 죽시(粥時)가 됨. 또 만약 조죽(早粥)과 오반(午飯) 사이 약 10시에서 11시 경에 이르러 진식(進食)함을 곧 일컬어 반재(半齋)라 함 [석문정통3].

●瞳人; 동공(瞳孔)임. 또 동인(瞳仁)으로 지음. 동공 중에 타인을 보는 사람의 형상이 있는지라 고로 동공을 일컬어 동인(瞳人)이라 함.

●金色頭陀; 금색의 가섭임. 즉 마하가섭이니 그의 몸에 금색의 빛이 있으며 두타행이 제1이므로 고로 이름함. 또 호칭이 대음광ㆍ금색존자니 곧 선종의 제1조. ◆頭陀; <범> dhuta. 범어임. 또 두다(杜荼; 茶와 같음)ㆍ두다(杜多)ㆍ투다(投多)ㆍ투다(偸多)로 지음. 이르자면 진구(塵垢)와 번뇌를 제거하는 고행의 하나임. 여기에서 번역하면 두수(抖擻)ㆍ수치(修治)ㆍ기제(棄除)ㆍ사태(沙汰)ㆍ완세(浣洗)ㆍ요진(搖振)이 됨. 뜻으로는 곧 의식주(衣食住) 등에 대해서 그 탐착을 버리고 신심(身心)을 수련함. 12두타행(頭陀行)이 있으며 가섭이 두타행의 제일이 됨. 고로 가섭두타ㆍ금색두타의 명칭이 있음.

●白牯; 흰 소임. 옥편 고(牯) 빈우(牝牛; 암소)다. 정자통 고(牯) 속칭 모우(牡牛; 수소)를 가로되 고(牯)다.

●狸奴; 고양이의 별명. 그것을 축양(畜養; 기르다)하여 가히 쥐를 잡아먹게 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이노(狸奴)임. 리(狸)는 산묘(山猫; 살쾡이). 옥편 리(狸) 고양이와 흡사하다. 광운 리(狸) 야묘(野猫; 살쾡이)다.

●佛; <범> buddha. 사십이장경해. 불(佛)이란 범어다. 갖추어 이르면 불타(佛陀; 梵 buddh a)니 여기에선 각자(覺者)로 번역한다. 이르자면 자각(自覺)하고 각타(覺他)하여 각행(覺行)이 원만함이다. 자각(自覺)은 범부와 같지 않음이며 각타(覺他)는 2승(乘)과 같지 않음이며 각만(覺滿)은 보살과 같지 않음이다. 곧 이 석가모니여래니 만덕(萬德)의 자존(慈尊)이며 사바세계의 교주다.

●銳意; 의지(意志)가 견결(堅決)함.

●道; ①범어 말가(末伽; 梵 Marga)를 여기에선 이르되 도(道)니 능통의 뜻. 대요(大要)에 3종이 있음. 1은 유루도(有漏道)니 선업은 사람을 통과시켜 선처에 이르게 하고 악업은 사람을 통과시켜 악처에 이르게 하는지라 고로 선악 2업을 일러 도(道)라 함. 이르는 곳과 취향하는 바의 처소도 또한 이름하여 도라 함. 예컨대(如) 지옥 등의 6도(道)가 이것임. 2는 무루도니 칠각팔정(七覺八正) 등의 법이 능히 행인을 통과시켜 열반에 이르게 하는지라 고로 이를 일러 도라 함. 또 행하는 체가 허융(虛融)하여 무애하므로 고로 통(通)의 뜻이 됨. 통을 쓰는 고로 이름하여 도니 예컨대(如) 도제ㆍ도품ㆍ성문도ㆍ불도 등, 범언(梵言)으로 보리가 이것임. 3은 열반의 체가 일체의 장애를 배제(排除)하여 무애자재함을 일컬어 도라 함 [혜림음의27. 대승의장8말, 동17, 동16. 구사론25. 법계차제중지하. 화엄대소18. 열반무명론]. ▲오등회원4 조주종심. 다른 날 남천에게 묻되 무엇이 이 도(道)입니까. 남천이 가로되 평상심이 이 도다. ②불교 혹 불교도를 가리킴. ▲오등회원8 주선우현. 오직 음주를 일삼고 취하면 곧 가송(歌頌)을 이루어 도속(道俗)을 경각(警覺)했으니 인하여 호가 주선(酒仙)이다. ③우주 만물의 본원과 본체. ▲노자 제25 혼성장. 물건이 있어 혼성(混成)했으니 천지의 앞에 생했다. 적(寂)하고 요(寥)함이여, 독립하여 고치지 않으며 주행하며 쉬지 않나니 가이 천하의 어머니가 된다. 내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해 그것을 자(字)하여 도(道)라 한다. ▲역 계사상. 일음일양(一陰一陽)을 일러 도(道)라 하고 음양으로 헤아리지 못함을 일러 신(神)이라 한다. ▲원수행단어록8. 역의 일음일양(一陰一陽)과 노자의 도가도(道可道)를 청량이 매우 빈척(擯斥)을 가했다.

●杜子美; 두보(杜甫; 712-770)니 당대 시인. 자는 자미(子美)며 공현(하남 공의) 사람. 조적(祖籍)은 양양(지금의 호북)임. 두릉에 거주한지라 자칭이 두릉포의(杜陵布衣)며 또 호칭이 소릉야로(少陵野老). 숙종 지덕 2년(757) 우습유에 제배(除拜)되었고 후에 공부시랑(工部侍郞)이 되었음. 시가(詩歌)를 잘했는데 웅혼(雄渾; 웅장하여 막힘이 없음)하고 분방(奔放)했으며 이백(李白)과 더불어 명성이 가지런했음. 방외(方外)와 놀기를 좋아했음. 그 시에 막막(漠漠)한 세계는 어둡고/ 구구(區區)히 번화를 쟁탈한다/ 오직 마니주가 있어/ 탁한 수원을 밝게 비춘다/ 등을 전하매 백일(白日)이 없고/ 땅에 깔린 황금이 있다/ 원컨대 제1의(義)를 듣고/ 초지(初地)의 마음으로 회향하리라 한 게 있음. 두공부집이 있음 [불법금탕편8].

 

나호야록 주문제본

 

나호야록 주문제본

2025년 仲秋 번역필. 합 660쪽. 本註補註 合計 1,320 目. 미출간. 원문과 출처가 분명한 한문 주석을 넣고 다시 전체를 한글 번역. 주문 요청이 있을 시 인쇄소 에 부탁해 5일 내에 복사 제본해 발송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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