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湖野錄上 底本 卍續藏第一四二冊
宋 江西沙門 曉瑩 集
趙淸獻公 平居以北京天鉢元禪師爲方外友 而咨决心法 暨牧靑州 日聞雷有省 卽說偈曰 退食公堂自凭几 不動不搖心似水 霹靂一聲透頂門 驚起從前自家底 擧頭蒼蒼喜復喜 刹刹塵塵無不是 中下之人不得聞 妙用神通而已矣 已而 答富鄭公書 略曰 近者旋附節本傳燈三卷 當已通呈 今承制宋威去餘七軸上納 抃伏思西方聖人敎外別傳之法 不爲中下根機之所設也 上智則頓悟而入 一得永得 愚者則迷而不復 千差萬別 唯佛與祖以心傳心 其利生攝物而不得已者 遂有棒喝拳指 揚眉瞬目 拈椎豎拂 語言文字種種方便 去聖逾遠 諸方學徒忘本逐末 棄源隨波 滔滔皆是 斯所謂可憐憫者矣 抃不侫 去年秋初在靑州 因有所感旣已稍知本性無欠無餘 古人謂安樂法門 信不誣也 比蒙太傅侍中俾求禪錄 抃素出恩紀 聞之喜快 不覺手舞而足蹈之也 伏惟執事富貴如是之極 道德如是之盛 福壽康寧如是之備 退休閑逸如是之高 其所未甚留意者 如來一大事因緣而已 今茲又復於眞性有所悟入 抃敢爲賀於門下也 公以所證 形於尺素 而爲鄭公同事攝 蓋不孤先聖囑累而然 元豐間 以太子少保歸三衢 與里民不間位貌 名所居爲高齋 有偈見意曰 腰佩黃金已退藏 箇中消息也尋常 時人要識高齋老 只是柯村趙四郞 又誌其壽塋曰 吾政已致 壽七十二 百歲之後 歸此山地 彼眞法身 不卽不離 充滿大千 普現悲智 不可得藏 不可得置 壽塋之說 如是如是 觀其漏泄家風 了無剩語 豈容裴龐擅美於前耶 若夫身退名遂 善始令終 不出戶庭 心契佛祖 賢於知機遠禍 駕言從赤松子遊者 遠矣
●羅湖野錄; 二卷 宋代僧曉瑩撰 收於卍續藏第一四二冊 師爲大慧宗杲之法嗣 壯年歷遊叢林 晩年歸憩江西臨川之羅湖 結湖隱堂 後集錄叢林見聞 諸方尊宿提唱之語 友朋談說議論之言 或得於殘碑蠹簡有關典謨之說等 而成本書 總計近百篇 書中詳錄當時禪門公案 及機鋒語句 緇徒故實 頗具歷史之眞實性 自古爲叢林必讀 被列爲禪門七部書之一 誠爲禪徒修道所不可或缺之指南
●沙門; <梵> śramaṇa 又作桑門 喪門 沙門那等 譯曰 息 息心 勤行 乏道 貧道等 新作室羅末拏 室摩那拏 譯曰功勞 勤息 修佛道之義也 又勤修息煩惱之義也 原不論外道佛徒 總爲出家者之都名
●趙淸獻公; 趙抃(1008-1084) 宋代雲門宗居士 字悅道 閱道 自號知非子 嗣蔣山法泉(雲門下五世) 宋至和(1054-1055)中爲侍御 及知靑州 隱几公堂 聞雷聲忽然大省 後爲太子少保 諡淸獻 [宋史三一六 普燈錄五 名公法喜志三]
●天鉢元; 重元(?-1078或1085) 宋代雲門宗僧 號文慧 靑州千乘(山東廣饒)孫氏 年十七出家 冠歲圓具 初遊講肆 頗達敎乘 後慕禪寂 參天衣義懷得法 懷曰 此吾家千里駒也 凡四主名藍 寂於北京天鉢寺 太師文彦博爲收舍利建塔 [五燈會元十六 釋氏稽古略四 普燈錄三]
●禪師; 修禪定之師也 禪師之稱 不限用於禪宗名德 於天台宗 淨土宗 三階敎等 專習坐禪者 亦稱禪師 玉篇 師 敎人以道者之稱也 法言 師者 人之模範也
●方外友; 方外 世外之義 或指僧道等 士子俗人與沙門交遊往來 乃世俗以外之友 稱方外友 禪林中 在家之士大夫爲新任住持致賀所作之疏 稱方外疏 [象器箋文疏類]
●靑州; 今山東省益都
●偈; 梵語偈陀(又作伽陀)的簡稱也 譯曰頌 定字數結四句者 不問三言四言乃至多言 要必四句 是佛家常用詩體
●自家; 家 助詞 後綴 一用于名詞後 表示屬于某一類人 如孩子家 學生家 姑娘家 二用于代詞後 如儂家 自家 他家 誰家
●蒼蒼; 祖庭事苑三 蒼蒼 蒼蒼靑靑天之色 穹穹窿窿天之形 蓋以天地之大德 以比無私之政治也
●刹刹塵塵; 無數國土之謂 或比喩數量極多 ◆刹; (一)梵語刹多羅 差多羅 刹摩的略稱 此云土田 土 國 卽指國土 或梵漢竝稱爲刹土 一般所熟知之佛刹卽佛土之意 (二)梵語剌瑟胝的略稱 意謂標誌 記號 指旗杆或塔之心柱 一般稱寺院謂寺刹 梵刹 金刹 或名刹等 蓋佛堂前自古有建幡竿(卽刹)之風 故得此名
●神通; 又作神通力 神力 通力 通等 卽依修禪定而得的無礙自在不可思議之作用 共有神足 天眼 天耳 他心 宿命等五神通(五通 五旬 般遮旬) 加漏盡通 共爲六神通(六通)
●富鄭公; 富弼(1004-1083) 宋代雲門宗居士 字彦國 洛陽(今屬河南)人 慶曆三年(1043) 拜樞密副使 與范仲淹一起推行慶歷新政 至和二年(1055) 召拜同中書門下平章事 無所興革 唯務守成 時稱賢相 英宗卽位 召拜樞密使 封鄭國公 後因與王安石政見不合求退 出判亳州 聞修顒禪師主投子山 遂前往參謁 言下省悟 又請修顒至府中 日夜參問 晩年居家日誦楞嚴經 素食禮佛 著作今存富鄭公詩集 [宋史三一三 五燈會元十六]
●節本; 略文之本 節取(略取)其文之大槪 故云節本
●傳燈; 景德傳燈錄 三十卷 宋代道原撰 略稱傳燈錄 爲中國禪宗史書之一 原題名爲佛祖同參集 本書集錄自過去七佛 及歷代禪宗諸祖五家五十二世 共一七○一人之傳燈法系 內容包括行狀 機緣等 其中附有語錄者九五一人 以宋眞宗景德元年(1004) 具表上進 竝奉敕入藏 故以景德名之 又以燈能照暗 法系相承 猶如燈火輾轉相傳 喩師資正法永不斷絶 故稱傳燈 本書硏究禪宗史之根本資料 卷首有楊億所撰之序 卷一卷二 敘述過去七佛與第一祖摩訶迦葉至第二十七祖般若多羅之傳法情形 卷三 敘述達摩 慧可 僧璨 道信 弘忍等東土五祖之傳法 卷四 敘述四祖道信五祖弘忍之旁出法系 牛頭禪 北宗禪 淨衆宗等法系 及牛頭法融 北宗之神秀 普寂等傳記 卷五 敘述慧能及慧能之法系 卷六 收錄馬祖道一及百丈懷海 卷七 收錄鵝湖大義及麻谷寶徹 卷八 列敘南泉普願等五十四人之傳 卷九 列百丈懷海法嗣三十人 卷十 南泉普願法嗣趙州從諗等人之傳記 卷十一 敘述潙仰宗祖潙山靈祐之法嗣 卷十二 臨濟宗祖臨濟義玄之傳 卷十三 敘述荷澤宗之法系 竝收錄華嚴宗之澄觀與宗密之傳 卷十四 收錄石頭希遷及其法系 卷十五 收錄洞山良价 卷十六 德山宣鑒等人之法嗣 卷十七 曹洞宗之系統 卷十八十九 雪峰義存之法系 卷二十 敘述曹山本寂之系統 卷二十一 玄沙師備之法系 卷二十二二十三 雲門宗之法系 卷二十四二十五二十六 法眼宗淸涼文益之法系 卷二十七 敘述不屬任何禪門宗派而較優秀之禪者 卷二十八 收錄特殊優異之禪宗語錄 包括南陽慧忠 荷澤神會等十二人 卷二十九 題爲讚頌偈詩 共收錄白居易等十七人之偈頌 卷三十 題爲銘記箴歌 共收錄二十三種坐禪箴證道歌 本書有二種重刊本 一爲南宋紹興四年(1134) 思鑒重刊 一爲元延祐三年(1316) 希渭重刊 本書今收錄於大正藏第五十一冊 [佛祖統紀四十四 佛祖歷代通載二十六]
●承制; 具有多重語義 古代主要指秉承君王旨意行使職權 [百度百科]
●敎外別傳; 不依文字語言 直悟佛陀所悟之境界 卽稱爲敎外別傳 又稱單傳 此敎外別傳之禪法 亦卽菩提達磨所傳之祖師禪
●以心傳心; 離言說文字而以心傳於心也 禪宗不立文字 不依經論 唯師徒直接面授 以心鏡相照 傳佛法大義 稱爲以心傳心
●利生攝物; 義同利生接物 卽相應其種種機根 而給與利益 接引化導世間衆生
●棒喝; 棒擊與吆喝
●揚眉瞬目; 禪家示機應機時的特殊動作 亦泛指禪機作略 亦作瞬目揚眉
●拈椎豎拂; 同拈椎竪拂 拈起椎棒 竪起拂子 是禪家示機應機的常用動作 泛指禪機作略 椎 亦作槌
●太傅; 天子或太子之師 助導天子而參與國政官職名也 宋史志百十四曰 宋承唐制 以大師大傅大保爲三師 大尉司徒司空爲三公
●侍中; 原爲正規官職外的加官之一 因侍從皇帝左右 地位漸高 等級超過侍郞 魏晉以後 往往成爲事實上的宰相 唐宋該職得以沿置以至元 元以後廢止 [百度百科]
●恩紀; 指恩澤惠及他人的情誼關系
●手舞而足蹈; 手舞足蹈 形容人極度高興時的動作狀態 ▲孟子離婁上 不知足之蹈之 手之舞之
●執事; 此指古代官員或管事者
●如來; 梵語曰多陀阿伽陀 多他阿伽度 譯言如來 佛十號之一 如者眞如也 乘眞如之道 從因來果而成正覺 故名爲如來 是眞身如來也 又乘眞如之道來三界垂化 故謂之如來 是應身如來也 又如諸佛而來 故名如來 此釋通於二身 [長阿含十二淸淨經 成實論一 金剛般若經疏論纂要]
●一大事; 開顯實相妙理之事業 開示佛知見之事業也 一大者 實相之妙理 謂佛知見 卽法華之妙法也 宗門一大事者 非類敎家說 直指自己本分事 云一大事也 又人之生死 謂爲大事 善導之臨終正念訣曰 世之大事 莫越生死 一息不來 乃屬後生 一念若錯 便墮輪迴 ▲法華經一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舍利弗 云何名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諸佛世尊 欲令衆生開佛知見 使得淸淨故 出現於世 欲示衆生佛之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悟佛知見故 出現於世 欲令衆生入佛知見道故 出現於世 ▲高峰和尙禪要 生死事大 無常迅速 生不知來處 謂之生大 死不知去處 謂之死大 只者生死一大事 乃是參禪學道之喉襟 成佛作祖之管轄 三世如來 恒沙諸佛 千變萬化 出現世間 蓋爲此生死一大事之本源 西天四七 唐土二三 以至天下老和尙 出沒卷舒 逆行順化 亦爲此一大事之本源
●因緣; (一)一物之生 親與强力者爲因 疏添弱力者爲緣 例如種子爲因 雨露農夫等爲緣 此因緣和合而生米 (二)禪家把機語或示機應機的行爲動作等 稱爲因緣 意同公案 此指一
●尺素; 書信 也指小幅的絲織物
●同事攝; 四攝法之一 同事攝 謂以法眼見衆生根性 隨其所樂而分形示現 使同其所作霑利益 由是受道也 參四攝法 ▲祖庭事苑六 四攝 一布施攝 饒益衆生故 二愛語攝 方便開導故 三利行攝 以利它行故 四同事攝 作業同它故
●囑累; 囑 爲付囑付託之義 累 爲煩勞荷負之義 謂以事囑託他人而令其負荷 宗門中 每以傳付佛祖大法 令後人護持 稱爲囑累 [維摩經略疏十釋囑累品(智顗)]
●太子少保; 官名 太子太師 太子太傅 太子太保 太子少師 太子少傅 太子少保 簡稱三師三少 原是天子或太子左右最親近的人 師是傳授其知識的 傅是監督其行動的 保是照管其身體的 卽分別是負責君主智育德育體育的人 隋唐以後 太子的師傅 均以別的官銜任命 三師三少 公爲加官贈官的官銜 沒有職事 宋代三師是宰相親王的加官官銜 三師是正一品 三少是從一品 明淸兩代 三師爲從一品 三少是正二品 [百度百科]
●三衢; 浙江衢州府 州有三衢山 故名 [大慧書栲栳珠]
●消息; 涅槃玄義發源機要一 報示消息者 此以音信爲消息 ▲梵網經心地品菩薩戒義疏發隱三 消息者 猶酌量也 ▲祖庭事苑四 消息 消 盡也 息 生也 謂可加卽加 可減卽減 ▲禪林寶訓音義 消息 陰死爲消 陽死爲息
●壽塋; 生時所作的墳塋
●法身; 佛三身之一 謂證得淸淨自性 成就一切功德之身
●大千; 大千世界的省稱 三千大千世界也 經說 世界有小千中千大千之別 合四大洲日月諸天爲一世界 一千世界名小千世界 小千加千倍名中千世界 中千加千倍名大千世界 ▲俱舍論十一 頌曰 四大洲日月 蘇迷盧欲天 梵世各一千 名一小千界 此小千千倍 說名一中千 此千倍大千 皆同一成壞
●裴龐; 裴休與龐蘊 ◆裴休; (797-870) 諱休 字公美 唐代孟州濟源(河南濟源)人 一作河東聞喜(山西聞喜)人 長慶(821- 824)年間擧進士 大中(847-860)年間 以兵部侍郞 進同中書門下平章事 後任宣武軍節度使 遷昭義 河東 鳳翔 荊南等節度 其爲人蘊藉 風度閒雅 操守嚴正 宣宗嘗稱其爲眞儒者 能文章 楷書遒媚有法 隨圭峰宗密學華嚴 宗密著經疏 每請斐休爲之撰序 曾迎黃檗希運於宛陵 共商禪道 筆記其言 成宛陵集 大行於世 武宣之際 佛敎新遭大難 斐休以重臣 出而翼護 故不數年間 佛敎得復舊觀 中年以後 斷肉食 焚香誦經 世稱河東大士 著有勸發菩提心文一卷 集希運之語要而成傳心法要一卷 [佛法金湯編九 佛祖歷代通載十七 傳燈錄十二 祖庭事苑三 舊唐書一七七列傳第一二七] ◆龐蘊; (?-808) 唐代著名在家禪者 世稱龐居士 龐翁 衝州衡陽縣人 字道玄 世以儒爲業 而居士少悟塵勞 志求眞諦 唐貞元(785-805)初 謁石頭希遷忘言會旨 復與丹霞天然爲友 後之江西參問馬祖云 不與萬法爲侶者 是什麽人 祖云 待汝一口吸盡西江水 卽向汝道 居士言下頓領玄要 乃留駐參承經涉二載 元和(806-820)中 北遊襄漢 隨處而居 或鳳嶺鹿門 或廛肆閭巷 初住東巖 後居郭西小舍 居士將入滅 州牧于公問疾次 居士謂曰 但願空諸所有 愼勿實諸所無 好住世間皆如影響 言訖枕公膝而化 有詩偈三百餘篇傳於世 [傳燈錄八 佛祖綱目三十二 居士傳十七]
●擅美; 獨享美名 獨有其美
●駕言; 駕 乘車 言 語助詞
●赤松子; 祖庭事苑三 赤松子 神仙傳云 黃初平 年十五時 在山中牧羊 有道士目而異之 輒將至金華山 四十餘年 其兄初起 尋久之不已 遇一道士 將見與弟語 兄問 羊何在 平曰 近在山之東 兄卽往視之 一無所覩 平遂與偕至山所 平環視而叱之 於是白石皆變爲羊而起 兄方嘆曰 弟得仙道 如此可學否 曰 唯好道卽得 起乃弃妻孥 服松苓五萬 曰遂得仙 平自號赤松子
조청헌공(趙淸獻公; 趙抃)은 평거(平居; 平素. 平日)에 북경 천발원(天鉢元; 重元) 선사(禪師)를 방외우(方外友)로 삼아 심법(心法)를 자결(咨决; 斷決)했다. 청주(靑州)를 다스림(牧)에 이르러(暨) 어느 날(日) 우레를 듣다가 성찰(省察; 省)이 있었다. 곧 설게(說偈)해 가로되 퇴식(退食)하고 공당(公堂)에서 스스로 안궤(案几; 几)에 기대어(凭)/ 부동(不動)하고 불요(不搖)하니 마음이 물과 같았다/ 벽력 일성(一聲)이 정문(頂門; 정수리)을 투과하매/ 종전(從前)의 자가의 것(自家底)을 경기(驚起)했다/ 거두(擧頭)하니 창창(蒼蒼)하여 기쁘고(喜) 다시 기뻐/ 찰찰진진(刹刹塵塵)이 이것 아님이 없다/ 중하(中下)의 사람은 들음을 얻지 못하나니/ 묘용(妙用)과 신통(神通)일 따름이다. 이이(已而; 不久. 後來) 부정공(富鄭公)의 글에 답했다. 약왈(略曰) 근자(近者)에 바로(旋) 절본(節本)의 전등(傳燈) 3권을 첨부(添附; 附)하여 마땅히 이미 통정(通呈; 通報해 드림)했는데 지금의 승제(承制) 송위(宋威)가 나머지 칠축(七軸)을 제거하고 상납(上納)했습니다. 변(抃; 趙抃)이 복사(伏思)하건대 서방 성인(聖人)의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법은 중하근기(中下根機)를 위해 시설한 바가 아닙니다. 상지(上智)는 곧 돈오(頓悟)하여 들어가 한 번 얻으매 길이 얻겠지만 우자(愚者)는 곧 미(迷)하여 돌아오지(復) 못하나니 천차만별입니다. 오직 부처와 조사만 이심전심(以心傳心)하고 그 이생섭물(利生攝物)하면서 부득이(不得已)한 자는 드디어 방할권지(棒喝拳指)ㆍ양미순목(揚眉瞬目)ㆍ염추수불(拈椎豎拂)ㆍ어언문자(語言文字)의 갖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성인과의 거리(距離; 去)가 더욱(逾) 멀어 제방(諸方)의 학도(學徒)가 망본축말(忘本逐末)하고 기원수파(棄源隨波)하여 도도(滔滔; 저본에 滔焰으로 지었음)함이 모두(皆) 이것이니 이는(斯) 이른 바 가히 연민(憐憫)스러운 자입니다. 변(抃)이 아첨(阿諂)하지 않아(不侫) 거년(去年) 추초(秋初) 청주(靑州)에 있으면서 소감(所感)이 있음으로 인해 이미 그러고선(旣已) 본성이 무흠무여(無欠無餘)한 줄 조금(稍) 알았습니다. 고인이 이르되 안락법문(安樂法門)이라 하니 참으로(信) 속이지(誣) 않음입니다. 요사이(比) 태부시중(太傅侍中; 富鄭公을 가리킴)이 선록(禪錄)을 비구(俾求; 사람을 시켜 구함)함을 입으매(蒙) 변(抃)이 본디(素) 은기(恩紀)를 낸지라 이를 듣고 희쾌(喜快)하여 불각에 손이 춤추고 발이 굴렀습니다(手舞而足蹈). 복유(伏惟)컨대 집사(執事)께서 부귀는 이와 같이 극(極; 至極)하고 도덕은 이와 같이 성(盛; 盛大)하고 복수(福壽)와 강녕(康寧)은 이와 같이 갖추고(備) 퇴휴(退休)하여 한일(閑逸; 한가하고 편안함)함은 이와 같이 높으시거니와 그 심히 유의(留意)하지 못하는 바의 것은 여래(如來)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일 따름입니다. 금자(今茲; 今此. 현재)에 또 다시 진성(眞性)에 오입한 바가 있다 하시니 변(抃)이 감(敢)히 문하(門下; 타인에 대한 敬稱)를 경하(慶賀; 賀)합니다. 공(公)이 소증(所證)을 척소(尺素)에 형상(形象; 形)하신다면 정공(鄭公)을 위해 동사섭(同事攝)하겠으니 대개(大蓋; 蓋) 선성(先聖)의 촉루(囑累)를 저버리지(孤) 않아서 그러함입니다(然). 원풍(元豐; 1078-1085) 간(間) 태자소보(太子少保)로서 삼구(三衢)로 돌아갔고 이민(里民)과 더불어 위모(位貌)를 차별하지(間) 않았고 소거(所居)를 이름해 고재(高齋)라 하였다. 게(偈)가 있어 뜻을 보여(見) 가로되 허리에 황금을 차고(佩) 이미 퇴장(退藏)하였나니/ 개중(箇中; 此中)의 소식(消息)이 또한 심상(尋常)하다/ 시인(時人)이 고재로(高齋老; 고재 노인)를 알고자 한다면/ 바로 이 가촌(柯村)의 조사랑(趙四郞; 趙家의 四男)이다. 또 그 수영(壽塋)에 기록하여(誌) 가로되 내가 정사(政事; 政)를 이미 이루매(致)/ 나이가 72니/ 백세(百歲)의 뒤에/ 이 산지(山地)에 돌아오리라/ 그 진법신(眞法身)은/ 부즉불리(不卽不離)하고/ 대천(大千)에 충만하여/ 비지(悲智)를 널리 나타내리라/ 가히 숨김을 얻지 못하고/ 가히 둠을 얻지 못나니/ 수영(壽塋)의 설(說)이/ 이와 같고 이와 같다. 그, 가풍(家風)을 누설(漏泄)함을 보건대 마침내 잉어(剩語)가 없거늘 어찌 배방(裴龐)이 앞에서 천미(擅美)함을 용납하겠는가. 만약에(若夫; 句首의 語氣詞) 몸이 물러나고 이름을 이루고 처음을 잘하고 끝도 잘한다면(善始令終; 令은 善) 호정(戶庭)을 나서지 않고도 마음이 불조(佛祖)에 계합하리라. 기(機)를 알고 화(禍)를 멀리함에 현명하니 수레를 타고(駕言) 적송자(赤松子)를 좇으며 노니는 자는 멀다.
●羅湖野錄; 2권. 송대승 효영(曉瑩)이 지었음. 만속장(卍續藏) 제142책에 수록되었음. 스님은 대혜종고의 법사가 됨. 장년(壯年)에 총림을 역유(歷遊)하였고 만년에 강서 임천의 나호(羅湖)로 돌아가 쉬면서 호은당(湖隱堂)을 결성한 후에 총림의 견문ㆍ제방 존숙의 제창의 말씀ㆍ우붕(友朋)의 담설과 의논의 언어를 집록하였음. 혹은 잔비(殘碑)와 두간(蠹簡)에서 전모(典謨; 經典을 가리킴. 法言)와 유관한 설에서 얻어 본서를 이루었음. 총계가 백편(百篇)에 가까움. 서책 중에서 당시 선문의 공안 및 기봉의 어구와 치도(緇徒)의 고실(故實; 典故)을 상세히 기록했으며 자못 역사의 진실성을 갖추었음. 자고로 총림의 필독서가 되며 선문의 7부서(七部書)의 하나로 나열됨을 입음. 진실로 선도(禪徒)의 수도에 혹 결(缺)해서는 불가한 바의 지남(指南)이 됨.
●沙門; <범> śramaṇa. 또 상문(桑門)ㆍ상문(喪門)ㆍ사문나(沙門那) 등으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식(息)ㆍ식심(息心)ㆍ근행(勤行)ㆍ핍도(乏道)ㆍ빈도(貧道) 등임. 신역으론 실라말나(室羅末拏)ㆍ실마나나(室摩那拏)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공로ㆍ근식(勤息)이니 불도를 닦음의 뜻임. 또 부지런히 닦아서 번뇌를 쉰다는 뜻임. 원래는 외도와 불도(佛徒)를 논하지 않고 모두 출가한 자의 도명(都名)이 됨.
●趙淸獻公; 조변(趙抃; 1008-1084)이니 송대 운문종 거사. 자는 열도(悅道)ㆍ열도(閱道)며 자호(自號)가 지비자(知非子)니 장산법천(蔣山法泉; 운문하 5세)을 이었음. 송 지화(1054-1055) 중 시어(侍御)가 되었고 그리고 청주를 지(知)했음. 공당(公堂)에서 궤안(几案; 의자ㆍ四方枕ㆍ案席을 통틀어 이르는 말)에 기대고 있다가 우레 소리를 듣고 홀연히 대성(大省)했음. 후에 태자소보(太子少保)가 되었고 시호는 청헌(淸獻) [송사316. 보등록5. 명공법희지3].
●天鉢元; 중원(重元; ?-1078 혹 1085)이니 송대 운문종승. 호는 문혜며 청주 천승(산동 광요) 손씨. 나이 17에 출가했고 관세(冠歲; 20세)에 원구(圓具)했음. 처음 강사(講肆)에 노닐며 자못 교승(敎乘)을 통달했고 후에 선적(禪寂)을 흠모했음. 천의의회(天衣義懷)를 참해 득법했음. 의회가 가로되 이는 오가(吾家)의 천리구(千里駒)다. 무릇 명람(名藍)을 네 번 주지했고 북경 천발사(天鉢寺)에서 적(寂)했음. 태사 문언박이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웠음 [오등회원16. 석씨계고략4. 보등록3].
●禪師; 선정을 닦는 스님임. 선사란 명칭은 선종의 명덕(名德)에 한정하여 씀이 아니니 천태종ㆍ정토종ㆍ삼계교(三階敎) 등에서 좌선을 오로지 익히는 자를 또한 선사로 일컬음. 옥편 사(師) 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자의 칭호다. 법언(法言) 사(師)란 것은 사람의 모범이다.
●方外友; 방외는 세상 밖의 뜻. 혹 승도(僧道) 등을 가리킴. 사자(士子; 士人)나 속인이 사문과 교유하고 왕래함이니 곧 세속 이외의 벗을 일컬어 방외우라 함. 선림 중에서 재가의 사대부가 신임 주지를 위해 치하하면서 짓는 바의 소를 일컬어 방외소(方外疏)라 함 [상기전문소류].
●靑州; 지금의 산동성 익도.
●偈; 범어 게타(偈陀; 또 伽陀로 지음)의 간칭이니 번역해 가로되 송(頌)임. 글자 수를 정해 4구를 결성한 것이니 3언 4언 내지 다언을 불문하고 반드시 4구를 요함. 이것은 불가에서 상용하는 시체임.
●自家; 가(家)는 조사니 후철(後綴; 접미사)임. 1. 명사 뒤에 쓰며 모일류인(某一類人)에 속함을 표시함. 예컨대(如) 해자가(孩子家)ㆍ학생가(學生家)ㆍ고랑가(姑娘家). 2. 대사(代詞) 뒤에 씀. 예컨대(如) 농가(儂家)ㆍ자가(自家)ㆍ타가(他家)ㆍ수가(誰家).
●蒼蒼; 조정사원3. 창창(蒼蒼) 창창청청(蒼蒼靑靑)은 하늘의 색이며 궁궁융륭(穹穹窿窿; 穹은 하늘 궁. 높을 궁. 窿은 활꼴 륭)은 하늘의 형상이다. 대개 천지의 대덕(大德)으로써 무사(無私)한 정치에 비유함임.
●刹刹塵塵; 무수한 국토를 말함. 혹 수량의 극다(極多)에 비유함. ◆刹; (1). 범어 찰다라(刹多羅; 梵 ksetra)ㆍ차다라(差多羅)ㆍ찰마(刹摩)의 약칭이니 여기에선 이르되 토전(土田)ㆍ토(土)ㆍ국(國)이며 곧 국토를 가리킴. 혹 범한(梵漢)을 병칭하여 찰토(刹土)라 함. 일반적으로 숙지(熟知)하는 바의 불찰은 곧 불토의 뜻임. (2). 범어 랄슬지(剌瑟胝; 梵 lakṣatā)의 약칭. 뜻으로 이르면 표지(標誌)ㆍ기호니 기간(旗杆; 깃대)이나 혹 탑의 심주(心柱)를 가리킴. 일반적으로 사원을 일컬어 사찰(寺刹)ㆍ범찰(梵刹)ㆍ금찰(金刹) 혹 이름해 찰(刹)이라고 하는 등은 대개 불당(佛堂) 앞에 자고로 번간(幡竿; 곧 刹)을 세우는 풍조가 있는지라 고로 이 이름을 얻었음.
●神通; 또 신통력ㆍ신력ㆍ통력ㆍ통 등으로 지음. 곧 선정을 닦음에 의해 얻는 무애자재하고 불가사의한 작용임. 공히 신족ㆍ천안ㆍ천이ㆍ타심ㆍ숙명 등 5신통(五通; 五旬. 般遮旬)이 있음. 누진통을 더하면 공히 6신통(六通)이 됨.
●富鄭公; 부필(富弼; 1004-1083)이니 송대 운문종 거사. 자는 언국(彦國)이며 낙양(지금 하남에 속함) 사람. 경력(慶曆) 3년(1043) 추밀부사에 제배(除拜)되었고 범중엄(范仲淹)과 경력신정(慶歷新政)을 한 번 일으켜 추행(推行)했음. 지화 2년(1055) 불러 동중서문하평장사에 제배(除拜)했는데 개혁을 일으키는 바가 없었고 오직 수성(守成)에 힘썼으며 당시에 현상(賢相)으로 일컬었음. 영종이 즉위하자 불러 추밀사에 제배(除拜)하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했음. 후에 왕안석과 정견(政見)이 맞지 않음으로 인해 물러남을 구해 나가서 박주(亳州)를 맡았음. 수옹선사(修顒禪師)가 투자산을 주지(主持)한다 함을 듣고 드디어 앞으로 나아가 참알했고 언하에 성오(省悟)했음. 또 수옹을 초청해 부중(府中)에 이르게 하고 일야로 참문했음. 만년에 거가(居家)하면서 날마다 릉엄경을 외웠고 소식(素食)하며 예불했음. 저작은 여금에 부정공시집이 남았음 [송사313. 오등회원16].
●節本; 약문(略文)의 본(本; 책)이니 그 문(文)의 대개(大槪)를 절취(節取; 略取)하는지라 고로 이르되 절본임.
●傳燈;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니 30권. 송대 도원(道原)이 지었음. 약칭이 전등록. 중국선종사서(中國禪宗史書)의 하나가 됨. 원제(原題)는 이름하여 불조동참집임. 본서는 과거 7불로부터 및 역대 선종의 제조(諸祖) 5가(家) 52세(世) 공히 1,701인(人)의 전등법계(傳燈法系)를 집록했음. 내용은 행장ㆍ기연 등을 포괄했으며 그 중에 부록으로 어록이 있는 자는 951인임. 송 진종 경덕(景德) 원년(1004)에 표문(表文)을 갖춰 상진(上進)하였고 아울러 칙명을 받들어 입장(入藏)한지라 고로 경덕으로써 그것을 이름했음. 또 등(燈)이 능히 어둠을 비추듯이 법계(法系)가 상승(相承)함이 마치 등화가 전전(輾轉)히 상전(相傳)함과 같으며 사자(師資; 師弟)의 정법(正法)이 영원히 단절되지 않음에 비유하는지라 고로 명칭이 전등(傳燈)임. 본서는 선종사를 연구하는데 근본 자료임. 권수에 양억(楊億)이 지은 바의 서(序)가 있음. 권1과 권2는 과거 7불과 제1조 마하가섭에서 제27조 반야다라의 전법 정형(情形)을 서술했음. 권3은 달마ㆍ혜가ㆍ승찬ㆍ도신ㆍ홍인 등 동토 5조의 전법을 서술했음. 권4는 4조 도신과 5조 홍인의 방출 법계인 우두선ㆍ북종선ㆍ정중종 등의 법계 및 우두법융ㆍ북종의 신수ㆍ보적 등의 전기를 서술했음. 권5는 혜능 및 혜능의 법계를 서술했음. 권6은 마조도일 및 백장회해를 수록했음. 권7은 아호대의 및 마곡보철을 수록했음. 권8은 남천보원 등 54인의 전기를 열서(列敘)했음. 권9는 백장회해의 법사 30인을 나열했음. 권10은 남천보원의 법사 조주종심 등의 사람의 전기임. 권11은 위앙종조인 위산영우의 법사를 서술했음. 권12는 임제종조인 임제의현의 전기임. 권13은 하택종의 법계를 서술하고 아울러 화엄종의 징관과 종밀의 전기를 수록했음. 권14는 석두희천 및 그의 법계를 수록했음. 권15는 동산양개를 수록했음. 권16은 덕산선감 등의 사람의 법사임. 권17은 조동종의 계통. 권18과 권19는 설봉의존의 법계. 권20은 조산본적의 계통을 서술했음. 권21은 현사사비의 법계. 권22와 23은 운문종의 법계. 권24ㆍ25ㆍ26은 법안종 청량문익의 법계. 권27은 어떠한 선문 종파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비교적으로 우수한 선자(禪者)를 서술했음. 권28은 특수하고 우이(優異)한 선종 어록을 수록했으니 남양혜충과 하택신회 등 12인을 포괄했음. 권29는 제목하여 찬송게시(讚頌偈詩)니 공히 백거이 등 17인의 게송을 수록했음. 권30은 제목하여 명기잠가(銘記箴歌)니 공히 23종의 좌선잠(坐禪箴)ㆍ증도가를 수록했음. 본서는 2종의 중간본이 있으니 하나는 남송 소흥 4년(1134)이 되며 사감(思鑒)이 중간했음. 하나는 원 연우 2년(1316)이 되며 희위(希渭)가 중간했음. 본서는 지금 대정장 제51책에 수록되었음 [불조통기44. 불조역대통재26].
●承制; 다중(多重)의 의의(語義)를 갖추어 있음. 고대에 주요(主要)는 군왕의 지의(旨意)를 병승(秉承)하여 직권을 행사했음 [백도백과].
●敎外別傳; 문자와 어언(語言)에 의하지 않고 바로 불타가 깨친 바의 경계를 깨침을 곧 일컬어 교외별전이라 함. 또 명칭이 단전(單傳)임. 이 교외별전의 선법은 또한 곧 보리달마가 전한 바의 조사선임.
●以心傳心; 언설문자를 여의고 마음을 마음에 전함임. 선종은 문자를 세우지 않고 경론에 의하지 않고 오직 사도(師徒)가 직접 면수(面授; 대면하여 전수)하여 심경(心鏡)을 서로 비추어 불법의 대의를 전함을 일컬어 이심전심이라 함.
●利生攝物; 뜻이 이생접물(利生接物)과 같음. 곧 그 갖가지의 기근(機根)에 상응해 이익을 급여하면서 세간의 중생을 접인하여 화도(化導)함.
●棒喝; 방격(棒擊; 주장자로 때림. 棒의 원음이 방)과 요할(吆喝; 큰 소리로 꾸짖음. 喝의 원음이 할).
●揚眉瞬目; 선가에서 시기응기(示機應機)할 때의 특수한 동작이니 또한 널리 선기(禪機)의 작략(作略)을 가리킴. 또한 순목양미로 지음.
●拈椎豎拂; 염추수불(拈椎竪拂)과 같음. 추방(椎棒; 몽둥이)을 집어 일으키고 불자를 세워 일으킴이니 이는 선가에서 시기응기(示機應機)하는 상용의 동작임. 널리 선기의 작략을 가리킴. 추(椎)는 또 추(槌)로 지음.
●太傅; 천자 혹 태자의 스승이니 천자를 조도(助導)하면서 국정에 참여하는 관직의 이름임. 송사지114(宋史志百十四)에 가로되 송은 당제(唐制)를 계승해 태사(大師)ㆍ태부(大傅)ㆍ태보(大保)를 3사(師)로 삼았고 태위(大尉)ㆍ사도(司徒)ㆍ사공(司空)을 3공(公)으로 삼았다.
●侍中; 원래는 정규 관직 밖의 가관(加官)의 하나가 됨. 황제의 좌우를 시종(侍從)함으로 인해 지위가 점차 높아져 등급이 시랑을 초과했음. 위진(魏晉) 이후 왕왕 사실상의 재상이 되었음. 당ㆍ송에서 그 직을 연치(沿置; 따라 설치)함을 얻었고 원(元)에 이르렀음. 원 이후에 폐지했음 [백도백과].
●恩紀; 은택의 은혜가 타인에게 미치는 정의(情誼)의 관계.
●手舞而足蹈; 수무족도(手舞足蹈)는 사람이 극도로 고흥(高興)일 때의 동작의 상태를 형용함. ▲맹자 이루상. 발이 밟는지 손이 춤추는지를 알지 못하다.
●執事; 여기에선 고대의 관원이나 혹 관사자(管事者)를 가리킴.
●如來; 범어(梵語)로 가로되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 梵 tathāgata)ㆍ다타아가도(多他阿伽度)는 번역해 말하면 여래(如來)니 불십호(佛十號)의 하나임. 여(如)란 것은 진여(眞如)며 진여의 도를 타고서 인(因)을 좇아 과(果)로 와서 정각을 이루는지라 고로 이름해 여래니 이것은 진신여래(眞身如來)임. 또 진여의 도를 타고 3계(界)에 와서 교화를 드리우는지라 고로 여래라고 말하나니 이것은 응신여래(應身如來)임. 또 제불과 같이(如) 오는지라 고로 이름이 여래니 이 해석은 2신(身; 眞身과 應身)에 통함 [장아함12청정경. 성실론1. 금강반야경소론찬요].
●一大事; 실상의 묘리(妙理)의 사업을 개현(開顯)하여 불지견(佛知見)의 사업을 개시(開示)함임. 일대(一大)란 것은 실상(實相)의 묘리며 불지견(佛知見)을 말함이니 곧 법화(法華)의 묘법(妙法)임. 종문(宗門)의 일대사란 것은 교가(敎家)의 설에 비류(類比)하지 못하나니 단지 자기의 본분사를 가리켜 일대사라고 말함. 또 사람의 생사를 대사(大事)가 된다고 일컬음. 선도(善導; 唐代僧)의 임종정념결(臨終正念訣)에 가로되 세상의 대사에 생사를 초월할 게 없나니 한숨이 돌아오지 못하면 곧 후생에 속하고 한 생각이 만약 어긋나면 곧 윤회에 떨어진다. ▲법화경1. 제불세존이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쓰는 고로 세상에 출현하나니 사리불이여, 무엇을 이름해 제불세존이 오직 일대사인연을 쓰는 연고로 세상에 출현함인가, 제불세존이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開) 청정을 얻게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에게 부처의 지견을 보이고자(示)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깨치게(悟) 하고자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의 도에 들게(入) 하고자 함인 고로 세상에 출현한다. ▲고봉화상선요(高峰和尙禪要)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이 신속하다. 출생(出生)하되 온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를 일러 생대(生大)라 하고 죽어서 가는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를 일러 사대(死大)라 한다. 단지 이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는 곧 이 참선학도(參禪學道)의 후금(喉襟; 喉는 목구멍 후. 襟은 가슴 금)이며 성불작조(成佛作祖)의 관할(管轄; 管은 열쇠. 轄은 빗장. 쐐기)이다. 삼세여래와 항사제불이 천변만화(千變萬化)하며 세간에 출현함은 대개 이 생사 일대사(一大事)의 본원(本源) 때문이며 서천사칠(西天四七)과 당토이삼(唐土二三)과 이지(以至; 내지) 천하의 노화상이 출몰권서(出沒卷舒)하고 역행순화(逆行順化)함도 또한 이 일대사의 본원 때문이다.
●因緣; (1). 1물(物)의 생(生)에 강력(强力)을 친여(親與)하는 것을 인(因)이라 하고 약력(弱力)을 소첨(疏添)하는 것을 연(緣)이라 함. 예여(例如) 종자는 인이 되고 우로(雨露)와 농부 등은 연이 되어 이 인연이 화합하여 쌀이 생산됨. (2). 선가에선 기어(機語)나 혹은 시기응기(示機應機)의 행위동작(行爲動作) 등을 잡아서 인연이라 호칭함. 뜻이 공안(公案)과 같음.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尺素; 서신(書信)임. 또 소폭(小幅)의 사직물(絲織物)을 가리킴.
●同事攝; 4섭법의 하나. 동사섭은 이르자면 법안으로써 중생의 근성을 보아 그가 좋아하는 바를 따라 분형(分形)하여 시현하고 그가 짓는 바와 함께하여 이익에 젖고 이로 말미암아 도를 받게 함. ▲조정사원6. 사섭(四攝) 1은 보시섭이니 중생을 요익하는 연고임. 2는 애어섭이니 방편으로 개도하는 연고임. 3은 이행섭이니 이타행을 쓰는 연고임. 4는 동사섭(同事攝)이니 작업을 그와 함께하는 연고임.
●囑累; 촉(囑)은 부촉(付囑), 부탁의 뜻이며 루(累)는 번로하부(煩勞荷負)의 뜻. 이르자면 일을 타인에게 촉탁(囑託)하여 그로 하여금 부하(負荷)하게 함. 종문 중에서 매양 불조의 대법을 전부(傳付)하면서 후인으로 하여금 호지하게 함을 일컬어 촉루라함 [유마경약소10석촉루품(지의)].
●太子少保; 벼슬 이름. 태자태사(太子太師)ㆍ태자태부(太子太傅)ㆍ태자태보(太子太保)ㆍ태자소사(太子少師)ㆍ태자소부(太子少傅)ㆍ태자소보(太子少保)를 간칭하여 3사3소(三師三少)라 함. 원래 이는 천자 혹 태자의 좌우에서 가장 친근한 사람임. 사(師)는 이 그의 지식을 전수(傳授)하는 것이며 부(傅)는 이 그의 행동을 감독(監督)하는 것이며 보(保)는 이 그의 신체를 조관(照管)하는 것임. 곧 분별하면 이는 군주의 지육(智育)ㆍ덕육(德育)ㆍ체육(體育)을 부책(負責)하는 사람임. 수ㆍ당 이후로는 태자의 사부(師傅)는 균일하게 다른 관함(官銜)으로써 임명했음. 3사3소는 공적(公的)으로 가관증관(加官贈官)의 관함이 되고 직사(職事)가 있지 않았음. 송대(宋代) 3사(師)는 이 재상과 친왕(親王)의 가관관함(加官官銜)이었고 3사(師)는 이 정1품이며 3소(少)는 이 종1품이었음. 명ㆍ청 양대(兩代)는 3사는 종1품이 되었고 3소는 이 정2품이었음 [백도백과].
●三衢; 절강 구주부(衢州府) 주(州)에 삼구산(三衢山)이 있는지라 고로 이름했음 [대혜서고로주].
●消息; 열반현의발원기요1. 소식(消息)을 보시(報示)한다는 것은 이것은 음신(音信)으로 소식을 삼음이다. ▲범망경심지품보살계의소발은3. 소식(消息)이란 것은 작량(酌量)과 같다. ▲조정사원4. 소식(消息) 소(消)는 진(盡)이며 식(息)은 생(生)이니 이르자면 가(加)가 옳으면 곧 가(加)하고 감(減)이 옳으면 곧 감(減)함임. ▲선림보훈음의. 소식(消息) 음(陰)이 죽음을 소(消)라 하고 양(陽)이 죽음을 식(息)이라 한다.
●壽塋; 생시에 만든 바의 분영(墳塋).
●法身; 불타의 3신의 하나. 이르자면 청정한 자성을 증득하여 일체 공덕을 성취한 몸.
●大千; 대천세계의 생칭(省稱). 삼천대천세계임. 경에 설하기를 세계가 소천ㆍ중천ㆍ대천의 구별이 있다 했음. 사대주ㆍ 일월ㆍ제천을 합해서 한 세계가 되며 1천 세계를 이름해 소천세계며 소천에 천배를 가하면 이름이 중천세계며 중천에 천배를 가하면 이름이 대천세계임. ▲구사론11. 송에 가로되 사대주와 일월/ 소미로(蘇迷盧; 수미산)와 욕천(欲天; 六欲天)/ 범세(梵世; 色界 18天) 각 1천이/ 이름이 1소천계며/ 이 소천의 천배를/ 설해 1중천이라 이름하며/ 이것의 천배가 대천이니/ 다 동일하게 성괴한다.
●裴龐; 배휴(裴休)와 방온(龐蘊). ◆裴休; (797-870) 휘가 휴(休)며 자가 공미(公美). 당대(唐代) 맹주 제원(濟源; 하남 제원) 사람이며 일작(一作; 다른 1종의 해석) 하동 문희(聞喜; 산서 문희) 사람이라 함. 장경(821-824)년 간에 진사(進士)에 선발(擧)되었고 대중(847-860)년 간에 병부시랑(兵部侍郞)으로서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로 진급(進級)했음. 후에 선무군절도사(宣武軍節度使)에 임용되었고 소의(昭義)ㆍ하동(河東)ㆍ봉상(鳳翔)ㆍ형남(荊南) 등의 절도사로 옮겨 다녔음. 그 사람됨이 온자(蘊藉)하고 풍도(風度)가 한아(閒雅)하며 조수(操守)가 엄정했음. 선종(宣宗)이 일찍이 그를 칭찬하기를 참다운 유자(儒者)라 했음. 문장에 능하고 해서(楷書)는 주미(遒媚. 굳세고 아름다움)하여 법도가 있었음. 규봉종밀(圭峰宗密)을 따라 화엄을 배웠으며 종밀이 경소(經疏)를 지으면 매번 배휴를 초청하여 서문(序文)을 짓게 했음. 일찍이 황벽희운(黃檗希運)을 완릉(宛陵)으로 맞이하여 함께 선도(禪道)를 상량(商量)하고는 그 말씀을 필기(筆記)하여 완릉집(宛陵集)을 완성했는데 세상에 크게 행함. 무선(武宣; 武宗과 宣宗)의 즈음에 불교가 새롭게 큰 난을 만나자 배휴가 중신(重臣)으로서 나가서 익호(翼護)한지라 고로 몇 년 안되는 사이에 불교가 구관(舊觀)을 회복함을 얻었음. 중년(中年) 이후엔 육식을 끊고 분향(焚香)하고 송경(誦經)했으며 세칭이 하동대사(河東大士)임. 저서에 권발보리심문(勸發菩提心文) 1권과 희운(希運)의 어요(語要)를 모아 이룬 전심법요(傳心法要) 1권이 있음 [불법금탕편9. 불조역대통재19. 전등록12. 조정사원3. 구당서177열전제127]. ◆龐蘊; (?-808) 당대의 저명한 재가선자(在家禪者)니 세칭이 방거사ㆍ방옹(龐翁). 형주 형양현 사람이며 자가 도현(道玄). 가세(家世)가 유교로 업을 삼았으며 거사가 어릴 적에 진로(塵勞)를 깨달아 의지(意志)가 진제(眞諦)를 구했음. 당 정원(785-805) 초 석두희천(石頭希遷; 靑原行思의 法嗣)을 알현하여 언설을 잊고 지취를 알았으며 다시 단하천연(丹霞天然; 石頭希遷의 法嗣)과 벗이 되었음. 후에 강서로 가서 마조(馬祖)를 참알하고 물어 이르되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이 어떤 사람입니까. 마조가 이르되 네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마셔 없앰을 기다렸다가 곧 너를 향해 말하리라. 거사가 언하에 현요(玄要)를 문득 알았음. 이에 머물면서 참문(參問)하고 승수(承受)하며 두 해를 지냈음. 원화(806-820) 중에 북쪽 양한(襄漢)에 노닐면서 곳을 따라 거처했으니 혹은 봉령(鳳嶺)ㆍ녹문(鹿門)이며 혹은 전사(廛肆; 시장의 가게)ㆍ여항(閭巷)이었음. 처음에 동암(東巖)에 거주하고 뒤에 곽서(郭西)의 작은 집이었음. 거사가 장차 입멸하려 하자 주목(州牧)인 우공(于公; 于頔)이 문질(問疾. 문병)하던 차에 거사가 일러 가로되 단지 모든 있는 것을 공하기를 원하고 삼가 모든 없는 것을 실답다 하지 말지니 세간에 머물기 좋아함이 다 그림자와 곡향(谷響)과 같다. 말을 마치자 우공의 무릎을 베개로 하여 화거(化去)했음. 시게(詩偈) 300여 편이 있어 세상에 전함 [전등록8. 불조강목32. 거사전17].
●擅美; 미명(美名)을 홀로 향유(享有)함. 홀로 그 아름다움이 있음.
●駕言; 가(駕)는 수레를 타다. 언(言)은 어조사.
●赤松子; 조정사원3. 적송자(赤松子). 신선전(神仙傳; 晉나라 葛洪 지음)에 이르되 황초평(黃初平)은 나이 15 때에 산중에 있으면서 양을 길렀다. 어떤 도사가 보고는 그를 기이하게 여겨 문득 데리고 금화산(金華山)에 이르렀다. 40여 년 동안 그 형인 초기(初起)가 그를 찾고 기다리며(久는 오래 기다릴 구) 말지 않았다. 한 도사를 만났는데 또 보니 동생과 얘기했다. 형이 묻되 양이 어디에 있느냐. 초평이 가로되 가까이 산의 동쪽에 있다. 형이 곧 가서 그것을 보니 하나도 보이는 게 없었다. 초평이 드디어 함께 산소(山所)에 이르렀으며 초평이 빙 둘러보고 그것을 꾸짖자 이에 백석(白石)이 다 변해 양이 되어 일어났다. 형이 비로소 감탄하며 가로되 동생이 선도(仙道)를 얻었구나. 이와 같음을 가히 배우겠는가. 가로되 오직 도를 좋아해야 곧 얻는다. 초기가 이에 처자식을 버리고 소나무의 복령(茯苓) 5만을 복용하고 가로되 비로소 선도(仙道)를 얻었다. 초평이 스스로 적송자(赤松子)라 호했다.
'나호야록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호야록상 공실도인(空室道人; 智通) (0) | 2025.10.15 |
---|---|
나호야록상 서여(西余) 정단선사(淨端禪師) (0) | 2025.10.14 |
나호야록상 태사(太史) 황공노직(黃公魯直; 黃庭堅) (0) | 2025.10.13 |
나호야록상 공실도인(空室道人; 智通) (0) | 2025.10.12 |
나호야록상 서여(西余) 정단선사(淨端禪師) (0) | 2025.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