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 朗月當空時如何 師云 猶是堦下漢 云 請師接上堦 師云 月落了 來相見
묻되 낭월(朗月)이 허공에 당했을 때 어떻습니까. 사운 오히려 이는 계하한(堦下漢)이다. 이르되 스님이 상계(上堦)로 접인(接引)하시기를 청합니다. 사운 달이 떨어지고 나서 온다면 상견하겠다.
師有時示衆云 老僧初到藥山時 得一句子 直至如今齁齁地飽
●齁齁地飽; 飽的樣子 多喩徹底省悟 地 助詞
스님이 어떤 때 시중해 이르되 노승이 처음 약산(藥山)에 이르렀을 때 일구자(一句子; 子는 조사)를 얻어 바로 여금에 이르기까지 후후지의 배부름이다(齁齁地飽).
●齁齁地飽; 배가 부른 양자(樣子)니 다분히 철저히 성오(省悟)함에 비유함. 지는 조사.
師因在室坐禪次 主事報大王來禮拜 大王禮拜了 左右問 大王來 爲什麽不起 師云 你不會 老僧者裏 下等人來 出三門接 中等人來 下禪床接 上等人來 禪床上接 不可喚大王作中等下等人也 恐屈大王 大王歡喜 再三請入內供養
●主事; 指主行事務者 禪院職事之別稱 禪苑淸規初以監寺 維那 典座 直歲等四職爲主事 以後之淸規加都寺 副寺 稱爲六知事 [禪苑淸規十 釋氏要覽下]
스님이 인하여 실내에 있으면서 좌선하던 차에 주사(主事)가 알리되 대왕이 오셔서 예배하시겠답니다. 대왕이 예배하여 마치자 좌우(左右)가 묻되 대왕(大王; 저본에 土王으로 지었음)이 오셨거늘 무엇 때문에 일어나지 않습니까. 사운 네가 알지 못하는구나, 노승의 자리(者裏)에선 하등인(下等人)이 오면 삼문(三門)을 나가서 접인(接引; 接)하고 중등인(中等人)이 오면 선상에서 내려와 접인하고 상등인(上等人)이 오면 선상 위에서 접인한다. 대왕을 중등ㆍ하등인으로 지어 부름은 옳지 못하나니 대왕을 원굴(冤屈; 屈)케 할까 염려스럽다. 대왕이 환희했고 재삼(再三) 입내(入內)하기를 청해 공양했다.
●主事; 사무를 주행(主行; 주관하여 행함)하는 자를 가리킴. 선원 직사(職事)의 별칭이니 선원청규에 처음은 감사ㆍ유나ㆍ전좌ㆍ직세 등 4직(職)을 주사로 삼았고 이후의 청규엔 도사(都寺)와 부사(副寺)를 더해 일컬어 6지사라 했음 [선원청규10. 석씨요람하].
師因問周員外 你還夢見臨濟也無 員外竪起拳 師云 那邊見 外云 者邊見 師云 什麽處見臨濟 員外無對
●員外; 本謂正員以外的官員 後世因此類官職可以捐買 故富豪皆稱員外 明朝以後員外郞成爲一種閑職 [百度百科]
●臨濟; 義玄(?-867) 臨濟宗之祖 唐代曹州(河南)南華人 俗姓邢 幼負出塵之志 及落髮受具足戒後 便慕禪宗 初到江西參黃蘗希運 又禮謁高安大愚 潙山靈祐等 後還黃蘗 受印可 宣宗大中八年(854) 至河北鎭州 住於臨濟院 適丁兵革 師卽棄去 太尉默君和 於城中捨宅爲寺 亦以臨濟爲額 迎師居焉 後拂衣南邁至河府 府主王常侍 延以師禮 住未幾卽來大名府興化寺 居于東堂 師無疾忽一日攝衣據坐 與三聖問答畢 寂然而逝 時唐咸通八年丁亥 孟陬月十日也 門人以師全身 建塔于大名府西北隅 勅諡慧照禪師 塔號澄靈 師設三玄三要四料簡等機法 接引徒衆 更以機鋒峭峻著名於世 別成一家 遂成臨濟宗 師接化學人 每以叱喝顯大機用 世有德山棒臨濟喝之稱 [宋高僧傳十二 傳燈錄十二 臨濟語錄]
스님이 인하여 주원외(周員外)에게 묻되 네가 도리어 꿈에라도 임제(臨濟; 義玄)를 보았느냐 또는 아니냐. 원외가 주먹을 세워 일으켰다. 사운 나변(那邊; 어느 쪽)에서 보았느냐 원외가 이르되 자변(者邊; 이쪽)에서 보았습니다. 사운 어느 곳(什麽處)에서 임제를 보았느냐. 원외가 대답이 없었다.
●員外; 본래 정원 이외의 관원을 말함. 후세에 이런 종류의 관직은 가이(可以) 연매(捐買; 사다)했기 때문에 고로 부호(富豪)를 모두 일컬어 원외라 했음. 명조(明朝) 이후 원외랑은 일종의 한직(閑職)이 되었음 [백도백과].
●臨濟; 의현(義玄; ?-867)이니 임제종의 개조(開祖). 당대 조주(曹州; 하남) 남화(南華)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형(邢). 어려서 출진(出塵)의 뜻을 졌으며(負) 그리고 낙발(落髮)하고 구족계를 받은 후에 곧 선종을 흠모했음. 처음엔 강서(江西)에 이르러 황벽희운(黃蘗希運; 百丈懷海의 法嗣)을 참알(參謁)하고 또 고안대우(高安大愚; 歸宗智常의 法嗣)ㆍ위산영우(潙山靈祐; 百丈懷海의 法嗣) 등을 예알(禮謁)했다가 뒤에 황벽으로 돌아가 인가(印可)를 받았음. 선종(宣宗) 대중 8년(854) 하북의 진주(鎭州)에 이르러 임제원에 거주했는데 마침 병혁(兵革; 전쟁)을 당해 스님이 곧 버리고 떠났음. 태위(太尉) 묵군화(默君和)가 성 안에 집을 희사(喜捨)해 절을 만들고 또한 임제로써 편액(扁額)을 삼았으며 스님을 영접해 거처케 했음. 후에 옷을 떨치고 남쪽으로 떠나 하부(河府)에 이르자 부주(府主)인 왕상시(王常侍)가 스승의 예로써 연청(延請)했음.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대명부(大名府)의 흥화사(興化寺)에 와서 동당(東堂)에 거처했음. 스님이 질병이 없었는데 홀연히 어느 날 옷을 거두고 자리에 기대어 삼성(三聖)과 문답을 마치고는 고요히 떠났으니 때는 당 함통 8년 정해(丁亥) 맹추월(孟陬月; 정월) 10일임. 문인들이 스님의 전신(全身)으로써 대명부(大名府) 서북 모퉁이에 탑을 세웠음. 칙시(勅諡)가 혜조선사(慧照禪師)며 탑호가 징령(澄靈)임. 스님이 3현3요(三玄三要)ㆍ사료간(四料簡) 등의 기법(機法)을 시설하여 도중(徒衆)을 접인(接引)하였음. 다시 기봉(機鋒)이 초준(峭峻)하여 세상에 저명하며 따로 일가(一家)를 이루어 드디어 임제종을 이룸. 스님이 학인들을 접화(接化; 接引해 교화)하면서 매양 질할(叱喝)로써 큰 기용(機用)을 나타내어 세상에 덕산방(德山棒)ㆍ임제할(臨濟喝)의 칭호가 있음 [송고승전12. 전등록12. 임제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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