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조주록(趙州錄) 73

태화당 2026. 8. 2. 08:47

因僧辭去 師云 闍黎出外 忽有人問 還見趙州否 你作麽生祇對 云 只可道見 師云 老僧是一頭驢 你作麽生見 僧無語

 

중이 고별(告別; )하고 떠남으로 인해 사운 사리(闍黎)가 밖으로 나갔다가 홀연히 어떤 사람이 묻되 도리어 조주(趙州)를 보았는가 한다면 네가 어떻게 지대(祇對)하겠는가. 이르되 다만 가히 보았다고 말하겠습니다. 사운 노승은 이 한 마리()의 나귀인데 네가 어떻게 보았느냐. 중이 말이 없었다.

 

師問新到 從什麽處來 云 南方來 師云 還知有趙州關麽 云 須知有不涉關者 師叱云 者販私鹽漢 又云 兄弟 趙州關也難過 云 如何是趙州關 師云 石橋是

新到; 新到僧也 於叢林中 指新到某寺掛搭之僧 亦泛指一般新參之僧

趙州關; 從容錄第十則 趙州以長沙爲友 以南泉爲師 故勘辨中 非得失勝負之可品格 天下謂之趙州關 祖庭事苑三 趙州關 諗和上示衆云 趙州關也難過 僧云 如何是趙州關 師云 石橋是 又問僧云 甚麽處來 南來 師云 還知有趙州關否 僧云 須知有不涉關者 師云 者販私鹽漢 衆中或以庭前栢喫茶去 爲趙州關 誤矣

 

스님이 신도(新到)에게 묻되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이르되 남방에서 왔습니다. 사운 도리어 조주관(趙州關)이 있음을 아느냐. 이르되 관()에 건너지 않는 자가 있는 줄 수지(須知)하셔야 합니다. 스님이 꾸짖으며() 이르되 이 사염(私鹽)을 파는() 놈아. 우운(又云) 형제여, 조주관은 통과(通過; )하기 어렵다. 이르되 무엇이 이 조주관입니까. 사운 석교(石橋)가 이것이다.

新到; 신도승(新到僧). 총림 중에서 어떤 사원에 새로 도착하여 괘탑하는 승인을 가리킴. 또한 널리 일반의 신참(新參)의 승인을 가리킴.

趙州關; 종용록 제10. 조주는 장사(長沙)를 벗으로 삼고 남천을 스승으로 삼은지라 고로 감변(勘辨) 중에 득실승부(得失勝負)의 가당(可當)한 품격이 아닌지라 천하에서 이를 일러 조주관(趙州關)이라 했다. 조정사원3. 조주관(趙州關) (; 從諗)화상이 시중해 이르되 조주관(趙州關)은 또한 통과하기 어렵다. 중이 이르되 무엇이 이 조주관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석교(石橋)가 이것이다. 또 중에게 물어 이르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남쪽에서 옵니다. 스님이 이르되 도리어 조주관이 있음을 아느냐. 중이 이르되 모름지기 관()에 건너지 않는 자가 있는 줄 아셔야 합니다. 스님이 이르되 이 사염(私鹽)을 판매하는 놈아. 중중(衆中)에 혹은 정전백(庭前栢)이나 끽다거(喫茶去)로써 조주관을 삼음은 오류임.

 

有僧從雪峯來 師云 上座莫住此間 老僧者裏只是避難所在 佛法盡在南方 云 佛法豈有南北 師云 直饒你從雲居雪峯來 也只是箇擔板漢 云 未審那邊事如何 師云 你因甚夜來尿床 云 達後如何 師云 又是屙屎

擔板漢; 擔板者只能看得板的一面 而不能看得另一面 故禪宗用以比喩見解偏執而不能融通全體之人

 

어떤 중이 설봉(雪峯)으로 좇아왔다. 사운 상좌(上座)는 차간(此間)에 머물지 말지니 노승의 자리(者裏)는 다만 이 피난(避難)의 소재(所在; 所在地). 불법은 모두 남방에 있다. 이르되 불법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사운 직요(直饒; 假令) 네가 운거(雲居; 저본에 雪峯으로 지었음)나 설봉(雪峯)으로 좇아왔더라도 또한 다만 시개(是箇)의 담판한(擔板漢)이다. 이르되 미심하오니 나변사(那邊事)는 어떻습니까. 사운 네가 무엇으로() 인해 야래(夜來; 는 조사)에 상에 오줌 누느냐(尿床). 이르되 도달(到達; )한 후엔 어떻습니까. 사운 또 이는 똥을 누는 것이다(屙屎).

擔板漢; 판자를 짊어진 자는 다만 능히 판자의 한 면만 간득(看得; 득은 조사)하고 능히 다른 한 면은 간득하지 못함. 고로 선종에서 견해가 편집(偏執)하여 능히 전체를 융통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유로 사용함.

 

示衆云 我此間有出窟師子 亦有在窟師子 只是難得師子兒 時有僧彈指對之 師云 是什麽 云 師子兒 師云 我喚作師子兒 早是罪過 你更行趯踏

師子兒; 師子 兒 後綴 佛經中常將釋迦牟尼佛比作師()子 因而禪家將傑出靈利的僧人比作師子兒 謂其不愧爲佛的後代

 

시중(示衆)해 이르되 나의 차간(此間)에 출굴(出窟)한 사자(師子)가 있고 또한 재굴(在窟)한 사자가 있지만 다만 이, 사자아(師子兒)를 얻기 어렵구나. 때에 어떤 중이 탄지(彈指)하여 응대했다. 사운 이 무엇인가. 이르되 사자아입니다. 사운 내가 사자아라고 불러 지음도 벌써 이 죄과(罪過)이거늘 네가 다시 적답(趯踏; 뛰고 밟다)을 행하느냐.

師子兒; 사자니 아는 후철. 불경 중에 늘 석가모니불을 가지고 사(; )자에 비유함. 이로 인해 선가에서 걸출하고 영리(靈利)한 승인을 가지고 사자아로 비유해 지음. 이르자면 그가 불타의 후대가 됨에 부끄럽지 않음임.

 

師問新到 離什麽處 云 離雪峯 師云 雪峯有什麽言句示人 云 和尙尋常道 盡十方世界是沙門一隻眼 你等諸人向什麽處屙 師云 闍黎若迴 寄箇鍬子去

一隻眼; 一指於佛法上 具有眞實正見之慧眼 非凡夫之肉眼 義同頂門眼 正眼 活眼 明眼 二與兩隻眼相對 只見一邊的深刻的眼光 此指一

 

스님이 신도(新到)에게 묻되 어느 곳을 떠났느냐. 이르되 설봉(雪峯; 義存)을 떠났습니다. 사운 설봉(雪峯)이 무슨 언구(言句)가 있어 사람에게 보이더냐. 이르되 화상이 심상(尋常; 平時. 平常)에 말하되 온 시방세계가 이 사문(沙門)의 일척안(一隻眼)이니 너희 등 제인(諸人)이 어느 곳을 향해 똥을 누느냐. 사운 사리(闍黎)가 만약 돌아가거든 저() 초자(鍬子; . 가래. 는 조사)를 기탁(寄託; )하겠다.

一隻眼; 1. 불법상(佛法上)에 진실정견(眞實正見)의 혜안을 갖추어 있음을 가리킴. 범부의 육안이 아니며 뜻이 정문안(頂門眼)ㆍ정안(正眼)ㆍ활안(活眼)ㆍ명안(明眼)과 같음. 2. 양척안(兩隻眼)과 상대됨. 단지 일변(一邊)만 보는 심각(深刻)한 안광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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