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조주록(趙州錄) 76

태화당 2026. 8. 3. 07:57

師一日上堂 僧纔出禮拜 師乃合掌珍重

 

스님이 어느 날 상당(上堂)했다. 중이 겨우 나와 예배하자 스님이 곧() 합장하고 진중(珍重)이라 했다.

 

又一日 僧禮拜 師云 好好問 云 如何是禪 師云 今日天陰不答話

 

또 어느 날 중이 예배하자 사운 호호(好好; ) 물어라. 이르되 무엇이 이 선()입니까. 사운 금일 하늘이 흐려(天陰) 답화(答話)하지 않겠다.

 

問新到 從何方來 云 無方面來 師乃轉背 僧將坐具隨師轉 師云 大好無方面

坐具; 比丘六物之一 坐臥時敷於地上或臥具上之長方形布 禮拜時先敷坐具 就其上作之 是甚爲不法 南山義淨皆痛斥之 釋門歸敬儀下曰 坐具之目 本是坐時之具 所以禮拜之中 無文敷者也 釋氏要覽一 梵云尼師壇 此云隨坐衣 根本毘奈耶云 尼師但那 唐言坐具 淨法師註云 文言坐具 此乃敷具 坐臥皆得 佛制者 本爲儭替臥具 恐有所損 不擬餘用也 五分律云 爲護身護衣護僧床褥故著坐具

 

신도(新到)에게 묻되 어느 방면(方面; )으로 좇아왔느냐. 이르되 방면이 없는 데에서 왔습니다. 스님이 이에 등을 돌렸다. 중이 좌구(坐具)를 가지고 스님 따라 돌았다. 사운 대호(大好) 방면이 없구나.

坐具; 비구 6물의 하나. 좌와(坐臥) 시 지상이나 혹 와구(臥具) 위에 펴는 장방형의 포(). 예배할 때 먼저 좌구를 펴고 그 위에 나아가 이를 지음은 이는 심히 불법(不法)이 됨. 남산과 의정이 모두 통렬히 그것을 배척했음. 석문귀경의하(釋門歸敬儀下)에 가로되 좌구의 명목은 본시 앉을 때의 도구다. 소이로 예배하는 중에 편다()는 글이 없다. 석씨요람1. 범어로 이르되 니사단(尼師壇)은 여기에선 이르되 수좌의(隨坐衣). 근본비나야(根本毘奈耶)에 이르되 니사단나(尼師但那)는 당나라 말로 좌구다. 의정법사의 주()에 이르되 문()에 좌구라고 말한 것은 이는 곧 부구(敷具; 는 펼 부)니 앉거나 눕는데 다 합당하다. 불타가 제정한 것은 본래 깔개(; 과 같음. )가 되었는데 와구(臥具)로 대체했음은 손상하는 바가 있을까 염려했음이니 여타의 용도로 향하지() 못하게 했음이다. 오분율에 이르되 몸을 보호하고 옷을 보호하고 승상(僧床)의 요를 보호하기 위한 연고로 좌구를 두었다.

 

問新到 從什麽處來 云 南方來 師云 三千里外逢莫戲 云 不曾 師云 摘楊花 摘楊花

摘楊花; 離別的歌曲名 禪門拈頌集第四三則 拈頌說話云 摘楊花云云者 陶潛詩云 稚子摘楊花 東西傍楊柳 堪笑老翁翁 不得隨他去

 

신도(新到)에게 묻되 어느 곳으로 좇아왔느냐. 이르되 남방에서 왔습니다. 사운 삼천 리 밖에서 만나 희롱하지() 말아라. 이르되 부증(不曾; 未曾과 같음. 일찍이 하지 않았다)입니다. 사운 적양화(摘楊花; 버들꽃을 따세), 적양화.

摘楊花; 이별의 가곡 이름. 선문염송집 제430. 염송설화에 이르되 적양화(摘楊花) 운운한 것은 도잠의 시에 이르되 어린이(稚子)가 버들꽃을 따는데/ 동서 곁에 양류(楊柳)/ 가히 우습구나 노옹은 늙어/ 그를 따라감을 얻지 못하네.

 

豐干到五臺 山下見一老人 干云 莫是文殊也無 老人云 不可有二文殊也 干便禮拜 老人不見 有僧擧似師 師云 豐干只具一隻眼 師乃令文遠作老人 我作豐干 師云 莫是文殊也無 遠云 豈有二文殊也 師云 文殊 文殊

豐干; 唐代僧 又作封干 善作詩 與寒山拾得竝稱國淸寺三隱 剪髮齊眉 穿布衣 身長七尺餘 初居天台山國淸寺 晝任舂米之職 夜則吟咏 言語無準 多似預記 人或借問 則只答以隨時二字 更無他語 嘗誦唱道歌 乘虎直入松門 衆僧驚懼 先天(712-713)年間 行化於京兆(長安) 曾爲太守閭丘胤治病 按傳燈錄二十七 豐干滅後 閭丘胤因師謂寒拾二人文殊普賢故 入山訪之 見寒拾二人圍鑪語笑 閭丘不覺致拜 二人連聲咄叱 寺僧驚愕曰 大官何拜風狂漢耶 寒山復執閭丘手 笑而言曰 豐干饒舌 由是 叢林遂有豐干饒舌之語 [聯燈會要二十九 宋高僧傳十九]

 

풍간(豐干)이 오대(五臺; 오대산)에 이르러 산 아래에서 한 노인을 보았다. 간운(干云) 이 문수(文殊)가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노인이 이르되 두 문수가 있음은 옳지 못합니다. 풍간이 바로 예배했다.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중이 스님에게 들어 보였다. 사운 풍간은 다만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다. 스님이 이에 문원(文遠)으로 하여금 노인을 짓게 하고 나는 풍간을 짓겠다 하고는 사운 이 문수가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원운(遠云) 어찌 두 문수가 있으리오. 사운 문수, 문수.

豐干; 당대승. 또 봉간(封干)으로 지음. ()를 잘 지었고 한산(寒山)ㆍ습득(拾得)과 함께 국청사(國淸寺)의 삼은(三隱)으로 나란히 일컬음. 머리카락을 잘라 눈썹과 가지런하고 포의(布衣)를 걸쳤고 신장(身長)7척 가량이었음. 처음 천태산(天台山) 국청사(國淸寺)에 거주하면서 낮에는 쌀을 빻는 직무를 맡고 밤에는 곧 음영(吟咏)했는데 언어가 표준(標準)이 없고 다분히 예기(預記; 預言)와 흡사했음. 사람이 혹 차문(借問; 물어봄)하면 곧 다만 수시(隨時) 2자로 답하고 다시 다른 말이 없었음. 일찍이 창도가(唱道歌)를 외우며 범을 타고 바로 송문(松門)에 들어오매 중승(衆僧)이 경구(驚懼)하기도 했음. 선천(先天; 712-713)년 간 경조(京兆; 長安)에서 행화(行化)하며 일찍이 태수(太守) 여구윤(閭丘胤)을 위해 병을 치료했음. 전등록27을 안험(按驗)하니 풍간(豐干)이 입멸한 후 여구윤이, 스님이 이르기를 한산과 습득 두 사람은 문수와 보현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입산하여 방문했는데 한산과 습득 두 사람이 화로(火爐)에 둘러 앉아 어소(語笑)함을 보고 여구윤이 불각(不覺)에 절을 드리자 두 사람이 연성(連聲)으로 꾸짖는지라 사승(寺僧)이 경악(驚愕)하고 가로되 대관(大官)이 왜 풍광한(風狂漢; 미친 놈)에게 절을 하십니까. 한산이 다시 여구윤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해 가로되 풍간이 요설(饒舌)이로다. 이로부터 총림에 드디어 풍간요설(豐干饒舌)이란 말이 있음 [연등회요29. 송고승전19].

 

師問二新到 上座曾到此間否 云 不曾到 師云 喫茶去 又問 那一人曾到此間否 云 曾到 師云 喫茶去 院主問 和尙 不曾到 敎伊喫茶去卽且置 曾到 爲什麽敎伊喫茶去 師云 院主 院主應諾 師云 喫茶去

 

스님이 두 신도(新到)에게 묻되 상좌(上座)는 일찍이 차간(此間)에 이르렀는가. 이르되 일찍이 이르지 않았습니다. 사운 차 마시고 가게(喫茶去). 우문(又問) 저 한 사람(那一人)은 일찍이 차간(此間)에 이르렀는가. 이르되 일찍이 이르렀습니다. 사운 차 마시고 가게. 원주(院主)가 묻되 화상, 일찍이 이르지 않았다 하매 그로 하여금 차 마시고 가라 함은 곧 차치(且置)하더라도 일찍이 이르렀다 하매 무엇 때문에(爲什麽) 그로 하여금 차 마시고 가라 하셨습니까. 사운 원주, 원주가 응낙했다. 사운 차 마시고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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