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與侍郞遊園 見兔走過 侍郞問 和尙是大善知識 兔子見爲什麽走 師云 老僧好殺
스님이 시랑(侍郞)과 더불어 유원(遊園)했다. 토끼가 주과(走過)함을 보자 시랑이 묻되 화상은 이 대선지식이거늘 토자(兔子; 토끼. 子는 조사)가 보고서 무엇 때문에 달아납니까(走). 사운 노승은 살생을 좋아합니다.
師因見僧掃地次 遂問 與麽掃還得淨潔也無 云 轉掃轉多 師云 豈無撥塵者也 云 誰是撥塵者 師云 會麽 云 不會 師云 問取雲居去 其僧乃去問雲居 如何是撥塵者 雲居云 者瞎漢
스님이, 중이 소지(掃地)함을 보던 차로 인해 드디어 묻되 이렇게(與麽) 쓸면 도리어 정결(淨潔)함을 얻느냐 또는 아니냐. 이르되 더욱(轉) 쓸면 더욱 많습니다. 사운 어찌 발진(撥塵; 티끌을 헤치다)하는 자가 없으리오. 이르되 누가 이 발진하는 자입니까. 사운 아느냐. 이르되 알지 못합니다. 사운 운거(雲居; 道膺)에게 문취(問取)하러 가거라. 그 중이 이에 가서 운거에게 묻되 무엇이 이 발진(撥塵)하는 자입니까. 운거가 이르되 이 눈먼 놈아(瞎漢).
師問僧 你在此間多少時也 僧云 七八年 師云 還見老僧麽 云 見 師云 我作一頭驢 你作麽生見 云 入法界見 師云 我將爲你有此一著 枉喫了如許多飯 僧云 請和尙道 師云 因什麽不道向草料裏見
●一著; 本爲圍棋用語 猶言一事也 又一回一次也 又稱一著子
스님이 중에게 묻되 네가 차간(此間)에 있은 지 얼마의 시일인가. 승운(僧云) 칠팔 년입니다. 사운 도리어 노승을 보았느냐. 이르되 보았습니다. 사운 내가 한 마리 나귀를 지었거늘 네가 어떻게 보았느냐. 이르되 법계(法界)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사운 내가 장차 네가 이 일착(一著)이 있다고 하렸더니 헛되이(枉) 허다(許多)함과 같은 밥을 먹었구나(喫了). 승운(僧云) 화상의 말씀을 청합니다. 사운 무엇으로 인해 초료(草料; 牛馬의 飼料) 속을 향해 보았다고 말하지 않느냐.
●一著; 본래 위기(圍棋; 바둑) 용어가 됨. 1사(事)라고 말함과 같음. 또 1회, 1차임. 또 명칭이 일착자(一著子).
師問菜頭 今日喫生菜 熟菜 菜頭提起一莖菜 師云 知恩者少 負恩者多
●菜頭; 在典座之下 管領菜蔬之僧 [象器箋七]
스님이 채두(菜頭)에게 묻되 금일 생채(生菜)를 먹느냐 숙채(熟菜)냐. 채두가 한 줄기 채소를 제기(提起; 들어 일으키다)했다. 사운 은혜를 아는 자는 적고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많다.
●菜頭; 전좌(典座)의 아래에서 채소를 관령(管領; 도맡아 다스림)하는 승인 [상기전7].
有俗行者到院燒香 師問僧 伊在那裏燒香禮拜 我又共你在者裏語話 正與麽時 生在那頭 僧云 和尙是什麽 師云 與麽卽在那頭也 云 與麽已是先也 師笑之
●那頭; 那邊 禪宗隱指超越塵俗 超越空間的禪悟境界
속행자(俗行者; 세속의 행자)가 있어 도원(到院)하여 소향(燒香)했다. 스님이 중에게 묻되 그(伊)는 나리(那裏; 저 속)에 있으면서 소향하고 예배하고 나는 또 너와 함께(共) 자리(者裏)에 있으면서 어화(語話)한다. 바로(正) 이러한 때 생(生)이 나두(那頭)에 있다. 승운(僧云) 화상, 이 무엇입니까(是什麽). 사운 이러하다면 곧 나두(那頭)에 있다. 이르되 이러하다면 이미 이 선(先)입니다. 스님이 웃었다.
●那頭; 나변(那邊; 저쪽 가)이니 선종에서 진속(塵俗)을 초월하고 공간도 초월한 선오의 경계를 은유적으로 가리킴.
師與小師文遠論義 不得占勝 占勝者輸餬餠 師云 我是一頭驢 遠云 我是驢胃 師云 我是驢糞 遠云 我是糞中虫 師云 你在彼中作麽 遠云 我在彼中過夏 師云 把將餬餠來
●餬餠; 祖庭事苑一 買餬餠 餬當作胡 胡虜之總稱 用胡麻作餠 故曰胡餠 故釋名曰 胡餠 言以胡麻著之也 前趙錄云 石季龍諱胡 改爲麻餠 胡麻 卽油麻也 餬 寄食也 非義
스님이 소사(小師) 문원(文遠)과 더불어 논의(論義)하면서 점승(占勝; 勝利를 占據함)을 얻지 않기로 했으니 점승하는 자는 호병(餬餠)을 보내기로(輸) 했다. 사운 나는 이 한 마리의 나귀다. 원운(遠云) 나는 이 나귀의 위(胃; 저본에 胄로 지었음)입니다. 사운 나는 이 나귀의 똥이다. 원운 나는 이 똥 가운데의 벌레입니다. 사운 네가 그 가운데 있으면서 무엇하느냐. 원운 내가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과하(過夏)합니다. 사운 호병을 가지고(把將) 오너라.
●餬餠; 조정사원1. 매호병(買餬餠) 호(餬)는 마땅히 호(胡)로 지어야 하나니 호로(胡虜)의 총칭임. 호마(胡麻; 麻는 깨)를 써서 병(餅)을 만들므로 고로 가로되 호병(胡餅)임. 고로 석명(釋名; 釋飮食)에 가로되 호병(胡餅)은 말하자면 호마(胡麻)를 그것에 붙인 것이다. 전조록(前趙錄)에 이르되 석계룡(石季龍)의 휘(諱)가 호(胡)이므로 고쳐 마병(麻餅)이라 했다(前趙는 石氏인 後趙에게 亡했음. 後趙로 의심됨). 호마(胡麻)는 곧 유마(油麻)임. 호(餬)는 기식(寄食)이니 뜻이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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