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료(吉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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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설찰설치연설(塵說刹說熾然說)
삼세일체무간헐(三世一切無間歇)
길료설두이천장(吉嘹舌頭已千丈)
정안방제미면설(正按傍提未免屑)
석가엄실루천기(釋迦掩室漏天氣)
정명두구득일궐(淨名杜口得一橛)
칠요팔철만반설(七凹八凸萬般設)
지요교군자가헐(祇要敎君自家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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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끌이 설하고 국토가 설하고 치연히 설하여
삼세(三世)와 일체(一切)가 잠깐도 쉼이 없도다
길료(吉嘹)의 혀가 이미 천장(千丈)인지라
정안방제(正按傍提)가 수고스러움을 면치 못하도다.
석가가 엄실(掩室)함은 천기(天氣)를 누설함이요
정명(淨名)이 입을 닫음은 한 말뚝을 얻었도다
칠요팔철(七凹八凸)의 온갖 시설(施設)이
단지 그대로 하여금 자가(自家)의 쉼을 요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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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길료(吉嘹) 북인(北人)의 방언(方言)이니 음(音)을 합해 글자를 삼아 길료다. 말하자면 교교두려(繳繳紏戾. 繳는 동일 교. 얽힐 작. 紏는 황색 실 두. 戾는 어길 려. 휘어질 려)함이다. 그 혀를 동임이 마치 혀를 오그림과 같음이니 마치 굴롱(窟籠)을 공굴(孔窟)이라 하고 타(駝)를 과(窠)라 함과 같다. 혹 말이 많음으로써 길료(吉嘹)를 삼는 것은 영남(嶺南)에 새가 있으니 구욕(鸜鵒. 새 이름)과 비슷하며 새장에서 길러 오래되면 곧 능히 말을 하는데 남인(南人)들이 이를 일러 길료라 함. 개원초(開元初. 開元은 唐의 年號니 서기 713~741)에 광주(廣州)에서 이를 헌납(獻納)했는데 언음(言音)의 웅중(雄重)함이 장부(丈夫)와 같았고 위곡(委曲. 仔細. 詳細)히 사람의 정성(情性)을 알았는데 앵무나 구욕과 비할 게 아니었다. 운문(雲門. 文偃)이 영남에 거주했으니 또한 이 뜻을 썼으리라 대중함 [祖庭事苑卷一]. 제어록(諸語錄)에 길료(吉獠), 길료(狤獠) 등으로도 표기하였으며 길료주장(吉獠主丈. 拄杖을 主杖, 主丈으로 표기하기도 함), 길료설두삼천리(吉獠舌頭三千里) 등등 길료에 관한 문구들이 가끔 보임. 길료(吉獠)는 심지를 밝히지 못하고 다만 기어를 배송(背誦)할 줄만 아는 자에 대한 기척어(譏斥語; 나무라며 배척하는 말). 또 흘료(吃嘹) 길료(吉了) 길료(吉嘹) 길료(狤獠) 등으로 지음.
1~2행 보현행품(普賢行品)의 송(頌)에 이르되 부처가 설하고 보살이 설하고/ 찰토가 설하고 중생이 설하고/ 삼세일체가 설하도다 (佛說菩薩說 刹說衆生說 三世一切說) [宗鏡錄卷二十四].
4행 정안방제(正按傍提)는 사가(師家)가 학가(學家)를 접인(接引)하는 수단과 방법을 말하는 것이니 정면에서 누르고(按) 측면에서 드는(提) 것. 설(屑)은 가루 설. 수고로울 설.
5~8행 내가 비로소 도량에 앉아/ 나무를 보고 또한 경행(經行)하며/ 삼칠일중(三七日中)에/ 여시(如是)의 일을 사유하되/ 내가 얻은 바 지혜는/ 미묘하여 가장 제일이건만/ 중생의 제근(諸根)이 우둔(愚鈍)하여/ 욕락(慾樂)에 탐착하여 어리석고 눈먼 바라/ 이와 같은 등의 무리를/ 어떻게 해야 가히 제도(濟度)할까 /이때 모든 범왕(梵王)/ 및 모든 천제석(天帝釋)과/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과/ 및 대자재천(大自在天)과/ 아울러 여타(餘他)의 모든 천중(天衆)의/ 권속백천만(眷屬百千萬)이/ 공경(恭敬)하고 합장하고 절하면서/ 나에게 법륜을 굴리라고 청하였도다/ 내가 곧 스스로 사유하되/ 만약 다만 불승(佛乘)만 찬탄한다면/ 중생이 고(苦)에 잠겨 있어/ 능히 이 법을 믿지 않으며/ 법을 깨뜨려 믿지 않는 고로/ 삼악도에 떨어지리니/ 내가 차라리 설법하지 않고/ 빠르게 열반에 들리라 (我始坐道場 觀樹亦經行 於三七日中 思惟如是事 我所得智慧 微妙最第一 衆生諸根鈍 著樂癡所盲 如斯之等類 云何而可度 爾時諸梵王 及諸天帝釋 護世四天王 及大自在天 幷餘諸天衆 眷屬百千萬 恭敬合掌禮 請我轉法輪 我卽自思惟 若但讚佛乘 衆生沒在苦 不能信是法 破法不信故 墜於三惡道 我寧不說法 疾入於涅槃 [法華經卷一 方便品]. 여금(如今)의 이 석가문니불은 득도 후 오십칠 일 동안 적연(寂然)하여 설법하지 않았다 (今是釋迦文尼佛 得道後五十七日寂不說法) [大智度論卷七 經]. 때에 유마힐(維摩詰)이 묵연무언(默然無言)하다 (時維摩詰默然無言) [維摩經卷中 入不二法門品]. 가사(假使) 정명(淨名)이 비야(毗耶. 毗耶離城)에서 두구(杜口)하고 석가가 마갈(摩竭. 摩竭陀國)에서 엄실(掩室)함이 엄이투령(掩耳偸鈴)과 매우 흡사하며 천기누설(天氣漏泄)을 면하지 못함이라 하노라. 바로 더욱이 덕산(德山)이 입문(入門)하매 곧 방(棒)하고 임제가 입문하매 곧 할(喝)하더라도 만약 목암(牧庵. 法忠이니 龍門淸遠의 法嗣. 臨濟下十一世)의 문하(門下)를 향한다면 검점(檢點)하여 가져오매 단지 한 말뚝을 얻었다 하노라. 천 가지 말과 만 가지 말이 단지 그대(君)로 하여금 자가(自家)의 쉼을 요하나니 대지허공(大地虛空)이 칠요팔철(七凹八凸)하는 대로 맡기노라 [五燈嚴統卷二十 法忠章]. 엄(掩)은 닫을 엄. 정명(淨名)은 유마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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