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당수세록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선로신공(宣老信公)

태화당 2019. 8. 10. 11:29

선로신공(宣老信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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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선위남신작녀(可宣爲男信作女)

일개선응일개곡(一个善應一个哭)

막장명매비상량(莫將明昧費商量)

객래수대적래괵(客來須待賊來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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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선(可宣)은 남아(男兒)가 되고 초신(超信)은 여아가 되어

한 개는 잘 응대(應對)하고 한 개는 곡()하였네

명매(明昧)를 가지고 상량(商量)을 허비하지 말고

손님이 오면 접대를 쓰고 도둑이 오면 후려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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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로(宣老)는 귀종가선(歸宗可宣), 신공(信公)은 해인초신(海印超信)이니 둘 다 낭야혜각(琅邪慧覺)의 법사(法嗣). 임제하칠세(臨濟下七世).

1~2행 귀종선선사(歸宗宣禪師)는 한주인(漢州人)이며 낭야광조(琅邪廣照)의 법사(法嗣). 곽공보(郭功甫. 郭祥正功甫白雲守端法嗣)와 후선(厚善. 두터운 친분으로 잘 지냄)하였다. 어느 날 남강(南康)의 군수(郡守)가 사건(事件)으로써 그에게 임()하자 가선(可宣)이 사람을 시켜 글을 달려 공보(功甫)에게 주게 하면서 또 송서자(送書者)에게 축원(祝願)하여 이르되 현군(縣君)이 보지 못하게 하라 하였는데 공보(功甫)는 당시에 남창위(南昌尉)였다. 글에 이르되 모()가 다시 육 년의 세연(世緣)이 있어 다하지 못하였건만 금일 억핍(抑逼)을 어찌하지 못함을 어찌하리오. 그대의 집에 탁생(託生)할까 하니 바라건대 그대는 상조(相照)하시라. 곧 화거(化去)했다. 공보가 글을 얻고서 경희(驚喜)가 가슴에 가득했다. 중야(中夜)에 그 처()가 몽매(夢寐)에 어렴푸시(髣髴) 가선(可宣)이 와내(臥內. 寢室)에 들어옴이 보였다. 불각(不覺)에 실성(失聲)하며 이르되 여기는 이 화상이 올 곳이 아닙니다. 공보가 그 연고를 물었고 처가 본 바대로 답을 하자 공보가 등()을 부르고 가선의 글을 그에게 보였다. 과연 임신(妊娠)이 있었고 태어남에 이르러서는 곧 선광(宣光)이라고 이름했다. 겨우 일 년 만에 기억하고 묻는 것이 옛과 같았는데 세 살에 이르자 백운단화상(白雲端和尙. 守端이니 臨濟下八世)이 그 집에 이르렀다. 공보가 불러내어 상견케 했는데 바라보더니 곧 사질(師姪)이라고 불렀다. ()이 이르되 화상과 서로 헤어진 지가 몇 년인가. ()이 손가락을 꼽더니 이르되 사 년이구나. 수단이 이르되 어느 곳에 있다가 상별(相別)했는가. 선이 이르되 백련장(白蓮莊)이니라. 단이 이르되 무엇으로써 증험(證驗)하겠는가. 선이 이르되 다다마마(爹爹媽媽. 는 아버지 다. 는 어머니 마니 곧 아빠 아빠 엄마 엄마). 다음 날에 화상(和尙)을 청해 재()하는데 홀연히 문 밖에 수레를 밀며 지나가자 단이 이르되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이 수레를 미는 형세를 지었다. 단이 이르되 과(. 五燈會元過後로 지어졌음)하면 어떤가. 선이 이르되 평지에 일조구(一條溝. 한 가닥의 구덩이. 會元兩條溝로 지어졌음)니라. 겨우 여섯 살에 이르자 질병 없이 화거(化去)했다 [禪苑蒙求瑤林卷上]. 해인신화상(海印信和尙. 南嶽下十一世)은 낭야(琅邪)를 이었으며() 계부인(桂府人)이다. 소주정혜사(蘇州定慧寺)에 주지(住持)했으며 나이가 팔십여(八十餘)였다. 평일에 주방어가(朱防禦家)의 공양을 받았으며 여러 차례 그 집에 이르렀는데 어느 날 주()가 가로되 화상이 후세(後世)에 능히 제자(弟子)의 집 가운데 와서 탁생(託生)하시겠습니까. 스님이 미소하며 그것을 허락하고 절에 돌아와서 병을 얻어 수일 만에 화거(化去)했으며 그 천화(遷化)하던 날에 주가(朱家)에 한 여자가 태어났다. 원조본선사(圓照本禪師. 慧林宗本이니 天衣義懷法嗣. 南嶽下十一世)가 당시에 서광(瑞光)에 주지(住止)했는데 그 일을 듣고 가서 그를 방문하니 비로소 출월(出月. 한 달을 넘김)한지라 안고 나왔는데 한 번 보자 곧 미소했다. 원조(圓照)가 이르되 해인(海印), 너는 틀려버렸다(錯了也). 여자가 몇 소리 곡()하더니 화거(化去)했다 [禪苑蒙求瑤林卷上].

4행 도둑이 오면 반드시 때리고 손님이 오면 반드시 접대하라 (賊來須打客來須待) [宏智錄卷三]. ()은 후려갈길 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