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단신(趙州斷薪)
) -->
연지팔십주관음(年至八十住觀音)
지효고인태고절(志效古人太枯絶)
승상각절계단신(繩牀脚折繫斷薪)
미상일서고단월(未嘗一書告檀越)
) -->
나이 팔십에 이르러 관음원(觀音院)에 주지(住持)하면서
의지(意志)가 고인(古人)을 본받아 매우 고절(枯絶)했더라
승상(繩牀)의 다리가 부러지매 끊어진 장작으로 매고
일찍이 일서(一書)도 단월(檀越)에게 알리지 않았네.
) -->
제목 조주종심(趙州從諗)은 남천보원(南泉普願)의 법사(法嗣)니 마조하이세(馬祖下二世). 신(薪)은 땔나무 신.
1~4행 조주진제선사행장(趙州眞際禪師行狀)에 가로되 스님의 휘(諱)는 종심(從諗)이며 스스로 병석(甁錫. 錫은 錫杖 석)을 휴대(携帶)하고 제방(諸方)을 편력(遍歷)했는데 늘 스스로 일러 가로되 칠세동아(七歲童兒)라도 나보다 나은 자는 내가 곧 그에게 묻고 백세노옹(百歲老翁)이라도 나에게 미치지 못하는 자는 내가 곧 그를 가르치리라. 나이 팔십에 이르자 비로소 조주성동(趙州城東) 관음원(觀音院)에 머물렀다. 주지(住持)하면서 고고(枯槁)하고 뜻이 고인(古人)을 본받아 승당(僧堂)엔 전후(前後)의 가(架. 閣)가 없었고 그대로 재식(齋食)을 영위(營爲)했다. 승상(繩牀)의 다리 한 개가 부러지자 태우다가 끊어진 장작으로써 노를 써 그것을 매었는데 매번 따로 새것을 만들자는 자가 있었지만 스님이 허락하지 않았으며 주지(住持)한 지 사십 년에 일찍이 일봉서(一封書)를 주어 그 단월(檀越)에게 알림이 없었다 [禪苑蒙求拾遺]. 어떤 책엔 조주가 팔십에 행각(行脚)했다고 했는데 아마 주지하면서도 행각을 했다는 말인 듯함. 효(效)는 본받을 효. 절(絶)은 뛰어날 절. 승상(繩牀)은 새끼나 솜을 두른 조잡(粗雜)한 의자(椅子). 선상(禪牀)과 같은 말. 또는 와상(臥牀). 상(牀)의 속자(俗字)가 상(床). 계(繫)는 맬 계. 상(嘗)은 일찍이 상. 맛볼 상. 단월(檀越)의 단(檀)은 범어인 단나(檀那)의 약칭이니 보시(布施)의 뜻. 보시하여 생사고(生死苦)를 초월해 열반의 언덕에 이르므로 단월(檀越)이라 하며 시주(施主)라고 번역함.
) -->
'태화당수세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관인문조주소목불화(官人問趙州燒木佛話) (0) | 2019.08.10 |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효법사(孝法嗣) (0) | 2019.08.10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석상교치(石霜齩齒) (0) | 2019.08.10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승호독비(承晧犢鼻) (0) | 2019.08.10 |
태화당수세록(泰華堂隨歲錄) 2004년 장경포단(長慶蒲團) (0) | 2019.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