㉚❶卽心卽佛
❷馬祖因❸大梅問 如何是佛 祖云 卽心是佛
無門曰 若能直下❹領略得去 著佛衣喫佛飯 說佛話行佛行 卽是佛也 然雖如是 大梅引多少人 ❺錯認定盤星 爭知道說箇佛字三日漱口 若是箇漢 見說卽心是佛 掩耳便走
頌曰靑天白日 切忌尋覓 更問如何 ❻抱贜叫屈
❶卽心卽佛; 傳燈錄六 江西道一 僧問 和尙爲什麽說卽心卽佛 師云 爲止小兒啼 僧云 啼止時如何 師云 非心非佛 僧云 除此二種人來如何指示 師云 向伊道不是物 僧云 忽遇其中人來時如何 師云 且敎伊體會大道
❷馬祖; 馬祖道一 道一(七○九~七八八) 唐代僧 南嶽懷讓之法嗣 漢州(四川廣漢)人 俗姓馬 世稱馬大師 馬祖 名道一 容貌奇異 牛行虎視 引舌過鼻 足下有二輪紋 依資州唐和尙(卽處寂)剃染 就渝州圓律師受具足戒 開元(七一三~七四一)年間 就懷讓習曹溪禪法 言下領旨 密受心法 初止於建陽之佛跡嶺 未久 遷至臨川之南康龔公二山 大曆四年(七六九) 駐錫鍾陵(江西進賢)開元寺 是時學者雲集 化緣大盛 馬祖以平常心是道 卽心是佛大弘禪風 貞元四年二月四日示寂 壽八十 唐憲宗諡大寂禪師 其派稱爲洪州宗 道一之於懷讓 恰如希遷之於行思 於禪法之弘揚二者竝稱 馬祖因於江西闡揚南嶽系禪風 亦稱江西禪 [宋高僧傳十 景德傳燈錄六 傳法正宗記 五燈會元三]
❸大梅; 大梅法常 法常(七五二~八三九) 唐代僧 湖北襄陽人 俗姓鄭 幼年出家 住於玉泉寺 凡百經書 一覽卽能諳誦不忘 二十歲受具足戒於龍興寺 師志於禪 初參馬祖道一問 如何是佛 馬祖云 卽心是佛 遂大悟 後隱於大梅山(浙江鄞縣)靜修 一日 一僧奉馬祖之令 至大梅山對師道 近日又道非心非佛 師云 這老漢惑亂人未有了日 任汝非心非佛 我只管卽心卽佛 馬祖聞之曰 梅子熟也 自此法譽大彰 學人四至 開成四年某日 忽謂衆云 來莫可拒 往莫可追 言至此 忽聞鼯鼠聲 又云 卽此物 非他物 汝等諸人善護持之 吾今逝矣 言訖而化 壽八十八 臘六十九 [宋高僧傳十一 傳燈錄七 五燈會元三]
❹領略; 有領會理解(理會)等意思
❺錯認定盤星; 把秤上的起點認錯了 多謂犯根本性的錯誤 定盤星 秤杆上的起點星號
❻抱贜叫屈; 抱著贓物却叫寃屈 使人發笑之事 禪錄用例多譏刺禪家以言句義解接人 却自謂不落言詮 手段高妙
㉚❶즉심즉불(卽心卽佛)
❷마조(馬祖)가, ❸대매(大梅)가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함으로 인해 마조가 이르되 곧 마음이 이 부처다.
무문(無門)이 가로되 만약 능히 직하(直下)에 ❹영략(領略)하여 얻는다면 불의(佛衣)를 입고 불반(佛飯)을 먹고 불화(佛話)를 설하고 불행(佛行)을 행하여 곧 이 부처이리라.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대매(大梅)가 다소의 사람을 인도(引導)하여 정반성을 잘못 알게 했도다(❺錯認定盤星). 어찌 불자(佛字)를 설하고는 삼 일 동안 입을 씻어야 한다고 말할 줄 알았겠는가. 만약 시개한(是箇漢. 眞正한 丈夫)이라면 곧 마음이 이 부처다 라고 설함을 보면 귀를 막고 바로 달아나리라.
송왈(頌曰) 청천백일(青天白日)에/ 심멱(尋覓)을 간절히 꺼리나니/ 다시 무엇을 묻는다면/ ❻포장규굴(抱贜叫屈)이니라.
❶즉심즉불(卽心卽佛); 전등록육(傳燈錄六) 강서도일(江西道一) 중이 묻되 화상(和尙)은 무엇 때문에 곧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라고 설하십니까. 스님이 이르되 소아(小兒)의 울음을 그치게 하려 함이다. 중이 이르되 울음을 그쳤을 땐 어떻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하리라. 중이 이르되 이 두 종류의 사람을 제(除)하고 온다면 어떻게 지시(指示)하시렵니까. 스님이 이르되 그를 향해 말하되 이 물건도 아니라(不是物) 하리라. 중이 이르되 홀연히 기중인(其中人)의 옴을 만났을 땐 어떻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다만 그로 하여금 대도(大道)를 체회(體會. 體解와 같은 뜻)하게 하리라.
❷마조(馬祖); 마조도일(馬祖道一)임. 도일(道一. 709~788) 당대(唐代)의 승려며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법사(法嗣)임. 한주(漢州. 四川 廣漢)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마(馬)며 세칭(世稱) 마대사(馬大師)ㆍ마조(馬祖)며 이름은 도일(道一)임. 용모(容貌)가 기이(奇異)하여 우행호시(牛行虎視)에 혀를 빼면 코를 지났으며 발 아래 두 바퀴의 문채(二輪紋)가 있었음. 자주(資州) 당화상(唐和尙)에게 의지(依止)해 체염(剃染)하고 유주(渝州)의 원율사(圓律師)에게 나아가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개원(開元. 713~741)년 간 회양(懷讓)에게 나아가 조계의 선법(禪法)을 익혔는데 언하에 지취를 영오(領悟)해 몰래 심법(心法)을 받았음. 처음엔 건양(建陽)의 불적령(佛跡嶺)에 머물다가 오래지 않아 임천(臨川)의 남강(南康)과 공공(龔公) 두 산에 이르렀음. 대력사년(大曆四年. 769) 종릉(鍾陵. 江西 進賢)의 개원사(開元寺)에 주석(駐錫)했는데 이때 학자가 운집하여 화연(化緣)이 대성(大盛)했음. 마조는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즉심시불(卽心是佛)로써 선풍을 크게 홍양(弘揚)했음. 정원사년(貞元四年) 2월 4일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여든이며 당헌종(唐憲宗)이 대적선사(大寂禪師)로 시호(諡號)했음. 그 파(派)를 일컬어 홍주종(洪州宗)이라 함. 회양(懷讓)에 있어서의 도일(道一)은 마치 행사(行思)에 있어서의 희천(希遷)과 같아서 선법(禪法)의 홍양(弘揚)에 이자(二者)를 병칭(竝稱)함. 마조가 강서에서 남악계(南嶽系)의 선풍(禪風)을 천양(闡揚)했으므로 인해 또한 강서선(江西禪)이라 일컬음. [宋高僧傳十 景德傳燈錄六 傳法正宗記 五燈會元三].
❸대매(大梅); 대매법상(大梅法常)임. 법상(法常. 752~839) 당대(唐代)의 승려며 호북(湖北) 양양(襄陽)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정(鄭)임. 어린 나이에 출가해 옥천사(玉泉寺)에 거주했는데 무릇 온갖 경서(經書)를 일람(一覽)하면 곧 능히 암송(諳誦)해 잊지 않았으며 스무 살에 용흥사(龍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스님은 선(禪)에 뜻을 두었으며 처음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알(參謁)해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마조가 이르되 곧 마음이 이 부처다(卽心是佛). 드디어 대오(大悟)했음. 후에 대매산(大梅山. 浙江 鄞은縣)에 은거하며 정수(靜修)했는데 어느 날 한 중이 마조의 명령을 받들어 대매산에 이르러 스님을 상대헤 말하되 근일(近日)에 또 말씀하기를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非心非佛) 하십니다. 스님이 이르되 이 노한(老漢)이 사람을 혹란(惑亂)하면서 마칠 날이 있지 않구나. 너의 비심비불(非心非佛)에 일임(一任)한다. 나는 다만 곧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를 관대(管帶)하겠다. 마조가 이를 듣고 가로되 매자(梅子. 梅實)가 익었다. 이로부터 법예(法譽)가 크게 드러나 학인(學人)이 사방에서 이르렀음. 개성사년(開成四年) 모일(某日)에 홀연히 대중에게 일러 이르되 오는 것을 가히 거절(拒絶)하지 말고(來莫可拒) 가는 것을 가히 쫓지 말아라(往莫可追). 말이 이에 이르자 홀연히 날다람쥐(鼯鼠)의 소리를 듣고 또 이르되 곧 이 물건(卽此物)이 다른 물건이 아니니(非他物) 너희 등 제인(諸人)은 잘 호지(護持)하라, 나는 이제 가노라. 말을 마치자 화(化. 逝世)했으니 나이는 여든여덟이며 승랍(僧臘)은 예순아홉임. [宋高僧傳十一 傳燈錄七 五燈會元三].
❹영략(領略); 영회(領會)ㆍ이해(理解. 理會) 등의 의사(意思)가 있음.
❺착인정반성(錯認定盤星); 저울 상의 기점(起點)을 잡되 인식(認識)이 잘못된 것. 다분히 근본성(根本性)을 범한 착오(錯誤)를 말함. 정반성(定盤星)은 저울대 위의 기점(起點)의 눈금(星)의 기호임.
❻포장규굴(抱贜叫屈); 장물(贓物)을 안고서 도리어 원굴(寃屈. 억울)하다고 부르짖음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이 나게 하는 일임. 선록(禪錄)의 용례(用例)로는 다분히 선가(禪家)가 언구(言句)와 의해(義解)로써 접인(接人)하고는 도리어 스스로 이르기를 언전(言詮)에 떨어지지 않고 수단(手段)이 고묘(高妙)하다 함을 기자(譏刺. 나무라고 헐뜯음)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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