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역해무문관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32칙 외도문불(外道問佛)

태화당 2019. 8. 12. 08:47

外道問佛

世尊因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據座 外道贊歎云 世尊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乃具禮而去 阿難尋問佛 外道有何所證贊歎而去 世尊云 如世良馬見鞭影而行

無門曰 阿難乃佛弟子 宛不如外道見解 且道 外道與佛弟子相去多少

頌曰 劍刃上行 氷稜上走 不涉階梯 懸崖撒手

外道; 又作外敎 外法 外學 指佛敎以外之一切宗敎 與儒家所謂異端一語相當 三論玄義 至妙虛通 目之爲道 心遊道外 故名外道 宗鏡錄二十六 心外見法 盡名外道

據座; 此則一種機鋒施設 禪師坐于法座 而對人提問不用言句作答 也無其他動作

; 不久

良馬見鞭影而行; 良馬不須鞭打 只要瞥見鞭影便向前馳行 比喩參學者有靈悟之性 別譯雜阿含經八 爾時世尊告諸比丘 有四種馬 賢人應乘 是世間所有 何等爲四 其第一者 見擧鞭影 卽便驚悚 隨御者意 其第二者 鞭觸身毛 卽便驚悚 稱御者意 其第三者 鞭觸身肉 然後乃驚 隨御者意 其第四者 鞭徹肉骨 然後乃驚 稱御者意

相去多少; 去 距離

劍刃上行氷稜上走; 比喩機語大活自在

懸崖撒手; 亦作撒手懸崖 形容參禪時 超越語言 知見情識分別 毫無依倚 毫不猶豫 傳燈錄二十 永光院眞 上堂謂衆曰 言鋒若差鄕關萬里 直須懸崖撒手 自肯承當 絶後再蘇 欺君不得

 

외도문불(外道問佛)

세존(世尊), 외도(外道)가 묻되 유언(有言)을 묻지 않고 무언(無言)을 묻지 않습니다 함으로 인해 세존이 자리에 기대셨다(據座). 외도가 찬탄(贊歎)해 이르되 세존이 대자대비(大慈大悲)하사 나의 미운(迷雲)을 여시어 나로 하여금 득입(得入)케 하셨습니다. 이에 예()를 갖추고 떠났다. 아난(阿難)이 이윽고() 부처님에게 묻되 외도가 무슨 증득(證得)한 것이 있어 찬탄하고 떠났습니까. 세존이 이르시되 마치 세간(世間)의 양마가 채찍그림자를 보면 가는(良馬見鞭影而行) 것과 같다.

무문(無門)이 가로되 아난은 곧 불제자(佛弟子)지만 완연(宛然)히 외도의 견해만 같지 못하다 하노라. 그래 말하라, 외도와 불제자가 서로 떨어짐이 얼마인가(相去多少).

송왈(頌曰) 검인상에서 행하고/ 빙릉상에서 달리나니(劍刃上行 氷稜上走)/ 계제(階梯)에 건너지 말고/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라(懸崖撒手).

외도(外道); 또 외교(外敎)ㆍ외법(外法)ㆍ외학(外學)으로 지음. 불교(佛敎) 이외(以外)의 일체 종교(宗敎)를 가리킴. 유가(儒家)에서 이른 바 이단(異端)의 일어(一語)와 상당(相當). 삼론현의(三論玄義) 지묘(至妙)하여 허통(虛通)함을 제목하여 도()라 하고 마음이 도 밖에 노니는지라 고로 이름이 외도(外道)이다. 종경록이십육(宗鏡錄二十六). 마음 밖에 법을 보면 다 이름이 외도(外道)이다(心外見法 盡名外道).

거좌(據座); 이것은 곧 일종의 기봉(機鋒)의 시설(施設)이니 선사(禪師)가 법좌(法座)에 앉아 사람이 제기한 질문에 대해 언구를 써 답을 짓지 않으며 또한 기타의 동작도 없음임.

(); 오래지 않음(不久).

양마견편영이행(良馬見鞭影而行); 양마(良馬)는 채찍질을 쓰지(. )않고 다만 채찍그림자를 언뜻 보면 바로 앞을 향해 달림을 요하나니 참학자(參學者)가 영오(靈悟)의 성품(性品)이 있음에 비유(比喩). 별역잡아함경팔(別譯雜阿含經八). 이때 세존이 여러 비구에게 고하시되 네 가지 말이 있어 현인(賢人)이 타기에 마땅하다. 이는 세간에 있는 것이다. 무엇 등이 넷이 되는가 그 제일자(第一者)는 채찍을 드는 그림자를 보고 곧 바로 경송(驚悚)하면서 어자(御者)의 뜻을 따른다. 그 제이자(第二者)는 채찍이 신모(身毛)를 건드리면 곧 바로 경송(驚悚)하면서 어자의 뜻에 맞춘다. 그 제삼자(第三者)는 채찍이 신육(身肉)을 건드린 연후에 곧 놀라서 어자의 뜻을 따른다. 그 제사자(第四者)는 채찍이 육골(肉骨)에 사무친 연후에 곧 놀라서 어자의 뜻에 맞춘다.

상거다소(相去多少); () 거리(距離).

검인상행 빙릉상주(劍刃上行 氷稜上走); 기어(機語)가 크게 활발(活潑)하고 자재(自在)함에 비유(比喩).

현애살수(懸崖撒手); 또한 살수현애(撒手懸崖)로 지음. 참선할 때 어언(語言)과 지견(知見)의 정식(情識)을 초월하고 터럭 만큼도 의의(依倚. 기댐)함이 없으며 터럭 만큼도 유예(猶豫)하지 않음을 형용(形容). 전등록이십(傳燈錄二十) 영광원진(永光院眞). 상당(上堂)하여 대중에게 일러 가로되 언봉(言鋒)이 만약 어긋나면 향관(鄕關)이 만 리니 바로 모름지기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 스스로 긍정해 승당(承當)하고 기절(氣絶)한 후에 다시 소생(蘇生)해야 그대 속임을 얻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