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역해무문관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 제47칙 도솔삼관(兜率三關)

태화당 2019. 8. 12. 08:59

兜率三關

兜率悅和尙 設三關問學者 撥草參玄只圖見性 卽今上人性在甚處 識得自性 方脫生死 眼光落時 作麽生脫 脫得生死 便知去處 四大分離 向甚處去

無門曰 若能下得此三轉語 便可以隨處作主 遇緣卽宗 其或未然 麁飡易飽 細嚼難飢

頌曰 一念普觀無量劫 無量劫事卽如今 如今覻破箇一念 覻破如今覻底人

兜率; 此指院名也 從悅禪師因住於隆興(江西南昌)兜率院 故世稱兜率從悅 兜率 具云兜率陀 翻譯名義集二 兜率陀 此云妙足 新云覩史陀 此云知足 西域記云 覩史多舊曰兜率陀兜術陀訛也 於五欲 知止足 故佛地論名憙足 謂後身菩薩 於中敎化 多修憙足故 慧琳音義十二曰 覩史多 梵語也 欲界中空居天名也 舊云兜率陀 或云兜術 或云兜駛多 皆梵語訛略不正也 唐云知足或云妙足 凡聖界地章云 下天多放逸 上天多闇鈍 故云知足 一生補處菩薩多作此天王 雖復萬行齊功 十度之中而偏修精進 婆沙論及正法念經等說 彼天以寶雲爲地 下去大海三十二萬瑜繕那 人間四百年爲彼天中一晝夜 壽命四千歲 身形長二里

兜率悅; 兜率從悅 從悅(四四~九一) 宋代黃龍派僧 虔州(江西贛縣)人 俗姓熊 十五歲出家 十六歲受具足戒 寶峰克文法嗣 因住於隆興(江西南昌)兜率院 故世稱兜率從悅 元祐六年示寂 享年四十八 宋徽宗宣和三年(一一二一) 丞相張商英(無盡居士)奏請諡號眞寂禪師 有兜率悅禪師語要一卷行世 [佛祖歷代通載十九 五燈會元十七 建中靖國續燈錄二十三]

撥草參玄; 又曰撥草瞻風 撥無明之荒草 參問佛祖之玄風也 又涉險路 參謁知識之玄風也

見性; 見自心之佛性也

上人; 對智德兼備而可爲衆僧及衆人師者之高僧的尊稱 釋氏要覽上 內有智德 外有勝行 在衆人之上者爲上人 大品般若經十七 若菩薩摩訶薩 能一心行阿耨多羅三藐三菩提 護持心不散亂 稱爲上人

眼光落時; 指臨終時也

四大; 地大水大火大風大 見上第

隨處作主; 臨濟錄云 隨處作主 立處皆眞

麁飡易飽細嚼難飢; 麁 同麤 又作粗餐易飽細嚼難饑 卽大口呑食雖容易飽腹 但不易吸收 細細嚼嚥則不易饑餓 且能體會其中滋味和養身 轉指若能持續綿密之修行 將有所體悟 終必得道

一念普觀無量劫; 華嚴經十三 一念普觀無量劫 無去無來亦無住

覻破; 破 助詞 相當于得 了 著

) --> 

도솔삼관(兜率三關)

도솔열화상(兜率悅和尙)이 삼관(三關)을 시설(施設)하여 학자(學者)에게 물었다. 발초참현(撥草參玄)함은 다만 견성(見性)을 도모(圖謀)함이니 즉금(卽今) 상인(上人)의 불성(佛性)이 어느 곳에 있느냐. 자성(自性)을 알았다면 비로소 생사(生死)를 벗어나나니 안광이 낙지할 때(眼光落時) 어떻게 벗어나는가. 생사를 벗어났다면 곧 가는 곳을 알지니 사대(四大)가 분리(分離)되면 어느 곳으로 향해 가는가.

무문(無門)이 가로되 만약 능히 이 삼전어(三轉語. 量詞)를 내린다면 바로 가이(可以) 곳을 따라 주인을 짓고(隨處作主) 인연을 만나매 곧 종이려니와(遇緣卽宗) 그 혹 그렇지 못하다면 거칠게 먹으면 쉽게 배부르고 자세히 씹으면 주리기 어렵다(麁飡易飽 細嚼難飢)하노라.

송왈(頌曰) 일념으로 널리 무량겁을 보나니(一念普觀無量劫)/ 무량겁의 일이 곧 여금(如今)이로다/ 여금에 이 일념을 엿보고(覻破)/ 여금의 엿본 사람을 엿볼지어다.

도솔(兜率); 여기에선 원명(院名)을 가리킴. 종열선사(從悅禪師)가 융흥(隆興. 江西 南昌) 도솔원(兜率院)에 거주했기 때문에 고로 세칭(世稱) 도솔종열(兜率從悅). 도솔(兜率) 갖추어 이르면 도솔타(兜率陀). 번역명의집이(翻譯名義集二) 도솔타(兜率陀) 여기에선 이르되 묘족(妙足). 신역(新譯)으론 이르되 도사타(覩史陀)니 여기에선 이르되 지족(知足). 서역기(西域記)에 이르되 도사다(覩史多) 구역(舊譯)에 가로되 도솔타(兜率陀)ㆍ도술타(兜術陀)라 한 것은 그르다. 오욕(五欲)에 지족(止足)할 줄 아는지라 고로 불지론(佛地論)에 희족(憙足. 喜足)으로 이름했다. 이르자면 후신보살(後身菩薩)이 이 중에서 교화하면서 희족(憙足)을 많이 수행하는 연고이다. 혜림음의십이(慧琳音義十二)에 가로되 도사다(覩史多) 범어다. 욕계(欲界) 중에 공거천(空居天)의 이름이다. 구역(舊譯)에 이르되 도솔타(兜率陀), 혹은 이르되 도술(兜術), 혹은 이르되 도사다(兜駛多)는 모두 범어의 와략(訛略)이며 정음(正音)이 아니다. ()에선 이르되 지족(知足), 혹은 묘족(妙足)이다. 범성계지장(凡聖界地章)에 이르되 하천(下天)은 많이 방일(放逸)하고 상천(上天)은 많이 암둔(闇鈍)하므로 고로 이르되 지족(知足)이다. 일생보처보살(一生補處菩薩)이 다분히 이 천()의 왕이 된다. 비록 다시 만행(萬行)으로 공()이 가지런하지만 십도(十度. 十波羅蜜) 중에 치우치게 정진(精進)한다. 바사론(婆沙論)과 및 정법념경(正法念經) 등에서 설하기를 그 천()은 보운(寶雲)으로써 땅을 삼고 아래로 대해(大海)와의 거리가 삼십이만유선나(三十二萬瑜繕那)며 인간의 사백년(四百年)이 그 천() 가운데의 일주야(一晝夜)가 된다. 수명(壽命)은 사천세(四千歲)며 신형(身形)의 길이는 이리(二里).

도솔열(兜率悅); 도솔종열(兜率從悅). 종열(從悅. 1044~ 1091) 송대(宋代) 황룡파(黃龍派) 승려며 건주(虔州. 江西 贛)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웅(). 열다섯 살에 출가했고 열여섯 살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보봉극문(寶峰克文)의 법사(法嗣). 융흥(隆興. 江西 南昌) 도솔원(兜率院)에 거주했기 때문에 고로 세칭이 도솔종열(兜率從悅). 원우육년(元祐六年)에 시적(示寂)했으니 향년(享年)은 마흔여덟임. () 휘종(徽宗) 선화삼년(宣和三年. 11 21) 승상(丞相) 장상영(張商英. 無盡居士)의 주청(奏請)으로 시호(諡號)가 진적선사(眞寂禪師)며 도솔열선사어요(兜率悅禪師語要) 일 권이 있어 행세(行世). [佛祖歷代通載十九 五燈會元十七 建中靖國續燈錄二十三].

발초참현(撥草參玄); 또 가로되 발초첨풍(撥草瞻風)이니 무명(無明)의 거친 잡초를 헤치고 불조(佛祖)의 현풍(玄風)을 참문(參問)함임. 또 험로(險路)를 건너면서 지식(知識)의 현풍(玄風)을 참알(參謁)함임.

견성(見性); 자심(自心)의 불성(佛性)을 봄임.

상인(上人); 지덕(智德)을 겸비(兼備)하여 가히 중승(衆僧) 및 중인(衆人)의 스승이 될 만한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尊稱). 석씨요람상(釋氏要覽上). 안으로 지덕(智德)이 있고 밖으로 승행(勝行)이 있으면서 중인(衆人)의 위에 있는 자를 상인(上人)이라 한다. 대품반야경십칠(大品般若經十七). 만약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능히 일심(一心)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행하면서 호지(護持)하는 마음이 산란(散亂)하지 않는다면 상인(上人)이라고 호칭(呼稱)한다.

안광낙시(眼光落時); 임종시(臨終時)를 가리킴.

사대(四大); 지대(地大)ㆍ수대(水大)ㆍ화대(火大)ㆍ풍대(風大)니 위 제칙을 보라.

수처작주(隨處作主); 임제록(臨濟錄)에 이르되 곳을 따라 주재(主宰)를 지으면 선 곳이 다 진()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

추찬이포 세작난기(麁飡易飽 細嚼難飢); () (. 거칠 추. 클 추)와 같음. 또 조찬이포세작난기(粗餐易飽細嚼難饑)로 지음. 곧 큰 입으로 음식을 삼키면 비록 용이(容易)하게 배가 부르지만 다만 흡수(吸收)가 쉽지 않고 세세(細細)하게 씹으면 곧 주리기(饑餓)가 쉽지 않으면서 또 능히 그 중의 자미(滋味. )와 양신(養身)을 체회(體會)한다 함이니 전()하여 만약 능히 면밀(綿密)한 수행(修行)을 지속(持續)하면 장차 체오(體悟)하는 바가 있어 마침내 꼭 득도(得道)함을 가리킴.

일념보관무량겁(一念普觀無量劫); 화엄경십삼(華嚴經十三). 일념으로 널리 무량겁(無量劫)을 보나니 감도 없고 옴도 없고 또한 머묾도 없다.

처파(覻破); ()는 조사(助詞)니 득()ㆍ료()ㆍ착()에 상당(相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