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책(ㄱ)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책(ㄱ) 792쪽

태화당 2019. 5. 7. 11:26

敎行理敎者 謂從緣而設之敎說 行者 謂可剋果之因行 理者 謂從名而詮之理致 惟則語錄六 楞嚴敎旨大抵如是 是知敎行理三 悉號楞嚴了義之說 莫此加矣

교행리(敎行理) ()란 것은 이르자면 인연을 좇아 시설한 교설이며 행()이란 것은 이르자면 가히 과를 이루는 인행(因行)이며 리()란 것은 이르자면 명칭을 좇아 그것을 설명한 이치임. 유칙어록6. 릉엄의 교지(敎旨)는 대저 이와 같다. 이로 알지니 교행리(敎行理) 셋은 모두 명칭이 릉엄요의의 설이며 여기에 더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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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亨(1150-1219) 金代曹洞宗僧 濟州任城(山東濟寧)人 俗姓王 字虛明 七歲 依濟州崇覺院圓和尙出家 十三歲受具足戒 十五歲遊方 參鄭州普照寺寶公(良价下十五世)得悟 歷住嵩山戒壇 韶山雲門 鄭州普照 林溪大覺 嵩山法王等五大刹 嘗應金丞相夾谷淸臣之請 住中都潭柘寺 又承朝旨 駐錫燕京慶壽寺 而後遷少林寺 法席大盛 金宣宗興定三年示寂 壽七十 [佛祖歷代通載三十 大明高僧傳五 五燈嚴統十六 五燈全書六十一]

교형(敎亨) (1150-1219) 금대 조동종승. 제주 임성(산동 제녕)사람. 속성은 왕이며 자는 허명. 7세에 제주 숭각원 원화상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13세에 구족계를 받았으며 15세에 유방했음. 정주 보조사(普照寺) 보공(寶公; 양개하 15)을 참해 깨침을 얻었고 숭산의 계단ㆍ소산의 운문ㆍ정주의 보조ㆍ임계의 대각ㆍ숭산의 법왕 등 다섯 대찰을 역주(歷住)했음. 일찍이 금나라 승상 협곡청신의 청에 응해 중도 담자사에 주()했고 또 조정의 교지를 받아 연경 경수사에 주석했음. 이후에 소림사로 옮겼는데 법석이 대성(성대)했음. 금 선종 흥정 3년에 시적했음. 나이 70 [불조역대통재30. 대명고승전5. 오등엄통16. 오등전서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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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化】 ①敎導 感化 臨濟語錄 向一切處 游履國土 敎化衆生 募化 請求布施 大慧語錄十五 甞思敎中有一段因緣 殃崛摩羅要千人指頭作華冠 然後登王位 已得九百九十九指 唯少一指 要斷其母指塡數 佛知其緣熟 故往化之 殃崛纔擧意 欲下刀取母指時 忽聞振錫聲 遂捨其母指 而問佛敎化一指曰 旣是瞿曇在此 望施我一指頭 滿我所願 宗門武庫 無盡居私第日 適年荒 有道士輩 詣門敎化食米

교화(敎化) 교도. 감화. 임제어록. 일체처를 향해 국토를 유리(游履; 노닐며 경력함)하며 중생을 교화(敎化)하다. 모화(募化)니 보시를 청구함. 대혜어록15. 일찍이 교중에 일단의 인연이 있음을 생각했다. 앙굴마라가 천 사람의 손가락으로 화관(華冠)을 만들고 연후에 왕위에 오르고자 했다. 이미 999 손가락을 얻었고 오직 한 손가락이 모자라 그의 어머니의 손가락을 잘라 숫자를 채우려 했다. 불타가 그 인연이 익었음을 알고 일부러 가서 그를 교화했다. 앙굴이 겨우 뜻을 일으켜 칼을 내리쳐 어머니의 손가락을 취하려 할 때 홀연히 석장을 떨치는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그의 어머니 손가락을 버리고 불타에계 물어 한 손가락을 교화(敎化)하려 하면서 가로되 이미 이 구담이 여기에 있으니 나에게 한 손가락을 보시하여 나의 소원이 만족하기를 바랍니다. 종문무고. 무진이 사제(私第)에 거처하던 날에 연황(年荒; 흉년)을 만났다. 도사의 무리가 있어 문에 이르러 먹을 쌀을 교화(敎化)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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