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行理】 敎者 謂從緣而設之敎說 行者 謂可剋果之因行 理者 謂從名而詮之理致 ▲惟則語錄六 楞嚴敎旨大抵如是 是知敎行理三 悉號楞嚴了義之說 莫此加矣
교행리(敎行理) 교(敎)란 것은 이르자면 인연을 좇아 시설한 교설이며 행(行)이란 것은 이르자면 가히 과를 이루는 인행(因行)이며 리(理)란 것은 이르자면 명칭을 좇아 그것을 설명한 이치임. ▲유칙어록6. 릉엄의 교지(敎旨)는 대저 이와 같다. 이로 알지니 교행리(敎行理) 셋은 모두 명칭이 릉엄요의의 설이며 여기에 더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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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亨】 (1150-1219) 金代曹洞宗僧 濟州任城(山東濟寧)人 俗姓王 字虛明 七歲 依濟州崇覺院圓和尙出家 十三歲受具足戒 十五歲遊方 參鄭州普照寺寶公(良价下十五世)得悟 歷住嵩山戒壇 韶山雲門 鄭州普照 林溪大覺 嵩山法王等五大刹 嘗應金丞相夾谷淸臣之請 住中都潭柘寺 又承朝旨 駐錫燕京慶壽寺 而後遷少林寺 法席大盛 金宣宗興定三年示寂 壽七十 [佛祖歷代通載三十 大明高僧傳五 五燈嚴統十六 五燈全書六十一]
교형(敎亨) (1150-1219) 금대 조동종승. 제주 임성(산동 제녕)사람. 속성은 왕이며 자는 허명. 7세에 제주 숭각원 원화상에게 의지해 출가했고 13세에 구족계를 받았으며 15세에 유방했음. 정주 보조사(普照寺) 보공(寶公; 양개하 15세)을 참해 깨침을 얻었고 숭산의 계단ㆍ소산의 운문ㆍ정주의 보조ㆍ임계의 대각ㆍ숭산의 법왕 등 다섯 대찰을 역주(歷住)했음. 일찍이 금나라 승상 협곡청신의 청에 응해 중도 담자사에 주(住)했고 또 조정의 교지를 받아 연경 경수사에 주석했음. 이후에 소림사로 옮겼는데 법석이 대성(성대)했음. 금 선종 흥정 3년에 시적했음. 나이 70 [불조역대통재30. 대명고승전5. 오등엄통16. 오등전서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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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化】 ①敎導 感化 ▲臨濟語錄 向一切處 游履國土 敎化衆生 ②募化 請求布施 ▲大慧語錄十五 甞思敎中有一段因緣 殃崛摩羅要千人指頭作華冠 然後登王位 已得九百九十九指 唯少一指 要斷其母指塡數 佛知其緣熟 故往化之 殃崛纔擧意 欲下刀取母指時 忽聞振錫聲 遂捨其母指 而問佛敎化一指曰 旣是瞿曇在此 望施我一指頭 滿我所願 ▲宗門武庫 無盡居私第日 適年荒 有道士輩 詣門敎化食米
교화(敎化) ①교도. 감화. ▲임제어록. 일체처를 향해 국토를 유리(游履; 노닐며 경력함)하며 중생을 교화(敎化)하다. ②모화(募化)니 보시를 청구함. ▲대혜어록15. 일찍이 교중에 일단의 인연이 있음을 생각했다. 앙굴마라가 천 사람의 손가락으로 화관(華冠)을 만들고 연후에 왕위에 오르고자 했다. 이미 999 손가락을 얻었고 오직 한 손가락이 모자라 그의 어머니의 손가락을 잘라 숫자를 채우려 했다. 불타가 그 인연이 익었음을 알고 일부러 가서 그를 교화했다. 앙굴이 겨우 뜻을 일으켜 칼을 내리쳐 어머니의 손가락을 취하려 할 때 홀연히 석장을 떨치는 소리를 들었다. 드디어 그의 어머니 손가락을 버리고 불타에계 물어 한 손가락을 교화(敎化)하려 하면서 가로되 이미 이 구담이 여기에 있으니 나에게 한 손가락을 보시하여 나의 소원이 만족하기를 바랍니다. ▲종문무고. 무진이 사제(私第)에 거처하던 날에 연황(年荒; 흉년)을 만났다. 도사의 무리가 있어 문에 이르러 먹을 쌀을 교화(敎化)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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