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假銀城】 祖庭事苑七 假銀城 霍光 漢人 書傳無賣城易角之說 盖出於委巷之劇談 禪人往往資以爲口實 不亦謬乎 ▲聯燈會要八京兆米 僧問 自古上賢 還達眞正理也無 師云 達 云 只如眞正理 作麽生達 師云 當時霍光賣假銀城 與單于契書是甚麽人做 僧云 某甲直得杜口無言 師云 平地敎人作保
가은성(假銀城) 조정사원7. 가은성(假銀城) 곽광(?-前 68)은 한나라 사람이다. 서전(書傳)에 성을 팔아 뿔과 바꿨다는 설이 없다. 대개 위항(委巷; 꼬불꼬불한 골목길)의 극담(劇談; 연극 이야기)에서 나왔거늘 선인(禪人)이 왕왕 자료로 구실을 삼으니 또한 그릇되지 않겠는가. ▲연등회요8 경조미. 중이 묻되 자고로 상현(上賢)이 도리어 진정한 이치에 통달했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이르되 통달했다. 이르되 지여(只如) 진정한 이치를 어떻게 통달합니까. 스님이 이르되 당시에 곽광이 가은성(假銀城)을 팔아서 선우(單于)에게 준 계서(契書; 계약서)는 이 어떤 사람이 만들었는가. 중이 이르되 모갑은 바로 두구무언(杜口無言)을 얻습니다. 스님이 이르되 평지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보증을 하게 하는구나.
【賈誼】 (前200-前168) 洛陽(今河南洛陽東)人 西漢初年著名政論家 文學家 世稱賈生 賈誼少有才名 文帝時任博士 遷太中大夫 受大臣周勃灌嬰排擠 謫爲長沙王太傅 故後世亦稱賈長沙 賈太傅 三年後被召回長安 爲梁懷王太傅 梁懷王墜馬而死 賈誼深自歉疚 抑鬱而亡 時僅三十三歲 司馬遷對屈原賈誼都寄予同情 爲二人寫了一篇合傳 後世因而往往把賈誼與屈原並稱爲屈賈 [百度百科] ▲禪林疏語考證一 賈誼傳曰 受釐坐宣室 索隱曰 音禧 福也 ▲五燈全書九十八遜菴玉 賈誼長沙弔屈原 偸桃定是東方朔
가의(賈誼) (前 200-前 168) 낙양(지금의 하남 낙양 동쪽) 사람. 서한 초년의 저명한 정론가며 문학가. 세칭이 가생(賈生)임. 가의는 어릴 적에 재명(才名)이 있었으며 문제(文帝) 때 박사에 임명되었다가 대중대부로 승직(昇職; 遷)했음. 주발과 관영의 배제(排擠)를 받아 강직(降職: 謫)되어 장사왕의 태부(太傅)가 된지라 고로 후세에 또한 가장사(賈長沙)ㆍ가태부(賈太傅)로 칭명함. 3년 후에 부름을 입어 장안으로 돌아와 양회왕의 태부가 되었음. 양회왕이 말에서 떨어져 죽자 가의가 깊이 스스로 겸구(歉疚; 꺼림칙함. 송구함)하여 억울하여 죽었으니 때에 겨우 33세였음. 사마천이 굴원과 가의에 대해 모두 동정(同情)을 주어 두 사람을 위해 1편(篇)의 합전(合傳)을 썼으니 후세에 이로 인해 왕왕 가의와 굴원을 싸잡아 굴가(屈賈)로 병칭함 [백도백과]. ▲선림소어고증1. 가의전(賈誼傳)에 가로되 희(釐)를 받아 선실(宣室)에 앉았다. 색은(索隱; 索引)에 가로되 음이 희(禧)니 복이다. ▲오등전서98 손암옥. 가의장사(賈誼長沙)가 굴원을 조위하나니 복숭아를 훔침은 꼭 이 동방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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