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二 雪竇頌古 43 칠십이방(七十二棒)

태화당 2019. 9. 5. 08:02

七十二棒

雲門 擧 雪峰云 我且死馬醫 一口呑盡乾坤 師云 山河大地何處得來 直饒者裏倜儻分明 特舍兒七十棒 反成一百四十 見懷禪師重修雲門錄 與今摹印者頗殊 師製序引云 大師諱文偃 嗣雪峯存禪師 其初 廣王劉氏命住韶州靈樹 後遷居雲門 賜號匡眞 演化五十餘載 去此一百三十祀 乃有陞堂擧古垂代言句 抑有示者 流落華夏禪叢 好事者 集而摸板焉 丞數因禪人入室請益 頗見語句訛謬 因緣差錯 噫 去聖時遙 魚目相濫 燕金楚玉 渾有塵沙 秋菊春蘭 聞其採 常思其芟削 未協素願 今年夏住秋浦 警衆外 聊得披覧斯文 乃援筆修之 刪繁補闕 遂成其秩 庶使游聖門者 必堂奧 適大道者 罔惑多歧 子辭藻素謬慚 非作者之文 直筆撫實 聊序其由 哲者無爲文字之累矣 時皇祐五年 五月望日 住秋浦景德禪院傳法沙門義懷述로 의심됨. 으로 의심됨.

) --> 

운문이 하다. 설봉이 이르되 내가 또 死馬醫師니 한입에 건곤을 삼켜 없애노라. 스님(운문)이 이르되 산하대지를 어느 곳에서 얻어 오겠는가. 바로 넉넉히 이 속에서 倜儻(은 뛰어날 척. 은 빼어날 당. 곧 뜻이 크고 기개가 있음)하여 분명하더라도 特舍兒七十棒이 도리어 一百四十을 이루느니라. 義懷禪師(雪竇重顯法嗣. 雲門下四世)重修雲門錄을 보니 지금의 摹印(는 모뜰 모)한 것과 자못 다르다. 스님이 를 지으면서 인용해 이르되 大師文偃이며 雪峯存禪師를 이었다. 그 처음에 廣王(廣州君王)劉氏(卷第一劉隱이라 했음)가 칙명해 韶州 靈樹에 거주했고 뒤에 운문으로 옮겨 거주했다. 匡眞이란 호를 주었으며 演化함이 五十餘載니 여기에서 一百三十祀(는 해 사)가 떨어진다. 이에 陞堂 擧古 垂代한 언구가 있으며 또한 개시함이 있은 것은 華夏(中國)禪叢流落했고 好事者가 모아서 摸板(는 본뜰 모)했다. 丞數(은 도울 승. 는 헤아릴 수)컨대 禪人(參禪하는 사람)入室請益(이익을 청함이니 學家의 물음에 師家가 답해 이익을 줌)함을 따라() 자못 語句訛謬와 인연의 差錯을 보았다. (탄식할 희)聖人이 떠난 때가 오래라 魚目이 서로 넘치며 塵沙에 섞여 있으며 秋菊春蘭은 그 採集을 들음이 없다. 늘 그 芟削(은 벨 삼)을 생각했으나 본디의 에 맞지 않았는데 금년 여름 秋浦에 머물면서 대중을 警策하는 외에 애오라지 이 글을 펼쳐 봄을 얻었다. 이에 필을 당겨 그것을 修訂刪繁補闕(번거로운 것은 깎고 빠진 것은 보충함)하여 드디어 그 帙冊(이 같음. 책갑 질)을 이루었으니 바라건대 聖門에 노니는 자는 반드시 堂奧에 오르며 대도에 적합한 자는 많은 갈림길에 혹란됨이 없게 하소서. 子辭藻(. 는 글 조. 附隨的 偏頗的 辭藻)는 본디 謬慚인지라 作者의 글이 아니므로 直筆을 좇(는 좇을 무. 따를 무) 애오라지 그 유래를 하노니 哲者(은 밝을 철)는 문자에 係累 됨이 없을지어다. 때는 皇祐五年1053 五月 보름날에 秋浦의 경덕선원에 거주하는 傳法沙門 義懷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