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十二棒
雲門 擧 雪峰云 我且死馬醫 一口呑盡乾坤 師云 山河大地何處得來 直饒者裏倜척儻分明 特舍兒七十棒 反成一百四十 見懷禪師重修雲門錄 與今摹印者頗殊 師製序引云 大師諱文偃 嗣雪峯存禪師 其初 廣王劉氏命住韶州靈樹 後遷居雲門 賜號匡眞 演化五十餘載 去此一百三十祀 乃有陞堂擧古垂代言句 抑有示者 流落華夏禪叢 好事者 集而摸板焉 丞數因禪人入室請益 頗見語句訛謬 因緣差錯 噫희 去聖時遙 魚目相濫 燕金楚玉 渾有塵沙 秋菊春蘭 篾聞其採 常思其芟삼削 未協素願 今年夏住秋浦 警衆外 聊得披覧斯文 乃援筆修之 刪繁補闕 遂成其秩 庶使游聖門者 必外堂奧 適大道者 罔惑多歧 子辭藻素謬慚 非作者之文 直筆撫實 聊序其由 哲者無爲文字之累矣 時皇祐五年 五月望日 住秋浦景德禪院傳法沙門義懷述▶篾은 蔑멸로 의심됨. 外는 升으로 의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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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이 擧하다. 설봉이 이르되 내가 또 死馬의 醫師니 한입에 건곤을 삼켜 없애노라. 스님(운문)이 이르되 산하대지를 어느 곳에서 얻어 오겠는가. 바로 넉넉히 이 속에서 倜儻(倜은 뛰어날 척. 儻은 빼어날 당. 곧 뜻이 크고 기개가 있음)하여 분명하더라도 特舍兒의 七十棒이 도리어 一百四十을 이루느니라. 義懷禪師(雪竇重顯의 法嗣. 雲門下四世)의 重修雲門錄을 보니 지금의 摹印(摹는 모뜰 모)한 것과 자못 다르다. 스님이 序를 지으면서 인용해 이르되 大師의 諱는 文偃이며 雪峯存禪師를 이었다. 그 처음에 廣王(廣州의 君王)인 劉氏(위 卷第一에 劉隱이라 했음)가 칙명해 韶州 靈樹에 거주했고 뒤에 운문으로 옮겨 거주했다. 匡眞이란 호를 주었으며 演化함이 五十餘載니 여기에서 一百三十祀(祀는 해 사)가 떨어진다. 이에 陞堂 擧古 垂代한 언구가 있으며 또한 개시함이 있은 것은 華夏(中國)의 禪叢에 流落했고 好事者가 모아서 摸板(摸는 본뜰 모)했다. 丞數(丞은 도울 승. 數는 헤아릴 수)컨대 禪人(參禪하는 사람)이 入室해 請益(이익을 청함이니 學家의 물음에 師家가 답해 이익을 줌)함을 따라(因) 자못 語句의 訛謬와 인연의 差錯을 보았다. 噫(탄식할 희)라 聖人이 떠난 때가 오래라 魚目이 서로 넘치며 燕의 金과 楚의 玉이 塵沙에 섞여 있으며 秋菊과 春蘭은 그 採集을 들음이 없다. 늘 그 芟削(芟은 벨 삼)을 생각했으나 본디의 願에 맞지 않았는데 금년 여름 秋浦에 머물면서 대중을 警策하는 외에 애오라지 이 글을 펼쳐 봄을 얻었다. 이에 필을 당겨 그것을 修訂해 刪繁補闕(번거로운 것은 깎고 빠진 것은 보충함)하여 드디어 그 帙冊(帙은 秩과 用이 같음. 책갑 질)을 이루었으니 바라건대 聖門에 노니는 자는 반드시 堂奧에 오르며 대도에 적합한 자는 많은 갈림길에 혹란됨이 없게 하소서. 子辭藻(子는 副며 偏임. 藻는 글 조. 곧 附隨的 偏頗的 辭藻)는 본디 謬慚인지라 作者의 글이 아니므로 直筆로 實을 좇아(撫는 좇을 무. 따를 무) 애오라지 그 유래를 序하노니 哲者(哲은 밝을 철)는 문자에 係累 됨이 없을지어다. 때는 皇祐五年1053 五月 보름날에 秋浦의 경덕선원에 거주하는 傳法沙門 義懷가 述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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