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陵梵刹志】 五十三卷 明代葛寅亮撰 書中記南京大中小各寺共計一七二座 廢寺十五座 仿楊衒之洛陽伽藍記而體裁不同 不僅述寺觀 亦兼述祠政 首錄御製集 欽錄集 三卷以下則分述各寺 四十九卷爲南藏目錄 五十卷以下載各寺之公費資財等之條例 爲考金陵佛刹遺址及六朝佛敎史之重要文獻 明萬曆三十五年(1607) 南京僧錄司刊 天啓七年(1627)補刊序文本 收於中國佛寺史志彙刊第一輯
금릉범찰지(金陵梵刹志) 53권. 명대 갈인량(葛寅亮)이 지었음. 서책 중에 남경의 대중소 각 사원 공계 172좌(座; 양사)와 폐사(廢寺) 15좌를 기술했음. 양현의 낙양가람기를 모방했으나 체재가 같지 않음. 겨우 사관(寺觀)만 서술했음만이 아니라 또한 겸해서 사정(祠政)도 기술했음. 머리에 어제집(御製集)과 흠록집을 수록했고 3권 이하는 곧 각 사원을 분류해 기술했음. 49권은 남장목록이 되며 50권 이하는 각 사원의 공비자재(公費資財) 등의 조례(條例)를 기재했음. 금릉 불찰의 유지(遺址) 및 6조(朝) 불교사를 고찰할 중요한 문헌임. 명 만력 35년(1607) 남경승록사에서 간행했으며 천계 7년(1627) 서문본(序文本)을 보간(補刊)했음. 중국불사사지휘간 제1집에 수록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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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陵巖】 唐代牛頭宗僧金陵智巖 詳見智巖
금릉암(金陵巖) 당대 우두종승 금릉지암이니 상세한 것은 지암(智巖)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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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陵淸涼院文益禪師語錄】 見法眼文益禪師語錄
금릉청량원문익선사어록(金陵淸涼院文益禪師語錄) 법안문익선사어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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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離】 (?-1673) 淸代僧 字卽覺 黃埔(今屬廣州)黃氏 讀法華經有省 遂披緇出家 隨天然函昰入匡廬 修行勤苦 一日聞鐘聲得悟 天然許之 將付法 偶病 自知時至 出別大衆 說偈曰 懸崖撒手風猶晩 未上山時意若何 其從弟眞佛 挈其子角子出家 角子九歲成僧 不數年 遂悟大乘 住棲賢 有語錄行世 [光緖廣州府志一四一 道光廣東通志三二八]
금리(今離) (?-1673) 청대승. 자는 즉각이며 황포(지금 광주에 속함) 황씨. 법화경을 읽다가 깨침이 있었으며 드디어 피치(披緇)하고 출가했음. 천연함하(天然函昰)를 따라 광려에 들어가 수행하며 근고했음. 어느 날 종소리를 듣다가 깨침을 얻었으며 천연이 그것을 허가했음. 장차 부법하려는데 우연히 병들었으며 스스로 때가 이르렀음을 알고 나가서 대중에게 고별했음. 게를 설해 가로되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음은 풍류가 오히려 늦나니 산에 오르지 않았을 때는 뜻이 어떠한가. 그의 종제(從弟)인 진불도 그 아들 각자를 이끌고 출가했는데 각자는 9세에 중이 되었고 몇 년 안되어서 드디어 대승을 깨쳤으며 서현에 머물렀고 어록이 있어 세상에 유행함 [광서광주부지141. 도광광동통지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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