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자역주 조정사원

석자역주(釋字譯註) 조정사원(祖庭事苑) 卷第六 法眼 30 조단(雕檀)

태화당 2019. 9. 7. 11:28

雕檀는 새길 조. 彫刻할 조.

見池陽問優塡雕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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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양문의 우전조상(卷第五)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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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길 간. 깎을 간.

丘寒切 削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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丘寒切이니 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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奕奕은 클 혁. 아름다울 혁. 빛날 혁. 원음이 역.

音亦 太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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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 이니 (와 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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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與

音余 與歟同 語終之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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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 여니 (어조사 여)와 같음. 말을 마치는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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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名

尋僧史 師號遠起梁武帝 號婁約法師 次隋煬帝號智顗禪師竝爲智者 無大師二字 唐中宗號萬回爲法雲公 加公一字 玄宗開元中 有慧日法師 中宗朝 得度師義淨遊西域回 進眞容梵夾 賜號慈敏 亦未行大師之字 穆宗朝 天平軍節度使劉總奏乞出家 賜紫衣 號大覺師 止師一字 至懿宗朝 咸通十一年 十一月 十四日 延慶節 因內談論左街雲顥 賜三慧大師 右街僧徹 賜淨光大師 師號 懿宗朝始也 顥 音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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僧史尋究하니 師號는 멀리 梁武帝에서 일어났으니 婁約法師라고 호했다. 다음엔 隋煬帝(재위 605-616)智顗禪師라고 호했으며 아울러 智者라 했지만 大師二字가 없었다. 唐中宗(재위 684-709)萬回를 호해 法雲公이라 했는데 이란 一字를 더했다. 玄宗(재위 712-756) 開元中713-740慧日法師가 있었다. 中宗朝得度師 義淨(635-713)이 서역에 노닐다 돌아와서 眞容(참모습을 模寫한 그림이나 . 에선 佛眞容을 가리킴. 佛祖統紀卷第四十에 이르기를 聖歷元年698 五月 義淨三藏西竺으로부터 돌아왔다. 車駕上東門에 거둥하여 맞이해 위로하고 조칙으로 바친 바 金剛座 佛眞容 舍利 梵經佛授記寺道場에 안치하고 대중을 모아 翻譯케 했다)梵夾(東西的器具를 끼움임. 梵夾이란 것은 梵葉經이니 으로써 그것을 끼웠으므로 이를 일러 梵夾이라 함)進上하자 慈敏이란 호를 주었으나 또한 大師란 글자를 행하지 않았다. 穆宗(재위 821-824)天平軍節度使 劉總奏乞(奏請乞求)하여 출가하자 紫衣를 주고 大覺師라 호했으니 단지 師 一字였다. 懿宗(재위 859-873)에 이르러 咸通十一年870 十一月 十四日 延慶節內殿에서 담론함으로 인하여 左街雲顥에게 三慧大師를 주고 右街僧徹에게 淨光大師를 주었다. 師號懿宗朝에 비롯했다(師號는 멀리 以下大宋僧史略卷下에 나옴). 는 음이 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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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世

五代亂離 十國徧霸 劉陟據廣州稱漢 僭帝號 據嶺南北四十七州 至大有十五年卒 子玢立號二世 陟更名龑 音儼 音彬 으로 의심됨. 宗統編年卷之十八으로 지어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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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代亂離(전쟁이나 분쟁 따위로 세상이 어지러워진 事態)十國徧霸(두루 覇者가 됨. 혹은 偏覇로 의심됨)했는데 劉陟(재위 917-942)廣州雄據하며 이라 일컬었고 帝號僭稱(멋대로 분수에 넘치게 스스로 임금이라 이름. 또는 그 칭호)했음. 嶺南北 四十七州根據하다가 大有十五年942에 이르러 하고 아들 이 옹립되어 二世라 호했으며 更名이라 했음. 이 엄임 은 음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