解虎錫
齊高僧稠조禪師 在懷州王屋山習禪間 有虎闘 師往 以錫杖解之 虎遂各去 又曇詢禪師 因山行値二虎相闘 累時不歇 詢乃執錫分之 以身爲翳예 語曰 同居林籔 計無大乖 幸各分路 虎仾頭受命 飮氣而散 又稠禪師磁州石刻云 昔齊高歡帝時 稠隱於都之西北一百二十里 有桃源山定晉巖 巖下有寺曰均慶 其巖嵌감空 高以覆寺 巖之中去地百許尺 危構一閣 以設禪榻탑 獨木爲梯 乃師平日宴寂之地 師一日聞澗下虎鬬 經日不已 遂往以錫解之 後二虎常隨師左右 師因有頌書於巖壁間云 本自不求名 剛被名求我 巗前解二虎 障却第三果 多引王屋者 由僧傳也▶籔(笊籬 수. 휘 수)는 藪로 의심됨.
齊나라의 高僧 稠조禪師(479-559. 續高僧傳卷第十六에 이르되 姓이 孫이다. 齊 乾明元年559 四月 十三日 辰時에 극히絶 患惱가 없이 端正히 앉아 山寺에서 卒했다. 春秋는 八十有一이며 五十夏이다)가 懷州 왕옥산에 있으면서 習禪하던 사이 범의 다툼이 있었다. 스님이 가서 錫杖으로써 그것을 떼어 놓자 범이 드디어 각기 떠났다. 또 曇詢禪師(520-599. 續高僧傳卷第十六에 이르되 俗姓은 楊氏며 弘農의 華陰 사람이다. 開皇末年 柏尖山寺에서 죽었다. 춘추는 八十五이다)가 山行하다가 二虎가 서로 다투는데 여러 시간 동안 쉬지 않음으로 인하여 詢이 이에 석장을 가지고 그것을 분리하고 몸으로써 가리면서 말해 가로되 林藪(藪는 늪 수. 수풀 수)에 동거하면서 생계에 크게 어긋남이 없어야 하나니 바라건대 각기 分路(함께 길을 가다가 도중에 갈라 따로 감)하라. 범이 머리를 숙이고 명령을 받더니 飮氣하며 흩어졌다. 또 稠禪師의 磁州 石刻에 이르되 옛적에 齊의 高歡帝(496-547. 北齊의 創始者. 後魏를 東西로 分裂하고 東魏의 實權을 잡았음) 때 稠가 도읍의 서북 일백이십 리에 은거했는데 桃源山 定晉巖이 있었고 巖下에 절이 있어 가로되 均慶이다. 그 巖은 깊고(嵌은 산 깊을 감) 비었다. 高煥이 覆寺(절의 지붕을 덮는다는 뜻이니 곧 절을 세움)하였는데 巖의 중앙에 땅에서 떨어지기 百尺 가량에 一閣을 높이(危) 構造하고 禪榻(禪牀)을 시설했으며 외나무로 사다리를 만들었다. 곧 스님이 평일에 宴寂(편안하고 고요히 쉼)하던 땅이다. 스님이 어느 날 개울 아래 범의 싸움을 들었는데 날이 경과해도 말지 않는지라 드디어 가서 석장으로써 그것을 떼어 놓았다. 뒤에 二虎가 늘 스님의 左右를 따랐다. 스님이 인하여 頌이 있어 巖壁 사이에 썼는데 이르되 본디 스스로 이름을 求하지 않았건만/ 굳이(剛) 이름이 나를 求함을 입었네/ 巗前에 二虎를 떼어 놓아/ 第三果(阿那含果)를 障却했도다. 많이 왕옥산을 인용하는 것은 僧傳을 因由한 것임.
法財
法財有七 一聞 二信 三戒 四定 五進 六捨 七慚愧
法財에 일곱이 있음. 一은 聞이며 二는 信이며 三은 戒며 四는 定이며 五는 進이며 六은 捨며 七은 慚愧임.
龍象
大毗婆沙云 有大龍象 以信爲手 以捨爲牙 以慧爲頭以念爲頸 於其兩肩 擔集善法
대비바사(卷第一百三)에 이르되 大龍象이 있나니 信으로서 손을 삼고 捨로써 어금니를 삼고 慧로써 머리를 삼고 思念으로써 목을 삼고 그 두 어깨에 善法을 擔集한다.
蹴蹋▶蹴은 찰 축. 蹋은 밟을 탑.
上子六切 下敵盍합切 踐也
上은 子六切임. 下는 敵盍합切이니 밟음임.
三乘
一聲聞 二緣覺 三菩薩 乘以負載爲義
一은 성문이며 二는 연각이며 三은 보살임. 乘은 負載로써 뜻을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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