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119쪽

태화당 2019. 11. 5. 10:28

四安樂行法華經安樂行品所說之四種安樂行 安行法華之法也 一身安樂行 二口安樂行 三意安樂行 四誓願安樂行 傳燈錄二十七天台智者 思(慧思)一見乃謂曰 昔靈鷲同聽法華經 今復來矣 卽示以普賢道場 說四安樂行

사안락행(四安樂行) 법화경 안락행품에서 설한 바의 4종 안락행이니 법화를 안행(安行; 안락하게 행함)하는 법임. 1. 신안락행. 2. 구안락행. 3. 의안락행. 4. 서원안락행. 전등록27 천태지자. (혜사)가 한 번 보고 곧 일러 가로되 옛적에 영취에서 법화경을 함께 들었는데 여금에 다시 왔구나. 곧 보현도량을 보이고 4안락행(安樂行)을 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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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案位如僧堂四板頭 [象器箋二] 敕修淸規七衆寮結解特爲衆湯 光伴與寮元分手位 寮長對面位 大衆依戒四案位

사안위(四案位) 승당의 4판두(板頭)와 같음 [상기전2]. 칙수청규7 중료결해특위중탕. 광반(光伴)과 요원(寮元)은 분수위며 요장은 대면위다. 대중은 계()에 의해 4안위(案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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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菴睿元代僧 未詳法嗣 住江州廬山圓通寺 [增集續傳燈錄六]

사암예(思菴睿) 원대승. 법사가 미상이며 강주 여산 원통사에 주()했음 [증집속전등록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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獅巖采永朝鮮國僧采永號獅巖 詳見采永

사암채영(獅巖采永) 조선국승 채영의 호가 사암이니 상세한 것은 채영(采永)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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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野四方之野 禪門拈頌集第二四六則 金山元頌 行履從來異類中 不知頭角與誰同 若㘅水草來相見 擺尾搖頭四野風

사야(四野) 사방의 들. 선문염송집 제246. 금산원이 송하되 행리가 종래로 이류 가운데니/ 두각이 누구와 같은지 알지 못한다/ 만약 수초(水草)를 물고 와서 상견한다면/ 사야(四野)의 바람에 꼬리 치고 머리 흔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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闍夜多北天竺人 西天第二十祖 父母素信三寶 然坎坷多疾 師遂生不平之疑 後於中天竺遇鳩摩羅多尊者 尊者釋以因果罪福之說 師頓釋所疑 遂出家受具足戒 竝嗣其法 後至羅閱城(王舍城) 敷揚頓敎 當時學衆唯尙辯論 爲首者名爲婆修盤頭(世親) 常日僅一食 晝夜不臥 六時禮佛 淸淨無欲 爲衆所歸 師遂度化之 臨入滅時 卽付法於婆修盤頭 [寶林傳四 祖堂集二 傳燈錄二]

사야다(闍夜多) 북천축 사람이며 서천 제20. 부모가 본디 3()를 믿었지만 그러나 감가(坎坷; 不遇)하고 질병이 많았음. 스님이 드디어 평등하지 못하다는 의심을 내었음. 후에 중천축에서 구마라다존자(鳩摩羅多尊者)를 만났는데 존자가 인과죄복(因果罪福)의 설()로써 해석하자 스님이 문득 의심했던 바가 풀렸고 드디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라열성(羅閱城; 王舍城)에 이르러 돈교(頓敎)를 부양(敷揚)했는데 당시의 학중(學衆)은 오직 변론(辯論)을 숭상했음. 우두머리가 되는 자의 이름이 바수반두(婆修盤頭; 世親)였는데 늘 하루에 겨우 1()하고 주야로 눕지 않았으며 육시(六時)에 예불했으며 청정하여 무욕(無欲)이라 대중이 귀의하는 바였음. 스님이 드디어 그를 도화(度化)하였고 입멸에 임한 때 곧 바수반두에게 부법했음 [보림전4. 조당집2. 전등록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