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蓑衣】 用棕櫚皮編成的雨衣 ▲五燈全書五十五石室祖瑛 見一蓑衣婦人 扣頭請師應身爲國王
사의(蓑衣) 종려의 껍질을 사용해 엮어 만든 우의(雨衣). ▲오등전서55 석실조영. 한 사의(蓑衣) 부인을 보았는데 머리를 조아리며(扣頭) 스님의 응신(應身)이 국왕이 되라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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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依行】 緇門警訓註上 四依者 一常行乞食 二著糞掃衣 三樹下塚間 四有病以腐爛藥治之也 陳腐爛壞之藥 以治病 言少價而不貴者也 ▲緇門警訓二 淸淨活命已沾八聖道中 儉約修身卽預四依行內
사의행(四依行) 치문경훈주상. 4의(依)란 것은 1은 늘 걸식을 행하며 2는 분소의(糞掃衣)를 입으며 3은 나무 아래와 무덤 사이며 4는 병이 있으면 부란약(腐爛藥)으로 그것을 치료함이다. 진부(陳腐)한 난괴(爛壞; 썩어 문드러지다)의 약으로 병을 치료함이니 말하자면 적은 값이면서 귀하지 않은 것이다. ▲치문경훈2. 청정하게 활명(活命)하니 이미 8성도(聖道) 가운데 젖고(沾) 검약(儉約; 검소하게 절약함)으로 수신(修身)하니 곧 사의행(四依行) 안에 참예(參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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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頤】 (1376-1432) 明代臨濟宗僧 俗姓李 字希古 號簡菴 佛鑑 嘉興(今屬浙江)人 年十七依萬壽天宇淨公受業 室中因緣不契 憤然走靈隱謁時菴敷 後嗣其法 建文二年(1400) 出主杭州崇福寺 永樂四年(1406) 以高僧徵修大典 總持釋敎 十五年(1417) 詔令住持中天竺 不久 徵至京師 校勘藏典 書成 遷至杭州淨慈寺 [續燈存稾七 淨慈寺志十二]
사이(師頤) (1376-1432) 명대 임제종승. 속성은 이(李)며 자는 희고며 호는 간암ㆍ불감이니 가흥(지금 절강에 속함) 사람. 나이 17에 만수 천우정공(天宇淨公)에게 의지해 수업했음. 실중에서 인연이 계합하지 못했고 분연(憤然)히 영은으로 달려가 시암부(時菴敷)를 참알했으며 후에 그의 법을 이었음. 건문2년(1400) 출세해 항주 숭복사를 주지(主持)했고 영락 4년(1406) 고승을 불러 대전(大典)을 편수(編修)하면서 석교(釋敎)를 총지(總持)하게 했음. 15년(1417) 조령으로 중천축에 주지했고 오래지 않아 부름으로 경사에 이르러 장전(藏典)을 교감(校勘)했음. 서책이 이루어지자 옮겨 항주 정사사에 이르렀음 [속등존고7. 정자사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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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夷】 ①卽東夷西戎南蠻北狄 夷 古代中原以外各族的蔑稱 ▲禪門拈頌集第一一六四則 眞如喆頌 法眼持來付與誰 三聖推僧決衆疑 將軍令擧群夫駭 直得盲聲徹四夷 ②四波羅夷之略 ▲汾陽語錄下 究七聚五篇之奧 窮四夷二過之微
사이(四夷) ①즉 동이ㆍ서융ㆍ남만ㆍ북적이니 이(夷)는 고대 중원 이외의 각 민족의 멸칭(蔑稱). ▲선문염송집 제1164칙. 진여철이 송하되 법안을 가져와서 누구에게 부여하나/ 삼성(三聖)이 추승(推僧)하여 대중의 의심을 해결했다/ 장군이 영을 들매 군부(群夫; 뭇 사내)가 놀라나니/ 바로 맹성(盲聲)이 4이(夷)에 사무침을 얻었다. ②4바라이(波羅夷)의 약칭. ▲분양어록하. 칠취오편(七聚五篇)의 비오(秘奧)를 연구하고 사이이과(四夷二過)의 미묘를 궁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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