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誦】 坐禪誦經 ▲無準和尙奏對語錄 朝夕禪誦 仰報聖恩
선송(禪誦) 좌선하고 송경함. ▲무준화상주대어록. 조석으로 선송(禪誦)하며 성은에 우러러 보답하다.
【善修】 ①宋代雲門宗僧 依保寧子英受法 住廬州羅漢寺 [續燈錄二十五 續傳燈錄十八] ②(1543-1615) 朝鮮國僧 古帶方獒樹(全羅北道南原)人 俗姓金 號浮休 師幼隨頭流山(智異山)之信明法師出家 參芙蓉靈觀而得證 其人身長腹大 修眉豐頰 然僅存左手 得法後 遍覽相國盧守愼之藏書 又善書道 墨蹟强勁俊秀 與松雲惟政齊名 時人稱爲二難 豐臣秀吉入侵之時 隱於德裕山 亂平後赴伽沒山海印寺 會明將李宗城 曾爲國王光海君講說法要 王賜以紫襴方袍 碧綾長袗 綠綺重襦 金剛念珠等 竝於奉印寺設齋爲證 齋畢歸山 僧俗爭相問道者達七百餘人 光海君七年(1614) 從曹溪之松廣寺遷居七佛寺 翌年示寂 世壽七十三 門人茶毘之 竝於海印 松廣 七佛 百丈等四處建塔 安置靈骨 碧巖覺性受師付法 爲之編輯詩文集 卽浮休堂集五卷 朝鮮中期以後之朝鮮禪宗系統 僅限於西山浮休兩師之法系 [松廣寺嗣院事蹟碑(收於朝鮮金石總覽下) 海東佛祖源流 白谷處能之弘覺登階碑銘幷序(收於朝鮮佛敎通史上編)]
선수(善修) ①송대 운문종승. 보녕자영에게 의지해 법을 받았고 여주 라한사에 거주(住)했음 [속등록25. 속전등록18] ②(1543-1615) 조선국승. 옛 대방(帶方) 오수(獒樹; 전라북도 남원) 사람이며 속성은 김(金)이며 호는 부휴(浮休). 스님은 어릴 적에 두류산(頭流山; 지리산)의 신명법사(信明法師)를 따라 출가했으며 부용영관(芙蓉靈觀)을 참알(參謁)해 득증(得證)했음. 그 사람은 몸이 장대하고 배가 컸으며 긴 눈썹에 넉넉한 뺨이었음. 그러나 겨우 왼손만 존재했음. 법을 얻은 후에 상국(相國) 노수신(盧守愼)의 장서(藏書)를 두루 열람했음. 또 서도(書道)를 잘해 묵적(墨蹟)이 강경(强勁)하고 준수(俊秀)했으며 송운유정(松雲惟政)과 이름을 가지런히 해 당시의 사람들이 이난(二難)이라 일컬었음. 풍신수길(豐臣秀吉)이 들어와 침략했을 때 덕유산에 은거했으며 왜란이 평정된 후 가몰산(伽沒山) 해인사에 다다라 명장(明將) 이종성(李宗城)을 만났음. 일찍이 국왕 광해군을 위해 법요를 강설했는데 왕이 자란방포(紫襴方袍. 붉은 襴衫과 반듯한 도포)ㆍ벽릉장진(碧綾長袗. 푸른 비단의 긴 옷)ㆍ녹기중유(綠綺重襦. 푸른 비단의 겹 저고리)ㆍ금강염주(金剛念珠) 등을 주었음. 아울러 봉인사(奉印寺)에서 재(齋)를 베풀고 증사(證師)로 삼았는데 재가 끝나자 산으로 돌아갔음. 승속이 서로 다투며 도를 묻는 자가 7백여 인에 도달했음. 광해군7년(1614) 조계의 송광사(松廣寺)로부터 칠불사(七佛寺)로 옮겨 거주했고 다음해 시적했으니 세수는 73. 문인이 다비(茶毘)하였으며 아울러 해인ㆍ송광ㆍ칠불ㆍ백장 등 네 곳에 탑을 세워 영골(靈骨)을 안치했음. 벽암각성(碧巖覺性)이 스님의 부법(付法)을 받았으며 시문집(詩文集)을 편집했으니 곧 부휴당집(浮休堂集) 5권임. 조선 중기 이후의 조선 선종계통은 겨우 서산(西山)과 부휴(浮休) 두 스님의 법계(法系)에 국한되었음 [송광사사원사적비(조선금석총람하에 수록되었음). 해동불조원류. 백곡처능의 홍각등계비명병서(조선불교통사상편에 수록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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