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44쪽

태화당 2019. 12. 25. 11:49

韓公滉韓滉(723-787) 字太沖 京兆長安(今陝西西安)人 唐代畫家 宰相 太子少師韓休之子 唐玄宗天寶年間 以門蔭入仕 貞元二年(786) 封晉國公 貞元三年去世 年六十五 獲贈太傅 諡號忠肅 [百度百科] 宗鏡錄七十一 前定錄云 昔韓公滉之在中書也 嘗召一吏 不時而至 怒將鞭之 吏曰 某別有所屬 不得遽至 晉公曰 宰相之吏 更屬何人 吏曰 某不幸 兼屬陰官(云云)

한공황(韓公滉) 한황(韓滉; 723-787)이니 자가 태충이며 경조 장안(지금의 섬서 서안) 사람. 당대 화가며 재상이니 태자소사 한휴의 아들. 당 현종 천보년 간 문음(門蔭)으로 입사(入仕)했고 정원 2(786) 진국공에 봉해졌고 정원 3년 세상을 떠났음. 나이는 65며 태부(太傅)를 획증(獲贈)했고 시호는 충숙 [백도백과]. 종경록71. 전정록(前定錄)에 이르되 옛적에 한공황(韓公滉)이 중서(中書)에 있을 적, 일찍이 한 관리를 불렀는데 불시(不時)에 이른지라 노하여 장차 매질하려 했다. 관리가 가로되 모()는 따로 소속이 있어 급하게 이르지 못했습니다. 진공(晉公)이 가로되 재상의 관리가 다시 어떤 사람에게 소속되었는가. 관리가 가로되 모가 불행하게도 음관(陰官)에 겸속(兼屬)했습니다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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閑管與閑手段閑工夫殆同義 從容錄第六十四則 早知今日成閑管 悔不當時用好心

한관(閑管) 한수단, 한공부와 거의 같은 뜻. 종용록 제64. 금일 한관(閑管)이 됨을 일찍 알았더라면 당시에 호심(好心)을 쓰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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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關漢代的邊關 亦泛指邊關 頌古聯珠通集二十八 百萬雄兵入漢關 威如猛虎陣如山 單刀直取顔良首 不是關公也大難(無境徹)

한관(漢關) 한대(漢代)의 변관(邊關). 또한 널리 변관(邊關)을 가리킴. 송고연주통집28. 백만의 웅병(雄兵)이 한관(漢關)에 진입하니/ 위풍은 맹호와 같고 전진(戰陣)은 산과 같다/ 단도로 안량(顔良)의 머리를 바로 취함은/ 이 관공(關公; 關羽)이 아니면 또한 매우 어렵다 (무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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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關喩淸代臨濟宗僧超喩 字漢關 詳見超喩

한관유(漢關喩) 청대 임제종승 초유의 자가 한관이니 상세한 것은 초유(超喩)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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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光 或指韓信與霍光 難定矣 開福道寧語錄上 僧問 千兵易得一將難求時如何 師曰 好手須還欒布作 韓光空望立功勳 禪門拈頌集第二七八則 首山拈 人人盡道 三平中的 莫屈他也無 良久云 機關不是韓光作 莫把胷襟當等閑

한광(韓光) 혹 한신과 곽광을 가리키는가 함. 단정(斷定)하기 어려움. 개복도녕어록상. 중이 묻되 천병(千兵)은 쉽게 얻으나 1()을 구하기 어려울 때 어떻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호수(好手)는 반드시 난포(欒布)의 작략(作略)에 돌려주어야 하나니 한광(韓光)은 공연히 바라보며 공훈을 세우려 한다. 선문염송집 제278. 수산이 염()하되 사람마다 다 말하기를 삼평이 표적을 맞혔다 하거니와 그를 왕굴(枉屈)하게 함이 아닐까. 양구(良久)하고 이르되 기관(機關)이 한광(韓光)의 작략이 아니라면 흉금을 가져다 등한(等閑)에 당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