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165쪽

태화당 2019. 12. 26. 11:45

行珙元代楊岐派僧如珙 又稱行珙 詳見如珙

행공(行珙) 원대 양기파승 여공을 또 행공(行珙)이라 일컬음. 상세한 것은 여공(如珙)을 보라.

) --> 

行果】 ①行業與果報 果報者必依行業之因 緇門警訓三 良以如來行果極圓 窮盡衆生輕重業性 淸代臨濟宗僧 字曠圓 號碩豐 江陵(湖北荊州)人 嗣法木陳道忞 通經敎 能文 住新州龍山 遷潮州靈山 以報資爲唐大顚道場 輯其遺事爲正宏集 [五燈全書七十四 正源略集六] 淸代臨濟宗僧 字赤冶 蓬州(四川蓬安)張氏 初參天童圓悟 後得法於林野通奇 出住吳江積慶及順慶鳳菴 [五燈全書七十九]

행과(行果) 행업과 과보. 과보란 것은 반드시 행업의 인()에 의함. 치문경훈3. 참으로() 여래의 행과(行果)가 극히 원만하여 중생의 경중(輕重)의 업성(業性)을 궁진한다. 청대 임제종승. 자는 광원이며 호는 석풍이니 강릉(호북 형주) 사람. 목진도민(木陳道忞)의 법을 이었고 경교를 통달했고 글에 능했음. 신주 용산에 거주하다가 조주 영산으로 옮겼음. 보자(報資)는 당() 대전(大顚)의 도량인데 그 유사(遺事)를 집록하여 정굉집을 만들었음 [오등전서74. 정원약집6]. 청대 임제종승. 자는 적야며 봉주(사천 봉안) 장씨. 처음에 천동원오를 참했고 후에 임야통기(林野通奇)에게서 득법했음. 출세해 오강 적경 및 순경 봉암에 거주했음 [오등전서79].

) --> 

行寡悔言寡尤禪林疏語考證一 論語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禪林疏語考證一 行寡悔 言寡尤 弗愼厥德

행과회언과우(行寡悔言寡尤) 선림소어고증1. 논어 공자가 가로되 많이 듣되 궐의(闕疑; 의혹을 保留하다)하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말하면 곧 허물이 적다. 많이 보되 위태한 것을 없애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행하면 곧 후회가 적다. 말은 허물이 적어야 하고(言寡尤) 행은 후회가 적어야 하나니(行寡悔) 녹이 그 가운데 있다. 선림소어고증1. 행은 후회가 적고(行寡悔) 말은 허물이 적어야 하나니(言寡尤) 그 덕을 삼가지 않겠는가.


行觀(1616-1681) 淸代臨濟宗僧 字靈機 龍溪(福建漳州)周氏 幼禮金浦九雲慧曇薙染 隨師出嶺 參天童圓悟 越歲復參金粟通容 一夕 雷電驟閃 不覺話頭脫落 因而豁然 留侍十載 乃往湖州鳳山資福 闢草開山 別茅縛屋 禪學之士參請無虛日 有語錄二卷 [宗統編年三十二 五燈全書七十一 正源略集五]

행관(行觀) (1616-1681) 청대 임제종승. 자는 영기며 용계(복건 장주) 주씨. 어릴 적에 금포 구운혜담을 예알하여 치염(薙染)했고 스승을 따라 출령(出嶺)하여 천동원오를 참했음. 해를 넘겨 다시 금송통용(金粟通容)을 참했는데 어느 날 저녁 뇌전(雷電)이 취섬(驟閃; 번쩍거림)하자 불각에 화두가 탈락(脫落)하고 이로 인해 활연(豁然)했고 10() 동안 유시(留侍)했음. 이에 호주 봉산 자복으로 가서 벽초개산(闢草開山)하여 별모(別茅)로 가옥을 엮었고 선학지사(禪學之士)가 참청(參請)하면서 허일(虛日)이 없었음. 어록 2권이 있음 [종통편년32. 오등전서71. 정원약집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