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珙】 元代楊岐派僧如珙 又稱行珙 詳見如珙
행공(行珙) 원대 양기파승 여공을 또 행공(行珙)이라 일컬음. 상세한 것은 여공(如珙)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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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果】 ①行業與果報 果報者必依行業之因 ▲緇門警訓三 良以如來行果極圓 窮盡衆生輕重業性 ②淸代臨濟宗僧 字曠圓 號碩豐 江陵(湖北荊州)人 嗣法木陳道忞 通經敎 能文 住新州龍山 遷潮州靈山 以報資爲唐大顚道場 輯其遺事爲正宏集 [五燈全書七十四 正源略集六] ③淸代臨濟宗僧 字赤冶 蓬州(四川蓬安)張氏 初參天童圓悟 後得法於林野通奇 出住吳江積慶及順慶鳳菴 [五燈全書七十九]
행과(行果) ①행업과 과보. 과보란 것은 반드시 행업의 인(因)에 의함. ▲치문경훈3. 참으로(良) 여래의 행과(行果)가 극히 원만하여 중생의 경중(輕重)의 업성(業性)을 궁진한다. ②청대 임제종승. 자는 광원이며 호는 석풍이니 강릉(호북 형주) 사람. 목진도민(木陳道忞)의 법을 이었고 경교를 통달했고 글에 능했음. 신주 용산에 거주하다가 조주 영산으로 옮겼음. 보자(報資)는 당(唐) 대전(大顚)의 도량인데 그 유사(遺事)를 집록하여 정굉집을 만들었음 [오등전서74. 정원약집6]. ③청대 임제종승. 자는 적야며 봉주(사천 봉안) 장씨. 처음에 천동원오를 참했고 후에 임야통기(林野通奇)에게서 득법했음. 출세해 오강 적경 및 순경 봉암에 거주했음 [오등전서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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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寡悔言寡尤】 禪林疏語考證一 論語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禪林疏語考證一 行寡悔 言寡尤 弗愼厥德
행과회언과우(行寡悔言寡尤) 선림소어고증1. 논어 공자가 가로되 많이 듣되 궐의(闕疑; 의혹을 保留하다)하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말하면 곧 허물이 적다. 많이 보되 위태한 것을 없애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행하면 곧 후회가 적다. 말은 허물이 적어야 하고(言寡尤) 행은 후회가 적어야 하나니(行寡悔) 녹이 그 가운데 있다. ▲선림소어고증1. 행은 후회가 적고(行寡悔) 말은 허물이 적어야 하나니(言寡尤) 그 덕을 삼가지 않겠는가.
【行觀】 (1616-1681) 淸代臨濟宗僧 字靈機 龍溪(福建漳州)周氏 幼禮金浦九雲慧曇薙染 隨師出嶺 參天童圓悟 越歲復參金粟通容 一夕 雷電驟閃 不覺話頭脫落 因而豁然 留侍十載 乃往湖州鳳山資福 闢草開山 別茅縛屋 禪學之士參請無虛日 有語錄二卷 [宗統編年三十二 五燈全書七十一 正源略集五]
행관(行觀) (1616-1681) 청대 임제종승. 자는 영기며 용계(복건 장주) 주씨. 어릴 적에 금포 구운혜담을 예알하여 치염(薙染)했고 스승을 따라 출령(出嶺)하여 천동원오를 참했음. 해를 넘겨 다시 금송통용(金粟通容)을 참했는데 어느 날 저녁 뇌전(雷電)이 취섬(驟閃; 번쩍거림)하자 불각에 화두가 탈락(脫落)하고 이로 인해 활연(豁然)했고 10재(載) 동안 유시(留侍)했음. 이에 호주 봉산 자복으로 가서 벽초개산(闢草開山)하여 별모(別茅)로 가옥을 엮었고 선학지사(禪學之士)가 참청(參請)하면서 허일(虛日)이 없었음. 어록 2권이 있음 [종통편년32. 오등전서71. 정원약집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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