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慧威】 (634-713) 唐代僧 天台宗第七祖 又作惠威 婺州東陽(浙江)人 俗姓劉 幼年出家 受具足戒後 禮謁縉雲之智威硏習天台之學 頓悟三觀之法 時人遂以小威呼之 初居京師天宮寺時 世人稱爲天宮尊者 後歸東陽 山居絶人事 而登門求道之士仍不絶於途 高宗時 與智威同爲朝散大夫四大師 於開元元年示寂 世壽八十 左溪尊者玄朗爲其嗣法弟子 後吳越王敕賜全眞尊者之諡號 [宋高僧傳六 佛祖統紀七 同三十九 百丈淸規證義記七之下] ▲元賢廣錄二十 天宮慧威尊者(云云)
혜위(慧威) (634-713) 당대승. 천태종 제7조. 또 혜위(惠威)로 지음. 무주(婺州) 동양(東陽; 절강) 사람이며 속성은 유(劉).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구족계를 받은 후 진운(縉雲)의 지위(智威)를 예알하여 천태지학(天台之學)을 연습(硏習)했고 삼관지법(三觀之法)을 돈오했음. 당시의 사람들이 드디어 소위(小威)로 그를 호칭했음. 처음 경사(京師) 천궁사(天宮寺)에 거주할 때 세인이 일컬어 천궁존자(天宮尊者)라 했음. 후에 동양(東陽)으로 돌아가 산거하면서 인사(人事)를 단절했으나 등문(登門)하며 구도(求道)하는 사서(士庶)가 그대로 길에서 끊어지지 않았음. 고종 때 지위(智威)와 함께 조산대부(朝散大夫) 4대사(大師)가 되었음. 개원 원년 시적했고 세수는 80. 좌계존자(左溪尊者) 현랑(玄朗)이 그의 사법제자(嗣法弟子)가 됨. 후에 오월왕이 전진존자(全眞尊者)의 시호를 칙사(敕賜)했음 [송고승전6. 불조통기7, 동39. 백장청규증의기7지하]. ▲원현광록20. 천궁 혜위존자(慧威尊者)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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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贇】 宋代雲門宗僧 依天衣義懷悟旨 住平江明因院 [五燈會元十六 普燈錄三]
혜윤(慧贇) 송대 운문종승. 천의의회에게 의지해 지취를 깨쳤고 평강 명인원에 주(住)했음 [오등회원16. 보등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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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恩】 明代臨濟宗僧 字覺初 久依孚中懷信 分座說法 後出世金陵聖泉 遷永嘉雅山及江心 有三會語錄 [五燈全書五十八 續燈存稾八]
혜은(慧恩) 명대 임제종승. 자는 각초(覺初)며 부중회신(孚中懷信)에게 오래 의지했고 분좌설법(分座說法)했음. 후에 금릉 성천에서 출세했고 영가 아산 및 강심으로 옮겼음. 3회(會) 어록이 있음 [오등전서58. 속등존고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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