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慧印】 ①(1271-1337) 宋代雲門宗僧 嗣圓照宗本 住安吉道場寺 [續傳燈錄十四 五燈會元十六] ②(1689-1 764) 日本曹洞宗僧 籍貫未詳 號指月 自稱三光老人 幼年出家 師事加賀大乘寺知燈照玄 後爲成田龍淵寺牧田春翁之法嗣 一說爲月峰快雲之法嗣 師曾於江戶吉祥寺旃檀林大說文字禪 又創建西光寺 西光院 養光寺等 大揚宗風 博學達識 著作頗多 有參同契不能語 寶鏡三昧不能語 金剛茶話 五位顯訣未正語等 與面山 天桂 竝稱爲曹洞宗中興之高僧 明和元年示寂 世壽七十六 [近古禪林叢談 日本禪宗史要]
혜인(慧印) ①(1271-1337) 송대 운문종승. 원조종본(圓照宗本)을 이었고 안길 도량사에 주(住)했음 [속전등록14. 오등회원16]. ②(1689-1764) 일본 조동종승. 적관(籍貫)은 미상이며 호는 지월(指月)이며 자칭이 삼광노인(三光老人). 어린 나이에 출가했고 가하(加賀) 대승사의 지등조현을 사사(師事)했고 후에 성전(成田) 용연사 목전춘옹(牧田春翁)의 법사가 되었는데 일설엔 월봉쾌운(月峰快雲)의 법사라 함. 스님은 일찍이 강호(江戶) 길상사 전단림(旃檀林)에서 문자선을 대설(大說)했음. 또 서광사ㆍ서광원ㆍ양광사 등을 창건했고 종풍을 대양(大揚)했고 박학달식(博學達識)했음. 저작이 파다했으니 참동계불능어ㆍ보경삼매불능어ㆍ금강다화ㆍ오위현결미정어 등이 있음. 면산(面山)ㆍ천계(天桂)와 더불어 병칭(竝稱)이 조동종 중흥의 고승임. 명화 원년 시적했고 세수는 76 [근고선림총담. 일본선종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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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慧因高麗寺志】 十二卷 明代李翥撰 收於中國佛寺史志彙刊第一輯 慧因禪寺位於浙江杭州 後唐天成二年(927)始建 稱慧因禪院 宋代有晉水淨源住持本寺 注釋華嚴諸經義 凡數十種 時高麗國王之子僧義天 至本寺問道於淨源 執弟子禮 義天受敎一年返國 以靑紙金書晉譯華嚴經三百部 竝經閣之費附貢舶以供養淨源法師 俗遂稱院爲高麗寺 淨源卽本寺華嚴敎之始祖 本寺面臨玉岑山 故全稱爲玉岑山慧因高麗華嚴敎寺 簡稱慧因高麗寺 或僅稱慧因寺 明天啓(1621-1627)年間 李翥應寺僧止水之請 編纂寺志 分爲十門 原始 景物 祖德 檀那 宮宇 碑記 傳誌 雜文 題詠 法嗣
혜인고려사지(慧因高麗寺志) 12권. 명대(明代) 이저(李翥)가 찬(撰)했고 중국불사사지휘간(中國佛寺史志彙刊) 제1집에 수록되었음. 혜인선사(慧因禪寺)는 절강 항주에 위치하며 후당 천성 2년(927) 처음 건립했고 명칭이 혜인선원이었음. 송대 진수(晉水)에 정원(淨源)이 있어 본사에 주지했으며 화엄의 여러 경의(經義)를 주석했는데 무릇 수십종(數十種)임. 당시 고려국왕의 아들, 승(僧) 의천(義天)이 본사에 이르러 정원에게 도를 물었고 제자례(弟子禮)를 집지(執持)했음. 의천이 수교(受敎)한 지 1년 만에 반국(返國)하여 청지금서(靑紙金書)의 진역(晉譯) 화엄경 300부와 아울러 경각(經閣)의 비용을 공박(貢舶)에 부쳐 정원법사에게 공양했으며 세속에서 드디어 칭원(稱院)하기를 고려사(高麗寺)라 했음. 정원은 곧 본사 화엄교의 시조며 본사는 옥잠산에 면림(面臨)한지라 고로 전칭하면 옥잠산혜인고려화엄교사(玉岑山慧因高麗華嚴敎寺)가 되고 간칭이 혜인고려사며 혹 근칭(僅稱; 겨우 일컬음)이 혜인사임. 명 천계(1621-1627)년 간 이저(李翥)가 사승(寺僧) 지수(止水)의 청에 응해 사지(寺志)를 편찬했으며 10문으로 분류했으니 원시ㆍ경물ㆍ조덕ㆍ단나ㆍ궁우ㆍ비기ㆍ전지ㆍ잡문ㆍ제영ㆍ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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