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羲軒】 三皇中 太昊庖犧(又作伏羲伏犧)氏與黃帝有熊氏 庖犧 風姓 以木德王 都宛丘 上古之人捕逐禽獸 食肉衣皮難以致之 太昊敎民作網罟 以佃以漁豢養六畜 且以犧牲享神祇 故曰庖犧氏 後世曰伏犧氏 始畫八卦造書契 由是文籍生焉 在位一百一十六年 易曰 伏犧刳木爲舟 剡木爲楫 琴操曰 伏犧作琴修身理性 反其天眞也 通曆曰 伏犧作二十五絃之瑟 以制婚姻之禮 圖經曰 庖犧生陝西鞏昌路秦州成紀縣 母曰華胥 禹貢雍州之域也 ○黃帝 公孫姓 軒轅名 有熊國君少典之子 神農氏爲天子 諸侯相侵伐 神農氏弗能征 諸侯侵陵 最彊暴者惟蚩尤 軒轅修德治兵 與炎帝氏戰而勝之 擒蚩尤於涿鹿殺之(今大都路涿州郡名范陽豫域) 於是諸侯咸歸軒轅 推軒轅代神農氏爲天子 黃帝元年丁亥始立制度 天下不順者從而征之 邑於涿鹿之阿 遷徙無常 帝受河圖 見日月星辰之象 於是始有星官之書 命大撓探五行之情 占斗綱所建 於是始作甲子 命容成造曆 命隷首作算數 命伶倫造律呂 命車區占星氣 容成兼而總之 爲文章以表貴賤 作舟車以濟不通 畫野分州得百里之國萬區 八家爲井 井一爲隣 隣三爲朋 朋三爲里 里五爲邑 邑十爲都 都十爲師 師十爲州 設左右大監 監於萬國 擧封禪之禮 作咸池之樂 遠夷之國莫不入貢 黃帝二十五子 得姓者十四人 帝在位一百一十年 皇甫謐曰 黃帝生陝西鞏昌路秦州壽丘 塚在寧州橋山(雍州之域) 黃帝上昇之地鼎湖(今淅東道處州路仙都山陽域) 蚩尤塚(今東平路闞鄕)高七丈 民常十月祀之 有赤氣出 如疋絳帛 民名爲蚩尤旗 [釋氏稽古略一] ▲宏智廣錄四 功業力爭英雄 劉項時將 太平坐享朴懋 羲軒世人 ▲月江正印語錄上 扇盤媧太古之淳風 播羲軒無私之至化
희헌(羲軒) 3황(皇) 중 태호포희(太昊庖犧; 또 伏羲, 伏犧로 지음)씨와 황제유웅씨(黃帝有熊氏). 포희(庖犧) 풍성(風姓)이며 목덕(木德)으로 왕 노룻했고 완구(宛丘)에 도읍했음. 상고(上古)의 사람들은 새와 짐승을 잡고 쫓았는데 밥과 고기, 의복과 가죽을 이에 이르게 하기가 어려웠던지라 태호(太昊)가 사람들을 가르쳐 망고(網罟; 그물)를 만들게 했으며 밭을 갈고 물고기를 잡고 육축(六畜)을 기르게 했으며 또 희생(犧牲)으로써 신기(神祇; 祇는 토지신)에게 제사 지낸지라 연고로 가로되 포희씨(庖犧氏)며 후세에 가로되 복희씨(伏犧氏)라 했음. 처음으로 8괘(卦)를 그리고 서계(書契)를 만들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문적(文籍)이 생겼음. 재위는 116년임. 역(易)에 가로되 복희가 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었으며 나무를 깎아 노를 만들었다. 금조(琴操)에 가로되 복희가 거문고를 만들어 몸을 닦고 성품을 다스려 그 천진(天眞)에 돌아갔다. 통력(通曆)에 가로되 복희가 25현(絃)의 거문고를 만들었고 혼인의 예를 제정했다. 도경(圖經)에 가로되 포희(庖犧)는 섬서(陝西) 공창로(鞏昌路) 진주(秦州) 성기현(成紀縣)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를 가로되 화서(華胥)다. 우공(禹貢) 옹주(雍州)의 지역이다. ○황제(黃帝) 공손(公孫)은 성이며 헌원(軒轅)은 이름이며 유웅국군(有熊國君)인 소전(少典)의 아들임. 신농씨(神農氏)가 천자가 되자 제후가 서로 침벌(侵伐)했고 신농씨가 능히 정벌하지 못했는데 제후의 침릉(侵陵)에 가장 강포(彊暴)한 자는 오직 치우(蚩尤)였음. 헌원이 덕을 닦고 장병을 다스려 염제씨(炎帝氏)와 전투해 그를 이겼으며 치우를 탁록(涿鹿)에서 사로잡아 그를 죽였음(지금의 大都路 涿州 郡名이 范陽이며 豫의 지역). 이에 제후가 모두 헌원에게 복귀해 헌원을 추대해 신농씨를 대신해 천자로 삼았음. 황제(黃帝) 원년 정해(丁亥)에 처음으로 제도(制度)를 세우고 천하에서 순종하지 않는 자를 따라가서 정벌했음. 탁록(涿鹿)의 언덕에 도읍했다가 무상(無常)으로 천도하여 옮겼음. 황제가 하도(河圖)를 받아 일월성신의 형상(形象)을 보았으며 이에 비로소 성관(星官)의 서(書)가 있었음. 대요(大撓)에게 명하여 5행(行)의 정(情)을 탐구케 했으며 점(占)은 두강(斗綱)이 건립한 것임. 이에 비로소 갑자(甲子)를 만들었고 용성(容成)에게 명령해 책력을 만들고 예수(隷首)에게 명령해 산수(算數)를 만들고 영륜(伶倫)에게 명령해 율려(律呂)를 만들고 거구(車區)에게 명령해 성기(星氣)를 점쳤는데 용성이 겸하여 그것을 총괄했음. 문장(文章)을 만들어 귀천을 표시했고 배와 수레를 만들어 불통(不通)을 구제했음. 들판을 그어 주(州)를 나누니 백 리의 나라가 만구(萬區)였음. 8가(家)를 정(井)으로 삼고 정(井) 1을 린(隣)으로 삼고 린 3을 붕(朋)으로 삼고 붕 3을 리(里)로 삼고 리 5를 읍(邑)으로 삼고 읍 10을 도(都)로 삼고 도 10을 사(師)로 삼고 사 10을 주(州)로 삼았음. 좌우대감(左右大監)을 설치해 만국을 감독했고 봉선(封禪)의 예를 거행했으며 함지(咸池)의 음악을 만들었음. 원이(遠夷)의 국가에서 입공(入貢)하지 않음이 없었음. 황제는 아들이 25인데 성(姓)을 얻은 자가 14인임. 황제는 재위가 110년. 황보밀(皇甫謐)이 가로되 황제는 섬서(陝西) 공창로(鞏昌路) 진주(秦州) 수구(壽丘)에서 태어났다. 무덤이 영주(寧州) 교산(橋山; 雍州之域)에 있다. 황제가 상승(上昇)한 땅은 정호(鼎湖; 지금의 淅東道 處州路 仙都山陽 지역)다. 치우총(蚩尤塚; 지금의 東平路 闞鄉)은 높이가 7장(丈)이다. 주민이 늘 10월에 그를 제사 지낸다. 적기(赤氣)가 나옴이 있는데 마치 한 필의 붉은 비단과 같다. 주민이 이름해 치우기(蚩尤旗)라 한다 [석씨계고략1]. ▲굉지광록4. 공업(功業)을 힘으로 다투는 영웅은 유항(劉項) 때의 장군이며 태평에 앉아서 박무(朴懋; 懋는 무성할 무. 넉넉할 무)를 향유함은 희헌(羲軒) 시대의 사람이다. ▲월강정인어록상. 반왜(盤媧; 盤古와 女媧)의 순풍(淳風)을 부채질하고 희헌(羲軒)의 무사(無私)의 지화(至化)를 전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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