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사교의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11

태화당 2020. 10. 11. 14:13

海東; 발해(渤海)의 동쪽. 또 지금의 한국의 고시(古時)의 별칭(別稱).

贄弊; ()는 고대에 초차(初次)로 존장(尊長)을 배견(拜見)하면서 보낸 바의 예물이며 폐()는 폐()와 통하며 고대에 궤증(饋贈; 선물)에 썼던 증백(繒帛; 비단)이니 인신(引申; 轉義)하여 회뢰(賄賂)가 됨.

高麗國君; 고려 광종(光宗; 949-975)을 가리킴.

報聘; 의사(意思)는 이 사신을 파견해 타국(他國)을 답방(答訪).

諦觀; 생몰년 미상. 천태산방외지8(天台山方外志八)에 이르되 고려체관법사(高麗諦觀法師) 고려국 사람이다. 처음 오월왕(吳越王)이 정광법사(淨光法師; 義寂)를 불러 강경(講經)했는데 태교(台敎)가 해동(海東)에 유산(流散)된 일을 언급(言及; )함으로 인해 이에 왕이 견사(遣使; 사신을 파견)하고 치서(致書; 致函, 寄信)하면서 50종의 보물로써 고려에 가서 그것을 구하게 했다. 그 나라에서 체관(諦觀)으로 하여금 와서 교승(敎乘; 불법. 불교)을 받들게 하되 지론소(智論疏)ㆍ화엄골목(華嚴骨目)ㆍ오백문(五百門; 朝鮮佛敎通史下編五百門論으로 지어졌음) 등은 금하여 전하지 못하게 했다. 또 관사(觀師)에게 분부(分付; )하기를 중국에서 스승을 구()해 문난(問難; 풀기 어려운 문제를 논의함)하여 만약 능히 답하지 못하거든 곧 교문(敎文)을 뺏아 돌아오라 했다. 관사(觀師)가 이미 이르자 나계(螺溪; 919-987. 義寂)가 잘 강수(講授)한다 함을 듣고 곧 가서 참알(叅謁)했는데 한 번 보자 심복(心服)하고 드디어 예배()하고 스승으로 삼았따. 일찍이() 지은() 바 사교의(四敎儀)를 상자()에 저장(貯藏; )했는데 사람이 아는 자가 없었다. 스님이 나계에 거주한 지 10년이었고 어느 날 좌망(坐亡; 앉아 죽음)했다. 후인이 오래된 상자에서 방광함을 보고서 그것을 열어 보았더니 오직 이 서책()일 따름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제방에 성전(盛傳)했고 크게 초학(初學)에게 발몽(發蒙; 啓蒙이니 어리석음을 깨우침)의 도움이 되었다.

螺溪; 의적(義寂)이 후에 천태산에 들어가 청송(淸竦)으로부터() 지관(止觀)을 연학(硏學)했고 청송이 적(; 入寂)한 후 이에 나계도량(螺溪道場)을 흥건(興建)하여 거기()에 거주했으니 위의 주() 을 보라.

判敎; 석가 일대(一代)의 교상(敎相)을 판석(判釋)함이니 예컨대() 천태의 58(五時八敎)와 화엄의 5()가 이것임. 대승의 여러 종()에 각기 교상(敎相)의 판석이 있음.

立義; 도법을 변론하거나 기봉을 교량할 때 가장 먼저 말을 내어 논제(論題)를 설립함을 일컬어 입의(立義)라 함.

孤山圓; 송대 천태종승 지원(智圓; 9761022)의 호가 중용자(中庸子)며 세칭이 고산지원(孤山智圓). 천태종 산외파(山外派) 대사(大師)가 됨. 전당(錢塘; 杭州) 사람이며 속성은 서()며 자는 무외(無外)며 또 호가 잠부(潛夫). 8세에 전당 용흥사(龍興寺)에서 출가했고 처음엔 유학(儒學)을 학습했음. 시문에 능했고 후에 봉선사(奉先寺) 원청(源淸)에게 의지해 천태교관을 학습했음. 원청이 시적한 후 스님이 무리를 떠나 거처를 찾아 경론을 연고(硏考)하고 의관(義觀)을 탐색했으며 아울러 동문 경소(慶昭)ㆍ오은(晤恩) 등과 산외파의 학설을 천술(闡述)했음. 산가파(山家派) 대표 사명지례(四明知禮)와 논변을 전개했음. 그러나 일반으로 지례의 설을 천태의 정통으로 삼고 산외파를 폄억(貶抑). 후에 서호(西湖) 고산(孤山) 마노파(瑪瑙坡)에 은거하며 양질(養疾)했는데 따르는 학자가 많았음. 이로부터 드디어 부지런히 저술을 가하여 한거편(閑居編) 60(현존 51)ㆍ금광명경현의표징기(金光明經玄義表徵記) 1권ㆍ유교경소(遺敎經疏)ㆍ사십이장경주ㆍ수릉엄경소 등 다수를 찬()했음. 스님은 또 주()ㆍ공()ㆍ순()ㆍ맹()ㆍ양웅(揚雄)ㆍ왕통(王通)의 서적에도 통달했음. 건흥(乾興) 원년 2월 제문과 만시(挽詩)를 짓고 박연(泊然; 고요하고 담담하며 욕심이 없는 모양)히 시적했으니 세수는 47. 또 스님이 고산에 은거한지라 세칭이 고산지원(孤山智圓). 휘종(徽宗) 숭녕(崇寧) 3(1104) 칙시(敕諡)하여 법혜대사라 했음 [閑居編序 閑居編十二至十六 十九 三十四 佛祖統紀十 二十五].

伽藍; 승가람마(僧伽藍摩; saṃghārāma)의 약칭. 번역해 가로되 중원(衆園)이니 승중이 머무는 바의 원정(園庭)이 됨. 사원의 통칭임 [十誦律三十四 大毘婆沙論九十九].

宗乘; 각종(各宗)에서 홍포(弘布)하는 바의 종의(宗義)와 및 교전(敎典)을 종승이라고 말함. 다분히 선문(禪門)과 및 정토문(淨土門)에서 자가(自家)의 말을 표칭(標稱)함임.

佛隴; 천태산 서남 모퉁이에 한 봉우리가 있는데 이름이 불롱(佛隴). 고로 천태의 지자대사를 일컬어 또한 가로되 불롱이라 함. 석문정통3(釋門正統三). 불롱(佛隴)이 한 번 출세함에 이르자 곧 남북의 바람이 쓰러졌다. 조정사원5(祖庭事苑五). 천태의 불롱(佛隴)에 정광선사(定光禪師)가 있어 먼저 이 봉우리에 거주했다. 제자에게 일러 가로되 오래지 않아 마땅히 선지식이 있어 도중을 거느리고 여기에 이를 것이다. 이윽고(는 잠시 아) 지자(智者)가 이르렀다.

四明; 사명산(四明山)이니 절강(浙江) 은현(鄞縣) 서남방과 천태산 북방 산기슭 일대를 총칭하여 사명산이라 함. 자고로 중국 불교 승지(勝地)의 하나가 됨.

道因; 당 복양(濮陽; 지금의 복양) 사람. 속성(俗姓)은 후씨(候氏). 수말(隋末)에 출가하여 승인이 되었고 익주(益州) 다보사(多寶寺)에 거주하다가 정관(貞觀) 중에 불러 장안에 이르렀고 현장(玄奘)을 따르면서 불경을 번역했음. 현경(顯慶; 656年正月-661年二月) 사이 장안 혜일사(慧日寺)에서 졸()했음. 평생 불학을 제한 밖에 도리어 사적(史籍)을 연구함을 희환(喜歡)했고 더욱이() 노장(老莊)을 좋아한지라 고로 강의한 바 경훈(經訓)의 내용이 광범(廣泛)했음. 저서에 유마장소(維摩章蔬)가 있음 [百度百科].

禪師; 선정(禪定)을 닦는 스님임. 선사란 명칭은 선종의 명덕(名德)에 한정하여 씀이 아니니 천태종ㆍ정토종ㆍ삼계교(三階敎) 등에서 좌선을 오로지 익히는 자를 또한 선사로 일컬음. 옥편(玉篇) () 도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자의 칭호다. 법언(法言) ()란 것은 사람의 모범이다. 인천보감(人天寶鑑). 당 덕종(德宗)이 담광법사(曇光法師)에게 물어 가로되 승()을 왜 보배라고 이름합니까. 대답해 가로되 승이란 것은 갖추자면 6종이 있어 보배로써 그것을 일컫습니다. 1은 자기 마음을 단박에 깨쳐 범부를 초월해 성인에 들어가므로 선승(禪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2는 해()와 행()을 쌍으로 운전해 세류(世流)에 들지 않으므로 고승(高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3은 계정혜를 갖추어 큰 변재가 있으므로 강승(講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4는 견문이 깊고 진실하여 옛을 들어 지금을 감험(勘驗)하므로 문장승(文章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5는 인을 알고 과를 알아 자비와 위의를 병행하므로 주사승(主事僧)이란 이름을 얻으며 6은 공업(功業)을 정근(精勤)하여 성태(聖胎)를 장양(長養)하므로 상승(常僧)이란 이름을 얻습니다. ()가 크게 기뻐서 드디어 천하에 조칙하여 도승(度僧; 得度하여 승인이 됨)케 했다. 종통편년8(宗統編年八). 천감(天監) 13년 갑오(514) 선사(禪師) 보지공(寶誌公)이 적()했다. 선사(禪師)를 씀()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조정사원8(祖庭事苑八). 선사(禪師) 선주의천자소문경(善住意天子所問經) 천자가 문수사리에게 묻되 무엇 등의 비구가 선사란 이름을 얻는가. 문수가 가로되 일체법에 일행(一行)으로 사량하나니 이른 바 불생(不生)이다. 만약 이와 같이 안다면 선사란 이름을 얻는다. 내지 소법(少法)도 가히 취함이 있지 않나니 어떤 법을 취하지 않는가. 이른 바 차세(此世)와 후세(後世)를 취하지 않으며 3()를 취하지 않는다. 일체법을 모두 취하지 않음에 이르나니 이르자면 일체법이 모두 중생이 없음이다. 이와 같이 취하지 않아야 선사란 이름을 얻는다. 조금의 취()와 비취(非取)가 없어서 일체법을 취하지 않나니 모두 얻는 바가 없으며 그는 억념(憶念)이 없다. 만약 억념하지 않으면 그는 곧 닦지 않나니 만약 닦지 않는 자라면 그는 곧 증득하지 않으므로 고로 이름이 선사(禪師).

歸戒; 삼귀계(三歸戒)니 불법승 3()에 귀의하는 계법(戒法).

繼忠; 북송 천태종 승인(僧人). 불조통기25(佛祖統紀二五)ㆍ석문정통6(釋門正統六)ㆍ신속고승전3(新續高僧傳三)의 기재에 의거하자면 속성(俗姓)은 구()며 자는 법신(法臣)이며 호는 부종(扶宗)이며 절강(浙江) 영가(永嘉) 사람임. 8세에 출가했고 후에 연경사(延慶寺)에 이르러 광지상현(廣智尙賢)을 좇아 천태교의(天台敎義)를 학습했고 깊이 기중(器重)을 얻었음. 선후(先後)로 개원(開元)ㆍ묘과(妙果)ㆍ혜안(慧安)ㆍ강심(江心) 여러 절에 거주하면서 법화경을 강설했고 아울러 선관(禪觀)을 수습(修習)했음. 그로 좇아 보살계를 받은 자가 수만 사람이었고 저서에 부종집(扶宗集)ㆍ이사구의(二師口義)가 있고 십간서(十諫書)ㆍ십문석난(十門析難)ㆍ해방서(解謗書) 등을 편()했으며 저명한 제자에 신지종의(神智從義)와 초당허원(草堂處元)이 있음 [百度百科].

沙門; <> śramaṇa. 또 상문(桑門)ㆍ상문(喪門)ㆍ사문나(沙門那) 등으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식()ㆍ식심(息心)ㆍ근행(勤行)ㆍ핍도(乏道)ㆍ빈도(貧道) 등임. 신역으론 실라말나(室羅末拏)ㆍ실마나나(室摩那拏)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공로ㆍ근식(勤息)이니 불도를 닦음의 뜻임. 또 부지런히 닦아서 번뇌를 쉰다는 뜻임. 원래는 외도와 불도(佛徒)를 논하지 않고 모두 출가한 자의 도명(都名)이 됨.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 승조(僧肇)가 가로되 사문은 출가한 이의 도명(都名)이다. ()나라 말로 뜻을 해설하면(은 해설임) 근행(勤行)이니 부지런히 수행하여 열반으로 나아감이다. 라집이 가로되 불법과 및 외도, 모든 출가한 자는 다 이름이 사문이다.

校梓; 교감(校勘)하고 아울러 부인(付印; 인쇄에 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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