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사교의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 81

태화당 2020. 10. 12. 08:09

() 원교(圓敎)란 것을 밝히겠다. ()은 이름이 원묘ㆍ원만ㆍ원족ㆍ원돈(*圓妙圓滿圓足圓頓)인지라 고로 이름이 원교다. 이른 바 원복ㆍ원신ㆍ원단ㆍ원행ㆍ원위ㆍ원자재장엄ㆍ원건립중생(*圓伏圓信圓斷圓行圓位圓自在莊嚴圓建立衆生)이니 모든 대승경론에서 불경계(佛境界)를 설하되 3()의 위차(位次)와 함께하지 않음이 모두() 차교(此敎)에 속한다. 법화 중의 개ㆍ시ㆍ오ㆍ입(*開示悟入) 4자는 원교(圓敎)의 주ㆍ행ㆍ향ㆍ위(住行向地)에 대()하나니 이것은 40(). 화엄에 이르되 초발심시에 바로 정각을 이루나니(初發心時便成正覺) 소유한 혜신(慧身)은 남을 말미암아 깨닫지 않으며 청정하고 묘한 법신이 담연(湛然)히 일체에 응한다 했거니와 이것은 원(; 원교)42위를 밝혔다. 유마경에 이르되 담복림 속에선(*薝蔔林中) 여향(餘香)을 맡지 않나니 차실(此室)에 들어온 자는 오직 제불의 공덕의 향을 맡는다() 했고 또 이르되 불이법문에 입하다(*入不二法門) 했다. 반야는 최상승을 밝혔고(*般若明最上乘) 열반은 15(*一心五行)을 밝혔다. 또 경에 이르되(*經云) 어떤 사람이 대해에 들어가 목욕하면 이미 일체의 제하(諸河)의 물을 썼다. 또 사가라용이 거축(車軸)의 비를 비 내리매(*又娑伽羅龍澍車軸雨) 오직 대해만이 능히 수용(受容; )하고 여지(餘地)는 감내하지() 못한다. 또 만 가지 향을 두드려() ()을 만들면 혹() 1()을 태우더라도 중기(衆氣; 뭇 향기)를 구족한다. 이와 같은 등의 종류가 모두() 원교에 속한다.

 

圓妙圓滿圓足圓頓; 사교의과해하(四敎儀科解下) 3()가 원융(圓融)하여 불가사의함을 이름하여 원묘(圓玅)며 삼일(三一)이 상즉(相卽)하며 결감(缺減)이 있지 않음을 이름하여 원만이며 삼일(三一)이 자재히 모두 다 호구(互具)함을 이름하여 원족(圓足)이며 삼일(三一)이 어긋남()이 없고 점차(漸次)를 좇지 않는지라 이름하여 원돈(圓頓)이다.

圓伏圓信圓斷圓行圓位圓自在莊嚴圓建立衆生; 사교의과해하(四敎儀科解下) 3()을 원수(圓修)하매 5()를 모두 제복(制伏; )함을 이름하여 원복(圓伏)이며 일체법이 곧 공가중(空假中)임을 신()함을 이름하여 원신(圓信)이며 3()을 모두() 단제(斷除; )함을 이름하여 원단(圓斷)이며 1()이 일체의 제행을 구족함을 이름하여 원행(圓行)이며 1()가 일체 제위를 구족함을 이름하여 원위(圓位)며 이()는 소엄(所嚴)이 되고 관()은 능엄(能嚴)이 되어 능소(能所)로 안을 장엄하고 외용(外用; 밖으로 씀)하면서 자재하여 6()6()이 하나하나 모두 정수(正受)에 들지 않음이 없고 하나하나가 모두() 일어나 출설(出說)하지 않음이 없고 입출(入出)을 쌍시(雙示)하고 의정(依正)이 상즉(相卽)하여 근진(根塵)이 호편(互徧)함을 이름해 원자재장엄(圓自在莊嚴)이며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어묵작작(語默作作)이 하나하나 모두 중생으로 하여금 공가중(空假中)4(四悉; 四悉檀)의 이익을 얻게 하지 않음이 없음을 이름해 원건립중생(圓建立衆生)이다. 차등(此等)은 구비()함이 화엄경의 설과 같다.

開示悟入云云; 사교의과해하 개시오입 4자를 주행향지(住行向地)에 대했기 때문이니() 재문(在文)을 가히 볼 것이다. 화엄을 인용해 이르되 초발(初發) 등이라 한 것은 뜻에 초주(初住)를 가지고 3()을 개발했으며 비례(比例; )하여 2() 이거(已去; )로 묘각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지 않음이 없는지라 고로 이르되 이것은 원(; 원교)42위를 밝혔다. 유마힐경 관중생품(觀衆生品) 천녀(天女)가 사리불을 탄가(彈訶; 규탄하며 꾸짖음)하여 이르되 첨복림(瞻蔔林) 등이라 했거니와 첨복림이란 것은 원교에 비유함이며 여향(餘香)을 맡지 못함은 3(三敎; 장교ㆍ통교ㆍ별교)에 비유함이다. 정명(淨名)의 공실(空室)은 상적광(常寂光)을 표함이며 십방의 여래가 모두() 그 가운데 주()하는지라 고로 입실하는 자는 이름이 적광(寂光)에 입()함이니 모든 여래와 더불어 법신대사(法身大士)가 일체(一體)라 다르지 않다. 공덕의 묘향(玅香)이 일체(一切)에 보훈(普薰)함은 중도가 아님이 없음으니 근진(根塵)의 법계, 그것이 여기에 있음이겠는가. 첨복(瞻蔔)은 여기에선 황화수(黃華樹)로 번역한다. (; 丁敢切)자는 오류니 응당 첨자(瞻字)로 지어야 한다. 유마경 불이법문품(不二法門品)31보살이 각각 불이법문을 선설(宣說)했음은 대개(大蓋; ) 유언(有言)으로써 무언을 말했음이며 이는 이름이 별교(別敎)니 만약 낱낱의 문이 능히 제문(諸門)을 거둔다면 이 이름이 원교다. 문수는 이에 무언으로써 무언을 말했고() 정명(淨名)은 곧 무언(無言)으로써 말이 없었으니(無言) 이 이름이 불이(不二)며 원교에 있음이다. 이 승()이 미묘하여 초과할 자가 있지 않음을 이름해 최상승(最上乘)이다.

薝蔔; 범어 Campaka의 음역(音譯)이다. 또 번역해 첨복가(瞻蔔伽)ㆍ전파가(旃波迦)ㆍ첨파(瞻波) 등으로 짓나니 의역하면 울금화(鬱金花)[百度漢語]. 사교의과해하 첨복(瞻蔔)은 여기에선 황화수(黃華樹)로 번역한다. (; 丁敢切)자는 오류니 응당 첨자(瞻字)로 지어야 한다.

薝蔔林中云云; 사교의주휘보보굉기8(四敎儀註彚補輔宏記八) [] 담복(薝蔔)은 서역 근해의 안수(岸樹)니 금시조(金翅鳥)가 와서 곧 그 위에 서식(棲息; )한다. 유마경에 이르되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되 너는 3()에 어떤 의지(意志)로 구하는가. 천녀()가 가로되 성문법(聲聞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연고로 내가 성문이 되고 인연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연고로 내가 벽지불(辟支佛)이 되고 대비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는 연고로 내가 대승(大乘)이 된다. 사리불이여 사람이 담복림(薝蔔林)에 들어가면 나머지 향을 맡지 못함과 같이 이와 같이 만약 차실(此室 )에 들면 단지 제불의 공덕의 향을 맡으므로 성문과 벽지불의 공덕의 향을 좋아하지 않는다.

入不二法門; 유마경중(維摩經中). 이에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묻되 아등(我等)은 각자 설해 마쳤으니 인자(仁者; 상대의 경칭)가 마땅히 설하십시오. 무엇 등이 이 보살의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입니까. 때에 유마힐이 묵연하며 말이 없자 문수사리가 감탄하며 가로되 선재선재로다, 내지 문자어언이 있지 않음이 이 참다운 입불이법문입니다.

般若明最上乘; 사교의집주9 반야는 최상승을 밝혔다는 것은 금강경에 이르되 여래는 쵀상승을 발한 자를 위해 설한다.

一心五行; 종경록11 예컨대() 법화현의(法華玄義)에 이르되 15(一心五行)은 곧 이 삼제삼매(三諦三昧)니 성행(聖行)은 곧 진제삼매(眞諦三昧)며 범행(梵行)ㆍ영아행(嬰兒行)ㆍ병행(病行)은 곧 속제삼매(俗諦三昧)며 천행(天行)은 곧 중도왕삼매(中道王三昧).

經云; 열반경24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대해에 있으면서 목욕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이미 모든 하()와 천지(泉池)의 물을 썼음과 같이 보살마하살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이와 같은 금강삼매를 수습(修習)한다면 마땅히 알라, 이미 그 나머지 일체의 삼매를 수습했다.

又娑伽羅龍云云; 사교의과해하 또 사가(娑伽) 등은 화엄에서 이른 것이다. 사가라(娑伽羅)란 것은 여기에선 함해(鹹海)로 번역하나니 소거처(所居處; 거주하는 바의 처소)로 좇아 이름을 세웠다. 용은 여래에 비유하고 비는 원교에 비유하고 바다는 원기(圓機)에 비유하고 여지(餘地)3교의 사람에 비유한다. 거축(車軸)의 비는 비의 큼이며 수()는 시우(時雨; 때 맞추어 오는 비). 또 만 가지 향을 두드려 환()을 만든다는 등의 글은 릉엄삼매경 중에 나온다. 이성(理性; )이 제법을 갖춤은 만 가지 향과 같고 제법이 곧 이성(理性; )임은 두드려 환을 만듦과 같고 이성(理性)이 갖춘 바의 1법을 수관(隨觀)함은 1()을 태우매 이성(理性; )1법을 갖춤과 같고 두루 제법을 거둠은 중기(衆氣; 뭇 향기)를 구족함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