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책(ㄱ)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책(ㄱ) 151쪽

태화당 2019. 4. 30. 11:30

監齋使者監護僧食之神 支那僧寺稱爲監齋菩薩 靑面朱髮 [象器箋四] 幻住庵淸規 厨司監齋使者 主湯火井竈神祇

감재사자(監齋使者) 승려의 식사를 감호(監護)하는 신. 지나의 승사에선 칭호가 감재보살이니 푸른 얼굴에 붉은 머리임 [상기전4]. 환주암청규. 주사(厨司)의 감재사자(監齋使者)는 온수ㆍ불ㆍ우물ㆍ부엌을 주관하는 신기(神祇)이다.

 

紺殿寺之別稱 與紺宇 紺園等同 取紺琉璃之色而名 憨山夢遊集二十二 紺殿崢嶸 白雲繚繞

감전(紺殿) 사원의 별칭. 감우ㆍ감원 등과 같음. 감류리(紺琉璃)의 색을 취해 이름했음. 감산몽유집22. 감전(紺殿)은 쟁영(崢嶸)하고 백설은 요요(繚繞; 흩날리는 모양)하다.

 

感精符春秋緯書(緯書有詩緯 易緯 書緯 禮緯 樂緯 春秋緯 孝經緯等七緯)十四中之一 緯書 漢代以神學星相數術解釋儒家經義的一類書 簡稱緯 [互動百科] 祖庭事苑四 春秋感精符曰 麟一角 明海內共一主也

감정부(感精符) 춘추의 위서(緯書; 위서에 시위ㆍ역위ㆍ서위ㆍ예위ㆍ악위ㆍ춘추위ㆍ효경위 등의 7가 있음) 14 가운데의 하나. 한대에 신학(神學)ㆍ성상(星相)ㆍ수술(數術)로써 유가의 경 뜻을 해석한 한 종류의 책이니 간칭이 위() [호동백과]. 조정사원4. 춘추 감정부(感精符)에 가로되 기린은 1()이며 해내에 모두 1()임을 밝힌다.

 

減竈法見減竈之術 史記六十五孫子傳 使齊軍入魏地爲十萬竈 明日爲五萬竈 又明日爲三萬竈 龐涓行三日 大喜曰 我固知齊軍怯 入吾地三日 士卒亡者過半矣 乃弃其步軍 與其輕銳倍日幷行逐之 孫子度其行 暮當至馬陵 馬陵道陜 而旁多阻隘 可伏兵 乃斫大樹白而書之曰 龐涓死于此樹之下 於是令齊軍善射者萬弩 夾道而伏 期曰 暮見火擧而俱發 龐涓果夜至所木下 見白書 乃鑽火燭之 讀其書未畢 齊軍萬弩俱發 魏軍大亂相失 龐涓自知智窮兵敗 乃自剄曰 遂成豎子之名 齊因乘勝盡破其軍 虜魏太子申以歸 孫臏以此名顯天下 世傳其兵法 虛堂語錄一 王老師救手刀子雖利 被趙州用減竈法 幾乎打破蔡州

감조법(減竈法) 감조지술을 보라. 사기65 손자전(孫子傳). 제군(齊軍)으로 하여금 위지(魏地)에 들어가 10만의 부뚜막을 만들게 했다. 다음날에 5만의 부뚜막을 만들었고 또 다음날은 3만의 부뚜막을 만들었다. 방연(龐涓)3일을 행군하고는 크게 기뻐하며 가로되 내가 진실로() ()의 군법을 안다. 우리 땅에 들어온 지 3일에 사졸이 도망간 자가 과반이다. 이에 그 보군(步軍)을 버리고 그 경예(輕銳; 경첩하고 정예한 사졸)와 더불어 배일(倍日; 하루에 이틀 길을 감)하여 아울러 행군하며 쫓아갔다. 손자가 그 행군을 헤아리매 밤에 마땅히 마릉(馬陵)에 이르게 되었다. 마릉은 길이 좁고 옆길은 험하고 좁았다. 가히 복병할 만했다. 이에 큰 나무를 쪼개어 알리어 써서 가로되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는다. 이에 제군(齊軍)에서 잘 쏘는 자 만노(萬弩)를 시켜 길을 끼고 엎드리게 했다. 기약하여 가로되 밤에 횃불을 듦을 보거든 모두 발사하라. 방연이 과연 밤에 나무 아래의 곳에 이르렀다. 백서(白書; 알리는 글)를 보고 이에 부싯불로 그것을 비추었다. 그 글을 읽음을 마치지도 아니하여서 제군이 만뇌를 다 발사했다. 위군이 크게 혼란하면서 서로 잃었다. 방연이 스스로 지혜가 다하고 싸움에서 패한 줄 알았다. 이에 스스로 목을 베며 가로되 드디어 풋내기(豎子)의 명성을 이루게 했다. 제가 인하여 승기를 타고 그의 군사를 모두 깨뜨리고 위의 태자 신을 포로로 하여 귀국했다. 손빈(孫臏)이 이로써 이름이 천하에 현저했으며 세상에서 그의 병법을 전했다. 허당어록1. 왕노사의 구제하는 수단의 칼이 비록 날카로우나 조주의 감조법(減竈法) 씀을 입었으니 하마터면 채주(蔡州)를 타파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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