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5권)

선문염송집 권2 제49칙(한글)

태화당 2021. 9. 12. 08:28

四九릉엄경(*楞嚴經) 세존이 아난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보지 않을 때는 왜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불견(不見)을 본다고 한다면 자연히 저 불견의 모양이 아니니라. 만약 내가 불견하는 지경(地境)을 보지 못한다면 자연히 물건이 아닐 것이니 어찌 네가 아니겠는가.

 

설두현(雪竇顯)이 송하되 전상전우(*全象全牛)의 가림()이 다르지 않나니/ 종래로 작자가 모두 명모(*名模)한다/ 여금에 황두로(*黃頭老)를 보고자 한다면/ 찰찰진진(刹刹塵塵)이 반도(半途)에 있다.

 

백운단(*白雲端)이 송하되 당전(堂前)의 노주(*露柱)가 오래 회태(懷胎)하여/ 해아(孩兒)를 장하(*長下; 낳아 長成하다)하매 자못 준재(俊哉)더라/ 어언(語言)을 알지 아니한 전에 먼저 부(*)를 짓더니/ 한 번 쥐자() 곧 장원(*狀元; 장원급제)을 취해 오더라.

 

천동각(天童覺)이 송하되 창해(滄海)가 쏟아져 말라(瀝乾)/ 태허(*大虛)에 충만하다/ 납승의 비공(鼻孔)은 길고/ 고불의 설두(舌頭; . 는 조사)는 짧다/ 주사는 9곡을 지나고(*珠絲度九曲)/ 옥기는 겨우 한 번 돈다(玉機纔一轉)/ 직하(直下; 즉시)에 상봉하매 누가 그(; 음 거)를 아는가/ 비로소 이 사람은 반려에 합당하지 않음을 믿노라.

 

담당준(*湛堂準)이 송하되 노호가 노파심이 철저하여/ 아난타(阿難陁)를 위하는 뜻이 더욱() 깊다/ 한간(*韓幹)의 말은 청초(靑草)의 나루에 울고/ 대숭(*戴嵩)의 소는 녹양(綠楊)의 그늘에 누웠다.

 

대혜고(大慧杲)가 송하되 황전(荒田)을 경작하는 사람이 없더니/ 경작하자 다투는 사람이 있다/ 바람이 불어 연잎이 움직이면/ 결정코 고기의 다님이 있다.

 

第四九則; 차화는 릉엄경2의 글임. 염송설화(拈頌說話) 경운(經云) 아난아 이 모든 원근의 모든 물성(物性)이 있는 것이 비록 다시 차수(差殊)지만 너의 견정(見精)의 청정히 보는 바와 같나니 곧 모든 물류(物類)가 스스로 차수(差殊)가 있지만 견성(見性; 보는 성품)은 차수(差殊)가 없다. 이 정()의 묘명(妙明)이 진실로() 너의 견성이다. 계환(戒環)이 해석해 이르되 앞에 물어 이르되 어찌해야 이 나의 진성(眞性)을 득지(得知)합니까. 이것은 이 만경(萬境)의 차별이며 견()은 차별이 없나니 차별이 없는 것이 곧 너의 진성(眞性)이다. 이 진성은 추탁(麁濁)을 가져도 오염되지 않는 정()이며 만수(萬殊)에 건너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묘()며 극히 원근(遠近)일지라도 한가지로 보는 명()이다. 4. ()이 비물(非物)임을 분변하다. 경운(經云) 만약 이 물건을 본다면 곧 너도 또한 가히 내가 보는 것을 본다. 소운(䟽云) 물건은 곧 가히 본다. 이것은 위의 모든 물건을 거둠이며 너의 말을 중변(重辨)함이 아니다. 경운(經云) 만약 동견(同見)하는 것을 이름하여 견오(見吾; 나를 보다)라 한다면 내가 보지 않을(不見) 때는 왜 내가 보지 않는 곳을 보지 못하느냐. 소운(䟽云) 동견(同見)이란 것은 물건의 자취()에 의()함이며 불견(不見)이란 것은 물건의 체()를 여읨이다. 만약 이르기를 나와 네가 한 물건을 동견(同見)하면 이는 나의 견()을 봄이다. 특적(特迹)일 따름이다. 내가 이물(離物)하여 보지 않을 때를 당하여선 그 체()가 어디에 있느냐. 이미 가히 볼 처()가 없으니 결정코 이 비물(非物)이다. 경운(經云) 만약 불견(不見)을 본다면 자연히 저 불견(不見)의 상()이 아니다. 소운(疏云) 종변(縱辨)이니 망의(妄意)를 종사(縱使; 놓아서 사용함)함이다. 이르자면 능히 내가 보지 않는 것을 본다면 마침내 자연히 이는 그 불견(不見)의 상()이 아니라 함이니 대개 그 불견의 상은 견()이 미칠 바가 아니다. 경운(經云) 만약 내가 보지 못하는 지()를 보지 못한다면 자연히 비물(非物)이거늘 어찌 네가 아니겠느가. 해운(解云)하되 견()이 이미 비물(非物)이니 곧 진실로 너의 성()이다. 경의 뜻은 불견(不見)하는 곳이 곧 견정명원(見精明元)이라 함이다.

楞嚴經;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이니 10. 약칭이 대불정경(大佛頂經)ㆍ수릉엄경(首楞嚴經)ㆍ릉엄경임. 수릉엄의소주경(首楞嚴義疏注經; 十卷 宋 子璿集) 1에 가로되 대당 신룡 원년 기사세(705) 523일 중천축사문(中天竺沙門) 반랄밀제(般剌蜜帝)가 광주(廣州) 제지도량(制止道場)에서 역()했다 …… 또 개원(開元) 중 사문 지승(智昇)이 지은 석교목록(釋敎目錄) 20권에 의거하자면 그 제9에 이르되 대불정수릉엄경십권(大佛頂首楞嚴經十卷) 대당사문(大唐沙門) 회적(懷迪)이 광주(廣州)에서 역()했다. 회적은 순주 사람이다. 나부산(羅浮山) 남루사(南樓寺)에 거주하면서 오랫동안 경론을 익혔으며 오범(五梵)을 갖춰 안다. 광부(廣府)에 유람함으로 인해 드디어 그 이름이 미상인 범승(梵僧)을 만났는데 글을 대조하며 공역(共譯)해 다스려 10권을 이루었다. 경의 제목과 지수(紙數)와 문구가 지금의 융본(融本)과 모두 차이 나지 않는다.

全象全牛下; 염송설화에 이르되 전상(全象)이란 것은 뭇 맹인이 모상(摸象)하매 곧 전상이 아니니 전상을 보면 곧 깨달음이다. 전우(全牛)란 것은 포정(包丁)이 해우(解牛)하면서 스스로 전우가 없다 했거니와 여금에 이른 전우란 것은 미(). 가림()이 다르지 않다 한 것은 미오(迷悟)를 말하지 말지니 안중(眼中)의 예(). 고로 이르되 종래로 작자가 모두 명모(; 원문에 로 지어졌음)한다 했다. 여금에 두로(頭老)란 것은 비록 가로되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전부 이 여래라 하지만 오히려 반도(半途)에 있다. 그러한 즉 전우(全牛)는 곧 연진망견(緣塵妄見)이며 전상(全象)은 곧 견정명원(見精明元)이니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전부 이 여래의 묘정명체(妙淨明體). 만약 황두로(黃頭老)의 행리처(行李處)를 보고자 한다면 묘정명체(妙淨明體)도 오히려 반도(半途)에 있거늘 하물며 견정명원(見精明元)이겠는가. 하물며 연진망견(緣塵妄見)이겠는가.

名模; 이름을 안치하고 묘사해 그림. ()는 용이 모(; 베끼다. 본뜨다)와 같음. 또 명막(名邈)으로 지음.

黃頭老; 석가모니불을 가리킴. 위 제1칙 황면노자(黃面老子)를 보라.

白雲端; 백운수단(白雲守端)이니 아래 제1411칙을 보라.

露柱; 외면에 환히 드러난 기둥. 주화엄경제법계관문송(註華嚴經題法界觀門頌; 二卷 宋 本嵩述 琮湛註) (). 노주(露柱)란 것은 처마 아래의 기둥이다.

長下; 속간고존숙어요(續刊古尊宿語要; 六卷 宋 師明集) 3에 생하(生下)로 지어졌음.

; 고대의 문체(文體)니 한()ㆍ위()ㆍ육조(六朝)에서 성행했음. 이는 운문(韻文)과 산문(散文)의 종합체(綜合體).

狀元; 사하입해(四河入海) 11에 가로되 급제과(及第科)가 많다. 혹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하거나 혹 명경과(明經科)에 급제 하는 등이다. 그 제1()ㆍ제2갑ㆍ제3갑을 모두 가로되 장원(狀元)이다. 3인에 이르러선 천자로부터 특별히 조서가 내려오는지라 고로 말하되 장지원(狀之元)일 뿐이다 [대혜서고로주].

大虛; 태허(太虛)와 같음. 하늘을 가리킴.

珠絲度九曲下; 종용록6 88칙에 가로되 주사도구곡(珠絲度九曲) 세상에서 전하기를 공자가 진()에서 액난을 만나 구곡주(九曲珠)를 꿰게 되었다. 뽕밭 사이에서 여자를 만났는데 비결(秘訣)을 그에게 주어 이르되 밀의사지(密矣思之; 비밀스럽게 그것을 생각하라)하고 사지밀의(思之密矣; 그것을 생각하되 비밀스럽게 하라)하라. 공자가 드디어 깨달았고 실로써 개미에 묶고 꿀로써 그것(개미)을 인도(引導)해 그것(九曲珠)을 꿰었다. 사주(泗州) 보조종(普照宗) 화상이 지은 천동송고염고서(天童頌古拈古序)에 이르되 굴곡(屈曲)이 상통하니 구슬을 꿰는 사의(貫珠之絲蟻)를 닮고 배회(裴迴; 彷徨, 徘徊하며 나아가지 못하는 모양. 留戀)하며 상부(相附)하니 비를 펴는 운룡(雲龍)과 같다. 부산구대집(浮山九帶集)에 굴곡수대(屈曲垂帶)가 있다. 대의(大意)는 위곡(委曲; 자세히)하게 금시(今時)의 일을 밝혔다. 옥기가 겨우 한 번 돈다(玉機纔一轉) 한 것은 옥기의 한 번의 북(; 북 사. 量詞)으론 문채(文彩)를 이루지 못함과 같다. 천동(天童)이 동산(洞山; 良价)의 초추하말화(初秋夏末話)를 들고는 이에 이르되 문을 나서면 이 풀이니 천천망망(芊芊莽莽; 초목이 무성한 모양)의 사이에 건너고 잎이 떨어지면 가을인 줄 아나니 암암청청(黯黯靑靑)한 곳에 떨어진다. 이 속에 이르러선 꼭 베틀이 비록 전뉴(轉紐; 돌면서 맺음)하지만 인()은 문채를 이루지 아니한 곳을 체취(體取)해야 비로소 옳다. 양구(良久)하고 이르되 물이 환하여 노방(老蚌; 늙은 蚌蛤)이 태를 품은 후에 구름이 중첩하여 창룡(蒼龍)이 뼈를 물릴 때다. 직하(直下; 즉시)에 상봉하매 누가 그(; 음 거)를 아는가, 비로소 이 사람은 반려에 합당하지 않음을 믿노라. 협산(夾山; 善會)이 이르되 주인옹(主人翁)을 좌단(坐斷)해야 제2견에 떨어지지 않는다 했거니와 모름지기 한 사람은 반려에 합당하지 않음을 알아야 하리라. 만송(萬松)이 말하나니 홀로 오면서 다만() 이르기를 서로 아는 이가 없다 하였더니 떠들썩함 속에서 홀연히 고인(故人; 오래된 벗)을 만났다.

湛堂準; 담당문준(湛堂文準; 1061-1115)이니 송대 황룡파승. 자호(自號)가 담당(湛堂)이며 속성은 양()이니 흥원(지금의 섬서 한중) 사람. 어린 나이에 출가해 구족계를 받은 후 진정극문(眞淨克文; 黃龍을 이었음)을 참알(參謁)해 복근(服勤)하기 10()에 드디어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늑담(泐潭)에 주지(住持)하며 임중(臨衆)하매 방도(方道)가 있어 학려(學侶)가 바다처럼 모였음. 대혜종고(大慧宗杲)가 일찍이 추수(追隨)하기가 전후로 무릇 6년이었으며 자못 영향을 받았음. 송 휘종 정화 을미 1020일에 화거(化去)했으니 나이는 55며 승랍은 35. 담당문준선사어요 1권이 있음 [보등록7. 오등회원17].

韓幹; (701-761) 당대 화가. 태상시승(太常寺丞)을 역임했고 인물을 잘 그렸으며 또 특히 말의 그림을 잘 그렸음

戴嵩; 당 중기(中期)의 화가. 특히 소 그림을 잘 그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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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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