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5권)

선문염송집 권2 제52칙

태화당 2021. 9. 13. 08:04

五二楞嚴經 *跋陀婆羅并其同伴十六開士 於*浴僧時 隨例入室 忽悟水因 妙觸*宣明 *成佛子住

雪竇顯頌 了事衲僧消一箇 *長連牀上展脚臥 夢中曾說悟*圓通 香水洗來*驀面

又拈 諸禪德 作麽生會 他道 妙觸宣明 成佛子住 也須七穿八穴始得

天童覺上堂擧此話云 心不見心 機前具眼 水不洗水 直下通身 所以道 性水眞空 性空眞水 淸淨本然 周徧法界 只如妙觸宣明處 作麽生體悉 莫聽別人澆*惡水 要須冷暖自家知

育王諶拈 以强凌弱 臨危悚人 雪竇不能無過 要且矢在絃上 而今莫有*眨上眉毛者麽 伊麽見得 非唯跋陁婆羅一人 盡大地惣被雪竇唾了 若未委悉 各請歸堂 向*巾單下摸?面看

第五二則; 此話楞嚴經五之文 拈頌說話 經云 跋陁婆羅并其同伴十六開土 卽從座起 而白佛言 我等先於威音王佛所 聞法出家 於浴僧時 隨例入室 忽悟水因 旣不洗塵 亦不洗體 中間安然 得無所有 宿習未忘 乃至今生從佛出家 今得無學 彼佛名我跋陁婆羅 妙觸宣明 成佛子住 佛問圓通 如我所證 觸因爲上 環(戒環)解云 跋陁婆羅 此云賢護 洗塵洗體 及塵體之中 小有所得 皆妄觸妄覺 故得無所有 則妙觸宣明 成佛眞子 名佛子住 以善能守護 令妄不起 令覺不動 故名賢護 塵本無染 體亦常淨 能所如幻 二邊俱空 中間覺解之心 安然契性矣

跋陀婆羅; 楞嚴經集註五 孤山云 跋陀婆羅 此云賢守 自守護賢德 復護衆生 或云賢首 以位居等覺 爲衆賢之首

浴僧; 大衆一同入浴之義

宣明; 明顯 毫無遮蔽

成佛子住; 徹見法源 得無生忍 名佛子住也 [碧巖錄第七十八則種電鈔]

長連牀; 又作長連床 禪林僧堂所置之大床也 長大而連坐多人者 佛祖統紀四十一 元和九年(814) 百丈懷海禪師亡 師得法於馬祖 自少林以來 多居律寺說法 師始創禪居 稱長老上堂升座 主賓問酬激揚宗要 學者依臘次入 僧堂設長連床 施椸架挂搭道具 置十務寮舍以營衆事 後世從而廣之 名禪院淸規

圓通; 圓而通於法性之實者 謂之圓通 按楞嚴經五 二十五位菩薩各個皆具圓通 共有六塵六根六識七大等二十五圓通 此外 楞嚴會上二十五聖之中 以觀世音之耳根圓通爲最上 故稱圓通尊 圓通大士

驀面; 驀 當 正對著

惡水; 惡 不好 垢穢

眨上眉毛; 上 助詞 一禪家勸誡學人 振作精神 頓悟禪法的習語 二形容領會禪義 應接禪機 極爲快捷 此指一

巾單下; 巾單 拭鉢巾 巾單下者 與衣單下同義 卽指禪林僧堂中 僧人坐禪之座位 其所携之衣被等 其上可掛置衣鉢故也

 

五二릉엄경. 발타바라(跋陀婆羅)와 그의 동반 16개사(開士)가 욕승(*浴僧)할 때 예법(例法)에 따라 입실했고 홀연히 수인(水因)을 깨쳐 묘촉(妙觸)이 선명(*宣明)하여 불자주를 이루었다(*成佛子住).

 

설두현(雪竇顯) 송하되 요사납승(了事衲僧)은 한 개를 쓰나니/ 장련상(*長連牀) 위에서 다리 뻗고 누웠다/ 몽중에서 일찍이 원통(*圓通) 깨침을 설하니/ 향수로 씻고 오면 얼굴에다(*驀面) 침 뱉으리라.

 

또 염()하되 제선덕(諸禪德)이여 어떻다고 이회하느냐. 그가 말하되 묘촉이 선명하여 불자주를 이루었다 하니 또한 모름지기 칠천팔혈(七穿八穴)해야 비로소 옳다.

 

천동각(天童覺)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마음이 마음을 보지 않아야 기전(機前)에 구안(具眼)하고 물로 물을 씻지 않아야 직하(直下; 즉시)에 통신(通身; 몸을 通透)한다. 소이로 말하되 성수(性水)가 진공(眞空)이며 성공(性空)이 진수(眞水)니 청정하여 본래 그러하므로 법계에 주편(周徧; 두루함)한다. 지여(只如) 묘촉이 선명한 곳을 어떻다고 체실(體悉; 체득해 앎)하느냐. 다른 사람의 악수(*惡水) 뿌림을 청허(聽許; 허락)하지 말고 요컨대 반드시 냉난(冷暖)을 자가(自家; 자기)가 알아야 하리라.

 

육왕심(育王諶)이 염()하되 강()으로써 약()을 업신여기고 위험에 임해서 사람을 두렵게() 한다. 설두가 능히 허물이 없지 않으나 요차(要且; 도리어) 화살이 활줄 위에 있다. 이금(而今; 여금)에 눈썹을 깜작(*眨上眉毛)일 자가 있지 않느냐. 이렇게 견득(見得)한다면 발타바라 1인 뿐만이 아니라 온 대지가 모두 설두의 침 뱉음을 입으리라. 만약 위실(委悉; 환히 알다)하지 못할진대 각기 귀당(歸堂)하기를 청하나니 건단하(*巾單下)를 향해 얼굴을 모삭(摸?; ?은 구할 삭이니 과 통함))하여 보아라.

 

第五二則; 차화는 릉엄경5의 글임. 염송설화 경에 이르되 발타바라와 아울러 그의 동반(同伴) 16개사(開土)가 곧 자리로 좇아 일어나 불타에게 사뢰어 말하되 아등(我等)은 먼저 위음왕불(威音王佛)의 처소에서 법을 듣고 출가했습니다. 욕승(浴僧)할 때에 예법(例法)에 따라 입실했고 홀연히 수인(水因)을 깨쳤습니다. 이미 세진(洗塵)하지도 않았고 세체(洗體)하지도 않았지만 중간이 안연(安然)하여 무소유를 얻었으나 숙습(宿習)을 잊지 못해 내지 금생에 불타를 좇아 출가하여 이제 무학(無學)을 얻었습니다. 그 불타가 나를 이름하기를 발타바라라 하였으며 묘촉이 선명하여 불자주(佛子住)를 이루었습니다. 불타가 원통(圓通)을 물으시니 내가 증한 바와 같은 것은 촉인(觸因)이 상()이 됩니다. (; 戒環)이 해석해 이르되 발타바라는 여기에선 이르되 현호(賢護). 세진세체(洗塵洗體)하고 및 진체(塵體) 중에 조금 소득이 있었지만 다 망촉망각(妄觸妄覺)인지라 고로 무소유를 얻었다. 곧 묘촉이 선명하여 불타의 진자(眞子)를 이루었음을 이름해 불자주(佛子住). 잘 능히 수호하여 망()을 일어나지 않게 하고 각()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현호(賢護). ()이 본래 오염이 없으며 체()도 또한 늘 청정하며 능소(能所)가 환()과 같아서 2()이 모두 공하고 중간의 각해(覺解)의 마음이 안연(安然)하여 자성에 계합한다.

跋陀婆羅; 릉엄경집주5. 고산(孤山)이 이르되 발타바라(跋陀婆羅)는 여기에서 이르되 현수(賢守)니 스스로 현덕(賢德)을 수호하고 다시 중생을 수호함이다. 혹 이르되 현수(賢首)니 지위가 등각(等覺)에 거처하며 중현(衆賢)의 우두머리가 된다.

浴僧; 대중 일동이 입욕함의 뜻.

宣明; 환히 나타남이니 터럭만큼의 차폐(遮蔽)도 없음.

成佛子住; 법원(法源)을 철저히 보아 무생인(無生忍)을 얻음을 이름해 불자주다 [벽암록제78칙종전초].

長連牀; 또 장련상(長連床)으로 지음. 선림의 승당에 설치한 바의 대상(大床)이니 장대(長大)하고 많은 사람이 연좌(連坐)하는 것임. 불조통기41. 원화 9(814) 백장회해선사가 죽었다. 스님은 마조에게서 득법했다. 소림(少林) 이래로부터 다분히 율사(律寺)에 거주하며 설법했다. 스님이 처음으로 선거(禪居)를 창립하여 장로의 상당ㆍ승좌를 일컬었다. 주빈이 문수(問酬)하며 종요를 격양(激揚)했고 학자는 계랍(戒臘)에 의해 차제로 편입했다. 승당에 장련상(長連床)을 시설하고 시가(椸架)를 시설하여 도구(道具)를 괘탑(挂搭)했다. 요사(寮舍)10()를 두어 중사(衆事)를 운영했다. 후세에 이로부터 그것을 넓혀 선원청규라 이름했다.

圓通; 원만하면서 법성의 진실에 통하는 것을 일컬어 원통이라 함. 릉엄경5를 안험컨대 25() 보살이 각개(各個)가 모두 원통을 갖추었고 공히 6진ㆍ6근ㆍ6식ㆍ7() 25원통이 있음. 이 밖에 릉엄회상 25() 가운데 관세음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을 최상으로 삼는지라 고로 호칭이 원통존(圓通尊)ㆍ원통대사(圓通大士)

驀面; ()은 당(), 정대착(正對著).

惡水; ()은 불호(不好), 구예(垢穢).

眨上眉毛; 상(上)은 조사. 1. 선가에서 학인에게 권계(勸誡)하여 정신을 진작하고 선법을 돈오하라는 습어(習語). 2. 선의 뜻을 영회(領會)하고 선기(禪機)에 응접함이 극히 쾌첩(快捷)함을 형용. 여기에선 1을 가리킴.

巾單下; 건단(巾單)은 발우를 닦는 수건임. 건단하란 것은 의단하(衣單下)와 같은 뜻이니 곧 선림의 승당 중에 승인이 좌선하는 좌위(座位)와 그가 가진 바의 의피(衣被) 등을 가리킴. 그 위에 가히 의발을 걸어 두는 연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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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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