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5권)

선문염송집 권2 제60칙

태화당 2021. 9. 15. 07:59

○】*諸佛要集經云 天王如來 因文殊師利 忽起*佛見*法見 **鐵圍山

 

雪竇顯*垂語云 文殊起佛見法見 貶向二鐵圍山 衲僧起佛見法見 列在*五條椽下 *翠峰起佛見法見 誰敢覷着 *代云 秤尺在手

五雲拈 什麽處是二鐵圍山 還會麽 如今若有人 起佛見法見 五雲與烹茶兩甌 且道 是賞伊罸伊 同敎意 不同敎意

智海逸上堂擧此話云 凡夫起佛見法見 人間天上永受*輪迴 衲僧起佛見法見 天南天北走如渴鹿 乃拈起拄杖云 拄杖子 若起佛見法見 釋迦達磨迴避無門 臨濟德山藏竄無地 良久云 *吽吽 不信道 遂擊繩床

 

第六; 此話出諸佛要集經下 文有稍異 經云 天王如來 卽如其像三昧正受 而現神足 移文殊師利 自然立於鐵圍山頂 …… 又文殊師利 向者從忍世界 發起來時 心自念言 今普光界 講佛要集經典之義 我當往至 稽首諸佛 聽所演法 當爾之時 墮大艱難 在無極倒 不順思想 從彼刹來 欲得見佛 聽所說法 則以三事 自著罣碍 懷抱此意 至斯佛土 何謂爲三 一得其身 二得諸佛 三逮諸法 …… 爾時世尊 告文殊師利 仁以三事 著於罣碍 以故相遣 住鐵圍山頂 黃檗斷際禪師宛陵錄 內見外見俱錯 佛道魔道俱惡 所以文殊暫起二見 貶向二鐵圍山 文殊卽實智 普賢卽權智 權實相對治 究竟亦無權實 唯是一心 心且不佛不衆生 無有異見 纔有佛見 便作衆生見 有見無見常見斷見 便成二鐵圍山 被見障故

諸佛要集經; 二卷 略稱要集經 西晉竺法護譯 記述佛陀於王舍城旁帝樹石室中入定三月 以神通力至普光世界天王佛處 宣說諸佛要集之法 及文殊菩薩傾其神力 未能動搖離意女(天王如來右側之女子)入定一事 又佛所說之要集法有六 一諸法空 二諸法常住 三初發菩薩心 四六度無極 五菩薩十地所入處 六佛不可得

佛見; 一指佛之眞正知見 卽照見諸法實相之眞實知見 又作佛知見 梵網經上 復轉一切見入佛見 佛見入一切見 二指執著於對佛之見解 禪宗之立場 乃否定一切之執著 卽使對佛對法 抱持一定之看法 亦屬偏執 皆應排斥之 又對佛之執見與對法之執見 亦竝稱爲佛見法見 此指後者

法見; 執著一法而是一非他 名曰法見

; 墜也 謫也

鐵圍山; 又作鐵輪圍山 輪圍山 金剛山 金剛圍山 佛敎之世界觀以須彌山爲中心 其周圍共有八山八海圍繞 最外側爲鐵所成之山 稱鐵圍山 卽圍繞須彌四洲外海之山 或謂大中小三千世界 各有大中小之鐵圍山環繞 [起世經一閻浮洲品 同二地獄品 立世阿毘曇論二數量品 彰所知論上器世界品]

垂語; 垂示之語也 禪門宗匠上堂提撕學人曰垂示

五條椽下; 五 當作三 明覺禪師語錄四作三

翠峰; 指雪竇重顯自身 曾住蘇州之翠峰寺

代云; 上文拈擧之公案話頭 若缺答語 禪家代擬答語 示以代云 是禪家說法的一種形式 也是禪家語錄的一種類型

輪迴; 謂衆生由惑業之因而招感三界 六道之生死輪轉 恰如車輪之迴轉 永無止盡 故稱輪迴

吽吽; 見上第一六則吽

 

○】 제불요집경(*諸佛要集經)에 이르되 천왕여래가, 문수사리가 홀연히 불견법견(*佛見*法見)을 일으킴으로 인해 2철위산(*鐵圍山)을 향해 떨어뜨렸다(*).

 

설두현(雪竇顯)이 수어(*垂語)하여 이르되 문수가 불견법견(佛見法見)을 일으켜 2철위산(鐵圍山)을 향해 떨어지고 납승이 불견법견을 일으켜 오조연하(*五條椽下)에 나열해 있다. 취봉(*翠峰)이 불견법견을 일으키매 누가 감히 엿보겠는가. 대운(*代云)하되 칭척(秤尺)이 손에 있다.

 

오운(五雲)이 염()하되 어느 곳이 이 2철위산인가. 도리어 아느냐, 여금에 만약 어떤 사람이 불견법견을 일으킨다면 오운이 두 사발의 차를 끓여 주겠다. 그래 말하라 이는 그에게 상을 줌인가 그를 벌함인가. 교의(敎意)와 같은가, 교의와 같지 않는가.

 

지해일(智海逸)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범부가 불견법견을 일으키면 인간과 천상에서 길이 윤회(*輪迴)를 받고 납승이 불견법견을 일으키면 천남(天南)과 천북(天北)에서 갈록(渴鹿)과 같이 달린다. 주장자를 잡아 일으키고 이르되 주장자가 만약 불견법견을 일으킨다면 석가와 달마일지라도 회피할 길이 없고 임제와 덕산일지라도 장찬(藏竄; 숨다)할 땅이 없다. 양구(良久)하고 이르되 훔훔(*吽吽) 말한 것을 믿지 않겠는가. 드디어 승상(繩床)을 쳤다.

 

第六; 차화는 제불요집경하(此話出諸佛要集經下)에 나오며 글이 조금 다름. 경에 이르되 천왕여래(天王如來)가 곧 그의 형상(形像)과 같은 삼매정수(三昧正受)로 신족(神足)을 나타내어 문수사리를 옮겨 자연히 철위산정(鐵圍山頂)에 세웠다 …… 또 문수사리가 향자(向者; 접때)에 인세계(忍世界)로 좇아 발기(發起)하여 올 때 마음에 스스로 생각해 말하되 지금 보세계(普光界)에서 불요집경전(佛要集經典)의 뜻을 강설하니 내가 마땅히 가서 이르러 제불에게 계수(稽首)하고 연설하는 바의 법을 들으리라 했는데 이런 때를 당하여 큰 간난(艱難)에 떨어져 무극(無極)의 전도(顚倒)에 있었으며 사유에 순()하지 못했다. 피찰(彼刹)로 좇아와서 견불(見佛)함을 얻어 설하는 바 법을 들으려 했는데 곧 3()로써 스스로 괘애(罣碍)에 집착했다. 이 뜻을 회포(懷抱)하고 이 불토에 이르렀으니 무엇을 일러 3이라 하는가. 1은 그의 몸을 얻음이며 2는 제불을 얻음이며 3은 제법을 쫓음()이다 …… 이때 세존이 문수사리에게 고하시되 인(; 상대방에 대한 존칭)3()로써 괴애(罣碍)에 집착하나니 연고로써 상견(相遣)하여 철위산정(鐵圍山頂)에 머물렀다.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내견(內見)과 외견(外見)이 모두 어긋나고 불도(佛道)와 마도(魔道)가 모두 악한지라 소이로 문수가 잠시 2()을 일으켜 2철위산을 향해 떨어졌다(). 문수는 곧 실지(實智)며 보현은 곧 권지(權智). 권실(權實)이 서로 대치(對治)하여 구경(究竟)엔 또한 권실도 없고 오직 이 일심(一心)이며 심()은 또 불()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라서 이견(異見)이 있지 않나니 겨우 불견(佛見)이 있으면 곧 중생견(衆生見)이 된다. 유견무견(有見無見)과 상견단견(常見斷見)이 곧 2철위산을 이루나니 견장(見障)을 입는 연고다.

諸佛要集經; 2. 약칭이 요집경(要集經)이며 서진(西晉) 축법호(竺法護)가 역()했음. 지금 대정장 제14책에 수록되었음. 불타가 왕사성(王舍城) 곁 제수석실(帝樹石室) 중에 석 달 동안 입정(入定)했는데 신통력으로 보광세계(普光世界)의 천왕불(天王佛)의 처소에 이르러 제불요집(諸佛要集)의 법을 선설(宣說)했으며 및 문수보살이 그의 신력(神力)을 기울였어도 능히 이의녀(離意女; 天王如來 우측의 여자)의 입정(入定)을 동요(動搖)하지 못한 1()를 기술(記述)했음. 또 불타가 설한 바의 요집법(要集法)에 여섯이 있으니 1은 제법공이며 이2는 제법상주며 3은 초발보살심이며 4는 육도무극(六度無極)이며 5는 보살십지소입처(菩薩十地所入處)6은 불불가득(佛不可得).

佛見; 1. 불타의 진정(眞正)한 지견을 가리킴. 제법실상을 조견(照見)하는 진실한 지견. 또 불지견으로 지음. 범망경상 다시 일체견을 굴려 불견(佛見)에 들어가고 불견이 일체견에 들어간다. 2. 불타에 대한 집착의 견해를 가리킴. 선종의 입장에선 곧 일체의 집착을 부정함. 곧 대불대법(對佛對法)하여 일정한 간법(看法)을 포지(抱持)하게 함. 또한 편집(偏執)에 속하는 것은 모두 응당 그것을 배척함. 또 불타에 대한 집견(執見)과 법에 대한 집견을 또 병칭하여 불견법견(佛見法見)이라 함. 여기에선 후자(後者)를 가리킴.

法見; 1법에 집착하여 1법이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 함을 이름해 가로되 법견임.

; (). ().

鐵圍山; 또 철륜위산(鐵輪圍山)ㆍ윤위산(輪圍山)ㆍ금강산(金剛山)ㆍ금강위산(金剛圍山)으로 지음. 불교의 세계관(世界觀)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모두 88(八山八海)가 위요(圍繞)하여 있으며 가장 바깥쪽은 철()로 이루어진 바의 산이 되며 명칭이 철위산(鐵圍山). 곧 수미산과 4()를 위요하는 외해(外海)의 산임. 혹은 이르기를 대중소(大中小)의 삼천세계(三千世界)에 각기 대중소의 철위산이 빙 둘러 있다 함 [기세경1 염부주품, 2지옥품. 입세아비담론2수량품. 창소지론상기세계품].

垂語; 수시(垂示)의 말임. 선문의 종장이 상당하여 학인을 제시(提撕)함을 가로되 수시임.

五條椽下; ()는 마땅히 삼()으로 지어야 함. 명각선사어ㅡ록4에 삼()으로 지어졌음.

翠峰; 설두중현(雪竇重顯)을 자신을 가리킴. 일찍이 소주의 취봉사(翠峰寺)에 주()했음.

代云; 상문(上文)에 염거(拈擧)한 공안화두에 만약 답어가 결손하면 선가가 대신해 답어하려 하면서 대운(代云)으로 보임. 이는 선가의 설법의 일종 형식임. 또 이는 선가어록의 일종 유형임.

輪迴; 이르자면 중생이 혹업(惑業)의 인()으로 말미암아 3()를 초감(招感)하여 6()의 생사에 윤전함이 마치 수레바퀴의 회전과 같이 영원이 지진(止盡)이 없는지라 고로 일컬어 윤회라 함 [과거현재인과경2. 분별선악업보경상. 법화경1. 대지도론30, 77. 성유식론4].

吽吽; 위 제16칙 훔()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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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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