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5권)

선문염송집 권3 제90칙

태화당 2021. 9. 21. 08:18

○】*龍樹大士 見*迦那提婆來 先令侍者 將一鉢水 置面前 迦那提婆 乃以一針投之 樹大喜

 

瑯瑘覺頌 龍猛盂中水 提婆*上針 人人爭得失 箇箇話疎親 不覩雲中鴈 焉知*沙塞深 農人移片磉 磉下獲黃金

心聞賁頌 *漏傳*長樂*未央靜 月瀉*甘泉*大液秋 夜半樂聲迴*步輦 喚迴*三十六宮

 

第九; 禪宗頌古聯珠通集六 十四祖龍樹大士 見十五祖迦那提婆來 先令侍者將一水致面前 提婆見乃取一鍼投之 祖由是大喜 慈恩寺三藏法師傳四 時提婆菩薩自執師子國來求論難 造門請通 門司爲白 龍猛素知其名 遂滿盛水 令弟子持出示之 提婆見水 默而投針 弟子將還 龍猛見已 深加喜歎 曰 水之澄滿 以方我德 彼來投針 遂窮其底 若斯人者 可與論玄議道 囑以傳燈 卽令引入

龍樹; 禪宗第十四祖 梵語那伽閼剌樹那 華言龍猛(舊曰 龍樹) 南印度婆羅門種姓出身 自幼穎悟 學四吠陀 天文地理圖緯祕藏 及諸道術等 無不通曉 曾與契友三人修得隱身之術 遂隱身至王宮侵凌女眷 其事敗露 三友人爲王所斬 僅師一人身免 師感悟愛欲乃衆苦之本 卽入山詣佛塔 竝出家受戒 廣習三藏 然未能厭足 復至雪山 遇一老比丘授以大乘經典 惟以雖知實義 末能通利 又以曾摧破外道論師之義 故生起邪慢之心 而自立新戒 著新衣 靜處於一水晶房中 其時有大龍菩薩 見而愍之 遂引入龍宮 授以無量之大乘經典 師遂體得敎理 其時南天竺王信奉婆羅門敎 攻擊佛法 師遂前往敎化 使放棄婆羅門敎 此後大力弘法 又廣造大乘經典之注釋書 晩年住於南印度之黑峰山 見入楞伽經九 大乘玄論五 華嚴經傳記五 付法藏因緣傳五 傳法正宗記三 佛祖統紀五 龍樹菩薩傳(一卷 姚秦 鳩摩羅什譯) 南天竺諸國爲其立廟敬奉如佛 其母樹下生之 因字阿周陀那 阿周陀那樹名也 以龍成其道 故以龍配字 號曰龍樹也

迦那提婆; <> Kāṇa-deva 禪宗第十五祖 南天竺國人 姓毘舍羅 博識淵覽 才辯絶倫 嘗挖鑿大自在天金像之眼 後復自挖取隻眼回施大自在天 故遂無一眼 時人號曰迦那提婆 後得法於龍樹 [提婆菩薩傳 佛祖歷代通載五 付法藏傳六 出三藏記集十二]

; 毳衣 以鳥毛織成之衣

沙塞; 山川或沙石圍繞四方的邊塞

漏傳; 漏壺之漏聲以傳聞也 漏 漏壺

長樂; 長樂宮 漢初在長安的宮殿名 漢書四十三曰 漢七年 長樂宮成

未央; 未央宮 漢初在長安的宮殿名 禪林疏語考證二云 漢高帝紀 蕭何治未央宮 立東闕北闕前殿 注 未央宮雖南向 而上奏事謁見之徒 皆謁北闕 是以北闕爲正門

甘泉; 甘泉宮 後漢書四十上 注 甘泉山在雲陽(縣名)北 秦始皇於上置林光宮 漢又起甘泉宮 益壽 延壽館 通天台 故云秦漢之所極觀

大液; 太液池 位於唐長安城大明宮的北部 是唐代最重要的皇家池苑 遺址現位於陝西省西安市未央區大明宮鄕孫家灣村南 [百度百科] 三輔黃圖四 太液池 在長安故城西 建章宮北 未央宮西南 太液者 言其津潤所及廣也

步輦; 古代一種用人抬的代步工具

三十六宮; 極言宮殿之多

 

○】 용수대사(*龍樹大士)가 가나제바(*迦那提婆)가 오는 것을 보고 먼저 시자를 시켜 한 바리때()의 물을 가져다 면전에 두게 했다. 가나제바가 이에 1()을 거기에 던졌다. 용수가 크게 기뻐했다.

 

낭야각(瑯瑘覺)이 송하되 용맹(龍猛; 용수)의 발우 중의 물과/ 제바의 취상(*)의 침()/ 인인(人人)이 득실을 다투고/ 개개(箇箇)가 소친(疎親)을 말한다/ 운중(雲中)의 기러기를 보지 않았다면/ 어찌 사새(*沙塞)의 깊음을 알겠는가/ 농인(農人)이 한 조각의 주춧돌을 옮기다가/ 주춧돌 아래에서 황금을 획득했다.

 

심문분(心聞賁)이 송하되 장락(*長樂)과 미앙(*未央)에 누가 전하여(*漏傳) 고요하고/ 감천(*甘泉)과 태액(*大液)에 달이 쏟아지는 가을이다/ 야반의 음악 소리에 보연(*步輦)을 돌이키니/ 삼십육궁(*三十六宮)의 수심을 불러 온다.

 

第九; 선종송고연주통집6. 14조 용수대사가 15조 가나제바가 오는 것을 보고 먼저 시자를 시켜 한 사발()의 물을 가져다 면전에 두게 했다. 제바가 보고 이에 1침을 취해 거기에 던졌다. 14조가 이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했다. 자은사삼장법사전4. 때에 제바보살이 집사자국(執師子國; 지금의 스리랑카)으로부터 와서 논난(論難)을 구했다. 문으로 나아가 통보를 청하자 문사(門司; 문지기)가 알렸다. 용맹(龍猛)이 본디 그의 이름을 안지라 드디어 바리때 가득 물을 담아 제자를 시켜 가지고 나고 그에게 보이게 했다. 제바가 물을 보자 묵묵히 침을 던졌다. 제자가 가지고 돌아오자 용맹이 본 다음 깊이 희탄(喜歎)을 더하고 가로되 물의 징만(滿)은 나의 덕에 견주고() 그가 와서 투침(投針)함은 드디어 그 바닥을 궁구하려 함이다. 이 사람과 같은 자는 가히 더불어 논현의도(論玄議道)하여 전등(傳燈)을 부촉할 만하다. 곧 인도(引導)하여 들어오게 했다.

龍樹; 선종 제14. 범어 나가알랄수나(那伽閼剌樹那. Nāgārjuna)는 화언(華言)으로 용맹(龍猛; 구역에 가로되 龍樹). 남인도 바라문종성(婆羅門種姓) 출신. 어릴 적부터 영오(穎悟)해 사폐타(四吠陀)ㆍ천문지리ㆍ도위비장(圖緯祕藏) 및 여러 도술(道術) 등을 배워 통효(通曉)하지 않은 게 없었음. 일찍이 계우(契友; 의기투합하는 친구) 세 사람과 은신(隱身)의 비술(祕術)을 수득(修得)해 드디어 은신하여 왕궁에 이르러 여권(女眷; 궁녀를 가리킴)을 침릉(侵凌)했는데 그 일이 실패해 노출된지라 세 벗은 왕에게 베이는 바가 되었고 겨우 스님 한 사람의 몸만 면()했음. 스님이 애욕은 곧 뭇 고()의 근본임을 감오(感悟)하고 곧 입산하여 불탑(佛塔)으로 나아갔으며 아울러 출가하여 수계(受戒)했으며 삼장(三藏)을 널리 학습했음. 그러나 능히 염족(厭足; 滿足)하지 못했고 다시 설산에 이르러 한 늙은 비구(比丘)를 만났는데 대승경전(大乘經典)을 주었음. 사유(思惟)하여 비록 실의(實義)를 알았으나 능히 통리(通利)하지 못했음. 또 일찍이 외도논사(外道論師)의 뜻을 최파(摧破)한지라 고로 사만(邪慢)의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새로운 계()를 세우고 새로운 옷을 입고 한 수정방(水晶房) 속에 고요히 거처했음. 그때 대룡보살(大龍菩薩)이 있어 이를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겨 드디어 인도(引導)해 용궁(龍宮)에 들어가 무량한 대승경전을 주었고 스님이 드디어 교리를 체득(體得)했음. 그때 남천축왕(南天竺王)이 바라문교를 신봉(信奉)하여 불법을 공격하는지라 스님이 드디어 앞으로 가서 교화해 바라문교를 방기(放棄)케 했음. 차후에 대력(大力)으로 홍법(弘法)했고 또 대승경전의 주석서를 광조(廣造)했음. 만년에 남인도의 흑봉산(黑峰山)에 거주했음 [입릉가경9. 대승현론5. 화엄경전기5. 부법장전5. 전법정종기3. 불조통기5].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 남천축의 여러 나라에서 그를 위해 묘()를 세웠는데 부처와 같이 경봉(敬奉)했다. 그의 어머니가 나무 아래에서 그를 낳은지라 인하여 아주타나(阿周陀那; arjuna)로 자()했다. 아주타나는 나무 이름이다. ()으로써 그 도를 이룬지라 고로 용으로써 배자(配字)하여 호칭해 가로되 용수(龍樹)라 했다.

迦那提婆; <> Kāṇa-deva. 선종 제15. 남천축국 사람이며 성은 비사라(毘舍羅). 박식하고 깊이 열람했으며 재변(才辯)이 절륜(絶倫)했음. 일찍이 대자재천(大自在天)의 금상(金像)의 눈을 굴착했는데 후에 다시 스스로 한 짝 눈을 굴착해 대자천에게 회시(回施)한지라 고로 드디어 한 눈이 없었으며 시인(時人)이 호해 가로되 가나제바라 했음. 후에 용수에게서 법을 얻었음 [제바보살전. 불조역대통재5. 부법장전6. 출삼장기집12].

; 취의(毳衣)니 새의 털로 짜서 이룬 옷.

沙塞; 산천 혹 사석(沙石)이 사방을 위요하는 변새(邊塞; 변경).

漏傳; 누호(漏壺)의 누성(漏聲)으로 전문(傳聞)함임. ()는 누호(漏壺).

長樂; 장락궁(長樂宮). 한초(漢初) 장안에 있었던 궁전 이름. 한서43에 가로되 한() 7년 장락궁이 완성되었다.

未央; 미앙궁(未央宮)이니 한나라 초 장안에 있던 궁전의 이름. 선림소어고증2. 한고제기(漢高帝紀) 소하가 미앙궁을 관리하면서 동궐(東闕)을 북궐(北闕) 앞의 전(殿)에 세웠다. () 미앙궁이 비록 남향이지만 상주할 일로 알현하는 무리가 모두 북궐로 알현했으니 이런 까닭으로 북궐이 정문이 되었다.

甘泉; 감천궁(甘泉宮). 후한서40. () 감천산은 운양(雲陽; 縣名)의 북쪽에 있다. 진시황이 위에 임광궁(林光宮)을 설치했다. 한이 또 감천궁(甘泉宮)ㆍ익수(益壽)와 연수관(延壽館)ㆍ통천대(通天台)를 일으켰다. 고로 이르되 진ㆍ한의 극관(極觀; 가장 웅대하고 기특한 景觀)의 장소다.

大液; 태액지(太液池). 당 장안성 대명궁(大明宮)의 북부에 위치했음. 이는 당대(唐代) 가장 중요한 황가(皇家)의 지원(池苑)이었고 유지(遺址)는 현재 섬서성 서안시 미앙구(未央區) 대명궁향(大明宮鄕) 손가만촌(孫家灣村) 남쪽에 위치함 [백도백과]. 삼보황도(三輔黃圖) 4. 태액지(太液池) 장안 고성(故城) 서쪽ㆍ건장궁(建章宮) 북쪽ㆍ미앙궁 서남에 있었다. 태액이란 것은 말하자면 그 진윤(津潤)이 미치는 바가 넓음이다.

步輦; 고대(古代)1() 인대(人抬; 사람이 들다)를 써서 대보(代步)하던 공구(工具).

三十六宮; 극히 궁전의 많음을 말함.

 

선문염송집주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선문염송집주

불교신문 광고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

blog.naver.com

 

'선문염송집주(5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문염송집 권3 제92칙  (0) 2021.09.22
선문염송집 권3 제91칙  (0) 2021.09.22
선문염송집 권3 제89칙  (0) 2021.09.21
선문염송집 권3 제88칙  (0) 2021.09.21
선문염송집 권3 제87칙  (0) 2021.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