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一九】 남악(*南嶽) 회양선사(*懷讓禪師)가 처음 6조를 참했다. 6조가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숭산(*嵩山)에서 옵니다. 6조가 가로되 이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가로되 한 물건(一物)이라고 설사(說似; 설해 주다)하더라도 곧 맞지 않습니다. 6조가 가로되 도리어 수증(修證)을 빌리지 않았는가. 가로되 수증은 곧 없지 않으나 오염은 곧 얻지 못합니다. 6조가 가로되 다만 이 불오염(不汚染)은 이 제불이 호념(護念)하는 것이다. 네가 이미 이와 같으니 나도 또한 이와 같다.
대홍은(大洪恩)이 송하되 이 무슨 물건이 이러히 왔는가 하니/ 이 중에 어찌 진애(塵埃)를 터는 것을 빌리겠는가/ 눈을 똑바로 뜨고 볼 때도 도리어 보이지 않거늘/ 헛되이 명경을 가져다 고대(高臺)에 거는구나.
또 송하되 한 물건이라고 설해 주어도 곧 맞지 않는다 하니/ 바람은 범을 좇고 구름은 용을 좇는다(*風從虎兮雲從龍)/ 차사(此事; 종문의 향상사)는 유래(由來)가 초초(草草; 粗率)하지 않나니/ 무법(無法)이 이 진종(眞宗)이라고 말함을 그쳐라.
원거원(雲居元)이 송하되 옥은 진흙 속에 있고 연(蓮)은 물에서 나오나니/ 오염은 능히 방비(方比; 비교)를 끊지 못한다/ 대가(大家; 諸人)가 이와 같이 만약 승당(承當)한다면/ 동정(洞庭; 洞庭湖)의 어느 날 밤 추풍이 일어나리라.
해인신(海印信)이 송하되 철마를 거꾸로 타고 번롱(煩籠)을 벗어나서/ 천관(*天關)을 발전(撥轉; 轉動)하며 고풍을 진작(振作)한다/ 보전(寶殿)과 경루(瓊樓; 玉樓)를 일찍이 돌아보지 않고/ 입전(入鄽; 가게가 있는 시장에 듦)하여 응당 동몽(*童蒙)을 유인(誘引)한다.
보녕용(保寧勇)이 송하되 대각피모(*戴角披毛)하고 이러히 와서/ 철위(䥫圍; 鐵圍山)와 산악(山岳)을 모두 충개(衝開)한다/ 염부(閻浮; 閻浮提)에서 답살(踏殺)한 사람이 무수하나니/ 코에다가 깊이 뚫어끌어오려 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불국백(*佛國白)이 송하되 숭정(*崇頂)에서 올 때 이러히 왔나니/ 한 물건이라고 해도 벌써 진애(塵埃)다/ 곧 남악에서 벽돌 조각을 갈아(*磨甎片)/ 추풍(追風)의 마자(馬子; 망아지)를 조득(照得)하여 돌아오게 했다.
법진일(法眞一)이 송하되 무엇이 당당(堂堂)히 이렇게 와서/ 당기(當機)의 적면(覿面; 당면)에 우회(*迃迴)하지 않는다/ 경행(經行)하고 좌와(坐臥)하매 다른 물건이 아니건만/ 스스로 이 시인(時人)이 눈을 뜨지 못한다.
흡주영(*歙州英)이 송하되 철우는 난간 가의 풀을 먹지 않나니/ 관각(*丱角)의 목동이 서로 고보(告報)한다/ 높은 언덕에 방거(放去)하매 백운에 누워/ 그가 칠전(七顚)하고 아울러 팔도(八倒)하는 대로 맡긴다/ 아하하(*阿呵呵) 아느냐/ 부채는 두가 있고 원한은 주가 있나니(*債有頭寃有主)/ 습득이 한산로(寒山老)를 때리려고 한다.
또 송해 가로되 우리 조사의 가풍이 어찌 길에 건너겠는가/ 실종(失宗)하고 수조(隨照)하면 용심(用心)이 거칠다/ 일언으로 지음자(知音者)에게 보고(報告)하나니/ 근일(近日)에 남능(*南能)의 성이 노(盧)가 아니다.
천동각(天童覺)이 소참(小叅)에 차화를 들어 至무슨 물건이 이러히 왔는가. 회양이 8년 지나서 비로소 하어(下語)하여 이르되 한 물건이라고 설해 주어도 곧 맞지 않습니다 至오염은 곧 얻지 못합니다. 스님이 이르되 종래로 상사(相似)하지 않거늘 어느 곳에 다시 오염을 붙여(着得) 오겠는가. 그러하여 향하려고 하면 곧 촉(觸)이며 차타(蹉跎; 놓치다)하면 곧 배(背)니 그래 말하라, 바로 이러한 때 어떠한가. 도리어 아느냐, 머리의 길이가 3척인 것을 이 누구라고 아느냐(*頭長三尺知是誰), 상대하여 말 없이 외발로 섰다.
영원청(*靈源淸)이 이르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은 오직 증험해야 이에 알며 나머지는 능히 헤아리지 못한다. 소이로 6조가 회양화상에에 묻되 至나도 또한 이와 같다. 이것은 대개 청정법신을 홀로 표(標)해 교외별전의 종(宗)을 건립했음이다. 간운(揀云)하되 보화는 진불이 아니며 또한 설법하는 자도 아니라(*報化非眞佛 亦非說法者) 하거니와 그러나 보화(報化)의 대공대용(大功大用)이 없지 않다. 이르자면 만약 보화를 해통(解通)할진대 법신을 돈견(頓見)하지 못하여 곧 오염의 인연에 막히고 호념(護念)의 의지(意志)에 어긋나므로 이치로 반드시 성찰을 경계(警戒)하였음이다.
●第一一九則; 전등록5. 남악 회양선사란 자는 성이 두씨며 금주 삶이다. 수공(垂拱) 3년(687) 에 이르자 비로소 15세였다. 양친에게 고별하고 형주 옥천사로 가서 홍경율사에게 의지하여 출가했고 통천 2년(697) 수계하였으며 후에 비니장(毗尼藏)을 학습했다. 어느 날 자탄(自歎)하며 가로되 무릇 출가란 것은 무위법을 위함이며 천상과 인간에서 이길 자가 있지 않다. 때에 동학(坦然)이 스님의 지기(志氣)가 고매(高邁; 높고 뛰어남)함을 알고서 스님에게 권해 숭산 안선사(安禪師; 慧安)를 알현했다. 혜안이 그를 계발(啓發)했고 이에 바로 조계로 나아가 6조를 참례했다. 6조가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스님이 이르되 숭산 안화상의 처소에서 왔습니다. 6조가 이르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 스님이 말이 없었다. 드디어 8재(載)를 경과하고서야 홀연히 성찰함이 있었고 이에 6조에게 사뢰어 이르되 모갑이 저(箇) 이회하는 곳이 있습니다. 6조가 이르되 무엇인가. 스님이 이르되 한 물건이라고 설해 주어도 곧 맞지 않습니다. 6조가 이르되 도리어 수증(修證)을 빌렸느냐 또는 아니냐. 스님이 이르되 수증은 곧 없지 않으나 오염은 곧 얻지 못합니다. 6조가 이르되 다만 이 불오염(不污染)을 이 제불이 호념(護念)한다. 네가 이미 이와 같으니 나도 또한 이와 같다. ▲전등록4 숭악 혜안국사(慧安國師). 탄연(坦然)과 회양(懷讓) 두 사람이 있어 내참(來參)하여 물어 가로되 무엇이 이 조사서래의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왜 자기의 뜻을 묻지 않느냐. 가로되 무엇이 이 자기의 뜻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마땅히 비밀스런 작용을 관찰하라. 가로되 무엇이 이 비밀스런 작용입니까. 스님이 눈을 뜨고 감아 그것을 보였다. 탄연은 언하에 귀처(歸處)를 알아 다시 다른 데로 가지 않았고 회양은 기연이 맞지 않아 고별하고 조계로 갔다.
●南嶽; 즉 형산(衡山)이니 또 형악으로 지음. 5악(嶽)의 하나. 호남 형산현 서북 15㎞ 곳에 위치함. 상강(湘江)이 그 남동북 3면을 빙 둘렀음. 당대 개원 18년(730) 이옹이 지은 바 녹산사비기(麓山寺碑記)를 안험컨대 법숭이 여기에 이르러 개산했으며 서진 태시 4년(268)에 녹산사를 초창(草創; 처음 창건)했음. 진대(陳代) 태건 2년(570) 혜사(慧思)가 남악에 들어와 반야경전과 중론 등을 강설했으며 일컬어 반야도량이라 했음. 고로 혜사를 또 일컬어 남악대사라 함. 당대 선천 2년(713) 회양(懷讓)이 남악에 들어와 반야사의 관음대에 거주하기가 30년이었음. 당대 천보 원년(742) 희천(希遷)이 형산에 들어와 암석 위에 암자를 엮었으며 사람들이 일컬어 석두화상이라 했음. 산중에 여러 많은 사묘(寺廟)가 건립되어 있으니 예컨대(如) 법숭의 녹산사(麓山寺; 후에 만수사로 개명했음)ㆍ승원의 승업사(勝業寺; 축성사)ㆍ혜사의 고지(故地; 복엄사)ㆍ마조도일이 회양을 좇아 득법한 고지(故地; 전법원이니 곧 마경대)ㆍ석두희천의 고지(故地; 남대사)ㆍ혜사의 삼생탑원 등임 [속고승전17. 류하동집6].
●懷讓; (677-744) 당대승. 금주(金州) 안강(安康; 섬서 한음)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두(杜). 15세에 출가하여 한 차례 율(律)을 익히고 뒤에 조계(曹溪)를 참알(參謁)하여 6조 혜능(慧能)의 고족(高足)이 되었음. 15년 동안 머물며 시봉했고 6조가 시적(示寂)하자 비로소 당현종(唐玄宗) 선천(先天) 2년(713) 호남 남악(南嶽)의 반야사 관음대(觀音臺)에 머물면서 선종을 크게 천양(闡揚)해 남악의 한 법계(法系)를 열었으니 세칭 남악회양(南嶽懷讓)임. 그 법계가 청원행사(靑原行思)의 법계(靑原下)에 상대하므로 남악하(南嶽下)로 일컬으며 한가지로 남종선(南宗禪)의 2대(大) 법류(法流)가 되며 제자 마조도일(馬祖道一)이 그 법류(法流)를 계승하였음. 그 후 5가7종(五家七宗)의 계파를 이루었음. 천보(天寶) 3년 8월 11일에 형악(衡嶽; 남악)에서 원적(圓寂)했으니 나이는 68. 경종(敬宗) 때 추시(追諡)하여 대혜선사(大慧禪師)라 했음 [송고승전9. 전등록5. 오등회원3].
●嵩山; 곧 숭악이니 위 제100칙 숭악(嵩嶽)을 보라.
●說似; 사(似)는 개사(介詞)니 여(與)ㆍ향(向)에 상당함.
●風從虎兮雲從龍; 주역 문언전(文言傳). 제일 건괘 문언 구오(九五) 비룡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 무엇을 말함인가. 공자가 가로되 동성(同聲)으로 상응하고 동기(同氣)로 상구(相求)하나니 물은 습한 데로 흐르고 불은 건조한 데로 나아가고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 성인이 일어나면(作) 만물을 본다. 하늘을 근본으로 하는 자는 위와 친하고 땅을 근본으로 하는 자는 아래와 친하나니 곧 각기 그 무리를 따른다.
●天關; 1. 천문(天門). 2. 지세가 험요(險要)한 관애(關隘; 국경에 있는 관문과 요새의 험한 지역).
●童蒙; 유치(幼稚)하고 우매(愚昧)함.
●戴角披毛; 또 피모대각(披毛戴角)으로 지음. 1. 뜻으로 이르자면 떨어져 축생(畜生)이 됨. 2. 참선하는 자가 축류(畜類)의 형상(形像)에 응해 일양(一樣)으로 그 천성(天性)에 맡기고 언교(言敎)의 지해(知解) 및 분별심의 기반(羈絆; 굴레)을 받지 않음에 비유함.
●驀鼻; 맥(驀)은 당(當). 정대착(正對著).
●佛國白; 불국유백(佛國惟白)이니 북송말 운문종승. 정강(지금의 광서 계림) 사람이며 속성은 염(冉)이니 칙시(敕諡)가 불국선사(佛國禪師)며 법운사 법수(法秀; 운문하 5세)의 법사. 변경(汴京) 법운사(法雲寺)에 거주했으니 이 사원은 혜림사(慧林寺)ㆍ지해사(智海寺)와 함께 당시 변경의 3대 선종 총림이었으며 이 3대 총림의 제창(提倡)으로 말미암아 선종의 종풍이 곧 세상에 크게 성했음. 스님이 당시에 늘 황궁에 들어가 선법을 선양했고 철종 및 휘종의 추숭(推崇)을 심(甚)히 받았음. 건중정국 원년(1101) 8월 건중정국속등록(建中靖國續燈錄) 30권을 찬술(撰述)하여 황제에게 진정(進呈)하자 황제가 이를 위해 서문을 찬(撰)하고 아울러 칙허(敕許)하여 입장(入藏)했음. 만년에 명주(절강 은현 동) 천동사로 이거(移居)했고 이 사원에서 시적했음. 저서에 속등록(續燈錄) 30권과 대장경강목지요록 8권이 있음 [보등록5. 불조역대통재19. 석씨계고략4].
●崇頂; 숭악산정(崇嶽山頂).
●磨甎片; 회양선사가, 마조가 다분히 좌선을 익힘으로 인해 어느 날 벽돌을 가지고 암자 앞에서 갈았다. 마조가 묻되 벽돌을 갈아(磨塼) 무엇하시렵니까. 스님이 가로되 갈아서 거울을 만든다. 마조가 가로되 벽돌을 갈아서 어찌 거울을 만듦을 얻겠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벽돌을 갈아 이미 거울을 이룸을 얻지 못하거늘 좌선하여 어찌 성불함을 얻겠는가. 마조가 가로되 어떻게 해야 곧 옳습니까. 스님이 가로되 비유하자면 소가 수레를 부리는데 수레가 만약 가지 않으면 소를 때림이 곧 옳으냐, 수레를 때림이 곧 옳으냐. 아래 제121칙을 보라.
●迃; 우(迂)와 같음.
●歙州英;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함.
●丱角; 또 아각(丫角으로 지음. 고시에 아동이 머리카락을 묶어 양각(兩角)을 이룬 양자를 가리킴.
●阿呵呵; 선록 중 상용하는 탄사(嘆詞). 하(呵)는 호하절(虎何切; 하)이니 웃는 소리.
●債有頭寃有主; 이르자면 부채(負債)에는 그 사유가 있고 원굴(寃屈) 혹 원한(怨恨)에는 그 주인(主因)이 있음. 원(寃)은 원(怨)과 통함.
●南能; 남종의 혜능. 혜능은 소양(韶陽)의 조계 보림사에 거주하면서 돈오법문을 홍양(弘揚)했음. 신수가 북방에서 창도(倡道)한 바의 점오법문과 상대되므로 사가(史家)가 칭하기를 남돈북점(南頓北漸)ㆍ남능북수(南能北秀)라 함.
●頭長三尺; 균주동산오본선사어록(筠州洞山悟本禪師語錄; 一卷 日本 慧印校). 중이 도리어 묻되 무엇이 이 사문행(沙門行)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머리는 길어서 3척이며 목은 짧아서 2촌이다.
●頭長三尺知是誰; 본시(本是) 설두중현의 말이니 아래 제416칙을 보라.
●靈源淸; 영원유청(靈源惟淸)이니 회당조심(晦堂祖心)을 이었으며 황룡혜남하 2세. 위 제47칙 황룡청(黃龍淸)을 보라.
●報化非眞佛 亦非說法者; 금강반야바라밀경론(金剛般若波羅蜜經論; 三卷 天親菩薩造 元魏 菩提流支譯) 상. 논왈(論曰) 이 뜻을 쓰는 연고로써 석가모니불은 불(佛)도 아니며 또한 설법도 아니다 하니 이 뜻이 무엇인가. 게언(偈言) 응화(應化; 應身과 化身)는 진불이 아니며/ 또한 설법하는 자도 아니다/ 설법은 둘로 취하지 못하나니/ 설도 없고 언상(言相)도 여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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