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八三】曺山辭洞山 山云 子向什麽處去 師云 不變異處去 洞山云 不變異處 豈有去耶 師云 去亦無變異 遂辭去
丹霞淳頌 家家門掩蟾蜍月 處處鸎啼楊柳風 若謂縱橫無變異 猶如擲劒擬揮空
將山勤拈 大凡衲僧 佩肘臂下符 具頂門上眼 向一切萬境萬緣 當頭坐斷 豈不是箇無變異 何故 金剛正體 湛寂凝然 曺山雖得此意 爭奈洞山憐兒不覺醜 若是山僧 待他道向不變異處去 只向他道 者漢未出門 早變了也
又擧此話云 自非踏著實地 安能透徹如此 豈以語言*機思 所可測量哉 盖履踐深極 到無渗漏之地 然後羅籠不住 學道之士立志 外形骸一死生 混古今絶去來 要須攀上流 造詣至眞諦 實淵奧閫域 打辦自己 拔白露淨 無絲毫意想 墮在塵緣 直下心如枯木朽株 如大死人 無些氣息 心心無知 念念無住 千聖出來 移換不得 乃可以向枯木上生花 發大機起大用 興慈運悲 乃無功之功 無作之作 豈落得失是非哉 纔留一毫毛 則*抵捂於生死界 自己未能度 安可度人 維摩大士 不住*金粟位 入酒肆婬坊 作大解脫佛事 龐老子 *補處應身 不住兜率陁 棄却珎寶*漢江 織笊籬 與大宗師 擊揚與奪 此段從上體裁 莫不皆爾 要須滴水滴凍 不拘朝野*陶冶煅煉 如曺山摩詰老龐 乃可以不癈悲願 不亦冝乎 自餘人間世紛紜塵坌 何足致*胷次哉
慈航朴上堂擧此話云 好兄弟 知不變異 住亦如然 須信者邊那邊 應用不缺 回互傍來 血脈不斷
●第八八三則; 此話出聯燈會要二十二 五燈會元十三
●機思; 機鋒才思
●抵捂; 對應 抵敵
●金粟; 金粟如來 過去佛之名 指維摩居士之前身 隋吉藏維摩經義疏一 有人言 文殊師利本是龍種上尊佛 淨名卽是金粟如來 相傳云 金粟如來出思惟三昧經 今未見本 ▲祖庭事苑二 如十門辨惑論云 維摩是金粟如來 吉藏法師謂出思惟三昧經 自云 未見其本 今據諸經目錄 無此經名
●補處; 一生補處 見上第二○九則補處尊
●漢江; 長江最大的支流 發源於陝西寧强縣 向東流而經由湖北武漢市 流入於長江
●陶冶; 燒造陶器 冶煉金屬 比喩對人的性格和思想進行培養
●胷次; 胸中 胷 同胸 次 中也 ▲莊子田子方 喜怒哀樂不入於胸次
【八八三】 조산이 동산에게 고별하자 동산이 이르되 자네가 어느 곳을 향해 가느냐. 스님이 이르되 변이(變異)하지 않는 곳으로 갑니다. 동산이 이르되 변이하지 않는 곳에 어찌 감이 있으리오. 스님이 이르되 가더라도 또한 변이가 없습니다. 드디어 고별하고 떠났다.
단하순(丹霞淳)이 송하되 집집마다의 문이 섬여(蟾蜍; 달)의 달을 가렸고/ 곳곳마다 꾀꼬리가 양류(楊柳)의 바람에 지저귄다/ 만약 이르되 종횡에 변이(變異)가 없다 하면/ 마치 검을 던져 허공에 휘두르려고 함과 같다.
장산근(將山勤)이 염하되 대범(大凡) 납승이 주비하(肘臂下)의 부(符)를 지니고(佩) 정문상(頂門上)의 눈을 갖추어 일체의 만경만연(萬境萬緣)을 향해 당두(當頭; 당면)에 좌단(坐斷)한다면 어찌 이(是箇) 변이(變異)가 없음이 아니겠는가. 무슨 연고냐, 금강의 정체(正體)는 담연(湛寂)하고 응연(凝然)하여서이다. 조산이 비록 이 뜻을 얻었지만 동산이 아이를 어여삐 여기다가 추태(醜態)를 깨닫지 못함을 어찌하리오. 만약 이 산승이라면 그가 말하되 변이하지 않는 곳을 향해 갑니다 함을 기다렸다가 다만 그를 향해 말하되 자한(者漢)이 출문(出門)하지 아니한 전에 벌써 변해버렸다.
또 차화를 들고 이르되 스스로 실지(實地)를 답착(踏著)하지 않았다면 어찌 능히 투철(透徹)함이 이와 같겠는가. 어찌 어언(語言)과 기사(*機思)로써 가히 측량할 바이겠는가. 대개 이천(履踐)이 심극(深極)하고 삼루(渗漏)가 없는 경지에 이른 연후라야 나롱(羅籠)하여도 머물지 않는다. 학도지사(學道之士)가 입지(立志)하되 형해(形骸)를 외면하여 사생(死生)이 동일하며 고금을 혼합(混合)하여 거래를 끊고 요컨대 꼭 상류(上流)를 반앙(攀仰)하고 조예(造詣)가 진제(眞諦)에 이르러야 한다. 실로 연오(淵奧; 深奧)의 곤역(閫域)에서 자기를 타판(打辦; 振作)하고 발백노정(拔白露淨; 白淨을 拔露)하여 사호(絲毫)의 의상(意想)도 없어야 한다. 진연(塵緣)에 떨어져 있더라도 직하(直下)에 마음이 고목(枯木)이나 후주(朽株)와 같아서 거의 죽은 사람과 같이 조금의 기식(氣息)도 없어야 심심(心心)이 무지(無知)하고 염념(念念)이 무주(無住)라서 천성(千聖)이 출래(出來)해도 이환(移換)함을 얻지 못한다. 이에 가이(可以) 고목상(枯木上)을 향해 꽃을 피우고 대기(大機)를 발(發)하고 대용(大用)을 일으켜 흥자운비(興慈運悲)하리니 곧 무공지공(無功之功)이며 무작지작(無作之作)이거늘 어찌 득실시비에 떨어지겠는가. 겨우 일호모(一毫毛)를 머물러두면 곧 생사계(生死界)와 저오(*抵捂)해야 하나니 자기도 능히 제도하지 못하면서 어찌 가히 타인을 제도하리오. 유마대사(維摩大士)가 금속위(*金粟位)에 머물지 않고 주사음방(酒肆婬坊)에 들어가 대해탈불사(大解脫佛事)를 지었고 방노자(龐老子)가 보처(*補處)의 응신(應身)이면서 도솔타에 머물지 않고 진보(珎寶)를 한강(*漢江)에 던져버리고 조리(笊籬)를 짜면서 대종사와 더불어 격양(擊揚)하며 여탈(與奪)했나니 차단(此段)은 종상(從上)의 체재(體裁)라서 다 그러하지 않음이 없다. 적수적동(滴水滴凍)을 쓰려고 한다면 조야(朝野)에 구애되지 말고 도야(*陶冶)하며 단련하되 조산(曺山)ㆍ마힐(摩詰)ㆍ노방(老龐)과 같아야 이에 가이(可以) 비원(悲願)을 폐(癈)하지 않으리니 또한 마땅하지 않겠는가. 자여(自餘; 其餘) 인간세(人間世)의 분운(紛紜)한 진분(塵坌)은 어찌 족히 흉차(*胷次)에 이르게(致) 하겠는가.
자항박(慈航朴)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좋다, 형제여, 불변이(不變異)를 알면 주(住)도 또한 여연(如然)하다. 모름지기 믿을지니 자변나변(者邊那邊)에서 응용이 불결(不缺)하고 회호(回互)하며 곁에서 오매 혈맥이 단절되지 않는다.
●第八八三則; 차화는 연등회요22, 오등회원13에 나옴.
●機思; 기봉(機鋒)과 재사(才思; 재주가 있는 사고력).
●抵捂; 대응. 저적(抵敵; 대항).
●金粟; 금속여래(金粟如來)니 과거불의 이름. 유마거사의 전신을 가리킴. 수(隋) 길장의 유마경의소1.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문수사리는 본시 용종상존불(龍種上尊佛)이며 정명(淨名)은 곧 이 금속여래(金粟如來)다. 서로 전해 이르기를 금속여래는 사유삼매경에 나온다. 여금에 본(本; 책)을 보지 못했다. ▲조정사원2. 금속(金粟) 예컨대(如) 십문변혹론(十門辨惑論)에 이르되 유마는 이 금속여래라 하매 길장법사(吉藏法師)가 이르기를 사유삼매경에 나온다 하였고 스스로 이르되 그 본(本; 책)을 보지 못했으며 여금에 제경목록에 의거해도 이 경의 이름이 없다 했음.
●補處; 일생보처(一生補處)임. 위 제209칙 보처존(補處尊)을 보라.
●漢江; 장강 최대의 지류. 섬서 영강현에서 발원하여 동쪽을 향해 흐르면서 호북 무한시를 경유하여 장강에 유입됨.
●陶冶; 도기를 구워 만들고 금속을 불려 단련함이니 사람에 대한 성격과 사상의 진행과 배양에 비유함.
●胷次; 흉중(胸中)이니 흉((胷)은 흉(胸)과 같고 차(次)는 중(中)임. ▲장자 전자방(田子方). 희노애락이 흉차(胸次)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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