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二三一】洞山因僧問 如何是親切一句 師云 達磨無*當門齒
心聞賁頌 缺却當門便露風 思量也是一場空 *蘇秦只愛黃金印 不道身亡口舌中
●第一二三一則; 此話出古尊宿語錄三十八
●當門齒; 又作版齒 板齒 謂前齒也
●蘇秦; (?-前284) 戰國時代策士 縱橫家 字季子 雒陽(今河南洛陽)人 與張儀同師齊鬼谷子 主唱合從說 於是韓魏趙燕楚齊六國 從合而幷力以拒秦 蘇秦幷爲相六國 後蘇秦居燕得罪而亡走齊 齊王以爲客卿 齊大夫多與蘇秦爭寵者 而使人刺蘇秦 不死 刺客逃走 齊王使人求賊不得 蘇秦且死 乃謂齊王曰 臣卽死 車裂臣以徇於市 曰蘇秦爲燕作亂於齊 如此則臣之賊必得矣 於是如其言 而殺蘇秦者果自出 齊王因而誅之 [史記六十九蘇秦列傳] ▲祖庭事苑六 蘇秦 洛陽人 與魏張儀師鬼谷先生 讀書至睡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踝 後爲六國相 見戰國策
【一二三一】 동산(洞山)이, 중이 묻되 무엇이 이 친절한 1구입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달마는 당문치(*當門齒)가 없다.
심문분(心聞賁)이 송하되 당문(當門; 當門齒니 앞니)을 결각(缺却; 빠져버림)하고 곧 풍모를 드러내니/ 사량하매 또 이는 한바탕 공(空)이다/ 소진(*蘇秦)은 다만 황금인(黃金印)을 좋아해/ 구설(口舌) 속에서 몸이 망했음을 말하지 않았다.
●第一二三一則; 차화는 고존숙어록38에 나옴.
●當門齒; 또 판치(版齒), 판치(板齒)로 지음. 이르자면 전치(前齒)임.
●蘇秦; (?-前 284) 전국시대의 책사며 종횡가(縱橫家). 자는 계자며 낙양(雒陽; 지금의 하남 낙양) 사람. 장의(張儀)와 함께 제(齊)의 귀곡자(鬼谷子)를 사사(師事)했음. 합종설(合從說)을 주창(主唱)하자 이에 한(韓)ㆍ위(魏)ㆍ조(趙)ㆍ연(燕)ㆍ초(楚)ㆍ제(齊) 6국이 종합(從合)하여 힘을 합쳐 진(秦)에 항거했음. 소진은 아울러 6국의 상(相; 재상)이 되었음. 후에 소진이 연(燕)에 거주하면서 죄를 얻어 제(齊)로 망주(亡走)했고 제왕(齊王)이 객경(客卿)으로 삼았음. 제의 대부(大夫)에 많이 소진과 쟁총(爭寵)하는 자가 사람을 시켜 소진을 찔렀으나 죽지 않았고 자객은 도주했음. 제왕이 사람을 시켜 도적을 구했으나 얻지 못했음. 소진이 또 죽으면서 이에 제왕에게 일러 가로되 신은 곧 죽습니다. 신(臣)을 거열(車裂)하여 시가(市街)에 돌리면서 가로되 소진이 연(燕)을 위해 제(齊)에서 작란(作亂)했다 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곧 신의 도적을 반드시 얻습니다. 이에 그의 말과 같이 했더니 소진을 죽이려고 했던 자가 과연 스스로 나왔고 제왕이 이로 인해 그를 죽였음 [사기69소진열전]. ▲조정사원6. 소진(蘇秦) 낙양 사람이다. 위(魏)나라의 장의(張儀)와 귀곡선생(鬼谷先生)을 사사(師事)했다. 독서하다가 졸음에 이르면 송곳을 당겨 스스로 그 넓적다리를 찔렀는데 피가 흘러 발꿈치(踝는 발꿈치. 복사뼈)에 이르렀다. 뒤에 6국의 재상이 되었다. 전국책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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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불교신문 광고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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