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三三○】首山頌云 咄哉拙郞君 巧妙無人識 打破*鳳林關 着靴水上立 咄哉巧女兒 攛梭不解織 *貪看鬪雞人 水牛也不識
竹庵珪擧此話云 大衆 這兩頌 是說箇什麽 是有巧拙 是無巧拙 後來汾陽和尙 見人不會 又爲注解 咄哉拙郞君 汾陽道 素潔條然 巧妙無人識 汾陽道 運機非面目 打破鳳林關 汾陽道 蕩盡玲瓏性 着靴水上立 汾陽道 塵泥自異 咄哉巧女兒 汾陽道 妙智理圓融 攛梭不解織 汾陽道 無間功不立 貪看鬪鷄人 汾陽道 傍觀審騰距 爭功不自傷 水牛也不識 汾陽道 全力能負 不露頭角 你看 汾陽恁麽針來線去 那裏錯行一步 你無眼腦了 向語句裏 尋他汾陽父子 所謂釰去久矣 徒勞刻舟 山僧也有一頌 山僧底却易會 只是難入 汾陽底難會 只是易入 你叅禪人 子細定當看 山僧道 拙郞君巧女兒 巧拙由來㹅不癡 拙人常被巧人使 只是拙人常不知 巧人百拙作驢子 拙人百巧騎驢兒 輸機乃是筭人法 得便冝是落便冝 也無巧也無拙 箇中巧拙如何說 以拄杖卓一下云 *彈指圓成八萬門 刹那滅却阿鼻業
●第一三三○則; 此話出古尊宿語錄八
●鳳林關; 拈頌說話曰 廣記云 蔡仙女 襄陽人 幼而巧慧 善刺繡 忽有老夫詣其門 請繡鳳 旣而繡成 五彩花煥 俄而功畢 雙鳳騰躍飛舞 老夫與仙女 乘鳳昇天而去 降於襄陽南山林下 一名爲鳳林山 後其地置鳳林關 南山側有鳳臺 仙女其像存焉 ▲四分律鈔批(十四卷 唐 大覺撰)八 更河西西上至河州 有鳳林關
●貪看; 禪林僧寶傳三作看他
●彈指圓成八萬門; 以下二句永嘉證道歌文
【一三三○】 수산(首山)이 송해 이르되 돌재(咄哉)로다 못난 낭군아/ 교묘를 아는 사람이 없어/ 봉림관(*鳳林關)을 타파하고/ 신발 신고 물 위에 섰네/ 돌재로다 교묘한 여아(女兒; 여자)여/ 북(梭)을 던지면서 방직을 알지 못하네/ 투계(鬪雞)하는 사람을 탐해 보느라(*貪看)/ 물소도 알지 못한다.
죽암규(竹庵珪)가 차화를 들고 이르되 대중이여, 이 양송(兩頌)은 이는 저(箇) 무엇을 설하느냐. 이는 교졸(巧拙)이 있느냐, 이는 교졸이 없느냐. 후래(後來)에 분양화상(汾陽和尙)이 사람들이 알지 못함을 보고 또 주해했다. 돌재(咄哉)로다 못난 낭군아, 분양이 말하되 소결(素潔; 소박하고 淨潔)하고 조연(條然)하다. 교묘를 아는 사람이 없어, 분양이 말하되 운기(運機)는 면목(面目)이 아니다. 봉림관을 타파하고, 분양이 말하되 탕진(蕩盡)하여 영롱성(玲瓏性)이다. 신발 신고 물 위에 섰네, 분양이 말하되 진니(塵泥)는 저절로 다르다. 돌재로다 교묘한 여아(女兒)여, 분양이 말하되 묘지(妙智)는 이치가 원융하다. 북(梭)을 던지면서 방직을 알지 못하네, 분양이 말하되 무간(無間)에선 공(功)을 세우지 못한다. 투계(鬪雞)하는 사람을 탐해 보느라, 분양이 말하되 방관하면서 뛰는 뒷발톱(騰距)을 살피매 쟁공(爭功)하면서 자상(自傷)하지 않는다. 물소도 알지 못한다, 분양이 말하되전력(全力)으로 능히 지면서(負)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너희가 보아라. 분양이 이렇게 침래선거(針來線去)하면서 어느 속에 1보(步)라도 착행(錯行)하는가. 너희는 안뇌(眼腦)가 없어서 어구(語句) 속을 향해 저 분양부자(汾陽父子)를 찾으니 이른 바 검이 떠난 지 오래되었거늘 도로(徒勞) 배에 새긴다. 산승도 1송이 있나니 산승의 것은 도리어 알기가 쉽지만 다만 이 들어가기가 어렵고 분양의 것은 알기는 어렵지만 다만 이 들어가기가 쉽다. 너희 참선인(叅禪人)은 자세히 정당(定當; 판명)해 보아라. 산승이 말하되 못난(拙) 낭군과 교묘한(巧) 여아여/ 교졸(巧拙)의 유래는 모두 어리석음이 아니다/ 졸인(拙人)은 늘 교인(巧人)이 부림을 입지만/ 다만 이 졸인이 늘 알지 못한다/ 교인(巧人)은 백졸(百拙)이라 여자(驢子; 나귀)가 되고/ 졸인(拙人)은 백교(百巧)라 여아(驢兒; 나귀)를 탄다/ 수기(輸機)는 곧 이 산인(筭人)의 법이니/ 편의를 얻음이 이 편의에 떨어짐이다/ 또한 교(巧)도 없고 또한 졸(拙)도 없나니/ 개중(箇中; 이 중)의 교졸(巧拙)을 어떻게 설하느냐. 주장자로써 한 번 치고 이르되 탄지하면 팔만문을 원성하고(*彈指圓成八萬門) 찰나에 아비업(阿鼻業)을 멸각한다.
●第一三三○則; 차화는 고존숙어록8에 나옴.
●鳳林關; 염송설화에 가로되 광기(廣記)에 이르기를 채선녀(蔡仙女)는 양양 사람이다. 어리면서 교혜(巧慧)했고 자수를 잘했다. 홀연히 어떤 노부(老夫)가 그의 문에 이르러 봉을 수놓기를 청했다. 이미 수(繡)를 이루자 5채화(彩花)가 빛났다. 갑자가 공을 마치자 쌍봉(雙鳳)이 등약(騰躍)하더니 날며 춤을 추었다. 노부와 선녀가 봉을 타고 승천하여 떠나더니 양양의 남산 숲 아래 내렸다. 일명이 봉림산이 되는데 후에 그 땅에 봉림관(鳳林關)을 설치했다. 남산의 곁에 봉대가 있으며 선녀의 그 형상이 존재한다. ▲사분율초비(四分律鈔批; 十四卷 唐 大覺撰) 8. 다시 하서(河西)의 서쪽 위에서 하주(河州; 지금의 감숙성 임하지구)에 이르면 봉림관이 있다.
●貪看; 선림승보전3에 간타(看他)로 지었음.
●彈指圓成八萬門; 이하 2구는 영가증도가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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