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三八三】袁州*南源*楚圓*慈明大師 因僧問 鬧中取靜時如何 師云 頭枕布袋
海印信頌 枕袋安眠得自由 任他人物鬧啾啾 麁衣糲食猶無念 誰管扶桑日出頭
●第一三八三則; 此話出五燈會元十二
●南源; 江西袁州南源
●楚圓; (986-1039) 宋代臨濟宗僧 全州淸湘(廣西桂林)人 俗姓李 少爲儒生 潛心擧業 二十二歲迴心向道 於湘山隱靜寺得度 未久遊襄沔之間 與守芝谷泉結伴入洛陽 聞善昭之道望爲天下第一 遂赴汾州 依止二年 未許入室 每見必詬罵 或毁詆諸方 所訓亦皆流俗鄙事 師一夕訴之 語未竟 昭熟視而罵曰 是惡知識 敢裨販我 擧杖逐之 師欲伸解 昭掩其口 師忽大悟曰 是知臨濟道出常情 遂服役約十二年(一說七年) 盡領其旨 後至幷州 訪唐明智嵩 更與當世名士楊大年李遵勗 時聚論道 後欲歸鄕省母 過筠州(四川) 於洞山見曉聰 依止三年 又遊仰山 時楊大年寄書宜春太守黃宗且 請師住於袁州(江西)南源廣利寺 居三年 辭而省母 又謁神鼎洪諲 洪諲大加讚賞 由是聲名大揚 旣主潭州(湖南)道吾之席 次住石霜山崇勝寺 又轉南嶽福嚴寺 後遷潭州興化寺 寶元二年正月 於潭州興化寺示寂 壽五十四 諡號慈明禪師 法嗣五十人中 以黃龍慧南 楊岐方會最爲知名 各成一派 遺有石霜楚圓禪師語錄一卷(慧南重編) [續傳燈錄三 禪林僧寶傳二十一]
●慈明; 楚圓禪師諡號慈明禪師
【一三八三】 원주 남원(*南源) 초원(*楚圓) 자명대사(*慈明大師)가, 중이 묻되 요중(鬧中)에서 취정(取靜)할 땐 어떻습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머리로 포대를 베개로 베었다(頭枕布袋).
해인신(海印信)이 송하되 포대를 베개로 베고 안면(安眠)하면서 자유를 얻었나니/ 저 인물(人物)이 시끄럽게 추추(啾啾)하는 대로 일임한다/ 거친 옷과 거친 음식(麁衣糲食)에도 오히려 생각이 없거늘/ 누가 부상(扶桑)에서 해가 출두(出頭)함에 상관하겠는가.
●第一三八三則; 차화는 오등회원12에 나옴.
●南源; 강서 원주(袁州) 남원(南源).
●楚圓; (986-1039) 송대 임제종승. 전주(全州) 청상(淸湘; 廣西 桂林)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이(李). 어릴 적에 유생(儒生)이 되어 거업(擧業; 科擧에 應試하는 일)에 마음을 담갔는데 22세에 마음을 돌려 도(道)로 향했으며 상산(湘山) 은정사(隱靜寺)에서 득도(得度)했음. 오래지 않아 양면(襄沔)의 사이를 유람하다가 수지(守芝; 善昭의 法嗣)ㆍ곡천(谷泉; 善昭의 法嗣)과 결반(結伴)하여 낙양(洛陽)에 들어갔음. 선소(善昭; 임제하 5세)의 도가 천하제일(天下第一)을 바라본다 함을 듣고 드디어 분주(汾州)에 다다라 2년을 의지(依止)했으나 입실(入室)을 허락하지 않았음. 매번 보기만 하면 반드시 꾸짖고 욕하였으며 혹은 제방(諸方)을 헐뜯고 흉보았으며 가르치는 바는 또한 다 유속(流俗; 世俗)의 비사(鄙事)였음. 스님이 어느 날 저녁 이를 하소연했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선소가 찬찬히 보다가 욕하며 가로되 이 악지식(惡知識)이 감히 나를 비판(裨販; 裨는 附)하느냐, 주장자를 들어 쫓아내자 스님이 해설(解說)을 펴려고 하는데 선소가 그 입을 막았음. 스님이 홀연히 대오하고 가로되 이로 알지니 임제의 도가 상정(常情; 범상한 정)을 초출했다. 드디어 약 12년(일설엔 7년)을 복역(服役)하면서 그 지취를 다 영오(領悟)했음. 후에 병주(幷州)에 이르러 당명지숭(唐明智嵩; 首山省念의 法嗣)을 방문했고 다시 당세(當世)의 명사(名士) 양대년(楊大年)ㆍ이준욱(李遵勗)과 때때로 모여 도를 논했음. 후에 귀향하여 성모(省母; 모친을 살핌)하려고 균주(筠州; 四川)를 지나다가 동산(洞山)에서 효총(曉聰)을 뵙고 3년을 의지(依止)했음. 또 앙산(仰山)을 유람했는데 때에 양대년(楊大年)이 의춘태수(宜春太守) 황종차(黃宗且)에게 서신을 기탁해 스님을 원주(袁州; 江西) 남원(南源)의 광리사(廣利寺)에 주지(住持)하도록 청했음. 3년을 거주하다가 사퇴하고 성모(省母)했음. 또 신정홍인(神鼎洪諲; 임제하 5세)을 알현(謁見)했는데 홍인이 찬상(讚賞)을 크게 더했으며 이로 말미암아 성명(聲名)을 크게 날렸음. 이미 담주(潭州; 湖南) 도오(道吾)의 법석을 주재(主宰)하고는 다음으로 석상산(石霜山) 숭승사(崇勝寺)에 주지(住持)했으며 또 남악 복엄사(福嚴寺)로 이전(移轉)하였고 후에 담주(潭州) 흥화사(興化寺)로 옮겼으며 보원(寶元) 2년 정월 담주 흥화사에서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54며 시호(諡號)는 자명선사(慈明禪師)임. 법사(法嗣) 50인 중에 황룡혜남(黃龍慧南)과 양기방회(楊岐方會)가 가장 이름이 알려졌으며 각기 일파(一派)를 이루었음. 유작(遺作)에 석상초원선사어록(石霜楚圓禪師語錄; 慧南 重編) 1권이 있음 [속전등록3. 선림승보전21].
●慈明; 초원선사(楚圓禪師)의 시호가 자명선사(慈明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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