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

종문무고(宗門武庫) 004

태화당 2022. 7. 27. 08:37

4*暹道者久參*雪竇 竇欲擧住金鵝 暹聞之夜潛書偈於*方丈壁間卽遁去 偈曰 不是無心繼祖燈 道慚未廁*嶺南能 *三更月下離巖竇 *眷眷無言戀碧層 又曰 三十餘年四海間 尋師擇友未甞閑 今朝得到無心地 却被無心趁出山 暹後出世開先 承嗣*德山遠和尙 續通雪竇書 山前婆子見*專使欣然問曰 暹*首座*出世 爲誰*燒香 專使曰 德山遠和尙 婆子詬罵曰 雪竇抖擻屎腸說禪爲爾 爾得恁麽辜恩負德

 

暹道者; 善暹 宋代雲門宗僧 臨江(江西樟樹)人 嗣德山慧遠 雲門文偃下三世 住廬山開先凡十八年 後示滅于本山 [續燈錄三 五燈會元十五]

雪竇; 重顯(980-1052) 宋代雲門宗僧 遂寧(四川蓬溪縣之西)人 俗姓李 字隱之 以妙齡離俗入道 投益州普安院仁詵出家 得法於復州北塔智門光祚 依止五年 盡得其道 後隱於錢塘靈隱寺三年 乃出住蘇州翠峰寺 次年轉徙明州雪竇山資聖寺 海衆雲集 大揚宗風 乃中興雲門宗 又以師久住雪竇山 後世多以雪竇禪師稱之 於皇祐四年入寂 壽七十三 諡號明覺大師 遺有明覺禪師語錄六卷 碧巖集百則頌 及詩集瀑泉集行世 [淨慈寺志 五燈會元十五 續傳燈錄二]

方丈; 一丈四方之室 又作方丈室 丈室 卽禪寺中住持之居室或客殿 亦稱函丈 正堂 堂頭 印度之僧房多以方一丈爲制 維摩禪室亦依此制 遂有方一丈之說 轉而指住持之居室 今轉義爲禪林住持 或對師家之尊稱 通稱方丈 或方丈和尙 [維摩經文疏二十二 法苑珠林二十九 大唐西域求法高僧傳上慧輪傳]

嶺南能; 嶺南 又云嶺表 五嶺以南之地 卽廣東廣西 能 慧能(638-713) 唐代僧 又作惠能 東土禪宗第六祖 號六祖大師 大鑑禪師 祖籍范陽(河北) 俗姓盧 生於南海新興(廣東) 其父早亡 家貧 常採薪汲水以奉寡母 一日負薪至市 聞客讀誦金剛經 心卽開悟 時五祖弘忍住蘄州黃梅之東禪院 法門甚盛 師乃前往拜謁 五祖遂使入碓房舂米 歷八月 一日夜召師入室 潛授衣法 竝遣其連夜南歸 隱於四會懷集之間 儀鳳元年(676)至南海 遇印宗法師於法性寺 受具足戒 翌年 移住於韶陽曹溪寶林寺 弘揚頓悟法門 與神秀於北方所倡之漸悟法門相對 史稱南頓北漸 南能北秀 其弟子法海 將其敎說編成一書 名六祖法寶壇經 盛行於世 後應刺史韋據之請 於大梵寺樹立法幢 未久歸曹溪 弘布大法 道俗歸崇 神龍元年(705) 中宗派遣內侍薛簡召師至京師 師稱疾固辭未往 帝乃敕賜摩衲袈裟及寶鉢等物 竝敕改寶林寺爲中興寺 三年 更賜法泉寺額 師又曾捨宅爲國恩寺 先天元年(712) 命門人於寺內建立報恩塔 翌年七月 歸返國恩寺 八月示寂 壽七十六 師肉身不壞 迄今仍存 歸停曹溪 憲宗時諡號大鑑禪師 遺錄有六祖壇經一卷 金剛經口訣等 其中六祖壇經 初由法海集錄師之語要 後人多所節略 未能見祖意之全貌 元代德異乃探求諸方 得其全文 至元二十八年(1291) 宗寶重新校對三種異本 正其訛誤 詳其節略 增補弟子之請益機緣而印行之 今收於大正藏第四十八冊 師之嗣法弟子四十餘人中 以荷澤神會 南陽慧忠 永嘉玄覺 靑原行思 南嶽懷讓等最著 開後世臨濟曹洞等五家七宗之禪 [六祖壇經 佛祖統紀二十九 宋高僧傳八 傳燈錄五 釋氏稽古略三 傳法正宗記六]

三更; 自午後十一時至翌日午前一時 更 古代夜間計時單位 一夜分爲五更 每更約兩小時 正字通 又因時變易 漏刻曰更 顔氏家訓 或問 一夜何故五更 更何所訓 答曰 漢魏以來 謂爲甲夜乙夜丙夜丁夜戊夜 又云鼓 一鼓二鼓三鼓四鼓五鼓 亦云一更二更三更四更五更 皆以五爲節

眷眷; 念念不忘 依戀不舍

德山遠; 慧遠 宋代雲門宗僧 雙泉郁法嗣 住鼎州德山 [五燈會元十五]

專使; 於禪林中 因處理特別事務 所派遣之使者 稱爲專使 專使所持之書信 則稱爲專信

首座; 寺院參禪僧衆中居于首位者 又僧堂中居于首位的參禪僧 是禪寺職事僧之一 若僧堂分作前後兩堂 則分別設前堂首座與後堂首座 大宋僧史略中 首座之名 卽上座也 居席之端 處僧之上 故曰也 尋唐世敕辯章 撿校修寺 宣宗賞其功 署三敎首座 …… 次復經論之學 或置首座 三敎首座則辯章爲始也

出世; 出世間之略稱 卽超越世俗 出離世塵之意 又作出塵 二指諸佛出現於世間成佛 三禪師於自身 修持功成後 再次歸還人間敎化衆生 亦稱出世 或被任命住持之職 昇進高階位之僧官等 皆稱爲出世 此指三

燒香; 又稱焚香 炷香 謂於諸佛菩薩祖師像前 燃燒各種香 又用於迎請供養等之行事中

 

4섬도자(*暹道者)가 설두(*雪竇)를 오래 참문(參問)했다. 설두가 금아(金鵝)의 주지(住持; )로 천거하려고 했다. ()이 이를 듣자 밤에 몰래 방장(*方丈)의 벽 사이에 게()를 쓰고는 곧 달아났다. 게왈(偈曰) , 조등(祖燈)을 계승함에 무심한 게 아니라/ 도가 영남능(*嶺南能)에 섞이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다/ 3(*三更)의 월하(月下)에 암두(巖竇; 巖穴)를 떠나면서/ 권권(*眷眷)하며 말 없이 벽층(碧層)을 연모한다. 또 가로되 삼십여 년 동안 사해(四海)의 사이에서/ 스승을 찾고 벗을 간택하느라 일찍이 한가하지 않았다/ 금조(今朝; 금일)에 무심한 경지에 득도(得到)했지만/ 도리어 무심으로 산에서 쫓겨남을 입었다. ()이 후에 개선(開先)에서 출세했고 덕산원(*德山遠) 화상을 승사(承嗣)했다. 이어서 설두에게 서신으로 알리는데 산 앞의 파자(婆子; 는 조사)가 전사(*專使)를 보고 흔연(欣然)하며 물어 가로되 섬수좌(*首座)가 출세(*出世)하여 누구(; 저본에 로 지었음)를 위해 소향(*燒香)합니까. 전사가 가로되 덕산원 화상입니다. 파자(婆子)가 구매(詬罵; 꾸짖고 욕하다)하며 가로되 설두가 시장(屎腸)을 두수(抖擻; 털다)하여 설선(說禪)하며 그를 위했건만 그가 이렇게 고은부덕(辜恩負德; 은덕을 저버림)함을 얻는가.

 

暹道者; 선섬(善暹)이니 송대 운문종승. 임강(강서 장수) 사람이며 덕산혜원(德山慧遠)을 이었으니 운문문언하 3. 여산 개선에 거주하기 무릇 18년이었고 후에 본산에서 시멸했음 [속등록3. 오등회원15].

雪竇; 중현(重顯; 980-1052)이니 송대 운문종승. 수녕(遂寧; 사천 봉계현의 서) 사람이니 속성(俗姓)은 이()며 자()는 은지(隱之). 묘령(妙齡; 20 안팎의 젊은 나이)에 세속을 떠나 입도(入道)하여 익주(益州) 보안원(普安院)의 인선(仁詵)에게 투신하여 출가했음. 복주(復州) 북탑(北塔)의 지문광조(智門光祚)에게서 법을 얻었으니 5년 동안 의지(依止)하며 그 도를 다 얻었음. 후에 전당(錢塘) 영은사(靈隱寺)에 은거하기 3년 만에 곧 출세해 소주(蘇州) 취봉사(翠峰寺)에 주()했음. 다음해에 명주(明州) 설두산(雪竇山) 자성사(資聖寺)로 옮겼으며 해중(海衆)이 운집하여 종풍을 크게 날렸으니 곧 운문종을 중흥했음. 또 스님이 설두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후세에 많이 설두선사(雪竇禪師)로 그를 일컬음. 황우(皇祐) 4년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73. 시호가 명각대사(明覺大師)며 유작(遺作)에 명각선사어록(明覺禪師語錄) 6권과 벽암집백칙송(碧巖集百則頌) 및 시집인 폭천집(瀑泉集)이 있어 세상에 행함 [정자사지. 오등회원15. 속전등록2].

方丈; 1()의 사방의 실()이니 또 방장실ㆍ장실로 지음. 곧 선사(禪寺) 중 주지의 거실 혹 객전(客殿). 또 명칭이 함장(函丈)ㆍ정당(正堂)ㆍ당두(堂頭). 인도의 승방은 다분히 사방 1장을 제도(制度)로 삼았으며 유마의 선실(禪室)도 또한 이 제도에 의했으니 드디어 사방 1장의 설이 있음. ()하여 주지의 거실을 가리키며 이제 전의(轉義)하여 선림의 주지가 됨. 혹 사가(師家)에 대한 존칭이니 통칭이 방장이며 혹 방장화상임 [유마경문소22. 법원주림29. 대당서역구법고승전상혜륜전].

嶺南能; 영남(嶺南)은 또 이르되 영표(嶺表)니 오령(五嶺) 이남의 땅. 곧 광동ㆍ광서. ()은 혜능(慧能; 638-713)이니 당대승. 또 혜능(惠能)으로 지음. 동토 선종 제6조며 호()가 육조대사(六祖大師)ㆍ대감선사(大鑑禪師). 조사의 관적(貫籍)은 범양(范陽; 하북)이며 속성(俗姓)은 노(). 남해(南海) 신흥(新興; 광동)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일찍 죽었음. 집이 가난하여 늘 땔나무를 채집(採集)하고 물을 길어 그 홀어머니를 봉양했음. 어느 날 땔나무를 지고 시장에 이르렀다가 나그네의 금강경 독송함을 듣고 마음이 곧 개오(開悟)했음. 당시에 5조 홍인(弘忍)이 기주(蘄州) 황매(黃梅; 호북성 동남 黃梅縣)의 동선원(東禪院)에 주()하면서 법문(法門)이 매우 흥성(興盛)했음. 스님이 곧 앞으로 가서 배알(拜謁)했는데 5조가 드디어 대방(碓房; 방앗간)에 들어가 쌀을 찧게 했음. 여덟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스님을 불러 입실케 하고 몰래 의법(衣法)을 전수(傳授)했음. 아울러 그를 보내면서 밤을 이어 남쪽으로 돌아가 사회(四會)와 회집(懷集)의 사이에 은거하라 했음. 의봉(儀鳳) 원년(676) 남해(南海)에 이르러 법성사(法性寺)에서 인종법사(印宗法師)를 만나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다음해 소양(韶陽)의 조계(曹溪) 보림사(寶林寺)로 이주(移住)하여 돈오법문(頓悟法門)을 크게 선양(宣揚)했는데 신수(神秀), 북방에서 제창(提倡)한 바 점오법문(漸悟法門)과 상대되므로 사가(史家)가 남돈북수(南頓北漸)ㆍ남능북수(南能北秀)라 일컬음. 그의 제자 법해(法海)가 그의 교설(敎說)을 가지고 한 책을 편성(編成)하고는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이라고 이름했으며 세상에 성행(盛行)했음. 후에 자사(刺史) 위거(韋據)의 청에 응해 대범사(大梵寺)에서 법당(法幢)을 수립(樹立)했고 오래지 않아 조계로 돌아가 대법(大法)을 홍포(弘布)했는데 도속(道俗; 僧俗)이 귀의하며 숭배했음. 신룡(神龍) 원년(705) 중종(中宗)이 내시(內侍) 설간(薛簡)을 파견하여 스님을 불러 경사(京師; 首都. 帝都. 는 서울 사)에 이르게 하자 스님이 질병을 일컬으며 고사(固辭)하고 가지 않자 황제가 이에 칙명으로 마납가사(摩衲袈裟) 및 보발(寶鉢) 등의 물건을 주었으며 아울러 칙명으로 보림사(寶林寺)를 고쳐 중흥사(中興寺)로 만들었음. 3(707)에 다시 법천사(法泉寺)의 편액(扁額)을 주었음. 스님이 또 일찍이 집을 희사(喜捨)해 국은사(國恩寺)를 만들었는데 선천(先天) 원년(712)에 문인(門人)에게 명령해 절 안에 보은탑(報恩塔)을 건립케 하고 다음해 7월 국은사로 돌아갔다가 8월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6. 스님의 육신이 무너지지 않아 지금까지 그대로 존재하며 조계로 돌아가 머묾. 헌종(憲宗) 때 대감선사(大鑑禪師)로 시호(諡號)했음. 유록(遺錄)으론 육조단경(六祖壇經) 1, 금강경구결(金剛經口訣) 등이 있음. 그 중 육조단경은 처음 법해(法海)가 스님의 어요를 집록(集錄)함으로 말미암았으며 후인이 절략(節略)한 바가 많아 조의(祖意)의 전모를 능히 보지 못했음. 원대(元代) 덕이(德異)가 이에 제방을 탐구(探求)해 그 전문을 얻었으며 지원(至元) 28(1291) 종보(宗寶)가 거듭 새롭게 3종의 이본(異本)을 교대(校對)하여 그 와오(訛誤)를 정정(訂正)하고 그 절략(節略)을 상세히 하여 제자의 청익기연(請益機緣)을 증보하여 인행(印行)했으니 지금 대정장 제48책에 수록되었음. 스님의 사법제자(嗣法弟子) 40여 인 중에 하택신회(荷澤神會)ㆍ남양혜충(南陽慧忠)ㆍ영가현각(永嘉玄覺)ㆍ청원행사(靑原行思)ㆍ남악회양(南嶽懷讓) 등이 가장 저명함. 후세의 임제ㆍ조동 등 오가칠종(五家七宗)의 선()을 열었음 [육조단경. 불조통기29. 송고승전8. 전등록5. 석씨계고략3. 전법정종기6].

三更;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에 이르기까지임. ()은 고대 야간의 계시단위(計時單位)1()5경으로 분류했고 매경(每更)은 약 두 소시(小時; 시간). 정자통 또 시()로 인해 변역(變易)했으니 누각(漏刻)을 가로되 경()이다. 안씨가훈. 누가() 묻되 1()가 무슨 연고로 5()인가. 경은 무엇을 가르치는 바인가. 답해 가로되 한위(漢魏) 이래로 이르기를 갑야(甲夜)ㆍ을야ㆍ병야ㆍ정야ㆍ무야라 했다. 또 이르되 고()1()2고ㆍ3고ㆍ4고ㆍ5고다. 또 이르되 1()2경ㆍ3경ㆍ4경ㆍ5경이다. 모두 5로써 마디를 삼았다.

眷眷; 염념이 잊지 못함. 연모에 의해 버리지 못함.

德山遠; 혜원(慧遠)이니 송대 운문종승. 쌍천욱(雙泉郁)의 법사며 정주(鼎州) 덕산(德山)에 거주했음 [오등회원15].

專使; 선림 중 특별한 사무를 처리함으로 인해 파견하는 바의 사자를 일컬어 전사라 함. 전사가 소지한 서신을 곧 일컬어 전신(專信)이라 함.

首座; 사원의 참선하는 승중(僧衆) 가운데 수위(首位)에 거처하는 자임. 또 승당(僧堂) 중에 수위에 거처하는 참선승임. 이는 선사(禪寺)의 직사승(職事僧)의 하나임. 만약 승당을 전후의 양당(兩堂)으로 나누어 지으면 곧 전당수좌(前堂首座)와 후당수좌(後堂首座)를 분별해 시설함. 대송승사략중. 수좌(首座)란 이름은 곧 상좌(上座). 좌석의 첫째()에 거처하면서 승중의 위에 거처하는지라 고로 말함이다. 찾아보니 당세(唐世)에 변장(辯章)에게 칙령하여 사원을 검교(撿校)하고 다스리게 했는데 선종(宣宗)이 그 공을 상()주어 삼교수좌(三敎首座)로 임명()했다 …… 다음에 다시 경론의 학()으로 혹 수좌를 두었으니 삼교수좌는 곧 변장(辯章)이 처음이 된다.

出世; 1. 출세간(出世間)의 약칭이니 곧 세속을 초월하여 세진(世塵)을 출리(出離)함의 뜻. 또 출진(出塵)으로 지음. 2. 제불이 세간에 출현하여 성불함을 가리킴. 3. 선사(禪師)가 자신을 수지(修持)하여 공()을 이룬 후에 재차(再次) 인간으로 귀환하여 중생을 교화함을 또한 출세라고 일컬음. 혹은 주지(住持)의 직()에 임명됨을 입거나 높은 계위(階位)의 승관(僧官)에 승진(昇進)하는 등을 다 일컬어 출세라고 함. 여기에선 3을 가리킴.

燒香; 또 명칭이 분향ㆍ주향(炷香)이니 이르자면 제불보살이나 조사의 형상 앞에서 각종의 향을 연소함. 또 영청(迎請)이나 공양 등의 행사 중에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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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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