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

종문무고(宗門武庫) 006

태화당 2022. 7. 28. 07:28

6*湖南小景淳有才學 曾著*無縫塔* *大通本禪師用其語 答*無縫塔話云 煙霞生背面 星月遶簷楹 淳居嶽麓寺 律身精進 偶一夜*經行殿陛失脚被攧 傍僧掖起 昏懵不曉*人事 至於平生所著文字 亦不能曉 *兜率照禪師 初遊方過嶽麓 聞*老宿言淳事 照驚曰 我此生*參禪不明*心地亦如淳也 偶一失跌尙如此 況*隔陰

 

湖南; 位於長江中流江南地區 由於大部分地處洞庭湖之南而得名

無縫塔; 卵塔也 昔南陽忠國師 對代宗謂爲老僧作箇無縫塔 後之禪者托斯語 窆亡僧削堅石 團圝而無縫稜 無層級 呼爲無縫塔 無縫塔之形如鳥卵 因名卵塔

; 祖庭事苑四 銘 釋名曰 銘 名也 記銘其功也 選注云 銘則述其功 美使可稱也

大通本; 善本(1025-1109) 宋代雲門宗僧 俗姓董 本董仲舒之後 少於顯聖地藏院出家 嘉祐八年(1062) 謁圓照宗本於吳中 服勤五年 嗣法 時稱大小本 出住婺州雙林 移錢塘淨慈 哲宗聞其名 詔住上都法雲 賜號大通禪師 [宗統編年二十一 續燈錄十五 淨土聖賢錄三 禪林僧寶傳二十九]

無縫塔話; 碧巖錄第十八則 肅宗皇帝(本是代宗此誤)問忠(慧忠)國師 百年後所須何物 國師云 與老僧作箇無縫塔 帝曰 請師塔樣 國師良久云 會麽 帝云 不會 國師云 吾有付法弟子耽源 却諳此事 請詔問之 國師遷化後 帝詔耽源 問此意如何 源云 湘之南潭之北 雪竇著語云獨掌不浪鳴 中有黃金充一國 雪竇著語云山形拄杖子 無影樹下合同船 雪竇著語云海晏河淸瑠璃殿上無知識 雪竇著語云拈了也

經行; 在一定地點來回散步 目的在于參究道法 舒緩身心 稱爲經行 法華經五 常在於其中 經行及坐臥 四分律五十九 經行有五事好 堪遠行 能思惟 少病 消食飮 得定久住

人事; 此指人間事務 人間交往

兜率照; 慧照(1049-1119) 北宋黃龍派僧 亦作惠照 嗣法隆興兜率院從悅 南安軍郭氏子 從悅去世後 嗣居兜率二十七年 宣和元年休夏日 沐浴更衣 禮觀音大士三拜 退居丈室 端然而逝 壽七十一 臈四十七 [五燈會元十八 僧寶正續傳一]

老宿; 老成宿德之禪師

參禪; 靜心審思 探究禪法

心地; 心爲萬法之本 能生一切諸法 故曰心地 又修行者依心而近行 故曰心地 又三業中 心業最勝 故曰心地

隔陰; 隔中陰之身也 陰指中陰 又云中有 死此生彼 中間所受之陰形也 陰者五陰之陰

 

6호남(*湖南) 소경순(小景淳)은 재학(才學; 재주와 학문)이 있었다. 일찍이 무봉탑명(*無縫塔*)을 지었는데 대통본(*大通本) 선사가 그 말을 써서 무봉탑화(*無縫塔話)에 답해 이르되 연하(煙霞)는 배면(背面; 등 쪽이 되는 면)에서 나고 성월(星月)은 첨영(簷楹; 처마 밑의 기둥)을 에워쌌다. ()이 악록사(嶽麓寺)에 거주했는데 율신(律身)으로 정진했다. 우연히 어느 날 밤 전폐(殿陛)를 경행(*經行)하다가 실각(失脚; 失足)하여 넘어짐()을 입었다. 곁의 중이 액기(掖起; 겨드랑이를 끼어 일으킴)했는데 혼몽(昏懵)하여 인사(*人事)를 깨닫지() 못했다. 평생 지은 바 문자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능히 알지() 못했다. 도솔조(*兜率照) 선사가 처음 유방(遊方)하다가 악록사에 이르러() 노숙(*老宿)이 순사(淳事)를 말함을 들었다. ()가 놀라며 가로되 내가 차생(此生)에 참선(*參禪)하여 심지(*心地)를 밝히지 못한다면 또한 순()과 같을 것이다. 우연히 한 번 실질(失跌; 실족해 미끄러짐)하여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격음(*隔陰)이겠는가.

 

湖南; 장강 중류 강남지구에 위치함. 대부분의 땅이 동정호의 남쪽에 처함으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었음.

無縫塔; 난탑(卵塔). 옛적에 남양충국사가 대종을 상대해 이르기를 노승을 위해 무봉탑을 만드십시오. 후에 선자(禪者)가 이 말에 의탁해 망승을 매장(埋葬)하고 견고한 돌을 깎았는데 둥글어서 꿰맴과 모가 없으며 층급도 없었으니 무봉탑이라고 부름. 무봉탑의 형상이 새알과 같아서 인하여 이름이 난탑임.

; 조정사원4. () 석명(釋名)에 가로되 명()은 명()이니 그 공을 기록해 새김이다. 선주(選注)에 이르되 명()은 곧 그 공을 진술하여 아름다움을 가히 일컫게 하는 것이다.

大通本; 선본(善本; 1025-1109)이니 송대 운문종승. 속성은 동이니 본래 동중서(董仲舒)의 후손임. 젊은 나이에 현성 지장원에서 출가했음. 가우 8(1062) 오중(吳中)에서 원조종본(圓照宗本)을 예알하여 5년 동안 복근(服勤; 복무)하고 법을 이었음. 당시에 일컫기를 대소본(大小本)이라 했음. 출세해 무주 쌍림에 거주하다가 전당 정자로 옮겼음. 철종이 그의 명성을 듣고 불러 상도(上都) 법운에 거주하게 하고 대통선사(大通禪師)란 호를 주었음 [종통편년21. 속등록15. 정토성현록3. 선림승보전29].

無縫塔話; 벽암록 제18. 숙종황제(肅宗皇帝; 본래 이 代宗이니 이것은 오류)가 충(혜충)국사에게 묻되 백년후(百年後)에 수요(須要)하는 바가 어떤 물건입니까. 국사가 이르되 노승(老僧)에게 저 무봉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십시오. 황제가 가로되 스님께 탑양(塔樣)을 청합니다. 국사가 양구(良久; 잠시 말없이 있는 것)하고는 이르되 아시겠습니까. 황제가 이르되 알지 못합니다. 국사가 이르되 나에게 부법제자(付法弟子)인 탐원(耽源)이 있어 도리어 이 일을 압니다. 청컨대 조칙(詔勅)으로 그에게 물으십시오. 국사가 천화(遷化)한 후에 황제가 탐원에게 조칙(詔勅)해 묻되 이 뜻이 무엇입니까. 탐원이 이르되 상()의 남쪽이며 담()의 북쪽이니/ 설두가 착어하여 이르되 외손바닥으론 두드려() 울리지 못한다. 가운데 황금이 있어 일국(一國)을 채운다/ 설두가 착어하여 이르되 산형(山形) 주장자다. 그림자 없는 나무 아래 배를 합동(合同)하니/설두가 착어하여 이르되 해안하청(海晏河淸)이다 유리 궁전 위에 지식이 없다. 설두가 착어하여 이르되 염()해 마쳤다.

經行; 일정한 지점에 있으면서 내회(來回; 자꾸 오감)하면서 산보함이니 목적은 도법을 참구하면서 몸과 마음을 서완(舒緩; 조용하고 느긋함)함에 있으니 일컬어 경행이라 함. 법화경5. 늘 그 가운데 있으면서 경행(經行)하고 및 좌와하다. 사분율59. 경행(經行)에 다섯의 좋음이 있다. 원행을 감내하고 능히 사유하고 병이 적고 식음(食飮; 음식)을 소화하고 정()을 얻어 오래 머문다.

人事; 여기에선 인간의 사무, 인간의 교왕(交往)을 가리킴.

兜率照; 혜조(慧照; 1049-1119)니 북송 황룡파승. 또한 혜조(惠照)로 지으며 융흥 도솔원(兜率院) 종열(從悅)의 법을 이었고 남안군 곽씨의 아들임. 종열이 세상을 떠난 후 도솔에 사거(嗣居)하기 27년이었음. 선화 원년 휴하일(休夏日) 목욕하고 옷을 갈아 입고 관음대사에게 3()로 예배하고 장실(丈室)에 퇴거하여 단연(端然)히 떠났으니 나이는 71, (; 과 같음)47 [오등회원18. 승보정속전1].

老宿; 노성(老成; 노련)하고 숙덕(宿德; 宿은 명망이 있는 사람을 가리킴)의 선사.

參禪; 정심(靜心)으로 심사(審思)하며 선법(禪法)을 탐구함.

心地; ()은 만법의 근본이며 능히 일체의 제법을 내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지임. 또 수행자가 심에 의해 행에 접근하는지라 고로 가로되 심지며 또 3업 중에 심업이 가장 수승하므로 고로 가로되 심지임.

隔陰; 중음(中陰)의 몸에 막힘이니 음()은 중음을 가리키며 또 이르되 중유(中有)라 함.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태어나면서 중간에 받는 바의 음형(陰形). 음이란 것은 5()의 음임.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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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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