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慈照聰禪師 *首山之子 *咸平中住*襄州石門 一日*太守以私意笞辱之 暨歸衆僧迎於道左 首座趨前*問訊曰 太守無辜屈辱和尙如此 慈照以手指地云 平地起骨堆 隨指湧一堆土 太守聞之 令人削去 復湧如初 後太守全家死於襄州 又僧問 深山巖崖中 還有佛法也無 照云有 *進云 如何是深山巖崖中佛法 照云 奇怪石頭形似虎 火燒松樹勢如龍 *無盡居士愛其語 而*石門錄獨不載二事 此皆妙喜親見無盡居士說
●慈照聰; 蘊聰(965-1032) 宋代臨濟宗僧 廣東南海人 俗姓張 出家後 參百丈道常 繼之參首山省念 大悟 後歷參湖北洞山守初 大陽山警延 智門師戒等 景德三年(1006) 住襄州谷隱山石門寺 天禧四年(1020) 移住谷隱山太平興國禪寺 徒衆多達千人 竝交結翰林楊文億 中山劉筠等 天聖十年示寂 壽六十八 諡號慈照禪師 李遵勗爲撰碑文 著有語錄石門山慈照禪師鳳巖集一卷 [廣燈錄十七 五燈會元十一 釋氏稽古略四 禪林寶訓音義]
●首山; 省念(926-993) 五代臨濟宗僧 萊州(今山東掖縣)人 俗姓狄 號首山 幼入南禪寺受業 纔受具足戒 遍遊叢席 常修頭陀行 密誦法華經 人稱念法華 師事風穴延沼 得其心傳 名振四方 風靡一世 其後開法於汝州首山 爲第一世 又住汝州葉縣寶安山廣敎院 及城下寶應院等 淳化三年(992)十二月四日 上堂說偈曰 今年六十七 老病隨緣且遣日 今年記取來年事 來年記著今朝日 翌年十二月四日上堂辭衆 仍說偈曰 白銀世界金色身 情與非情共一眞 明暗盡時俱不照 日輪午後見全身 言訖 安坐入寂 壽六十八 [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一]
●咸平; (998-1003) 是宋眞宗的年號
●襄州; 今湖北省襄樊 荷澤神會 大梅法常出生地 西北地域有雲門宗洞山守初道場
●太守; 戰國至秦朝時期郡守的尊稱 漢景帝更名爲太守 爲一郡的最高行政長官 [百度百科 祖庭事苑三]
●問訊; 合掌而口問安否也 但敬揖以表問安否之心 亦云問訊 說文 訊 問也
●進云; 進 奉獻 送上 進云者 禪家問答的記錄用語 表示問話者繼續向禪師提問
●無盡居士; 張商英(1043-1121) 北宋黃龍派居士 蜀州(四川崇慶)新津人 字天覺 號無盡居士 自幼卽銳氣倜儻 日誦萬言 初任通州主簿 一日入寺見藏經之卷冊齊整 怫然曰 吾孔聖之書 乃不及此 欲著無佛論 後讀維摩經有感 乃歸信佛法 神宗(1068-1085)時 受王安石推擧入朝 大觀年間 爲尙書右僕射 未久因事謫於外 及遷江西運使 禮謁東林寺常總(嗣黃龍) 得其印可 復投兜率寺從悅(黃龍下二世) 就巖頭末後之句有所參究 得嗣其法 紹聖(1094-1098)初年 受召爲左司諫 因上書論司馬光呂公著而左遷 又常詆當時宰相蔡京 故屢受貶 大觀四年(1110)六月 天久旱 乃受命祈雨 晩忽雨 徽宗大喜 賜商霖二字 後受蔡京讒言 貶知河南府 宣和四年歿 壽七十九 賜諡文忠 著有護法論一卷 [釋氏稽古略四 居士傳二十八 宋史三五一]
●石門錄; 指石門山慈照禪師鳳巖集 一卷 載於古尊宿語錄九
【20】 자조총(*慈照聰) 선사는 수산(*首山)의 자(子)다. 함평(*咸平) 중에 양주(*襄州) 석문(石門; 석문사)에 주(住)했다. 어느 날 태수(*太守)가 사의(私意)로써 매질하여(笞) 욕보였다. 회귀함에 이르러 중승(衆僧)이 도좌(道左)에서 영접했다. 수좌가 앞으로 달려가 문신(*問訊)하고 가로되 태수가 무고(無辜)히 화상을 굴욕(屈辱)함이 이와 같습니다. 자조(慈照)가 손으로써 땅을 가리키며 이르되 평지에서 골퇴가 일어나리라(平地起骨堆). 손가락 따라 한 무더기의 흙이 솟았다. 태수가 이를 듣고 사람을 시켜 삭거(削去)했으나 다시 솟음이 처음과 같았다. 후에 태수의 전가(全家)가 양주에서 죽었다. 또 중이 묻되 심산(深山)의 암애(巖崖) 중에 도리어 불법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자조가 이르되 있다. 진운(*進云)하되 무엇이 이 심산 암애 중의 불법입니까. 자조가 이르되 기괴한 석두(石頭; 頭는 조사)는 형상이 범과 같고 불에 탄 송수(松樹)는 형세가 용과 같다. 무진거사(*無盡居士)가 그 말을 사랑했다. 석문록(*石門錄)에 유독 2사(事)를 싣지 않았다. 이것은 다 묘희(妙喜; 宗杲)가 무진거사의 설(說)을 친견한 것이다.
●慈照聰; 온총(蘊聰; 965-1032)이니 송대 임제종승. 광동 남해 사람이니 속성은 장. 출가한 후 백장도상을 참했고 이어서 수산성념(首山省念)을 참해 대오했음. 후에 호북 동산수초ㆍ대양산 경연ㆍ지문사계 등을 역참(歷參)했음. 경덕 3년(1006) 양주 곡은산 석문사에 주(住)했고 천희 4년(1020) 곡은산 태평흥국선사로 이주했음. 도중이 많을 적엔 천 인에 달했음. 아울러 한림 양문억, 중산 유균 등과 교결(交結)했음. 천성 10년에 시적했고 나이는 68. 시호는 자조선사(慈照禪師)며 이준욱이 비문을 지었음. 저서에 어록인 석문산자조선사봉암집(石門山慈照禪師鳳巖集) 1권이 있음 [광등록17. 오등회원11. 석씨계고략4. 선림보훈음의].
●首山; 성념(省念; 926-993)이니 오대 임제종승. 내주(萊州; 지금의 산동 액현) 사람이며 속성은 적(狄)이며 호가 수산(首山). 어릴 적에 남선사에 들어가 수업(受業)했고 겨우 구족계를 받자 총석(叢席)을 두루 다녔음. 늘 두타행(頭陀行)을 닦았으며 몰래 법화경을 외운지라 사람들이 호칭하기를 염법화(念法華)라 했음. 풍혈연소(風穴延沼)를 사사(師事)하여 그 심전(心傳)을 얻었으며 명성을 사방에 떨쳐 일세(一世)를 풍미(風靡)했음. 그 후 여주(汝州) 수산(首山)에서 개법(開法)하여 제1세가 되었고 또 여주 섭현(葉縣) 보안산(寶安山)의 광교원(廣敎院) 및 성(城) 아래의 보응원(寶應院) 등에 주(住)했음. 순화 3년(992) 12월 4일에 상당해 게를 설해 가로되 금년에 67이니/ 늙고 병들어 인연 따라 또 날을 보낸다/ 금년에 내년의 일을 기취(記取)하고/ 내년에 금조(今朝)의 일을 기억하라. 다음해 12월 4일에 상당하여 대중에게 고별하며 이에 게를 설해 가로되 백은세계(白銀世界)의 금색신(金色身)이여/ 정(情)과 비정(非情)이 한가지로 일진(一眞)이다/ 명암이 다한 때 다 비추지 못하나니/ 일륜(日輪)의 오후에 전신을 보이리라. 말을 마치자 안좌(安坐)하여 입적했으니 나이는 68 [전등록13. 오등회원11].
●咸平; (998-1003) 이는 송 진종(眞宗)의 연호.
●襄州; 지금의 호북성 양번(襄樊)이니 하택신회와 대매법상의 출생지며 서북지역에 운문종 동산수초의 도량이 있음.
●太守; 전국(戰國)에서 진조(秦朝) 시기에 이르기까지 군수(郡守)의 존칭이었음. 한경제(漢景帝)가 이름을 고쳐 태수라 했으며 1군(郡)의 최고 행정장관이 됨 [백도백과. 조정사원3].
●問訊; 합장하면서 입으로 안부를 물음임. 다만 경읍(敬揖)하면서 안부를 표문(表問)하는 마음도 또 이르되 문신임. 설문 신(訊) 문(問)이다.
●進云; 진(進)은 봉헌. 송상(送上). 진운(進云)이란 것은 선가문답의 기록용어니 문화자(問話者)가 계속 선사를 향해 제문(提問)함을 표시함.
●無盡居士; 장상영(張商英; 1043-1121)이니 북송 황룡파 거사. 촉주(蜀州; 사천 숭경) 신진(新津) 사람이며 자는 천각(天覺)이며 호는 무진거사(無盡居士). 어릴 적부터 곧 예기(銳氣)가 척당(倜儻; 근기가 卓異)하여 하루에 만언(萬言)을 외웠음. 처음에 통주주부(通州主簿)에 임용되었는데 어느 날 입사(入寺)하여 장경(藏經)의 권책(卷冊)이 제정(齊整)함을 보고 발끈하며 가로되 우리 공성(孔聖)의 서책이 여기에도 미치지 못하겠는가 하고는 무불론(無佛論)을 지으려고 했음. 후에 유마경을 읽고 느끼는 게 있어 이에 불법에 귀신(歸信)했음. 신종(神宗; 1068-1085) 때 왕안석(王安石)의 추거(推擧)를 받아 입조(入朝)했고 대관년 간에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가 되었으며 오래지 않아 사건으로 인해 외지(外地)로 적강(謫降)되었다가 강서운사(江西運使)로 좌천(左遷)됨에 이르렀음. 동림사(東林寺) 상총(常總; 황룡을 이었음)을 예알(禮謁)하고 그의 인가(印可)를 얻었음. 다시 도솔사 종열(從悅; 황룡하 2세)에게 투입해 암두(巖頭)의 말후지구(末後之句)로 나아가 참구하는 바가 있었고 그의 법 이음을 얻었음. 소성(紹聖; 1094-1098) 초년(初年) 부름을 받아 좌사간(左司諫)이 되었는데 글을 올려 사마(司馬) 광려공(光呂公)의 저서를 논함으로 인해 좌천되었고 또 늘 당시의 재상 채경(蔡京)을 욕한지라 고로 여러 차례 폄강(貶降)을 받았음. 대관(大觀) 4년(1110) 6월에 하늘이 오래 가물었는데 칙명을 받고 기우(祈雨)하여 저녁에 홀연히 비가 와 휘종(徽宗)이 크게 기뻐하며 상림(商霖) 2자(字)를 주었음. 후에 채경(蔡京)의 참언(讒言)을 받아 지하남부(知河南府)로 폄강(貶降)되었음. 선화(宣和) 4년에 죽었으니 나이는 79며 사시(賜諡)가 문충(文忠). 저서에 호법론(護法論) 1권이 있음 [석씨계고략4. 거사전28. 송사351].
●石門錄; 석문산자조선사봉암집(石門山慈照禪師鳳巖集)을 가리킴. 1권. 고존숙어록9에 실렸음.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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