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

종문무고(宗門武庫) 043

태화당 2022. 8. 10. 09:32

43*宣州*興敎坦禪師 *溫州牛氏子 世業*打銀 因磨洗銀瓶次忽有省 遂出家*受具遊方 爲*瑯瑘廣照之嗣 懷禪師住興敎 坦爲第一座 及懷受別請 欲擧坦繼住持 時*刁景純守宛陵 懷恐刁涉外議 乃於*觀音前祝曰 若坦首座道眼明白堪任住持 願示夢於刁*學士 刁夜夢牛在興敎法座上 懷*凌晨辭州 刁擧夜所夢 懷大笑 刁問其故 懷曰 坦首座姓牛又屬牛 刁就座出帖請之 坦受請陞座 有雪竇*化主省宗 出問 諸佛未出世 人人*鼻孔遼天 出世後爲什麽杳無消息 坦云 *雞足峯前風*悄然 宗云 *未在更道 坦云 大雪滿*長安 宗云 誰人知此意 令我憶*南泉 拂袖歸衆 更不禮拜 坦云 新興敎今日失利 便歸方丈 坦令人請宗至云 適來錯祇對*一轉語 人天衆前何不禮拜蓋覆却 宗云 *大丈夫膝下有黃金 爭肯禮拜無眼長老 坦云 我別有語在 宗乃理前語 至未在更道處 坦云 我有三十棒 寄爾打雪竇 宗乃禮拜

 

宣州; 今屬安徽省宣城縣

興敎坦; 興敎院坦 宋代臨濟宗僧 永嘉(今屬浙江)牛氏 業打銀 因淬礪甁器有省 出家嗣琅邪慧覺 後依天衣義懷住興敎爲第一座 及天衣受他請 刁景純請坦繼席 [普燈錄三 五燈會元十二]

溫州; 浙江省東南部永嘉縣的古稱 因氣候溫和 故稱溫州 永嘉玄覺 鏡淸道怤等出生地 府城西有松臺山淨光寺 玄覺曾住此而作證道歌

打銀; 用手工鍛造銀器

受具; 僧人接受具足戒稱爲受具

瑯瑘廣照; 北宋臨濟宗僧慧覺 後住滁州瑯琊山 詳見2瑯瑯

刁景純; 刁約 字景純 丹徒(今江蘇鎭江)人 時人稱他爲刁學士 北宋天聖八年(1030)進士 爲諸王宮敎授 後爲館閣校勘 [百度]

觀音; 觀世音 玄應經音義五 觀世音 梵言阿婆盧吉低舍婆羅 此譯云觀世自在 舊譯云觀世音或言光世音 竝訛也 妙法蓮華經入疏一 天竺云 婆婁吉低稅 此云觀世音 思益經云 若衆生見者 卽時畢定得於菩提 稱名者得免衆苦 故名觀音 慈恩寺三藏法師傳二 阿縛盧枳多伊濕伐羅菩薩像 唐言觀自在 合字連聲梵語如上 分文而言 卽阿縛盧枳多譯曰觀 伊濕伐羅譯曰自在 舊云光世音 或觀世音 或觀世音自在 皆訛也

學士; 南北朝以後 以學士爲司文學撰述之官 唐代翰林學士亦本爲文學侍從之臣 因接近皇帝 往往參預機要 宋代始設專職 其地位職掌 與唐代略同 明代設翰林院學士 及翰林院侍讀 侍講學士 學士遂專爲詞臣之榮銜 淸代改翰林院學士爲掌院學士 餘如故 淸末期內閣典禮院 亦置學士 [百度百科]

凌晨; 指從零時起到天亮前的一段時間

化主; 敎化之主 卽指釋尊 與敎主爲同義語 二敎化之主人 指住持 三街坊化主之略稱 指禪林中專司行走街坊 勸化檀越隨力施與 以添助寺院者 有粥街坊 米麥街坊 菜街坊 醬街坊等別 其勸化所得 稱爲化米化麥化醬等 此指三

鼻孔遼天; 意謂省悟禪法 超然脫世 遼天沖向天際 飛向天空 祖庭事苑一 鼻孔遼天 遼 當作撩 撩取也 昂視之貌 遼 遠也 非義

雞足峯; 雞足山 同鷄足山 又作尊足山 狼足山 狼跡山 位於中印度摩揭陀國 乃摩訶迦葉入寂之地

悄然; 與寂然同義 悄 寂靜無聲 字彙 悄 靜也

未在; 不契(禪法) 在 助詞 又不然

長安; 中國著名古都之一 位於陝西省黃河流域 卽今之西安 自漢至唐一千年之間 長安爲西漢 西魏 北周 隋唐等朝代之首都

南泉; 普願(748-834) 唐代僧 鄭州新鄭(河南開封新鄭)人 俗姓王 十歲受業於大隗山大慧 大曆七年(772) 就嵩山會善寺暠律師受具足戒 未久 遊諸講肆 聽楞伽華嚴等經 又通達中論百論十二門論等之玄義 後參江西馬祖道一 有所省悟 貞元十一年(795) 於池陽南泉山建禪宇 三十餘年不出山 太和(827835)初年 應衆請出山 由是 學徒雲集 法道大揚 太和八年十二月二十五日示寂 壽八十七 世稱南泉普願 有語錄一卷 法嗣有從諗 曇照 師祖等十七人 [宋高僧傳十一 傳燈錄八 聯燈會要四 佛祖歷代通載二十二 禪宗正脈三]

一轉語; 一句或一則機語 多指應對語 轉 量詞 相當于回 次

大丈夫膝下有黃金; 謂大丈夫不輕易向人下跪

 

43선주(*宣州) 흥교탄(*興敎坦) 선사는 온주(溫州) 우씨(*牛氏)의 아들이다. 세업(世業; 代代로 이어 온 生業)이 타은(*打銀)이었는데 은병(銀瓶)을 마세(磨洗)하다가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드디어 출가하여 수구(*受具)하고 유방(遊方)하다가 낭야광조(*瑯瑘廣照)의 법사(法嗣)가 되었다. (; 義懷) 선사가 흥교(興敎)에 주지했는데 탄()이 제1(第一座)가 되었다. 및 의회(義懷)가 별청(別請)을 받자 탄을 천거해 주지를 계승하게 하려 했다. 때에 조경순(*刁景純)이 완릉(宛陵)을 수비했는데 의회가, ()가 외의(外議)에 건널까() 염려했다. 이에 관음(*觀音) 앞에서 축원해 가로되 만약 탄수좌가 도안(道眼)이 명백하여 주지를 감임(堪任)한다면 원컨대 조학사(*學士)에게 시몽(示夢)하소서. ()의 야몽(夜夢)에 소가 흥교(興敎)의 법좌 위에 있었다. 의회가 능신(*凌晨)에 사주(辭州; 를 고별. 에서 떠남)하자 조()가 밤에 꿈꾼 바를 들었다(). 의회가 대소(大笑)했다. 조가 그 연고를 묻자 의회가 가로되 탄수좌의 성이 우()며 또 우()에 속합니다. ()가 취좌(就座)하여 출첩(出帖)하여 그를 청했다. 탄이 수청(受請)하고 승좌(陞座)하자 설두(雪竇; 雪竇重顯)의 화주(*化主) 성종(省宗)이 있어 출문(出問)하되 제불이 출세하지 않아서는 사람마다 비공이 요천(*鼻孔遼天)하더니 출세한 후엔 무엇 때문에 아득히() 소식이 없습니까. 탄이 이르되 계족봉(*雞足峯) 앞에 바람이 초연(*悄然)하다. 성종이 이르되 미재(未在)니 다시 말하십시오. 탄이 이르되 대설(大雪)이 장안(*長安)에 가득하다. 성종이 이르되 어떤 사람(誰人)이 이 뜻을 알겠는가, 나로 하여금 남천(*南泉)을 추억케 하네. 소매를 떨치고 귀중(歸衆)하면서 다시 예배하지 않았다. 탄이 이르되 신흥교(新興敎)가 금일 실리(失利; 실패)했다. 곧 방장으로 돌아갔다. 탄이 사람을 시켜 성종을 청해 이르게 하고 이르되 척래(適來; 아까. 조금 전)에 잘못 1전어(*一轉語)를 지대(祇對; 응대)했다 하더라도 인천(人天)의 중전(衆前)에서 왜 예배하지 않고 개부(蓋覆)해버렸는가. 성종이 이르되 대장부의 슬하에 황금이 있거늘(*大丈夫膝下有黃金) 어찌 안목이 없는 장로에게 예배함을 긍낙(肯諾)하겠습니까. 탄이 이르되 내가 달리 말이 있다. 성종이 이에 앞의 말을 정리하여 미재(未在)니 다시 말하십시오 한 곳에 이르자 탄이 이르되 나에게 30()이 있다. 너에게 기탁하니 설두를 때려라. 성종이 이에 예배했다.

 

宣州; 지금 안휘성 선성현에 속함.

興敎坦; 흥교원탄(興敎院坦)이니 송대 임제종승. 영가(지금 절강에 속함) 우씨. 직업이 타은(打銀; 銀器를 만듦)이었고 병기(甁器)를 쉬려(淬礪; 날을 달구어서 물에 담궜다가 숫돌에 갊)하다가 살핌이 있었음. 출가하여 낭야혜각(琅邪慧覺)을 이었음. 후에 천의의회에게 의지하며 흥교에 거주했고 제1좌가 되었음. 그리고 천의가 다른 곳의 요청을 받자 조경순이 탄에게 청해 계석(繼席)했음 [보등록3. 오등회원12].

溫州; 절강성 동남부 영가현의 고칭. 기후가 온화함으로 인해 고로 명칭이 온주임. 영가현각와 경청도부 등의 출생지. 부성(府城) 서쪽에 송대산 정광사가 있으며 현각이 일찍이 여기에 거주하면서 증도가를 지었음.

打銀; 수공(手工; 손으로 만들다)을 사용하여 은기(銀器)를 단조(鍛造).

受具; 승인이 구족계를 접수함을 일컬어 수구라 함.

瑯瑘廣照; 북송 임제종승 혜각(慧覺)이니 후에 저주 낭야산에 주했음. 상세한 것은 2낭야(瑯瑯)를 보라.

刁景純; 조약(刁約)이니 자가 경순(景純). 단도(丹徒; 지금의 강소 진강) 사람. 시인(時人)이 그를 일컬어 조학사(刁學士)라 했음. 북송 천성 8(1030) 진사(進士). 여러 왕궁(王宮)의 교수가 되었고 후에 관각교감(館閣校勘)이 되었음 [백도].

觀音; 관세음(觀世音; Avalokiteśvara). 현응경음의5 관세음 범언으로 아바로길저사바라는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관세자재다. 구역에 이른 관세음 혹은 말하기를 광세음은 모두 그르다. 묘법연화경입소1. 천축에서 이르되 바루길저세는 여기에선 이르되 관세음이다. 사익경에 이르되 만약 중생이 친견하는 자는 즉시, 필경 꼭 보리를 얻으며 명호를 일컫는 자는 뭇 괴로움을 면함을 얻나니 고로 이름이 관음이다. 자은사삼장법사전2. 아바로기다이습벌라보살상(阿縛盧枳多伊濕伐羅菩薩像) 당나라 말로는 관자재다. 글자를 합하고 소리를 연결한 범어는 위와 같다. 글을 나누어 말하자면 곧 아바로기다는 번역해 가로되 관()이며 이습벌라는 번역해 가로되 자재(自在). 예전에 이른 광세음 혹은 관세음 혹은 관세음자재는 다 그르다.

學士; 남북조 이후 학사(學士)로써 문학찬술(文學撰述)을 맡는 관리로 삼았음. 당대(唐代) 한림학사도 또한 본래 문학시종(文學侍從)의 신하가 되었으며 인하여 황제에게 접근해 왕왕 기요(機要)에 참예(參預)했음. 송대(宋代) 비로소 전직(專職)을 시설했으며 그 지위와 직장(職掌)은 당대와 대략 같았음. 명대(明代)에 한림원학사 및 한림원시독, 시강학사를 설치했고 학사는 드디어 오로지 사신(詞臣)의 영함(榮銜)이 되었음. 청대(淸代) 한림원학사를 고쳐 장원학사(掌院學士)로 삼았고 나머지는 예전과 같았음. 청 말기 내각 전례원에 또한 학사를 설치했음 [백도백과].

凌晨; 영시(零時)로부터 일어나 하늘이 밝음에 이르기까지의 1()의 시간을 가리킴.

化主; 1. 교화의 주()니 곧 석존을 가리킴. 곧 교주와 동의어가 됨. 2. 교화의 주인이니 주지를 가리킴. 3. 가방화주(街坊化主)의 약칭. 선림 중에서 가방(街坊)을 다니면서 단월(檀越)에게 권화(勸化)하여 능력따라 시여(施與)해 사원(寺院)에 첨조(添助)하게 함을 오로지 맡은 자를 가리킴. 죽가방(粥街坊)ㆍ미맥가방(米麥街坊)ㆍ채가방(菜街坊)ㆍ장가방(醬街坊) 등의 구별이 있음. 그 권화(勸化)하여 얻은 것을 화미(化米)ㆍ화맥(化麥)ㆍ화장(化醬) 등으로 호칭함. 여기에선 3을 가리킴.

鼻孔遼天;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을 성오(省悟)하여 초연히 세상을 벗어나 하늘 가를 요천(遼天)하고 충향(沖向)하면서 천공(天空)을 향해 비행함. 조정사원1. 비공요천(鼻孔遼天). ()는 마땅히 료(; 취할 료)로 지어야 하나니 요취(撩取)며 앙시(昂視; 은 높을 앙. 밝을 앙)하는 모양임. ()는 원()이니 뜻이 아님.

雞足峯; 계족산(雞足; Kukkuṭapāda-giri)이니 계족산(鷄足山)과 같음. 또 존족산ㆍ낭족산ㆍ낭적산으로 지음. 중인도 마갈타국에 위치함. 곧 마하가섭이 입적한 땅.

悄然; 적연(寂然)과 같은 뜻. ()는 적정하고 소리가 없음임. 자휘 초() ()이다.

未在; (선법)에 계합하지 못함. ()는 조사니 또 불연(不然).

長安; 중국의 저명한 고도(古都)의 하나. 섬서성 황하유역에 위치하며 즉금의 서안. ()으로부터 당에 이르는 1천 년 사이 장안은 서한ㆍ서위ㆍ북주ㆍ수ㆍ당 등 조대(朝代)의 수도가 되었음.

南泉; 보원(普願; 748-834)이니 당대승. 정주 신정(하남 개봉 신정) 사람이며 속성은 왕(). 10세에 대외산의 대혜(大慧)에게 수업(受業)하고 대력 7(772) 숭산 회선사 호()율사(暠律師)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음. 오래지 않아 여러 강사(講肆)에 노닐면서 릉가와 화엄 등의 경을 청강(聽講)했으며 또 중론(中論)ㆍ백론(百論)ㆍ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의 현의(玄義)를 통달했음. 후에 강서의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알(參謁)하고 성오(省悟)하는 바가 있었음. 정원 12(795) 지양(池陽)의 남천산(南泉山)에 선우(禪宇)를 건립하고 30여 년 동안 산을 벗어나지 않았음. 태화(827-835) 초년(初年) 대중의 청에 응해 출산(出山)하자 이로 말미암아 학도(學徒)가 운집하고 법도를 크게 날렸음. 태화 81225일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7. 세칭이 남천보원(南泉普願). 어록 1권이 있으며 법사(法嗣)에 종심(從諗)ㆍ담조(曇照)ㆍ사조(師祖) 17인이 있음 [송고승전11. 전등록8. 연등회요4. 불조역대통재22. 선종정맥3].

一轉語; 1구 혹은 1칙의 기어(機語). 다분히 응대어를 가리킴. ()은 양사니 회()ㆍ차()에 상당함.

大丈夫膝下有黃金; 이르자면 대장부는 경이(輕易)하게 사람을 향해 하궤(下跪; 무릎을 꿇다)하지 않음.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pyungsimsa.tistory.com

 

'종문무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종문무고(宗門武庫) 045  (0) 2022.08.11
종문무고(宗門武庫) 044  (0) 2022.08.10
종문무고(宗門武庫) 042  (0) 2022.08.10
종문무고(宗門武庫) 041  (0) 2022.08.09
종문무고(宗門武庫) 040  (0) 20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