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宣州*興敎坦禪師 *溫州牛氏子 世業*打銀 因磨洗銀瓶次忽有省 遂出家*受具遊方 爲*瑯瑘廣照之嗣 懷禪師住興敎 坦爲第一座 及懷受別請 欲擧坦繼住持 時*刁景純守宛陵 懷恐刁涉外議 乃於*觀音前祝曰 若坦首座道眼明白堪任住持 願示夢於刁*學士 刁夜夢牛在興敎法座上 懷*凌晨辭州 刁擧夜所夢 懷大笑 刁問其故 懷曰 坦首座姓牛又屬牛 刁就座出帖請之 坦受請陞座 有雪竇*化主省宗 出問 諸佛未出世 人人*鼻孔遼天 出世後爲什麽杳無消息 坦云 *雞足峯前風*悄然 宗云 *未在更道 坦云 大雪滿*長安 宗云 誰人知此意 令我憶*南泉 拂袖歸衆 更不禮拜 坦云 新興敎今日失利 便歸方丈 坦令人請宗至云 適來錯祇對*一轉語 人天衆前何不禮拜蓋覆却 宗云 *大丈夫膝下有黃金 爭肯禮拜無眼長老 坦云 我別有語在 宗乃理前語 至未在更道處 坦云 我有三十棒 寄爾打雪竇 宗乃禮拜
●宣州; 今屬安徽省宣城縣
●興敎坦; 興敎院坦 宋代臨濟宗僧 永嘉(今屬浙江)牛氏 業打銀 因淬礪甁器有省 出家嗣琅邪慧覺 後依天衣義懷住興敎爲第一座 及天衣受他請 刁景純請坦繼席 [普燈錄三 五燈會元十二]
●溫州; 浙江省東南部永嘉縣的古稱 因氣候溫和 故稱溫州 永嘉玄覺 鏡淸道怤等出生地 府城西有松臺山淨光寺 玄覺曾住此而作證道歌
●打銀; 用手工鍛造銀器
●受具; 僧人接受具足戒稱爲受具
●瑯瑘廣照; 北宋臨濟宗僧慧覺 後住滁州瑯琊山 詳見【2】瑯瑯
●刁景純; 刁約 字景純 丹徒(今江蘇鎭江)人 時人稱他爲刁學士 北宋天聖八年(1030)進士 爲諸王宮敎授 後爲館閣校勘 [百度]
●觀音; 觀世音 玄應經音義五 觀世音 梵言阿婆盧吉低舍婆羅 此譯云觀世自在 舊譯云觀世音或言光世音 竝訛也 ▲妙法蓮華經入疏一 天竺云 婆婁吉低稅 此云觀世音 思益經云 若衆生見者 卽時畢定得於菩提 稱名者得免衆苦 故名觀音 ▲慈恩寺三藏法師傳二 阿縛盧枳多伊濕伐羅菩薩像 唐言觀自在 合字連聲梵語如上 分文而言 卽阿縛盧枳多譯曰觀 伊濕伐羅譯曰自在 舊云光世音 或觀世音 或觀世音自在 皆訛也
●學士; 南北朝以後 以學士爲司文學撰述之官 唐代翰林學士亦本爲文學侍從之臣 因接近皇帝 往往參預機要 宋代始設專職 其地位職掌 與唐代略同 明代設翰林院學士 及翰林院侍讀 侍講學士 學士遂專爲詞臣之榮銜 淸代改翰林院學士爲掌院學士 餘如故 淸末期內閣典禮院 亦置學士 [百度百科]
●凌晨; 指從零時起到天亮前的一段時間
●化主; 一敎化之主 卽指釋尊 與敎主爲同義語 二敎化之主人 指住持 三街坊化主之略稱 指禪林中專司行走街坊 勸化檀越隨力施與 以添助寺院者 有粥街坊 米麥街坊 菜街坊 醬街坊等別 其勸化所得 稱爲化米化麥化醬等 此指三
●鼻孔遼天; 意謂省悟禪法 超然脫世 遼天沖向天際 飛向天空 ▲祖庭事苑一 鼻孔遼天 遼 當作撩 撩取也 昂視之貌 遼 遠也 非義
●雞足峯; 雞足山 同鷄足山 又作尊足山 狼足山 狼跡山 位於中印度摩揭陀國 乃摩訶迦葉入寂之地
●悄然; 與寂然同義 悄 寂靜無聲 字彙 悄 靜也
●未在; 不契(禪法) 在 助詞 又不然
●長安; 中國著名古都之一 位於陝西省黃河流域 卽今之西安 自漢至唐一千年之間 長安爲西漢 西魏 北周 隋唐等朝代之首都
●南泉; 普願(748-834) 唐代僧 鄭州新鄭(河南開封新鄭)人 俗姓王 十歲受業於大隗山大慧 大曆七年(772) 就嵩山會善寺暠律師受具足戒 未久 遊諸講肆 聽楞伽華嚴等經 又通達中論百論十二門論等之玄義 後參江西馬祖道一 有所省悟 貞元十一年(795) 於池陽南泉山建禪宇 三十餘年不出山 太和(827–835)初年 應衆請出山 由是 學徒雲集 法道大揚 太和八年十二月二十五日示寂 壽八十七 世稱南泉普願 有語錄一卷 法嗣有從諗 曇照 師祖等十七人 [宋高僧傳十一 傳燈錄八 聯燈會要四 佛祖歷代通載二十二 禪宗正脈三]
●一轉語; 一句或一則機語 多指應對語 轉 量詞 相當于回 次
●大丈夫膝下有黃金; 謂大丈夫不輕易向人下跪
【43】 선주(*宣州) 흥교탄(*興敎坦) 선사는 온주(溫州) 우씨(*牛氏)의 아들이다. 세업(世業; 代代로 이어 온 生業)이 타은(*打銀)이었는데 은병(銀瓶)을 마세(磨洗)하다가 홀연히 성찰이 있었다. 드디어 출가하여 수구(*受具)하고 유방(遊方)하다가 낭야광조(*瑯瑘廣照)의 법사(法嗣)가 되었다. 회(懷; 義懷) 선사가 흥교(興敎)에 주지했는데 탄(坦)이 제1좌(第一座)가 되었다. 및 의회(義懷)가 별청(別請)을 받자 탄을 천거해 주지를 계승하게 하려 했다. 때에 조경순(*刁景純)이 완릉(宛陵)을 수비했는데 의회가, 조(刁)가 외의(外議)에 건널까(涉) 염려했다. 이에 관음(*觀音) 앞에서 축원해 가로되 만약 탄수좌가 도안(道眼)이 명백하여 주지를 감임(堪任)한다면 원컨대 조학사(刁*學士)에게 시몽(示夢)하소서. 조(刁)의 야몽(夜夢)에 소가 흥교(興敎)의 법좌 위에 있었다. 의회가 능신(*凌晨)에 사주(辭州; 州를 고별. 곧 州에서 떠남)하자 조(刁)가 밤에 꿈꾼 바를 들었다(擧). 의회가 대소(大笑)했다. 조가 그 연고를 묻자 의회가 가로되 탄수좌의 성이 우(牛)며 또 우(牛)에 속합니다. 조(刁)가 취좌(就座)하여 출첩(出帖)하여 그를 청했다. 탄이 수청(受請)하고 승좌(陞座)하자 설두(雪竇; 雪竇重顯)의 화주(*化主) 성종(省宗)이 있어 출문(出問)하되 제불이 출세하지 않아서는 사람마다 비공이 요천(*鼻孔遼天)하더니 출세한 후엔 무엇 때문에 아득히(杳) 소식이 없습니까. 탄이 이르되 계족봉(*雞足峯) 앞에 바람이 초연(*悄然)하다. 성종이 이르되 미재(未在)니 다시 말하십시오. 탄이 이르되 대설(大雪)이 장안(*長安)에 가득하다. 성종이 이르되 어떤 사람(誰人)이 이 뜻을 알겠는가, 나로 하여금 남천(*南泉)을 추억케 하네. 소매를 떨치고 귀중(歸衆)하면서 다시 예배하지 않았다. 탄이 이르되 신흥교(新興敎)가 금일 실리(失利; 실패)했다. 곧 방장으로 돌아갔다. 탄이 사람을 시켜 성종을 청해 이르게 하고 이르되 척래(適來; 아까. 조금 전)에 잘못 1전어(*一轉語)를 지대(祇對; 응대)했다 하더라도 인천(人天)의 중전(衆前)에서 왜 예배하지 않고 개부(蓋覆)해버렸는가. 성종이 이르되 대장부의 슬하에 황금이 있거늘(*大丈夫膝下有黃金) 어찌 안목이 없는 장로에게 예배함을 긍낙(肯諾)하겠습니까. 탄이 이르되 내가 달리 말이 있다. 성종이 이에 앞의 말을 정리하여 미재(未在)니 다시 말하십시오 한 곳에 이르자 탄이 이르되 나에게 30방(棒)이 있다. 너에게 기탁하니 설두를 때려라. 성종이 이에 예배했다.
●宣州; 지금 안휘성 선성현에 속함.
●興敎坦; 흥교원탄(興敎院坦)이니 송대 임제종승. 영가(지금 절강에 속함) 우씨. 직업이 타은(打銀; 銀器를 만듦)이었고 병기(甁器)를 쉬려(淬礪; 날을 달구어서 물에 담궜다가 숫돌에 갊)하다가 살핌이 있었음. 출가하여 낭야혜각(琅邪慧覺)을 이었음. 후에 천의의회에게 의지하며 흥교에 거주했고 제1좌가 되었음. 그리고 천의가 다른 곳의 요청을 받자 조경순이 탄에게 청해 계석(繼席)했음 [보등록3. 오등회원12].
●溫州; 절강성 동남부 영가현의 고칭. 기후가 온화함으로 인해 고로 명칭이 온주임. 영가현각와 경청도부 등의 출생지. 부성(府城) 서쪽에 송대산 정광사가 있으며 현각이 일찍이 여기에 거주하면서 증도가를 지었음.
●打銀; 수공(手工; 손으로 만들다)을 사용하여 은기(銀器)를 단조(鍛造)함.
●受具; 승인이 구족계를 접수함을 일컬어 수구라 함.
●瑯瑘廣照; 북송 임제종승 혜각(慧覺)이니 후에 저주 낭야산에 주했음. 상세한 것은 【2】 낭야(瑯瑯)를 보라.
●刁景純; 조약(刁約)이니 자가 경순(景純). 단도(丹徒; 지금의 강소 진강) 사람. 시인(時人)이 그를 일컬어 조학사(刁學士)라 했음. 북송 천성 8년(1030) 진사(進士). 여러 왕궁(王宮)의 교수가 되었고 후에 관각교감(館閣校勘)이 되었음 [백도].
●觀音; 관세음(觀世音; 梵 Avalokiteśvara)임. 현응경음의5 관세음 범언으로 아바로길저사바라는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관세자재다. 구역에 이른 관세음 혹은 말하기를 광세음은 모두 그르다. ▲묘법연화경입소1. 천축에서 이르되 바루길저세는 여기에선 이르되 관세음이다. 사익경에 이르되 만약 중생이 친견하는 자는 즉시, 필경 꼭 보리를 얻으며 명호를 일컫는 자는 뭇 괴로움을 면함을 얻나니 고로 이름이 관음이다. ▲자은사삼장법사전2. 아바로기다이습벌라보살상(阿縛盧枳多伊濕伐羅菩薩像) 당나라 말로는 관자재다. 글자를 합하고 소리를 연결한 범어는 위와 같다. 글을 나누어 말하자면 곧 아바로기다는 번역해 가로되 관(觀)이며 이습벌라는 번역해 가로되 자재(自在)다. 예전에 이른 광세음 혹은 관세음 혹은 관세음자재는 다 그르다.
●學士; 남북조 이후 학사(學士)로써 문학찬술(文學撰述)을 맡는 관리로 삼았음. 당대(唐代) 한림학사도 또한 본래 문학시종(文學侍從)의 신하가 되었으며 인하여 황제에게 접근해 왕왕 기요(機要)에 참예(參預)했음. 송대(宋代) 비로소 전직(專職)을 시설했으며 그 지위와 직장(職掌)은 당대와 대략 같았음. 명대(明代)에 한림원학사 및 한림원시독, 시강학사를 설치했고 학사는 드디어 오로지 사신(詞臣)의 영함(榮銜)이 되었음. 청대(淸代) 한림원학사를 고쳐 장원학사(掌院學士)로 삼았고 나머지는 예전과 같았음. 청 말기 내각 전례원에 또한 학사를 설치했음 [백도백과].
●凌晨; 영시(零時)로부터 일어나 하늘이 밝음에 이르기까지의 1단(段)의 시간을 가리킴.
●化主; 1. 교화의 주(主)니 곧 석존을 가리킴. 곧 교주와 동의어가 됨. 2. 교화의 주인이니 주지를 가리킴. 3. 가방화주(街坊化主)의 약칭. 선림 중에서 가방(街坊)을 다니면서 단월(檀越)에게 권화(勸化)하여 능력따라 시여(施與)해 사원(寺院)에 첨조(添助)하게 함을 오로지 맡은 자를 가리킴. 죽가방(粥街坊)ㆍ미맥가방(米麥街坊)ㆍ채가방(菜街坊)ㆍ장가방(醬街坊) 등의 구별이 있음. 그 권화(勸化)하여 얻은 것을 화미(化米)ㆍ화맥(化麥)ㆍ화장(化醬) 등으로 호칭함. 여기에선 3을 가리킴.
●鼻孔遼天;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을 성오(省悟)하여 초연히 세상을 벗어나 하늘 가를 요천(遼天)하고 충향(沖向)하면서 천공(天空)을 향해 비행함. ▲조정사원1. 비공요천(鼻孔遼天). 료(遼)는 마땅히 료(撩; 취할 료)로 지어야 하나니 요취(撩取)며 앙시(昂視; 昂은 높을 앙. 밝을 앙)하는 모양임. 료(遼)는 원(遠)이니 뜻이 아님.
●雞足峯; 계족산(雞足山; 梵 Kukkuṭapāda-giri)이니 계족산(鷄足山)과 같음. 또 존족산ㆍ낭족산ㆍ낭적산으로 지음. 중인도 마갈타국에 위치함. 곧 마하가섭이 입적한 땅.
●悄然; 적연(寂然)과 같은 뜻. 초(悄)는 적정하고 소리가 없음임. 자휘 초(悄) 정(靜)이다.
●未在; (선법)에 계합하지 못함. 재(在)는 조사니 또 불연(不然)임.
●長安; 중국의 저명한 고도(古都)의 하나. 섬서성 황하유역에 위치하며 즉금의 서안. 한(漢)으로부터 당에 이르는 1천 년 사이 장안은 서한ㆍ서위ㆍ북주ㆍ수ㆍ당 등 조대(朝代)의 수도가 되었음.
●南泉; 보원(普願; 748-834)이니 당대승. 정주 신정(하남 개봉 신정) 사람이며 속성은 왕(王). 10세에 대외산의 대혜(大慧)에게 수업(受業)하고 대력 7년(772) 숭산 회선사 호(고)율사(暠律師)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음. 오래지 않아 여러 강사(講肆)에 노닐면서 릉가와 화엄 등의 경을 청강(聽講)했으며 또 중론(中論)ㆍ백론(百論)ㆍ십이문론(十二門論) 등의 현의(玄義)를 통달했음. 후에 강서의 마조도일(馬祖道一)을 참알(參謁)하고 성오(省悟)하는 바가 있었음. 정원 12년(795) 지양(池陽)의 남천산(南泉山)에 선우(禪宇)를 건립하고 30여 년 동안 산을 벗어나지 않았음. 태화(827-835) 초년(初年) 대중의 청에 응해 출산(出山)하자 이로 말미암아 학도(學徒)가 운집하고 법도를 크게 날렸음. 태화 8년 12월 25일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87. 세칭이 남천보원(南泉普願). 어록 1권이 있으며 법사(法嗣)에 종심(從諗)ㆍ담조(曇照)ㆍ사조(師祖) 등 17인이 있음 [송고승전11. 전등록8. 연등회요4. 불조역대통재22. 선종정맥3].
●一轉語; 1구 혹은 1칙의 기어(機語). 다분히 응대어를 가리킴. 전(轉)은 양사니 회(回)ㆍ차(次)에 상당함.
●大丈夫膝下有黃金; 이르자면 대장부는 경이(輕易)하게 사람을 향해 하궤(下跪; 무릎을 꿇다)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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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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