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無盡居私第日 適*年荒 有*道士輩 詣門*敎化食米 無盡遂勸各人誦金剛經 若誦得一分 施米一斗 如誦畢施米三石二斗 化渠結*般若緣 故云*財法二施 每遇僧又勸念*老子 使其互相知有 觀其護敎之心 直如是爾
●年荒; 穀物歉收
●道士; 本爲釋子之稱 後遂爲神仙家之名 猶如言道敎也 ▲法苑珠林五十五 姚書云 始乎漢魏終暨符姚 皆號衆僧以爲道士 至魏太武世 有寇謙之 始竊道士之名 ▲行事鈔資持記下三 道士本釋氏之美稱 後爲黃巾濫竊 遂不稱之
●敎化; 此指行乞 乞討
●般若; <梵> Prajna 又作波若 般羅若 鉢剌若 此翻爲慧 智慧 明 黠慧 菩薩爲達彼岸 必修六種行 亦卽修六波羅蜜 其中之般若波羅蜜(智慧波羅蜜) 卽稱爲諸佛之母 成爲其他五波羅蜜之根據 [解脫道論九分別慧品 梁粱譯攝大乘論中 大智度論四十三 同七十二]
●財法二施; 財施與法施 財施 三施(法施 財施 無畏施)之一 不犯他人財物 且以己財施與他人 法施 三施之一 說法使人聞之也 又云法供養 法施爲對下之語 法供養爲對上之語
●老子; 姓李氏 名聃 字伯陽 聃 諡也 定王三年丁巳(前604) 九月十四日 生楚國陳郡苦縣賴鄕曲仁里 聃之生也 釋迦文佛入滅已三百四十六年矣 簡王四年己卯(前582) 伯陽年二十三 仕周爲守藏吏 十三年遷柱下史 自是五十四年不遷 時人目爲吏隱 敬王元年壬午(前519) 老子年八十六歲 去周與散關(今陝西興元路鳳州)令尹喜 西遊流沙 而死於扶風郡 葬槐里(今陝西安西路興平縣也) [釋氏稽古略一]
【75】 무진(無盡; 무진거사)이 사제(私第; 私邸)에 거처하던 날 마침 연황(*年荒)이었다. 도사배(*道士輩)가 있어 대문으로 나아가 식미(食米)를 교화(*敎化)했다. 무진이 드디어 각인(各人)에게 금강경을 외우라고(誦) 권했다. 만약 1분(分)을 송득(誦得)하면 쌀 1두(斗)를 시여(施與)했고 외어 마칠 것 같으면 쌀 3석2두(三石二斗; 세 섬 두 말)를 시여했으니 그들을 교화하여 반야(*般若)와 인연을 맺게 했다. 고로 이르되 재시이법(*財法二施)이다. 매번 승인을 만나면 노자(*老子)를 외우라고(念) 권했으니 그들로 하여금 호상(互相) 있음을 알게 하였음이다. 그 호교(護敎)의 마음을 보건대 바로 이와 같았다.
●年荒; 곡물(穀物)을 겸수(歉收; 凶作)함.
●道士; 본래 석자(釋子)의 명칭이 되었으나 후에 드디어 신선가의 명호가 되었으니 오히려 도교라고 말함과 같음. ▲법원주림55. 요서(姚書)에 이르되 한위(漢魏)에서 비롯하여 부요(符姚)에서 마치기까지 모두 중승을 호칭하여 도사(道士)라 했다. 위(魏) 태무의 시대에 이르러 구겸지(寇謙之)가 있어 처음으로 도사의 명칭을 훔쳤다. ▲행사초자지기하3. 도사(道士)는 본래 석씨의 미칭이었다. 후에 황건(黃巾; 황건적)이 남절(濫竊; 함부로 훔침)함이 되어 드디어 그것을 일컫지 않았다.
●敎化; 여기에선 행걸(行乞), 걸토(乞討)를 가리킴.
●般若; <범> Prajna. 또 파야(波若)ㆍ반라야(般羅若)ㆍ발랄야(鉢剌若)로 지음. 여기에선 혜(慧)ㆍ지혜ㆍ명(明)ㆍ힐혜(黠慧)로 번역함. 보살이 피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6종의 행을 닦는데 또한 곧 6바라밀을 닦음. 그 중의 반야바라밀(지혜바라밀)을 곧 일컬어 제불의 모(母)라 하며 기타의 5바라밀을 성취하는 근거임 [해탈도론9분별혜품. 양역섭대승론중. 대지도론43, 동72].
●財法二施; 재시와 법시. 재시(財施)는 3시(三施; 법시ㆍ재시ㆍ무외시)의 하나. 타인의 재물을 범하지 않고 다만 자기의 재물로 타인에게 시여(施與)함. 법시(法施)는 3시(施)의 하나. 설법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듣게 함임. 또 이르되 법공양이니 법시는 대하(對下)의 말이 되고 법공양은 대상(對上)의 말이 됨.
●老子; 성은 이씨(李氏)며 이름은 담(聃)이며 자는 백양(伯陽)이니 담(聃)은 시호임. 정왕(定王) 3년 정사(丁巳; 前 604) 9월 14일에 초국(楚國)의 진군(陳郡) 고현(苦縣) 뇌향(賴鄉) 곡인리(曲仁里)에서 출생했음. 담(聃)의 탄생은 석가문불이 입멸한 지 이미 346년임. 간왕(簡王) 4년 기묘(己卯; 前 582) 백양의 나이 23에 주(周)에 벼슬해 수장리(守藏吏)가 되었으며 13년에 주하사(柱下史)로 옮겼음. 이로부터 54년 동안 옮기지 않았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지목해 이은(吏隱)이라 했음. 경왕(敬王) 원년 임오(壬午; 前 519) 노자의 나이 86세에 주(周)를 떠나 산관(散關; 지금의 섬서 흥원로 봉주) 영(令)인 윤희(尹喜)와 유사(流沙)로 서유(西遊)하다가 부풍군(扶風郡)에서 죽었으며 괴리(槐里; 지금의 섬서 서안 안서로 흥평현)에 장사 지냈음 [석씨계고략1]. 그의 가장 저명한 작품은 이 노자(老子)며 후에 개명하여 도덕경(道德經)이라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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